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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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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관한 인식

 

 

역사의 개념

 

역사는 인간 사회의 지난날에 일어난 사실들 자체를 가리키기도 하고 또 그 사실들에 관해 적어 놓은 기록을 가리키기도 한다고 흔히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날의 인간 사회에서 일어난 사실이 모두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역사라는 것은 지난날의 인간 사회에서 일어난 사실 중에서 누군가에 의해 중요한 일이라고 인정되어 뽑혀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경우 그것을 뽑은 사람은 기록을 담당한 사람 곧 역사가라고 할 수 있으며, 뽑혀진 사실이란 곧 역사책을 비롯한 각종 기록에 남은 사실이다.

 

 

역사의 필요성

 

우리가 역사를 배우고 연구하는 까닭은 과거의 사실로부터 교훈을 얻어 이를 현재와 미래에서 되살리기 위한 것이다. 즉 역사를 연구하는 목적은 과거의 사례를 통해 인류 사회의 잘잘못을 반성하고 좋은 점을 계승, 발전시켜 나가는 데 있는 것이다.

 

역사 기술의 방법

 

역사는 과거의 사실(史實)인 만큼 있는 그대로를 객관적으로 기술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이고, 과거의 잘잘못을 반성하고 좋은 점을 계승, 발전시키며 나쁜 점을 지양해 나가는 데서 역사의 발전이 이루어지는 만큼 현재의 시각에서 이를 재해석해 보는 작업도 필요하다. 또한, 시대에 따라 사회 규범이나 체제, 가치관 등이 달라지기 때문에 과거의 사실 전달에만 그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역사 의식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역사를 공부하는 목적이 올바른 역사 의식을 가지기 위해서라는 말을 가끔 듣는다. 국사나 세계사를 배워야 하는 까닭은, 그 속에 나오는 많은 인물이나 연대 혹은 사실(史實)들을 암기해서 유식하다는 말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다. 혹은 점수를 많이 따서 입시 성적을 높인다거나 취직 시험에 도움을 얻겠다는 것도 역사를 배우는 본뜻은 아니다.

 

물론, 역사를 배운다면 역사적인 사실들을 많이 알고 암기하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그것보다는 역사적인 흐름을 파악하고, 역사가 보여 주는 교훈과 정신을 바로 체득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목적이 된다고 하겠다. 우리는 이를 흔히 역사 의식을 가진다고 한다.

 

그러나 역사 의식이란 말만 가지고는 우리가 어떤 것을 역사 의식이라고 하는지 깨닫기가 어렵다. 역사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든지, 바른 역사 의식을 가지도록 노력하자는 말을 듣지만, 우리는 과연 역사 의식이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바른 역사 의식을 가질 수 있는지 막연해질 때가 많다.

 

역사 의식은 역사를 오랫동안 많이 공부하면 생기는 의식인가? 아니면, 역사 속에서 위대하고 훌륭한 것을 많이 읽고 배웠을 때에 얻어지는 의식인가? 100년 전의 역사 의식과 오늘의 역사 의식은 같은 것인가, 아니면 어떤 공통점이라도 있는가? 이런 의문들이 역사 의식이란 말을 쓸 때마다 떠오르게 된다.

 

