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의 흐름
by 송화은율한국 현대시의 흐름 |
[개화가사]
애국하는 노래 / 이필균
아시아에 대조선(大朝鮮)이 자주 독립 분명하다.
(합가) 애야에야 애국하세 나라 위해 죽어 보세.
분골하고 쇄신토록 충군(忠君)하고 애국하세.
(합가) 우리 정부 높여 주고 우리 군면(君面) 도와 주세.
깊은 잠을 어서 깨어 부국 강병(富國强兵) 진보하세.
(합가) 남의 천대 받게 되니 후회 막급 없이 하세.
합심하고 일심되어 서세 동점(西勢東漸) 막아 보세.
(합가) 사농공상(士農工商) 진력하여 사람마다 자유하세.
남녀 없이 입학하여 세계 학식 배워 보자.
(합가) 교육해야 개화(開化)되고 개화해야 사람되네.
팔괘 국기(八卦國旗) 높이 달아 육대주에 횡행하세.
(합가) 산이 높고 물이 깊게 우리 마음 맹세하세.
※해설 : 개항 이후 밀려오는 외세에 맞서면서 자주적인 근대 민족 국가를 수립해야 했던 시기에 나온 애국 가사, 개화가사. 조국의 앞날에 대한 낙관적 희망과 외세의 침략에 대한 위기 의식이 동시에 잘 표현되어 있으며, 예술적 정서의 형상화보다는 계몽적, 교훈적 성격이 두드러진다. 가창(歌唱)을 전제로 한 노래임
[창가]
경부철도가(京釜鐵道歌) /최남선 . 1908년.
우렁탸게 토하난 긔뎍(汽笛) 소리에
남대문을 등디고 떠나 나가서
빨니 부난 바람의 형세 갓흐니
날개 가딘 새라도 못 따르겟네.
늙은이와 뎔은이 셕겨 안즈니
우리네와 외국인 갓티 탓스나
내외 틴소(親蔬) 다갓티 익히 디내니
됴고마한 딴 세상 뎔노 일웠네.
- 이하 생략-
※ - 종류 : 창가 (7.5조) - 성격 : 계몽적
- 주제 : 근대 문명인 철도 개통의 찬양과 민중의 계몽
- 출전 : 소년 2호 (1908)
※ <경부철도가> 이해하기
스코틀랜드 민요 '밀밭에서'의 곡조가 붙어 있는 총 67절로 된 7.5조 창가의 효시 작품으로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던 <철도가>에서 시사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무거운 쇳덩어리가 김을 내어 뿜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무서운 속도로 달렸다는 사실은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경악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작자는 이러한 이질적인 문명의 수용에 적극적인 태도로 노래함으로써 과학 문명을 찬양했다.
이 노래는 철도라는 신문 명의 도구가 지닌 이점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고자 하는 의도에서 창작된 것으로 남대문역을 출발하는 기차의 빠름과, 내외국인이 함께 타서 별세계를 이루었음을 노래하여 개화의 낙관적 의미를 지닌다.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 /최남선. 1908년 <소년>창간호.
1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때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태산 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느냐 모르느냐, 호통까지 하면서,
때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2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내게는 아무 것 두려움 없어,
육상(陸上)에서, 아무런 힘과 권(權)을 부리던 자라도,
내 앞에 외서는 꼼짝 못하고,
아무리 큰 물건도 내게는 행세하지 못하네.
내게는 내게는 나의 앞에는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3
처.......ᄅ썩, 처..........ᄅ썩, 척,쏴......... 아.
나에게 절하지, 아니한 자가,
지금까지 있거던 통기하고 나서 보아라.
진시황, 나팔륜, 너희들이냐.
누구 누구 누구냐 너희 역시 내게는 굽히도다.
나허구 겨룰 이 있건 오나라.
처..........ᄅ썩, 처........ᄅ썩, 척, 튜르릉, 꽉.
4
처..........ᄅ썩, 처..........ᄅ썩, 척, 쏴..........아.
조고만 산(山) 모를 의지하거나,
좁쌀 같은 작은 섬,손벽 만한 땅을 가지고
고 속에 있어서 영악한 체를,
부리면서, 나 혼자 거룩하다 하난 자,
이리 좀 오나라, 나를 보아라.
처.........ᄅ썩, 처..........ᄅ썩, 척, 튜르릉, 꽉.
5
처..........ᄅ썩, 처..........ᄅ썩, 척, 쏴..........아.
나의 짝될 이는 하나 있도다,
크고 길고, 넓게 뒤덥은 바 저 푸른 하늘.
저것이 우리와 틀림이 없어,
적은 是非(시비), 적은 쌈, 온갖 모든 더러운 것 없도다.
조 따위 세상에 조 사람처럼,
처.........ᄅ썩, 처..........ᄅ썩, 척, 튜르릉, 꽉.
6
처..........ᄅ썩, 처..........ᄅ썩, 척, 쏴..........아.
저 세상 저 사람 도두 미우나,
그 중에서 똑 하나 사랑하는 일이 있으니,
膽(담) 크고 純精(순정)한 소년배들이,
재롱처럼, 귀엽게 나의 품에 와서 안김이로다.
오나라, 소년배, 입 맞춰 주마.
처.........ᄅ썩, 처..........ᄅ썩, 척, 튜르릉, 꽉
※ 이 시는 1908년 <소년> 창간호에 실린 작품이다. 일반적으 로 한국의 신체시는 이 작품에서 비롯된다고 하며, 민족의 희망찬 미래를 소년에게 기대하여 그를 예찬한 작품이다. 파격적인 형식과 내용의 건강성 등으로 인해 비록 계몽적 요소라든가 진부하고 미숙한 표현이 있다 할지라도 현대시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이 시는 모두 6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제1연부터 5연까지는 바다의 웅대한 힘과 기개를 노래하고 6연은 소년에 대한 희망을 노래하며 그를 예찬했다. 즉, 개화기 당시의 변화가 심한 시대적 분위기와 희망차고 고무적인 계몽 의지를 바탕으로 '바다'의 힘과 '소년'의 가능성의 결합이 '파도'의 반복되는 리듬(유동적이면서도 변화하는 것에 대한 설레임)을 통해 표현의 효과를 얻고 있다. 여기서 파도가 밀려드는 모습은 구시대의 잔재를 타파하고 신문명이 밀려드는 모습을 표상하는 것이며, '바다'의 심상은 미지의 세계로 열려 있는, 문명의 바람이 불어 오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성격 : 계몽적, 미래지향적, 진취적, 예찬적
제재 : 바다, 소년
주제 : 소년의 시대적 각성과 힘찬 의지
[1920년대]
불놀이 /주요한
아아 날이 저문다, 서편 하늘에, 외로운 강(江)물 우에, 스러져 가는 분홍빛 놀…… 아아 해가 저물면 날마다, 살구나무 그늘에 혼자 우는 밤이 또 오건마는, 오늘은 사월(四月)이라 파일날 큰 길을 물 밀어가는 사람소리는 듣기만 하여도 흥성스러운 것을 왜 나만 혼자 가슴에 눈물을 참을 수 없는고?
아아 춤을 춘다, 춤을 춘다, 시뻘건 불덩이가, 춤을 춘다. 잠잠한 성문(城門) 우에서 나려다보니, 물냄새, 모래냄새, 밤을 깨물고 하늘을 깨무는 횃불이 그래도 무엇이 부족(不足)하여 제 몸까지 물고 뜯을 때, 혼자서 어두운 가슴 품은 젊은 사람은 과거(過去)의 퍼런 꿈을 찬 강(江)물 우에 내어던지나 무정(無情)한 물결이 그 그림자를 멈출 리가 있으랴?…… 아아 꺾어서 시들지 않는 꽃도 없건마는, 가신 님 생각에 살아도 죽은 이 마음이야, 에라 모르겠다, 저 불길로 이 가슴 태워버릴까, 이 설움 살라버릴까, 어제도 아픈 발 끌면서 무덤에 가보았더니 겨울에는 말랐던 꽃이 어느덧 피었더라마는 사랑의 봄은 또다시 안 돌아오는가, 차라리 속시원히 오늘밤 이 물 속에…… 그러면 행여나 불쌍히 여겨줄 이나 있을까…… 할 적에 퉁, 탕 불티를 날리면서 튀어나는 매화포, 펄떡 정신(精神)을 차리니 우구우구 떠드는 구경꾼의 소리가 저를 비웃는 듯, 꾸짖는 듯 아아 좀더 강렬(强烈)한 열정(熱情)에 살고 싶다, 저기 저 횃불처럼 엉기는 연기(煙氣), 숨막히는 불꽃의 고통(苦痛) 속에서라도 더욱 뜨거운 삶을 살고 싶다고 뜻밖에 가슴 두근거리는 것은 나의 마음…….
사월(四月)달 따스한 바람이 강(江)을 넘으면, 청류벽(淸流碧), 모란봉 높은 언덕 우에 허어옇게 흐늑이는 사람떼, 바람이 와서 불 적마다 불빛에 물든 물결이 미친 웃음을 웃으니, 겁많은 물고기는 모래 밑에 들어박히고, 물결치는 뱃슭에는 졸음 오는 이즘'의 형상(形象)이 오락가락―어른거리는 그림자 일어나는 웃음소리, 달아논 등불 밑에서 목청껏 길게 빼는 여린 기생의 노래, 뜻 밖에 정욕(情慾)을 이끄는 불구경도 이제는 겹고, 한잔 한잔 또 한잔 끝없는 술도 이제는 싫어, 지저분한 배밑창에 맥없이 누우며 까닭 모르는 눈물은 눈을 데우며, 간단없는 장고소리에 겨운 남자(男子)들은 때때로 불 이는 욕심(慾心)에 못 견디어 번뜩이는 눈으로 뱃가에 뛰어나가면, 뒤에 남은 죽어가는 촛불은 우그러진 치마깃 우에 조을 때, 뜻있는 듯이 찌걱거리는 배젓개 소리는 더욱 가슴을 누른다…….
