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소설의 흐름
by 송화은율< 혈(血)의 누(淚) > 이인직. 1906년
청일 전쟁의 회오리 바람이 막 지나가고 피비린내가 만연한 평양 어느 곳에서, 삼십 세 가량의 여인이 옷도 풀어헤친 채 허둥거리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여인은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아내를 잃고 찾아 헤매던 어느 외간 남자와 부딪혀 봉변을 당하기도 한다. 이 부인은 남편 김관일과 딸 옥련, 세 식구가 난리통에 서로 헤어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최씨 부인은 남편을 기다리다가 끝내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자살하기 위해 대동강 물에 뛰어 드나, 뱃사공에게 구출되어 평양에 그대로 머물렀으며, 김관일은 나라의 큰일을 해야겠다고 결단을 내려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옥련은 피난길에 폭탄의 파편을 맞아 부상했으나 일본군 군의관 이노우에의 후의로 그의 양녀가 되어 일본으로 건너간다. 그녀는 원래 총명하고 예쁜 탓으로 이노우에 군의관의 부인으로부터 사랑을 받는다. 옥련은 그 후 이노우에 군의관이 전사하자, 부인으로부터 냉대를 받게 되고 갑자기 갈 곳이 없는 신세가 되어 방황하다가, 구완서라는 청년과 알게 되어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다. 구완서는 부국 강병의 뜻을 품고 조선을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처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유학길에 오르던 중이었다. 옥련은 그곳에서 고등 학교를 우등으로 마치고 이미 미국에서 살고 있는 아버지 김관일과 10년만에 만나게 된다. 옥련이 우등으로 졸업하자 그곳 신문에 옥련에 관한 기사가 나고 이것을 옥련의 아버지인 김관일이 본 것이었다. 이런 가운데 옥련과 구완서는 일생의 반려가 되기로 기약하며 약혼을 한다. 그리고 어머니가 아직 평양에 살아 있음을 확인한 옥련은 매우 기뻐하며, 그리움 속에 어머니에게 우선 편지를 띄운다.
구완서는 우리 나라를 문명한 강대국으로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하였고, 또 옥련은 우리 나라 여자들의 지식을 넓혀서 남자에게 눌리지 않고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게 하며, 또한 여자들도 사회에 유익하고 명예 있는 백성이 되도록 교육할 것을 마음 먹는다.
< 자유종(自由鐘) > 이해조 . 1910년
이매경이라는 가정부인의 생일에 초대받은 신설헌 등 몇몇 부인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여권문제, 자녀교육과 자주독립, 계급 및 지방색 타파와 미신타파, 한문폐지 등에 관하여 밤새도록 토론을 한 후 제각기 자기의 꿈을 이야기한다는 줄거리이다. 이 작품은 당시 지식 여성들의 입을 통하여 개화와 계몽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를 시사했으며, 토론이 성행한 개화기적 사회상을 반영한 것이다.
< 무정(無情) > 이광수. 1917.1~6월 [매일 신보]에 연재.
경성학교 영어 교사 이형식은 안동 김 장로의 집으로 간다. 김 장로의 딸 선형이가 내년에 미국 유학을 가기 위하여 영어를 준비하기 위해 이형식을 매일 한 시간씩 가정교사로 초빙하여 수업을 하기 때문이다.
본래 형식은 동경 유학을 마친 당대 일류 지식인이나 일찍이 고아가 되어 역경을 겪은 데다 내성적 성격이라 여성 교제가 거의 없었다. 그러던 중 뛰어난 미모인 선형에게 반한다. 그리고 그 날 밤 하숙집에 돌아와서 형식은 뜻밖의 손님인 박영채를 만난다. 영채는 이형식이 고아일 때 형식을 데려다 기르고 자식처럼 대하여 준 은사 박 진사의 딸인데 장차 형식의 아내가 될 사람으로 정혼한 사이였다.
그러나 박 진사의 개화 운동이 세상 사람들의 개화 문명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실패하고 집안이 망하자 형식은 영채와 이별하게 되었는데, 7년만에 해후하여 그 뒤 영채가 감옥에 계신 아버지를 도우려 기생이 되고 형식을 사모하며 수절해 왔다는 전말을 듣게 된다. 이 과정에서 형식은 눈물을 흘리는 한편, 그녀가 기생이라는 혐오감과 미인이라는 유혹 사이에서 갈등한다. 이에 형식은 선형에 대한 연정과 은사의 딸이자 정혼녀인 영채에 대한 의무 사이에서 고민하고 갈등을 겪게 된다. 또, 기생인 영채를 구해낼 돈 천 원이 없음을 한탄하는 사이에 영채는 지금까지 형식을 위해 지켜 오던 정조를 배학감(명식), 경성학교 교주의 아들인 김현수 일당에게 유린당하고 만다. 그리고 유서를 남긴 채 자살하러 평양행 기차에 오른다.
그녀의 유서를 쥐고 눈물을 뿌리며 영채를 만나려 뒤따라 평양에 간 이형식은 소득없이 돌아와서 오히려 학생들에게 기생을 따라갔다는 오해만 사고 급기야 학교를 그만두기에 이른다. 이는 김현수가 거짓 소문을 낸 까닭이었다. 이런 형식에게 뜻밖에 김장로댁 선형과의 결혼 신청이 들어오고 형식은 이를 받아 들여 약혼식을 치른 후에 함께 미국 유학을 할 준비를 하게 된다.
한편, 자살길에 오른 영채는 차 안에서 소위 신여성인 병욱을 만나 그녀의 황주집에서 한 달간 머무는 동안 봉건적 사고 방식에서 근대적 합리주의로 정신적인 발전을 이룬다. 그리고 병욱의 호의로 함께 동경 유학길에 오르던 중, 기차 안에서 미국 유학을 떠나는 형식과 선형을 만나게 된다. 이리하여 형식은 새삼 애정과 의리 간에 갈등에 빠지게 되고 선형과 영채 사이에는 삼각 관계의 불협 화음이 생긴다. 기차는 삼랑진 수재 현장에 이르러 연착하게 되고 여기에서 네 젊은이는 고통을 당하는 수재민을 위한 자선 음악회를 열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들간의 개인적인 감정은 사라지고, 그 대신 토론을 통해 허물어진 민족의 장래를 담당할 역군으로서 사명을 다짐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등장 인물들의 근황이 소개되고 작가의 계몽 의식이 서술된다.
※-갈래 : 장편 소설, 계몽소설, 126회의 연장체소설
-배경 : 시간 - 개화기~일제 강점 이후
공간 - 서울, 평양, 삼랑진 등
-의의 : 우리 나라 최초의 근대 장편 소설
-작품경향 : 계몽적, 민족주의적, 설교적
1) 당시 시대적 진취성(계몽주의) 이 나타난다.
2) 구도덕적인 여인의 정절과 기독교적 순결성이 미묘하게 잘 얽혀 있다.
-주제 : 자유 연애와 민족의식의 고취
< 만세 전(萬歲 前) > 염상섭 [신생활, 1922]
(*만세 전 : 3.1운동 전인 1918년)
일본에 유학 중인 '나'(이인화)는 서울에 있는 아내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연말 시험도 포기한 채 귀국한다. 사회의 여러 가지 모순을 고쳐야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불만과 원만하지 못했던 부부 관계 등으로 '나'의 마음은 음울하다. 뚜렷한 목적도 없이 '정자'가 있는 술집에 들러 술도 마시고, 카페에도 가 보고, 음악학교 학생인 '을라'도 만나 본다.
귀국하는 배에 올라서도 짖궂게 미행하는 일본 형사에게 계속 시달리면서 울분을 삭인다. 배 안의 욕실에서 우리 나라 노무자들을 경멸하는 일본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라 없는 설움과 압박과 곤궁 속에서 허덕이는 우리 나라 노무자에 대한 연민과 동정에 휩싸인다. 그런 상황은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상경하는 동안에도 계속된다.
서울의 집에 와 보니, 현대 의학으로 넉넉히 고칠 수 있는 유종을 앓고 있는 아내를 방치한 채, 아버지는 술타령이나 하면서 재래식 의술에 맡겨 결국 아내를 죽게 만든다.
집안에는 출가했다가 과부가 되어 돌아온 누이, 종손인 종형, 그밖의 과객들이 득실거려 도무지 안정을 얻을 수가 없다. 다시 유학길에 오르려 하나, 집안 식구들의 만류로 발이 묶였고, 재혼을 하라는 형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상중(喪中)에, 일본에 있는 '정자'의 간절한 편지를 받는다. 새 길을 찾아 대학에 진학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녀에게 새 출발을 축하한다는 편지와 함께 돈 백 원을 보내 주었다.