역사 의식은 말하자면 우리의 시대 의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과거와는 다른, 과거보다는 발전된 오늘의 시대 의식을 가지는 것을 역사 의식을 가진다고 한다. 가령, 종로 거리에 어떤 한국 사람이 하오리를 입고 게다를 신고 나타났다면, 이 사람은 오늘을 일제 시대로 착각한 사람이요, 역사 의식이 없는 자라고 불리게 된다. 역사 속에는 가끔 역사 의식이 없는 사람들이 나타나곤 한다. 독일에서 나치를 재건하려고 한다든지, 일본에서 군국주의를 부활하려고 한다든지, 혹은 프랑스 혁명 뒤에 왕정을 복고하려고 했던 사람들은 모두 역사 의식을 바로 가지지 못한 시대 착오적 인간들이었음을 의미한다. 어제와는 다른, 변화된 오늘의 상황과 성격을 올바로 파악하는 사람만이 바른 역사 의식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오늘의 시대적 의미를 어떻게 올바르게 파악하는가? 같은 시대를 살면서도 그 시대의 의미를 모두 똑같이 파악하고 있지 않은 경우도 있다. 자기가 살고 있는 현재의 시대를 파악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겠지만, 지나간 시대의 역사적 의미를 파악하는 것도 그리 쉽지는 않다. 가령, 우리 나라의 일제 시대를 식민지 시대나 반봉건(反封建) 시대로 보는 사관이 있는가 하면, 근대화와 자본주의적 산업화가 이루어진 시대로 보는 사관도 있다. 심지어, 일본의 국수주의적 사가(史家)들은 일제의 점령기를 한국의 경제 발전과 교육 근대화에 크게 기여했던 시기로 긍정적으로 평가하려고까지 한다.

 

여기서, 우리는 같은 시대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도 민족주의자의 눈과, 제국주의자의 눈은 서로 다른 평가를 내리고 있음을 본다. 따라서, 오늘의 시대적 의미를 파악하는 것도 어떤 사람의 눈으로 파악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역사를 파악하는 데 있어서는 누가 보는 역사냐, 다시 말하면 역사를 보는 주체가 누구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된다. 주체가 확립되지 않고서 역사 의식이 생길 수는 없다. 이런 점에서 역사 의식은 곧 주체 의식(主體 意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역사를 보는 주체가 올바로 확립되었을 경우에만 바르게 파악할 수가 있다. 역사라는 것은 지나간 사건들과 사실들을 모두 나열하는 것은 아니다. 수천 년 동안의 역사적 사실을 있었던 그대로 모두 파악하려면, 또다시 수천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역사는 있는 사실을 모두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사실들만을 선택적으로 파악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시저가 루비콘 강을 건넜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의미있게 파악되지만, 그밖의 수백 만의 사람이 이 강을 건넜던 사실은 역사적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수많은 사실 가운데 의미 있는 것이라고 파악된 역사적 사실들은 역사를 보는 어떤 주체에 의하여 선택된 사실이다.

 

역사란, 연대기(年代記)나 일지(日誌)와는 다르다. 역사는 어차피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역사(Geschichte, History)라는 말에는 이야기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있었던 사실들 가운데 의미 있는 사건들을 골라서 연결시킨 이야기를 말한다. 이야기에는 반드시 줄거리가 있다. 무엇을 줄거리로 삼을 것이냐 하는 것도 역사의 주체를 누구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특히, 오늘날에 와서 수백 년 전이나 수천 년 전의 중세나 고대의 역사를 쓴다고 할 때, 누구를 주체로 하여 무엇을 줄거리로 잡느냐 하는 의식에 따라서 그 역사의 모양과 이야기가 전혀 달라지게 된다.

 

우리는 오늘날 한국의 고대사를 다시 써야 한다는 주장을 자주 듣게 되는데, 이것은 과거에 우리의 고대사를 정리한 사가(史家)들이 주체 의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민족사적으로 의미 있는 사료나 사실들을 무시했거나, 의도적으로 빼놓고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것을 반성한 데에서 나온 것이다. 주체 의식이 희박하거나 주체가 잘못된 역사는 바로 역사 의식을 가져올 수 없다.

 

