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Brat'ya Karamazovy) / 도스토예프스키

by 송화은율
반응형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Brat'ya Karamazovy) / 도스토예프스키


 

제2편 어울리지 않는 회합

1. 수도원에 도착하다

8월 말의 어느 맑게 개인 따뜻한 날이었다. 장로(長老)와의 회견은 낮 기도식이 끝난 직후인 열 한 시 반경으로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우리 수도원 방문객들은 기도식에는 참석하지 않고, 그것이 다 끝난 다음에야 도착했다. 그들은 두 대의 마차에 나누어 타고 왔다. 선두 마차인, 한 쌍의 값진 말이 끄는 화려한 반포장 마차에는 미우쏘프가 타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그의 먼 친척 뻘이 된다는 뽀뜨르 포미치 깔가노프라는, 스무 살 가량의 매우 젊은 청년도 함께 타고 있었다. 이 청년은 대학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지금 현재는 미우쏘프의 집에서 살고 있었다. 한편, 미우쏘프는 자기와 함께 외국으로 쭈리히나 예나로 가서 그 곳의 대학 과정을 마치는 게 어떻겠느냐고 자꾸 권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청년은 아직도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다. 그는 명상적(冥想的)이고 어딘지 멍청한 데가 있어 보였다. 호감을 주는 얼굴에 체격도 좋았으며, 키도 제법 큰 편이었다. 이따금 그의 시선은 이상할이만큼 한 곳만을 응시할 때가 있었다. 정신이 매우 산만한 사람들이 모두 다 그렇듯이 그도 상대방의 얼굴을 오랫동안 바라볼 때가 있었지만, 실은 상대방의 얼굴 같은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이었다. 그는 말수가 적고 다소 답답한 편이었지만 그래도 어떤 사람하고 단둘이 마주 앉아 있을 때에는 갑자기 수다스러워져서 무엇이 우스운지 발작적으로 웃어대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활기도 그 시작이 급격하고 돌발적인 것처럼 역시 갑자기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만다. 그는 언제나 옷을 잘 입고 다녔는데, 세련된 느낌을 주었다. 그는 자기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얼마간의 재산을 이미 가지고 있었지만, 앞으로는 그보다 훨씬 많은 재산을 상속받게 되어 있었다. 그와 알료샤는 친구 사이였다.

미우쏘프의 마차보다 훨씬 뒤떨어져서, 한 쌍의 늙은 적갈색 말이 끄는 덜컹거리고 낡아빠진 대형 짐마차를 타고 표도르 빠블로비치도 아들 이반과 함께 나타났다. 그 전날에 미리 날짜와 시간을 알려 주었는데도 드미뜨리는 그 때까지 오지 않고 있었다. 방문객 일행은 수도원 밖에 있는 여관 앞에 마차를 세워 놓고 걸어서 수도원 정문을 통과했다. 표도르를 제외한 나머지 세 사람은 지금까지 한 번도 수도원이라는 것을 구경해 본 일이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미우쏘프 같은 사람은 아마 30년 동안이나 교회에 나간 일도 없을 것이다. 그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체하면서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리저리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수도원 경내에도 평범하기 짝이 없는 교회당과 그 밖의 건물 이 외에는 그의 관찰력을 끌 만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교회당에서 맨 나중에 나온 신도들이 모자를 벗고 성호를 그으면서 옆을 지나간다. 일반 서민들 속에는 비교적 상류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 즉 두서너 명의 귀부인과 무척 늙은 장군 한 사람이 섞여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여관에 묵고 있었다. 거지들이 어느 새 우리 방문객을 둘러쌌지만 아무도 적선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깔라노프만이 지갑에서 10 꼬뻬이까짜리 은전 한닢을 꺼냈으나, 어찌 된 셈인지 당황한 표정으로 황급히 어느 늙은 여자 거지의 손에 그것을 쥐어 주고는 "똑같이 나눠가져요."라고 재빨리 말했다. 일행 중 아무도 여기에 대해 뭐라고 말한 사람은 없었으므로 그처럼 당황해 할 이유는 조금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알아차리자 그는 더욱 더 당황해 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었다. 실제에 있어 수도원에서는 이 일행의 도착을 마땅히 기다리고 있어야 했고, 또 다소나마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맞이했어야 옳았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중 한 사람은 바로 얼마 전에 천 루블이라는 거금을 기부했었고, 또 한 명은 가장 부유하고 교양 있는 지주로서 소송 결과 여하에 따라서는 하천의 어로권 문제와 관련하여 수도원 내의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도원에서는 공식적으로 그들을 맞아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미우쏘프는 교회당 근처의 묘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이런 성스러운 곳에 묻힐 권리를 얻기 위해서 아마 돈도 꽤 많이 들었을 것이라고 말하려다가 그냥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의 악의 없는 자유주의적 풍자는 어느 새 거의 분노로 변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제기랄, 이런 엉뚱한 곳에서는 도대체 누구한테 물어봐야 할지 알 수가 있어야지……. 빨리 무슨 수를 써야겠군. 시간은 자꾸 가는데."

그는 갑자기 혼잣말처럼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 때, 갑자기 나이가 지긋한 대머리 신사 한 사람이 폭넓은 여름 외투를 입고 애교 있는 눈을 반짝이며 그들 쪽으로 다가왔다. 그는 모자를 조금 쳐들면서 속삭이는 듯한 달콤한 말투로 자기는 뚤라현에서 온 막시모프라는 지주라고 자기소개를 했다. 그러고는 곧 우리 일행을 도우려고 나섰다.

"조시마 장로께선 암자에 기거하고 계십니다. 수도원에서 4백 보쯤 떨어진 암자에서 조용히 살고 계시죠. 저 숲을 지나, 숲을 지나 암자에……."

"숲 저쪽이라는 건 나도 압니다."

하고 표도르 빠블로치가 대답했다.

"그런데 그 길이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단 말입니다. 가본 지가 하도 오래 돼서."

"바로 이 문으로 들어가 곧장 숲을 지나면 됩니다. 자, 가십시다. 뭣하면 제가 안내해 드리지요. ……자 이리 오세요, 이리……."

그들은 문을 지나 숲속 길을 걷기 시작했다. 막시모프라는 지주는 60 안팎의 사내였는데, 그는 거의 노골적인 호기심을 가지고 일행을 흘끔흘끔 바라보면서 걷는다기보다는 거의 뛰다시피 하며 일행 옆을 따라오고 있었다. 호기심 어린 그 눈은 앞으로 툭 불거져 나와 있었다.

"우리는 특별한 용무가 있어 장로한테 가는 길입니다."

하고 미우쏘프가 근엄한 어조로 말했다.

"말하자면 장로님의 알현(謁見)을 허락받은 셈이지요. 그러니 길 안내를 해 주시는 것은 고맙습니다만, 우리하고 함께 들어가실 수는 없을 겁니다."

"전 벌써 가 뵈었습니다. 가 뵈었어요.…… Un chevalier parfait!(그야말로 훌륭한 기사더군요.)"

지주는 이렇게 말하며, 손가락을 공중에서 탁 퉁겨 보였다.

"누가 chevalier(기사)란 말입니까?"

하고 미우쏘프가 물었다.

"장로님 말입니다. 그 훌륭하신 장로님 말이에요……. 조시마 장로님…… 그 분은 이 수도원의 명예요, 영광이지요. 그 장로님이야말로……."

그러나 그의 두서 없는 이야기는 그 때 일행을 뒤쫓아 달려온 한 수도사에 의해 중단되었다. 두건이 달린 승복을 입고, 작은 키에 얼굴이 여위고 창백한 수도사였다. 표도르 빠블로비치와 미우쏘프는 걸음을 멈췄다. 수도사는 거의 허리까지 머리를 숙여 매우 정중하게 인사를 하며 말했다.

"암자에서 용무를 마치고 나오시면 수도원장님께서 여러분을 점심에 초대하시겠답니다. 늦어도 한 시까진 나와 주십시오. 그리고 당신도 함께 와 주십시오."

하고 그는 막시모프한테도 말했다.

"물론 가고말고요!"

그 초대를 무척 기뻐하면서 표도르 빠블로비치는 이렇게 소리쳤다.

"틀림없이 가겠습니다. 우린 모두 여기서 점잖게 행동하기로 약속했거든요……. 그건 그렇고, 미우쏘프 씨, 당신도 가시겠소?"

"물론이지요, 가지 않을 수 있습니까? 이 곳 관습을 보지 못한다면 모처럼 여기 온 보람이 없지 않겠습니까? 단 한가지 거북살스러운 것은 당신 같은 사람과 함께 있다는 겁니다. 표도르 빠블로비치……"

"그런데 드리뜨리가 아직도 보이지 않는군."

"그가 와서 이 우스꽝스런 짓거리에 참여한다면 더욱 좋을텐데요. 당신들의 이 서투른 연기에 내가 뭐 관심이라도 가지고 있는 줄 아시오, 더구나 당신 같은 사람을 상대하는데. 아뭏든 점심 식사는 하러 갈 테니 원장님께 감사하다고 전해 주시요."

하고 그는 수도사에게 말했다.

"아니, 저는 지금 여러분을 장로님께 안내해 드려야 합니다."

하고 수도사는 대답했다.

"그렇다면 나는 원장님한테로 가겠습니다. 여기서 바로 원장님한테로 가겠어요."

하고 막시모프는 중얼거렸다.

"원장님께선 지금 바쁘신데……, 하지만 뭐 좋도록 하십시오." 수도사는 망설이는 듯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정말 끈덕진 늙은이군."

미우쏘프는 막시모프가 수도원쪽으로 급히 달려가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꼭 폰 존 같은 사람이군요."

