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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마(驛馬) / 해설 / 김동리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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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마(驛馬) - 김동리



작가 : 김동리

갈래 : 단편 소설

배경 : 공간(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 지역인 화개 장터)

성격 : 무속적. 운명적, 토속적

시점 : 전지적작가 시점

문체 : 간결체

상징 : 역마 - 사회에 정착하지 못하고 유랑할 수밖에 없는 운명

화개 - 남녀 간의 사랑

구성 : 단순 구성. 입체적 구성

발단 - 옥화는 아들 성기의 역마살을 없애려 하고, 체장수는 계연을 옥화에게 두고 떠남 - 화개 장터에서 주막을 운영하며 살고 있는 옥화는 외아들 성기의 타고난 역마살을 없애기 위해 승적에 이름을 올리는 등 갖은 노력을 기울인다. 옥화의 아버지인 남사당패의 옛 우두머리는 체 장수가 되어, 40여 년만에 이 주막에 들러 어린 딸 계연을 맡겨 놓고 간다.

전개 - 옥화의 아들인 성기와 체장수의 딸인 계연은 서로 사랑함 - 옥화는 계연을 성기와 맺어 주면 성기가 역마살을 극복하고 정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위기 - 옥화가 계연의 왼쪽 귓바퀴의 사마귀를 보고 동생이 아닐까 하는 예감을 가짐 - 어느 날, 옥화는 계연의 왼쪽 귓바퀴 위에 난 사마귀를 발견하고 자신의 이복동생이 아닐까 의심한다.

절정 - 계연이 성기의 이복 이모임을 밝혀지고, 둘의 사랑이 운명적으로 좌절됨 - 체 장수 영감이 들려준 이야기를 통해 옥화는 36년 전 화개 장터에서 어떤 여인과 하룻밤 관계한 일로 태어난 딸이 자신이며, 계연은 이복동생임을 알게 된다. 계연과 성기의 사랑은 천륜에 의해 운명적으로 좌절되고, 계연은 아버지인 체 장수를 따라 여수로 떠나게 된다.

결말 - 성기는 중병을 앓게 되고 병이 낫자 운명에 순응하여 길을 떠남 -   계연이 떠난 후 성기는 중병을 앓는다. 병이 낫자 성기는 엿판을 메고 화개 장터를 떠난다.

제재 : 역마살이 낀 인간의 운명

주제 : 한국적 운명관에 순응하는 삶과 인간의 구원 문제, 팔자 소관에 순응함으로써 죽음에서 구제 받으려고 함. 운명에 순응함으로써 구원됨. 한국적 운명관(역마살)에의 순종과 그에 따른 인간성의 구현.

등장 인물 :

성기 : 역마살을 타고난 운명적 인물. 남사당패를 외할아버지로, 떠돌이 중을 아버지로 둔 인물로 계연을 만나 사랑을 느끼지만, 계연과의 사랑의 좌절로 역마살을 극복하지 못하고 팔자에 따라 고향을 떠남.

옥화 : 성기의 모. 주막을 운영하고 아들의 역마살 제거에 힘쓰나 실패하고 운명을 받아들임.

계연 : 옥화의 이복 동생. 성기를 사랑하나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아버지를 따라 떠남.

체장수 : 계연의 부. 역마살이 낀 인물로 36년 전 옥화의 어머니와 관계한일이 있음.

특징 : 한국적 운명 의식을 돋움으로 하고 있으며, 시간적·공간적 배경이 상징적으로 처리되었고, 시간의 전개에 따른 5단 구성을 취하면서도 내용상 역전적 구성의 면모를 띰

출전 : <백민(白民)>(1948)

줄거리 : 화개 장터에서 주막을 운영하며 살고 있는, 마음 착하고 인심 좋은 옥화는 아들 성기의 타고난 역마살을 없애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역마살을 타고 난 주인공 성기는 결혼에는 관심이 없고 어디론가 떠돌아다니고 싶어한다. 어머니 옥화는 성기의 역마살을 없애기 위해 열 살 때부터 절에 보내어 중노릇을 시키거나 색시들을 두고 접근하게 하기도 하지만 성기는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는다.

 어느 날, 체 장수 영감이 딸 계연을 데리고 와 옥화네 주막에 맡기고 떠난다. 옥화는 계연을 성기와 가까이 하게 해서 둘을 결혼시켜 역마살을 극복, 아들 성기를 정착시키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옥화는 계연의 왼쪽 귓바퀴 위에 난 사마귀를 발견, 자신의 동생이 아닐까 의심한다.

 체 장수 영감이 돌아와 들려준 이야기로 예감은 현실로 증명된다. 즉, 36년 전 화개 장터에서 어떤 떠돌이 여인과 하룻밤 관계한 일로 태어난 딸이 옥화이며, 계연은 결국 옥화의 이복 동생임이 밝혀진다. 계연과 성기의 사랑은 천륜에 의해 운명적으로 좌절된다.

 그 일이 있은 후, 계연은 아버지인 체 장수를 따라 아버지의 고향인 여수로 떠나고, 성기는 중병을 앓는다. 옥화의 이야기를 들은 성기는 기력을 되찾아 운명에 순응하며 엿판 하나를 구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정처 없이 길을 떠나 화개 장터를 떠난다.



