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키스 마셔요, 제발 마셔요. 보면서 못 보는 체 마셔요. 마셔요, 제발 마셔요. 입술을 다물고 눈으로 말하지 마셔요. 마셔요, 제발 마셔요. 세계의 꽃을 혼자 따면서 항분(亢奮)에 넘쳐서 떨지 마셔요. 마셔요, 제발 마셔요. 마소는 나의 운명의 가슴에서 춤을 춥니다. 새삼스럽게 스스러워 마셔요.
당신은 당신은 나를 보면 왜 늘 웃기만 하셔요. 당신의 찡그리는 얼굴을 좀 보고 싶은데. 나는 당신을 보고 찡그리기는 싫어요. 당신은 찡그리는 얼굴을 싫어하실 줄을 압니다. 그러나 떨어진 도화가 날아서 당신의 입술에 스칠 때에 나는 이마가 찡그러지는 줄도 모르고 울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금실로 수놓은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습니다.
의심하지 마셔요 의심하지 마셔요. 당신과 떨어져 있는 나에게 조금도 의심을 두지 마셔요. 의심을 둔대야 나에게는 별로 관계가 없으나 부질없이 당신에게 고통의 숫자만 더할 뿐입니다. 나는 당신의 첫사랑의 팔에 안길 때에 온갖 거짓의 옷을 다 벗고 세상에 나온 그대로의 발가벗은 몸을 당신앞에 놓았습니다. 지금까지도 당신의 앞에는 그 대에 놓아 둔 몸을 그대로 받들고 있습니다. 만일 인위(人爲)가 있다면 하는 마음 뿐입니다. 당신의 명령이라면 생명의 옷까지도 벗겠습니다. 나에게 죄가 있다면 당신을 그리워하는 나의 입니다. 당신이 가실 때에 나의 입술에 수없이 입맞추고「부디 나에게 대하여 슬퍼하지 말고 잘 있으라」고 한 당신의 간절한 부탁에 위반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은 용서하여 주셔요. 당신을 그리워하..
차라리 님이여, 오셔요. 오시지 아니하려면 차라리 가셔요. 가려다 오고 오려다 가는 것은 나에게 목숨을 빼앗고 죽음도 주지 않는 것입니다. 님이여, 나를 책망하려거든 차라리 큰 소리로 말씀하여 주셔요, 침묵으로 책망하지 말고, 침묵으로 책망하는 것은 아픈 마음을 얼음 바늘로 찌르는 것입니다. 님이여. 나를 아니 보려거든 차라리 눈을 돌려서 감으셔요. 흐르는 곁눈으로 흘겨보지 마셔요. 곁눈으로 흘겨보는 것은 사랑의 보(褓)에 가시의 선물을 싸서 주는 것입니다.
님의 손길 님의 사랑은 강철을 녹이는 물보다도 뜨거운데, 님의 손길은 너무 차서 한도가 없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서늘한 것도 보고 찬 것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님의 손길같이 찬 것은 볼 수가 없습니다. 국화 핀 서리 아침에 떨어진 잎새를 울리고 오는, 가을 바람도 님의 손길보다는 차지 못합니다. 달이 작고 별에 뽈나는 밤에, 얼음 위에 쌓인 눈도 님의 손길보다는 차지 못합니다. 나의 작은 가슴에 타오르는 불꽃은 님의 손길이 아니고는 끄는 수가 없습니다. 님의 손길의 온도를 측량할만한 한란계는 나의 가슴 밖에는 아무데도 없습니다. 님의 사랑은 불보다도 뜨거워서, 근심 산(山)을 태우고 한(恨) 바다를 말리는데, 님의 손길은 너무도 차서 한도가 없습니다.
군말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衆生)이 석가(釋迦)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의 님이 봄비라면, 마니찌의 님은 이탈리아이다. 님은 내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느니라. 연애가 자유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 좋은 자유의 알뜰한 구속(拘束)을 받지 않느냐. 너에게도 님이 있느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어가는 길을 잃고 헤메는 어린 양(羊)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
꽃싸움 당신은 두견화를 심을 때에 '꽃이 피거든 꽃싸움하자'고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꽃은 피어서 시들어 가는데, 당신은 옛 맹세를 잊으시고 아니 오십니까. 나는 한 손에 붉은 꽃수염을 가지고 한 손에는 흰 꽃수염을 가지고, 꽃 싸움을 하여서 이기는 것을 당신이라 하고, 지는 것은 내가 됩니다. 그러나 정말로 당신을 만나서 꽃싸움을 하게 되면, 나는 붉은 꽃수염을 가지고 당신은 흰 꽃수염을 가지게 합니다. 그러면 당신은 나에게 번번이 지십니다. 그것은 내가 이기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나에게 지기를 기뻐하는 까닭입니다. 번번이 이긴 나는 당신에게 우승의 상을 달라도 조르겠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빙긋이 웃으며, 나의 뺨에 입맞추겠습니다. 꽃은 치어서 시들어 가는데 당신은 옛 맹세를 잊으시고 아니 ..