사회고 집안이고 간에, 구더기가 들끓는 공동 묘지 같은 답답한 환경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나'는 불쌍한 아내, 사랑보다 연민이 앞섰던 가련한 아내를 생각하면서 탈출하듯 다시 동경으로 떠난다.
※* 갈래 : 장편소설 , 여로형 소설
* 배경 : 시간 - 3․1운동 전인 1918년 겨울
공간 - 동경과 서울
* 경향 : 사실주의
* 의의 : 일제강점기 하의 민족적 현실을 사실적으로 제시
* 주제 : 식민지적 상황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조선의 현실에 대한 인식
※ <만세 전> 이해하기
이 작품은 <신생활> 잡지에 1922년 7월부터 <묘지(墓地)>라는 제목으로 2회까지 연재되다가 3회분은 삭제당한 채 이로 인해 잡지가 폐간되자, 1924년 <시대일보>로 옮겨져 <만세 전>이라는 제목으로 바뀌어 완결되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3․1운동이 일어나기 전의 서울과 동경을 배경으로, 한 지식 청년의 눈에 비친 사회상의 기록이다. 즉, 만세 운동 직전, 무단 정치라는 식민지 정책 아래 신음하는 조선 사람들의 모습과 자아 비판적 각성을 냉철하게 그린 작품이다
< 탈출기 > 최서해 [조선문단, 1925]
'나'(박 군)는 자신이 탈가(脫家)한 이유를 친구인 김군에게 편지로 밝힌다.
'나'는 5년 전 어머니와 아내를 데리고 새 삶의 터전이요, 기름진 땅이라는 간도를 찾아갔다. 그곳에만 가면 농사를 지어 배불리 먹고 무지한 농민을 가르쳐 이상촌을 만들겠다는 부푼 꿈이 있었다. 그러나 간도에는 빈 땅이 거의 없었고, 어쩔 수 없이 중국인 소작인 노릇을 해보지만 빚을 갚고 나면 남는 게 없었다.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면 잘 살 수 있다는 신념으로 노력하지만 빈곤은 날로 심해만 갔다.
어느 날, 임신한 아내가 귤 껍질을 주워 먹는 것을 보고 '나'는 심한 갈등과 자책감에 빠졌다. 생선 장수, 두부 장수를 하면서 연명했지만 갓난아이는 젖 달라고 보채고, 겨울이 닥쳐오자, 두부 장수도 땔나무가 있어야 할 수 있기 때문에 산에 가서 나무를 하다가 순사에게 잡혀 매를 수없이 맞았다.
'나'는 세상에 충실하려고 노력했으나 세상은 '나'와 어머니와 아내까지도 멸시하고 학대했다. 그리하여 하루라도 괴로운 생활과 기한(飢寒)에서 벗어나려면 가족을 모두 죽이고 자신도 자살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 "우리는 여태까지 속아 살아왔다. 우리는 우리로서 살아온 것이 아니라, 어떤 험악한 제도의 희생자로서 살아왔었다."는 분노가 머릿속에서 꿈틀대었다. 그리하여 이 제도는 그냥 둘 수 없다는 현실 인식으로 '민중의 의무를 이행'하겠다고 의식의 전환을 하고서 어머니와 아내와 자식까지 버리고 ××단에 가입하게 되었다.
※* 갈래 : 단편소설, 서간체 소설
* 배경 : 시간 - 일제 시대
공간 - 만주의 간도 지방
* 경향 : 신경향파 문학
* 성격 : 사실적, 자전적(自傳的), 고백적, 저항적
* 표현 : ① 서간문 형식 - 사실성을 높임
② '나'의 성격 변화 - 주제를 명시적(明示的)으로 제시함.
* 주제 : 가난한 삶의 고발과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저항
< 날개 > 이상 [조광, 1936]
구조가 흡사 유곽과 같은 집-그런 집들 속에 여러 가족이 살고 있는데, 내 방은 아내의 방을 거쳐 미닫이를 열어야 들어설 수 있다. 내 방은 항상 음침하다. 나는 밤낮 잠을 잔다. 아내에게는 매일같이 손이 온다. 아내가 외출을 하면 나는 그 틈을 타서 아내 방을 구경할 뿐이다.
내가 잠을 자고 있으면 아내는 손이 두고 간 돈 중에서 은화 한 푼을 내 머리맡에 놓고 간다. 어느 날 나는 아내가 사다 준 벙어리에 모아 둔 돈을 몽땅 변소에 던져 버렸다. 벙어리에 돈을 넣는 것이 권태로왔기 때문이다.
하루는 거리로 나갔다. 번화한 거리를 걸으니 곧 피곤했으므로 생각하는 일조차 힘겨워 곧 되돌아왔다. 아내의 방문을 열어 보니 손이 와 있었다. 죄의식이 휘몰아쳤다. 밤이 깊어서 그 손은 떠났다. 나는 아내 방에 들어가서 낮에 얻은 은화와 바꾼 지폐를 도로 쥐어 주고 아내 방에서 처음으로 잠을 잤다. 며칠 뒤에도 그렇게 했다.
삼일 후엔 아내가 미닫이를 열고 먼저 나를 이끌었다. 조촐한 음식까지 차려 두었었다. 나는 어떤 선고가 내리지나 않을까 두려웠다. 다음날부터 나는 아내의 방이 몹시 아쉬웠다. 그러나, 내게는 돈이 없었으므로 울고 있었더니 아내는 돈을 주며 자정이 넘거든 돌아오라 했다.
그 날 밤 나는 비를 함빡 맞아 기어코 감기로 앓아 눕고 말았다. 나는 그 후 얼마 동안 아내가 주는 약을 먹고는 잠들곤 했다. 며칠 후 나는 아내의 경대 위에서 최면약을 발견했다. 감기약이라면서 주던 약에 틀림없었다. 나는 몹시 서운했다. 나는 그것을 가지고 산으로 갔다. 나는 그 약을 먹고는 잠들고 말았다. 이튿날 집에 돌아와 아내의 방을 지나려다 기어코 못 볼 것을 보고 말았다. 아내는 내 멱살을 쥐고 나를 덮치고 물어뜯었다. 나는 거리로 나왔다. 나는 나도 모르게 미쓰꼬시 백화점으로 갔다. 나는 거기서 스물 여섯 해를 회고했다. 피로와 공포 때문에 오탁의 거리를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 때 정오 사이렌이 울었다. 굽어보니 현란한 현실 속에 사람들이 수선을 떨고 있다. 현란을 극한 정도다. 나는 불현듯 겨드랑이가 가려움을 느꼈다.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한 번만 더 날자꾸나. 나는 이렇게 외쳤다.
※* 갈래 : 단편소설, 심리주의 소설
* 배경 : 시간 - 일제 강점기의 서울 거리
공간 - 48가구가 살고 있는 33번지 유곽
* 성격 : 고백적, 상징적
* 표현 : 기성 문법에 반역하는 충격적 문체
① 자등기술법
② 인간 의식의 심층부를 그림
* 주제 : 전도된 삶과 자아 분열의 의식 속에서 본래적 자아를 지향하는 인간의 내면 의지
※등장인물
* 나 : 일상으로부터 단절되어 자아 속에 사는 폐쇄적 인물. 남편임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사회적, 성적으로 아내보다 열등한 상태에 놓여 있는 거세당 한 남성. 날개의 소생을 꿈꾸며 사회로의 복귀를 시도한다.
* 아내 : 매춘부. 남편보다 우월한 존재로, 종속 상태에 놓여 있는 남편 위에 군림하는 가학적인 여성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一日)>박태원 [조선중앙일보, 1934]
직업과 아내를 갖지 않은 스물여섯 살의 '구보'는 정오에 집을 나와 광교, 종로를 걸으며 귀도 잘 들리지 않고 시력에도 문제가 있다는 신체적 불안감을 느낀다. 무작정 동대문행 전차를 타고는 전차 안에서 전에 선을 본 여자를 발견한다. 일부러 모른 체하고 있다가 그녀가 전차에서 내리고 난 뒤에 후회한다.
혼자 다방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자기에게 여행비만 있으면 행복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고독을 피하려고 경성역 삼등 대합실로 가지만, 오히려 온정을 찾을 수 없는 냉정한 눈길들에 슬픔을 느끼고, 우연히 만난 중학 시절 열등생이 예쁜 여자와 동행인 것을 보고 물질에 약한 여자의 허영심을 생각한다.