역마는 '역마살'의 준말로 떠돌이 운명을 가진 성기의 삶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역마살(驛馬煞)은 늘 분주하게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게 된 액운의 하나로 운명이란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 또는 그것에 의하여 이미 정하여져 있는 목숨이나 처지로 그것을 거부하거나 극복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작품은 '역마살'이라는 운명을 지니고 태어난 청년의 사랑과 삶을 통해 운명을 거부할 수 없는 힘과 그것에 순응하는 삶의 구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전략> 사흘 뒤에 성기가 다시 절에서 내려오니까, 체장수 영감은 마루 위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고, 계연은 고개를 떨어뜨린 채[좋아하게 된 성기를 떠나야 하기 때문] 마루 끝에 걸터앉아 있었다. 머리를 감아 빗고 새 옷 ― 새 옷이래야 전날의 그 항라[명주·모시·무명실 따위로 짠 피륙의 하나로 구멍이 송송 뚫어진 여름 옷감] 적삼을 다시 빨아 다린 것 ― 을 갈아입고 조그만 보따리 하나를 곁에 두고 수심에 잠겨 있던 계연은, 성기를 보자 그 꽃같이 선연한[산뜻하고 아름다운] 두 눈에 갑자기 기쁨을 띠며[좋아하게 된 성기를 보게 되었기 때문에] 허리를 일으켰다. 그러나 바로 그 다음 순간, 그 노기를 띤 듯한 도톰한 입 은 분명히 그들 사이에 일어난 어떤 절박하고 불행한 사실[자신이 성기가 있는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 자신과 성기가 이모와 조카 사이라는 사실]을 전하고 있었다.[그러나 바로 그 다음 순간, 그 노기를 띤 듯한 도톰한 입술은 분명히 그들 사이에 일어난 어떤 절박하고 불행한 사실을 전하고 있었다. : 계연이가 시방 떠난다는 말에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안타까운 심리가 묘사되어 있으며 사건 전개에 암시성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막걸리 사발을 들어 영감에게 권하고 있던 옥화는 성기를 보자,

“계연이가 시방 떠난단다.”

대번에 이렇게 말했다.

옥화의 말을 들으면 영감은 그 전날 성기가 절로 올라가던 날 저녁때 돌아왔었더라는 것이었다. 그 이튿날이니까, 즉 어저께, 영감은 계연이를 데리고 떠나려고 하는 것을 하루 더 쉬어 가라고 만류를 해서[성기와 계연이 맺어질 수 없는 관계임을 알고 있음에도 옥화가 절에서 내려온 성기가 계연과 이별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음을 의미], 그래, 오늘 아침엔 일찍이 떠난다고 이렇게 막 행장(行裝)을 차려서 나서는 길이라 하였다.[그 사이에 있었던 사건을 요약적으로 제시함]

그러나 이것은 실상 모두 나중에 들어서 알게 된 것이었다. 처음 그는 쇠뭉치로 돌연히 머리를 얻어맞은 것같이 골치가 띵하며, 전신의 피가 어느 한 곳으로 쫙 모이는 듯한, 양쪽 귀가 머리 위로 쭝긋이 당기어 올라가는 듯한, 혀가 목구멍 속으로 오그라들어가는 듯한, 눈 언저리에 퍼어런 불이 번쩍번쩍 나는 듯한 어지러움과 노여움과 조마로움이 한데 뭉쳐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그의 전신을 휩쓸어 가는 듯하였다[성기가 받은 심리적 충격 / 계연이 떠난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듣고 성기가 받은 심리적 충격을 묘사하고 있다]. 그는 지금껏 이렇게까지 계연에게 마음이 가 있어, 떨어질 수 없게 되었으리라고는 너무도 뜻밖이었다.[성기는 계연과의 이별을 앞두고서야 자신이 계연을 사랑하고 있음을 깨달았는데, 이렇게까지 그녀를 사랑하는 줄은 그 역시 전에는 몰랐다는 의미] 그것이 이제 영원히 헤어지려는 이 순간에 와서야 갑자기 심지에 불을 켜듯 확 타오를 마련이던가 하는 것이 자꾸만 꿈과 같았다. 자칫하면 체면도 염치도 다 놓고 엉엉 울음이 터질 것만 같이 목이 징징 우는 것을, 그러는 중에서도 이 얼굴을 어머니에게 보여서는 아니 된다는 의식에서 떨리는 입술을 깨물며[성기가 계연과의 이별을 슬퍼하는 모습을 옥화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의미한다. 이는 옥화가 성기와 계연의 사랑을 달가와하지 않았음을 암시], 마루 끝에 궁둥이를 찧듯 털썩 앉아 버렸다.[자신의 상황을 돌이킬 수 없다는 체념 때문]

“아들 참 잘 생겼소.”

영감은 분명히 성기를 두고 하는 말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성기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지 않은 채, 그들에게 무슨 적의[(敵意) : 적대감. 해칠 마음으로 전체적 내용을 고려할 때 헤어져야만 하는 운명]나 품은 듯이 앉아 있었다.[실제로 적의를 품었다기보다는 계연이 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앉아 있는 모습을 묘사]

옥화는 그 동안 성기에게 역시 또 체장수 영감의 이야기를 해 들려주고 있는 모양이었다[서술자의 존재가 느껴지는 구절]. ― 지리산 속에서 우연히 옛날 고향 친구의 아들이 된다는 낯선 양반을 만났다. 그는 영감의 고향인 여수에서 큰 공장을 경영하는 실업가로, 지리산 유람을 들어왔다가 이야기 끝에 이 영감과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는 영감에게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 살자고 한다. 영감은 문득 고향 생각도 날 겸 그 청년의 도움으로 어떻게 형편이 좀 필 것같이도 생각되어 그를 따라 여수로 돌아가기로 결심을하고 나오는 길이다. ―[사건이 요약적으로 제시된 부분으로 계연이 떠나야 하는 까닭을 설명하고 있다. / 지리산 속에서 우연히 옛날 고향 친구의 아들이 된다는 낯선 양반을 만났다. 그는 영감의 고향인 여수에서 큰 공장을 경영하는 실업가로, 지리산 유람을 들어왔다가 이야기 끝에 이 영감과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는 영감에게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 살자고 한다. 영감은 문득 고향 생각도 날겸 그 청년의 도움으로 어떻게 형편이 좀 필 것같이도 생각되어 그를 따라 여수로 돌아가기로 결심을 하고 나오는 길이다. : 독자에게 신뢰성을 주기 위해 이야기 형식으로 제시되는 사건의요약적 제시. 이러한 요약적 제시는 사건과 사건에 필연성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너무 잦아 극적 긴장감을 떨어뜨리고 있다.] 옥화가 무어라고 한참 하는 이야기는 대개 이러한 의미인 듯하였으나, 조마롭고 어지럽고 노여움으로 이미 두 귀가 멍멍하여진[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운명에 대한 원망 때문에] 그에게는 다만 벌 떼처럼 무엇이 왕왕거릴 뿐 아무것도 분명히 들리지도 않았다.[계연이가 떠난다는 소식에 충격을 심하게 받았기 때문]

“막걸리 맛이 어찌나 좋은지 배가 부르당게.”

