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학의 개념과 특질 / 김대행
by 송화은율한국 문학의 개념과 특질 / 김대행(金大幸)
국문학은 우리 문학
‘국문학’이라는 말의 ‘국’은 ‘나라’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므로, ‘국문학’이란 ‘나라의 문학’이라는 뜻이 된다. ‘나라’는 일반적으로 두루 쓰이는 말이지만, ‘국문학’이라고 하게 되면 ‘우리 나라의 문학’을 가리키는 뜻이 된다. ‘국어’가 우리 나라의 말, ‘국사’가 우리 나라의 역사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
국문학은 우리 문학인데, 여기서 우리란 정확하게 누구를 가리키는 말인가? 그것은 두말 할 나위도 없이 우리 민족이다. 그러므로 국문학은 우리 민족이 주체가 되어 이룩한 문학이다.
문학은 언어로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예술이다. 따라서, 국문학은 우리 민족이 주체가 되어 우리 민족의 사상과 감정을 우리말로 표현한 예술이다. 우리 나라를 중심으로 우리 민족이 이 땅에 터를 잡고 생활하기 시작한 아득한 옛날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긴 세월에 걸쳐 이룩된 것이 우리 국문학이다.
그렇다면 국문학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는가? 문학에는 말로 된 문학과 글로 된 문학이 있는데, 말로 된 문학을 구비 문학(口碑文學)이라고 하고, 글로 된 문학을 기록 문학(記錄文學)이라고 한다. 구비 문학에는 설화, 민요, 판소리, 가면극 등이 있고, 기록 문학에는 시와 소설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문학 양식이 있다.
구비 문학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기 때문에 오래 보존되지 못하고 쉽사리 변한다. 그러나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우리 민족도 문자가 없던 시기에는 구비 문학이 문학의 전부였다. 그러다가 문자가 생겨나면서 기록 문학의 시대에 접어들게 되었다. 기록 문학은 문자로 기록되기 때문에 오랜 세월이 지나도 그 작품을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다시 볼 수 있다.
우리글인 한글은 15세기에 비로소 창제되었다. 따라서, 우리 문자가 없던 시대에는 한자를 빌려 문자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때로는 한자의 음(音)과 훈(訓)을 따서 우리말을 표기하던 향찰과 이두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록 문학은 한자로 표기되었다. 한자로 표기된 문학을 한문 문학(漢文文學)이라고 하고, 우리글로 된 문학을 국문 문학(國文文學)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국문학은 구비 문학과 국문 문학, 한문 문학 모두를 포함한다.
국문학의 특질에 대해서는 그 동안 여러 가지로 이야기해 왔다. 은근과 끈기, 가냘픔과 애처로움, ‘두어라’와 ‘노세’라고도 하였고, 한 마디로 뭉뚱그려서 '멋'이라고도 하였다. 이 밖에도 한풀이와 신명풀이를 강조하기도 하였고, 풍자와 해학을 우리 문학의 특질로 보기도 하였다.
국문학의 특질을 이렇게 보는 것도 다 그럴듯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국문학의 또다른 특질을 찾아 낼 수 있다.
여유로운 시 형식
우리 시가 문학은 형식이 자유롭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아득한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글자 수를 엄격하게 맞춘다든지 하는 규칙은 보이지 않았기에 형식이 매우 여유롭다고 할 수 있다.
어느 시대의 시를 보더라도 이 점은 마찬가지였다. 그 나름의 형식적 질서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아주 느슨한 것이어서 대강 그에 들어맞게 말을 맞추면 되는 정도였다.
이처럼 형식이 여유롭기 때문에 변화를 주기가 쉬웠고, 변형이 자유롭게 생겨날 수 있었다. 시조만 해도 석 자와 넉 자를 기본으로 하되, 한두 자 정도는 형편에 따라 더하기도 하고 덜하기도 해서 자유롭게 표현했다.
사랑이 그 어떻더냐 둥글더냐 모나더냐.
길더냐 짧더냐 밟고 남아 재겠더냐.
구태여 긴 줄은 모르되 끝 간 데를 몰라라.
특히, 사설시조는 말을 마음대로 늘여서 표현했기 때문에 형식적인 넘나듦이 아주 심했다.