다시 다방에서 만난, 시인이며 사회부 기자인 친구가 돈 때문에 매일 살인 강도와 방화 범인의 기사를 써야 한다는 사실을 애달파하고, 즐겁게 차를 마시는 연인들을 바라보면서 질투와 고독을 동시에 느낀다.
다방을 나온 '구보'는 동경에서 있었던 옛사랑을 추억하며 자신의 용기 없는 약한 기질로 인해 여자를 불행하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을 느끼고, 또 전보를 배달하는 자동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며 오랜 벗에게서 한 장의 편지를 받고 싶다는 생각에 젖는다.
그리고 여급이 있는 종로 술집에서 친구와 술을 마시며 세상 사람들을 모두 정신 병자로 간주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하고, 하얀 소복을 입은 아낙이 카페 창 옆에 붙은 '여급 대모집'에 대하여 물어 오던 일을 생각하고 가난에서 오는 불행에 대하여 생각한다.
새벽 두 시의 종로 네거리, '구보'는 제 자신의 행복보다 어머니의 행복을 생각하고 이제는 어머니가 권하는 대로 결혼을 하여 생활도 갖고 창작도 하리라 다짐하며 집으로 향한다.
※* 갈래 : 중편소설, 심리소설, 세태소설
* 배경 : 시간 - 1930년대 어느 하루
공간 - 서울 거리
* 의의 : 박태원이 자신의 창작 방법론으로 제시한 고현학(modemologe: 현대적 일상 생활의 풍속을 면밀히 조사 탐구하는 행위)을 적용시킨 작품
* 주제 : 1930년대 무기력한 문학인의 눈에 비친 일상사
<무영탑> 현진건 [동아일보, 1938.7 ~ 1939.2]
이 작품은 불국사의 석가탑에 얽혀 있는 석수장이 아사달과 그의 아내 아사녀의 애달픈 설화를 현대 소설로 구성한 것이다.
부여의 석수장이 아사달은 두고 온 아내 아사녀와 신라 귀족의 딸 주만의 연정을 받으며 강렬한 예술적 신기를 갖고 석가탑을 만들어 간다. 찾아온 아내의 죽음, 주만의 죽음을 겪은 그는 두 여인의 환영 때문에 더 이상 정을 쪼지 못한다. 그러나, 곧 이 두 여인의 얼굴이 조화된 부처님의 모습이 떠오르고 마침내 탑은 우뚝하게 솟아오른다.
선도산으로 뉘엿뉘엿 기우는 햇발이 그 부드럽고 찬란한 광선을 던질 때, 못물은 수멸수멸 금빛 춤을 추는데 흥에 겨운 망치와 정 소리가 자지러지게 일어나 저녁 나절의 고요한 못 둑을 울리었다.
새벽만 하여 한가위 밝은 달이 홀로 정 자리가 새로운 돌부처를 비칠 제, 정 소리가 그치자 은물결이 잠깐 헤쳐지고 풍 하는 소리가 부조의 적막을 한 순간 깨뜨렸다.
<운현궁(雲峴宮)의 봄> 김동인 [조선일보, 1933~1934]
이 작품은 전 25장으로 된 장편 소설이다.
1장에서는 흥선 대원군 이하응이 집권하기 전으로 이하응의 권력 지향과 영웅성이 긍정적으로 나타나며, 2장에서는 명종 때부터 철종에 이르는 300년 간의 조선조 정치사가 요약되었고, 3장에서는 해가 바뀐 신유년의 사건으로 전개된다.
4장에서는 흥선 대원군이 조 대비와의 만남으로 인해 장래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고,
5장은 김병기로부터의 수모,
6장은 민숭호의의 인연 구축,
7장은 영의정 김좌근의 애첩 양씨의 권력 행패,
8장은 동궁 책립에 대한 조 대비의 의향 타진,
9장은 김병국 일파로부터의 망신과 조롱, 10장은 양씨로 인한 백성들의 원성에 대해 적고 있다.
12장은 김문 일파의 음모로 터진 이하전 역모 사건,
13장은 흥선과 심복들이 투전에서 포교와의 금전 거래,
14~20장까지는 현 제도의 모순과 위정자들의 타락상이 표출되며,
25장에서는 계해년이 지나 갑자년 정월에 26대 조선 국왕이 즉위하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 갈래 : 장편소설, 역사소설
* 성격 : 민족주의
* 배경 : 조선 왕조 말기 철종 등극 직후부터 대원군이 정권을 잡기까지의 격변기
* 주제 : 격변기의 민족 현실과 민족 정신
< 삼대(三代) > 염상섭 [조선일보, 1931]
만석꾼의 살림을 꾸려 가는 '조 의관'은 봉건적 관념과 허욕에 사로잡힌 인물이다. 개인의 이익과 집안의 위신을 높이는 일에 최대의 가치를 두는 인물로써, 을사조약을 전후해서 사회가 혼란해지자 2만 냥이라는 큰 돈으로 의관(議官) 벼슬을 산다. 다음에는 남의 족보에 끼어 들어가서 가문을 뽐내려 하고, 이 때문에 큰 돈을 들여 족보를 만든다. 기독교에 물든 아들 상훈이 제사도 지내지 않으리라는 판단 때문에 조 의관은 아들을 불신하고, 며느리보다 더 새파란 젊은 부인을 후취로 얻어 산다.
한편, '상훈'은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지식인으로서 교회의 장로 노릇을 하면서도 술집 출입을 하며, 아들과 동창생이기도 한 여급 '홍경애'와 불륜의 관계를 갖는다. 아버지 조 의관의 가문 치장이나 족보 사업을 쓸데없는 일이라고 반대한다. 사회 사업을 하기 위해 집안 돈을 갖다 쓰기도 하지만 뚜렷한 의식 없이 안이하게 살아간다.
또한, '덕기'는 일본에 유학하면서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틈바구니에서 많은 정신적 갈등을 경험한다. 사회주의 사상에 젖어 있는 친구 '병화'로부터 부르주아라는 핀잔을 곧잘 받기도 하는 그는 '병화'의 소개로 가난한 하숙집 딸 '필순'을 알게 되고 그녀에게 사랑을 느낀다.
조부(祖父)의 죽음 이후 '덕기'의 집안은 점점 몰락하고, 사회는 3․1운동의 실패로 극도의 혼란에 빠지게 된다. 사회주의자들 간에 불신과 반발이 고조되고 테러 행위가 자행되는 가운데 '필순'의 아버지도 여기에 희생되면서 그의 가족을 '덕기'에게 부탁한다. '덕기'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곰곰히 생각한다.
※* 갈래 : 장편소설, 가족사 소설.
* 배경 : 1920년대의 서울
* 경향 : 사실주의
* 주제 : 식민지 현실 속에서의 세대간, 계층간의 갈등
< 상록수 > 심훈 [동아일보, 1935]
영신과 동혁은 ○○신문사 주최의 농촌 계몽 운동에 참여했던 열성적인 학생들로서, 주최측이 베푼 위로회 석상에서 보고 연설을 한 것이 계기가 되어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둘은 학업을 끝내고 동혁은 한곡리로, 영신은 청석골로 내려가 농촌 계몽 운동에 헌신한다.
동혁은 30세 이하의 청년들을 모아 농우회를 조직하고 회관 건립과 마을 개량 사업을 추진한다. 그러나 지주인 강 도사의 아들 강기천과 당국의 방해로 어려움을 겪는다.
채영신도 예배당을 빌려서 가난한 농촌 아이들에게 한글 강습을 실시하는 한편, 기부금을 모아 새 건물을 지을 계획을 하지만 일제의 방해로 130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80명으로 제한하라는 통고를 받고 괴로워한다. 갖은 어려움 끝에 영신은 모금된 100여 원으로 청석 학원을 지으려 목도질까지 하다가 과로와 맹장염으로 학원 낙성식날 졸도하여 입원하게 된다.
동혁이 영신에게 문병을 와 있는 동안 강기천은 농우회원들을 매수하여 명칭을 진흥회로 바꾸고 회장이 된다. 이에 분노한 동혁의 동생이 회관에 불을 지르고 도망하자 동혁이 대신 수감된다.
출옥한 동혁이 청석골로 갔을 때 영신은 이미 죽어 있었다. 동혁은 영신을 장례 지내고 산을 내려오면서 상록수들을 보며 농촌을 위해 평생 몸바칠 것을 다짐한다.