우리는 역사의 장()이 바뀔 때마다 역사를 다시 고쳐 쓰는 경우들을 본다. , 역사의 주체가 달라지면서 역사를 보는 의식과 시각이 달라지며, 따라서 역사의 줄거리나 이야기도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옛날 군주 세대나 봉건 시대에는 임금이나 귀족들이 중심이 되는 역사가 쓰여졌고, 그래서 역사는 왕조사(王朝史)가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국민 대중들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삶이 어떻게 엮어져 왔느냐 하는 것이 역사의 관심이요, 물음이 되고 있다. 백인들이 중심이 되었던 역사가 흑인들이 중심이 되는 역사로 바뀐다든지, 혹은 오늘날 남성 위주로 쓰여진 역사를 여성들이 부각되는 역사로 다시 써야 한다는 주장들은 역사에 대한 새로운 주체 의식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역사 의식이 주체 의식을 의미한다고 할 때에 우리는 단순히 주체가 누구냐 하는 것만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그 주체가 어떠한 의지와 실천 계획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도 묻게 된다. 자연은 신이 만든 것이지만, 역사는 인간이 만드는 것이라는 명제는 비코(Vico)의 탁월한 통찰이었다. 역사는 인간이 어떤 의지와 계획을 가지고 창조하며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가는 역사 속에 나오는 인물들이 어떤 목적과 계획에서 그런 행동을 했는가를 묻고 이를 설명하려고 한다. 가령, 프랑스 혁명의 역사를 쓴다고 할 때, 역사가는 당시의 시민 계층들이 어떤 목적에서 혁명을 일으켰고, 나폴레옹은 어떤 계획으로 러시아 원정을 떠났는가 등을 알아야 역사의 줄거리를 세울 수 있다. 그래서 콜링우드(Collingwood), "역사가의 임무란 역사적 행위자들의 숨은 의도를 알아내는 것"이라고까지 했다.

 

역사가나 역사를 파악하려는 주체가 지나간 역사적 사건 속에 나오는 인물들의 의도와 목적을 파악하려는 것은, 앞으로의 역사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하는 실질적 의도와의 관계에서이다. 칸트가 '세계 시민의 의도에서 본 역사'를 파악하려 했던 것은, 바로 앞으로의 인간의 역사를 세계 시민적인 이성을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역사로 창조해야겠다는 의도와 실천 의식에서 그렇게 한 것이었다. , 헤겔이 세계사는 곧 자유의 의식에서의 진보사(進步史)라고 파악했던 것은, 앞으로의 역사가 보다 더 자유를 증대시키는 역사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실천 의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역사 의식은 이 점에서 실천 의식(實踐 意識)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우리가 역사를 배우고 파악하려는 목적은 역사를 거울 삼아 보다 나은 미래의 역사를 만들려는 데 있다. 과거의 잘못이나 오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역사를 배우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역사 속에서 본받아야 할 위대한 것이 무엇이며, 되풀이해서는 안 될 부정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구별해야 한다. 이 때, 우리는 불가피하게 실천의 필요에 따른 가치 판단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폭군이 백성들을 탄압하고, 사치와 향락을 일삼는 역사를 보면서 백성들의 권리와 자유가 지켜가는 역사를 만들어야겠다는 실천 의식이 생기며 남의 나라 지배하에서 착취당한 역사를 반성하면서 독립된 자주적 국가를 가져야 한다는 실천적 의지를 기르게 된다.

 