사랑 사랑 굽이굽이 맺힌 사랑
온 바다를 두루 덮는 그물같이 맺힌 사랑 왕십리 답십리라 참외넝쿨 수박넝쿨 얽어지고 틀어져서 골골이 벋어 가는 사랑
아마도 이 임의 사랑은 끝 간 데를 몰라 하노라.
다 같이 사랑을 노래한 시조이면서도 형식을 엄격하게 따지지 않는 우리 문학의 특질 때문에 다양한 형식으로 사랑을 표현할 수 있었다.
그러기에 시대가 바뀌어 삶의 조건이 변화하면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 내는 것도 그만큼 손쉬웠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 형식의 여유로움 때문에 우리 시가 문학은 고전 시가, 향가, 고려 가요, 시조, 가사 등 다양한 양식으로 변모해 왔고, 현대에 들어와서는 별 무리 없이 자유시가 등장할 수 있었다.
양식의 다양성
사람의 삶은 여러 가지 조건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며, 조건이 달라지면 그에 맞는 새로운 문학을 생성해 내게 된다. 우리 민족은 시대 변화에 따라 매우 다양한 문학 양식을 만들었는데, 이는 우리 문학이 지닌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구비 문학은 말로 전해지다가 변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기 때문에 옛날의 구체적인 모습을 알기 어렵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전해 내려온 여러 기록으로 미루어 보건대, 아득한 옛날부터 신화, 전설, 민담 등의 설화를 비롯하여 다양한 형식의 민요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말하자면, 구비 문학의 양식도 일찍부터 다채롭게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시가 문학의 양식으로 신라 때에는 향가가 생겨났고, 이것이 고려 시대에 넘어와서는 고려 가요라고 하는 새로운 양식으로 변모하여 전혀 다른 성격의 시가가 되었다. 그러다가 다시 조선 시대에 시조와 가사로 양식이 바뀌어 활발하게 발전하였다.
산문 문학도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소설처럼 오늘날과 비교적 가까운 시기에 생겨난 것도 있지만, 자유롭게 우리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양식이 이른 시기부터 널리 창작되었다. 물론, 한자로만 기록하던 시대에는 중국 문학의 양식을 본뜨기도 하였지만, 한자로 문학을 한다고 해서 꼭 중국 문학의 양식만을 따랐던 것은 아니다.
문학 양식이 다양하게 변화해 온 것은 우리 문학이 그만큼 삶의 변화에 잘 대응하였음을 말해 준다. 삶의 조건이 변화하면 그때 그때 그에 알맞은 문학 양식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문학 양식이 이처럼 다채로운 것은 우리 민족의 예술적 감수성이 그만큼 빼어났다는 뜻도 된다. 그러기에 다양한 방식을 시도하여 이런저런 문학 양식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이것은 또한 우리 민족이 삶에서 문학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다른 예술에서 그러하였듯이 문학에서도 여러 모로 양식을 변화시켜 가면서 우리 삶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고, 문학에 깊은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다양한 문학 양식을 만들어 내었다.
현실 중심의 문학
우리 문학에는 천국이나 지옥에 관한 이야기가 별로 없다. 우리 문학은 우리가 살아가는 나날의 삶을 그리는 데 치중하고 있다. 이는 우리 문학이 현실 세계에 중심을 두었음을 말해 준다.
그래서 대부분의 우리 문학은 그 무대가 현실 세계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배경이 전개되고, 현실에서 늘 접하는 것과 같은 인물들이 사건을 벌이면서 우리와 같은 현실 세계의 삶을 꾸려 나간다. 이 점에서 우리 문학은 현실의 문학이라고 할 만하다. 물론, 우리 문학에서도 ‘심청전’처럼 용궁의 모습을 그린 것도 있고, 땅 속에 있다는 요괴들의 세계를 상상으로 그려 낸 작품도 없지는 않다. 또, ‘구운몽’처럼 꿈 속의 이야기로 되어 있는 것도 있다.
그렇기는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현실의 중요성을 말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심청전’이나 ‘구운몽’의 궁극적인 관심은 현실 속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는가에 있는 것이지, 용궁이나 꿈 속의 세계가 어떤 것인지 알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 보통 사람과는 다른 영웅이 등장하여 신통한 재주를 부리기도 하고, 그렇게 해서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므로 비현실적인 느낌을 줄 때도 있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현실적인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상상의 결과일 따름이다. 따라서, 핵심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지 현실을 떠난 공상의 세계를 그리고자 한 결과는 아니다.