※*종류 : 장편 소설, 농촌 계몽 소설
*배경 : 시간 - 일제 시대(1930년대)
공간 - 가난하고 낙후된 농촌(청석골)
*영향 : 러시아의 '브 나로드(V narod) 운동'에 영향받아 전개된 농촌 계몽 운동과 이광수의 <흙>에 영향을 받은 작품
*의의 : 실천적 인물을 소재로 한 본격 농촌 계몽 소설
*주제 : 농촌 계몽을 위한 헌신적 의지
※ 등장인물
* 박동혁 : 의지적인 농촌 계몽 운동가.
* 채영신 : 동혁의 애인. 여성 기독 청년회 특파원으로 청석골 원재의 집에 머무르면서 농촌 계몽 운동에 헌신적인 활동을 보임. 인내력이 강하고 신중한 성격.
< 고향 > 이기영 [조선일보, 1933]
동경 유학생이던 김희준이 학자금난으로 학업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는 소작인으로 농사를 짓는 한편 농민 봉사, 계몽 활동을 하여 농민 지도자로서 위치를 굳힌다. 그를 중심으로 한 소작인들은 동네 마름인 안승학과 대결해 나간다.
마름 안승학은 그의 본부인을 서울로 보내 자식들을 교육시키도록 하고 자신은 첩 '숙자'와 함께 산다. 안승학과 '숙자'는 딸 '갑숙'이를 이씨 문중으로 시집보내려 하다가 '갑숙'과 '경호'와의 관계를 알고 앓아 눕는다. '경호'는 읍내 상인인 권상필의 아들로 알려졌으나 사실은 구장집 머슴 곽 첨지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갑숙'이는 가출하여 공장의 직공으로 취직하여 '옥희'라는 가명을 쓴다.
풍년이 들었으나 소작료와 빚진 것을 제하면 농민에게 돌아오는 것은 거의 없다. '갑숙'과 친했던 '경호'는 집을 나와 생부를 찾고 역시 공장에 취직한다.
수재가 나서 집이 무너지고 농사를 망친다. 김희준을 중심으로 소작인들은 마름 안승학에게 소작료를 감면해 줄 것을 요구하나, 안승학은 이를 거절한다. 이때 공장에서도 '갑숙'(옥희)을 지도자로 한 노동 쟁의가 벌어지며, 김희준은 이를 돕는다. '갑숙'은 소작인을 괴롭히는 아버지에 반대하여 김희준과 힘을 합친다. 김희준을 비롯한 농민들은 끝내 안승학의 양보를 얻어낸다. 그리고 김희준과 갑숙이는 이성간의 애정을 초월하여 동지로서의 사랑을 확인한다.
※* 갈래 : 장편소설, 농민소설
* 배경 : 시간 - 1920년대 말, 공간 - 농촌(원터 마을)
* 경향 : 카프 계열, 사회주의 리얼리즘
* 의의 : 농민 중심의 대표적 농민소설.
* 제재 : 식민 통치로 점점 피폐해지는 농촌 생활
* 주제 : 난관을 극복해 나가는 농민들의 의식의 성장
※ 등장인물
* 김희준 : 주인공. 동경 유학생 출신. 농민 공동체 형성을 위해 노력하는 농촌 운동가. 농민을 결속시켜 안승학과 대결한다.
* 안승학 : 서울 민 판서 집의 마름. 농민 착취의 전형적 인물
* 권상철 : 상인. 고리 대금업자
* 안갑숙 : 마름 안승학의 딸. 아버지와는 달리 제사 공장에 가명(라옥희)으로 위장 취업하여 농민을 돕는 농촌 운동가. 김희준에 대한 사랑을 동지애로 승화시킨다.
< 만무방 > 김유정 [조선일보, 1935]
(*만무방 : 염치가 없는 사람, 막되어 먹은 사람)
깊은 산골에 가을은 무르녹았다. 응칠은 한가롭게 송이 파적을 나왔다. 전과자요 만무방인 그는 송이 파적이나 할 수밖에 없는 떠돌이 신세다. 응칠은 시장기를 느끼며 송이를 캐어 먹어 본다. 그러다 고기 생각이 나서 남의 닭을 잡아 먹는다.
숲 속을 빠져 나온 응칠은 성팔이를 만나 응오네 논의 벼가 도둑맞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성팔이를 의심해 본다. 응칠도 5년 전에는 처자가 있었던 성실한 농꾼이었다. 그러나 빚을 갚을 길이 없어 야반 도주한 응칠은 동기간이 그리워 응오를 찾아왔다. 진실한 모범 청년인 응오는 벼를 베지 않고 있다. 그런데 베지도 않은 논의 벼가 닷 말쯤 도적을 맞은 것이다.
응칠은 주막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송이로 값을 치른다. 동생 응오는 병을 앓아 반송장이 된 아내에게 먹일 약을 달이고 있다. 아내 병을 낫게 하기 위해 산치성을 올리려 하기에 극구 말렸으나 그는 대꾸도 않고 반발한다. 응칠은 오늘 밤에는 도둑을 잡은 후 이곳을 뜨기로 결심한다.
응칠은 응오의 논으로 도둑을 잡으러 산고랑 길을 오른다. 바위 굴 속에서 노름판이 벌어졌다. 응칠도 노름판에 끼었다가 서낭당 앞 돌에 앉아 덜덜 떨며 도둑을 잡기 위해 잠복한다.
닭이 세 홰를 울 때, 흰 그림자가 눈 속에 다가든다. 복면을 한 도적이 나타나자 응칠은 몽둥이로 허리께를 내리친다. 놈의 복면을 벗기고 나서 응칠은 망연자실한다. 동생 응오였던 것이다.
눈을 적시는 것은 눈물뿐이었다. 응칠은 황소를 훔치자고 동생을 달랬지만, 부질없다는 듯 형의 손을 뿌리치고 달아나는 동생을 보고 응칠은 대뜸 몽둥이질을 한다. 땅에 쓰러진 아우를 등에 업고 고개를 내려온다.
※* 배경 : 1930년대 가을, 강원도 산골 마을
* 성격 : 반어적
* 주제 : 식민지 농촌 사회에 가해지는 상황의 가혹함과 그 피해
※ 등장인물
* 응칠 :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박과 절도로 일확천금의 허황한 꿈을 꾸는 인물
* 응오 : 진실하고 모범적인 소작농. 자신이 가꾼 벼를 자기가 도적질해야 하는 상황에서 고민함
* 성팔, 기호, 용구, 머슴, 상투쟁이 : 도박으로 일확천금을 꿈 꾸며 농촌을 떠나려는 소작농들
< 카인의 후예 > 황순원 [문예, 1953]
토지 개혁을 앞두고 농민 대회가 소학교 운동장에서 열리고 지주인 박용제와 그의 조카 박훈은 인민 재판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는 가운데, 훈을 좋아하는 오작녀의 아버지 도섭 영감은 훈이네 토지를 자기 것으로 만들려다 오작녀의 저지로 못하게 되고 홧김에 도끼를 메고 동구 밖으로 나와 훈이 할아버지의 송덕비를 때려부순다.
마을 사람들은 공작 대원이 시키는 대로 지주들의 돈을 강탈했다. 얼마 후 훈은 사촌동생으로부터 삼팔선이 굳어져 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훈은 혁이의 소개로 평양에 가고 혁의 동창생을 만나 월남할 계획을 세운다. 그 후 혁의 아버지 박용재는 탄광에서 도주하여 저수지에 빠져 죽으려는 결심을 하지만 공작 대원과 도섭 영감에게 붙들린다. 그러나, 트럭에서 절벽으로 떨어져 자살하고 만다.
훈은 혁과 떠나기 전 도섭 영감을 죽이기로 결심하고, 영감을 찾아가 뒷산으로 올라가 칼로 찌른다. 이를 보고 달려온 도섭 영감의 아들 삼득이는 훈에게 누이인 오작녀를 데리고 떠나라고 말한다.
※* 갈래 : 장편소설 * 배경 : 6.25 직전
* 주제 : 토지 개혁을 맞아 변하는 민심
※ 등장인물
* 도섭 영감 : 박훈의 토지를 관리하던 마름. 오작녀의 아버지. 토지개혁의 행동대원으로 일하며 토지에 대한 욕심이 많음
* 박훈 : 토지개혁에 직면해 관념과 체념의 상태에 빠진다. (패배의식과 충동)
* 혁 : 박훈의 사촌동생.