역사 의식을 가지고 역사를 보아야 한다는 말은 실천적 의도를 가지고 역사를 본다는 말이다. 역사는 아마도 이런 의지를 가질 때라야 바로 줄거리가 잡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는 역사적 사건들이나 사실들이란 잘 연결이 되지 않고 혼돈과 무질서만 보이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역사적인 사건들을 보면서 이를 종교 개혁이라든지, 시민 혁명이라든지, 반동 정권이라든지, 이름을 붙이는 것은 이미 어떤 역사적 실천 의식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오늘의 시대를 분단 시대라고 하는 것은, 미래의 우리 역사가 통일된 역사이어야 하겠다는 실천 의식과 의도에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를 보는 우리의 눈과 의식은 과거에만 향해 있지 않고 현재를 보면서 동시에 미래가 없다면 아마 과거를 돌이켜보는 역사적 안목이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못할 것이다. 프리드리히 슐레겔은 '역사가란 뒤를 돌이켜보는 예언자'라고 표현했다. 과거를 돌이켜보되 미래를 예견하고, 미래의 실천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말했다. 미래를 예언한다고 할 때, 무슨 점쟁이처럼 근거 없는 예측을 한다는 말은 아니다. 과거의 사실과 현재의 상황을 파악하는 토대 위에서 미래에 해야 할 실천 과제를 제기한다는 말이다. 역사 의식은 철저히 있어 온 과거의 사실, 그리고 오늘의 객관적 현실에 근거하면서 미래를 향한 실천 의식을 만들어 내는 것이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가 부단히 만나고 대화를 함으로써만이 바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올바른 역사 의식을 가진다 할 때, 우리는 주체 의식이나 실천 의식을 가졌던 사람들은 많이 있었지만, 이들이 모두 올바른 역사 의식을 가졌다고 할 수 있겠는가? 주체적인 실천 의식을 가지고 남의 나라를 침략하기도 하고, 혁명을 일으키기도 하며, 저항 같은 시대 속에 살면서도, 같은 역사 의식을 강조하면서도, 한 쪽에서는 자유주의나 민주주의를 실천 의식으로 받아들이고, 다른 쪽에서는 평등주의나 사회주의를 실천 의식으로 내세우는 경우에 우리는 어떤 것이 과연 올바른 역사 의식인가를 알아 내기가 곤란하게 된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올바른 역사 의식을 만드는 조건이 무엇인가를 물어보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 의식은 아무에 의해서나 남용될 수 있고, 또 악용될 소지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개조하는 것은 좋은 일이겠지만, 역사 속에는 세상을 더 나쁘게 변화시키고 개선(改善)이 아닌 개악(改惡)시키는 운동이나 테러 행위를 자행하는 일들을 우리는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때로는 질서와 안정을 지키려는 세력과 저항과 변혁을 일으키는 세력들이 모두 역사 의식을 내세우며, 주체적인 실천 의식을 강조하는 경우들도 흔히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올바른 역사 의식을 가지기 위해서는 윤리 의식과 비판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역사 의식이 아무리 시대 의식이나 주체 의식, 실천 의식을 지녔다고 해도 윤리적인 정당성을 지니지 못하면, 우리는 이것을 올바른 역사 의식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족 주체성을 강조하는 역사 의식이 남의 자유를 짓밟고, 타민족을 침략하게 되면 윤리성이 결여되기 때문에 바른 역사 의식이 될 수 없다. 혹은 역사 의식을 강조하면서 내세우는 근대화 운동, 대약진 운동 혹은 개발 운동들이 하나의 목표에만 매달린 채 윤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수단을 동원하는 경우에 올바른 역사 의식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역사를 후퇴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따라서, 올바른 역사 의식은 항상 그것이 윤리적으로 정당한 목표와 수단을 가진 실천 의식인가를 반성해 보며 검토해 보는 비판 의식을 수반해야 한다. 역사 의식은, 더군다나 주체 의식과 실천 의식을 강조한 나머지, 지나치게 독단적이고 주관적인 가치 평가에 얽매이게 되기 쉽다. 이 점에서는 역사 의식이나 혹은 역사 의식을 강조하는 역사주의가 허위 의식(虛僞 意識)이나 잘못된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위험이 충분히 있다고 하겠다. 포퍼는 이를 '역사주의의 빈곤'에서 잘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사상은 역사적 전체성을 바로 통찰한 결과로 나온 바른 실천 의식이다"라는 주장은 실증적인 진리가 될 수 없으며, 이기적 목적에 이용되기 쉬운, 주관적이며 편협한 인식이 되기 쉽다고 포퍼는 경고했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역사 의식은 어떤 객관적인 절데 진리로서 주장될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현실을 경험적으로 인식하고 반성하면서, 실천적인 목표를 선정하는 주관적이며 상대적인 신념으로서 겸손히 주장되어야 할 것이다. 그 인식론적 위치는 수학적인 인식이나 생물학적인 이론과는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은 비교적 법칙적이고 보편적인 자연 현상과는 달리, 일회적이고 특수적인 역사적 상황 속에서, 인간이 주관적인 의지를 가지고 분석하고 판단하며 행위하는 과정에서 만들어 내는 실천적이며 규범적인 진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집(我執)과 이해 관계와 특수한 경험에 좌우되기 쉽고, 더구나 힘을 가진 자들이 자기 정당화를 위해 내세우는 도구가 되기도 쉽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 의식을 가지되 건전하고 올바른 역사 의식을 가지는 데 관심을 두어야 한다. 역사 의식이 가지기 쉬운 주관성, 일면성, 과장성, 독단성, 비윤리성을 항상 반성하고 비판하는 비판 정신을 견지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역사의 바른 해석은 이데올로기 비판을 거칠 때에 가능하다고 하버마스(Habermas)는 주장하고 있다.

