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천하(太平天下) / 줄거리 및 해설 / 채만식
by 송화은율태평천하(太平天下, 1938년 1월 - 9월, <조광> 27 -35호)
작가:채만식(1902-1950)
등장인물
윤직원:만석지기 지주이자 전형적 고리대금업자.
춘심이:동기. 윤직원의 애기(愛妓).
윤창식:윤직원의 장남. 치산(治産)에는 관심이 없음.
종수:윤직원의 맏손자. 한량이며 오입쟁이
종학:윤직원의 둘째 손자. 동경 유학생
경손:종수의 아들. 중학생
서울 아씨:윤직원의 딸. 30대 과부
줄거리
1.윤장의 영감 귀택지도
추석도 지나 저윽히 짙어가는 가을해가 저물기 쉬운 어느날 석양.
계동 윤장의 영감은 출입을 했다가 인력거를 잡숫고 돌아와 방금 댁의 대문 앞에서 내리는 참입니다.
1930년대 후반의 어느 늦가을. 서울 계동의 만석꾼 부자 윤직원 영감 은 명창대회를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다. 소작료와 수형 장사로 1년에 십수만 원을 챙기는 이 거부 윤직원 영감은 타고 온 인력거에서 내리자마자 인력거꾼과 요금 시비를 벌인다. 30전은 주어야겠다는 인력거꾼과 15전밖에 못 주겠다는 윤직원 사이에 옥신각신이 있다가 마침내 25전으로 낙착을보자 거만의 갑부 윤직원은 몹시 속이 상해서 집으로 들어간다. 매년 십수만을 버는 윤직원 영감이지만 밖으로 나가는 돈은 이처럼 절치부심, 아까워하는 것이다. 치재의 비결이 워낙 이러한지라 윤직원 영감은 버스를 타더라도 짐짓 큰돈을 내밀어 거스름돈을 받지 못한다는 핑계로 무임승차를 즐기는 터이기도 하다.
거만의 부를 움켜쥐고 있는 윤직원이지만 그에게도 비참한 역사는 있다.노름꾼이던 그의 아비 윤용규가 어찌어찌 한몫을 잡아 가산이 일게 되면서부터 윤두섭(윤직원의 본명) 부자는 화적떼로부터 무수한 약탈을 당했는데, 급기야는 어느날 밤 들이닥친 화적떼에게 윤용규가 무참히 살해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때 고의춤도 여미지 못한채 달아나 명을 보전한 윤두섭은 화적들이 물러간 뒤 돌아와 참경을 목도하고 비장하게 외친 바 있다. “오오냐,우리만 빼놓고 어서 망해라.” 화적떼에게 뺏기고 관리들에게 수탈당하던 두꺼비 윤두섭이 세상에 외친 위대한 선언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연고를 겪으면서 모은 거만의 재산이니 그가 한푼의 돈을 쓰는 것에도 벌벌 떠는 것이 무리가 아니라 하겠지만, 그는 착취니 뭣이니 하는 말에도 펄쩍 뛰는 무치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이만큼 돈을 번 것은 자신의 치재 수단이 좋았고 시운이 따라 가능했던 것이지 절대로 남의 것을 뺏은 것은 아니라는 탄탄한 소신이 그에게 내장되어 있는 탓이다. 시골 치안의 허술함과 후손 교육을 기회삼아 서울로 올라온 윤직원 영감에겐 지금이야말로 ‘태평천하’이다. 든든한 경찰이 있어 도둑 걱정없고 자신의 고리대금업은 날로 성업이 되고 있으니 이런 좋은 세상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이러니만큼 현재의 그에게는 사회주의 운동 운운하는 자들이야말로 가장 경멸스럽고 두려운 인물들이다.
그러나 현실적 위협이 없으니 그것도 피안의 불일 따름, 윤직원 영감에게 절박한 실적 위협이 없으니 그것도 피안의 불일 따름, 윤직원 영감에게 절박한 근심은 없다. 단지 남은 소원이 있다면 그의 두 손자 - 종수와 종학이 각각 하나는 군수, 하나는 경찰서장이 되어 집안에 지위와 명성을 보태어주는 것뿐이다. 돈이 있으니만큼 이러한 자리욕심이 생긴 터인데, 사실 직원이라는 그의 직함도 시골에 있을 무렵, 향교의 수장자리를 돈주고 사들인 것이다.