* 오작녀 : 매사에 적극적이며 열정적, 모험적, 분명한 성격임
* 박용재 : 지주이며 혁의 아버지. 도섭 영감에 의해 자살함
< 학 > [신천지, 1953] 황순원
한 마을에서 단짝동무로 지냈던 성삼이와 덕재는 6․25가 나면서 이념을 달리하는 적대 관계로 만나게 된다. 치안 대원이 된 성삼이는 덕재가 체포되어 온 것을 보고는 청단까지의 호송을 자청하여 덕재를 데리고 나선다.
호송 도중, 성삼이는 유년 시절 때 호박잎 담배를 나눠 피우던 생각과 혹부리 할아버지네 밤을 서리하다가 들켜 혼이 난 추억들을 떠올리며 내적 갈등을 느낀다.
농민 동맹 부위원장까지 지낸 덕재에 대한 심한 적대감을 품기도 했으나, 대화를 하는 사이에 점차 적대감이 누그러지면서 덕재의 몰 이념성을 알게 된다. 즉, 덕재는 스스로 공산주의 이념에 동조한 것이 아니라 빈농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용당했을 뿐으로 사실은 땅밖에 모르는 순박한 농민이었던 것이다.
덕재는 아버지가 병석에 누워 있었고, 또 농사에 대한 고집스러운 애착으로 인해 피난하지 않고 마을에 남게 된 사실을 이야기한다. 성삼이는 자신이 피난 가던 때를 회상하면서 농사일에 대한 걱정 때문에 피난하기를 끝까지 거부하시던 아버지를 떠올리며 덕재의 처지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다. 어느덧 덕재에 대한 증오심이 점차 우정으로 바뀌면서 '고갯마루'를 넘는다.
성삼이는 고갯길을 내려오면서 전처럼 살고 있는 학 떼를 발견하고는 옛일을 회상하게 된다.
어린 시절, 학을 잡아 얽어매 놓고 괴롭히다가 사냥꾼이 학을 잡으러 왔다는 소문을 듣고 놀라서 학 발목의 올가미를 풀어준 적이 있었다. 그때 처음에는 제대로 날지 못하다가 자유로워진 학이 푸른 하늘로 날아 갔던 일에 대한 추억이 그것이다. 성삼이는 덕재의 포승줄을 풀어 준다. 덕재는 처음에는 성삼이가 자기를 쏘아 죽이려고 이러나 보다고 멈칫거렸으나, "어이, 왜 맹추같이 게 섰는 게야?" 하는 성삼이의 재촉에 무엇을 깨달은 듯 잡풀 사이로 도망친다. 때마침 단정학 두세 마리가 가을 하늘을 날고 있었다.
※* 갈래 : 단편 소설, 전후소설
* 배경 : 시간 - 1950년 6․25 동란 당시의 가을
공간 - 삼팔 접경의 북쪽 마을
* 경향 : 휴머니즘
* 주제 : 사상과 이념을 초월한 인간애(人間愛)의 실현
※ 등장인물
* 성삼 : 남한의 치안대원. 일시적인 덕재에 대한 증오의 감정은 사라지고, 덕재를 풀어줌으로써 이념을 넘어선 화해의 메시지를 전해주는 인물
* 덕재 : 성삼과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란 친구. 순박한 농민에 지나지 않았으나, 북한의 농민동맹 부위원장직을 맡다가 체포되어 사형에 처할 위기에 놓임
< 불꽃 > 선우휘 [문학예술, 1957]
(*불꽃:현실참여로 자기 개혁을 시도하는 새로운 행동의 제시)
주인공 고현의 아버지는 기독교 신자로서 3․1운동 때 일본경찰의 총을 맞고 뒷산 동굴에 피신하였다가 죽은 민족주의자였다. 고현의 할아버지 고 노인은 충직하기는 하나 풍수 지리를 믿고 조상 일만 돌보며 안일하게 살아가면서 손자 고현에게 지극한 관심을 쏟는다. 고현의 어머니는 현실의 고통과 외로움을 극복하려는 인고의 인물로서 기독교에 귀의하여 아들을 보살핀다.
고현은 일본 유학시 제국주의 찬양론자 다까다 교수의 영웅주의적 감상과 기만에 불만을 품고 귀국했다가 학병으로 끌려간다. 중국에 파병되었다가 탈영했고, 만주에 진주한 소련군의 만행도 경험한다. 학병 탈출 후 해방된 고향으로 돌아온다. 여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사상적 부조리와 혼란을 경험하고 여수, 순천 사건도 듣게 된다. 6․25가 터지자, 전쟁에 나갔다가 돌아온 친구 '연호'와 공산주의 혁명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인민 재판이 있던 날, 고현은 동료 여교사 조 선생의 부친이 처형당하는 것을 보고 드디어 분노가 폭발한다. 연호를 치고 보안서원의 총을 빼앗아 아버지가 죽은 동굴로 피신한다. 고현의 은신처를 알게 된 연호는 고현의 할아버지를 인질로 잡고서 투항을 종용한다. 처음에는 투항하라던 할아버지가 '너는 살아야 한다'고 용기를 준다. 이때 연호가 할아버지를 사살한다. 고현은 연호를 총으로 쏘아 죽이고 탈출하다 연호의 총을 맞고 흐려져 가는 의식 속에서도 생명의 불꽃을 느끼며, 현실과 정정 당당하게 대결하면서 살아 갈 것을 결심한다.
※*갈래 : 중편소설, 전후소설, 행동주의 문학
* 경향 : 사실주의
* 배경 : 시간 - 3․1운동부터 6․25까지, 공간 - P고을
* 특징 : 새로운 인간형 암시. 50년대 참여 문학의 대표작
* 주제 : 한국 근대사의 비극적 갈등을 극복하고 자기 개혁을 실천하는 한 인간의 결의
(삶에 있어서의 적극적 자세와 저항정신의 고양)
※ 등장인물
* 고 노인 : 고현의 할아버지. 조상의 대통을 잇는 것을 전부로 생각하는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인물
* 아버지 : 민족적 신념에 불탔던 민족주의자
* 고 현 : 매사에 사려 깊고 사변적인인물.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삶의 태도를 비교하며, 새로운 삶을 시도하는 인물
* 연호 : 현의 친구이며 열성 공산주의자. 고현과 혁명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임
< 오발탄 > 이범선 [현대문학, 1959]
(*오발탄 : 잘못 쏜 탄환이란 뜻으로, 불행한 인생을 암시함)
철호는 음대 출신인 아내, 군대에서 나온 지 2년이 되도록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동생 영호, 그리고 양공주가 된 여동생 명숙 등과 함께 어렵게 살아가는 실향민이다.
그는 퇴근하여 산비탈에 해방촌 고개를 올라 다 쓰러져 가는 집으로 향한다. 대문에 들어서자 전쟁통에 정신 이상이 된 어머니의 "가자! 가자!"라는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철호'는 38선 때문에 고향에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을 수없이 되풀이했으나 이를 알아듣지 못하는 어머니는 아들만 야속하게 생각한다.
'영호'가 집에 들어오자 '철호'는 그의 성실하지 못한 삶의 태도를 나무란다. '영호'는 자기 방식대로 살겠다고 한다. '철호'의 아내는 십여 년 전 대학 시절의 아름답던 모습을 연상하다가 이제 아무런 희망도 가지려 들지 않는 그녀를 흘끗 쳐다본다. '영호'는 대상 없는 분노를 터뜨리면서 눈물을 흘린다. 골목 밖에서 '명숙'의 발자국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 온다. 그녀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은 채 아랫방으로 가서 가로 눕는다. 고향으로 돌아가자는 어머니의 외침은 밤중에도 계속된다.
다음날 경찰로부터 영호가 강도 혐의로 붙잡혔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경찰서에서 나온 '철호'는 집으로 돌아간다. 아내가 위독하다는 말을 들은 철호는 명숙으로부터 돈을 받아 들고 병원으로 간다. 그러나 아내는 이미 시체로 변해 있다. 충치가 아파옴을 느낀 그는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충치를 모두 뽑는다. 철호는 택시를 잡아 타고 해방촌으로 가자고 했다가 경찰서로 행선지를 바꾼다. 혼란에 빠진 철호는 방향 감각을 잃는다. 운전사는 '오발탄'과 같은 손님이 걸려들었다고 투덜거린다. 차는 목적지도 없이 차량 행렬에 끼여들고 철호는 입에서 피를 흘린다
※* 배경 : 6.25 직후 해방촌 일대
* 의의 ① 전후 한국 사회의 암담한 현실 고발
② 전쟁으로 인해 파멸해 가는 인간상과 내면의 허무를 표출
* 주제 : 전후의 비참한 사회 속에서 정신적 지주를 잃은 불행한 인간의 비극
※ 등장 인물
* 철호 : 계리사 사무실 서기로 성실한 소시민.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절박한 현실 앞에서 무력감을 느낌
* 영호 : 철호의 동생. 사회적 모순에 반발하여 한탕주의로 살아가려는 인물
* 어머니 : 고향 상실과 전쟁의 상처 등으로 인해 실성한다. 전쟁의 비극을 집약적으로 상징하는 인물
* 명숙 : 철호의 여동생. 양공주 생활을 한다.