 

오늘날, 역사 의식은 도처에서 주장되고 강조되고 있다. 우리는 도저히 역사 의식이 없이 살 수는 없다. 오늘의 역사를 배우고 이해하는 데에도 요구되며, 지나간 역사를 바로 쓰는 데에도 필요할 뿐만 아니라, 내일의 역사를 새롭게 만드는 데 있어서도 역사 의식은 필수 불가결의 요소이다. 문제는, 바른 역사 의식을 얻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여러 단계 의식과, 이들을 검증하며 반성해 줄 만한 비판 정신을 함께 갖추는 것이 중요한 일인 것이다.

 

역사는 진보하는가

 

역사는 무한히 진보하는 것인가? 역사는 멸망하지 않고 무한히 발전하는 것인가? 역사는 과연 종말이 없을까? 있다면 언제일까? 이러한 의문은 늘 제기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 하면 우리의 생활 수준과 생활 양식 자체가 바뀌고 그것이 사회의 발전에 따른 결과임을 인식하고 또 사회의 변화가 발전적인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누구나 의문의 여지없이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직접 경험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과거의 역사적 기록과 전해들은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과거에 비해 얼마나 발전된 사회인가를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상식에 비추어 본다면 역사가 멸망할지 모른다고 의심한다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인 문제 제기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역사의 종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마 역사의 종말을 주장하는 전형적인 경우들은 대체로 종교적인, 예언적인 형태로 표현되었다. 이러한 종말론이 센세이셔날하게 유포되었던 것은 몇 년 전에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휴거(携擧)가 도래했다는 일부 사이비 기독교인들에 의해서였다. 그러나 휴거는 일어나지 않았고, 휴거를 선전하고 다녔던 목사도 구속된 이후 휴거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또 인류 역사에서 나타나는 비극적인 사건에 대해, 가령 프랑스 왕 앙리 2세와 케네디 대통령의 죽음뿐만 아니라 히틀러의 출현과 제2차 세계 대전을 예언했던, 과학자이자 미래 학자 노스트라다무스의 1999년 세계가 종말을 고하게 괼 것이라는 예언도 역사의 종말을 이야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종말론이 종교나 예언서에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역사 이론에서도 종말론은 나타난다. 종교에서의 종말론이 사회의 역동성이 감소되고 정체될 때 나타나듯이, 역사 이론에서의 종말론도 세기말적 시기에 주로 나타났다. 대표적인 경우가 영국의 사학자 슈펭글러가 이야기한 '서구의 몰락'이다. 그는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에 이르는 서구의 역사 과정을 지켜보면 서구 사회는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통상 '종말론'은 역사의 종말을 가정하는 비관적인 이론 및 종교로 이해한다. 그러나 종말론은 단순히 비관적인 내용만을 말하지 않는다. 원래 기독교에서의 종말은 천년 왕국의 실현을 의미하는 것으로, 따라서 그 종말은 인류의 완성과 실현으로서 어느 시기가 되면 천년 왕국이 실현된다는 매우 낙관적인 내용을 지니고 있는 것이었다.

