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 신석정 / 해설

by 송화은율
반응형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신석정

저 재를 넘어가는 저녁 해의 엷은 광선들이 섭섭 해 합니다.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

그리고 나의 작은 명상의 새 새끼들이

지금도 저 푸른 하늘에서 날고 있지 않습니까?

이윽고 하늘이 능금처럼 붉어질 때

그 새 새끼들은 어둠과 함께 돌아온다 합니다.

언덕에서는 우리의 어린 양들이 낡은 녹색 침대 에 누워서

남은 햇볕을 즐기느라고 돌아오지 않고

조용한 호수 위에는 인제야 저녁 안개가 자욱히 내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늙은 산의 고요히 명상하는 얼굴이 멀어가지 않고

머언 숲에서는 밤이 끌고 오는 그 검은 치맛자락이

발길에 스치는 발자욱 소리도 들려오지 않습니 다.

 

멀리 있는 기인 둑을 거쳐서 들려오는 물결 소리 도 차츰차츰 멀어 갑니다.

그것은 늦은 가을부터 우리 전원을 방문하는 까 마귀들이

바람을 데리고 멀리 가버린 까닭이겠습니다.

시방 어머니의 등에서는 어머니의 콧노래 섞인

자장가를 듣고 싶어하는 애기의 잠덧이 있습니다.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

인제야 저 숲 너머 하늘에 작은 별이 하나 나오 지 않았습니까?

조선일보 (1933. 11)


<감상> 신석정의 시는 대체로 전원의 아름다움을 동양적 서정으로 노래하여 독특한 미감을 준다. 이 시는 저녁 해, 푸른 하늘, 명상의 새새끼, 어린 양, 녹색 침대, 조용한 호수, 저녁 안개, 늙은 산, 작은 별 등 천사와 낙원의 표상에 평화와 안식과 생명의 모태인 어머니의 심상을 결합하여 엮어 내는 명상의 노래요, 전형적인 목가시이다.

 주제 ; 아름답고 고요한 전원 (이상향)에 대한 동경

 

1: 황혼 녘의 전원  고요한 명상적 분위기

 촛불 ;  어둠을 밝히는 고요한 정서, 또는 그 표상.  황혼의 아름다운 자연과 대치됨. 어둠과 공포의 심상. 자아에게 거부의 대상임.

 명상의 새 새끼 ; 은유법. 원관념은 명상으로서 관념이며, 보조 관념은 새 새끼로서 구체적 사물이다. 자연과의 교감이 일어나고 있음을 암시한다.

 

2: 황혼 녘 전원의 아름다움

 어린 양 ;  平和의 표상. 순진하고 和平한 약자.

 낡은 녹색 침대 ; 퇴색해 가는 잔디밭. 안식과 평화

 촛불을 켤 때 ; 불안과 슬픔, 공포의 밤. 어둠.

 늙은 산 ; 무위자연(無爲自然)의 경지. 의인법.

 검은 치맛자락 ; 불안과 좌절을 느끼게 하는 감각적인 것. 의인법.

 

3: 이상향에의 동경

 까마귀 ; 불행, 불운의 표상.

 바람 ; 평화를 교란시키는 세력. 낙원의 평화를 깨는 악의 표상.

 


 이미지의 대립  (어둠, ) : 새 새끼,

어린 양, 촛불(화평과 천사의 이미지)

 

 어머니 ; 특별한 이유 없이 자아를 사랑하고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 정신적인 어머니, 한용운의 과 같은 존재.


 

반응형

블로그의 정보

국어문학창고

송화은율

활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