하고 표도르가 불쑥 말을 받았다.         <후략>


요점 정리

 지은이 : 도스토예프스키(Dostoevskii)

 갈래 : 장편 소설

 배경 : 시간(19세기). 공간(러시아)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구성 : 복합 구성

 성격 : 심리적. 종교적. 철학적. 사실적

 경향 : 사실주의(리얼리즘)

 제재 : 존속 살인(아버지의 살해 사건)

 주제 : 인간의 부도덕과 탐욕에 대한 비판,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선과 악의 투쟁, 인간의 심층 심리 속에 있는 욕망과 영혼 구원의 문제

 줄거리 : 러시아의 한 시골 도시를 배경으로 카라마조프가의 아버지 표도르와 그 자식들, 드미뜨리, 이반, 알료사, 스메르쟈꼬프 사이의 애증과 갈등을 그려 낸 작품이다. 표도르는 방탕한 호색한이며 물욕과 육욕의 화신으로, 두 아들 드미뜨리와 이반은 증오의 대상이다. 드미뜨리는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질투에 불타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공공연히 떠들고, 이반은 사생아인 스메르쟈꼬프를 충동질해 살해를 부추긴다. 드디어 스메르자꼬프는 표도르를 살해하고, 그 혐의는 드미뜨리에게 돌아간다. 스메르자꼬프는 이반에게 자기가 표도르를 죽인 사실을 고백하고 자결한다. 이반은 드미뜨리의 무죄를 주장하지만 법정의 오판에 의해 드미뜨리는 시베리아 유형을 선고받는다.

 특징

 내용 : 존속 살해라는 육친 간의 비극적인 갈등을 통해서 가족 사이의 신과 무신론의 문제를 심화해서 보여 주었다.

 구성 : 카라마조프가의 아버지와 네 명의 아들을 통해 인간 정신의 단면들을 복합 구성의 방식으로 제시하였다.

 표현 : 정치, 사회적으로 혼란한 러시아를 배경으로 인간 심리를 깊이 있게 분석하였다.

 등장 인물들의 성격

 등장 인물(人物)들은 기이한 성격을 소유하고 있다. 카라마조프가의 가장인 표도르 카라마조프도 그러한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인색하고 시기심이 많으며 정욕의 포로이자 극도의 이기주의자이다. 그의 인생관은 극히 부정적이기 때문에 그는 인생의 공허감(空虛感)을 메우기 위해 육체적 쾌락(快樂)을 목적으로 삼으며,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재산을 축적한다. 이에 비해 막내 아들인 알료샤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천사라고 불린다. 그는 종교적 순결성과 정신적 무구(無垢)성을 대표하는데, 그의 곁에는 종교적 달관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조시마 장로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카라마조프 부자의 성격이 모든 인간의 온갖 특징 가운데서 어느 일면을 형상화한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일이다.

 

 미찌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장남 드미트리는 이 작품의 주인공(主人公)이라고도 할 수 있다. 모든 사건이 그를 둘러싸고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한편으로는 왕성한 생활력과 강렬한 정열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정직한 마음과 순수함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서로 모순적인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는 언제나 동요한다. 이에 비해 둘째 이반은 교활하고 탐욕스러우면서도 이지적인 면을 지닌 무신론자(無神論者)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극단적인 결론에 도달하기에 이른다.

 

 표도로(아버지) : 음란과 탐욕의 화신으로 그 성격의 제요소는 확대되어 아들들에게 계승된다.

 드미트리(장남) : 성실한 신앙을 갖고 있지만 정욕의 악마에 사로잡혀 여자 문제로 아버지와 다툰다. 그 후 존속 살해죄로 심문을 받게 되나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지 못한다.

 

 이반(차남) : 서구적 합리주의 정신의 소유자로 철저한 무신론자이다. 이반은 이성에 의해 신을 부정하고 스메르쟈코프가 이를 듣고 아버지를 죽인 것을 알고 미쳐 버린다.

 

 스메르쟈코프(사생아) : 이반의 무신론을 듣고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무슨 짓을 해도 좋다는 결론을 유출해 내어, 부친을 살해하는데 그것이 이반의 정신적 사주로 된 것이고 말한 후 자살한다.

 

 알료샤(삼남) : 기독교적 사랑의 구원을 나타낸다. 그는 신과 인간을 합치하려 힘쓰며 육친의 반목을 사랑으로 화해시키려 하지만 끝내 성공하지 못한다.

 의의 : 인간의 심층 심리에 대해 탐구하고 있고, 파노라마적인 사건 전개를 보여 주고 있으며, 인간 존재의 비극성에 대해 통찰하고 있다.


내용 연구

맨 먼저 알료샤는 아버지의 집을 찾았다. 그는 집 가까이에 왔을 때, 어제 아버지가 특히 이반의 눈에 띄지 않게 살그머니 들어오라고 몇 번이나 당부하던 말을 상기했다(떠올렸다.). '대체 무엇 때문일까?' 알료사는 비로소 이런 의문에 휩싸였다. '설사 아버지가 나한테만은 은밀히 하실 말이 있다 하더라도, 구태여 이반의 눈에 띄지 않게 몰래 숨어 들어가야 할 것까지는 없지 않은가? 그래, 필시 어제 무슨 다른 말을 하시려다가 너무 흥분한 나머지 미처 그 말을 못하신 것이 분명해.' 알료사는 이렇게 단정했다. 그랬기에, 마르파 이그나찌예브가 그에게 대문을 열어 주며 (그리고리는 몸이 불편해서 별채에 누워 있다는 것이었다.) 그의 질문에 대답하여, 이반 표도르비치는 벌써 두 시간 전에 외출했다고 말했을 때 어쨌든 몹시 기뻤던 게 사실이다. (안도감이 담겨 있고 특히 이 부분은 내면의 묘사에 치중해 있기 때문에 심리주의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 이반 몰래 집에 들어 가 그의 부재를 알고 기뻐하는 알료샤

 

알료사는 안으로 들어갔다. 노인은 낡은 외투를 걸치고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그는 별다른 관심도 없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함인지 장부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이 넓은 집에는 표도르 파블로비치 한 사람밖에 없었다.( 스메르쟈코프 역시 점심을 준비하기 위해 시장에 가고 없었다.) 그러나 장부가 관심을 두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는 마침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애써 원기를 되찾고는 있었으나, 그래도 얼굴에는 피로의 기색이 역력했다. 시퍼렇게 멍이든 이마는 붉은 천으로 칭칭 동여 매여 있었다. 코도 역시 하룻밤 사이에 무섭게 부어 올라 마치 작은 반점처럼 여기저기에 푸른 멍울이 서 있었다. 그렇다고 그게 확연히 눈에 뛸 정도로 심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역시 얼굴 전체적으로 볼 때 어딘가 모르게 적의에 찬 표정과 짜증스런 빛을 띠고 있다.(이 글을 통해서 추측할 수 있는 것은 표도르가 어제 누군가와 싸움을 했다) - 알료샤의 눈에 비친 표도르의 피로한 얼굴

노인도 이것을 알고 있는 터이므로 방으로 들어오는 알료사를 신경질적인 눈빛으로 흘낏 쳐다보았다.

"제기랄, 커피가 다 식었잖아."

노인은 히스테릭한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네게 굳이 권하지는 않겠다. 나는 오늘 단식할 양으로 생선국만 시켰지. 그래서 아무에게도 권하지 않고 있는 거야. 그런데 넌 무슨 일로 왔지?"

"아버지의 건강이 염려스러워요."

알료사는 대답했다. - 알료샤에게 신경질적인 말을 건네는 표도르

 

(이 부분은 그루세니카를 사이에 두고 아버지 표도르와 큰 아들 드미트리가 격렬하게 싸움을 한 다음 날, 셋째 아들 알료사가 아버지를 찾아오자, 정작 찾아와 달라고 부탁했던 아버지가 무뚝뚝하게 대하는 장면이다. 큰 아들 드미트리는 어엿한 약혼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루세니카를 본 순간부터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듯이' 그녀에게 열중하고, 마침내 자기 아버지와 연적의 관계에 이르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 아버지를 살해하려는 마음까지 먹게 되는데, 물론 알료사는 종교적으로 순진무구한 영혼의 소유자로서 진정으로 아버지를 염려하는 인물이다.)

"그 녀석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미찌카의 약혼녀를 가로채려고 혈안이 되어 있어. 지금은 그 녀석이 여기서 살고 있는 것도 다 그 때문이야."

그는 심술?게 이렇게 내뱉고는 입을 일그러지게 움직이며 알료사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이반 형이 그렇게 말하던가요?"

알료사는 이렇게 물었다.

"암, 벌써 오래 전의 일인걸. 그래 넌 어떻게 생각하니, 벌써 그런 말을 한 지도 삼 주일이 지났으니 말이다. 설마 그 녀석이 나를 죽일 속셈으로 여기 온 것은 아니겠지? 그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무슨 일 때문에 왔을까?" - 이반이 형의 약혼녀를 가로채려는 흉계를 꾸민다는 아버지의 단정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알료사는 몹시 당황해 하며 이렇게 되물었다.

