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풍장(風葬) / 황동규 / 해설

by 송화은율
반응형

풍장(風葬)  황동규

내 세상 뜨면 풍장을 시켜 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 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 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군산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 통통배에 옮겨 다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무인도 지나 통통소리 지나

배가 육지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 시계 부서질 때 / 남몰래 시간을 떨어뜨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튕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 다오

어금니에 녹스는 백금(白金) 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 다오.

 

바람 이불처럼 덮고 / 화장(化粧)도 해탈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 다오

 


 

1 ; 풍장의 준비. 2 ; 풍장의 과정.

3 ; 풍장의 의미.

 

 옷은 입은 채로손목에 달아 놓고 ; 죽은 모습 그대로. 아무런 꾸밈 없이. ‘전자 시계 현대의 물질 문명을 상징한다.

 검색이 심하면 / 곰소쯤에 가서 ; ‘검색은 시대 상황을, ‘곰소는 이런 시대 상황의 힘이 미치지 않는, 즉 인간의 자취가 드문 地名으로 볼 수 있다.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 ‘벗기우고의 주 체는 비바람과 햇빛임.

 남몰래 시간을 떨어뜨리고 ; 시간과의 단절, 즉 세상과의 이별단절을 의미한다. 동시에 시간의 경과를 암시하기도 한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 조각도 ; ‘백금은 인간의 물질()을 의미한다. 자연 앞에 소멸하는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

 화장도 해탈도 없이 ; 서정적 자아는 자신의 죽음이 세속적인 가식으로도, 신성한 의미로도 받아들여지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 자신의 존재가 비바람 속에서 사라져 버릴 때까지.

<현대 문명 사회의 물질 만능이 자아내는 모순을 풍자와 상징을 통해 비판 바람은 순수를 표상하고 있다.>

 

<감상>

화자는 자신이 죽을 경우 풍장시켜 줄 것을 부탁하고, 아울러 시간의 경과에 따른 풍장의 과정을 담담하고 비장한 어조로 진술하고 있다.

 

풍장을 염원하는 화자의 태도에서 현실에 대한 시인의 허무주의적 태도가 나타난다. 이와 같은 태도는 바람이 지니고 있는 소멸의 이미지를 통해서 제시된다. 여기에서 바람은 살과 피를 말리우듯 일체의 사물을 소멸시켜 자연의 일부로 되돌리는 생명 순환의 원리를 상징한다. 결국, 이러한 죽음마저 그 어떤 세속적 가식이나 신성한 의미도 거부한 채 바람을 이불처럼 덮고 함께 논다는 것에서 허무에 바탕을 둔 작가의 현실 인식과 초월적인 세계에 대한 지향을 엿볼 수 있다.


 

반응형

블로그의 정보

국어문학창고

송화은율

활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