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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 속의 호랑이 / 최운식(崔雲植) 호랑이는 우리 민족의 건국 신화인 단군 신화에서부터 등장한다. 호랑이는 고려 시대의 기록이나 최근에 조사된 민속 자료에서는 산신(山神)으로 나타나는데, ‘산 손님’, ‘산신령’, ‘산군(山君)’, ‘산돌이’, ‘산 지킴이’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이처럼 신성시된 호랑이가 우리의 설화나 민화 속에서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설화나 민화 속에서 우리는 무서운 호랑이, 익살스런 호랑이, 정이 철철 넘치는 호랑이, 신이(神異)한 호랑이를 만날 수 있다. 여기에서는 우리 민족의 삶의 모습이 설화 속의 호랑이를 통해 어떻게 형상화되어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호랑이는 가축을 해치고 사람을 다치게 하는 일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설화 중에는 사람이나 가축이 호랑이한테 ..
바리데기 바리데기 바리 공주야 옛날, 우리 나라에 삼나라라고 있었다. 이 나라에는 어비 대왕이라는 훌륭한 임금님이 나라를 잘 다스리고 있었는데,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낮에는 나랏일로 시간을 보낸다지만 밤이면 무척 고독하였으니, 바로 중전이 계시지 아니한 것이다. “안 되겠다. 내 나이 이제 이팔청춘이니 중전을 맞이해야겠다. 전국에 간택령을 내려라. 여러 신하들은 왕비감을 찾아오라.” 이런 바람에 전국이 술렁이었다. 누가 왕비가 될 것인가? 한 번 뽑고, 두 번 뽑고, 세 번 뽑고……. 속속 진행이 되는 중에 길대 부인이라는 중전감이 등장하였다. 어여쁘기도 할싸, 너그럽기도 할싸, 어디 하나 나무랄 데가 없는 왕비감이로다. 어비 대왕은 대만족이었다. 한시바삐 중전과 함께 지내고 싶었다. 그러나 이전 풍습대..
원숭이와 거북 이야기 ‘마히르’라는 이름을 가진 원숭이가 살았습니다. 그는 원숭이들의 왕으로, 영리하고 재주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나이를 먹으면서 몸이 쇠약해지자 젊은 원숭이들이 공격을 하였고, 마침내는 왕의 자리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마히르는 바닷가로 피신해서 한 무화과나무 위에 거처를 정했습니다. 어느 날, 마히르는 무화과를 따 먹다가 그 중의 한 개를 물에 빠뜨렸습니다. ‘퐁당’ 하는 소리가 아름다운 장단으로 들려왔습니다. 이에 흥미를 느낀 마히르는 무화과를 먹고 던지고 하면서 흥겨운 가락을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날이 갈수록 마히르는 이 놀이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마히르의 이런 놀이 덕분에 포식을 하게 된 이가 생겨났으니 바로 나무 밑을 거닐던 거북이었습니다. 거북은 무화과가 떨어질 때마다 바쁘..
원수이면서도 서로 필요한 까닭 / 이광정 옛날 무서운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쥐들은 모두 고양이를 두려워하여 함부로 나다니지 못했다. 하루는 굶주린 쥐들이 고양이 없앨 방도를 논의하고 있었지만, 뾰족한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자 한 쥐가 나서서 말했다. "고양이를 없애는 일은 어려우니, 목에 방울을 매답시다. 방울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미리 피하면 되지 않겠소?" 그 말을 듣고 있던 늙은 쥐가 탄식하며 말했다. "우리가 비록 사람에게서 방울을 훔쳐온다 한들,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 있겠는가? 그런 일은 누구도 할 수 없지. 게다가 사람은 날쌘 도둑도 막아내는데, 한낱 쥐들이 방울 훔쳐 가는 것을 막지 못하겠느냐? 방울 다는 일을 하려다가는 제대로 시도조차 못한 채 굶어 죽고 말 거야. 차..
구운몽(九雲夢) [해제] 의 이해를 위하여 작가 김만중(金萬重)의 생애와 인간, 그리고 문학과 사상 등을 언급하고 나서, 의 대체적인 줄거리와 사상적 배경, 원전비평과 이본상의 문제, 비교문학적인 문제, 그리고 본서에 사용된 텍스트의 문제를 차례로 기술하기로 하겠다. 김만중(김만중, 1637~1692)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소설가로 본관은 광산(光山), 아명은 선생(船生), 자는 중숙(重叔), 호는 서포(西浦), 시호(諡號)는 문효(文孝)이다. 조선조 예학의 대가인 김장생의 증손이고, 충렬공 익겸의 유복자이며, 숙종의 장인인 광성부원군 만기의 아우로서, 숙종대왕의 초비(初妃)인 인경왕후의 숙부이다. 그의 어머니 해평 윤씨는 인조의 장인인 해남부원군 윤두수의 4대손이고 영의정을 지낸 문익공 방(昉)의 증..
장자(長者)못 전설 / 황해도 옹진군 부민면 부암리 전설 부암리(婦岩里, 부인 바위가 있는 마을)는 인근의 다른 마을에 비하여 부유한 마을이었다. 이 마을에 김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성품이 교활하고 인색하기 짝이 없었다. 얼마나 인색한 지 마을의 어린애들까지 손가락질을 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 김 부자 집의 며느리 윤씨 부인만은 달랐다. 그녀는 조신(操身, 몸가짐이 얌전함)하고 부덕(婦德, 여인이 갖추어야 할 덕)을 지닌 사람이었다. 한가위가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김 부자는 광에 가득 쌓인 볏섬을 둘러보고 매우 흐뭇한 기분에 젖어 있었다. 이 때 대문 밖에서 목탁 소리가 들려 왔다. 김 부자는 어느 절의 동냥 중이 왔겠거니 하면서 넓은 대청에 올라앉아 장죽을 빨고 있었다. 그는 인색한 성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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