"그래, 하긴 그 녀석이 내게 돈을 달라는 소린 안 해. 어차피 나한테서는 땡전 한 푼 얻어내지 못할테니까. 난 말이다. 알렉세이 표도르비치, 난 될 수 있는 한 오래오래 살고 싶어. 이 점에 대해서는 너도 잘 알아 두는게 좋을 거야. 그렇기 때문에 단돈 한푼도 내게는 소중한 거야. 오래 살면 살수록 돈은 더욱 필요해질 테니까." - 오래오래 살고 싶은 소망을 위해 돈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아버지

 

"나는 이제 쉰다섯밖에 안 되었으니까 아직은 거뜬히 사내 구실을 할 수 있어. 앞으로 이십 년쯤은 계속해서 이 상태를 유지하고 싶단 말이야. 그러나 그 때는 내가 자꾸 정력을 잃어 가니까, 또 추한 꼴이 돼 버리니까, 자연히 계집들이 잘 달라붙지 않는다. 이 말이지. 따라서 바로 이 때 돈이 필요한 거야 그렇기 때문에 난 되도록 돈을 많이 비축해 두는 거야, 그러나 알렉세이 표도로비치, 이건 어디까지나 나 한 사람을 위한 거야, 이 점도 잘 명심해 두어라(표도르의 음탕하고, 물욕이 강한 이기주의적 인생관). 왜냐 하면 나는 영원히 추악한 세계에서 살고 싶으니까. 이 점은 특히 잘 명심해 두는 게 좋을 거야, 결국 더러운 죄악 속에서 사는 것이 훨씬 기분 좋은 것이거든. 모든 사람들이 이 추악한 행위에 대해서 비난을 퍼붓고 있지만, 사실은 누구나가 다 그러한 추악한 생활 속에 사는 것이 훨씬 기분이 좋은 것이거든, 모든 사람들이 이 추악한 행위에 대해서 비난을 퍼붓고 있지만, 사실은 누구나가 다 그러한 추악한 생활 속에 젖어 살고 있지 않느냐 말이야. 나는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이러한 차이밖에는 없어(표도르는 다른 사람은 음탕한 생활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자신은 솔직하게 표현한다는 차이를 내세우며 자신의 사고나 행동을 정당화, 합리화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떳떳하고 거짓 없는 나의 행위에 대해 그 더러운 놈들은 나를 공격하고 있는거야. 알렉세이 표도르비치, 나는 너희가 말한 그 천국이라는 곳에는 흥미없다(삼남인 알료샤가 수도원에서 기독교적 사랑을 구현하는 데 반해서 표도르 자신은 무신론자임을 말하고 있다). 이건 잘 기억해 둬, 또 설사 천국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와 같은 위인이 그런 데 간다는 건 도대체 어울리지가 않아, 적어도 내가 믿고 있는 것은, 인간은 일단 눈을 감게 되면 영원히 깨어나지 않는 법이라는 거야. - 이것이 내 믿음의 전부야, 내가 죽고 난 뒤, 굳이 원한다면 내 명복을 빌어 줘도 좋다. 하지만 정히 내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면 아무래도 상관 없다. 이것이 바로 내 철학관이야. 어제는 이반이 여기서 잘도 지껄여 대더구나, 하기야 그렇다고 뭐 이렇다 할 지식이 있는 건 아니야......" - 아버지의 정욕적이고 이기적인 인생관

 

(셋째 아들인 알료사와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아버지 표도르 카라마조프의 인생관과 철학관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는 나이가 55세나 되었으면서도 여전히 정욕에 사로잡혀 있으며, 그 정욕을 채우기 위해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추악한 행위를 숨길 필요도 없이 떳떳하게 할 것을 선언하기까지 한다. 뿐만 아니라 신이니 천국이니 하는 것도 믿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가 얼마나 탐욕적이고, 이기적인 인생관을 소유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그 녀석은 어째서 나하고는 아예 말을 하려 들지 않을까? 가끔 말을 한다 해도 공연히 비꼬기만 하거든, 돼먹지 못한 자식! 마음만 먹으면 난 지금 당장이라도 그루세니카하고 결혼할 수 있어, 세상에, 돈만 있으면, 알렉세이 표도로비치, 안 되는 일이 없거든(표도르의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 없다는 세상에 대한 조소와 물질 만능적 사고 방식이 드러난 구절이다.), 예컨대 이반은 그게 두려워서 내가 결혼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감시를 하고 있는 거야, 그래서 미찌카를 설득해서 억지로 그루세니카와 결혼을 시키려는 거야. 결국 그루세니카가 내게 오는 것을 저지하려는 거지.(표도르는 그루세니카라는 여자 문제로 장남과 대립하고 있으나 돈으로 그루세니카의 마음을 사로 잡으려고 한다. 차남 이반은 돈으로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아버지와 그루세니카의 결합을 반대하고 있다.)(그 녀석은 나와 그루세니카와의 결혼이 실패로 돌아가면 자기한테 무슨 돈이라도 남겨 줄 줄 아는 모양이지!) 뿐만 아니라, 만약 미찌카가 그루세니카와 결혼하게 되면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게 될 형의 약혼녀를 약삭 빠르게 가로채려는 속셈이지. 바로 여기에 그 녀석의 계략이 숨겨져 있는 거야, 정말이지 그 놈은 비열한 놈이야!" - 둘째 아들 이반에 대한 아버지의 분노와 비난

 

노인은 그 때야 비로소 번쩍 생각이 떠오르기라도 한 듯 별안간 이렇게 말했다.

"난 네게 화를 내진 않아, 그렇지만 만약 이반이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했다면 난 분명히 화를 내고 말았을 거야 , 하지만 난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이면 언제나 마음이 너그러워지는구나. 그밖에 난 엄청난 사악한 인간이지만 말이야."

"아닙니다. 아버지는 사악한 인간이 아니라, 다만 좀 비뚤어진 것뿐입니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알료사는 이렇게 말했다. - 유일하게 셋째 아들에게만 호감을 갖는 아버지

 

"얘야, 알료사, 오늘 난 그 강도놈을, 그 드미트리 녀석을 당장 감옥에 처넣어 버릴까 생각했단다. 하지만 확고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망설이게 되는구나. 하긴, 변해도 많이 변해 버린 요즘 세상에는 자기 어미 아비를 숫제 편견만을 앞세우는 고집불통으로 인식하게 되었지. 하지만 아무리 세상이 요지경 속이라도 해도 소위 늙은 아비의 머리털을 움켜쥐고, 더구나 마룻바닥에 나동그라진 아비의 얼굴을 억센 구둣발로 걷어 차는 법은 아마 동서고금을 통하여 찾아 볼 수 없을 게다.(요부 그루세니카와 자신과의 관계를 의심하고 장남인 드미트리가 아버지인 자신을 구타한 것이 인륜에 어긋난 행동임을 강조 - 아버지와 드미트리의 갈등) 게다가 다른 곳도 아닌 바로 제 아비 집에서 말이다! 또 그렇게 하고서도 모자라 다시 돌아와서는 아예 숨통을 끊어 버리겠다고 벼락같이 고함을 지르니 말이다(표도르가 스메르쟈코프에 의해 살해당했을 때,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장남인 드미트리가 살인범으로 누명을 쓰게됨을 암시하는 복선 부분이다.). 따라서,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당장에 어제 하루 동안의 일 하나만 가지고도 그 놈을 거뜬히 감옥에 처넣을 수 있단 말이야."

"그럼 아버지께선 아직 형을 고소할 생각은 없으시군요, 그렇죠?"(아버지와 큰형의 반목을 걱정하는 알료샤는 아버지가 일단 형을 고소하지 않은 것에 안심한다.)

"그건, 이반이 극구 만류하더구나. 그렇다고 내가 이반의 설교 따위에 마음을 돌이키는 그런 어리석은 인간도 아니지만, 사실은 내게도 생각이 있어서......"

그는 알료사에게 등을 굽히고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속삭이듯 말했다.

"내가 만일 그 불한당 같은 놈을 감옥에 처넣으면, 그 소식을 전해 듣고 계집은 곧 그 놈한테로 달려가겠지. 하지만 그와는 정반대로 그 놈이 늙은 아비를 구타하여 만신창이로 놓았다고 한다면 오늘이라도 당장 그 계집은 그 녀석을 버리고 내게로 급히 위로하려고 오겠지(드리트리를 고소하지 않은 이유가 드러나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인간에 대한 심리 묘사 가 뛰어난 부분으로 인간 심리의 본질을 꿰뚫어 표현하였다.)......" - 자기를 폭행한 첫째 아들을 고소하지 않는 아버지의 속셈

 

(장남인 드미트리한테 얻어맞고서도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는 장면이다. 그는 여전히 그루세니카에게 미련이 남아 있어서 구타당한 사실을 미끼로, 그녀를 자기쪽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장남을 고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한 둘째 아들인 이반을 두고, 그루세니카를 자기 형과 결혼시킨 후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게 될 형의 약혼녀를 차지하려는 음흉한 놈이라고 비난한다. 이처럼 장남과 차남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가진 표도르이지만 셋째 아들인 알료사에게만은 호감을 갖고 따뜻하게 대해 준다. 그만큼 알료사에게는 착한 영혼으로 다른 사람을 감복시키는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결국 이 부분은 탐욕스러운 아버지와 장남, 차남 사이의 갈등 관계가 얼마나 심각한 것이며, 그 갈등 관계 속에서 알료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보여 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인간에게는 본질적으로 이러한 성질이 있게 마련이니까……. 무슨 일에든 역행하려는 성질 말이야. 그런데 어떠냐, 코냑이라도 좀 마시지 않겠니? 냉커피와 코냑을 사 대일 정도로 잘 희석하면, 아주 일품이거든."

"아닙니다. 난 이 빵이나 좀 가져갔습니다. 괜찮겠죠?"

하고 알료샤는 삼 카페이카짜리쯤 되는 프랑스 빵을 집어 법의 주머니 속에 넣었다.

"아버지도 이제 코냑을 그만 두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노인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그는 조심스럽게 이렇게 충고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코냑은, 공연히 신경만 날카롭게 할 뿐이지, 위안은 되지 않아. 그렇더라도 꼭 한 잔만 해야겠다. ……내가 찬장에서 꺼내 와야겠다.……

그는 열쇠를 끄집어 내어 찬장 문을 열더니 유리잔에 술을 따라 한 모금 쭉 들이켰다. 그는 다시 찬장 문을 꼭 잠그고 열쇠를 주머니에 넣었다.(물욕이 강하고 인색한 지주 표도르의 면모를 확인시켜 주는 구절이다.)