그 동안 마지막 술잔을 들이키고 난 영감은 부채와 지팡이를 집어들며 이렇게 말했다.

“여수 쪽으로 가시게 되면 영영 못 보게 되겠구만요.”[체 장수 영감은 사실 옥화의 아버지로, 아버지와 영영 헤어져야 하는 딸의 안타까운 심정이 나타난다]

옥화도 영감을 따라 일어서며 이렇게 말했다.

“사람 일을 누가 알간디. 인연 있음 또 볼 것이지.”[체장수 영감은 사람의 앞일을 인연이나 운명의 소관으로 돌리고 있다. 이는 등장 인물들이 보이는 공통된 태도로, 작품의 주제와 연결되기도 한다. / 사람의 앞일을 인연 또는 운명으로 돌리고 있는 부분이다. 이는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보이는 공통적인 태도로, 작품 전체의 주제인 운명에 대한 인식과 순응의 태도를 단정적으로 말하는 부분이다.]

영감은 커다란 미투리[ '미투리'의 방언. 삼 껍질로 짚신처럼 삼은 신. 망혜(芒鞋)]에 발을 꿰며[신발을 신으며 ] 말했다.

“아가[옥화가 계연이를 부르는 말], 잘 가거라.”

옥화는 계연의 조그만 보따리에다 돈이 든 꽃주머니를 넣어 주며 하직을 하였다. 계연은 애걸[사정하여 빎]하듯 호소하듯한[옥화에게 여기 남아 같이 살자는 이야기를 해 달라고] 붉은 두 눈으로 한참 동안 옥화의 얼굴을 쳐다보고만 있었다.[성기와 헤어지기 싫은 마음에 떠나지 않게 해 달라고 애원하는 눈빛이다]

“또 오너라.”

옥화는 계연의 머리를 쓸어 주며 다만 이렇게 말하였고, 그러자 계연은 옥화의 가슴에다 얼굴을 묻으며 엉엉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하였다.

옥화가 그녀의 그 물결같이 흔들리는 둥그스름한 어깨를 쓸어 주며,

“그만 울어, 아버지 저기 기다리고 계신다.”

하였다. 그의 음성도 이젠 아주 풀이 죽어 있었다.[옥화도 아버지, 이복동생과 헤어지는 것이 좋지 않고, 성기의 충격과 계연의 슬픔이 커서]

“그럼 편히 계시요.”

영감은 옥화에게 하직을 하였다.

“하라부지[아직 자세한 가족관계를 잘 모르기 때문에 쓰는 호칭], 거기 가 보시고 살기 여의찮그던[일이 뜻과 같이 되니 아니하다] 여기 와서 우리한테 삽시다.”[육친에 대한 정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인물의 내면 심리가 드러남 / 아버지에 대한 정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옥화는 또 한 번 이렇게 당부하는 것이었다.

“오빠, 편히 사시요.”[영문도 모른 채 성기와 헤어지게 된 계연이 작별 인사를 여러 번 반복하는 데에는 성기의 말을 듣고 싶어하는 간절한 심리가 표출되어 있음 - 헤어지기 싫은 자신의 심정을 강조하기 위해 / 성기와 계연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이별하는 부분이다. 계연은 성기가 자신을 잡아 주길 바라며 같은 인사를 몇 번이나 반복하고, 성기는 충격을 받아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계연을 떠나 보낸다.]

 



계연은 이미 시뻘겋게 된 두 눈으로 성기의 마지막 시선[헤어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보고 싶은 마음]을 찾으며 이렇게 말했다.

성기는 계연의 이 말에 꿈을 깬 듯[이젠 정말로 헤어지는 마지막 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 청에서 벌떡 일어나 계연의 앞으로 당황히 몇 걸음 어뚤어뚤 걸어오다간, 돌연히 다시 정신이 나는 듯 그 자리에 화석처럼 발이 붙어 버린 채, 한참 동안 장승같이 계연의 얼굴만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오빠, 편히 사시요.”['계연'의 되풀이되는 하직 인사가 의미하는 것은 기대가 점점 무너져 절망적인 심리 상태가 된다]

이렇게 두 번째 하직을 하는 순간까지도 계연의 그 시뻘건 두 눈은 역시 성기의 얼굴에서 그 무슨 기적과도 같은 새로운 명령만을 기다리는 것이었고[어떤 기적과도 같은 구원 : 사랑하는 성기의 입에서 계연에게 떠나지 말라는 말이 나오기를 기대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성기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릴 뻔하다가 겨우 버드나무에 몸을 기댈 수 있었을 뿐이었다.

계연의 시뻘겋게 상기한 얼굴은 거기 옥화와 그의 아버지가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잊은 듯이 성기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으나, 버드나무에 몸을 기대인 성기의 두 눈엔 다만 불꽃이 활활 타오를 뿐[계연에 대한 성기의 열정 / 사랑의 좌절로 인한 안타까움과 정한(情恨)이 담겨 있다], 아무런 새로운 명령도 기적도 나타나지 않았다[성기가 가지 말라고 만류하거나 못 가게 하지 않음]. 저만치 가고 있는 계연의 항라[(亢羅) : 명주, 모시, 무명실 따위로 짠 피륙의 하나. 씨를 세 올이나 다섯 올씩 걸러서 구멍이 송송 뚫어지게 짠 것으로 여름 옷감으로 적당하다.] 적삼을, 고운 햇빛과 늘어진 버들가지와 산울림처럼 울려오는 뻐꾸기 울음 속[인물들의 의지나 심정과는 무관하게 아름답고 평화로운 자연의 모습 -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전개되는 인간의 운명을 연상]에 멀거니 바라보고만 서 있는 성기일 뿐이었다.

