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축제가 없는 우리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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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가 없는 우리

 

우리는 우리 국민 모두가 하나라는 큰 인식을 제대로 가져본 적이 없다. 기껏해 봐야 우리 나라 권투 선수가 다른 나라 선수와 시합을 할 때 혹은 축구팀이 월드컵에서 뛸 때 그런 인식을 다소나마 느낄 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난장판 축제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처럼 거의 종교적 경지에서 전 국민이 하나됨을 느끼게 할 수는 없다. 게다가 이전에 동제와 같은 축제가 하는 기능을 부분적으로나마 대체하고 있는 스포츠에 대해서 전 국민 모두가 환호하는 것도 아니다. 아마도 남자들만 정신 못 차리고 보지 대개의 여성들은 스포츠에 별 관심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 나라의 모든 가족은 전부 따로따로 놀면서 자기 가족밖에는 모르는 매우 소아적인 집단이 되어 버렸다. 이 때문에 앞에서 본 온갖 교육 비리가 터져 나온 것이다.

 

정말로 우리 국민에게는 전 국민적인 축제가 없다. 그러나 건강한 나라라면 반드시 이런 축제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우리가 보기에 매우 느슨하게만 보이고 개인주의적으로만 사는 것 같은 미국에도 전 국민적인 축제는 있다. 아마도 그네들의 독립기념일인 74일이 그 날 아닐까? 그 날이 되면 미국 사람들은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기뻐하고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날이 여기에 해당할까? 개천절, 광복절……, 이런 날을 연상하면 국립극장에서 정부 관리들이 기념식 하는 것만 생각나지 도무지 축일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지금 현재로서 전 국민이 가장 애호하는 축일을 생각해 본다면 설날과 추석뿐이다. 그런데 이 날들은 재미있게도 가족주의가 다시 한 번 강화되는 날이지 전 국민이 하나됨을 느끼는 날은 아니다.(그래서 나는 이 명절들을 가족주의 강화의 날이라고 부른다.) 이 날 하는 일이라는 것도 우선 흩어져 있는 가족이나 친지가 다시 모여서 서로 한 혈통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 확인을 더 심화시키기 위해 자신들이 생겨난 뿌리인 조상들에게 제사를 올린다. 그럼으로써 아주 부정적으로만 본다면, 세상에 의지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우리 가족밖에는 없으니 다른 가족이나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되든 우리끼리 똘똘 뭉쳐서 이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가자고 다짐을 하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가족주의에 대한 열의는 해마다 넘쳐만 가는데 이것을 넘어서는 원리가 없다.

 

축제날에 더불어 노는 것을 생각하면 별일은 아니지만 우리 나라와 비교가 되면서 기억나는 것이 있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캠핑을 간 일이 있는데, 마침 캠프장에서 춤판이 벌어졌다. 음악은 컨츄리 웨스턴 곡이었고 손녀와 할아버지가 나와 서부 영화에서 많이 보던 춤을 추었다. 흥겹게 지켜보다가 가만히 우리 나라와 비교를 해 보았다. 과연 우리 나라에서는 할아버지와 손녀가 같이 풀 수 있는 춤이나 음악이 있을까? 기껏 해봐야 남의 나라 음악인 디스코에 맞추어 되지도 않는 춤을 추는 정도가 아닌가? 우리 나라는 춤이나 노래에서도 세대마다 나름대로의 것은 있지만 전체를 통괄할 수 있는 그런 것은 없다. 그러니까 우리 나라는 전부 따로 노는 것이다. 사회를 관통하는 통합원리는 그것이 어떤 철학적 신조로 표시되든, 음악으로 표현되든, 아니면 힘있는 상징물로 나타나든, 무엇인가는 있어야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는 법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런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정부에서도 이런 것을 알아챘는지 어쨌는지 몰라도 축제판을 억지로라도 벌이려는 시도를 한 적이 있었다. 80년대 초의 국풍(國風)’이 바로 그것이다. 여의도 광장에 전국의 광대패들을 다 모아 한 판 벌이긴 벌린 모양인데, 끝나고 난 다음에 아무 소식도 없었으니 실패로 돌아간 모양이다. 하기야 당시가 전두환이라는 군인 출신이 어거지로 대통령하던 때라 그런 거국적인 문화 행사가 제대로 결심을 맺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 뒤에도 최근까지 정부에서는 지방의 축제를 살리겠다고 학자들을 동원해 연구를 시켰는데, 내 친구도 그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있어 곁눈질해 보았더니 별 뾰족한 연구가 되는 것 같지 않았다. 이런 일은 관()주도로 해서 한 번도 성공한 일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하려고 해도 농촌 인구가 모두 빠져나가고 피폐해진 지금은 시도하는 것조차 힘들 게다.

 

한국인에게 문화는 있는가, 최준식, 사계절,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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