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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사관이란 무엇인가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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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사관

 

 

식민사관이란 일제가 식민지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생각해 낸 왜곡된 한국 사관이다.

 

 

식민사관과 관련된 사례

 

식민 사관을 강력히 설파했던 인물은 우리가 대표적인 민족주의자로 알고 있는 춘원 이광수이다. 그가 쓴 <민족 개조론(民族改造論)>(1922)에서 그 실상이 단적으로 확인되거니와, 여기서 그가 민족성을 얼마나 왜곡하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목격할 수 있다.

 

 

머리를 돌려 조선 민족이 이처럼 쇠잔한 진인(眞因)을 찾아봅시다. 조선 민족이 어떻게 이처럼 쇠퇴하였느냐 하는 문제에 대하여 일인은 흔히 이조의 악정(惡政)이 그 원인이라고 하고, 서양인도 그것과 같은 뜻으로 Mal-adminstration(악정)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 민족의 쇠퇴의 가장 직접적이고 총괄적인 원인인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조금도 원인을 설명한 것은 아니니 이는 마치 영미가 강성한 것은 그 선정(善政)에 말미암은 것이라 하는 것과 같이 무의미한 말입니다. 구태여 악정이라고 하는 말에 무슨 의미가 있다고 하면 그것은 "조선 민족의 쇠퇴의 책임은 그 정치 계급 즉 국왕과 양반에게 있다"할 것입니다. (중략) 곧 정사를 행함에 국가와 민생을 위하여 하지 아니하고 자기 일개인 또는 자기와 이해 관계를 같이 하는 일당파의 이익을 위하여 하는 악정입니다. 가령 모()가 영의정이 되었다고 합시다. 그는 관리의 임면(任免)*이나 만반 시설을 국가를 위하여 하기보다 첫째 자기 일신의 권세, 둘째 자기의 친척 붕우의 출세, 셋째 자기와 휴척(休戚)*을 같이 하는 노론이나 소론의 권세를 위하여 합니다. 따라서 그의 손으로 나온 모든 공직을 띤 자가 다 이러합니다. 조선의 악정은 실로 이러한 종류의 악정이었습니다.

 

<민족 개조론> 중의 일부

 

이러한 의견과 함께 일본 우파 인사들의 호전적 태도를 비판하면서 이 문제에 접근할 수도 있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사건이나 최근 세계적 문제가 된 정신대 사건, 우익 인사들의 반전 선언 반대 사건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은 아직까지도 대동아 공영권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이 아시아의 중심이자 세계의 중심이라는 점, 따라서 주변의 한국이나 중국 등은 일본을 중심으로 단결해서 인류의 미래를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서 이들은 과거의 침략 전쟁은 온당한 것이고, 결코 잘못된 점이 없다고 강변하는 것이다. 와타나베 전 외무상의 "한일 합방은 무력 체결된 것이 아니다"라는 발언 역시 이들의 왜곡된 사관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이처럼 일본인들은 아직도 식민사관의 환상에 젖어 있고, 앞으로 언제든지 그것을 되풀이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식민사관의 논리

 

이것은 크게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는 반도적 성격론이요, 둘은 정체성론이고 셋은 당파성론이다. 이 세 가지를 축으로 일본은 한국 민족이 독립 국가로서의 권리를 누릴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일본의 한국 지배를 합리화했던 것이다.

 

1) 반도적 성격론

 

반도적 성격론은, 한국은 대륙에 붙어 있는 작은 반도(半島)라는 지리적 성격으로 인하여 주변 세력의 흥망(興亡)에 의하여 그 역사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한반도에는 세 개의 세력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하나는 중국으로부터의 힘이고, 둘은 만주 방면으로부터의 힘(러시아)이며, 셋은 바다로부터의 힘(일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청일 전쟁과 노일 전쟁으로 대륙 방면에서 작용하는 힘은 차례로 붕괴되어 조선 반도는 해방을 보게 되었고, 따라서 남은 하나의 힘인 일본에 의해서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반도가 지닌 이러한 성격으로 인하여 한국은 대외적으로 뿐만 아니라 민족성이나 학문에서도 주변성(周邊性), 다린성(多隣性)을 특성으로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리적 결정론은 역사적 사실에도 부합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역사를 보는 시각 역시 상당히 왜곡된 것이다. 반도의 작은 국토를 가지고도 대제국을 건설한 나라(이탈리아)가 있으며, 또 대륙의 넓은 국토를 가지고도 다른 나라에 정복된 예(몽고)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땅덩어리를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해서는 안 되며, 대신 인간의 삶을 중심으로 역사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압록강과 두만강 이남에 우리의 국토가 한정되어 있다 하더라도 강대국이 될 수 있으며, 또 강대국이란 결코 군사력만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여러 면에서 모든 민족 구성원이 균등한 권리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 군사적 강대국보다 몇 배나 바람직스러운 것이다.

