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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도(烏瞰圖)-시제일호(詩第一號) / 이상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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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도(烏瞰圖)-시제일호(詩第一號) /  이상


 

13의아해(兒孩)가도로(道路)로질주(疾走)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適當)하오.)

 

제(第)1의아해(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제(第)2의아해(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제(第)3의아해(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제(第)4의아해(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제(第)5의아해(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제(第)6의아해(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제(第)7의아해(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제(第)8의아해(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제(第)9의아해(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제(第)10의아해(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제(第)11의아해(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제(第)12의아해(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제(第)13의아해(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13인(人)의아해(兒孩)는무서운아해(兒孩)와무서워하는아해(兒孩)와그렇게뿐이모였소.(다른사정(事情)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중(中)에1인(人)의아해(兒孩)가무서운아해(兒孩)라도좋소.
그중(中)에2인(人)의아해(兒孩)가무서운아해(兒孩)라도좋소.
그중(中)에2인(人)의아해(兒孩)가무서워하는아해(兒孩)라도좋소.
그중(中)에1인(人)의아해(兒孩)가무서워하는아해(兒孩)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適當)하오.)
13인(人)의아해(兒孩)가도로(道路)로질주(疾走)하지아니하여도좋소.

 

<조선중앙일보, 1934. 7. 24>

 

  작자 소개

  이상 李箱 [1910.9.14~1937.4.17] 본명 김해경(金海卿). 서울 출생. 보성고보(普成高普)를 거쳐 경성고공(京城高工) 건축과를 나온 후 총독부의 건축기수가 되었다. 1931년 처녀작으로 시 〈이상한 가역반응(可逆反應)〉 〈파편의 경치〉를 《조선과 건축》지에 발표하고, 1932년 동지에 시 〈건축무한 육면각체(建築無限六面角體)〉를 처음으로 '이상(李箱)'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했다. 1933년 3월 객혈로 건축기수직을 사임하고 배천온천(白川溫泉)에 들어가 요양을 했다. 이때부터 그는 폐병에서 오는 절망을 이기기 위해 본격적으로 문학을 시작했다. 이상이라는 이름을 쓰게 된 것은 공사장 인부들이 그의 이름을 잘 모르고 '리상(李씨)'이라고 부르니까 그대로 '이상'이라고 했다지만 학교 때의 별명이라는 설도 있다.

 

요양지에서 알게 된 기생 금홍과 함께 귀경한 그는 1934년 시 《오감도(烏瞰圖)》를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하기 시작했으나 난해하다는 독자들의 빗발치는 항의로 중단했다. 1936년 《조광(朝光)》지에 《날개》를 발표하여 큰 화제를 일으켰고 같은 해에 《동해(童骸)》《봉별기(逢別記)》 등을 발표하고 폐결핵과 싸우다가 갱생(更生)할 뜻으로 도쿄행[東京行]을 결행하였으나, 불온사상 혐의로 일본경찰에 체포되었다가 병보석으로 풀려 도쿄대학교 부속병원에서 병사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전기 외에 소설 《지주회시(⊙呪會豕)》 《환시기(幻視記)》 《실화(失花)》 등이 있고, 시에는 《이런 시(詩)》 《거울》 《지비(紙碑)》 《정식(正式)》 《명경(明鏡)》, 수필에는 《산촌여정(山村餘情)》 《조춘점묘(早春點描)》 《권태(倦怠)》 등이 있다. 1957년 80여 편의 전 작품을 수록한 《이상전집(李箱全業)》 3권이 간행되었다.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어휘와 구절


오감도(烏瞰圖) : 사전에 나오지 않는 신조어로, 높은 곳에서 비스듬이 내려다본 것처럼 그린 풍경화나 그림을 뜻하는 조감도(鳥瞰圖)에서 따온 것, '鳥(새)'를 '烏(까마귀)'로 바꾸어 까마귀와 같은 눈으로 인간들의 삶을 내려다본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암울하고 불길한 까마귀의 이미지로 인해 전체적으로 부정적이고 불안한 시적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13' : 13의 의미에 대해서는 그동안 다양한 해석이 있었다. 최후의 만찬에 합석한 예수와 12제자, 당시의 13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식민지 조국의 상징, 해체된 자아의 분신, '13일의 금요일'처럼 가장 불길한 숫자의 상징, 시계, 시간(12)의 부정으로 시간의 불가사의를 희화하한 것, 이상 자신의 기호, 성적 상징 등이 그것들이다.
 