우리 문학이 현실 중심이라는 점은 시가 문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시가 문학은 현실의 삶에서 부딪히는 여러 가지 문제를 소재로 하여 거기에서 빚어지는 감정의 흔들림을 노래하는 데 치중했다. 그러기에 언제나 삶을 중심으로 한 문학이 된 것이다.
우리 문학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중시하고, 이 현실을 바탕으로 하여 바람직한 삶의 모습과 그 전개 과정을 형상화하는 데 주된 관심을 두었던 것이다.
인간 중심의 문학
이 특질은 우리 문학이 현실을 중요시하는 데서 온 결과이기도 하지만, 우리 문학은 기본적으로 인간에 관심을 가지는 문학이었다. 우리 문학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어떤 문제가 있으며,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다운가를 주된 관심사로 삼았다.
인간이기에 겪을 법하고 또 겪을 수밖에 없는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인간이 지닐 수밖에 없는 정서를 중심으로 시가 문학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우리 문학에 등장하는 인물은 매우 친숙한 느낌을 준다.
우리 문학에도 동물을 등장시키는 이야기가 있기는 하다. 용궁을 무대로 사건이 전개되는 소설 ‘토끼전’이 그러하다. 이 작품은 물 속에 사는 자라와 산에 사는 토끼가 중심이 되어 이야기를 벌여 나간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람의 세계를 동물의 세계에 빗대어 표현한 우화(寓話)일 따름이다.
인물은 동물로 설정되었지만, 주된 관심은 동물이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있지 않다. 그것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말하기 위해 잠시 동물의 세계로 무대를 옮긴 것일 따름이다. 그러기에 그 작품 속의 동물들은 인간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 이는 우리 문학의 관심이 인간의 삶에 있음을 말해 준다.
외국 문학에 등장하는 악인(惡人)이 우리 문학에서는 흔하지 않다는 것도 우리 문학의 특징이다. 사람들 가운데에는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우리 문학에는 여러 성격을 지닌 인물이 등장하는데, 인물의 다양한 성격 때문에 갈등이 빚어지기도 한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 갈등은 처절한 투쟁이라기보다는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 때문에 빚어지는 어쩔 수 없는 대립일 뿐이다.
이것은 우리 민족이 인간을 선인과 악인으로 양분해서 생각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된다. 사람은 삶의 조건에 따라 서로 생각이 다를 수 있고, 또 다르게 행동할 따름이지 근본적으로 악인은 없다는 인식을 반영한다.
또, 대부분의 이야기는 어떤 것이 인간답게 사는 길인가를 모색하는 쪽으로 전개된다. 우리 삶에는 수많은 고난과 역경이 있게 마련이지만, 그런 것을 극복하고 인간다운 삶에 이르기 위하여 노력하는 과정으로 이야기는 이어지고 끝을 맺는다.
이처럼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문학이 이루어진 것은 우리 민족이 인간을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을 말해 준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누려야 할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 우리 문학의 중요한 지향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자연 친화의 문학
우리 민족은 인간과 자연은 서로 도와야 하고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여겼다. 그래서 우리 문학에서는 산을 허문다든지 바다를 메운다든지 하는 식으로 자연을 파괴하는 이야기를 발견하기가 어렵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두고 거기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이야기나,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경지를 노래한 것이 매우 많다. 때로 자연이 인간을 살기 어렵게 만드는 일도 없지는 않지만, 그럴 때에도 그 어려움을 이기면서 조화롭게 사는 모습을 보여 준다.
이는 우리 문학이 자연과 친해지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을 지향하는 특질을 지녔다는 뜻이 된다.
십 년을 경영하여 초려삼간(草廬三間) 지어 내니
나 한 간 달 한 간에 청풍(淸風) 한 간 맡겨 두고
강산(江山)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 두고 보리라.
십 년 동안 애를 써서 집을 짓는데, 그것도 어마어마한 고대광실(高臺廣室)이 아니라 소박한 초가삼간이다. 여기서부터 자연을 해치지 않고 조화를 이루겠다는 태도가 보인다. 그런데 그 초가삼간에서도 내가 차지한 것은 한 칸뿐, 나머지는 달과 맑은 바람에 맡겨 두겠다고 했다. 자연과 친화(親和)하면서 살아가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강산은 둘러 두고 보겠다는 태도에서 이러한 자연 친화는 극치에 이른다.
