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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장(風葬) ― 황동규 내 세상 뜨면 풍장을 시켜 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 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 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군산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 통통배에 옮겨 다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무인도 지나 통통소리 지나 배가 육지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 시계 부서질 때 / 남몰래 시간을 떨어뜨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튕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 다오 어금니에 녹스는 백금(白金) 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 다오. 바람 이불처럼 덮고 / ..
당신을 보았습니다 ― 한용운 당신이 가신 뒤로 나는 당신을 잊을 수가 없습니 다. 까닭은 당신을 위하느니보다 나를 위함이 많습니 다. 나는 갈고 심을 땅이 없으므로 추수(秋收)가 없 습니다. 저녁거리가 없어서 조나 감자를 꾸러 이웃집에 갔더니, 주인은 “거지는 인격이 없다. 인격이 없 는 사람은 생명이 없다. 너를 도와주는 것은 죄 악이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돌아 나올 때에, 쏟아지는 눈물 속 에서 당신을 보았습니다. 나는 집도 없고 다른 까닭을 겸하여 민적(民籍) 이 없습니다. “민적이 없는 자는 인권이 없다. 인권이 없는 너 에게 무슨 정조(貞操)냐.”하고 능욕하려는 장군 (將軍)이 있었습니다. 그를 항거한 뒤에 남에게 대한 격분이 스스로의 슬픔으로 화하는 찰나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아..
논개의 애인이 되어 그의 묘에 ― 한용운 날과 밤으로 흐르고 흐르는 남강(南江)은 가지 않습니다. 바람과 비에 우두커니 섰는 ①촉석루(矗石樓)는 살 같은 광음(光陰)을 따라서 달음질칩니다. 논개(論介)여, 나에게 ③울음과 웃음을 동시에 주는 사랑하는 논개여. 그대는 조선의 무덤 가운데 피었던 좋은 꽃의 하나 이다. 그래서 그 ④향기는 썩지 않는다. 나는 시인으로 그대의 애인이 되었노라. 그대는 어디 있느뇨. 죽지 않은 그대가 이 세상에는 없고나. 나는 ①황금의 칼에 베어진 꽃과 같이 향기롭고 애처 로운 그대의 당년(當年)을 회상한다. 술 향기에 ②목맺힌 고요한 ③노래는 ④옥(獄)에 묻힌 썩은 칼을 ⑤울렸다. 춤추는 소매를 안고 도는 ⑥무서운 찬바람은 ⑦귀신 나라의 꽃수풀을 거쳐서 ⑦떨어지는 해를 ⑧얼렸다..
근성 ― 조정권 배추를 뽑아 보면서 안쓰럽게 버티다가 뽑혀져 나온 뿌리들을 살펴보면서 나는 여지껏 뿌리들이 흙 속에서 악착스럽게 힘 을 주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뿌리는 결국 제 몸통을 따라올 수밖에 없다 는 생각이 든다. 배추를 뽑아 보면서 이렇게 많은 배추들이 제각기 제 뿌리를 데리고 나옴을 볼 때 뿌리들이 모두 떠난 흙의 숙연(肅然)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 배추는 뽑히더라도 뿌리는 악착스러울 이만큼 흙 의 혈(血)을 물고 나온다. 부러지거나 끊어진 배추 뿌리에 묻어 있는 피 이놈들은 어둠 속에서도 흙의 육(肉)을 물어 뜯 고 있었나 보다. 이놈들은 흙 속에서 버티다가 버티다가 독하게 제 하반신을 잘라 버린 것이라는 생각이 든 다. 나는 뽑혀지는 것은 절대로 뿌리가 아니라는 생 각이 든다. 뽑혀..
풍선심장 ― 이형기 심장을 만듭니다. / 풍선에 바람을 불어넣어 색칠을 합니다. 원래의 심장은 / 지난 여름 장마때 피가 모조리 씻겨 빠졌습니다. 그리고 장마 뒤의 불볕 속에서 내 심장 / 빈 껍데기만 남은 그것은 허물처럼 까실까실 말라버렸습니다. 이제는 쓸모가 없게 된 심장 구겨 뭉쳐 쓰레기통에 내버린 심장 한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심장을 달랍니다. 드리고 말고요 / 어렵잖은 일입니다. 당신의 맘에 꼭 드는 예쁘장한 심장 어두운 가슴 속에 감추어 둘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쩨쩨하게 혼자 / 독점할 것도 없습니다 그것은 자 둥둥 하늘에 띄우는 심장 떠다니다 어떻게 되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심장 오늘 나는 그 풍선 심장에 곱게 곱게 색칠을 합니다. 메마른 현대 문명 속에서 점점 상실되어 가는 인간의 진실된 모..
낙화(落花) ―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落花)……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 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인 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 주제 ; 결별(낙화)의 의미에 대한 깨달음 ⇒ 결별이 슬픔과 성숙의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음에 대한 깨달음. ⊙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자. 인생을 달관한 자. ☞ 꽃과 자아의 합일(合一) ⊙ 나의 사랑 = 꽃 ☞ ⊙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 = 낙화의 축복 ☞ ⊙ 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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