* 아내 : 명문 여대 음악과 출신. 가난으로 죽음.
< 나무들 비탈에 서다 > 황순원 [사상계, 1960]
[제1부 ]
동호, 현태, 윤구는 전쟁터에서 살아 남은 전우들이다. 동호는 자신의 순수성과 꿈을 상실케 한 후유증으로 방황하다가 현태, 윤구의 충동질로 작부인 옥주에게 동정을 바친다. 강박성과 결벽성, 그리고 옥주에 대한 동료 의식으로 그녀에게 몰입하던 동호는 옥주가 단지 육체의 쾌학만을 위해 매음한다는 것을 알고 그녀와 정부를 살해하고 자신도 동맥을 끊어 자살한다.
[제2부 ]
부친의 회사에서 성실히 일하던 현태는 어느날 우연히 자신이 전쟁터에서 무고하게 죽인 여인과 비슷한 행색의 모녀를 발견하고 혼란에 빠진다. 죄의식에 시달려온 현태는 드나들던 술집 작부가 자살하는 것을 고의로 방조한 죄로 무기 징역을 언도받는다. 한편 현실주의자 윤구는 전쟁에서 체득한 비정함으로 현실생활을 이기적으로 살아간다. 가정 교사로 있던 주인집 딸을 임신시켰으나 무리한 중절을 하다 그녀가 죽게 되고 윤구는 혼자만의 살 길을 모색한다. 동호의 순결한 옛 애인 '숙이'는 동호의 죽음을 추적하다 현태에게 겁탈 당하고 아이를 가진다. 현태가 구속되자 아기를 낳을 때까지만이라도 윤구에게 의지하려 하나 윤구는 이를 냉정하게 거절한다.
※*갈래 : 장편소설, 전후소설
* 배경 : 시간 - 1053년 ~ 1958년
공간 - 최전방, 서울, 인천 등
* 제재 : 전쟁의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
* 주제 : 전후의 파괴상황을 감당하고 극복해 나가는 원초적 생명력
※ 등장인물
* 동호 : '시인'이란 별명을 가진 이상주의적 인물. 전쟁의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작부 옥주를 만나 위안을 삼다 옥주의 변심으로 옥주를 죽이고 자살함
* 현태 : 동호의 군대 친구.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한다. 기생 계향의 죽음을 방조한 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음
* 숙이 : 반도호텔 내 독일상사의 타이피스트. 동호의 애인. 동호의 자살동기를 추적하다 현태의 아이를 가짐
* 윤구 : 현실주의자. 미란이의 가정교사로 학비를 벌어 은행에 취직했으나 미란과의 연애사건으로 파면되어 양계장을 함
* 석기 : 아버지는 석기를 법관으로 키우려 했으나 권투에 미쳐다님. 전쟁 중 눈을 상해 돌아옴
* 선우이등상사 : 6․25 때 목사이던 부모가 이북에서 학살을 당하고 전쟁 중에 부역자를 총살함. 전후에 정신분열 증세를 보임
* 옥주 : 결혼한 지 보름 만에 남편의 전사 통지서를 받고 술집 작부가 됨. 동호와 만나다가 동호의 총에 죽음
* 미란 : 아버지는 재무부 모 국장. 윤구의 아이를 가져 낙태수술을 하나 죽음
< 광장(廣場) > 최인훈 [새벽, 1960]
(*광장 :사회적 삶의 공간, 밀실:자신만의 내밀한 삶의 공간)
바다는 숨 쉬고 있었다.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중립국으로 가는 석방 포로를 실은 인도 배 타고르호는 흰 페인트로 말쑥하게 단장한 3천톤의 몸을 떨면서 물건처럼 빼곡히 들어찬 동지나해의 공기를 헤치며 미끄러져 가고 있었다.
주인공 이명준은 해방 후 만주에서 귀국하였다. 서울에서 그의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 이형도가 당신의 이념에 따라 월북하자 그는 아버지의 친구인 변 선생의 후의로 더부살이를 한다. 대학의 철학과에 다니면서 그는 변 선생의 아들인 태식과 가까이 지내면서 현실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고 지내지만 현실에 대하여 깊은 환멸을 느낀다. 자기만의 밀실에 들어 앉아 현실을 관념적으로만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던 중 월북한 남로당원 아버지로 인해 명준은 경찰서에 끌려가 취조를 당하게 되고, 고문을 당하게 된다. 이 일로 인하여 비로소 현실에 눈을 뜬 그에게 비친 남한의 현실은 타락하고, 부조리하며, 보람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는 윤애라는 여인과의 사랑을 통해 이 관념과 현실의 간격을 없애려 노력하나 실패하고 번민과 환멸 속에 인천에서 배를 얻어 타고 월북하고 만다.
그러나 그가 찾아 월북한 북한도 만족한 곳은 아니었다. 이상적인 혁명가로 생각했던 아버지는 젊은 여자와 재혼하여 부르주아적인 생활을 하고 있고, 북한은 혁명은 간데 없고 혁명의 자취만 있는 곳이었다. 즉, 이데올로기와 허위에 가득찬 곳이었다. 공개적인 광장만 있을 뿐 개성적인 삶은 없는 곳이었다.북한에서 그는 아버지의 힘으로 노동신문의 기자가 되지만 그가 작성한 기사가 당 간부들에게 핀잔을 듣자 기자 생활을 버리고 노동판에 뛰어들어 작업한다.
그러던 중 실족으로 다리를 다치게 되고, 위문 온 무용수 은혜와 만나 새로운 사랑을 누리게 된다. 북한 사회에서 못 느끼는 삶에 대한 애착을 은혜를 통해 느끼려는 듯 명준은 은혜에게 매우 집착한다. 은혜의 모스크바 유학으로 명준은 은혜와 떨어지게 된다.
한국 전쟁이 발생하고 인민군 정치보위부 장교가 되어 서울로 남하한 명준은 그곳에서 친구인 태식과 그의 아내가 된 옛 여인 윤애를 만나게 된다. 점령군 장교로서 그는 간첩 혐의로 잡혀온 태식을 구하기 위해 찾아온 윤애를 겁탈하려고 하나, 하지 못하고 둘을 탈출시킨다. 그리고는 치열한 낙동강 전투에 배치받아 가게 된다. 거기서 명준은 뜻밖에 간호병으로 자원 참전한 은혜를 다시 만나 동굴 속에서 재회의 기쁨을 누린다. 재회 속에 명준의 아이를 임신했음을 명준에게 말하고 헤어져 가던 중 그녀는 전사하고 만다.
결국 밀리는 전투 속에서 포로가 된 명준은 포로교환이 있을 때 남한도 북한도 아닌 중립국을 택한다. 그가 본 두 사회는 모두 환멸만이 있으며, 보람있는 삶을 줄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인도로 가는 배 위에서 갈매기를 은헤와 딸의 환영으로 보고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하고 만다.
※* 갈래 : 장편 소설 * 성격 : 관념적, 철학적
* 배경 : 시간 - 8․15 해방에서 6․25 종전 사이
공간 - 남한과 북한
* 표현 : 전체적으로 회상 형식
철학, 사회학 용어의 빈번한 사용
부분적으로 의식의 흐름 수법 사용
* 주제 : 이데올로기의 갈등 속에서 이상적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인간의 모습
※ 등장인물
* 이명준 : 주인공.철학도. 남한과 북한을 오가면서 남한의 나태와 방종․북한의 부자연스러운 이념적 구속에 환멸을 느끼고 진정한 '광장'을 찾아가기로 하지만, 결국 삶의 참된 가치의 실현에 의문을 느끼고 바다로 투신 자살함.
* 이형도 : 명준의 부친. 월북한 혁명가. 남로당원으로 월북하여 북한에서 고위 관리를 하고 있지만, 명준에게 이상적 혁명가의 모습을 보이지 못함으로써 역시 회의의 대상이 됨.
