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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이면서도 서로 필요한 까닭 / 이광정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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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이면서도 서로 필요한 까닭 / 이광정

 

옛날 무서운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쥐들은 모두 고양이를 두려워하여 함부로 나다니지 못했다. 하루는 굶주린 쥐들이 고양이 없앨 방도를 논의하고 있었지만, 뾰족한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자 한 쥐가 나서서 말했다.

 

"고양이를 없애는 일은 어려우니, 목에 방울을 매답시다. 방울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미리 피하면 되지 않겠소?"

그 말을 듣고 있던 늙은 쥐가 탄식하며 말했다.

 

"우리가 비록 사람에게서 방울을 훔쳐온다 한들,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 있겠는가? 그런 일은 누구도 할 수 없지. 게다가 사람은 날쌘 도둑도 막아내는데, 한낱 쥐들이 방울 훔쳐 가는 것을 막지 못하겠느냐? 방울 다는 일을 하려다가는 제대로 시도조차 못한 채 굶어 죽고 말 거야.

 

차라리 고양이가 없는 앞산의 도토리나 주워 먹고 산다면, 비록 구차하기야 하겠지만 굶주리지는 않겠지. 저 산의 도토리는 무궁무진하니, 언제 다 먹어 없앨 수 있겠는가? 따지고 보면, 고양이가 공을 세우는 것은 우리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기 때문이야. 만약 우리가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고양이의 공도 없어질 것일세. 그렇다면 우리가 사람에게 커다란 해를 끼치지 않고, 또 누추하지만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모두 고양이의 덕이 아닐까? 고양이가 죽으면, 우리도 분명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죽고 말겠지."

모여 있던 쥐들은 늙은 쥐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얼마 뒤, 고양이가 그만 개에게 물려 죽고 말았다. 그러자 늙은 쥐는 매우 슬퍼하였다. 쥐들이 의아해 하며 물었다.

"우리의 원수인 고양이가 죽었는데, 왜 슬퍼하는 거요?"

 

그러자 늙은 쥐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너희들이 어찌 내 뜻을 알겠느냐? 우리는 성질이 본디 탐욕스러우니 머지 않아 큰 화가 들이닥칠 것이야. 고양이가 없어졌으니, 우리는 마음놓고 담벼락에 구멍을 내고, 책을 갉아먹고, 의복을 더럽히고, 음식을 도적질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는 보물에까지 손을 대겠지. 우리들은 고양이때문에 두려움을 알아 함부로 나다니거나 도적질을 못했어. 그런데 고양이가 죽었으니 화가 닥칠 것이 분명해."

 

그리고는 자기 가족을 이끌고 깊은 산 속으로 가버렸다. 쥐들은 그런 늙은 쥐의 행동을 비웃었다. 그리고는 마음놓고 사람이 사는 집을 나다닐 뿐 아니라 담벼락도 뚫고, 책도 갉아먹고, 의복을 더럽히고, 음식을 도적질하고, 귀하게 여기는 보물에까지 손을 대었다. 쥐들이 꺼리는 일이라곤 도무지 없었다. 마침내 집주인은 쥐들의 소행을 참지 못해 집안 사람들을 모두 불러모았다. 그런 뒤, 쥐구멍을 파고 그 앞에 불을 질러 연기를 피우는가 하면, 뜨거운 물을 쥐구멍에 들이부었다. 그리고는 날랜 고양이를 구해다가 쥐구멍 앞을 지키게 하였다. 달아나는 쥐들을 잡아먹게 하기 위해서였다. 결국 쥐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는데, 다만 산으로 피신한 늙은 쥐만이 살아 남았을 수 있었다.

 

- <망양록(亡羊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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