아아 강물이 웃는다, 웃는다, 괴상한, 웃음이다, 차디찬 강물이 껌껌한 하늘을 보고 웃는 웃음이다. 아아 배가 올라온다. 배가 오른다, 바람이 불 적마다 슬프게 슬프게 삐걱거리는 배가 오른다.
저어라, 배를 멀리서 잠자는 능라도(綾羅島)까지, 물살 빠른 대동강(大同江)을 저어오르라. 거기 너의 애인(愛人)이 맨발로 서서 기다리는 언덕으로 곧추 너의 뱃머리를 돌리라 물결 끝에서 일어나는 추운 바람도 무엇이리오 괴이(怪異)한 웃음소리도 무엇이리오, 사랑 잃은 청년(靑年)의 어두운 가슴속도 너에게야 무엇이리오, 그림자 없이는 밝음'도 있을 수 없는 것을―. 오오 다만 네 확실(確實)한 오늘을 놓치지 말라. 오오 사르라, 사르라! 오늘밤! 너의 빨간 횃불을, 빨간 입술을, 눈동자를, 또한 너의 빨간 눈물을…….
※구성- 제1연 : 4월 초파일(상황 제시)
- 제2연 : 불놀이를 보면서 죽음에 대한 충동과 삶에 대한 의욕이 교차됨
- 제3연 : 격정이 지난 후 화자의 허탈감(전환)
- 제4연 : 자신의 무기력함에 자조(절정)
- 제5연 : 현실과의 갈등을 초극하여 강한 삶의 의욕으로 치달음(결말)
제재 : 사월 초파일의 불놀이
주제 : 상실한 자의 슬픔과 고독, 또는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
산유화 /김소월. 1924.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이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
진달래꽃 /김소월. 1925년.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 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주제 : 이별의 슬품과 그 승화 |
※<진달래 꽃> 해설 : 떠나갈 님이 더욱더 그리워지겠지만 말없이 보내드립니다. 님이 가시는 길에 진달래꽃을 아름따다 뿌려 드립니다. 시 진달래꽃은 겉으로 드러나는 슬픔을 억제하려는 태도보다 그 깊이에 숨겨져 있는 더 깊은 슬픔과 눈물의 간절한 뜻이 더욱 중요한 의미를 띄고 있다.
국경(國境)의 밤 /김동환. 1924년.
<제1부>
1
아하 무사히 건넜을까,
이 한바에 남편은
두만강을 탈없이 건넜을까?
저리 국경 강안(江岸)을 경비하는
외투 쓴 검은 순사가
왔다 갔다
오르명 내리명 분주히 하느데
발각도 안 되고 무사히 건넜을까?
소금실이 밀수출 마차를 띄워 놓고
밤새 가며 속 태우는 젊은 아낙네
물레 젓는 손도 맥이 풀어져
파! 하고 부는 어유(魚油) 등잔만 바라본다.
북국의 겨울밤은 차차 깊어 가는데.
2
어디서 불시에 땅 밑으로 울려 나오는 듯
‘어 이’하는 날카로운 소리 들린다.
저 서쪽으로 무엇이 오는 군호라고
촌민들이 넋을 잃고 우두두 떨 적에
처녀(妻女)만은 잡히우는 남편의 소리라고
가슴을 뜯으며 긴 한숨을 쉰다―
눈보라에 늦게 내리는
영림창 산촌(山村)실이 화부(火夫)떼 소리언만.
3
마지막 길 가는 병자의 부르짖음 같은
애처로운 바람 소래에 싸이어
어디서 ‘땅’하는 소리 밤하늘을 짼다.
뒤이어 요란한 발자국 소리에
백성들은 또 무슨 변이 났다고 실색하여 숨 죽일 때
이 젊은 처녀(妻女)만은 강도 채 못 건넌 채
얻어맞은 남편의 일이라고
문지방을 쓰러안고 흑흑 느껴 가며 운다―
겨울에도 한 삼동(三冬) 별빛을 따라
고기잡이 얼음장 끄는 소리언만. (이하 생략)
※내용 1 -주인공 여인(순이)의 등장. 소금 밀수출을 떠난 남편(병남)의 안전을 걱정하는 여인의 독백, 심리 묘사.
2 -날카로운 군호 소리에 불안해 하는 촌민들과 아낙
3 -‘땅’하는 총 소리에 실색하여 숨죽이는 촌민들과 흐느끼는 아낙
->밀수출하는 남편과 애태우는 아내
※국경의 밤 : 3부 72장 893줄로 된 장시(長詩). 서사시
※작품 전체 내용
․제1부(1~27장):두만강변의 어느 겨울 날 저녁, 만주로 소금 밀수출 마차를 글고 간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는 불안한 가운데 잠시 옛사랑의 추억에 잠기는데, 그 때 옛 애인이 나타난다.
․제2부(28~57장):그 사람은 어렸을 때 같이 소꿉놀이하던 친구로 차차 연정을 느끼게 되었던 사람이다. 그러나 인습에 얽매였던 소년는 다른 곳으로 시집을 가고 사랑을 잃은 소년은 마을을 떠난다.
․제3부(58~72장):그 소년이 이제 청년이 되어 돌아와서 사랑을 호소하지만 여인은 거절한다. 이 때, 남편이 마적의 총을 맞아 시체가 되어 돌아온다.
․전체 주제 : 국경 지방 한 여인의 비극적인 삶과 애절한 사랑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1926년.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몽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애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미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리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주제 : 국토 회복에의 염원과 현실적 위기감
※작품 감상 :아름다운 국토 대자연에의 감동에 젖어 적극적으로 낭만성을 표출하는 모습과 현실 인식에서빚어지는 부정적, 감상적, 저항적인 낭만성을 띤 모습이 빚는 갈등과 긴장이 몽환적 분위기 속에서 시정을 살아 움직이게 한다.
님의 침묵 /한용운. 1926년.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참어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주제 : 임에 대한 영원과 사랑
※해 설 : 이 시는 시집 "님의 침묵"의 서시에 해당하며, 이별과 슬픔, 절망을 노래한 것 같지만 만남과 희망, 기다림을 읊은 시이다. 이별의 충격에서 절망과 슬픔을 겪고 이것을 고통속에서 참고 이겨냄으로써 마침내 만남에 이르게 되는 극복의 노래, 생성과 부활의 노래이다
[1930년대~일제 말기]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김영랑. 1930년[시문학]
내 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돋쳐 오르는 아침 날 빛이 빤질한
은결을 도도네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내 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 제재 : 내 마음(동백나무 잎에 비치는 시인의 마음)
주제 : 내 마음이 지닌 아름다움과 은은함
* 특징 1. 여성적 섬세함과 그윽함을 지닌 어조의 시
2. 순수한 내면 세계에의 동경
3. 잘 다듬어진 리듬의 시
외인촌(外人村) /김광균. 1935년.
(*외인촌 : 외국인이 사는 마을)
하이얀 모색(暮色) 속에 피어 있는
산협촌(山峽村)의 고독한 그림 속으로
파 - 란 역등(驛燈)을 달은 마차가 한 대 잠기어 가고,
바다를 향한 산마룻길에
우두커니 서 있는 전신주 우엔
지나가던 구름이 하나 새빨간 노을에 젖어 있었다.
바람에 불리우는 작은 집들이 창을 나리고,
갈대밭에 묻히인 돌다리 아래선
작은 시내가 물방울을 굴리고
안개 자욱한 화원지(花園地)의 벤치 우엔
한낮의 소녀들이 남기고 간
가벼운 웃음과 시들은 꽃다발이 흩어져 있다.
외인 묘지(外人墓地)의 어두운 수풀 뒤엔
밤새도록 가느단 별빛이 나리고,
공백(空白)한 하늘에 걸려 있는 촌락(村落)의 시계가
여윈 손길을 저어 열 시를 가리키면
날카로운 고탑(古塔)같이 언덕 우에 솟아 있는
퇴색한 성교당(聖敎堂)의 지붕 우에선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
※제재 : 외인촌의 풍경 ※주제 : 외인촌의 이국적 정취
와사등(瓦斯燈) /김광균. 1939년.
(*와사등 : 가스등, 여기서는 가로등을 의미함)
차단 -- 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리어 있다.
내 호올로 어데로 가라는 슬픈 신호냐.
긴 -- 여름 해 황망히 나래를 접고
늘어선 고층 창백한 묘석같이 황혼에 젖어
찬란한 야경 무성한 잡초인양 헝클어 진채
사념 벙어리 되어 입을 다물다.
피부의 바깥에 스미는 어둠
낯설은 거리의 아우성 소리
까닭도 없이 눈물겹고나.
공허한 군중의 행렬에 섞이어
내 어디서 그리 무거운 비애를 지고 왔기에
길 -- 게 늘인 그림자 이다지 어두어
내 어디로 어떻게 가라는 슬픈 신호기
차단 -- 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리어 있다.
※이 시는 참신한 비유를 통한 독창적인 이미지를 창출해 보인 시이다. ‘와사등’이란 제목은 공허와 비애로 가득한 현대인을 표상한다. 아무 것도 믿고 의지할 수 없는 어두운 현실 속에서 어디론가 떠나가야만 하는 현대인의 고독과 불안 의식을 ‘와사등’을 통하여 형상화하고 있다.
유리창 1 /정지용
유리(琉璃)에 차고 슬픈 것이 어린거린다.
열없이 불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다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또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벅은 별이, 반짝, 보석(寶石)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琉璃)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흔 폐혈관(肺血管)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山)새처럼 날아갔구나!
