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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주는 것이다 (에릭프롬의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은 수동적인 감정이 아니라 활동이다. 사랑은 '빠져 드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것'이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으로 사랑의 능동적 인 특징을 나타낸다면, '사랑은 기본적으로 이 아니라 이다'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주는 것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단순한 것처럼 보이지만 매우 모호하고 복잡한 것이다. 가장 널리 퍼져 있는 잘못된 생각은, 주는 것이란 무엇인가를 포기하는 것과 빼앗기는 것, 희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의 성격이 받아들이고 착취하고 저장하려는 지향의 단계를 넘어설 만큼 발달하지 못한 사람은 준다는 행위를 이런 식으로 경험한다. 시장형의 성격은 오직 받는 것에 대한 교환으로서만 주려고 한다. 그에게 있..
소유냐 존재냐 / 에리히 프롬 읽기 길잡이 아래의 제시문은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제1부 ‘소유와 존재의 차이에 대한 이해’, 제2장 ‘일상 경험에 있어서의 소유와 존재’의 전반부이다. 무엇을 살까? 무엇을 가질까? 누구를 차지할까? - 우리는 이러한 욕구에 치우쳐서 살기 쉽다. 그리하여 욕구의 노예가 되고 소유를 곧 삶의 성취요 가치라고 생각함으로써, 스스로를 망치고 남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와 산업 사회는 이런 사람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경향이 있다. 이와는 달리, 내가 누구냐? 무엇이 바른 삶이냐? 나는 어떻게 존재하는 것이냐? - 등의 물음에 의지해서 자신의 인생의 지표를 가질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삶을 살기는 오늘날 쉬울 것 같지 않다. 가령 입학 시험만 해도, ..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 박 병 기 이글은 시민 계층이 자본주이 사회를 발전시키고 그 중심 세력으로 활약할 수 있었던 이유를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에서 찾는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학설을 소개하고 있다. 막스 베버는 시민 계층의 윤리인 프로테스탄티즘이 쓸데없는 욕심을 버리고 금욕과 일에 힘쓰게 했을을 밝힌다. 이는 자본주의 발전의 원동력을 사람들의 윤리관 및 직업 의식에서 찾음으로써 오늘날의 자본주의의 모습을 반성하게 하는 의미도 가진다. 이 글을 읽으며 자본주의 정신의 실체를 확인하고 현대 자본주의의 병폐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다져 보자. 머리말 자본주의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돈’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여러 종류의 사랑에 대하여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에서)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 어떤 자비로운 운명이 어머니로부터, 즉 자궁 내에 존재하는 것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에 대한 불안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해주지 않는다면, 아이는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될 것이다. 심지어 태어난 후에도 어린애는 태어나기 전과 거의 다르지 않다. 막 태어난 어린애는 대상을 인식하지도 못하며 아직 자기 자신도 인식하지 못할 뿐더러 세상을 자기밖에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하지도 못한다. 갓난애는 단지 따뜻함과 음식이라는 긍정적인 자극만을 감지하지만, 그나마도 따뜻함과 음식을 제공하는 근원인 어머니를 구별하지 못한다. 어머니는 따뜻함이고 음식이며, 만족과 안전을 보장해주는 행복한 상태이다. 프로이트의 용어를 사용하자..
제레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 첨단기술정보사회는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시켜 보다 많은 여가 시간을 제공하는 유토피아가 될 것인가, 아니면 소수의 첨단기술자와 다수의 실업자 사이에 갈등을 빚는 디스토피아가 될 것인가? 이는 다가오는 21세기를 전망하는데 가장 핵심적인 질문이 된다. 국내에서도 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미국의 문명비평가 제레미 리프킨이 작년에 펴낸 저서 은 이런 질문에 대한 진지한 모색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 결론은 현재의 흐름이 바뀌지 않는 한 유토피아보다는 디스토피아로 전락할 위험이 더 크다는 것이다. 앨빈 토플러 등 대다수 낙관적인 미래학자들의 진단과는 사뭇 다른 전망이다. 첨단기술에 이은 정보화사회와 경영혁신 등을 통한 대량 해고는 블루 칼라와 화이트 칼라를 가릴 것 없는 전 세계적인..
오이디푸스 왕 / 해설 / 소포클레스 소포클레스(BC496~406)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은 성경과 함께 서양의 지식인 사회에서 토론주제나 가벼운 화젯거리로 가장 자주 인용되는 작품이다. 아버지를 미워하고 어머니에게 사랑을 구하는 3~5세 남자아이의 심리적 특성을 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가 이 극의 주인공 이름을 따서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라고 부른 것만 봐도 지식인 사이에서 이 작품의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또 이 극에서 괴물 스핑크스가 오이디푸스에게 낸 '아침에는 네 발, 낮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것은 무엇이냐'는 수수께끼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것도 이 작품의 높은 명성을 입증한다. '오이디푸스 왕'은 신화를 극화한 것이기 때문에 그 내용이 이미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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