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책이 길을 열어 주었다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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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길을 열어 주었다 / 최춘해 /아동문학가

나는 문학을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했다. 내가 자랄 때는 요새처럼 책이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손에 닿는 대로 아무 것이나 읽었다. 소설을 읽다가 시집을 읽다가 닥치는 대로 읽는 가운데, 시 종류가 내 마음을 끌었다. 그래서 시 (동시 포함)를 자꾸 읽다 보니 나도 한번 써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 나름대로 습작을 했다. 상주 사벌 동부 국민학교에 근무할 때 학교 신문을 냈는데 거기에 '명상'이란 시를 처음 발표했다.

그때 상주는 '동시의 마을'이란 별명이 붙을 만큼 아이들 글짓기 지도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상주글짓기회에 나도 동참을 했다. 회원들이 얼마나 친절하고 인간다운지 마음이 끌렸다. 진작 이런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었다.
아이들 작품을 합평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마음에 들었다. 회원들끼리 만나면 서로 못할 말 없이 툭 털어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가까운 사이가 됐다. 오히려 형제간보다 더 가까웠다. 사흘이 멀다 하고 자주 만났고 못 만나면 보고 싶어 못 견디었다.

이때 벌써 신현득과 김종상은 신춘 문예에 당선됐다. 글짓기 회원 모두가 부러워하고, 아이들에게 글짓기를 지도하는 틈틈이 자기의 글을 쓰고 있었다. 나도 남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더러는 밤을 새워 가며 쓰기도 했다.

당시에 아동문학 교단 동인회가 조직돼 있었다. 전국적인 모임이다. 교단에 있는 사람으로서 아동문학을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전국 회원이 27명인데 각자 자기가 쓴 작품을 매월 회원 수만큼 프린트를 해서 간사한테 보내면 간사는 그럴 묶어서 다시 회원들에게 부쳤다. '은방울' 동인회라고 했다. 작품 묶음 표지 이름을 '은방울' 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 모임에 나도 가입을 했다.

나는 동인회 활동도 열심히 하는 한편 지방 신문인 영남일보와 매일 신문에 작품 발표도 많이 했다. 그때는 글 쓰는 사람이 적었기 때문인지 투고만 하면 거의 다 실어 주었다. 또 서울에서 나오는 교육 잡지나 원호 신문에도 발표를 많이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신춘 문예 현상 모집에 응모를 해 보니 좀처럼 당선이 되지 않는다. 여러 차례 실패를 하고 나니 실망이 컸다. 실망한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처가 나의 안쓰러운 사실을 써서 KBS에 투고하여 원고료를 받기도 했다. 나는 새로운 결심을 했다. 새로 출발하기로 했다. 작품을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책을 읽어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저부터 구독하던 사상계, 현대문학, 시문학, 아동문학 등 월간지를 계속 읽고 문학 개론부터 공부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국문학 개론(김기동 저 정연사 발행), 세계 문예 강좌 5권(작가 작품론, 창작 실기론 등, 어문각 발행), 국어학 개론 김형규 저, 일조각 발행), 언어학 개론(허웅 저,정음사 발행), 문장 보감 (이상로 편, 성봉각 발행), 시와 인생의 뒤안길에서 (전봉건 저, 중앙사 발행) 등을 열심히 읽었다. 그리고 국문학사, 국어학 공부도 해야겠기에 다음과 같은 책들을 읽었다. 국문학사(조윤제 저, 동양문화사 발행), 한국 현대문학사(조연현 저, 성문각 발행), 국문학 전사(백철, 이병기 저,신구문화사 발행),국어사 개설(이기문 저, 민중서관 발행), 국어학사(유창균 저,민중서관 발행), 용비어천가(허 웅 저, 민중서관 발행) 등, 그리고 한국아동문학전집 12권(마해송, 윤석중,이원수, 강소천 편집, 민중서관 발행) 도 열심히 감상했다.

간단히 책 이름만 늘어 놓았지만 이것을 공부하는 데는 남다른 노력이 있어야 했다. 남들이 잠잘 때 잠 덜 자고, 남들이 가족과 즐길 때 나는 책을 읽어야 했다.


이제 작품을 보는 눈이 열린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작품을 쓰는 과정에서 또 문제가 생겼다. 띄어쓰기에 자신이 없다. 맞춤법도 가끔 혼돈할 때가 있다. 글을 쓴다는 사람이 우리 글을 정확하게 쓸 줄 몰라서야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방면에 밝은 분을 찾아가서 책 안내를 받았다. 우리말본(최현배 지음, 정음사 발행), 한글갈 (최현배 지음, 정음사 발행)을 서점에서 사 왔다. 공부를 해 보니 여간 단단히 마음 먹어서는 안 되겠다. 공부를 한다는 게 쉬울 수야 없지만 우리말본, 한글갈 공부는 더욱 정신을 차려야 했다. 내가 만약 이런 책들을 읽기 전에 등단을 했더라면 바탕이 튼튼하지 못해서 글을 못 쓰게 됐을지도 모른다. 또 갖출 것을 못 갖추었기에 남한테 멸시를 받으며 당당하지 못한 사람이 됐을지도 모른다. 등단을 하기 전에는 대개 조급하게 서둘지만, 먼 장래를 내다보면 늦게 등단하는 것이 작품 쓰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 일찍 등단한 사람이 작품을 못 쓰고 있거나 좋은 작품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반면에 늦게 등단한 사람이 좋은 작품을 생산하고 있는 걸 많이 볼 수 있다.

문인은 계속 책을 읽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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