※주제 : 자식을 잃어버린 아버지의 슬픔
※정지용(1903~?)의 초기 시들은 도시적 생활 공간에서 관찰하고 체험한 일들을 재치있는 시선과 비유적 언어로써 표현하는 모더니즘적 특징을 보여 준다. ‘유리창 1’은 이러한 초기 시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시적 자아는 밤에 유리창 앞에서 잃어버린 자식을 그리워한다. 그는 열없이 유리창에 붙어서서 입김 자국을 내고는 쉽게 사라지는 그 연약한 자국을 보며 가냘픈 새의 모습을 연상한다. ‘산새처럼 날아 갔구나!’라는 절제된 비탄의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새’는 바로 허망하게 떠나버린 아이의 비유적 형상이다.
바다 1 /정지용.
오 오 오 오 오 오 소리치며 달려가니
오 오 오 오 오 오 연달아서 몰아온다.
간밤에 잠 살포시
머언 뇌성이 울더니,
오늘 아침 바다는
포도빛으로 부풀어젔다.
철석, 처얼석, 철석, 처얼석, 철석,
제비 날아들 듯 물결 새이새이로 춤을 추어.
화사(花蛇) /서정주
사향(麝香) 박하(薄荷)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배암......
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몸뚱아리내
꽃대님 같다.
너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내던 달변의 혓바닥이
소리 잃은 채 낼룽거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늘이다...... 물어 뜯어라, 원통히 물어 뜯어,
달아나거라, 저놈의 대가리!
돌 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사향 방초(芳草)ᄉ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의 아내가 이브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석유 먹은 듯 ...... 석유 먹은 듯 ...... 가쁜 숨결이야
바늘에 꼬여 두를까 부다. 꽃대님보다도 아름다운 빛......
클에오파트라의 피 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
고운 입술이다......스며라! 배암
우리 순네는 스물 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운 입술 ...... 스며라!
배암.
자화상 /서정주. 1939년.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 살구가 곡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깜한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숫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믈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친 않을란다.
찬란히 티워오는 어는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덕거리며 나는 왔다.
생명의 서 /유치환. 1938년.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리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겹의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砂丘)에 회한(悔恨)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1연에서 지식과 감정의 파탄과 좌절의 상태에서 구원의 세계를 찾아나서고, 2연에서는 모든 것이 절멸하고 태양만이 하얗게 불타는 뜨거운 모랫벌 고독의 극한에서 구도자(求道者)의 자세로 고행(苦行)과 수련(修鍊)의 고통을 겪는다. 그리고 마침내 3연에서 고도의 극한 상태에서 본연의 자아, 자기 생명의 참모습을 발견한다.
심각한 좌절의 상태에서 생수가 샘솟는 오아시스가 아닌 사막을 찾아 스스로 고독한 수행의 과정을 거쳐 근원적인 자아의 소생을 맞이하는 인간 의지의 결연한 자세를 보여 준다.
쉽게 씌워진 시(詩) /윤동주. 1942년 씀.
-출전:<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8
창(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詩人)이란 슬픈 천명(天命)인줄 알면서도
한줄 시(詩)를 적어 볼가,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學費封套)를 받어
대학(大學)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講義) 들으려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 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가?
인생(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詩)가 이렇게 쉽게 씨워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창(窓)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곰 내몰고,
시대(時代)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最後)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慰安)으로 잡는 최초(最初)의 악수(握手.)
※- 주제 : * 암담한 현실 극복의 결의
* 어두운 시대 현실에서의 고뇌와 자아 성찰
자화상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읍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읍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제재:우물 속의 자아 ※주제:자아 성찰과 자신에 대한 애증
서시 /윤동주(1917~1945). 1941년 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 가야 겠다.
오늘밤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주제 : 순교자적인 삶에 대한 기원과 각오
※작품 해설 : 이 작품을 통해, 윤동주는 지극히 내성적인 인물이며, 또 매운 양심의 소유자임을 엿볼 수 있다. 내성적 성격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그는 자신과 이웃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경우, 그의 생각은 필연적으로 민족 의식을 응축되었다. 즉, 그가 '나'의 존재를 깊이 파고들었을 때, 결국 자신도 한국 민족의 일원이라는 것, 그리고 이 때문에,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그러한 자각을 지니며, 그에 따라 행동할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한편, 식민지 치하에서 역사 의식이나 민족 의식을 가진다는 것은, 비극적 운명의 구조 속에 자신을 과감히 내 던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지배자의 논리는 언제나 허물어질 수 없을 것 같은 벽으로 앞에 막아 섰고, 자아의 미약한 힘은 그것을 허물 수 없음을 자각하게 된다. 그런데도 진정한 민족 의식의 소유자는 승산 없는 대결에 몸을 던지는 것이다.
윤동주는 시가 대부분 자화상의 성격을 지니고 있고, 그것이 치열한 자기 성찰에서 오는 결과임을 뚜렷이 보여 주는 작품이다
낙화 /조지훈. 1946년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허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
나그네 /박목월.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윤사월 /박목월. 1946년 송화(松花) 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집 눈 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대고 엿듣고 있다 |
[1950년대]
역사(歷史) 앞에서 /조지훈. 1956년.
만신(滿身)에 피를 입어 높은 언덕에
내 홀로 무슨 노래를 부른다
언제나 찬란히 티어 올 새로운 하늘을 위해
패자(敗者)의 영광(榮光)이여 내게 있으라.
나조차 뜻 모를 나의 노래를
허공(虛空)에 못박힌 듯 서서 부른다.
오기 전 기다리고 온 뒤에도 기다릴
영원(永遠)한 나의 보람이여
묘막(渺漠)한 우주(宇宙)에 고요히 울려 가는 설움이 되라.
목마와 숙녀/박인환(1926~1956).1955년<박인환선시집>에서.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어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볍게 부서진다.
그러던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독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어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주제 : 모든 떠나가는 것들에 대한 애상
※이 작품은 1950년대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것 중의 하나이다. 6․25전쟁이 가져다 준 충격은 전후의 폐허와 함께 정신의 황폐함, 비정함을 동반했다. 이 시도 이러한 분위기에서 도시의 서정성을 노래하고 있다. 6․25직후의 허무주의, 실존주의적 고니, 도시적 서정성을 바탕으로 한 시적 정조는 자연히 감상적, 허무적, 체념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1960년대 이후]
어느날 고궁(古宮)을 나오면서 /김수영(1921~1968).1965년.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王宮)의 음탕 대신에
오십(五十)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越南)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십(二十)원을 받으러 세번씩 네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情緖)로
가로놓여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십사야전병원(第十四野戰病院)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있다 절정(絶頂) 위에는 서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이십원 때문에 십원 때문에 일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일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해 설 : '고궁'은 이발쟁이, 땅주인, 구청직원, 동회직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을 부패하게한 권력을 상징한다. 화자는 자신을 '일원 때문에' 분개하는 소시민으로 희화화시키고 있지만, 희화화를 통해 권력의 부패에 언론 자유와 월남파병 반대등을 간접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풀 /김수영(1921~1968). 1968년.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주제 : 풀(백성)의 끈질긴 생명력
※풀과 바람의 대립은 오랜 역사를 통하여 억세고 질긴 삶을 지켜온 민중과 그들을 억압하는 사회적인 힘(독재권력일 수도 있고 외세일 수도 있다)과의 관계를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흔히 민중을 ‘민초(民草)’라고 부르는 것이다. 따라서, 천대받고 억압받으면서도 질긴 생명력으로 맞서는 민중들의 넉넉함이 이 시에 담겨져 있다. 이러한 민중에 대한 인식은 1970년대로 넘어오면서 민중 문학의 기초를 이루게 한다.
화 살 /고 은. 1978년
우리 모두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 뚫고
온몸으로 가자.
가서는 돌아오지 말자.
박혀서 박힌 아픔과 함께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
우리 모두 숨 끊고 활시위를 떠나자.
몇 십 년 동안 가진 것,
몇 십 년 동안 누린 것,
몇 십 년 동안 쌓은 것,
행복이라던가
뭣이라던가
그런 것 다 넝마로 버리고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이 소리친다.
허공 뚫고
온몸으로 가자.
저 캄캄한 대낮 과녁이 달려온다.
이윽고 과녁이 피 뿜으며 쓰러질 때
단 한 번
우리 모두 화살로 피를 흘리자.
돌아오지 말자!
돌아오지 말자!
오 화살 정의의 병사여 영령이여!
※ 화살 : 민주화 투쟁의 전위를 상징
※ 주제 : 민주화에 대한 결연한 의지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1982년 [타는 목마름으로]에서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통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국 소리 호르락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 소리
신음 소리 통곡 소리 탄식 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 구성 - 제1연 :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
제2연 : 어두운 현실 인식과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
제3연 : 민주주의에 대한 대망
※ 주제 :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渴望)
※ 김지하(1941~ )본명은 김영일. 필명 김지하, 김형
․1941년 전남 목포 생. ․1966년 서울대 미학과 졸업
․1964년 대일 굴욕 외교 반대투쟁에 가담, 첫 투옥 이후 1980년 출옥 때까지 투옥․재투옥을 거듭하여 장장 8여년 동안 영어(囹圄)의 세월을 보냄. ( <오적> 필화사건 등 )
․1963년 첫 시 <저녁 이야기>를 발표한 이후, <황톳길> 계열의 초기 민중 서정시와 권력층의 부정부패를 판소리 가락에 실어 통렬하게 비판한 특유의 장시(長詩) <오적(五賊)> 계열의 시들, <빈 산>, <밤나라> 등의 빼어난 70년대의 서정시들, 그리고 80년대의 '생명'에의 외경(畏敬)과 그 실천적 일치를 꿈꾸는 아름답고 도저한 '생명'의 시편들을 만들어 냈다.