* 윤애 : 명준의 남쪽 애인. 명준의 월북 후 명준의 친구와 결혼하여 평범하게 사는 여인.
* 은혜 : 명준의 북쪽 애인. 북한군 간호 장교로 종군하다가 명준의 아이를 가진 채 전사. 명준의 삶에 어떤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었던 여인.
* 갈매기: 은혜와 그의 딸로 상징됨. 명준 자살의 동기.
< 서울, 1964년 겨울 > 김승옥 [사상계, 1965]
1964년 겨울, 서울의 어느 포장 마차 선술집에서 안씨라는 성을 가진 대학원생과 나는 우연히 만난다. 우리는 자기 소개를 끝낸 후 얘기를 시작한다. 파리를 사랑하느냐는 나의 질문에 그는 우물거렸고, 나는 날 수 있는 것으로서 손 안에 잡아본 것이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스스로 답한다. 추위에 저려드는 발바닥에 신경쓰이는 나에게 그는 꿈틀거리는 것을 사랑하느냐고 묻는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옛 추억을 떠울리며, 여자 아랫배의 움직임을 이야기하고, 그는 꿈틀거리는 데모를 말한다. 그리고 대화는 끊어지고 만다.
다른 얘기를 하자는 그를 골려주려고 나는 완전히 자신만의 소유인 사실들에 대해 얘기를 시작한다. 즉 평화 시장 앞 가로등의 불꺼진 갯수를 이야기하자 그는 서대문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의 숫자를 이야기한다.
나는 안형을 이상히 생각한다. 부잣집 아들이고 대학원생인 사람이 추운 밤, 싸구려 술집에 앉아 나같은 친구나 간직할 만한 일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는 것이 이상스러운 것이다. 안형은 밤에 거리로 나오면 모든 것에서 해방된 느낌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가 술집에서 나오려 할 때, 가난뱅이 냄새가 나는 서른 대여섯 살짜리 사내가 우리 쪽을 향해 말을 걸어와 우리와 함께 어울리기를 간청한다. 힘없이 보이는 그 사내는 저녁을 사겠다고 하며 근처의 중국요리 집으로 들어간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자신의 아내가 급성뇌막염으로 죽었고 그녀의 시체를 병원에 팔았다는 이야기를 한다. 직업은 서적 월부 외판원이었다는 것, 옛날에 부인과 재미있게 살았다는 것 등을 누구에게라도 얘기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며 말을 계속한다. 나와 안은 그 자리를 피하고 싶지만 눌러앉아 있을 수밖에 없다. 사내는 아내의 시체를 판 돈을 모두 써버리고 싶어했고, 우리에게 돈이 다 없어질 때까지 함께 있어주기를 부탁한다. 중국집에서 나와 우리는 양품점 안으로 들어가서 알록달록한 넥타이를 하나씩 사고 귤도 산다. 돈의 일부를 써버렸지만 아직도 얼마의 돈이 남아 있다. 그때 우리 앞에 소방차 두 대가 지나갔고, 사내는 소방차 뒤를 따라 가길 원한다. 택시를 타고 화재가 난 곳에 도착해서 불구경을 한다. 그런데 갑자기 사내가 불길을 보고 아내라고 소리친다. 그러곤 남은 돈과 돌을 손수건에 싸서 불 속에 던져버린다. 결국 그 돈은 다 쓴 셈이 되었고 우리는 약속한 대로 가려 했지만 사내는 우리를 붙잡는다. 혼자 있기가 무섭다는 것이다. 그는 오늘밤만 같이 지내길 부탁하며 여관비를 구하기 위해 근처에 함께 들르길 요청한다. 사내는 남영동의 한 가정집 대문앞에 멈춰 벨을 누른다. 그리고 울음을 터뜨리며 월부책 값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한다. 우리는 거리로 나와 여관으로 들어간다. 여관에 들어가서 우리는 방을 몇 개 잡을 것인가에 대하여 약간의 이견을 갖게 되나 각자 방을 정한다.
다음 날 아침 사내는 죽어 있다. 안과 나는 성급히 거리로 나온다. 안은 그 사내가 죽을 줄 알았다는 것, 그래서 유일한 방법으로 혼자 놓아둔 것이라고 말한다.
※ * 배경 : 시간적 - 1964년 어느 겨울 밤
공간적 - 서울 거리
* 제재 : 연대성이 없는 세 사내의 만남과 이야기
* 주제 : 분명한 가치관을 갖지 못한 사람들의 심리적 방황과 인간적 연대감의 상실
※ 등장인물
* 나 : 25세로 고졸, 구청 병사계에 근무함. 확실한 주관이 없는 회색적인 인물. 소외감과 고독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 안(安) : 25세로 부잣집 장남이며 대학원생. 지식인이며 염세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사람
* 외판원 : 서적 외판원. 30대의 남자. 도시인의 소외와 고독을 대표하는 인물.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판 죄책감에 빠져 괴로워하다가 여관방에서 자살함.
< 병신과 머저리 > 이청준 [창작과비평, 1966]
'나'는 화가다. 형 친구의 소개로 사귀었던 '혜인'에게서 청첩장을 받는다. 그녀는 '나' 대신에 장래가 확실한 의사를 배우자로 택한 것이다. '나'는 무기력하게 그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림은 진전이 없다.
형은 의사다. 6․25 때 패잔병으로 낙오되었다가 동료를 죽이고 탈출했다는 아픈 과거를 지니고 있다. 20여 년 동안 외과 의사로 실수 한 번 없던 그가, 달포 전에 수술을 한 어린 소녀가 죽자 병원 문을 닫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그것은 형의 체험담이었다.
소설의 중심 인물은 셋이다. 표독한 이등 중사 오관모, 신병 김 일병, 그리고 서술자인 '나'(그것은 형이다)였다. 그들은 패주한다. 김 일병은 팔이 잘려 나가 썩어 가고 있다. 그들은 동굴 속에서 숨어 지낸다. 오관모는 전부터 김 일병을 남색의 대상으로 삼았는데, 김 일병의 상처에서 나는 역한 냄새로 그 짓이 불가능해지자 김 일병을 죽이려 한다.
형의 소설은 거기서 멈춰 있다. '나'의 그림 역시 진전이 없다. '나'는 형 대신 소설의 결말을 써 나간다. ―오관모가 오기 전에 형이 김 일병을 쏘아 버린다. 형은 참새 가슴처럼 떨고 있다.― 라고.
형은 내가 쓴 결말을 읽고는 병신, 머저리라고 '나'를 욕한다. 그리고는 오관모가 김 일병을 죽이고, 뒤따라간 자신이 오관모를 죽이는 것으로 끝맺는다.
이 뜻밖의 결말은 '나'를 혼란에 빠뜨린다. 그런데 '혜인'의 결혼식에서 돌아온 형은 자신의 소설을 태워 버린다. 결혼식장에서 오관모를 만났다는 것이다. 그 일이 있은 후, 형은 건강한 생활인으로 돌아가 다시 병원문을 연다.
※* 배경 : 시간 - 1960년대, 공간 - 화실. 병원
* 주제 : 두 형제의 서로 다른 삶의 대응 방식을 통해 나타나는 '아픔'의 원인과 그 극복과정
※ 등장인물
* 형 : 전쟁 체험 세대. 의사. 6․25 참전 중 낙오되었던 경험과 최근 치료받던 소녀의 죽음의 충격이 복합되어 병원을 닫고 체험을 소설로 쓰면서 아픔을 극복해 나간다
* 나(동생) : 전쟁 미체험 세대. 화가. 혜인을 사랑하면서도 어물쩡하게 놓쳐 버리고, 매사에 끝없는 무기력과 패배감을 지닌다. 형은 전쟁의 상흔이라는 뚜렷한 환부를 가지고 있는데 반하여, 자신은 환부를 알 수 없는 60년대의 '병신과 머저리'라고 생각한다.
* 혜인 : '나'의 애인이었으나 다른 남자에게 출가함.
