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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 속의 호랑이 / 최운식(崔雲植)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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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화 속의 호랑이 / 최운식(崔雲植)

 

호랑이는 우리 민족의 건국 신화인 단군 신화에서부터 등장한다. 호랑이는 고려 시대의 기록이나 최근에 조사된 민속 자료에서는 산신(山神)으로 나타나는데, ‘산 손님’, ‘산신령’, ‘산군(山君)’, ‘산돌이’, ‘산 지킴이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이처럼 신성시된 호랑이가 우리의 설화나 민화 속에서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설화나 민화 속에서 우리는 무서운 호랑이, 익살스런 호랑이, 정이 철철 넘치는 호랑이, 신이(神異) 호랑이를 만날 수 있다. 여기에서는 우리 민족의 삶의 모습이 설화 속의 호랑이를 통해 어떻게 형상화되어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호랑이는 가축을 해치고 사람을 다치게 하는 일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설화 중에는 사람이나 가축이 호랑이한테 해를 당하는 이야기가 많이 있다. 사냥을 하던 아버지가 호랑이한테 해를 당하자 아들이 원수를 갚기 위해 그 호랑이와 싸워서 이겼다는 통쾌한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밤중에 변소에 갔던 신랑이 호랑이에게 물려가는 것을 본 신부가 있는 힘을 다하여 호랑이 꼬리를 붙잡고 매달려 신랑을 구했다는 흐뭇한 이야기도 있다. , 산골의 밭을 갈던 농부가 소를 잡아먹으려는 호랑이와 싸우다가 죽게 되었을 때, 소가 호랑이를 뿔로 받아 물리치고 주인을 구했다는 의로운 소 이야기도 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호랑이의 사납고 무서운 성질을 바탕으로 꾸며진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많이 해친 이런 호랑이들은 자기가 살던 곳에서 쫓겨나거나 천벌을 받아 죽는다.

 

고려 시중(侍中) 강감찬이 한양 판관이 되었을 때, 한양부에는 호랑이가 많아 사람을 해치는 일이 많았다. 이것을 안 강감찬이 중의 모습을 한 늙은 호랑이를 불러다가 꾸짖고, 5일 안으로 이 곳을 떠나지 않으면 모두 잡아 죽이겠다고 하니, 늙은 호랑이는 무리를 이끌고 강을 건너갔다.

 

,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이야기에서는 사나운 호랑이가 어머니를 잡아먹고, 동아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 오누이를 잡아먹으려다가 동아줄이 끊어져 죽는다.

 

이렇게 사나운 호랑이가 벌을 받는 이야기 속에는 악()을 물리치고 선()이 이기기를 바라는 민간의 의식이 투영되어 있다. 이런 사나운 호랑이는 탐관오리를 뜻하기도 한다.

 

호랑이와 곶감을 비롯한 여러 이야기에서 호랑이는 아주 어리석게 표현되기도 한다.

 

옛날, 어느 겨울날이었다. 호랑이가 배가 고파 토끼를 잡아 먹으려 하니, 토끼가 말했다.

대왕님, 대왕님께서 조그만 저를 잡수신들 시장기를 면하실 수 있겠습니까? 제가 대왕님께 맛있는 고기를 배불리 잡수실 수 있게 해 드릴 테니 제가 말씀드리는 대로 해 보십시오. 그래도 배가 부르지 않거든 그 때 저를 잡아잡수십시오.”

호랑이가 좋다고 허락하니, 토끼는 호랑이를 연못가로 데리고 가서 꼬리를 깊숙이 담그고 있으면 물고기가 꼬리에 매달릴 것이라고 하였다. 호랑이가 꼬리를 빼려고 하면, 토끼는 조금만 더 참으라고 하곤 하였다. 호랑이가 꼬리를 담그고 새벽까지 있자, 연못의 물은 호랑이의 꼬리와 함께 꽁꽁 얼어붙었다. 토끼는 숨어서 호랑이가 나무꾼들에게 맞아 죽는 것을 본 후에 여유 있게 제 집으로 돌아갔다.

 

이것은 삶의 지혜를 담은 이야기로, 힘이 센 자와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두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혜가 있어야 함을 말해 주고 있다.

 

설화 속에서 호랑이는 산신 또는 산신의 사자(使者)로 나타나기도 하고, 구체적인 설명 없이 신이한 존재로 나타나기도 한다.

 

고려 태조 왕건의 선조인 호경(好景)이 친구들과 사냥을 갔다가 날이 저물어 굴 안에서 밤을 지내게 되었다. 그런데 밤중에 커다란 호랑이가 굴 앞에 와서 사람들을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겁에 질린 사람들은, 한 사람이 굴 밖으로 나가 호랑이의 밥이 됨으로써 여러 사람이 호랑이에게 해를 당하지 않도록 하자고 하였다.