․첫시집 [황토(黃土)](1970), [타는 목마름으로](1982), [애린]1․2(1986), [이 가문 날에 비구름](1988), [별밭을 우러르며](1989), 대설(大說) [남(南](1982, 1984, 1985) 등의 시집이 있음.
거울 /이상 거울속에는소리가없오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오 내말을알아듣는딱한귀가두 개나있오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요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잽이요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거울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으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오 나는지금거울을안가져오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오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에골몰할께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또꽤닮았오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
오감도 /이상(1910~1937). 1934년.
시(詩) 제 1호
13인의아해(兒孩)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4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5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6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7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8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9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0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2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3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
(다른사정은없는 것이차라리나았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3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4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길이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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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제 2호
나의아버지가나의곁에서조을적에나는나의아버지가되고또나는나의아버지의아버지가되고그런데도나의아버지는나의아버지대로나의아버지인데어쩌자고나는자꾸나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가되나나는왜나의아버지를껑충뛰어넘어야하는지나는왜드디어나와나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노릇을한꺼번에하면서살아야하는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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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제 3호
싸움하는사람은즉싸움하지아니하든사람이고또싸움하는사람은싸움하지아니하는사람이었기도하니까싸움하는사람이싸움하는구경을하고싶거든싸움하지아니하든사람이싸움하는것을구경하든지싸움하지아니하는사람이싸움하는구경을하든지싸움하지아니하든사람이나싸움하지아니하는사람이싸움하지아니하는것을구경하든지하였으면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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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제 4호
환자의용태에관한문제
진단 0:1 26.10.1931 이상(以上) 책임의사 이상
전후좌우를제(除)하는유일의흔적(痕跡)에있어서
익은불서목불대도(翼殷不逝目不大覩)
반왜소형의신의안전(眼前) 에아전낙상(我前落傷)한고사(故事)를유(有)함
장부(臟腑) 라는것은침수된축사(畜舍)와구별될수있을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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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제 6호
앵무 ※ 2필
2필
※ 앵무는포유류에속하느니라.
내가2필을아는것은내가2필을알지못하는것이니라.물론나는희망할것이니라.
앵무 2필
"이소저는신사이상의부인이냐""그렇다"
나는거기서앵무가노한것을보았느니라.나는부끄러워서얼굴이붉어졌었겠느니라.
앵무 2필
2필
물론나는추방당하였느니라.추방당할것까지도없이자퇴하였느니라.나의체구는중추를상실하고또상당히창랑하여그랬든지나는미미하게체읍하였느니라.
"저기가저기지""나""나의-아-너와나"
"나"
sCANDAL이라는것은무엇이냐."너""너구나"
"너지""너다""아니다너로구나"나는함뿍젖어서그래서수류처럼도망하였느니라.물론그것은아아는사람혹은보는사람은없었지만그러나과연그럴는지그것조차그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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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제 7호
구원적거(久遠謫居)의지(地)의일지(一枝)․일지에피는현화(顯花)․특이한4월의화초․30륜(輪)․30륜에전후되는양측의명경(明鏡)․맹아(萌芽)와같이희희(戱戱)하는지평(地平)을향하여금시금시낙백(落魄)하는만월․청한의기(氣)가운데만신창이의만월이의형당하여혼륜(渾淪)하는․적거(謫居)의지를관류하는일봉가신(一封家信)․나는근근히차대(遮戴)하였더라․몽몽한월아(月芽)․정일을개엄하는대기권의요원․거대한곤비(困憊)가운데의일년4월의공동(空洞)․반산전도(槃散顚倒)하는성좌와성좌의천열(千裂)된사호동(死胡同)을포도하는거대한풍설․강매․혈홍으로염색된암광채임리한망해․나는탑배하는독사와같이지하에식수되어다시는기동할수없었더라․천량이올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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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제 8호
제1부시험 수술대 1
수은도말평면경 1
기압 2배의평균기압
온도 개무
위선마취된정면으로부터입체와입체를위한입체가구비된전부를평면경에영상시킴.평면경에수은을현재와반대측면에도말이전함.(광선침입방지에주의하여)서서히마치를해독함.일축철필과일장백지를지급함.(시험담임인은피시험인과포옹함을절대기피할것)순차수술실로부터시험인을해방함.익일.평면경의종축을통과하여평면경을2편에절단함.수은도말2회. ETC 아직그만족한결과를수득치못하였음.
제2부시험 직립한평면경 1 조수 수명
야외의진공을선택함.위선마취된상지의첨단을경면에부착시킴.평면경의수은을박락함.평면경을후퇴시킴.(이때영상된상지는반드시초자를무사통과하겠다는것으로가설함)상지의종단까지.다음수은도말.(재래면에)이순간공전과자전으로부터그진공을강차시킴.완전히2개의상지를접수하기까지.익일.초자를전진시킴.연하여수은주를재래면에도말함.(상지의처분)(혹은멸형)기타.수은도말면의변경과전진후퇴의중복등. ETC 이하불상.
진단 0:1 26.10.1931 책임의사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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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제 9호 - 총구(銃口)
매일같이열풍이불더니드디어내허리에큼직한손이와닿는다황홀한지문골짜기로내땀내가스며드자마자쏘아라쏘으리로다나는내소화기관에묵직한총신을느끼고내다물은입에매끈매끈한총구를느낀다그러더니나는총쏘으드키눈을감으며한방총탄대신에나는참나의입으로무엇을내어배앝었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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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제 10호 - 나비
찢어진벽지에죽어가는나비를본다그것은유계(幽界)에낙역(樂繹)되는비밀한통화구다어느날거울가운데의수염에죽어가는나비를본다날개축처어진나비는입김에어리는가난한이슬을먹는다통화구를손바닥으로꼭막으면서내가죽으면앉았다일어서드키나비도날라가리라이런말이결코밖으로새어나가지는않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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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제 11호
그사기컵은내해골과흡사하다내가그컵을손으로꼭쥐었을때내팔에서는난데없는팔하나가접목처럼돋히더니그팔에달린손은그사기컵을번쩍들어마룻바닥에메어부딪는다내팔은그사기컵을사수하고있으니산산이깨어진것은그럼그사기컵과흡사한내해골이다가지났던팔은배암과같이내팔로기어들기전에내팔이혹움직였던들홍수를막은백지는찢어졌으리라그러나내팔은여전히그사기컵을사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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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제 12호
때묻은빨래조각이한뭉덩이공중으로날라떨어진다그것은흰비둘기의떼다이손바닥만한한조각하늘저편에전쟁이끝나고평화가왔다는선전이다한무더기비둘기의떼가깃에묻은때를씻는다이손바닥만한하늘이편에방망이로흰비둘기의떼를때려죽이는불결한전쟁이시작된다공기에숯검정이가지저분하게묻으면흰비둘기의떼는또한번손바닥만한하늘저편으로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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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제 13호
내팔이면도칼을든채로끊어져떨어졌다자세히보면무엇에몹시위협당하는것처럼새파랗다이렇게하여읽어버린내두개팔을나는촉(燭)대세움으로내방안에장식하여놓았다팔은죽어서도오히려나에게겁을내이는것만같다나는이런얇다란예의를화초분보다도사랑스레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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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제 14호
고성앞풀밭이있고풀밭위에나는내모자를벗어놓았다성위에서나는내기억에꽤무거운돌을매어달아서는내힘과거리껏팔매질쳤다포물선을역행하는역사의슬픈울음소리문득성밑내모자곁에한사람의걸인이장승과같이서있는것을내려다보았다걸인은성밑에서오히려내위에있다혹은종합된역사의망령인가공중을향하여놓인내모자의깊이는절박한하늘을부른다별안간걸인은표표한풍채를허리굽혀한개의돌을내모자속에치뜨려넣는다나는벌써기절하였다심장이두개골속으로옮겨가는지도가보인다싸늘한손이내이마에닿는다내이마에는싸늘한손자국이낙인되어언제까지지워지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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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제 15호
1 나는거울없는실내에있다거울속의나는역시외출중이다나는지금거울속의나를무서워하며떨고있다거울속의나는어디가서나를어떻게하려는음모를하는중일까.
2 죄를품고식은침상에서잤다확실한내꿈에나는결석하였고의족을담은군용장화가내꿈의백지를더렵혀놓았다.
3 나는거울있는실내로몰래들어간다나를거울에서해방하려고그러나거울속의나는침울한얼굴로동시에꼭들어온다거울속의나는내게미안한뜻을전한다내가그때문에영어되어있듯이그도나때문에영어되어떨고있다.
4 내가결석한나의꿈내위조가등장하지않는내거울무능이라도좋은나의고독의갈망자다나는드디어거울속의나에게자살을권유하기로결심하였다나는그에게시야도없는들창을가리키었다그들창은자살만을위한들창이다그러나내가자살하지아니하면그가자살할수없음을그는내게가르친다거울속의나는불사조에가깝다.
5 내왼편가슴심장의위치를방탄금속으로엄폐하고나는거울속의내왼편가슴을겨누어권총을발사하였다탄환은그의왼편가슴을관통하였으나그의심장은바른편에있다.
6 모형심장에서붉은잉크가엎질러졌다내가지각한내꿈에서나는극형을받았다내꿈을지배하는자는내가아니다악수할수조차없는두사람을봉쇄한거대한죄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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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는 1934년 7월 24일부터 8월 8일까지 14회에 걸쳐 <조선 중앙 일보>에 발표되어 커다란 물의를 일으켰던 작품이다. 원래 30회를 예정하였으나 독자들의 거센 항의로 결국 14회로 중단되고 말았다. 현대인의 불안 의식과 절망감을 초현실주의적 기법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6. (1)한국 현대 문학의 흐름 - 시 문학의 흐름 - 시 작품 소개 |
[개화가사]
애국하는 노래 / 이필균
아시아에 대조선(大朝鮮)이 자주 독립 분명하다.
