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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와 광장(廣場)- 김규동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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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와 광장(廣場)- 김규동


< 감상의 길잡이 1 >

모더니스트로 출발한 김규동은 초기에는 주지주의 혹은 쉬르리얼리즘적인 색채를 보였으나, 70년대 이후부터는 사회 내지 역사 의식을 토대로 하는 사회성 짙은 리얼리즘의 민중시로 나아가는 시 세계를 보이고 있다. 이 시는 그의 초기시를 대표하는 모더니즘 계열로 전쟁으로 인해 피폐된 인간성 회복에 대한 소망을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시에서 흰나비는 단순한 묘사의 대상이 아니라, 시적 화자를 대신하는 감정 이입된 존재로서 시적 상황에 대한 일정한 인식 상태를 보여 주고 있다. ‘활주로제트기피 묻은 육체묘지등의 시어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 시에서 제기된 것은 피비릿내 나는 전쟁 상황이다. 그와 함께, ‘돌진하려는 흰나비차단하는 투명한 광선의 바다불길처럼 일어나는 인광등의 날카로운 이미지는 죽음과 직면한 화자의 절박한 한계 상황를 암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방향을 잊어버리고 / 피 묻은 육체의 파편들을 굽어보다가, 결국은 불길처럼 일어나는 인광의 조수에 밀려 / 말없이 이즈러진 날개를 파닥거리흰나비는 전쟁이라는 비극적 상황에 대항하여 인간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화자의 모습이다.

 

그에게 화려한 희망을 갖게 하는 아름다운 영토는 인간성이 복원된 세계이지만, 현실은 신도 기적도 이미 / 승천하여 버린 지 오랜전쟁터일 뿐이다. 그러나 그는 푸르른 활주로의 어느 지표에서만 피어난다는 모순된 희망을 찾아 또 한번 스스로의 신화와 더불어 대결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 준다. 이렇게 이 시는 625의 비극적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인간을 파괴하는 전쟁에 대한 시인의 비판적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이 같은 인식은 감각적 표현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는데, 이는 바로 전후(戰後) 시의 한 경향이었던 모더니즘의 특성을 잘 보여 주는 것이라 하겠다.

 

 

< 감상의 길잡이 2 >

김규동의 첫 시집 나비와 광장(1955)은 주관적인 영탄을 일삼는 종래의 낡은 시에 불만을 품고 현대문명에 걸맞는 지성과 감각, 새로운 실험 정신으로 1950년대 모더니즘을 개척하는 데 한몫을 담당한 시집이다. 후반기동인의 한 사람이었던 김규동의 모더니즘은 비교적 장단점이 분명한 특징을 갖고 있다. 기법과 감수성의 측면에서는 실험성과 참신성이 엿보이나, 모더니티(근대성)의 내적 특질을 파악하고 시로써 형상화하는 주제의 측면에서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 시는 방향을 잃고 헤매는 한 마리 연약한 나비의 모습을 통해 현실의 장벽에 부딪혀 방황하는 인간상을 그리고 있다. 이 시가 쓰여진 1950년대의 혼란스러운 전후(戰後) 현실을 감안한다면 나비의 방향 상실이 무엇에서 비롯되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정치, 사회, 경제, 윤리 등 어느 한 분야도 정립된 체제와 가치관이 없이 무정부 상태였던 당시, 개개의 인간들은 방향을 잊어버리고 피묻은 육체의 파편을 안은 채 한 모금 샘물도 없는 냉혹한 현실의 광장에서 살기 위해 파닥거리는 한 마리 나비에 다름 아니었을 것이다.

 

어린 나비의 안막을 차단하는 건, 즉 어린 나비의 눈에 보이는 건 투명한 광선의 바다밖에 없다. 3연에는 그 바다의 음울한 풍경이 난해하고 현란한 시어를 통해 표현되어 있다. 진공의 해안, 과묵한 묘지, 불길처럼 일어나는 인광(燐光)의 조수(潮水) 등은 모두 죽음을 암시하는 표상이며, 숨가쁜 Z기가 하늘에 남긴 흰 선은 전쟁을 시사한다. 나비의 눈에 비친 현실은 이렇듯 온통 죽음과 전쟁의 공포로 가득 차 있다.

 

나비의 독백에 해당하는 4연은 `아름다운 영토'`화려한 희망'에 대한 나비의 애절한 소망을 노래한다. 그것들은 앞으로 올 미래의 어느 지점에서, 나비가 날아가는 활주로의 어느 지표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설의적인 어조에서 나비의 기대가 부정적이고 불투명한 쪽으로 더 기울어져 있음이 드러난다.

 

하지만 신도 기적도 이미 사라져 버린 지 오랜, 끔찍하고 황폐한 현실 속에서도 나비는 마지막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理想)을 위해 또 한번 이 현실과 대결해 보려는 것이다. 광장의 압도적인 크기와 폭력성을 생각할 때 나비의 투쟁은 부질없는 행위로 끝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거대한 현실과 맞서 싸우려는 시인의 적극적인 자세는 마땅히 평가받아야 할 부분이다. [해설: 최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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