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나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Die verlorene Ehre der Katharina Blum) / 하인리히 뵐 작 (Heinrich Boll)
by 송화은율카나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Die verlorene Ehre der Katharina Blum) / 하인리히 뵐 작 (Heinrich Boll)
작품의 아우트 라인
1974년 2월 하순, 라인 지방의 어느 동네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27세의 카다리나 블룸이, 지인(知人)의 초청을 받고 파티에 참석하려고 집을 나선 것은 수요일의 밤 7시 가까웠다. 그리고 4일이 지난 일요일의 거의 같은 시간에, 그녀는 경찰에 자수하여, 같은 날 정오 조금 지나서 자택에서 신문 기자를 사살하였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나서부터 7시간, 아무리 생각해도 회오(悔悟)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역경에서 자라면서, 좌절됨이 없이 스스로 운명을 파헤치고, 겨우 공인 가정부(公認家政婦)가 되어 자립의 길을 걷게 된 이 가련한 젊은 여성을, 이와같은 행위로 몰아 넣은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경찰의 조서(調書), 검사나 변호사로부터의 정보, 친척·지인들의 증언을 비교·참작하여, 사건의 경위를 따진다는 형식으로 작품의 서술은 진행된다.
카다리나는 파티에서 알게 된 젊은이와 사랑에 빠져, 그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온다. 이 사내는 은행 강도 용의자로서, 경찰이 미행 중인 인물이었다. 다음 날 아침, 경찰대가 그녀의 집을 습격하였을 때, 사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경찰에 연행된 그녀는, 젊은이가 도주한 진상에 대하여 계속을 행사한다. 이 사건을 냄새 맡은 한 신문 기자가 집요하게 그녀의 사생활을 파헤치고, 악랄한 사상의 지하 조직체를 방조하는 정부역(情婦役)으로 그녀를 날조한다. 독자의 비속(卑俗)한 호기심에 아부하는 신문 기자의 악랄한 취재 활동은, 드디어 그녀의 생활을 파멸로 몰아 넣고, 그녀의 고용주인 변호사 부처까지도 궁지로 몰아 넣는다. 발포(發砲)라는 물리적 폭력은, 이렇게 파멸로 쫓기어진 약자에게 남기어진 단 하나의 저항 수단이 되었던 것이다.
주인공 하이라이트
카다리나 블룸은 사회의 밑바닥 계층의 출신으로, 불우한 환경에 굴하지 않는 강인성과 총명을 갖추고, 사회적 편견에 젖지 않는 소박한 마음의 소유자이다. 가련한 그녀를 궁지로 몰아 넣는 잔인한 주인공이 「신문」이다. 이 신문의 모델이, 서독(西瀆) 최대의 발행 부수를 자랑하는 선정적 반공 신문(煽情的反共新聞) 「빌트」임은 작자도 구태어 숨기고자 하지 않는다. 이성으로부터의 「순정어린」구애(求愛)와, 「추잡」한 요구를 동일시하는 세상에 대하여, 어디까지나이 양자의 구별을 요구하는 카다리나. 그리고 음탕한 마음으로 「한탕하자」고 끈질기게 졸라대는 기자에 대하여, 「좋아요」라고 대답한 카다리나는 문자 그대로 한 발의 권총을 발사하는 것이다.
작자의 생애
하인리히 뵐(Heinrich Boll) 현재 서독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의 한 사람. 1917년 말에 쾰른의 목공의 자식으로 태어나, 고교 졸업 후 서점에 근무하다가, 곧 소집을 받아, 패전 때까지 6년의 군인 생활을 하였다. 전후의 역경 속에서 창작을 시작하여, 무명의 서민의 입장에서 전쟁의 실체를 그렸다. 주택난으로 인한 부부 해체(夫婦解體)의 위기를 그려, 전후 사회의 고질을 파헤친 장면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로 문명을 확립하였다. 그 후 『아홉시 반의 당구』『어릿광대의 의견』『부인이 있는 군상(群像)』등, 문제작을 차례로 발표하는 한편, 정치·사회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과, 서민적 정의감을 기조로 하는 그의 작품은 소련이나 북구 제국(北歐諸國)에도 많은 애독자를 가지고 있다. 1971년에는 국제 펜클럽 회장에 취임하였고, 72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명문구 낙수
「우리들은 폐허의 문학이라고 불리우는 것을 부끄러이 여길 이유가 없다.」
*전쟁에서 귀환한 젊은 작가들이, 전중·전후의 어두운 세태(世態)와 국면(局面)만을 묘사한데 대하여, 비난 섞인 어조로 「폐허의 문학」이라는 호칭이 쓰여졌을 때, 이에 반발하여 자기들의 눈에 보이는 현실이 폐허이면, 그 폐허를 냉철하게 관망하여 그것을 묘사하는 것은 작가의 의무라고 주장한 문장에서 인용한 것.
심화 자료
1951년, 뵐은 처음부터 참가한 ‘47 그루우프’의 회합에서 작품을 낭독하고, 상금 1000마르크를 탔다. 그 당시, 실직하고 있었던 그는, 자기와 표를 겨룬 작가 밀로 돌에게 100마르크를 빌려 주고, 나머지는 즉시 가족 앞으로 송금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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