(합가) 애야에야 애국하세 나라 위해 죽어 보세.
분골하고 쇄신토록 충군(忠君)하고 애국하세.
(합가) 우리 정부 높여 주고 우리 군면(君面) 도와 주세.
깊은 잠을 어서 깨어 부국 강병(富國强兵) 진보하세.
(합가) 남의 천대 받게 되니 후회 막급 없이 하세.
합심하고 일심되어 서세 동점(西勢東漸) 막아 보세.
(합가) 사농공상(士農工商) 진력하여 사람마다 자유하세.
남녀 없이 입학하여 세계 학식 배워 보자.
(합가) 교육해야 개화(開化)되고 개화해야 사람되네.
팔괘 국기(八卦國旗) 높이 달아 육대주에 횡행하세.
(합가) 산이 높고 물이 깊게 우리 마음 맹세하세.
※해설 : 개항 이후 밀려오는 외세에 맞서면서 자주적인 근대 민족 국가를 수립해야 했던 시기에 나온 애국 가사, 개화가사. 조국의 앞날에 대한 낙관적 희망과 외세의 침략에 대한 위기 의식이 동시에 잘 표현되어 있으며, 예술적 정서의 형상화보다는 계몽적, 교훈적 성격이 두드러진다. 가창(歌唱)을 전제로 한 노래임
[창가]
경부철도가(京釜鐵道歌) /최남선 . 1908년.
우렁탸게 토하난 긔뎍(汽笛) 소리에
남대문을 등디고 떠나 나가서
빨니 부난 바람의 형세 갓흐니
날개 가딘 새라도 못 따르겟네.
늙은이와 뎔은이 셕겨 안즈니
우리네와 외국인 갓티 탓스나
내외 틴소(親蔬) 다갓티 익히 디내니
됴고마한 딴 세상 뎔노 일웠네.
- 이하 생략-
※ - 종류 : 창가 (7.5조) - 성격 : 계몽적
- 주제 : 근대 문명인 철도 개통의 찬양과 민중의 계몽
- 출전 : 소년 2호 (1908)
※ <경부철도가> 이해하기
스코틀랜드 민요 '밀밭에서'의 곡조가 붙어 있는 총 67절로 된 7.5조 창가의 효시 작품으로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던 <철도가>에서 시사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무거운 쇳덩어리가 김을 내어 뿜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무서운 속도로 달렸다는 사실은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경악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작자는 이러한 이질적인 문명의 수용에 적극적인 태도로 노래함으로써 과학 문명을 찬양했다.
이 노래는 철도라는 신문 명의 도구가 지닌 이점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고자 하는 의도에서 창작된 것으로 남대문역을 출발하는 기차의 빠름과, 내외국인이 함께 타서 별세계를 이루었음을 노래하여 개화의 낙관적 의미를 지닌다.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 /최남선. 1908년 <소년>창간호.
1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때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태산 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느냐 모르느냐, 호통까지 하면서,
때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2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내게는 아무 것 두려움 없어,
육상(陸上)에서, 아무런 힘과 권(權)을 부리던 자라도,
내 앞에 외서는 꼼짝 못하고,
아무리 큰 물건도 내게는 행세하지 못하네.
내게는 내게는 나의 앞에는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3
처.......ᄅ썩, 처..........ᄅ썩, 척,쏴......... 아.
나에게 절하지, 아니한 자가,
지금까지 있거던 통기하고 나서 보아라.
진시황, 나팔륜, 너희들이냐.
누구 누구 누구냐 너희 역시 내게는 굽히도다.
나허구 겨룰 이 있건 오나라.
처..........ᄅ썩, 처........ᄅ썩, 척, 튜르릉, 꽉.
4
처..........ᄅ썩, 처..........ᄅ썩, 척, 쏴..........아.
조고만 산(山) 모를 의지하거나,
좁쌀 같은 작은 섬,손벽 만한 땅을 가지고
고 속에 있어서 영악한 체를,
부리면서, 나 혼자 거룩하다 하난 자,
이리 좀 오나라, 나를 보아라.
처.........ᄅ썩, 처..........ᄅ썩, 척, 튜르릉, 꽉.
5
처..........ᄅ썩, 처..........ᄅ썩, 척, 쏴..........아.
나의 짝될 이는 하나 있도다,
크고 길고, 넓게 뒤덥은 바 저 푸른 하늘.
저것이 우리와 틀림이 없어,
적은 是非(시비), 적은 쌈, 온갖 모든 더러운 것 없도다.
조 따위 세상에 조 사람처럼,
처.........ᄅ썩, 처..........ᄅ썩, 척, 튜르릉, 꽉.
6
처..........ᄅ썩, 처..........ᄅ썩, 척, 쏴..........아.
저 세상 저 사람 도두 미우나,
그 중에서 똑 하나 사랑하는 일이 있으니,
膽(담) 크고 純精(순정)한 소년배들이,
재롱처럼, 귀엽게 나의 품에 와서 안김이로다.
오나라, 소년배, 입 맞춰 주마.
처.........ᄅ썩, 처..........ᄅ썩, 척, 튜르릉, 꽉
※ 이 시는 1908년 <소년> 창간호에 실린 작품이다. 일반적으 로 한국의 신체시는 이 작품에서 비롯된다고 하며, 민족의 희망찬 미래를 소년에게 기대하여 그를 예찬한 작품이다. 파격적인 형식과 내용의 건강성 등으로 인해 비록 계몽적 요소라든가 진부하고 미숙한 표현이 있다 할지라도 현대시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이 시는 모두 6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제1연부터 5연까지는 바다의 웅대한 힘과 기개를 노래하고 6연은 소년에 대한 희망을 노래하며 그를 예찬했다. 즉, 개화기 당시의 변화가 심한 시대적 분위기와 희망차고 고무적인 계몽 의지를 바탕으로 '바다'의 힘과 '소년'의 가능성의 결합이 '파도'의 반복되는 리듬(유동적이면서도 변화하는 것에 대한 설레임)을 통해 표현의 효과를 얻고 있다. 여기서 파도가 밀려드는 모습은 구시대의 잔재를 타파하고 신문명이 밀려드는 모습을 표상하는 것이며, '바다'의 심상은 미지의 세계로 열려 있는, 문명의 바람이 불어 오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성격 : 계몽적, 미래지향적, 진취적, 예찬적
제재 : 바다, 소년
주제 : 소년의 시대적 각성과 힘찬 의지
[1920년대]
불놀이 /주요한
아아 날이 저문다, 서편 하늘에, 외로운 강(江)물 우에, 스러져 가는 분홍빛 놀…… 아아 해가 저물면 날마다, 살구나무 그늘에 혼자 우는 밤이 또 오건마는, 오늘은 사월(四月)이라 파일날 큰 길을 물 밀어가는 사람소리는 듣기만 하여도 흥성스러운 것을 왜 나만 혼자 가슴에 눈물을 참을 수 없는고?
아아 춤을 춘다, 춤을 춘다, 시뻘건 불덩이가, 춤을 춘다. 잠잠한 성문(城門) 우에서 나려다보니, 물냄새, 모래냄새, 밤을 깨물고 하늘을 깨무는 횃불이 그래도 무엇이 부족(不足)하여 제 몸까지 물고 뜯을 때, 혼자서 어두운 가슴 품은 젊은 사람은 과거(過去)의 퍼런 꿈을 찬 강(江)물 우에 내어던지나 무정(無情)한 물결이 그 그림자를 멈출 리가 있으랴?…… 아아 꺾어서 시들지 않는 꽃도 없건마는, 가신 님 생각에 살아도 죽은 이 마음이야, 에라 모르겠다, 저 불길로 이 가슴 태워버릴까, 이 설움 살라버릴까, 어제도 아픈 발 끌면서 무덤에 가보았더니 겨울에는 말랐던 꽃이 어느덧 피었더라마는 사랑의 봄은 또다시 안 돌아오는가, 차라리 속시원히 오늘밤 이 물 속에…… 그러면 행여나 불쌍히 여겨줄 이나 있을까…… 할 적에 퉁, 탕 불티를 날리면서 튀어나는 매화포, 펄떡 정신(精神)을 차리니 우구우구 떠드는 구경꾼의 소리가 저를 비웃는 듯, 꾸짖는 듯 아아 좀더 강렬(强烈)한 열정(熱情)에 살고 싶다, 저기 저 횃불처럼 엉기는 연기(煙氣), 숨막히는 불꽃의 고통(苦痛) 속에서라도 더욱 뜨거운 삶을 살고 싶다고 뜻밖에 가슴 두근거리는 것은 나의 마음…….
사월(四月)달 따스한 바람이 강(江)을 넘으면, 청류벽(淸流碧), 모란봉 높은 언덕 우에 허어옇게 흐늑이는 사람떼, 바람이 와서 불 적마다 불빛에 물든 물결이 미친 웃음을 웃으니, 겁많은 물고기는 모래 밑에 들어박히고, 물결치는 뱃슭에는 졸음 오는 이즘'의 형상(形象)이 오락가락―어른거리는 그림자 일어나는 웃음소리, 달아논 등불 밑에서 목청껏 길게 빼는 여린 기생의 노래, 뜻 밖에 정욕(情慾)을 이끄는 불구경도 이제는 겹고, 한잔 한잔 또 한잔 끝없는 술도 이제는 싫어, 지저분한 배밑창에 맥없이 누우며 까닭 모르는 눈물은 눈을 데우며, 간단없는 장고소리에 겨운 남자(男子)들은 때때로 불 이는 욕심(慾心)에 못 견디어 번뜩이는 눈으로 뱃가에 뛰어나가면, 뒤에 남은 죽어가는 촛불은 우그러진 치마깃 우에 조을 때, 뜻있는 듯이 찌걱거리는 배젓개 소리는 더욱 가슴을 누른다…….