태평천하 (太 平 天 下) <조광> 1938년. 채만식
♠ 전체 줄거리
1930년대 후반의 어느 늦가을. 서울 계동의 만석꾼 부자 윤직원 영감은 명창대회를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다. 소작료와 수형 장사로 1년에 십수 만 원을 챙기는 이 거부 윤직원 영감은 타고 온 인력거에서 내리자마자 인력거꾼과 요금 시비를 벌인다. 30전은 주어야겠다는 인력거꾼과 15전밖에 못 주겠다는 윤직원 사이에 옥신각신이 있다가 마침내 25전으로 낙착을 보자 거만의 갑부 윤직원은 몹시 속이 상해서 집으로 들어간다. 매년 십수 만을 버는 윤직원 영감이지만 밖으로 나가는 돈은 이처럼 절치부심, 아까워하는 것이다. 치재의 비결이 워낙 이러한지라 윤직원 영감은 버스를 타더라도 짐짓 큰돈을 내밀어 거스름돈을 받지 못한다는 핑계로 무임승차를 즐기는 터이기도 하다.
거만의 부를 움켜쥐고 있는 윤직원이지만 그에게도 비참한 역사는 있다. 노름꾼이던 그의 아비 윤용규가 어찌어찌 한몫을 잡아 가산이 일게 되면서부터 윤두섭(윤직원의 본명) 부자는 화적떼로부터 무수한 약탈을 당했는데, 급기야는 어느 날 밤 들이닥친 화적떼에게 윤용규가 무참히 살해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때 고의춤도 여미지 못한채 달아나 명을 보전한 윤두섭은 화적들이 물러간 뒤 돌아와 참경을 목도하고 비장하게 외친 바 있다.
"오오냐,우리만 빼놓고 어서 망해라."
화적떼에게 뺏기고 관리들에게 수탈당하던 두꺼비 윤두섭이 세상에 외친 위대한 선언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연고를 겪으면서 모은 거만의 재산이니 그가 한푼의 돈을 쓰는 것에도 벌벌 떠는 것이 무리가 아니라 하겠지만, 그는 착취니 뭣이니 하는 말에도 펄쩍 뛰는 무치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이만큼 돈을 번 것은 자신의 치재 수단이 좋았고 시운이 따라 가능했던 것이지 절대로 남의 것을 뺏은 것은 아니라는 탄탄한 소신이 그에게 내장되어 있는 탓이다. 시골 치안의 허술함과 후손 교육을 기회삼아 서울로 올라온 윤직원 영감에겐 지금이야말로 '태평천하'이다. 든든한 경찰이 있어 도둑 걱정없고 자신의 고리대금업은 날로 성업이 되고 있으니 이런 좋은 세상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이러니만큼 현재의 그에게는 사회주의 운동 운운하는 자들이야말로 가장 경멸스럽고 두려운 인물들이다.
그러나 현실적 위협이 없으니 그것도 피안의 불일 따름, 윤직원 영감에게 절박한 실적 위협이 없으니 그것도 피안의 불일 따름, 윤직원 영감에게 절박한 근심은 없다. 단지 남은 소원이 있다면 그의 두 손자 - 종수와 종학이 각각 하나는 군수, 하나는 경찰서장이 되어 집안에 지위와 명성을 보태어주는 것뿐이다. 돈이 있으니만큼 이러한 자리욕심이 생긴 터인데, 사실 직원이라는 그의 직함도 시골에 있을 무렵, 향교의 수장자리를 돈주고 사들인 것이다.
자신의 만수무강과 후손의 영화를 위해 자신의 소변으로 눈을 씻고 어린아이의 소변을 사서 매일 아침 장복하는 등 갖은 양생법을 실천하는 윤직원 영감이지만 실인즉 그의 가내사정은 난맥상을 드러내가고 있다. 그의 외아들 창식은 진작 첩살림을 차려나가 하는 일이라곤 노름에 계집질뿐으로 주색잡기에 수천금을 뿌리고 있으며, 맏손자인 종수는 군수가 되리라는 명목으로 시골 군청의 고원으로 취직해 있으면서 역시 첩살림에 갖은 주색잡기로 수만의 가산을 탕진하고 있는 판이다. 둘째 손자 종학은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어 윤직원이 가장 기대하고 있는 터이지만 이도 서울집에 있는 본부인과 이혼하겠다며 성화를 피우고 있다.
또 윤직원 영감은 회춘을 하려고 여러 차례 동기를 바꾸어 가며 동접(童接)을 기도하나, 이번에는 열다섯짜리 동기(童妓) 춘심이년이 애간장을 태우게 한다. 실은 춘심이는 윤직원의 증손자 경손이와 누이 맞아 연애를 즐기는 중이었다.
이런 신선놀음을 하고 있는 윤직원 영감에게 비보가 날아든다. 맏아들 창식이 동경으로부터 온 전보를 윤직원에게 전해주는 바, 거기에는 '종학, 사상관계로 피검' 이란 활자가 선연히 찍혀있다. 윤직원의 차손 종학이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 경찰에 체포되었다는 것이다. 자신이 가장 증오하고 두려워 해 마지않는 사회주의에, 가장 큰 희망이요 보람이었던 경찰서장감 종학이 연루되었다는 것을 안 윤직원은 격노에 비틀거리며 소리지른다. 왜 태평천하에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하느냐는 것이다.
♠<태평천하> 내용 정리
* 갈래 : 중편소설, 사회 소설, 풍자 소설
* 배경 : 시간 - 1930년대
공간 - 서울. 한 평민 출신의 대지주 집안
* 경향 : 사실주의
* 시점 :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
* 문체 : 판소리 사설의 원용(援用)
* 어조 : 부정적 인물을 비판하는 풍자적 어조가 두드러짐
* 주제 : 개화기에서 일제 시대에 이르는 윤 직원 일가의 타락한 삶과 몰락 과정
♠등장인물
* 윤 직원 : 낮은 신분 출신으로서 치부(致富)에 성공하여 지주가 된 중심 인물. 사회에 대한 불신과 피해 의식이 강함
* 윤창식 : 윤 직원 영감의 아들. 개화기 교육을 받은 세대로서 가치관을 상실하고 향락만을 추구하는 타락한 인물
* 윤종수 : 윤 직원의 큰손자이자 윤창식의 큰아들. 향락만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인물
* 윤종학 : 윤창식의 둘째 아들. 일본 유학중임. 윤 직원이 가장 믿고 기대하는 인물이나 사회주의자가 됨
♠ <태평천하> 이해하기
<태평 천하>에서 작가는 부정적 인물들로 구성된 가족을 통하여 한말과 개화기, 그리고 일제 강점기 세대 사이의 가치관의 변화와 현실 대응에 따른 행동 유형을 보여 주고 있으며 바탕이 옳지 못한 가정이 어떻게 허물어져 가는가를 보여 주고 있다. 작가는 이를 통해서 식민지 사회에서 무엇이 문제이며 무엇이 생성되어야 할 것인가를 암시하려 하는 것 같다.
<태평 천하>는 윤 직원 영감과 같은 부정적이고 타락한 인물에 대한 풍자가 핵심을 이룬다. 그리고 이러한 풍자는 반어(反語, 아이러니) 수법을 통한 부정적 인물의 희화화에 의해 실현되고 있다. 즉, 작가는 작중 인물을 겉으로는 추켜세우는 것처럼 서술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 부정적 측면을 더욱 드러내어 그 인물을 웃음거리가 되게 만들면서 추악한 일면을 폭로하고 있다.
부정적인 인물의 성격이 강할수록 풍자의 농도는 심해지기 마련인데, 이 작품의 경우는 윤 직원 영감이 그 중요한 풍자 대상이 되고 있다. 이 작품에서 풍자의 대상이 되지 않고 있는 인물은 윤 직원 영감의 둘째 손자인 '종학'이 한 사람뿐이다. 이는 '종학'이라는 인물에 대해 작가가 긍정적 시각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종학')는 소설 전면(前面)에 등장하지 않고 윤 직원 영감의 욕망 표현 속에, 그리고 작품 후반부의 '동경에서 온 전보' 속에 잠깐 나타날 뿐이다. 물론 등장 인물의 출현 빈도수가 그 인간적 가치의 경중에 비례하지는 않겠지만, 작가가 지니고 있는 긍정적 미래관을 구현시키기에는 미흡한 점이 있다. 이런 점에서 보더라도 이 소설의 초점은 역시 윤 직원 영감에게 있다.
이 작품의 문체는 판소리, 또는 탈춤 사설의 어투를 계승하고 있다.
'~입니다.'와 같은 경어체 문장이나, '~겠다요.'와 같은 경박한 어투를 빌어서 작중 인물의 행위를 조롱하고 경멸하고 있다. 이는 바로, <춘향가>의 방자나 <봉산 탈춤>의 말뚝이 같은 인물이 양반 사대부의 면전에서는 공경스러운 태도를 짓다가도 뒤에 가서 느닷없이 조롱하고 경멸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을 본뜬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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