 

최근에 보이는 역사 이론에서의 종말론은 일본인 사학자 F. 후쿠야마가 쓴 세계의 종말이라는 책에서 보여진다. 이 책은 자본주의 사회는 더 이상 새로운 사회로 발전해 나갈 수 없으며, 따라서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가 역사의 완성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에서도 '종말'은 인류의 파멸이 아니라 역사의 완성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낙관적인 관점이든 비관적 관점이 든 종말론적 역사 이론은 더 이상 역사가 발전하지 않는다는 사실 판단에서는 동일한 입장을 취한다. 낙관적 관점에서는 역사가 완성되었기 때문에 역사의 진보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반면, 비관적 관점에서는 인류가 파멸되기 때문에 역사의 진보가 없다고 주장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어쨌든 이들 두 가지 종말론은 역사의 진보를 부정한다.

 

1) 필연성으로서의 역사 진보

 

그렇다면 앞으로 역사의 진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인가? 예컨대 포스트모더니즘을 표방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이성에 의해 역사가 보다 완성된 사회로, 보다 진보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거부한다.

 

그들은 오히려 이성을 지니고 있는 인간에 의해 역사가 진보한다는 생각은 '근대성'에 한계지워진 생각이라고 주장하면서, 현재의 시기는 포스트모던의 시기이기 때문에 근대성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권고한다. 포스트모더니즘에 의하면, 이성적 주체에 의해 역사가 진보한다는 근대적인 사고는 역사에 일정한 목표가 있다고 보는 목적론이며, 이러한 목적론은 인간을 특정한 목적에 종속시키는 전체주의적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으므로 비판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사가 진보한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인간 역사의 진보에 대한 신념은 여전히 지배적이다. 단지 어떻게 어디를 향해 진보하느냐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중세의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세계의 창조자로서 인격신의 섭리가 역사에 작용한다고 보고 세계를 신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해석하였다. 이러한 역사관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에서 구체적으로 보이는데, 거기에서는 인격신으로서 창조자에 대한 믿음과 같은 목적론을 전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근대 이후 역사 철학의 주요한 주제는 이와 같은 창조신을 목적으로 파악하는 목적론을 배제하면서 어떻게 역사의 진보를 설명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 되었다. 따라서 근대 이후 역사 이론가들은 신의 섭리 대신에 인간 이성에 의해 이성적 사회를 건설하는 것으로 역사의 진보를 설명하려 하였다. 근대의 사회 계약론자들은 이성적 주체의 계약에 의해 자연 상태로부터 벗어나 이성적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헤겔은 인간 이성에 의해 자유가 확장되는 역사적 과정을 설명하려 하였다. 특히 그는 근대 사회에서 개인의 이기심과 이성적 사회가, 개인의 주관적 욕망(개인의 자유)과 사회의 보편적 목적(이성적 국가)이 모순을 야기함에도 불구하고 그 모순을 조화롭게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반면 마르크스는 헤겔이 지적한 근대 사회의 모순, 즉 경제적 토대와 상부 구조의 모순으로 말미암아 근대 시민 사회는 필연적으로 붕괴할 수밖에 없고, 근대 사회와 구별되는 새로운 이성적 사회가 도래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에 필연적 법칙이 있다는 것은 과연 가능한가? 그리고 역사에 적용되는 법칙은 자연 과학의 법칙과 같은 성격의 것일까? 다르다면 어떤 점이 어떻게 다른가? 역사에도 자연 법칙과 같은 필연적 법칙이 적용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가령 홉스나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자들은 사회나 역사도 물질적 사물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여 결국 그 당시에 발견된 자연 법칙이 적용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인간 사회와 역사는 인간의 의식과 의지를 매개로 해서만 성립될 수 있다. 자연과 사회가 구별되는 것은 자연이 무의식적 물질의 기계적 운동을 통해 변화한다면 사회는 의식과 의지를 지닌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과 실천에 의해 변화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 과정에 자연의 법칙과 똑같은 기계적 법칙이 적용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역사에도 법칙이 있다고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처럼 사회나 역사가 인간의 의지나 의식에 의해서만 성립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의지나 의식이 변경할 수 없는 구조적 필연성이 있기 때문에 사회나 역사도 역시 법칙적으로 파악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때의 법칙은 자연 법칙과는 구별되는 구조적 필연성, 혹은 역사적 필연성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역사적 필연성을 옹호하는 이론을 '결정론'이라고 말한다.