홍수가 나기도 하고 가뭄이 들기도 해서, 자연은 때로 인간의 삶을 위협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따름이다. 근본적으로 자연은 인간을 이롭게 하고 인간을 그 안에 품어 살아가게 해 준다. 우리 문학은 자연의 이러한 측면을 강조해 왔다.
우리 문학이 추구하고 이상으로 삼았던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과 일체가 된 자연이었다. 그래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을 즐겨 노래하고 이야깃거리로 삼았던 것이다.
웃음으로 눈물 닦기
사람이 살아가자면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바라지는 않지만, 궂은일도 겪고 험한 일도 당하게 된다. 이것이 인간의 삶이기 때문에 우리 문학에도 슬프거나 비참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런데 우리 문학에서는 슬픈 이야기를 하면서도 울리기보다는 웃기는 일이 더 많다. ‘흥부전’을 생각해 보자. 흥부가 집에서 쫓겨 나와 잠을 잘 곳을 마련하는 정경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매우 비참하다. 그러나 이 대목을 결코 슬픈 어조로 말하지 않는다.
수수밭 틈으로 들어가서 수숫대 한 뭇을 베어다가 안방, 대청, 행랑, 몸채 두루 짚어 말집을 딱 짓고 돌아보니 수숫대 반 뭇이 그저 남았구나. 방안이 넓든지 말든지 양주가 드러누워 기지개켜면, 발은 마당으로 가고, 대가리는 뒤꼍으로, 맹자 아래 대문 하고, 엉덩이는 울타리 밖으로 나가니, ……
흥부가 수숫대로 집을 지었다는 것이나, 집을 어찌나 작게 지었던지 수숫대 한 뭇에서 반 뭇이나 남았다는 것이나, 그래서 기지개를 켜면 팔다리는 물론 엉덩이와 머리까지 집 밖으로 나온다는 것은 굉장한 과장이다.
과장은 웃음을 자아낸다. 그러므로 이처럼 과장을 섞은 것은 웃게 만들기 위함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실제는 비참하고 가련한 정경인데, 그런 이야기를 왜 과장되게 표현하여 사람을 웃기려 드는 것일까?
눈물을 닦아 낼 수 있는 것은 웃음이다. 우리 민족은, 슬픈 상황을 슬프게 이야기하는 것은 그 상황을 더 슬프게 만들 뿐이며, 눈물을 멈추게 하는 것은 오로지 웃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 문학에서는 슬픈 대목에서 웃음을 자아내는 일이 흔하다.
이처럼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것을 가리켜 해학이라고 한다. 해학은 사람을 즐겁게 만드는데, 그 웃음은 즐거운 장면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슬픈 대목에서도 웃음으로써 슬픔을 씻어 내게 하는 데 해학의 진정한 묘미가 있다. 우리 민족은 이런 웃음을 사랑했다.
삶은 항상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려움도 겪게 되고, 슬픈 일도 당하게 되는 것이 삶이다. 사람은 그것을 이겨 내면서 꿋꿋하게 살아야 한다. 그러기에 위급하거나 절박한 상황에서도 웃음을 자아내게 함으로써 위기감이나 슬픔을 씻어 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삶의 지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지혜가 문학에 나타난 것이 ‘웃음으로 눈물 닦기’라고 할 수 있다.
맺는 말
우리 문학의 특질은 우리 민족이 살아온 삶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 문학에는 우리 민족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고, 우리 민족의 삶에 대한 태도가 담겨 있다. 따라서, 우리 문학의 특질은 곧 우리 민족의 특질과도 통한다.
우리 문학의 특질 가운데는 오늘날에 더욱 소중하게 여길 만한 것들이 있다. 인간 중심, 그리고 자연 친화의 특질이나 웃음으로 눈물 닦기가 바로 그런 것들이다. 우리 문학의 특질을 단지 문학만의 일로 생각하기보다는 그 가운데에서 오늘날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이 무엇이겠는가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문학은 우리 생활에 뜻깊은 의미를 가질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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