아아 강물이 웃는다, 웃는다, 괴상한, 웃음이다, 차디찬 강물이 껌껌한 하늘을 보고 웃는 웃음이다. 아아 배가 올라온다. 배가 오른다, 바람이 불 적마다 슬프게 슬프게 삐걱거리는 배가 오른다.
저어라, 배를 멀리서 잠자는 능라도(綾羅島)까지, 물살 빠른 대동강(大同江)을 저어오르라. 거기 너의 애인(愛人)이 맨발로 서서 기다리는 언덕으로 곧추 너의 뱃머리를 돌리라 물결 끝에서 일어나는 추운 바람도 무엇이리오 괴이(怪異)한 웃음소리도 무엇이리오, 사랑 잃은 청년(靑年)의 어두운 가슴속도 너에게야 무엇이리오, 그림자 없이는 밝음'도 있을 수 없는 것을―. 오오 다만 네 확실(確實)한 오늘을 놓치지 말라. 오오 사르라, 사르라! 오늘밤! 너의 빨간 횃불을, 빨간 입술을, 눈동자를, 또한 너의 빨간 눈물을…….
※구성- 제1연 : 4월 초파일(상황 제시)
- 제2연 : 불놀이를 보면서 죽음에 대한 충동과 삶에 대한 의욕이 교차됨
- 제3연 : 격정이 지난 후 화자의 허탈감(전환)
- 제4연 : 자신의 무기력함에 자조(절정)
- 제5연 : 현실과의 갈등을 초극하여 강한 삶의 의욕으로 치달음(결말)
제재 : 사월 초파일의 불놀이
주제 : 상실한 자의 슬픔과 고독, 또는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
산유화 /김소월. 1924.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이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
진달래꽃 /김소월. 1925년.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 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주제 : 이별의 슬품과 그 승화 |
※<진달래 꽃> 해설 : 떠나갈 님이 더욱더 그리워지겠지만 말없이 보내드립니다. 님이 가시는 길에 진달래꽃을 아름따다 뿌려 드립니다. 시 진달래꽃은 겉으로 드러나는 슬픔을 억제하려는 태도보다 그 깊이에 숨겨져 있는 더 깊은 슬픔과 눈물의 간절한 뜻이 더욱 중요한 의미를 띄고 있다.
국경(國境)의 밤 /김동환. 1924년.
<제1부>
1
아하 무사히 건넜을까,
이 한바에 남편은
두만강을 탈없이 건넜을까?
저리 국경 강안(江岸)을 경비하는
외투 쓴 검은 순사가
왔다 갔다
오르명 내리명 분주히 하느데
발각도 안 되고 무사히 건넜을까?
소금실이 밀수출 마차를 띄워 놓고
밤새 가며 속 태우는 젊은 아낙네
물레 젓는 손도 맥이 풀어져
파! 하고 부는 어유(魚油) 등잔만 바라본다.
북국의 겨울밤은 차차 깊어 가는데.
2
어디서 불시에 땅 밑으로 울려 나오는 듯
‘어 이’하는 날카로운 소리 들린다.
저 서쪽으로 무엇이 오는 군호라고
촌민들이 넋을 잃고 우두두 떨 적에
처녀(妻女)만은 잡히우는 남편의 소리라고
가슴을 뜯으며 긴 한숨을 쉰다―
눈보라에 늦게 내리는
영림창 산촌(山村)실이 화부(火夫)떼 소리언만.
3
마지막 길 가는 병자의 부르짖음 같은
애처로운 바람 소래에 싸이어
어디서 ‘땅’하는 소리 밤하늘을 짼다.
뒤이어 요란한 발자국 소리에
백성들은 또 무슨 변이 났다고 실색하여 숨 죽일 때
이 젊은 처녀(妻女)만은 강도 채 못 건넌 채
얻어맞은 남편의 일이라고
문지방을 쓰러안고 흑흑 느껴 가며 운다―
겨울에도 한 삼동(三冬) 별빛을 따라
고기잡이 얼음장 끄는 소리언만. (이하 생략)
※내용 1 -주인공 여인(순이)의 등장. 소금 밀수출을 떠난 남편(병남)의 안전을 걱정하는 여인의 독백, 심리 묘사.
2 -날카로운 군호 소리에 불안해 하는 촌민들과 아낙
3 -‘땅’하는 총 소리에 실색하여 숨죽이는 촌민들과 흐느끼는 아낙
->밀수출하는 남편과 애태우는 아내
※국경의 밤 : 3부 72장 893줄로 된 장시(長詩). 서사시
※작품 전체 내용
․제1부(1~27장):두만강변의 어느 겨울 날 저녁, 만주로 소금 밀수출 마차를 글고 간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는 불안한 가운데 잠시 옛사랑의 추억에 잠기는데, 그 때 옛 애인이 나타난다.
․제2부(28~57장):그 사람은 어렸을 때 같이 소꿉놀이하던 친구로 차차 연정을 느끼게 되었던 사람이다. 그러나 인습에 얽매였던 소년는 다른 곳으로 시집을 가고 사랑을 잃은 소년은 마을을 떠난다.
․제3부(58~72장):그 소년이 이제 청년이 되어 돌아와서 사랑을 호소하지만 여인은 거절한다. 이 때, 남편이 마적의 총을 맞아 시체가 되어 돌아온다.
․전체 주제 : 국경 지방 한 여인의 비극적인 삶과 애절한 사랑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1926년.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몽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애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미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리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주제 : 국토 회복에의 염원과 현실적 위기감
※작품 감상 :아름다운 국토 대자연에의 감동에 젖어 적극적으로 낭만성을 표출하는 모습과 현실 인식에서빚어지는 부정적, 감상적, 저항적인 낭만성을 띤 모습이 빚는 갈등과 긴장이 몽환적 분위기 속에서 시정을 살아 움직이게 한다.
님의 침묵 /한용운. 1926년.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참어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주제 : 임에 대한 영원과 사랑
※해 설 : 이 시는 시집 "님의 침묵"의 서시에 해당하며, 이별과 슬픔, 절망을 노래한 것 같지만 만남과 희망, 기다림을 읊은 시이다. 이별의 충격에서 절망과 슬픔을 겪고 이것을 고통속에서 참고 이겨냄으로써 마침내 만남에 이르게 되는 극복의 노래, 생성과 부활의 노래이다
[1930년대~일제 말기]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김영랑. 1930년[시문학]
내 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돋쳐 오르는 아침 날 빛이 빤질한
은결을 도도네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내 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 제재 : 내 마음(동백나무 잎에 비치는 시인의 마음)
주제 : 내 마음이 지닌 아름다움과 은은함
* 특징 1. 여성적 섬세함과 그윽함을 지닌 어조의 시
2. 순수한 내면 세계에의 동경
3. 잘 다듬어진 리듬의 시
외인촌(外人村) /김광균. 1935년.
(*외인촌 : 외국인이 사는 마을)
하이얀 모색(暮色) 속에 피어 있는
산협촌(山峽村)의 고독한 그림 속으로
파 - 란 역등(驛燈)을 달은 마차가 한 대 잠기어 가고,
바다를 향한 산마룻길에
우두커니 서 있는 전신주 우엔
지나가던 구름이 하나 새빨간 노을에 젖어 있었다.
바람에 불리우는 작은 집들이 창을 나리고,
갈대밭에 묻히인 돌다리 아래선
작은 시내가 물방울을 굴리고
안개 자욱한 화원지(花園地)의 벤치 우엔
한낮의 소녀들이 남기고 간
가벼운 웃음과 시들은 꽃다발이 흩어져 있다.
외인 묘지(外人墓地)의 어두운 수풀 뒤엔
밤새도록 가느단 별빛이 나리고,
공백(空白)한 하늘에 걸려 있는 촌락(村落)의 시계가
여윈 손길을 저어 열 시를 가리키면
날카로운 고탑(古塔)같이 언덕 우에 솟아 있는
퇴색한 성교당(聖敎堂)의 지붕 우에선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
※제재 : 외인촌의 풍경 ※주제 : 외인촌의 이국적 정취
와사등(瓦斯燈) /김광균. 1939년.
(*와사등 : 가스등, 여기서는 가로등을 의미함)
차단 -- 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리어 있다.
내 호올로 어데로 가라는 슬픈 신호냐.
긴 -- 여름 해 황망히 나래를 접고
늘어선 고층 창백한 묘석같이 황혼에 젖어
찬란한 야경 무성한 잡초인양 헝클어 진채
사념 벙어리 되어 입을 다물다.
피부의 바깥에 스미는 어둠
낯설은 거리의 아우성 소리
까닭도 없이 눈물겹고나.
공허한 군중의 행렬에 섞이어
내 어디서 그리 무거운 비애를 지고 왔기에
길 -- 게 늘인 그림자 이다지 어두어
내 어디로 어떻게 가라는 슬픈 신호기
차단 -- 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리어 있다.
※이 시는 참신한 비유를 통한 독창적인 이미지를 창출해 보인 시이다. ‘와사등’이란 제목은 공허와 비애로 가득한 현대인을 표상한다. 아무 것도 믿고 의지할 수 없는 어두운 현실 속에서 어디론가 떠나가야만 하는 현대인의 고독과 불안 의식을 ‘와사등’을 통하여 형상화하고 있다.
유리창 1 /정지용
유리(琉璃)에 차고 슬픈 것이 어린거린다.
열없이 불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다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또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벅은 별이, 반짝, 보석(寶石)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琉璃)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흔 폐혈관(肺血管)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山)새처럼 날아갔구나!