장터 위를 지나, 비스듬히 올라간 산모퉁이를 돌아 길은 구례 쪽으로 나고, 모퉁이를 도는 곳에 늙은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계연은 이 소나무 밑까지 오자 소나무 둥치에다 얼굴을 대고 서서 한나절 동안이나 소리를 내어 울고 갔다……하는 것을, 그러나 그 이듬해 늦은 봄에야 성기는 알게 되었다. 

성기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게 된 것[성기가 계연과 이별한 후 자리에 앓아누웠음을 알 수 있음]은 이듬해 우수[雨水 : 이십사절기의 하나. 입춘(立春)과 경칩(驚蟄) 사이에 들며, 양력 2월 18일경이 된다. 태양의 황경(黃經)이 330도인 때에 해당한다. 우수 경칩에 대동강 물이 풀린다 '북' 우수와 경칩을 지나면 아무리 춥던 날씨도 누그러짐을 이르는 말], 경칩[驚蟄 : 이십사절기의 하나. 우수(雨水)와 춘분(春分) 사이에 들며, 양력 3월 5일경이다. 겨울잠을 자던 벌레, 개구리 따위가 깨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는 시기이다]도 다 지나 청명(淸明) 무렵 비가 질금거리는[액체가 조금씩 새어 흐르거나 쏟아지다가 그칠] 때[소생의 이미지를 지닌 봄을 배경으로 삼아 성기의 소생을 암시함]였다. 주막 앞에 늘어선 버들가지는 다시 실같이 늘어지고 살구, 복숭아, 진달래들이 골목 사이로, 산기슭으로 울긋불긋 피고 지고 하는 날이었다.[시간의 경과를 나타냄 - 낭만적인 화려체의 문장이 보임 / 소생의 이미지를 지닌 봄을 배경으로 삼아 성기의 소생을 암시함]

아들의 미음 상을 차려 들고 들어온 옥화는 성기가 미음 그릇 비우는 것을 본 뒤, 이렇게 물었다.

“아직도 너, 강원도 쪽으로 가 보고 싶냐?”[성기의 아버지가 강원도 쪽에서 살고 있음]

“…….”

성기는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여기서 장가들어 살겠냐?”[결혼은 정착을 의미]

“…….”

성기는 역시 고개를 돌렸다.[삶에 대한 의욕 상실]

―그 해 아직 봄이 오기 전, 보는 사람마다 성기의 회춘[기복을 회복함]을 거진 다 단념하곤 하였을 때[성기가 계연과 헤어진 후 심하게 앓자 사람들은 성기가 죽을 거라고 생각했음], 옥화는 이왕 죽고 말 것이라면, 어미의 심정이나 알고 가라고[성기에게 계연을 떠나보낸 이유를 말하게 되는 계기], 그래 그 체장수 영감[중요 사건의 주요 원인을 제공하는 인물]은 서른여섯 해 전 남사당을 꾸며 와 이 화개 장터에 하룻밤[옥화 어머니와 하룻밤을 관계를 맺음]을 놀고 갔다는 자기의 아버지임에 틀림이 없었다는 것과, 계연은 그 왼쪽 귓바퀴 위의 사마귀[옥화와 계연이 자매지간임을 증명해 주는 소재 - 문학에서나 용인되는 논리]로 보아 자기의 동생임이 분명하더라는 것을, 통정(通情 : 통사정. 자기 사정을 남에게 털어 놓고 말함)하노라면서, 자기의 왼쪽 귓바퀴 위의 검정 사마귀[옥화와 계연이 이복 자매라는 증거임]까지를 그에게 보여 주었다.[그 체장수 영감은 서른여섯 해 전 남사당을 꾸며 와 이 화개 장터에 하룻밤을 놀고 갔다는 자기의 아버지임에 틀림이 없었다는 것과, 계연은 그 왼쪽 귓바퀴 위의 사마귀로 보아 자기의 동생임이 분명하더라는 것을, 통정(通情)하노라면서, 자기의 왼쪽 귓바퀴 위의 검정 사마귀까지를 그에게 보여 주었다. : 사건을 요약적으로 제시하여 필연성을 가지는 부분으로 운명의 비극성을 보여 주고 있다. '운명적 세계관'을 엿볼 수 있음 / 옥화가 계연을 떠나 보내야만 했던 이유를 성기에게 설명해 주는 부분으로, 인물들의 관계가 드러난다]

“나도 처음부터 영감[옥화의 아버지인 체장수 영감]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섬짓하긴 했다. 그렇지만 설마했지. 그렇게 남의 간을 뒤집어 놀 줄이야 알았나.[체장수 영감과 계연의 정체가 드러난 것] 하도 아슬해서 이튿날 악양으로 가 명도(明圖 : ① 무당이 수호신으로 삼고 위하는 청동 거울. ② 태주, 마마를 앓다가 죽은 어린 계집아이 귀신. ②의 태주가 지핀 사람, 즉 점쟁이를 말함)까지 불러 봤드니, 요것도 남의 속을 빤히 드려다보는드키 재출대는구나. 차라리 망신을 했지.[(자신이 찾아간) 명도가 마치 나의 속을 뻔히 들여다보듯이(자신이 예상했던 대로, 즉 계연이 자신의 동생임을) 줄줄 이야기를 늘어놓는구나. 도리어 망신을 당한 셈이 되고 말았지.]”