 이해와 감상

 이 작품에서 형상화되고 있는, 야성적인 러시아인의 순수성을 지니고 있는 장남, 무신론자이면서도 지성을 갖추고 있는 허무주의자인 차남, 교회의 사랑의 가르침에 빠진 순진한 삼남은 각각 작가를 지배해 온 사상과 인생의 고뇌를 집약시켜놓고 있다. 이들 사이의 갈등과 그의 아버지의 탐욕에 항거하는 과정 등이 함께 이 작품의 거대한 줄거리를 형성하고 있다.(출처 : 박갑수 저 지학사 문학)

 

이해와 감상1

 이 작품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예술과 사상을 집대성한 것으로, 신과 인간의 문제, 미묘한 인간 심리, 구성의 기발함 등으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필적하는 러시아의 걸작으로 알려져 있다. 이 소설은 막내 아들 알료샤를 주인공으로 한 연작 소설의 제1부로 기획되었던 작품이지만, 제1부만을 완성한 후 도스토예프스키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제2부는 완성되지 못하였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일상적인 삶의 궤적에서 벗어나 있는 기이한 인물들로서, 각각 인간 정신의 극점을 보여 주고 있다. 이들은 정치, 사회적 혼란이 극에 달한 19세기 러시아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이 소설에 있어 작자는 '신과 구원의 문제'에 관심을 쏟고 있다. 이 문제를 둘러싸고 대립하는 중심 인물은 이반과 알료샤로서 <대심문관> 부분에서 둘 사이의 갈등이 절정에 이른다.

 

이해와 감상2

 러시아의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의 마지막 장편소설. 1879∼80년에 발표하였다. 생애를 통해 작가를 괴롭혀 온 사상적·종교적 문제, 인간의 본질에 관한 사색을 장대한 규모와 긴밀한 구성으로 집대성한 걸작이나, 미완성 작품이다.

 물욕과 음탕의 상징인 표도르를 아버지로 하는 카라마조프가(家)의 3형제(러시아인적인 야성적 정열과 순수함을 갖춘 장남 드미트리, 무신론자에다 허무주의적 지식인 차남 이반, 수도원에 몸담고 있으면서 동포애를 가르치는 조시마 장로에게 심취한 순진한 3남 알료샤), 거기에 아버지와 백치의 여자거지에게서 태어난 막내아들 스메르자코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부자간(父子間) 및 형제간의 애욕을 그린 작품이다.

 

이해와 감상3

 줄거리는 아버지 표도르의 살해를 둘러싼 심리적 갈등 위에 이루어졌으며 추리소설을 연상케 하는 긴밀한 구성이 뛰어나다. 드미트리는 부친 살해의 혐의를 받고 재판도 그에게 유죄를 선고하지만, 실은 간질병의 특성을 알리바이로 이용한 스메르자코프의 범행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반의 사상적 감화를 받고 저질러진 일이었다. 이 소설의 진짜 내면적인 줄거리를 이루는 것은 ‘신이 없으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는 철학으로서, 이반과 알료샤의 스승인 조시마 장로 사이에서, 러시아의 미래를 상징하는 알료샤의 더럽혀지지 않은 영혼을 서로 빼앗으려는 형태로 전개되는 사상적 격투이다.

 

 작자의 공감은 조시마 장로 측에 기울지만 신이 창조한 세계의 불합리와 모순에 관하여 역설하고, 이 모순이 있는 한 미래에 다가올 지상의 천국도 인정할 수 없다는 이반의 반론이 훨씬 박력 있게 다가온다. 특히 중세기에 지상에 재림한 그리스도가 교권에 의하여 거부되었다고 말한, 이반이 지었다는 극시 '대심문관(大審問官)'은 도스토예프스키 문학의 정수로서 현대에서의 권력과 자유의 문제를 조명하면서 예언적으로 울려온다. 작가는 이 장편의 속편에서 수도원을 나온 13년 후의 알료샤의 운명(‘러시아 민중의 아버지’인 황제를 암살하고 십자가에 달리는 구상으로 추측되는)을 그릴 예정이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910년 모스크바에서 극화(劇化)되고, 러시아·미국에서 영화화되었다.

 

이해와 감상4

 러시아의 작가 F. M. 도스토예프스키가 1881년 죽기 몇 달 전에 완성시킨 그의 최고의 소설로 작가의 다른 많은 소설이 하나의 범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듯이 이 소설도 부친살해 사건에서 시작된다. 아버지 표도르는 물욕과 음욕(淫慾)의 상징으로 2번 결혼했는데 첫번째 여자가 도망가자 온순한 고아와 다시 결혼했다. 맏아들 드미트리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전형적인 선과 악의 혼합으로 그는 자신의 무절제와 호색을 알고 있으며 때때로 이것들을 뛰어 넘어 높은 종교성과 연민으로 상승하기도 한다. 둘째 아들 이반은 〈죄와 벌〉의 살인자 주인공과 몇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어서 감성적이기보다는 이지적이며 뒤틀린 자기 마음의 미로에 갇혀 있다. 셋째 아들 알료샤는 수도원에서 영혼의 삶에 자신을 헌신하고 있으나 그의 혈관엔 카라마조프가의 피가 흐르고 있고 그 또한 다른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세속적이다. 넷째 아들 스메르자코프는 사생아로서 논리적이고 계산에 밝으며 또 야수적이어서 나머지 세 형제의 특징을 모아 놓은 듯한 성격이다 스메르자코프가 그의 아버지를 살해하지만 모든 상황증거는 드미트리를 용의자로 지목한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살인의 지적인 배경을 제공한 이반은 살인의 교사자(敎唆者)로서 자신을 연루시킨다. 고해하기 전에 이반은 악마와 토론을 갖는데 악마는 선과 함께 균형을 이루는 것으로서의 악의 필요성에 대해 길고도 미묘한 주장을 전개한다. 특히 〈대심문관 大審問官〉은 이반이 쓰려고 한 시의 설명으로 이 소설의 핵심적인 장면의 하나다. 여기에서 신을 믿지 않는 스페인의 심문관은 그의 동료를 의심하고 그들로부터 진리를 멀리하려 한다. 그에 대립한 그리스도는 인간의 영혼을 믿으며 비록 그것이 고통과 파멸을 의미한다 할지라도 자유라는 선물을 인간에게 주려 한다. 이 소설은 인간은 단지 고통과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구원을 성취할 수 있으며, 삶은 지성이 아니라 단지 감정과 사랑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작가의 근본적 신념이 표현된 세계문학의 걸작이다. (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심화 자료

 아버지 표도르와 아들 알료샤의 성격

 이 소설의 등장 인물들은 모두가 기이한 성격을 소유하고 있다. 카라마조프가의 가장인 표도르 카라마조프도 그러한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인색하고 시기심이 많으며 정욕의 포로이자 극도의 이기주의자이다. 그의 인생관은 지극히 부정적이기 때문에 그는 인생의 공허감을 메우기 위해 육체적 쾌락을 목적으로 삼으며,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재산을 축적한다. 이에 비해 막내 아들인 알료샤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천사라고 불린다. 그는 종교적 순결성과 정신적 무구성을 대표하는데, 그의 곁에는 종교적 달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조시마 장로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카라마조프 부자의 성격이 모든 인간의 온갖 특징 가운데서 어느 일면을 형상화한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일이다.

 장남 드리트리와 차남 이반의 성격

 미찌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장남 드미트리는 이 작품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사건이 그를 중심으로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한편으로는 왕성한 생활력과 강렬한 정열을 소유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정직한 마음과 순수함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서로 모순적인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는 언제나 동요한다. 이에 비해 둘째 이반은 교활하고 탐욕스러우면서도 이지적인 면을 지닌 무신론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극단적인 결론에 도달하기에 이른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문학사적 의의

 도스토예프스키는 '넋의 리얼리즘'이라는 독자적인 방법으로 인간의 내면을 분석함으로써 근대 소설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였다. 특히 이 작품은 많은 사변적 주제 가운데 특히 '대심문관'부분에서 다루고 있는 신과 구원의 문제는 이 소설의 가장 핵심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 하면 '사람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그리스도의 말을 둘러싸고, 인간의 자유와 본질에 관한 날카로운 질문들이 던져지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인류의 앞날에 대한 깊은 긍정 의식을 함축한 계시적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세계 문학사

 이 작품은 도스토예프스키가 시베리아에서 유형 생활을 할 때, 옴스크 감옥에서 함께 옥살이를 하던 육군 소위 일리언스키의 이야기를 테마로 쓴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또한 이 작품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최후의 장편 소설이며, 러시아와 세계 문학사상에서 가장 위대한 창작 가운데 하나라고 평가되고 있다.

 

 이 작품은 심리적인 깊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비극성, 대담한 신에 대한 저항 등과 사회 생활의 묘사가 두드러지게 뛰어난 작품이다. 또한, 도덕적이고 지적인 긴장감으로 인해 큰 감동을 안겨 주고 있다. 웅대한 규모와 역사적인 관점을 사실적인 인간 생활에 접목시키고 있는 이 작품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선구적인 예술 사상에 강력하게 영향을 끼쳤다.