※주제 : 자식을 잃어버린 아버지의 슬픔
※정지용(1903~?)의 초기 시들은 도시적 생활 공간에서 관찰하고 체험한 일들을 재치있는 시선과 비유적 언어로써 표현하는 모더니즘적 특징을 보여 준다. ‘유리창 1’은 이러한 초기 시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시적 자아는 밤에 유리창 앞에서 잃어버린 자식을 그리워한다. 그는 열없이 유리창에 붙어서서 입김 자국을 내고는 쉽게 사라지는 그 연약한 자국을 보며 가냘픈 새의 모습을 연상한다. ‘산새처럼 날아 갔구나!’라는 절제된 비탄의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새’는 바로 허망하게 떠나버린 아이의 비유적 형상이다.
바다 1 /정지용.
오 오 오 오 오 오 소리치며 달려가니
오 오 오 오 오 오 연달아서 몰아온다.
간밤에 잠 살포시
머언 뇌성이 울더니,
오늘 아침 바다는
포도빛으로 부풀어젔다.
철석, 처얼석, 철석, 처얼석, 철석,
제비 날아들 듯 물결 새이새이로 춤을 추어.
화사(花蛇) /서정주
사향(麝香) 박하(薄荷)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배암......
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몸뚱아리내
꽃대님 같다.
너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내던 달변의 혓바닥이
소리 잃은 채 낼룽거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늘이다...... 물어 뜯어라, 원통히 물어 뜯어,
달아나거라, 저놈의 대가리!
돌 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사향 방초(芳草)ᄉ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의 아내가 이브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석유 먹은 듯 ...... 석유 먹은 듯 ...... 가쁜 숨결이야
바늘에 꼬여 두를까 부다. 꽃대님보다도 아름다운 빛......
클에오파트라의 피 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
고운 입술이다......스며라! 배암
우리 순네는 스물 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운 입술 ...... 스며라!
배암.
자화상 /서정주. 1939년.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 살구가 곡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깜한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숫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믈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친 않을란다.
찬란히 티워오는 어는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덕거리며 나는 왔다.
생명의 서 /유치환. 1938년.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리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겹의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砂丘)에 회한(悔恨)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1연에서 지식과 감정의 파탄과 좌절의 상태에서 구원의 세계를 찾아나서고, 2연에서는 모든 것이 절멸하고 태양만이 하얗게 불타는 뜨거운 모랫벌 고독의 극한에서 구도자(求道者)의 자세로 고행(苦行)과 수련(修鍊)의 고통을 겪는다. 그리고 마침내 3연에서 고도의 극한 상태에서 본연의 자아, 자기 생명의 참모습을 발견한다.
심각한 좌절의 상태에서 생수가 샘솟는 오아시스가 아닌 사막을 찾아 스스로 고독한 수행의 과정을 거쳐 근원적인 자아의 소생을 맞이하는 인간 의지의 결연한 자세를 보여 준다.
쉽게 씌워진 시(詩) /윤동주. 1942년 씀.
-출전:<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8
창(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詩人)이란 슬픈 천명(天命)인줄 알면서도
한줄 시(詩)를 적어 볼가,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學費封套)를 받어
대학(大學)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講義) 들으려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 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가?
인생(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詩)가 이렇게 쉽게 씨워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창(窓)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곰 내몰고,
시대(時代)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最後)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慰安)으로 잡는 최초(最初)의 악수(握手.)
※- 주제 : * 암담한 현실 극복의 결의
* 어두운 시대 현실에서의 고뇌와 자아 성찰
자화상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읍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읍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제재:우물 속의 자아 ※주제:자아 성찰과 자신에 대한 애증
서시 /윤동주(1917~1945). 1941년 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 가야 겠다.
오늘밤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주제 : 순교자적인 삶에 대한 기원과 각오
※작품 해설 : 이 작품을 통해, 윤동주는 지극히 내성적인 인물이며, 또 매운 양심의 소유자임을 엿볼 수 있다. 내성적 성격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그는 자신과 이웃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경우, 그의 생각은 필연적으로 민족 의식을 응축되었다. 즉, 그가 '나'의 존재를 깊이 파고들었을 때, 결국 자신도 한국 민족의 일원이라는 것, 그리고 이 때문에,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그러한 자각을 지니며, 그에 따라 행동할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한편, 식민지 치하에서 역사 의식이나 민족 의식을 가진다는 것은, 비극적 운명의 구조 속에 자신을 과감히 내 던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지배자의 논리는 언제나 허물어질 수 없을 것 같은 벽으로 앞에 막아 섰고, 자아의 미약한 힘은 그것을 허물 수 없음을 자각하게 된다. 그런데도 진정한 민족 의식의 소유자는 승산 없는 대결에 몸을 던지는 것이다.
윤동주는 시가 대부분 자화상의 성격을 지니고 있고, 그것이 치열한 자기 성찰에서 오는 결과임을 뚜렷이 보여 주는 작품이다
낙화 /조지훈. 1946년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허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
나그네 /박목월.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윤사월 /박목월. 1946년 송화(松花) 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집 눈 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대고 엿듣고 있다 |
[1950년대]
역사(歷史) 앞에서 /조지훈. 1956년.
만신(滿身)에 피를 입어 높은 언덕에
내 홀로 무슨 노래를 부른다
언제나 찬란히 티어 올 새로운 하늘을 위해
패자(敗者)의 영광(榮光)이여 내게 있으라.
나조차 뜻 모를 나의 노래를
허공(虛空)에 못박힌 듯 서서 부른다.
오기 전 기다리고 온 뒤에도 기다릴
영원(永遠)한 나의 보람이여
묘막(渺漠)한 우주(宇宙)에 고요히 울려 가는 설움이 되라.
목마와 숙녀/박인환(1926~1956).1955년<박인환선시집>에서.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어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볍게 부서진다.
그러던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독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어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주제 : 모든 떠나가는 것들에 대한 애상
※이 작품은 1950년대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것 중의 하나이다. 6․25전쟁이 가져다 준 충격은 전후의 폐허와 함께 정신의 황폐함, 비정함을 동반했다. 이 시도 이러한 분위기에서 도시의 서정성을 노래하고 있다. 6․25직후의 허무주의, 실존주의적 고니, 도시적 서정성을 바탕으로 한 시적 정조는 자연히 감상적, 허무적, 체념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1960년대 이후]
어느날 고궁(古宮)을 나오면서 /김수영(1921~1968).1965년.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王宮)의 음탕 대신에
오십(五十)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越南)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십(二十)원을 받으러 세번씩 네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情緖)로
가로놓여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십사야전병원(第十四野戰病院)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있다 절정(絶頂) 위에는 서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이십원 때문에 십원 때문에 일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일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해 설 : '고궁'은 이발쟁이, 땅주인, 구청직원, 동회직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을 부패하게한 권력을 상징한다. 화자는 자신을 '일원 때문에' 분개하는 소시민으로 희화화시키고 있지만, 희화화를 통해 권력의 부패에 언론 자유와 월남파병 반대등을 간접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풀 /김수영(1921~1968). 1968년.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주제 : 풀(백성)의 끈질긴 생명력
※풀과 바람의 대립은 오랜 역사를 통하여 억세고 질긴 삶을 지켜온 민중과 그들을 억압하는 사회적인 힘(독재권력일 수도 있고 외세일 수도 있다)과의 관계를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흔히 민중을 ‘민초(民草)’라고 부르는 것이다. 따라서, 천대받고 억압받으면서도 질긴 생명력으로 맞서는 민중들의 넉넉함이 이 시에 담겨져 있다. 이러한 민중에 대한 인식은 1970년대로 넘어오면서 민중 문학의 기초를 이루게 한다.
화 살 /고 은. 1978년
우리 모두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 뚫고
온몸으로 가자.
가서는 돌아오지 말자.
박혀서 박힌 아픔과 함께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
우리 모두 숨 끊고 활시위를 떠나자.
몇 십 년 동안 가진 것,
몇 십 년 동안 누린 것,
몇 십 년 동안 쌓은 것,
행복이라던가
뭣이라던가
그런 것 다 넝마로 버리고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이 소리친다.
허공 뚫고
온몸으로 가자.
저 캄캄한 대낮 과녁이 달려온다.
이윽고 과녁이 피 뿜으며 쓰러질 때
단 한 번
우리 모두 화살로 피를 흘리자.
돌아오지 말자!
돌아오지 말자!
오 화살 정의의 병사여 영령이여!
※ 화살 : 민주화 투쟁의 전위를 상징
※ 주제 : 민주화에 대한 결연한 의지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1982년 [타는 목마름으로]에서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통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국 소리 호르락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 소리
신음 소리 통곡 소리 탄식 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 구성 - 제1연 :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
제2연 : 어두운 현실 인식과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
제3연 : 민주주의에 대한 대망
※ 주제 :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渴望)
※ 김지하(1941~ )본명은 김영일. 필명 김지하, 김형
․1941년 전남 목포 생. ․1966년 서울대 미학과 졸업
․1964년 대일 굴욕 외교 반대투쟁에 가담, 첫 투옥 이후 1980년 출옥 때까지 투옥․재투옥을 거듭하여 장장 8여년 동안 영어(囹圄)의 세월을 보냄. ( <오적> 필화사건 등 )
․1963년 첫 시 <저녁 이야기>를 발표한 이후, <황톳길> 계열의 초기 민중 서정시와 권력층의 부정부패를 판소리 가락에 실어 통렬하게 비판한 특유의 장시(長詩) <오적(五賊)> 계열의 시들, <빈 산>, <밤나라> 등의 빼어난 70년대의 서정시들, 그리고 80년대의 '생명'에의 외경(畏敬)과 그 실천적 일치를 꿈꾸는 아름답고 도저한 '생명'의 시편들을 만들어 냈다.