옥화는 잠깐 말을 그쳤다. 성기는 두 눈에 불을 켠 듯한 형형(炯炯 : 광선이나 광채가 반짝반짝 빛나면서 밝은 모양)한 광채를 띠고[어머니의 이야기에 대한 성기의 심리를 간접적으로 보여줌 / 성기가 미처 몰랐던 계연과 자신이 헤어진 이유의 비밀을 알게 되었기 때문] 그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차라리 몰랐으면 또 모르지만 한번 알고 나서야 인륜[옥희와 계연이 이복자매라는 것과 관련됨]이 있는데 어쩌겠냐.”[계연과 성기를 갈라 놓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직접적으로 나타나 있다]

그리고 부디 에미 야속타고나 생각지 말라고, 옥화는 아들의 뼈만 남은 손을 잡고서 눈물을 떨어뜨렸다. 옥화의 이 마지막 하직같이 하는 통정 이야기에 의외로도 성기는 도로 힘을 얻은 모양이었다. 그 불타는 듯한 형형한[빛나면서 밝은] 두 눈으로 천장을 한참 바라보고 있던[자신의 운명을 직시하는 모습] 성기는 무슨 새로운 결심[어머니와의 하직]이나 하듯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있었다.―[성기가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길을 떠날 결심을 하고 있음을 암시 / 현실을 받아들이고 길을 떠나야겠다는 성기의 결심을 짐작할 수 있다.]

아버지를 찾아 강원도 쪽으로 가 볼 생각도 없다, 집에서 장가들어 살림을 할 생각도 없다, 하는 아들에게, 그러나 옥화는 전과 같이 이제 고지식한 미련[역마살이 낀 아들을 붙잡아 두고 있으려는 생각]을 두는 것도 아니었다.[전과 같이 고지식한 미련 : 역마살이 낀 아들을 붙잡아 두고 있으려는 생각. 절에 보낸다거나 결혼을 시켜 정착시키려 했으나 결국 실패하였다.]

“그럼 어쩔라냐? 너 졸 대로 해라.”[옥화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음을 알고, 모든 것을 성기의 결정에 맡기고 있다]

“…….”

성기는 아무런 말도 없이 도로 자리에 드러누워 버렸다.[병으로 자리에 누운 성기에게, 옥화는 계연과 인연을 끊게 한 이유를 이야기해 준다. 그 후 성기는 차츰 병이 나아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옥화가 풀어 놓은 그들의 사연에서 ‘장터’의 상징적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화개 장터’는 3대에 이르는 가족들이 비슷한 사건들을 생산해 내는 장소로서, 대를 잇는 운명의 순환성을 지닌 공간이다.]

그러고 나서 한 달포[한 달 이상이 되는 동안]나 넘어 지난 뒤였다.

성기가 좋아하는 여러 가지 산나물이 화갯골에서 연달아 자꾸 내려오는 이른 여름의 어느 장날 아침이었다. 두릅회[두릅나물을 삶아 초고추장에 찍어 먹은 음식의 일종]에 막걸리 한 사발을 쭉 들이키고[성기의 몸이 회복되었음을 알려줌] 난 성기는 그 어머니에게,

“어머니, 나 엿판[길을 떠나려는 성기의 의지가 나타난 소재] 하나만 맞춰 주.”[성기가 방랑하는 삶을 선택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역마살의 사주가 실현됨을 의미 / ‘엿판’은 떠돌이의 삶을 상징하는 것으로, 성기가 역마살을 거스르지 않고 방랑하는 삶을 선택했음을 의미한다]

하였다.

“…….”

옥화는 갑자기 무엇으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갑작스레 떠나겠다는 성기의 말에 충격을 받아서]이 성기의 얼굴을 뻔히 바라보고 있었다.[역마살이 낀 성기가 결국은 자신의 곁을 떠나려는 결심을 하자 모든 미련을 버렸음에도 충격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옥화의 체념과 성기의 결심]

그런 지도 다시 한 보름이 지나, 뻐꾸기는 또다시 산울림처럼 유창하게 울고, 늘어진 버들가지엔 햇빛이 젖어 흐르는 아침이었다[계절적 배경이 여름이다. 여름은 성장의 계절로, 성기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일 만큼 성장했음을 의미한다]. 새벽녘에 잠깐 가는비가 지나가고, 날은 다시 유달리 맑게 갠 화개 장터 갈림길[역마살이 낀 성기의 정처 없는 삶 암시] 위에서 성기는 그 어머니와 하직을 하고 있었다. 갈아입은 옥양목 고의[(袴衣) : 여름에 입는 남자의 홑바지] 적삼에 명주 수건까지 머리에 동여매고 난 성기는 새로 맞춘 새하얀 나무 엿판을 걸빵[멜빵. 질빵]해서 느직하게[조금 느슨하다] 엉덩이 즈음에다 걸고 있었다. 윗목판에는 새하얀 가락엿이 반 넘어 들어 있었고, 아랫목판에는 팔다 남은 이야기책 몇 권[성기의 옛직업은 책장수]과 간단한 방물[여자에게 소용되는 화장품, 바느질 그릇. 패물 따위]이 좀 들어 있었다[방랑을 시작하려는 준비를 끝낸 차림새].