 카라마조프시치나(카라마조프적 기질이라는 말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을 정도로 인간의 넋에 대한 요약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이 작품은 도스토예프스키가 지닌 기본적인 주제와 사상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그의 사상이 집약되어 있는 장대하고 종합적인 이 작품은 1878년에 쓰기 시작하여 1879년 '러시아 통보'지 1월호에 처음으로 발표되었다. 그리고 완결된 해는 1880년이었다. 그리고 이 작품의 머리에는 '작가로부터'라는 머리말이 붙어 있는데, 이 가운데는 이 작품이 미완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쓸 수 있기를 바랬지만 정작 그에게 남아 있는 시간은 2개월 뿐이었다. 1881년 1월 28일에 급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완의 이 작품이 세계문학사에서 그 어느 작품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완결된 구상을 지니고 있음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출처 : 권영민 저 지학사 문학)

 도스토예프스키의 문체

 다른 작가와 달리 도스토예프스키의 문장은 긴장과 충동적 강력성이 넘치며, 심리 묘사의 깊이가 뛰어나 그에 필적할 작가가 없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문장이 갖는 강력한 충동성은 범죄가 모티브가 된 것으로 생활의 모순과 갈등을 아주 예리한 발상으로 표현할 때에 드러난다. 가끔 공포감이 일어나는 이상한 사건을 묘사하는데, 이는 생활의 모든 조건 자체를 가장 긴장된 폭발적 순간으로 그릴 때의 수법이다. 그는 작품에서 부당하게 학대당하고 수모받는 사람들의 운명을 비통한 마음으로 주시한다. 그의 작품은 농노제에서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시기의 러시아 사회의 예술적 연대기이다. 그는 그 시대의 여러 가지 중요 문제를 제기하고 작가로서 그 해답을 최선을 다해 던져주려고 하였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 인간의 고뇌를 고찰하다 -

  도스토예프스키는 정신병자라고들 한다. 그는 문학에 있어서 광기어린 천재였다. 하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정신병자가 아니다. 그는 인간의 많은 문제에 대해서 고민했다. 이를테면 '신의 부재'나 '인간본성이 무엇인가?' 등이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인 <죄외벌>, <카라마조프의 형제>, <악령>에는 그 때문에 고민하는 주인공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의 인물구성을 보면 우선 표도르 파블로비치 카라마조프인 아버지, 그의 3아들 드미트리, 이반, 알렉세이가 등장한다. 또한 그의 사생아인 스메르자코프와 하인 그리고 리와 마르파가 있다. 이 소설은 부친살해사건을 다루고 있으며 러시아적 풍토속에서 진행된다. 그 사건은 이러하다. 맏형 드미트리는 아버지인 표도르와 그루셴카라는 여자를 사이에 두고 다툰다. 또한 그는 아버지와 유산 상속문제도 얽혀있다. 그는 카테리나 이바노브나와는 약혼한 사이인데, 그녀와는 사랑으로 위장한 자존심으로 얽혀있다. 그는 아버지를 죽이고 구루셴카라는 여자와 함께 도망칠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떠벌리고 다닌다. 그는 망나니에다가 싸움 잘하고 술 잘하는 사람이다. 그의 아버지인 표도르는 엄청난 호색한으로 돈과 여자에 있어서는 비상한 머리를 과시하는 사람이다. 그는 세 아들을 그리고리에게 맡아 키우게 하였고 자신은 방탕한 생활을 즐겼다.

 

 그는 돈을 얻기위해 처음에는 아젤라이다와 결혼하였고, 두 번째에는 여성을 얻기위해 소피아 이바노브나와 결혼하였다. 첫째번 처에게서 나은 아들이 이반과 알렉세이이다. 드미트리는 미우소프라는 외삼촌에게서 키워졌으며 이반과 알렉세이는 보로호바장군부인에게서 키워진다. 세아들은 공통된 특성인 삶의 열정을 지녔다. 이것은 아버지인 포도르에게서 물려받았다. 하지만 그 열정은 서로 다른 형태로 표출된다. 이것은 포도르의 일면을 분해하여 발전시킨 것이다. 드리트리는 아버지에게서 호색한적인 기질을 물려받았다. 이반은 타고난 지식욕을 물려받고 알렉세이는 성스러움을 쫓는다. 하지만 가장 아버지를 닮은 사람은 이반이었다. 세 사람은 자신의 고향에 모여든다. 그곳에서 세사람의 특성이 부각되기 시작한다.

 드미트리는 재산상속문제로 인하여 어버지와 마찰을 일으킨다. 이반은 아버지를 멸시하고 자신의 사상을 스메르챠코프에게 말한다. 스메러챠코프는 '신이 없으면 모든 것이 인정된다.'는 이반의 사상을 믿고 표도르를 살해한다. 알료사(알렉세이)는 모든 것을 보고도 모든 것을 이해하는 사람으로 아버지와 형들을 신뢰한다. 알료사가 그런 경향을 띄게 된 데에는 그의 병약했던 어머니와 조시마장로가 간여한다. 조시마장로는  훌륭한 성인으로 사람들의 병을 고치고 예언을 하고 수도사들의 추앙을 받았다. 하지만 장로제도를 옹호하지 않은 자도 있었다. 그들은 조시마장로가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니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죽자 사람들이 기대했던 성스러운 징조는 나타나지 않고 그의 시체에서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것을 보고 장로 제도의 반대자였던 페라폰트신부는 그를 욕한다. 그러자 그때까지 조시마 장로를 따랐던 사람들이 페라폰트 신부를 추앙하며 장로를 비난한다. 그 광경을 본 얄로사는 갑자기 돌변하여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 휩싸인다. 얄료사는 장로의 유언대로 승복을 벗고 속세로 나아간다.

 

 드미트리는 자신의 아버지가 3천루블로 그루셴카를 유혹하고 있는 것을 알고는 아버지의 집 앞에서 감시하고 스메르쟈코프에게서 문의 암호를 알아낸다. 이반과 드미트리는 자신의 비밀을 얄료샤에게 털어놓는다. 드미트리는 자신의 괴로움을 묻어버리기 위해서, 이반은 신의 부재와 종말에 이루어 질지도 모를 그 조화의 세상에 대하여 논하다. 드미트리는 카테리나를 만난 일과 그녀와의관계와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말하고 이반은 신을 부정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자신을 이야기한다. 이반과의 이야기는 이 소설을 압권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어린 아이들이 아무런 죄도 없는데 죽어야하는 현실을 말한다. 그 현실은 조화라는 세상이 오기 전에 지불해야할 값비싼 대가라고 한다. 이것은 현실의 부조리를 말한 것으로 부조화한 현실을 만드는 어른들이 아무런 잘못도 없는 아이들을 학대하고 처참하게 죽이는 것을 참을 수 없고 이치에도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이러한 부조리 앞에서 나약한 자신을 발견한다. 또 그는 신의 존재와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는데 그것은 그가 발표하려고 하다만 희극이었다. 예수는 인간을 너무나 높게 평가하여 자유의지를 가지면 천상의 빵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는 광야에서 악마와의 싸움에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나약하고 멍청한 존재이기 때문에 예수의 뜻을 쫓을 수 없다.

 

 그리하여 교회는 그것을 알아채고 사람들을 예수의 이름으로 복종시키며 지상의 빵을 던진다. 교황은 예수가 지상으로 내려온 것을 알아채고 가옥에 가두고 자신의 사업을 이야기한다. 그는 예수가 인간에게 자유를 준 것은 큰 실수라고 이야기하고 인간이 진정한 자유를 가졌을 때에 인간은 그것을 주체하지 못하여 더욱 혼란만 겪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들은 그 사업의 비밀을 유지하며 대다수의 사람이 자상의 빵을 가지게 약속한다는 것이다. 예수에게 소수의 인간이 천상의 빵을 가지는 것보다 대다수의 인간을 지상의 빵으로 구원하게 하는 것이 더욱 났다는 말을 한다. 교황은 그 말을 다하고 할 말이 있으면 하라고 한다. 하지만 예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성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그리고 교황의 입술에 키스한다. 그러자 교황은 두려워하면서 나가서 세상에 다시는 오지 말라고 말한다.

 

  얄료사는 이 이야기를 듣고 놀란다. 신의 세계를 부정한 이반 앞에서 알료사는 쓸쓸한 미소를 짓는다. 이반은 모스크바로 떠나고 드미트리는 그루셴카가 없어진 것을 알고 놀라서 그 날 밤에 아버지의 집에 침입하여 아버지를 죽이려고 하다가 그 어떤 성스러운 생각이 들어서 그만 두려고 한다. 그는 도망치다가 그리고리에게 붙잡히고 그는 놋공이를 그리고리의 머리에 던져서 그리고리는 정신을 잃고 만다. 그는 그리고리가 죽었을 까봐서 갑자기 안쓰러운 마음으로 자신의 손수건을 꺼내에서 그의 피를 닦아주다가 담을 넘어서 간다. 그때 스메르자코프가 나와서 거짓 간질병 발작으로 알리바이를 만들고는 표도르를 죽인다. 그리고 3천 루블을 봉투를 뜯은 채로 지폐만 훔친다. 마르파는 그리고리의 비명소리를 듣고 잠이 깨고 옆집 사람들에 의해 사건은 알려진다. 드미트리는 전에 카테리나에게서 받은 돈을 감추어 두고 꿰매어서 목에 걸고 다니던 돈을 빼어서 그루셴카와 함께 파티를 벌인다.

 

  경찰들이 들이닥치고 드미트리는 체포된다. 드미트리는 아버지의 피에 대해서 무죄를 말하지만 아무도 믿지 않는다. 알료사만이 진정으로 형을 믿는다. 이반은 처음에 형을 의심하다가 스메르쟈코프의 집에 3번 방문하여 자신의 사상 때문에 그 범죄가 저질러 진 것을 알고 법정에서 자신의 유죄를 주장하지만 섬망증 증세라는 의사의 이야기에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스메르쟈코프는 이반이 찾아온 날밤에 모든 것을 고백하고 자살한다. 재판은 유죄로 판명이나서 드미트리는 형을 언도받는다. 알료사는 이반의 죽음을 예언하고 일유사의 죽음 앞에서 아이들의 아름다운 마음을 다진다. 사실 이 이야기는 끝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작가는 주인공이 얄료사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이야기로 얄료사는 실제적인 역할은 못하고 있으며 미래의 이야기로 돌릴 일이다. 이 소설에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다가 결국은 인정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는 아버지와 형의 싸움과 스메르챠코프의 일을 겪으면서 신을 인정하게 된다.