'아해' : 아이, 아이를 아해라고 표기한 것은 아이라는 낱말의 일상성과 습관성을 낯설게 함으로써 자동화, 습관화된 삶을 파괴하여 신선한 감각을 표현하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이해와 감상

  아무도 남을 믿지 않고, 아무도 서로를 진실하게 털어놓지 못하는 불신의 관계 ― 이것이 13인의 아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무시무시한 분위기의 진상이다. 그래서 그들은 불안에 가득 차서 도로를 질주한다.


 그리하여 그는 절망적으로 마지막 말을 덧붙인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라고. 아무리 질주하여도 공포는 사라지지 않으므로 질주하거나 않거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음미하여 볼 만한 것이 괄호 속에 들어 있는 말들이다. 앞의 괄호에는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라 하였고, 뒤에서는 `길을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라 하였다. 길을 뚫려 있든 막혀 있든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왜? 길이 어찌 되었든 어차피 상황은 절망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이 작품에서 말하는 13인의 아이란 이상의 눈에 비친 불안한 현대인을 상징하는 것이라 해석된다. 그들은 삶의 의미와 목적을 잃고 다만 막연히 서로를 무서워하면서 불안한 삶을 질주하듯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초점이다. 바꿔 말하면, 그들에게는 서로를 이웃으로서 받아들이고 자기의 마음을 열어 따뜻한 체온과 마음을 나누는 사랑이 없다. 그러므로 서로 불안하고, 모두가 모두에 대하여 공포스러운 존재이다. 그는 메마른 현대의 세계를 `13인의아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그렇게뿐이모였오'라고 절망적으로 요약하였던 것이다. [해설: 김흥규]

 참고 자료

자동기술법 : 초현실주의(쉬르리얼리즘) 시인의 시의 창작 방법을 가리킨다. 앙드레 브루통은 [초현실주의 선언](1924)에서 "우리가 구두(口頭)에 의하든 필기에 의하든 기타 어떠한 수단에 의하든지 간에 사고의 현실적인 작용을 표현하려고 하는 경우에 사용하는 순수한 심적 자동 작용이다. 일체의 미적, 윤리적 배려 밖에 있어서 이성의 모든 감시가 제거된 상황에서 행해지는 사고의 기록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의 학설을 응용한 것으로서. 의식 속에 있는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꿈과 무의식의 상태를 가장 혜택받은 상태로 보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하여 외부의 영향을 피해서 자동적으로 즉석에서 기록하려 하는 시의 방법이다. "생각하는 속도는 쓰는 속도보다 빠르지 는 않다"고 생각하여 가능한 한 독백체 어조로 썼다. 앙드레 브르통과 필립 수포는 공동으로 [자장(磁場)]이라는 작품을 자동 기술의 방법으로 썼다. 이 작품을 보면 신들린 무녀가 소리치는 무의식의 헛소리와는 달리 시의 이미지로 된 언어가 기록되어 있다. 지난날의 시 작법에 속박되지 않고 새로운 방법으로 시를 쓰려할 때 그들은 자동 기술이라는 방법을 생각해 내었다. 그러나 기록된 것은 그들이 일상 생황에서 의식하지 않았던 일이 아니라 그들이 그 때까지 생각하고 느꼈던 바를 기록하는 데 매우 가까이 접근하는 결과가 생긴 것도 확실하다. 그러나 쓰는 일이 시인을 변화하게 하고,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바를 인식시켰으며, 시인에게 새로운 생각과 감정을 지니게 했다는 점에서 자동 기술외 방법은 그 나름대로의 효과가 있었다. 그것은 기성의 권위를 부정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하는 자유의 탐구를 가능하게 하는 방법이었다.

 

다다이즘 : 기존의 가치체계를 부정하고, 일체의 질서파괴를 노리는 예술운동을 말한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사회적 불안과 허무감으로 나타난 문화 전반적인 운동이다. 예술의 모든 영역에 걸쳐 일체의 규범을 무시하는 시나 회화 등을 만들어냈지만, 작품보다는 그 모임의 별난 행동으로 시선을 모았다. `다다'라는 말은 시인 트리스탄 차라가 프랑스어 사전에서 우연히 본 목마[dada]에서 따온 것이다. 전쟁의 잔인성을 증오하고 합리적 기술문명을 부정하며, 일체의 계약을 거부하고 기존질서를 파괴하는 등의 과격한 실험주의적 경향으로 후에는 초현실주의에 흡수되었다.