그의 발 앞에는 물과 함께 갈리어 길도 세 갈래로 나 있었으나[헤어짐과 방랑의 운명성], 화갯골 쪽엔 처음부터 등을 지고 있었다. 동남으로 난 길은 하동, 서남으로 난 길이 구례, 작년 이맘때도 지나 그녀가 울음 섞인 하직을 남기고 체장수 영감과 함께 넘어간 산모퉁이 고갯길은 퍼붓는 햇볕 속에 지금도 환히 장터 위를 굽이 돌아 구례 쪽을 향했으나, 성기는 한참 뒤 몸을 돌렸다[계연에 대한 미련이 조금 남아 있음을 암시]. 그리하여 그의 발은 구례 쪽을 등지고 하동 쪽을 향해 천천히 옮겨졌다.[성기가 계연 일행과 반대 방향으로 길을 잡음으로써 계연을 완전히 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 어머니, 그리고 계연과의 인연을 뒤로 하고, 앞으로는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여 자신의 삶을 살아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옮겨 놓을수록 그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져서, 멀리 버드나무 사이에서 그의 뒷모양을 바라보고 서 있을 그의 어머니의 주막이 그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갈 무렵이 되어서는 육자배기['육자배기'라는 이름은 이 노래의 장단 진양의 1각인 6박을 단위로 하는 노래라는 뜻에서 생긴 듯하다. 이 진양은 민요에서는 보기 드문 장단이며 그 박자가 매우 느려서 한스럽고 서정적인 느낌을 주나 억양이 강하고 구성진 멋이 있다. 그리고 그 선율이 유연하면서도 음의 폭이 넓고 장절의 변화가 다양하여 그 예술적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 가락으로 제법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가고 있는 것이었다.[육자배기 가락으로 제법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 성기는 엿장수가 되어 자신의 운명(역마살)에 따라 떠돌아다니게 된다. 애써 운명과 맞서 싸우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오히려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사는 것이 구원받는 길이다.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 데 따른 홀가분함으로 흥이 날 수밖에 없다. 생의 구경적(究竟的 : 가장 지극한 깨달음.) 의미를 추구하는 작자의 의식이 잘 암시되어 있다. / 성기가 흥겨움에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은, 역마살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그 운명에 따라 사는 것을 구원의 길로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읽기 중 활동(내용 확인)

1. 이 소설의 시점은? (전지적 작가 시점)

2. 계연이 슬픔에 잠겨 있던 이유는? (성기를 사랑하지만 아버지를 따라 떠나야 하기 때문에)



1. 성기가 ‘그쪽으로 고개도 돌려 보지 않은 채, 그들에게 무슨 적의나 품은 듯이 앉아 있었’던 이유는? (이유도 알지 못하고 사랑하는 계연과 이별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분노, 그리고 계연과 헤어지게 만드는 체 장수 영감과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표출된 것)



1. 인물의 대화 중 운명론적 세계관이 잘 드러나 있는 부분은? (“사람 일을 누가 알간디, 인연 있음 또 볼 터이지.”)

2. 계연이 성기에게 바랐던 ‘그 어떤 기적과도 같은 구원’이란 무엇인가? (떠나지 말라고 말해 주는 것)

1. 성기가 계연과 결혼하지 못한 이유는? (두 사람이 혈연관계, 즉 이모와 조카 사이이기 때문에)

2. 옥화와 계연이 서로 한 핏줄임을 알 수 있는 근거는? (왼쪽 귓바퀴 위에 사마귀가 있다는 신체적 특징)



1. 성기가 옥화에게 엿판을 맞춰 달라고 말한 것의 의미는? (방랑하는 삶을 선택함)

2. 성기가 화개 장터를 떠날 때의 계절적 배경은? (여름)



1. 성기가 세 갈래의 길 중 선택한 길은 어느 쪽인가? (하동)

2. 성기가 하동 쪽을 향해 길을 나선 이유는? (계연이나 어머니와의 인연을 뒤로하고,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는 삶을 살아가겠다는 의지의 표현) 



학습 활동 지도

1. ‘역마(驛馬)’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 알아보자.

예시 답안 | 각 역참에 갖추어 둔 말을 뜻한다. 관용(官用)의 교통수단, 통신 수단이었다.

역마살(驛馬煞)과 운명론(運命論) _ 역마살이란 이리저리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는 나쁜 운수를 가리키는 말로 당사주(唐四柱)에 나온다. 태어난 시, 일, 월, 연에 이 살이 들어 있는 사람은 한곳에 정주(定住)하여 살지 못하고 떠도는 삶을 산다고 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가장 강한 것은 태어난 시에 역마살이 든 경우이다. 이를 시천역(時天驛)이라 하는데 소설 ‘역마’의 주인공 성기에게 든 살은 바로 이것이다. 정주의 삶을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떠돌아다니는 삶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역마살에서 벗어나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다. 작품에 나오는 ‘승적(僧籍)에 이름 올리기’, ‘책 장사하기’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그런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역마살을 다스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유력한 대처 방법은 그 역마살을 자신의 운명이라 생각하여 받아들이는 것이다.



새겨읽기

1.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간의 관계를 정리해 보자.

예시 답안 | 옥화와 계연은 체 장수 영감의 딸들이고, 성기는 옥화의 아들이다. 따라서 계연과 성기는 이모ㆍ조카의 관계가 된다.

2. 체 장수 영감이 여수로 가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무엇인지 찾아 말해 보자.

예시 답안 | 옛날 고향 친구의 아들이 여수에서 큰 공장을 경영하는데, 그의 도움으로 형편이 나아질 것 같아서 고향인 여수에 가서 살기로 하였다.

3.계절과 성기의 변화가 어떤 관계에 있는지 말해 보자.

예시 답안 | 겨울이 다 지나고 봄이 완연해서야 성기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봄은 겨울의 추위를 이겨 내고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다. 이러한 계절의 변화와 마찬가지로, 성기 역시 봄이 되면서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살아가고자 한다.

4. 성기가 육자배기 가락으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떠나는 장면에서 알 수 있는, 운명에 대한 그의 태도는 무엇인지 설명해 보자.

예시 답안 | 성기는 역마살이 든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여 살아가고자 한다. 그는 집을 떠나며 육자배기 가락으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는데, 이것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순응한 것에 따른 홀가분함을 드러낸 것이다.



연결 짓기

다음 작가가 밝힌 창작 동기를 읽고, 아래의 활동을 해 보자.

