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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생전(楮生傳) 생의 성은 저인데, 저란 닥나무로 종이의 원료이다. 그의 이름은 백이며, 희다는 뜻이다. 자는 무점으로 무점은 아무런 티가 없이 깨끗하다는 말이다. 그는 회계 사람으로 한나라 채륜의 후손이다. 생은 태어날 때 난초탕에서 목욕을 하고, 흰 구슬을 희롱하고 흰 띠로 꾸렸기 때문에 그 모양이 깨끗하고 희었다. 그의 아우는 모두 19명이나 된다. 이들은 저생과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이들은 서로 화목하고 사이가 좋아서 잠시도 떨어지는 법이 없었다. 이들은 원래 성질이 정결하고, 무인을 좋아하지 않아, 언제나 문사들만 사귀어 놀았다. 그 중에서도 중산 모학사가 가까운 친구인데, 모학사란 곧 붓을 가리킨다. 저생과 모학사는 마냥 친하게 놀아서 혹시 모학사가 저생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더..
빙도자전(氷道者傳) 아비는 현영(玄英)이고 어미는 청녀(靑女)인데 빙도자는 어미가 꿈에 서릿바람을 보고 , 임신하여 열달 만에 태어났다. 온몸이 투명하고, 체질은 쇠처럼 단단하였으며, 청결한 의지나 냉철한 얼굴 등이 범하기 어려웠다. 무의자(지은이 호)가 기특히 여겨 천거하여 중으로 삼고 빙도자라 불렀다. 문답식으로 얼음의 청결함을 선리의 사실과 비유하면서 내 마음은 가을 달 같아서 푸른 못에 맑게 비친다. 어떤 물건이 이와 견줄 수 있으랴 나에게 무슨 말을 하게 하랴 吾心似秋月 오심사추월 碧潭淸皎潔 벽담청교결 無物堪比論 무물감비론 敎我如何說 교아여하설 라는 시를 읊었다. 이는 선의 세계를 말로 표현할 수 없음을 암유(暗喩)하고 있다.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으며 목욕을 하지 않아도 때묻지..
무장 공자전(無腸公子傳) 요점 정리 작자 : 이윤보 연대 : 고려 의종 형식 : 가전 성격 : 교훈적, 비판적, 풍자적으로 추정 주제 : 지조 없는 인간들을 풍자한 것으로 추정 내용 연구 이해와 감상 가전 작품으로, 원전이 전하지 않아서 서지적 상황과 작품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 권21과 최자의 '보한집'권중에 이윤보가 '무장공자전'을 지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무장공자는 '본초강목'에 蟹(해 :게)의 일명으로 되어 있는데 창자가 없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다. 그밖에 방해, 곽삭, 횡행개사 등의 별명이 있다고 하였다. 이 작품의 내용을 이규보와 최자의 기록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추정해 보면 다음과 같다. '무장공자전'은 세상을 빈정거리고 희롱한 작품이다. 한유..
국순전(麴醇傳) 국순(麴醇)의 자(字)는 자후(子厚)이다. 그 조상은 농서( 西) 사람이다. 90대조(九十代祖)인 모(牟)가 후직(后稷)을 도와 뭇 백성들을 먹여 공이 있었다. '시경(詩經)'에, "내게 밀과 보리를 주다." 한 것이 그것이다. 모(牟)가 처음 숨어 살며 벼슬하지 않고 말하기를, "나는 반드시 밭을 갈아야 먹으리라." 하여, 밭에서 살았다. 임금이 그 자손이 있다는 말을 듣고 조서(詔書)를 내려 안거(安車)로 부를 때, 군(郡)과 현(縣)에 명하여 곳마다 후하게 예물을 보내게 하였다. 신하를 시켜 친히 그 집에 나아가, 드디어 방아와 절구[杵臼] 사이에서 교분을 정하였다. 화광 동진(和光同塵)하게 되니, 훈훈하게 찌는 기운이 점점 스며들어서 온자( 藉)한 맛이 있어 기뻐 말하기를, ..
국선생전(麴先生傳) 국성(麴聖)의 자는 중지(中之)요, 관향(貫鄕)은 주천(酒泉)이다. 어렸을 때에 서막(徐邈)에게 사랑을 얻어, 그의 이름과 자(字)는 모두 서씨가 지어 주었다. 그의 조상은 애초에 온(溫)이라고 하는 고장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고 있었는데, 정(鄭)나라가 주(周)나라를 칠 때에 포로가 되어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였으므로, 그 자손의 일파가 정나라에서 살게 되었다. 그의 증조는 역사에 이름이 나타나지 않았고, 조부 모(牟)는 살림을 주천으로 옮겨, 이 때부터 주천에서 살게 되었다. 아버지 차( )에 이르러서 비로서 벼슬길에 나아가 평원 독우(平原督郵)의 직을 역임하였고, 사농경(司農卿) 곡씨(穀氏)의 따님과 결혼하여 성(聖)을 낳았다. 성은 어렸을 때부터 도량이 넓고 침착하여..
관자허전(管子虛傳) 관씨의 본성은 죽씨(대나무)인데, 그의 선조가 황제에게 발탁되어 황종의 음률을 만들게 되었다. 후손 고죽군이 자허를 낳았는데, 그는 속이 비고 외모는 고결하였다. 마침 황제가 인재를 구하는 명을 내리자 생성옹은 자허를 천거한다. 이에 황제는 상림원에서 그를 빈(賓)으로 맞았으나, 자허는 오히려 인사도 없이 뻣뻣하고 거만하였다. 황제는 그의 오만한 절개를 높이 사서 "가슴 속 서말이나 되는 가사를 없앨 만하다"고 칭찬하였다. 자허는 뒤에 아들 여덟과 딸 하나를 두었는데, 곧 붓·화살· 퉁소· 제기·죽간·낚싯대·지팡이·발 그리고 기춘현부인이다. 관자는 그뒤 60세에 두심( 心)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그 후손들은 대대로 위천에 봉해져 뭇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요점 정리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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