 

호경이 선택되어 굴 밖으로 나가자, 호랑이는 간 곳이 없었다. 잠시 후에 굴이 무너져 굴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죽었다.

 

호경이 마을 사람들과 함께 죽은 사람들을 장사하고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갑자기 불이 꺼지더니 큰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 산을 다스리는 산신령이오. 호경을 굴 안에서 구해 낸 것도 나였소. 나는 혼자 지내기가 외로워 호경을 데려가니 그리 아시오.”

 

사람들이 다시 불을 밝히고 보니, 호경은 간 곳이 없었다.

이것은 산신령이 호랑이의 모습으로 나타난 예이다. ‘효녀와 산신령이야기에서도 산신령이 호랑이의 모습으로 나타나, 겨울철 눈 속에서 병든 어머니께 드릴 잉어를 찾는 소녀에게 잉어를 잡아 준다. ‘장화홍련전에서 계모의 아들 장쇠는 장화를 재촉하여 물에 빠지게 하고 돌아오는 길에 호랑이한테 물려 죽는다. 이 때의 호랑이는 신이자로서 징벌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에서는 호랑이를 신성한 존재로 보고, 이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의 심성이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설화 속에서 호랑이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따뜻한 정과 의리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옛날에 날이 저물어도 돌아오지 않는 시아버지와 남편을 기다리던 며느리가 고개에 이르러 보니 호랑이가 술에 취해 잠든 시아버지를 해치려고 하였다. 며느리는 깜짝 놀라, 업고 있던 아들을 호랑이한테 던져 주면서 말했다.

호랑아, 배가 고프면 이 아이를 잡아먹고, 우리 아버님은 해치지 마.”

며느리는 시아버지를 업고 집으로 왔다. 이를 본 호랑이는 그 아이를 잡아먹지 않고 물어다가 동네 어귀에 놓고 갔다. 이튿날 아침, 이웃 사람이 그 아이를 발견하여 집으로 데려다 주었다.

 

이 이야기 속의 호랑이는 며느리의 효성에 감동하여 어린아이를 살려 주었다. 우리 민족에게 효는 인간이 지켜야 할 가장 큰 도리였다. 이처럼 인간의 효성에 감동한 호랑이 이야기가 많이 있다. 여름철에 홍시를 구하려는 효자를 등에 태워 홍시가 있는 곳으로 데려다 준 호랑이 이야기, 고개를 넘어 성묘 다니는 효자를 날마다 태워다 준 호랑이 이야기 등이 있다.

 

옛날에 한 나무꾼이 산 속에서 호랑이를 만났다. 그는 두려움에 떨다가 정신을 가다듬고 호랑이를 형님이라고 불렀다. 호랑이가 그에게 형님이라고 부르는 까닭을 묻자, 그가 말했다.

 

우리 어머니가 첫아이를 낳았는데, 호랑이 탈을 쓰고 있어서 할 수 없이 산에 버렸답니다. 그 후, 어머니는 버린 아들이 몹시 보고 싶어 눈물을 흘린 날이 많았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버렸다는 이가 형님임이 분명합니다.”

 

이 말을 들은 호랑이는 그를 동생으로 생각하고, 그의 어머니를 자기 어머니처럼 봉양하였다. 호랑이는 그에게 멧돼지, 사슴, 토끼 등을 물어다 주어 어머니를 봉양하게 하고, 처녀를 물어다 주어 장가도 들게 해 주었다.

 

그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 산에 가 보니, 호랑이 새끼들이 꼬리에 베 헝겊을 묶고 있었다. 그가 그 이유를 물으니, 호랑이 새끼들은 할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애도의 뜻을 표하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이 이야기에는 나무꾼을 자기의 동생으로, 그의 어머니를 자기의 어머니로 아는 호랑이의 정과 의리가 잘 나타나 있다. 목에 비녀가 걸려 고통을 당하던 호랑이가 비녀를 뽑아 준 사람에게 보물을 물어다 주거나, 좋은 묏자리를 알려 주어 은혜를 갚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우리 선조들은 두려워하던 호랑이를 의리와 정을 지닌 동물로 형상화함으로써 호랑이한테 친근감을 느끼도록 하였다.

 

우리 선조들은 호랑이를 다양한 모습으로 형상화하였다. 사납고 무서운 호랑이로 표현하여 악을 물리치고 선이 이기기를 바라기도 하였으며, 호랑이를 어리석은 존재로 나타내어 삶의 지혜를 소망하기도 하였다. 때로는 호랑이를 신성한 존재로 여겨 신격화하기도 하였고, 정과 의리와 인간의 효성에 감동하는 인간적인 모습으로 그리기도 하였다. 이렇게 설화에 나타난 호랑이의 여러 가지 모습은 호랑이에 투영된 민중 의식이 문학적으로 형상화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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