내가 이 작품을 쓰게 된 동기가 화개 장터의 정조(情調)에 있었기 때문이다. (중략) 그렇게 한이 서린 듯한 고장도 드물 것이다. 명승지란 으레 한이랄까 회포 같은 것을 곁들이기 마련이지만, 이 화개 장터란 곳은 특히 그것이 강렬하게 느껴지는 고장이었다. 그것은 물론 가혹한 일제 압정 아래 숨어 살던 미혼의 고독한 젊은 작가라는 내 개인적인 조건도 있었겠지만, 그 무렵이라고 해서 가는 곳마다 다 그렇지는 않았으니까, 이 고장의 특질적인 인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왜 그럴까 하고 나는 생각했던 것이다. (중략) 그것은 이별이 잦기 때문이라고. 길은 구례, 하동, 지리산 쪽의 세 갈래로 나 있고 물도 길 따라 그렇게 세 갈래로 흐르고 있으며 게다가 닷새에 한 번씩 서는 장날엔 멀고 가까운 데서 수많은 장돌림들이 모여들었다 흩어지고 하니까, 그 고장에 사는 사람들은 한평생 이별 속에 세월을 보내는 격이 아닐까. 물로 흘러와서는 흘러가고, 사람도 모여 와서는 흩어져 가고……. 이러한 이별 속에 평생을 보내는 사람들은 자기들도 모르게 가슴 깊이 한이 서리는 것이 아닐까. (중략) 이러한 자연 풍토 속에 태어나고 자라난 사람은 그의 성격과 운명 속에 그것(자연 풍토)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것이라고 볼 수 없을까.

사람의 운명 가운데는 역마운(驛馬運)이란 것이 있다는데, 그렇다면 화개 장터 같은 고장에 태어난 사람은 강한 역마살을 타고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1) 작가가 ‘화개 장터 같은 고장에 태어난 사람은 강한 역마살을 타고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게 된 까닭은 무엇인지 한 문장으로 설명해 보자.

예시 답안 | 길과 물이 세 갈래로 뻗어 있으며, 장이 서고 흩어지고를 반복하는 풍토 속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화개 장터 같은 고장에 태어난 사람은 강한 역마살을 타고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2) ‘역마’의 전편을 읽고, 다음 인물들의 ‘한(恨)’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예시 답안 |

•성기: 할아버지와 아버지처럼 역마운을 갖고 태어난 것.

•성기 어머니: 구름같이 떠돌아다니는 중과 인연을 맺고 한평생 남편을 기다리며 살아온 것.

•체 장수 노인: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평생 객지로만 돌아다니며 살아온 것.



친해지기 

옥화가 계연으로 하여금 성기의 곁을 떠나게 한 이유는 무엇인가? 

지도방법 : 이 활동은 학생들이 작품의 개략적인 내용을 돋움으로 사건의 핵심적인 갈등 요소를 이해하고 있는가를 확인해 봄으로써 작품과 친해지도록 선정된 활동이다. 특히 성기와 계연이 서로 좋아하게 되기를 바라며 두 사람이 가까워지도록 노력했던 옥화가 왜 갑자기 둘 사이를 떼어놓게 되었는지 합당한 이유를 제시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풀이 : 계연이 자신의 이복 동생이었기 때문에(계연이 성기의 이복 이모였기 때문에) 

꼼꼼히 읽기 :

1. 성기가 엿장수로 길을 떠나기로 결심하게 된 이유를 추리해 보자. 

지도방법 : 이 활동은 소설의 주인공이 선택한 갈등의 해소 방법을 통해 작품의 주제 의식을 추출해 보는 활동이다. 특히 소설에서 주제는 갈등의 해소 과정을 통해 드러나게 된다는 점을 학생들 스스로 이해하게 한다. 원래 성기는 역마살을 타고났으므로 언젠가는 길을 떠나야 한다. 역마살을 피해 보려고 노력해 보았으나 계연과의 사랑을 이룰 수 없게 되자. 결국은 운명에 순응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풀이 : 자신이 운명적으로 역마살을 타고났으며 그 운명을 거부하지 않고 따르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역마'에 나타난 운명의 의미 : 

 ‘역마는 운명에 의해 사회의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변두리 인간으로 살아가게 되는 인간을 그리고 있다. 옥화나 그의 아버지인 체장수 모두 운명적으로 변두리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이에 옥화는 자신의 아들인 성기가 역마살을 타고나서 변두리 인간으로 살아가게 되자 운명을 극복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 그러나 성기는 운명적으로 집을 떠나 살아가게 되고 그는 집을 떠나는 순간 희열을 느끼게 된다. 모친과의 정상적인 삶에서 고뇌를 느끼고 심적인 갈등을 겪던 그가 엿판을 매고 고향을 떠나면서 어머니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순간. 성기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운명에 따라 살아갈 때 행복을 느낀다는 인식. 이것이 이 작품이 보여주는 의미이며 작가가 생각한 구경적[(究竟的) : 가장 지극한 깨달음] 생에 대한 인식인 것이다. 

2. 이 작품의 결말 부분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갈래 길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사건의 전개 과정에 비추어 볼 때, 각각의 길이 의미하는 바를 생각해 보자.



탐구 / 인간과 세계의 갈등

화갯골로 난 길 : 지금까지 성기가 살아왔던 곳으로 향한 길이다. 화갯골로 난 길은 ‘과거의 삶을 의미한다. 

구례로 난 길 : 계연이 떠나간 길이다. 만약 성기가 구례 쪽의 길을 택한다면 그것은 계연을 따라가기 위한 것이므로, 구례 쪽으로 난 길은 ‘운명을 거역하는 삶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하동으로 난 길 : 성기는 화갯골에서 나와 하동을 향하게 된다. 따라서 하동 쪽으로 난 길은 운명에 순응하며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게 될 주인공의 삶을 의미하는 것이다. 



인간과 세계의 갈등 

- 소설의 성격 : 인물(자아)과 세계(상황, 현실)의 갈등을 다룸. 인물이 부조리한 세계와 화해하지 않고, 참된 가치를 추구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인물과 세계는 대결할 수밖에 없다.

- 대결의 결과

인물이 승리하는 경우 : 고전 소설이 대부분 인물의 승리로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홍길동전의 홍길동은 적서 차별의 모순된 현실과 맞서 싸워 율도국이라는 이상 국가를 건설한다.