 

  그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지성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인간의 비밀을 캐내려고 하였다.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생각하며 그러한 고뇌는 그 희극으로 표출된다. 종국에 가서는 인간의 지혜가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알고 자신의 사상을 굽히고 신을 인정하고 조화의 세계를 인정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는 그리하여 파멸했다.

 

  얄료사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러한 마음 한 구석의 신의 존재를 믿고 의지하고 싶어했다. 사람들은 그러한 성질을 가진 얄료사에게 기대고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사람들에게 신의 존재를 믿고 성스러움을 쫒는 본성이 있음을 작가는 말하고 있다. 또한 작가는 드리트리의 정욕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는데 사람들 속에 숨어있는 물욕을 상징하고 있다. 이렇게 세 사람이 합쳐진 표도르 파블로비치 카라마조프는 우리들의 분신인 것이다. 여기서는 사람들의 갖가지 성질이 다양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사람 하나 하나의 성질은 우리의 본연의 모습이며 그것에 의해서 특징적으로 나타난 인물들은 제각기 소설의 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작가는 아이들에 관해서는 굉장히 관대했다. 전체 이야기상의 아이들, 알료사가 이야기한 아이들, 이반이 말한 아이들에서도 공통된 점인 수수함을 말하고 미래를 말하고 있다. 작가가 문학에 있어서 테마로 삼았던 신의 문제와 자유의 문제가 작가의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이 작품에서 돋보인다. 작가는 신의 존재에 대해서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얄료사와 조시마장로를,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반의 세계를 내세운다. 기독교적 참된 자유의 세계와 고독의 힘을 지향하는 비극적 실존의 자유의 세계가 바로 그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이 자유의 힘 때문에 인생에서 많은 고통을 겪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유가 없다면 인간다울 수 없다고 말한다. 결국 작가의 세계관은 신이 있는가와 없는가, 선과 악이라는 이원론 적인 견해를 가지고 작품세계를 구성하고 있다. 이러한 세계관은 유럽대륙에 영향을 미처 그의 부조리에 대한 발상은 실존주의에 영향을 주고 여러 조류의 문학 사조를 형성했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인간의 부조리와 자유의지, 신의 존재를 고찰한 작품이다. 인간의 여러 유형과 그들의 처하여 있는 모순된 상황들이 공감을 자아낸다. 이 책에서 그 어떤 책보다도 많은 인생의 비밀을 캐내었다고 생각한다. 그 동안 가졌던 많은 모순(물론 카뮈를 악고 있었지만), 신의 존재에 대하여, 자유의지에 대한 나의 고뇌는 굉장할 정도였다.

 

  그 생각은 머리 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으며 고통스럽게 했다. 이반과 같이 신을 부정하고 자신의 이성에 의해서 인생의 모든 비밀을 캐내려고 무단히도 노력했었다. 하지만 그로서 돌아오는 것은 많은 고뇌였다. 인간 앞에서, 군중 속에서 고독했다. 하지만 지금 그 비밀을 알아낸 것이다. 이제 내 인생은 새로운 출발을 할 것임에 확실하다. (청주여자고등학교 우현희 학생의 글).

 작품의 아우트 라인

 이야기는 1960년대의 러시아의 지방 도시에 사는 벼락 부자 카라마조프가(家)의 사람들을 둘러 싸고 전개된다.
 아버지 표도르는, 지주 귀족(地主貴族)이란 이름뿐이고, 거의 맨주먹으로 몸을 일으켜서, 술집 경영이며 대금업 등으로 악착같이 돈을 벌어 집안을 일으킨 부자이다.그는 억제하지 못하는 격한 정열을 가진 물욕과 음탕의 권화(權化)로서, 자기도 타락하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타락을 권하는 시니컬한 독설가(毒舌家)며,「러시아는 돼지 우리다. 러시아의 백성은 두들겨 패 줘야 한다」고 곧잘 떠들어댄다. 그는 구르센카에게 온갖 음탕한 짓을 하고, 그녀를 육체의 노예로 삼고 있다.
 전처의 자식으로 장남인 트미트리도, 아버지로부터 카리마조프적인 억제할 수 없는 정열을 이어 받았지만, 동시에 러시아인다운 순수성을 가진 사내이다. 주색에 빠지고, 음탕한 짓을 서슴치 않으나, 마음 한 구석에는 고결한 것에 대한 동경을 지니고 있다. 넓은 러시아적 성격의 소유자이다 그는 구르센카의 육체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약혼녀까지 내버리고, 아버지를 적대시하고, 그를 죽이고 싶을 만큼 증오한다.


 차남 이반은, 대학의 이과(理科)를 졸업한 24살난 총명한 청년이지만, 아버지 표도르의 인간 멸시관이 상이한 형태를 띄고 그의 몸 속에 투영되고 있다. 그는 신(神)을 부정하고, 「신이 만든 이 세계를 인정하지 않는 이상, 인간은 모두 용서를 받는다」라는 독자적인 이론을 가지고 있다. 무신론자이자 허무주의자이다. 그에게도 역시 카라마조프적인 피가 흐르고 있다. 그것은 형 드미트리의 약혼년 까테리에나 대한 미칠 것 같은 사모의 정에서 나타나고 있다. 드미트리가 육체적이라면, 이반은 이론적으로 아버지를 증오하고 있다.


 삼남 알료샤는, 수도원에서 사랑을 설교하는 조시마 사제를 신봉하는 순진 무구한 청년이다. 그는 누구한테서나, 특히 아버지한테서까지도 귀여움을 받고, 천사라고 불리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의 내부에도 카라마조프적인 피가 흐르고 있음은, 누구보다도 그 자신이 잘 알고 있다.


 스메르쟈코프는 표도르가 백치 여자에게서 낳게 한 자식인데, 간질병을 가지고 있다. 머슴으로서 겉으로는 우직하게 일을 하고 있지만, 천박한 데다가 간지(奸智)에 차 있다. 차별 대우를 받고 있는 만큼, 아버지 표도르를 증오하는 마음은 그 누구보다도 강하다.


 이상은 카라마조프가(家)의 가족들이지만, 여기에 까테리나와 구르쎈카의 두 여성이 가미된다. 구르쎈카는 표도르와 한 짝이 되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벌이에 열을 올리고, 자기를 탐내는 아버지와 자식을 적당하게 데리고 놀고, 까테리나를 심술궃게 조롱하는 악녀(惡女)이지만, 알료사의 맑은 눈이 궤뚫어 본 것처럼, 마음 속에 때묻지 않은 순수성이 살아 있다. 이에 대하여 까테리나는 지극히 자만심이 강한 오만한 여성이다.


 이 두 여성을 둘러 싸고, 아버지와 아들, 형과 동생 사이의 복잡하게 엉킨 애욕의 싸움이 벌어지는 속에서, 아버지 표도르가 누군가에게 의하여 살해된다는 사건이 벌어진다. 형제들의 누구나가 모두 제나름대로의 형의가 있지만, 스메르쟈코프는 그날 밤 간질병의 발작이 있었다는 이유로 혐의가 풀린다. 방탕하게 놀아 왔다는 둥, 여러 가지 상황 증거가 갖추어지고 있는 드미트리가, 구르센카와의 사랑이 결실되려는 순간에 체포된다. 재판이 시작된다. 추리 소설 같은 흥미를 자아내는 긴박한 장면이 계속되지만, 진범은 스메자코프였다. 그는 신이 없으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이반의 이론의 사수를 받아, 아버지 표도르를 살해하고, 간질병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판결 전날에 스메자코프는 이반을 찾아 사실을 고백하고, 당신이 죽인 것이나 다를 바 없다고 말하고 자살을 한다.


 공판장에서, 증인으로 나온 이반이 별안간「내가 그 자식(스메르쟈코프)을 사수하여 죽이게 하였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외치고, 격심한 광기의 발작을 일으키면서 정리(廷吏)에 의하여 끌려져 나간다. 사랑하는 이반의 증언으로 충격을 받은 까테리나는, 드미트리를 희생하고 이반을 구출하려고 부친 살해의 죄를 입증하는 드미트리의 편지를 판사에게 내놓는다.「드미트리, 당신의 악마(까떼리나를 가리킨다)가 당신을 파멸의 벼랑으로 몰아 넣고 있어요」하고 구르센카가 분노에 몸을 떨면서 소리지른다. 그러한 구르센카도, 드미트리의「용서해 주라」는 한마디로 까떼리나를 용서한다. 드미트리는 실제로는 손을 대지 않았지만, 마음 속에서 항상 아버지를 죽이고 싶어했던 것은 아버지를 죽인 것이나 매한가지라고 자기의 죄를 인정한다. 그리고는 고뇌(苦惱)에 의하여 자기의 죄를 씻어야 겠다는 이상하게 맑은 기분으로, 그는 20년의 징역형의 판결을 받는다.


 이것이 외면적인 줄거리이고, 작품의 내면적인 줄거리를, 알료샤를 둘러싸고, 조시마 사제와 이반 사이에 전개되는 사상의 대결, 그리스도교와 무신론의 대결이다.

 주인공 하이라이트

 이 소설의 핵심은 이반의 작품인 극시(劇詩) 『대심문관(大審問官)』이라고 한다. 술집에서 알료샤와 대좌한 이반이 그 극시를 낭독한다.