고대 당신은 나로 하여금 날마다 당신을 기다리게 합니다. 해가 저물어 산 그림자가 촌집을 덮을 때에, 나는 기약없는 기대를 가지고 마을 숲 밖으로 가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소를 몰고 오는 아이들의 풀피리는 제소리에 목메입니다. 먼, 나무로 돌아가는 새들은 저녁 연기에 헤엄칩니다. 숲들은 바람과의 유희를 그치고 잠잠히 섰습니다. 그것은 나에게 동정하는 표상입니다. 시내를 따라 굽이친 모랫길이 어둠의 품에 안겨서 잠들 때에, 나는 고요하고 아득한 하늘의 긴 한숨의 사라진 자취를 남기고, 게으른 걸음으로 돌아옵니다. 당신은 나로 하여금 날마다 날마다 당신을 기다리게 합니다. 어둠의 입이 황혼의 엷은 빛을 삼킬 때에, 나는 시름없이 문 밖에 서서 당신을 기다리게 합니다. 다시 오는 별들은 고운 눈으로 반가운 표정..
오셔요 오셔요. 당신은 오실 때가 되었어요, 어서 오셔요. 당신은 당신이 오실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당신이 오실 때는 나의 기다리는 때입니다. 당신은 나의 꽃밭으로 오셔요. 나의 꽃밭에는 꽃들이 피어있습니다. 만일 당신을 쫓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당신은 꽃 속으로 들어가서 숨으십시요. 나는 나비가 되어서 당신이 숨은 꽃 위에 가서 앉겠습니다. 그러면 쫓아오는 사람은 당신을 쁹을 수는 없습니다. 오셔요. 당신은 오실 때가 되었습니다. 어서 이리 오셔요. 당신은 나의 품으로 오셔요. 나의 품에는 부드러운 가슴이 있습니다. 만일 당신을 쫓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당신은 머리를 숙여서 나의 가슴에 대십시오. 나의 가슴은 당신이 만질 때에는 보드랍지마는, 당신의 위험을 위하여는 황금의 칼도 되고, 강철의 방패도..
명상 아득한 명상의 작은 배를 타고 가이없이 출렁거리는 달빛의 물결에 표류되어 멀고 먼 별나라를 넘고 또 넘어서 이름도 모르는 나라에 이르렀습니다. 이 나라에는 어린아기의 미소와 봄아침과 바다소리가 합하여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나라 사람은 옥쇄의 귀한 줄도 모르고, 황금이 밟고 다니는 미인의 청춘을 사랑할 줄도 모릅니다. 이 나라 사람은 웃음을 좋아하고, 푸른 하늘을 좋아합니다. 명상의 배를 이 나라의 궁전에 매었더니, 이 나라 사람들은 나의 손을 잡고 같이 살자고 합니다. 그러나 나는 님이 오시면, 그의 가슴에 천국을 꾸미려고 돌아왔습니다. 달빛의 물결은 흰구름을 머리에 이고, 춤추는 어린 풀의 장단을 ?추어 우쭐거립니다.
여름밤이 길어요 당신이 계실 때에는 겨울밤이 짧더니, 당신이 가신 뒤로는 여름밤이 길어요. 책력의 내용이 그릇되었다 하였더니, 개똥불이 흐르고 벌레가 웁니다. 긴 밤은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 줄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긴 밤은 근심 바다의 첫물결에서 나와서, 슬픈 음악이 되고 아득한 사막이 되더니 필경 절벽의 성 너머로 가서 악마의 웃음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당신이 오시면, 나는 사랑의 칼을 가지고 긴 밤을 베어서 일천 토막을 내겠습니다. 당신이 계실 때에는 겨울밤이 짧더니, 당신이 가신 뒤로는 여름밤이 길어요.
요술 가을 홍수가 작은 시내의 쌓인 낙엽을 휩쓸어 가듯이, 당신은 나의 환락의 마음을 빼앗아 갔습니다. 나에게 남은 마음은 고통뿐입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을 원망할 수는 없습니다. 당신이 가기 전에는 나의 고통의 마음을 빼앗아 간 까닭입니다. 만일 당신이 환락의 마음과 고통의 마음을 동시에 빼앗아 간다 하면, 나에게는 아무 마음도 없겠습니다. 나는 하늘의 별이 되어서 구름의 면사로 낯을 가리고 숨어 있겠습니다. 나는 바다의 진주가 되었다가, 당신의 구두에 단추가 되겠습니다. 당신이 만일 별과 진주를 따서 게다가 마음을 넣어 다시 당신의 님을 만든다면, 그때에는 환락의 마음을 넣어 주셔요. 부득이 고통의 마음을 넣어야 하겠거든, 당신의 고통을 빼어다가 넣어 주셔요 그리고 마음을 빼앗아 가는 요술은 나에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