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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의 흙 ― 오세영 흙이 되기 위하여 흙으로 빚어진 그릇 언제인가 접시는 깨진다. 생애의 영광을 잔치하는 순간에 바싹 깨지는 그릇. 인간은 한 번 죽는다. 물로 반죽되고 불에 그슬려서 비로소 살아 있는 흙. 누구나 인간은 한 번쯤 물에 젖고 불에 탄다. 하나의 접시가 되리라. 깨어져서 완성되는 저 절대의 파멸이 있다면. 흙이 되기 위하여 흙으로 빚어진 모순의 그릇. 흙이 그릇으로 만들어져 깨어지는 것을 인간의 삶과 죽음에 비유하여, 삶은 죽음을 전제로 할 때 가장 진실한 모습일 수 있다는 존재론적 진리를 표현하고 있다. ☞ 어조 ; 차분한 목소리 → 삶에 대한 조용한 각성 ☞ 사상 ; 불교적 윤회 사상 ☞ 주제 ; 죽음이라는 본질을 지닌 삶의 진리 ⊙ 그릇 ; 인간 ⊙ 깨진다 ; 죽는다 ⊙ 삶의 일회성..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 신석정 저 재를 넘어가는 저녁 해의 엷은 광선들이 섭섭 해 합니다.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 그리고 나의 작은 명상의 새 새끼들이 지금도 저 푸른 하늘에서 날고 있지 않습니까? 이윽고 하늘이 능금처럼 붉어질 때 그 새 새끼들은 어둠과 함께 돌아온다 합니다. 언덕에서는 우리의 어린 양들이 낡은 녹색 침대 에 누워서 남은 햇볕을 즐기느라고 돌아오지 않고 조용한 호수 위에는 인제야 저녁 안개가 자욱히 내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늙은 산의 고요히 명상하는 얼굴이 멀어가지 않고 머언 숲에서는 밤이 끌고 오는 그 검은 치맛자락이 발길에 스치는 발자욱 소리도 들려오지 않습니 다. 멀리 있는 기인 둑을 거쳐서 들려오는 물결 소..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 신석정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깊은 산림 지대를 끼고 돌면 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 좁은 들길에 들장미 열매 붉어. 멀리 노루 새끼 마음 놓고 뛰어다니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그 나라에 가실 때에는 부디 잊지 마셔요, 나와 같이 그 나라에 가서 비둘기를 키웁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산비탈 넌지시 타고 내려오면 양지밭에 흰 염소 한가히 풀 뜯고 길 솟는 옥수수밭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 먼 바다 물 소리 구슬피 들려 오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어머니 부디 잊지 마셔요. 그 때 우리는 어린 양을 몰고 돌아옵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오월 하늘에 비둘기 멀리 날고,..
목계 장터 ― 신경림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 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 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민물 새우 끓어 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짐부리고 앉아 있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1976) ※ 신경림(1935~) ; 1956년 에 ‘갈대’로 등단. 초기에는 관념적 측면에서 인간 존재를 탐구하는 시를 쓰다가, 60년대 이후에는 농촌의 현실 ..
가난한 사랑 노래 ― 신경림 -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 대원의 호각 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 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
농무 ― 신경림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 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조무래기들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 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꺼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꺼나. 「창작과 비평」 가을호 (1971) 197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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