 15세기, 가톨릭의 이단 심문(異端審問)이 무섭게 판을 치던 시대의 스폐인의 세빌리아시(市)가 그 무대이다. 가톨릭 이단자들을 화형(火刑)으로 처형한 광장에 그리스도가 나타난다. 사람들은 곧 그가 그리스도임을 꺠닫는다. 대심문관의 명령으로 그리스도는 체포되고 투옥된다. 그리고, 그날밤, 감옥 안에서 대심문관이 그리스도와 대결한다.


한때, 그리스도는 광야에서 악마로부터 빵과 기적과 권위라는 세 가지 문제에 대하여 시험을 받는데,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못한다.」「주(主)인 그대의 하느님을 시험하여서는 안된다」 「주(主)인 그대의 하느님을 모시고, 오직 하느님만을 섬기라」고 대답함으로써 악마의 심문을 물리쳤다. 만일 그때, 돌을 빵으로 바꾸었더라면, 모든 사람이 그의 앞에 엎드리고, 세계의 통일도 성취되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리스도는 인간의 자유를 박탈하지 않기 위하여, 그것을 거부하였지만, 인간은 자유와 같은 무거운 짐을 지고 버틸 존재가 되지 못한다. 그들은 항상 자기의 자유와 교환으로 빵을 주는 상대를 찾아 헤메고, 그 앞에 엎드리기를 바라고 있다고, 대심문관은 그리스도를 탄핵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대심문관은 그러니 만큼 우리는 그들을 자유라는 무거운 짐으로부터 풀어주고, 빵을 주었다. 바야흐로 사람들은 자기의 자유를 포기함으로써, 자유가 되고, 기적과 신비와 권위라는 세 가지의 힘 위에다 지상의 왕국을 구축하였다고, 말을 계속한다.


 이 대심문관의 규탄에 대하여, 그리스도는 한 마디 말도 하지 않는다. 시종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무언 속에서 대심문관에게 키스를 한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대심문관이 민중을 대신하여 자기가 걸머진 짐에 대하여 키스를 한 것인가? 어쩌면, 그리스도는 자기를 규탄하는 대심문관이 마음 깊숙히는 그리스도의 옳음을 믿고 있으면서도, 현세에 있어서 조급히 물직적 행복을 민중에게 보증하기 위하여서는, 어디까지나 자기의 지배 이론을 관철하는 수밖에 없다고 자각하고 있음을 간파했기 떄문일 것이다.

 작자의 생애

 도스토예프스키

 명문구 낙수

 「반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반한다는 것은 증오를 하면서도 할 수 있는 것이다.」(드미트리의 말)
「겸허한 사랑은 무서운 힘이다.」(조시마 사제의 말)


「사회주의는 단순한 노동 문제에 그치지 않고, 주로 무신론의 문제이기도 하다. 무심론에 현대적으로 살을 보탠 문제이다. 지상에서 하늘에 이르기 위한 것이 아니고, 지상으로 하늘을 끌어 내리기 위하여, 진실로 신(神) 없이 세우고자 하는 바빌론의 탑(塔)의 문제인 것이다.」(조시마 사제의 말)


「인간이란 언제나 남에게 속임을 당하는 것보다, 자기 스스로 자기에게 거짓말을 하고 싶어하는 존재 입니다. 그리고, 물론 남의 거짓말보다는 자기의 거짓말을 더욱 믿으려고 하는 것입니다.」(『악령』의 선동가(煽動家) 피오르트의 말)

 심화 자료

 민중에게 자유라는 무거운 짐을 주었다고 그리스도를 규탄하는 백발의 깡마른 대심문관은, 사실은 톨스토이를 염두에 두고 쓴 것이라고 한다. 인류에게 길을 설교하는 톨스토이에 대한 도스토예프스키의 비꼬움이라고 할까? 이것은 어디까지나 풍설이지만, 흥미 깊은 데가 있다.


 이 작품의 내면적인 줄거리는 조시마 사제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이반의 무신론의 대결이지만, 도스토예프스키를 지지하고 있던 종무원장(宗務院長) 포페토노프쩨프는 조시마의 열세(劣勢)를 염려하였다. 작자의 본심은 분명히 이반 쪽에 박력을 두고 있다.[출처 : 세계문학의 명작과 주인공 총해설에서 - 소봉파편- (일신사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인간 본질에  대한 사색의 집대성

 러시아가 낳은 세계적인 대 문호 도스또옙스끼가 서거한 지도 벌써 백 년이 넘었다. 그러나 그의 모습은 날이 가고 해가 거듭될수록 쉴새 없이 우리 면전에서 성장해 가며 수많은 문제점을 제시해 주고 있다. 사실, 동서 고금의 작가 치고 도스또옙스끼 만큼 난해한 평가와 새로운 문제점을 제시해주는 작가도 드물 것이다.

 

 흔히 도스또옙스끼를 위대한 선각자, 또는 예언자라고 부르는가 하면, 실존과 자학의 작가, 분열과 부조리의 작가라 부르기도 하고, 인간의 비밀과 곡절을 투시한 복음의 작가라고 부르기도 한다. 도스또예브끼에 대한 이러한 다양한 평가는 그의 문학 세계의 난해성과 다면성, 불열적인 이원성, 강렬무비한 그의 독창적인 사상성을 단적으로 입증해 주는 것이다.

 그토록 기구한 운명 속에서도 러시아문학의 신화를 창조해 낸 도스또옙스끼는 일생을 괴롭혔던 불치의 간질병, 사형집행 직전의 극적인 특사, 기나긴 시베리아 유형생활, 그리고 끝없는 궁핍 속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인간이 겪을 수 있었던 최대의 고난을 다 겪으면서도, 한쪽에서는 인간의 잔인성, 악마성을 규명하고, 또 한쪽에서는 인간의 본질적인 선성과 신성을 투시한 작가였다.

 

 이와 같이, 도스또 예스끼의 전작품을 통해서 그의 이상적인 기조를 이루고 있는 것은 인간 생활에 있어서의 상호 모순하는 2대 원리―선과 악의 투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광명의 복음원리와 암흑의 악의 요소와의 대결인 것이다. 그러나 그는 민감한 예술가로서, 인간들 사이에서 완전하고도 고상한 이상의 실현을 구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이 세상의 어떠한 죄인이라도 구제 불능한 철두철미한 악인은 없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인생에서의 이 2대 원리의 투쟁을 연구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인간을 이상으로 접근시킬 수 있는 수단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선·악 두 요소의 대결은 이미 그의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에서 시작하여, 《지하생활자의 수기》, 《죄와 벌》, 《백치》, 《악령》,《미성년》을 거쳐 《까라마조프네 형제들》에 와서 완성의 극치에 달했던 것이다.

 

 그럼 여기서, 그의 최고작 《가라마조프네 형제들》을 고찰하기에 앞서, 우선 그의 기구한 운명이 점철된 생애를 통해 그의 문학적인 발전 도정을 간단히 살펴보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또옙스끼는 1812년 10월 30일, 그의 아버지가 의사로 근무하고 있던 모스크바의 마리인스까야 빈민 병원의 별관에서 출생했다. 그는 7형제 중 둘째아들로 태어났고, 나중에 그의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던 형 미하일과는 한 살 차이였다. 그의 아버지는 몰락한 지방 귀족 출신의 몰인정한 구두쇠였고, 그의 어머니는 선량하고 애정이 깊은 여자로 보수적인 상인계급 출신이었다.

 

 1834년, 그의 아버지는 뚤라 현에 조그만 영지를 하나 샀고, 어머니와 아이들은 여름마다 이 목가적인 풍경 속에서 전원 생활을 보냈다. 도스또옙스끼는 이때의 추억을 《농부 마레이》속에 잘 묘사하고 있다. 1837년, 도스또옙스끼의 어머니는 페결핵으로 사망했다.

 

 도스또엡스끼는 그 해 공병학교 입학을 위해 뻬쩨르부르그로 보내져 이듬해 그곳 기숙생이 되었다. 뻬쩨르부르그의 생활은 고독하고 불행했지만, 그는 문학에 심취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 당시 러시아에 밀려든 낭만주의 문학의 파도는 그의 젊은 마음을 셰익스피어, 쉴러, 호프만, 발자끄에 도취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1839년 여름,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사망은 젊은 도스또옙스끼에게 크나큰 충격을 주었다. 그의 아버지는 지나칠 정도로 가혹하게 농노를 학대했기 때문에 자기 농노들에게 무참히 타살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도스또옙스끼는 아버지의 면모를 나중에 《까라마조프네 형제들》속에서 묘사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1842년 21세 되던 해에 그는 소위로 임관했으나 곧 퇴역하고 문학과 빈궁 속에 온몸을 내맡겼다. 그리하여 완성된 것이 그의 유명한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이 소설은 비평계의 거두 벨린스끼의 절찬을 받았고 도스또옙스끼는 익약 문단의 총아가 되었다. 이 빛나는 성공에 뒤이어 그는 《주부》, 《백야》등 10여 편의 작품을 썼으나, 이 작품들은 그의 처녀작 만큼의 호평을 받지는 못했다.

 

 1849년 4월, 그는 공상적 사회주의자의 서어클인 〈뻬뜨라솁스끼 비밀결사〉에 관련되어 체포되었다. 그는 뻬뜨로 빠블롭스끼 감옥에 8개월간 감금되었다가 사형선고를 받고, 총살 집행 직전에 형장에서 황제의 특사를 받아 죽음을 모면했다. 이 당시의 가공할 만한 체험은 그의 《서간》, 《작가 일기》, 그리고 《백치》의 주인공 므이쉬낀을 통해 실감나게 전해지고 있다.