자신의 만수무강과 후손의 영화를 위해 자신의 소변으로 눈을 씻고 어린아이의 소변을 사서 매일 아침 장복하는 등 갖은 양생법을 실천하는 윤직원 영감이지만 실인즉 그의 가내사정은 난맥상을 드러내가고 있다. 그의 외아들 창식은 진작 첩살림을 차려나가 하는 일이라곤 노름에 계집질뿐으로 주색잡기에 수천금을 뿌리고 있으며, 맏손자인 종수는 군수가 되리라는 명목으로 시골 군청의 고원으로 취직해 있으면서 역시 첩살림에 갖은 주색잡기로 수만의 가산을 탕진하고 있는 판이다. 둘째 손자 종학은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어 윤직원이 가장 기대하고 있는 터이지만 이도 서울집에 있는 본부인과 이혼하겠다며 성화를 피우고 있다.
또 윤직원 영감은 회춘을 하려고 여러 차례 동기를 바꾸어 가며 동접(童接)을 기도하나, 이번에는 열다섯짜리 동기(童妓) 춘심이년이 애간장을 태우게 한다. 실은 춘심이는 윤직원의 증손자 경손이와 누이 맞아 연애를 즐기는 중이었다.
이런 신선놀음을 하고 있는 윤직원 영감에게 비보가 날아든다. 맏아들 창식이 동경으로부터 온 전보를 윤직원에게 전해주는 바, 거기에는 ‘종학, 사상관계로 피검’ 이란 활자가 선연히 찍혀있다. 윤직원의 차손 종학이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 경찰에 체포되었다는 것이다. 자신이 가장 증오하고 두려워 해 마지않는 사회주의에, 가장 큰 희망이요 보람이었던 경찰서장감 종학이 연루되었다는 것을 안 윤직원은 격노에 비틀거리며 소리지른다. 왜 태평천하에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하느냐는 것이다. 그리고는 사랑으로 사라진다.
해설
이 작품은 5대에 걸친 가족의 이야기로서 소위 ‘가족사 소설’의 전형에 드는 작품이다. 또한 성격 묘사에다가 사회 전체의 실상을 암시하려는 성격소설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1930년대 말에 한국 사회는 일제의 수탈과 착취에 의해 빈궁화 현상이 계속되어가고 있었다. 윤직원은 놀부형으로서 일제가 조장한 상업자본주의에 기생하여 자신의 부를 늘린 대표적인 인물이다. 작가는 전면에 윤직원을 내세워 왜곡된 사회와 그 속의 부정적 인물을 조롱하고 있다. 즉, 일제 강점하의 현실을 태평천하라고 믿는 주인공의 시국관을 풍자한다.
표현상의 특질을 몇 가지 살피면 판소리의 수법을 이용한 것이 우선 눈에 띈다. 판소리의 창자(唱者)처럼 “ - 입니다.” 식의 경어체를 빌려 독자와 가까운 위치에서 작중 인물을 조롱하고 있다. 도한 독자와 작중 인물의 중간에 서서 작중 인물을 평하면서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이 점은 판소리사설에서의 창자의 역할과 같다. 판소리 사설처럼 풍자를 했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이런 존대말의 풍자는 봉산탈춤에서 말뚝이가 양반을 놀리는 장면과도 유사하다.
이 작품은 1938년 ‘천하태평춘(天下太平春)’이라는 제목으로 <조광>지에 1월부터 9월까지 연재된 풍자적 수법을 사용한 장편소설이다. 전체 15장으로 나누어져 있고 각 장마다 소제목이 붙어 있는데, 1940년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주제) 부정적 인물을 통해서 파악한 한말 개화기의 퇴락한 삶의 비판
윤 직원 집안이 세대간의 가치관 차이로 인해 붕괴되어 가는 과정
(갈래) 장(중)편 소설,가족사 소설
(어조) 풍자적, 해학적
(시점) 전지적 작가 시점
(문체) 판소리 사설 문체
참고
임헌영 외(1991), 한국문학명작사전,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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