․첫시집 [황토(黃土)](1970), [타는 목마름으로](1982), [애린]1․2(1986), [이 가문 날에 비구름](1988), [별밭을 우러르며](1989), 대설(大說) [남(南](1982, 1984, 1985) 등의 시집이 있음.
거울 /이상 거울속에는소리가없오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오 내말을알아듣는딱한귀가두 개나있오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요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잽이요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거울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으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오 나는지금거울을안가져오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오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에골몰할께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또꽤닮았오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
오감도 /이상(1910~1937). 1934년.
시(詩) 제 1호
13인의아해(兒孩)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4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5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6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7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8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9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0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2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3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
(다른사정은없는 것이차라리나았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3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4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길이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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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제 2호
나의아버지가나의곁에서조을적에나는나의아버지가되고또나는나의아버지의아버지가되고그런데도나의아버지는나의아버지대로나의아버지인데어쩌자고나는자꾸나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가되나나는왜나의아버지를껑충뛰어넘어야하는지나는왜드디어나와나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노릇을한꺼번에하면서살아야하는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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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제 3호
싸움하는사람은즉싸움하지아니하든사람이고또싸움하는사람은싸움하지아니하는사람이었기도하니까싸움하는사람이싸움하는구경을하고싶거든싸움하지아니하든사람이싸움하는것을구경하든지싸움하지아니하는사람이싸움하는구경을하든지싸움하지아니하든사람이나싸움하지아니하는사람이싸움하지아니하는것을구경하든지하였으면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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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제 4호
환자의용태에관한문제
진단 0:1 26.10.1931 이상(以上) 책임의사 이상
전후좌우를제(除)하는유일의흔적(痕跡)에있어서
익은불서목불대도(翼殷不逝目不大覩)
반왜소형의신의안전(眼前) 에아전낙상(我前落傷)한고사(故事)를유(有)함
장부(臟腑) 라는것은침수된축사(畜舍)와구별될수있을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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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제 6호
앵무 ※ 2필
2필
※ 앵무는포유류에속하느니라.
내가2필을아는것은내가2필을알지못하는것이니라.물론나는희망할것이니라.
앵무 2필
"이소저는신사이상의부인이냐""그렇다"
나는거기서앵무가노한것을보았느니라.나는부끄러워서얼굴이붉어졌었겠느니라.
앵무 2필
2필
물론나는추방당하였느니라.추방당할것까지도없이자퇴하였느니라.나의체구는중추를상실하고또상당히창랑하여그랬든지나는미미하게체읍하였느니라.
"저기가저기지""나""나의-아-너와나"
"나"
sCANDAL이라는것은무엇이냐."너""너구나"
"너지""너다""아니다너로구나"나는함뿍젖어서그래서수류처럼도망하였느니라.물론그것은아아는사람혹은보는사람은없었지만그러나과연그럴는지그것조차그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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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제 7호
구원적거(久遠謫居)의지(地)의일지(一枝)․일지에피는현화(顯花)․특이한4월의화초․30륜(輪)․30륜에전후되는양측의명경(明鏡)․맹아(萌芽)와같이희희(戱戱)하는지평(地平)을향하여금시금시낙백(落魄)하는만월․청한의기(氣)가운데만신창이의만월이의형당하여혼륜(渾淪)하는․적거(謫居)의지를관류하는일봉가신(一封家信)․나는근근히차대(遮戴)하였더라․몽몽한월아(月芽)․정일을개엄하는대기권의요원․거대한곤비(困憊)가운데의일년4월의공동(空洞)․반산전도(槃散顚倒)하는성좌와성좌의천열(千裂)된사호동(死胡同)을포도하는거대한풍설․강매․혈홍으로염색된암광채임리한망해․나는탑배하는독사와같이지하에식수되어다시는기동할수없었더라․천량이올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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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제 8호
제1부시험 수술대 1
수은도말평면경 1
기압 2배의평균기압
온도 개무
위선마취된정면으로부터입체와입체를위한입체가구비된전부를평면경에영상시킴.평면경에수은을현재와반대측면에도말이전함.(광선침입방지에주의하여)서서히마치를해독함.일축철필과일장백지를지급함.(시험담임인은피시험인과포옹함을절대기피할것)순차수술실로부터시험인을해방함.익일.평면경의종축을통과하여평면경을2편에절단함.수은도말2회. ETC 아직그만족한결과를수득치못하였음.
제2부시험 직립한평면경 1 조수 수명
야외의진공을선택함.위선마취된상지의첨단을경면에부착시킴.평면경의수은을박락함.평면경을후퇴시킴.(이때영상된상지는반드시초자를무사통과하겠다는것으로가설함)상지의종단까지.다음수은도말.(재래면에)이순간공전과자전으로부터그진공을강차시킴.완전히2개의상지를접수하기까지.익일.초자를전진시킴.연하여수은주를재래면에도말함.(상지의처분)(혹은멸형)기타.수은도말면의변경과전진후퇴의중복등. ETC 이하불상.
진단 0:1 26.10.1931 책임의사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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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제 9호 - 총구(銃口)
매일같이열풍이불더니드디어내허리에큼직한손이와닿는다황홀한지문골짜기로내땀내가스며드자마자쏘아라쏘으리로다나는내소화기관에묵직한총신을느끼고내다물은입에매끈매끈한총구를느낀다그러더니나는총쏘으드키눈을감으며한방총탄대신에나는참나의입으로무엇을내어배앝었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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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제 10호 - 나비
찢어진벽지에죽어가는나비를본다그것은유계(幽界)에낙역(樂繹)되는비밀한통화구다어느날거울가운데의수염에죽어가는나비를본다날개축처어진나비는입김에어리는가난한이슬을먹는다통화구를손바닥으로꼭막으면서내가죽으면앉았다일어서드키나비도날라가리라이런말이결코밖으로새어나가지는않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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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제 11호
그사기컵은내해골과흡사하다내가그컵을손으로꼭쥐었을때내팔에서는난데없는팔하나가접목처럼돋히더니그팔에달린손은그사기컵을번쩍들어마룻바닥에메어부딪는다내팔은그사기컵을사수하고있으니산산이깨어진것은그럼그사기컵과흡사한내해골이다가지났던팔은배암과같이내팔로기어들기전에내팔이혹움직였던들홍수를막은백지는찢어졌으리라그러나내팔은여전히그사기컵을사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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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제 12호
때묻은빨래조각이한뭉덩이공중으로날라떨어진다그것은흰비둘기의떼다이손바닥만한한조각하늘저편에전쟁이끝나고평화가왔다는선전이다한무더기비둘기의떼가깃에묻은때를씻는다이손바닥만한하늘이편에방망이로흰비둘기의떼를때려죽이는불결한전쟁이시작된다공기에숯검정이가지저분하게묻으면흰비둘기의떼는또한번손바닥만한하늘저편으로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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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제 13호
내팔이면도칼을든채로끊어져떨어졌다자세히보면무엇에몹시위협당하는것처럼새파랗다이렇게하여읽어버린내두개팔을나는촉(燭)대세움으로내방안에장식하여놓았다팔은죽어서도오히려나에게겁을내이는것만같다나는이런얇다란예의를화초분보다도사랑스레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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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제 14호
고성앞풀밭이있고풀밭위에나는내모자를벗어놓았다성위에서나는내기억에꽤무거운돌을매어달아서는내힘과거리껏팔매질쳤다포물선을역행하는역사의슬픈울음소리문득성밑내모자곁에한사람의걸인이장승과같이서있는것을내려다보았다걸인은성밑에서오히려내위에있다혹은종합된역사의망령인가공중을향하여놓인내모자의깊이는절박한하늘을부른다별안간걸인은표표한풍채를허리굽혀한개의돌을내모자속에치뜨려넣는다나는벌써기절하였다심장이두개골속으로옮겨가는지도가보인다싸늘한손이내이마에닿는다내이마에는싸늘한손자국이낙인되어언제까지지워지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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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제 15호
1 나는거울없는실내에있다거울속의나는역시외출중이다나는지금거울속의나를무서워하며떨고있다거울속의나는어디가서나를어떻게하려는음모를하는중일까.
2 죄를품고식은침상에서잤다확실한내꿈에나는결석하였고의족을담은군용장화가내꿈의백지를더렵혀놓았다.
3 나는거울있는실내로몰래들어간다나를거울에서해방하려고그러나거울속의나는침울한얼굴로동시에꼭들어온다거울속의나는내게미안한뜻을전한다내가그때문에영어되어있듯이그도나때문에영어되어떨고있다.
4 내가결석한나의꿈내위조가등장하지않는내거울무능이라도좋은나의고독의갈망자다나는드디어거울속의나에게자살을권유하기로결심하였다나는그에게시야도없는들창을가리키었다그들창은자살만을위한들창이다그러나내가자살하지아니하면그가자살할수없음을그는내게가르친다거울속의나는불사조에가깝다.
5 내왼편가슴심장의위치를방탄금속으로엄폐하고나는거울속의내왼편가슴을겨누어권총을발사하였다탄환은그의왼편가슴을관통하였으나그의심장은바른편에있다.
6 모형심장에서붉은잉크가엎질러졌다내가지각한내꿈에서나는극형을받았다내꿈을지배하는자는내가아니다악수할수조차없는두사람을봉쇄한거대한죄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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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는 1934년 7월 24일부터 8월 8일까지 14회에 걸쳐 <조선 중앙 일보>에 발표되어 커다란 물의를 일으켰던 작품이다. 원래 30회를 예정하였으나 독자들의 거센 항의로 결국 14회로 중단되고 말았다. 현대인의 불안 의식과 절망감을 초현실주의적 기법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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