 

 도스또옙스끼는 사형 대신 4년간의 시베리아 유형과 다시 4년간의 병졸생활의 판결을 받았다. 시베리아의 옴스끄 감옥에서의 4년간, 그는 〈죽음의 집〉에서 말할 수 없이 가혹한 시련과 속박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죽음의 집의 기록》을 읽으면, 이때 그가 어떤 체험을 하고 무엇을 관찰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그는 성서를 읽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간질병 발작은 더둑더 뚜렷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4년간의 감옥 생활을 마친 후, 다시 쎄미파라친스끄 수비대로 호송되어, 여기서도 4년간의 병졸 생활을 보냈다. 그러는 사이에 1857년 그는 마리야 이사예바라는 미망인과 결혼했다. 그러나 그의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못했다.

 

 1858년, 도스또옙스끼는 10년만에 뻬쩨르부르그로 돌아왔다. 이때 뻬쩨르부르그는 농노해방 전야의 열광으로 들끓고 있었다. 도스또옙스끼는 다시 왕성한 창작력을 발휘하여 《학대받는 사람들》, 《죽음의 집의 기록》을 발표했다. 특히《죽음의 집의 기록》은 사실적인 v폭로와 러시아 민중에 대한 신뢰로 거국적인 문단의 극찬을 받았다.

 

 이 무렵 도스또옙스끼는 형 미하일과 함께 월간지 〈시대〉를 발간하여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문학을 직업으로 생각하지 않는 똘스또이나 뚜르게네프와 달리 도스또옙스끼는 문자 그대로 직업 작가였다. 쓴다는 것은 그의 나날의 일이었고 또한 생활의 근거이기도 했다. 그 당시의 많은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예술가는 인생에 대해서 쓰고 동시대의 사건에 호응해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왕성한 창작욕을 느끼면 느낄수록, 그의 간질병 발작은 더욱 잦아졌다. 일단 발작이 일어나면 2,3일 병상에 눕지만. 이러한 발작은 매주, 혹은 며칠 건너 일어나곤 했다.

 

 1862년 여름, 드스또옙스끼는 처음으로 유럽 여행에 올랐다. 그는 이때의 인상을 《겨울에 쓴 여름의 인상》속에 잘 묘사하고 있는데, 이것은 서구문명에 대한 작자의 날카로운 비판을 담은 것이다. 그러나 1863년, 성공을 거듭하던 그의 잡지 〈시대〉가 갑자기 발행 정지를 당했다. 그 후 다시 〈세기〉라는 평론잡지를 발간했으나, 이미 옛날의 인기를 되찾을 수는 없었다. 이 무렵 도스또옙스끼는 새로운 열정에 온몸을 내맡기고 있었다. 그것은 아뽈리나야 수슬로바라는 젊은 처녀와의 연애 사건이었다. 42세으 도스또옙스끼가 20세의 경박한 미녀 수슬로바에게 미칠듯한 사랑을 느낀 것이다. 그는 이 처녀돠 함게 파리, 스위스, 로마로 두 번째의 외국 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결과는 비참한 실연으로 끝났다. 도스또옙스끼 자신이 《지옥적》인 여자라고 말한 바 있는 오만한 수슬로바는 그 후 《도박자》의 뽈리나, 《악령》의 리자베따, 《백치》의 나스따샤 등 많은 등장인물의 모델이 되었다. 그리고 그가 도박에 열중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무렵이었다. 그의 나이 43세가 되는 1864년은 가공할 만한 액운의 해였다. 그의 아내 마리야가 오랜 벙고 끝에 사망하고, 두이어 그의 정신적인 지주였던 미하일 형이 세상을 떠났다. 잡지〈세기〉도 막대한 부채 때문에 폐간의 운명을 겪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무서운 호나경 속에 채권자와 출판사으 강청에 시달리면서, 그는 《지하생활자의 수기》(1864), 《쥐와 벌》(1866), 《도박자》(1866) 등의 걸작을 완성했던 것이다.

 

 《지하생활자의 수기》는 그 당시의 청년들을 매혹시키고 있던 공상적 사회주의에 대한 신랄한 항의였고,《쥐와 벌》은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이기주의적 합리주의 원리와 종교적· 기독교적 원리를 대립시킨 야심적인 최초의 실험소설이었다. 한편《도박자》는 출판사와의 계약을 지키기 위해 속기사안나 스니뜨끼나에게 구술을 하여 26일만에 오나성한 소설이다. 그는 한 달 후 안나에게 구혼을 하고 그 이듬해인 1867년 결혼했다. 안나는 남편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받쳤다. 도스또옙스끼는 이때 비로소 가정의 안정을 되찾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누렸던 것이다.

 

 결혼 후 두 사람은 채권자들을 피해 외국으로 떠났다. 그는 왕성한 창작력을 되찾아 제 2의 장편 《백치》(1868)를 쓰고, 뒤이어 혁명가와 니힐리스트를 공격한 《악령》(1871∼72)을 완성했다.

 

 1871년에서 1881년에 이르는 마지막 10년간은 도스또엡스끼의 생애 중에서도 가장 평온 무사한 시기였다. 그는 경제적으로도 안정을 얻고, 일류 작가로서의 명성을 러시아 방방곡곡에 떨쳤다. 그는 1876년부터 81년까지 개인 잡지 <작가 일기>를 발간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1875년에는 장편 《미성년》을, 그리고 1880년에는 그의 필생의 대작 《까라마조프네 형제들》을 탈고했다.

 

 1880년 도스또엡스끼의 인기는 절정에 달했다. 1880년, 6월 8일 그는 뿌쉬낀 기념비의 제막식에서 러시아의 위대한 운명과 러시아민족의 범인류적 사명을 역설하여 열광적인 갈채를 받았다. 그러나 이것은 도스또옙스끼의 최후의 성공이었다. 1881년 1월 28일, 그는 폐동맥 파열이 악화되어, 유해는 고나을 따르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알렉산드르 네프스끼 수도원에 매장되었다.

 

 

도스또예프스끼의 문학세계

 도스또옙스끼의 모든 작품에서 공통된 문제로 되고 있는 것은 선과 악, 악덕과 자유의지, 인간과 신의 문제이다. 이러한 우주적인 이원성을 다룸에 있어서 도스또옙스끼가 특히 관심을 기울인 것은 <분신>의 개념이다.따라서 그의 대부분의 주인공은 각각 그 자신으 분신을 갖는다. (라스꼴리니꼬프 대 스비드리가일로프, 이반 까라마조프 대 스메르쟈꼬프 등).그리고 사건의 주역은 대부분의 경우 쌍생아 내지 대조적인 한 쌍의 인물이 연출한다.(라스꼴리니꼬프 대 쏘냐, 이반 대 조시마, 므이쉬낀 대 로고진 등).도스또옙스끼의 우주는 이른바 대생적인 이분된 우주이다. "왜 형님은 우리의 이원성을 이상하게 생각하십니까?"하고 그는 형에게 쓴다. "그것은 인간의 특징 중에서 가장 평범한 것입니다. 나의 이원성은 나의 일생을 통해 가장 큰 괴로움이기도 했거니와 가장 큰 기쁨이기도 했습니다." 신과 인간, 이론과 감정적 자아, 결백한 인간과 잔혹한 사회 ―도스또옙스끼의 모든 주인공의 비극은 바로 이 이원성에 있는 것이다.

 

 도스또옙스끼의 심리적인 관념소설에는 특수한 구성 ―즉 탐정소설적인 구성을 갖는다. 그래서 그의 소설에는 으레 범죄사건이, 특히 살인죄가 구성상의 중심을 이룬다. 도스또옙스끼는 독자에게 충격을 주어 독자를 놀라게 하고 당화케 하기를 좋아하면서, 예기치 않는 탈선이나 극적 클라이맥스에 자기 자신을 잃고 붓을 휘둘렀다. 도스또옙스끼가 이런 방법을 택한 것은 그의 극단적인 성격 때문인지도 모른다. 도스또옙스끼는 60년대에 자기가 왜 범죄의 기록에 그토록 흥미를 느꼈는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법정의 기록은 어떤 소설보다도 드릴이 풍부하다. 왜냐하면 예술이 손을 대기를 피하거나, 혹은 표면적으로만 손을 대지 않는 인간의 영혼의 암흑면에 빛을 던져 주기 때문이다."

 

 다음은 도스또옙스끼의 문학이 갖는 희소성이다. 여기에선 특히 대화와 독백이 크나큰 역할을 담당한다. 그의 소설에서는 고백이 독립된 장으로 삽입된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를테면 《백치》의 이뽈리뜨의 고백). 특히 《까라마조프네 형제들》에서는 주인공들의 내적 생활이 작자에 의해서 설명되지 않고 직접 행동으로 제시되고 대화로 논의된다. 디 규칙의 예외는 원고와 피고의 진술뿐이다. 그러나 법정의 경우도 도스또옙스끼 예술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은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그의 모든 소설은 연속되는 많은 장면으로 분해할 수가 있고, 더욱이 그 개개의 부분은 하나의 극의 일막 일막에 해당한다. 그리고 개개의 장이 주요 인물의 등장, 퇴장, 새로운 사건 등으로 시작된다. 급격하고도 놀랄 만한 장면으 변화가 독자에게 서스펜스를 준다. 매순간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그저 대화만이 이 사건의 무서운 속도를 늦추어 줄 뿐이다. 이와 같이 도스또옙스끼의 대화는 일상생활의 평범한 대화가 아니라, 언제나 극적인 기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생활의 평범한 대화가 아니라, 언제나 극적인 기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출처 : 외국문학전집 해설)


 

반응형

블로그의 정보

국어문학창고

송화은율

활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