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연가(戀歌)- 김기림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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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기림

 

 

두 뺨을 스치는 바람결이 한결 거세어 별이 꺼진 하늘 아래

짐승처럼 우짖는 도시의 소리 피해오듯 돌아오면서

내 마음 어느 새 그대 곁에 있고나

그대 마음 내게로 온 것이냐

 

육로(陸路)로 천리(千里) 수로(水路) 천리

오늘 밤도 소스라쳐 깨우치는 꿈이 둘

가로수 설레는 바람소리 물새들 잠꼬대……

그대 앓음소리 아닌 것 없고나

 

그대 있는 곳 새나라 오노라 얼마나, 소연하랴*

병 지닌 가슴에도 장미 같은 희망이 피어

그대 숨이 가뻐 처녀같이 수다스러우리라

 

회오리 바람 미친 밤엔 우리 어깨와 어깨 지탱하여

찬비와 서릿발 즐거이 맞으리라

자빠져 김나는 뭉둥아리* 하도 달면* 이리도 피해 달아나리라

 

새나라 언약이 이처럼 화려커늘

그대와 나 하루살이 목숨쯤이야

빛나는 하루 아침 이슬인들 어떠랴

 

(중앙신문, 1946.4.27)

 

 

* 소연(騷然)하다 : 떠들썩하다.

* 뭉둥아리 : 몸뚱어리.

* 달다 : 몸이 화끈해지다.


 

<감상의 길잡이>

해방 직후 조선문학가동맹의 결성에 가담하여 전국문학자대회의 준비 위원으로서 우리시의 방향이라는 주제 강연을 발표한 바 있으며, ‘조선문학가동맹중앙집행위원이자 시부 위원장의 지위에 오른 김기림, 그의 돌연한 사상적 전향은 우리 현대문학사에서 대단히 이채로운 사건에 해당한다. 1930년대 모더니즘 시론의 주창자로서 임화(林和)와 이른바 기교주의 논쟁을 벌이면서 많은 순수주의 시인들의 이론적 지주의 역할을 맡았던 그의 전향은, 소설에서의 이태준(李泰俊)의 전향과 함께 해방공간의 문학과 정치와의 함수관계를 다시 한번 환기시켜 준다. 이태준은 그의 소설 <해방 전후>에서 주인공 ()’의 입을 빌어 자신의 전향을 합리화시키고 있거니와, 김기림은 위의 우리시의 방향이라는 강연에서 시인은 자유와 정치를 지키는 넓은 동맹군의 일익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하여 정치와 시의 적극적 결합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해방공간 김기림 시의 대부분은 그 전의 작품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강한 정치성이 드러난다.

이러한 점에서 <연가>는 이 시기 그의 시로서는 드물게 정치적이고 선동적인 표현이 적고 서정시의 여백(餘白)까지도 맛볼 수 있는 정제된 미감을 지니고 있는 작품이다.

 

이 시의 시적 자아는 육로로 천리 수로 천리를 건너 드디어 임을 만난다. 그들은 새나라짐승처럼 우짖는 도시의 소리 피해오듯 돌아왔지만, 여전히 식민지 치하에서의 유랑의 상처를 벗어날 수는 없다. 그리하여 그들은 서로 만나 사랑을 나누는 즐거운 밤에서조차도 놀라 소스라쳐 깨우치는 꿈을 꾸고 그대 앓음소리는 삼라만상의 소리로 들려 올 정도로 병이 깊다. 그러나 새나라로 오는 즐거움에 병 지닌 가슴에도 장미 같은희망이 피숨이 가뻐 처녀같이 수다스러운 것도 전혀 흉잡힐 것이 아니다. 이제는 어떤 고난도 두렵지 않아, ‘회오리 바람 미친 밤엔 우리 어깨와 어깨 지탱하여 / 찬비와 서릿발 즐거이 맞을 수 있고, 사랑이 뜨거우면 이리도 피해 달아날 정도로 서로에 대한 확신이 선다. 이러한, 헤어지지 않으리라는, 어떤 고난도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사랑의 언약은 새나라를 맞이하였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것을 시적 자아는 마지막 연에서 새나라 언약이화려하기 때문이라고 인식하고 있으며, 그럴 때 그대와 나 하루살이 목숨쯤이야 / 빛나는 하루 아침 이슬인들 어떠랴라고 하며 죽어도 좋다고까지 생각하는 것이다.

 

이처럼 이 시는 비교적 상징적인 이미지를 사용하여 새나라를 맞는 시인의 감격을 형상화하는 데 성공하고 있으며, 그러면서도 어떠한 정치적 색채도 직접 드러내지 않는다. 서정시의 묘미는 이처럼 그 취의(趣意)를 직설적으로 표백하지 않는 내면화의 미감에 존재하는 것이지만, 김기림뿐 아니라 거의 모든 시인 들의 작품 중에 그러한 시가 오히려 드물 정도로, 해방공간의 문학 외적 환경은 비관적이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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