 

2) 역사적 필연성과 인간의 자유

 

역사에 필연적 법칙이 있다는 생각은 많은 사람을 진보적 방향으로 실천하도록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매우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마르크스주의는 역사적 필연성에 따라 자본주의 사회는 노동 계급에 의해 사회주의로 이행한다고 주장했고, 그의 이와 같은 역사 법칙은 많은 국가에서 노동 계급들의 실천의 지침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역사적 필연성을 강조하는 것이 꼭 진보적인 역사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역사적 필연성을 일면적으로 강조하게 되면 역사가 필연성 법칙에 의해 발전한다면 인간은 아무런 실천을 할 필요가 없게 되며, 인간의 실천이 없는 역사의 발전이란 모순된 결론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역사 발전을 설명하기 위해 필연적 법칙만을 주장하게 되면, 역사 과정 속에서 인간의 의지와 의식에 의한 선택의 자유는 존립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포퍼(K. Popper)와 같은 사람은 역사에 필연적 법칙이 있다고 주장하는 이론은 틀림없이 전체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포퍼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역사가 필연적 법칙에 의해 발전한다는 역사주의(가령, 헤겔이나 마르크스 등) '닫힌 사회'를 옹호하는 전체주의 이론이라 비판한다. 포퍼는 사회나 역사 과정에서 인간의 의식과 의지에 의한 선택을 강조하면서 개인의 의식적 선택을 자율적 선택에 의해 이루어진 '열린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개인의 자율적 선택을 강조하는 경향을 '자유주의'라고 부른다.

 

오늘날 이와 같은 자유주의를 거부한다는 것은 명분상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론적으로 보면 자유주의는 결정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자유주의는 역사가 진보하는 방향을 제시할 수 없다는 약점을 지닌다. 왜냐 하면 개인의 자율적 선택만을 강조할 때, 개인들의 무정부적인 자유에 따른 혼돈이 야기될 뿐 사회 전체의 변화에 대한 항의를 이끌어 낼 수 없기 때문에 결코 사회 변화를 지지하지 않게 된다.

 

3) 역사에서 결정론을 약화시키려는 시도들

 

결정론과 자유주의의 대립은 오늘날의 역사 철학에서도 매우 중요한 쟁점 중의 하나이다. 역사에서 필연성과 인간의 자유는 역사를 설명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두 축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 필연성을 옹호하는 결정론과 인간의 자율적 선택을 강조하는 자유주의는 그 나름의 정당성을 지니면서, 서로 화해할 수 없는 평행선을 그을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이 양자를 조화시켜 보려는 이론적 시도들이 제시되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자유주의자들의 비판을 고려하여 결정론을 보다 약하게 해석함과 아울러 사회의 다양한 요소, 그 중에서도 특히 문화적 요소를 끌어들이고자 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도는 인간의 의지적, 의식적 요소를 역사 과정의 중요한 범주로 파악하고자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에 따르면 특정한 요소로 전 역사 과정을 설명하는 것은 매우 제한적일 수 있다. 중세는 종교가 지배적인 요소였다면 자본주의 사회는 물질적 요소가 지배적이었다.

 

그렇다면 미래 사화를 지배하는 것이 물질적 과정이라는 필연성 또한 없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역사 과정에 문화적 범주를 끌어들여 결정론적 성격을 약화시키고자 하는 이론들은 미래 사회에서는 오히려 문화적 요소가 보다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 주장한다.

 

따라서 이들은 역사 과정에서 결정론을 약화시키면서 다양성과 다원성을 도입하고자 한다. 그러나 문화적 요소를 일면적으로 강조할 경우, 문화 결정론이 될 가능성은 없는 것인가, 나아가 과연 문화가 역사에서 결정적인 요소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최근 국제화니 세계화니 하면서 자본의 직접적인 경쟁이 전면에 등장하는 지금 과연 문화적인 요소가 지배적일 수 있다는 생각에 대해 맹목적 문화주의라고 비판하는 것도 이러한 문제 제기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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