초현실주의 : 앙드레 브르통에 의하여 주도적으로 제창되기 시작한 예술상의 광범위한 개혁 운동이다. 이 초현실주의라는 용어는 아폴리네르(G. Apollinaire)가 만들어낸 것이며, 이 운동은 1918년부터 1939년 사이에 가장 위세를 떨쳤다. 이 초현실주의는 1916년 스위스의 쮜리히에서 루마니아 시인인 차라(Tristan Tzara)의 주동으로 일어난 다다이즘에서 싹이 텄다. 즉 어법(語法)의 무시, 의미와 논리성의 거부 등 모든 전통적 가치(價値)와 모랄(도덕률)의 기성 사회 질서를 철저히 파괴하고자 하다가, 마침내 시 자체까지도 부정하게 되어 소멸하게 되고 만 다다이즘의 다음 단계에 위치하는 사조이다. 한국 문학에서는 넓은 의미의 초현실주의가 1930년대 중엽 이상, 이시우, 신백수 등을 중심으로 한 『삼사문학(三四文學)』 동인들에 의하여 조금쯤 실험된 바 있지만 별로 이렇다 할 작품은 드문 실정이다.

 

 

 이상 연보

1924

4월, 동광학교가 보성고교에 병합됨으로써 같은 학년(4학년)으로 편입됨. 교내미술전람회에 유화 <풍경>을 출품하여 우등상을 받음.

1926

3월 5일, 보성고등보통학교 5학년 졸업. 4월, 경성부 동숭동 소재 경성고등공업학교 1학년 입학.

1929

3월, 경성고등공업학교 3년 졸업. 4월,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수로 근무. 영선계로 전근. 12월 27일,조선건축회지 <조선과 건축> 소화 5년도 표지도안 현상모집에서 응모작품이 1등과 3등에 당선됨.

1931

최초로 시를 발표함<이상한 가역반응>외 5편<조선과 건축>9월호, 선전에서 양화<자화상>을 출품하여 입선함.

1932

<조선과 건축>소화 7년도 표지도안 현상모집에서 응모작품이 선외 가작 4석에 선정됨.

1933

3월, 각혈로 하여 건축과 기수직을 버림. 황해도 백천 온천으로 요양행. 이곳에서 후일의 다방 '제비' 마담 금홍을 알았다. 7월 14일, 귀경하여 종로 1가에서 다방 '제비'를 개업. 금홍과 동거. 가을, 박태원과 알다. 이후 이태준, 김기림, 정지용과 교우. 7월부터 국문으로 시를 발표함.

1934

구인회 입회. 당시의 회원은 정지용, 이태준, 이효석, 김기림, 이무영, 조용만, 박태원등임. 국문시<오감도>(<조선중앙일보> 7월 24일~8월 8일)를 발표하여 난해시로서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킴.  "미친 놈의 잠꼬대냐", "무슨 개수작이냐", "오감도라고 오자를 내는 것부터가 알 수 없는 수작이 아니냐" 하는 독자들의 투서가 산적하여 원해 30회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결국 15회 연재로 중단하고 말았다. 이어 하융이라는 화명으로 박태원의 연재소석<소설가 구보씨의 1일>의 삽화를 그림

1935

경영난으로 '제비' 폐업. 인사동 소재 카폐 '쯔루' 인수, 경영하다가 얼마 되지 않아 실패. 다시 종로 1가에서 다방 '69(식스 나인)' 경영하다가 곧 실패. 이어 명치정에서 다방 '무기' 설계하여 개업하기도 전에 타인에게 양도당함. 성천, 인천등지로 소요.

1936

3월, 창문사에서 구인회 동인지 <시와 소설>을 편집. 제 1집만 내고 창문사를 나옴. 당시 수상정 거주. 6월 초순경, 황금정으로 이사하여 변동림과 동거함. 음력 9월 3일, 동경으로 탈출.

1937

후데이센징으로 일경에게 피검. 2월 중순, 니시간다 경찰서에 구금됨. 3월 중순, 건강이 극도로 악화됨으로써 보석됨. 4월 16일, 부친상과 조모상을 당함. 4월 17일, 동경제대부속병원에서 영면. 향년 만 26세 7개월(기일 4월 17일 상오 4시경 음력 3월 7일 축시).5월 4일, 유해 환국. 약 1개월 후 미아리 공동묘지에 안장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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