 

2) 정체성론

 

'아시아의 정체성'이라는 말은 식민사관의 한 축인 정체성론의 성격을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다. 원래 '아시아적 정체성'이라는 개념은 근대 유럽인들이 아시아 지역에 식민지를 건설하는 제국주의적 진출의 과정에서, 그들의 식민 정책을 합리화하기 위해 창조한 이론이었다. 숙명적으로 정체화된 사회에서 자력 갱생(自力更生)할 능력도 없이 무기력한 상태에서 허덕이는 후진 아시아인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유럽인들이 아시아 지역에 진출했고, 따라서 식민지 경영은 결코 비난받을 행위가 아니라는 논리였다. 식민 사관의 일환인 한반도 정체성론은, 아시아인임에도 불구하고 탈아적(脫亞的) 입장에서 아시아인이 아니라는 것을 자부했던 일본이 한국과 중국에 대한 제국주의적 침략을 전개하면서 서구의 논리를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즉 자기의 능력으로 더 이상 발달할 가망이 없는 한국에 대해서, 정치적 진출을 강행해서 경제적 진보와 발전을 도모해 주는 것은 이웃 선진 국가인 일본의 숭고한 사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서양이나 일본이 이러한 자부심의 근거로 내세운 것은 모두 봉건 제도(封建制度)의 결여라는 점이다. 즉 서구적인 의미의 봉건 제도가 한국에는 없었기 때문에 근대화 과정이 늦었고 정체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구적 봉건 제도가 근대 사회로 진입하려는 과정에서 반드시 성공적인 도약을 약속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봉건 제도가 완강하면 완강할수록 근대로의 전환이 어려웠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자면, 이러한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다. 최근, 서양과 같은 형태의 봉건 시대가 존재하지 않았던 우리 나라나 중국을 비롯한 동남 아시아 각국의 눈부신 경제 도약은 이러한 논리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3) 당파성론

 

당파성론은, 붕당(朋黨)과 파벌(派閥)이 우리 민족의 본질적 속성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싸우고 분열한다는 내용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조선 왕조가 당쟁 때문에 망했다고 믿는 것은 이런 당파성론의 왜곡된 역사 해석 때문이다. 당쟁(黨爭)이란 말은 원래 조선시대부터 있던 말이 아니라, 한말, 일제하에서 조선 왕조의 정치와 역사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려는 의도에서 새로이 만들어졌다. 일인(日人) 학자들이 우리 민족의 파쟁성을 부각시켜 '붕당간의 싸움'이라는 뜻으로 이 말을 만들어 쓴 것이다. 경제 생활의 곤궁과 그에 따른 사회 생활의 문란 역시 당쟁의 만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하며, 심지어 "조선 사람의 혈액에는 특이한 검푸른 피가 섞여 있다"는 말까지 서슴없이 할 정도로 정쟁이 여러 대에 걸쳐 계속되었던 것이고, 결코 고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일인 학자들까지 있다.

 

식민사관에 대한 비판

 

이러한 주장은 근거를 들어 비판할 것까지 없이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비역사적인 태도인가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500년이나 되는 조선시대의 정치를 당쟁이라는 것 하나로 묶는 것 자체가 매우 비역사적 태도인 것이다. 조선의 정치는, <택리지(擇里志)>(이중환) <조선문명사(朝鮮文明史)>(안확) 등에서 알 수 있듯이, 당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최소한 두 번 이상의 질적인 변화가 있었으며, 또 당쟁은 일인들의 주장과는 달리 자치제(自治制)의 산물인 것이다. 즉 당파가 서로 격렬한 논쟁을 벌임으로써 정치의 운행은 폐단을 고치고 해를 없애면서 중정(中正)의 도()를 획득하고 더욱 진보해 간 것이다. 우리의 근대 정치는 당파로 인하여 발달을 이루고 오히려 당파가 진보치 못하고 두절(杜絶)함으로 말미암아 정치가 쇠퇴하였다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이다.

 

일제의 식민 사관을 아직도 청산하지 못하고 광복 50주년을 맞는 지금, 우리는 왜곡된 사관의 내용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이다. 최근 되풀이되는 일본인의 망언 역시 이런 왜곡된 사관과 관계된다는 점을 인식하고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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