‘춘향전의 성춘향은 부당한 권력(변학도)과 맞서 싸워 절개를 지키고 사랑을 쟁취한다.

세계가 승리하는 경우 : 현대소설, 특히 사실주의 계열의 소설에서 세계가 승리를 거두게 되고, 인물은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운수 좋은 날의 주인공 김 첨지는 열심히 살아 보려고 애쓰지만 결국 아내는 죽고 만다.

‘붉은 산(조국)의 주인공 익호는 악덕 중국인 지주와 맞서다가 죽고 만다. 

지도방법 : ‘인간과 세계의 갈등과 대립은 소설과 희곡의 본질을 구성하는 중요한 특성이다. 가급적 학생들에게 익숙한 작품들을 예로 들어 인간과 세계의 갈등 구조를 설명한다. 특히 역마에서 주인공 성기가 택한 방법을 중심으로 인간과 세계의 갈등이 어떻게 해소되는지에 주목하여 교수 학습한다. 

3. '이전 줄거리'를 참고하여, 옥화가 세계(운명)와의 대결을 피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지도방법 : 이 활동은 문학 작품이 인간과 세계의 대결을 다룬다는 점을 학생들 스스로 확인해 보게 하는 활동이다. 학생들은 이 활동을 통해서 인간의 삶은 매우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며, 우리는 문학작품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다른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들여다보고, 인생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게 된다는 점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특히 한 걸음 더 나아가 주어진 운명에 무조건 순응하기보다는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인간다운 삶의 모습이라는 점을 학생들에게 강조해 주는 것도 바람직하다. 또한 학생들의 대답을 일반화시키면 '종교(쌍계사)나 제도(결혼)'라고도 답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풀이 : 옥화는 성기가 역마살을 타고났음을 알게 되자. 성기의 역마살을 없애기 위해 절에 보낸다. 또 계연과의 결혼을 성사시켜서 자기 곁에 살게 하려고 노력한다. 

4. 인간과 세계의 대결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 작품은 어떤 결말을 맺고 있는지 말해 보자. 

지도 방법 : 이 활동은 작품의 주인공이 세계와의 대결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했는가 패배했는가를 확인해 보는 활동이다. 갈등의 해소 과정에서 작가의 주제 의식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꼼꼼히 읽기' 1번 활동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는 점에 유의한다. 또한 단순히 승리냐 패배냐의 양자택일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제3의 답도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해야 하며, 바로 그 점에서 운명에 순응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일 수 있다는 한국적 운명관을 이해하게 된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 

풀이 : 

- 주인공은 세계(운명)와의 대결에서 결국 패배하고 만다. 
- 운명에 순응한 것으로, 인간과 세계가 화해한 것이다. 



시야 넓히기 

다음 시를 돋움으로, '역마'에 등장하는 '장터'의 상징적 의미를 생각해 보자. 




지도 방법 : 교과서에 ‘'역마'의 전문(全文)을 수록하지 못하였으므로 학생들이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장터의 의미를 선명히 파악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따라서 유사한 상황을 다루고 있는 짤막한 시를 돋움으로 장터의 의미를 유추해 보도록 해야한다.‘목계 장터에서 화자는 장터에 서서 방물 장수로서 유랑의 삶을 계속할 것인지 아니면 구차스럽지만 정착해서 살아갈 것인지 갈등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농경 정착 생활이 중심이 되었던 전통 사회에서 5일마다 장이 서는‘장터가 왜 떠돌이들의 집결지가 되는지를 생각해 보도록 한다. 

풀이 : '역마'의 배경은 전라도와 경상도의 접경으로 온갖 장사꾼들이 왕래하는 화개 장터이다. 길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지내는 장돌뱅이들이 거쳐가는 장터는 역마살이 낀 인간들의 집결지라고 할 수 있다. 위의 시 '목계 장터'의 목계 나루도 '화개장터'와 같은 상징적 의미를 지닌 시어이다. 



'역마'의 배경 : 

 이 작품의 지리적 배경은 전라 경상의 경계지로서 온갖 장사꾼들이 지나다니는 화개 장터로 되어있다. 이러한 배경의 설정은 장터가 지니는 내포적 의미에 의해 작품의 전체를 이끄는 조건이 되고 있다. 온갖 장돌뱅이가 거쳐가는 이곳은 어쩌면 역마살이 낀 인간군들의 집결지이다. 옥화는 이러한 곳에서 주막을 하고있고 따라서 그의 아들은 역마살이 낄 소지가 다분하다. 그리고 화개장의 북쪽에는 쌍계사가 있다. 역마살을 제거하기 위해 아들을 보낼 곳인 절이 옆에 있음은 작품의 전체 구도상 적절한 것으로 파악된다. 체장수와 옥화와 계연 그리고 성기가 맺고 있는 혈연 관계는 화개장이라는 지리적 상황에 의해 그 개연성을 얻는 것으로 이해된다. 



신경림의 '목계장터’:

 목계 나루에서 방랑과 정착의 갈림길에 서 있는 민중들과 시적 화자의 갈등을 진솔하게 표현한 시다. 전체적으로 방랑과 정착의 이미지가 교차되어 나타나고 있는데, 특히 강’, 구름’, 바람’등으로 표상되는 떠남의 이미지와, 산’, 들꽃’, 잔돌로 표상되는 정착의 이미지는 떠돌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그 시대 민중들과 시인 자신의 운명을 은근히 암시한 것이다. 



표현하기 

다음은 이 작품의 끝 부분에서 성기가 불렀다는 '육자배기'의 가사이다. 아래의 조건에 따라, 성기의 입장에서 자신의 심정을 잘 드러내는 가사를 덧붙여 보자. 
 

·몇 개의 모둠으로 나누고, 모둠별로 가사의 내용에 대해 협의해 본다.

·노래의 형식은 자유롭게 하되, 집을 떠나는 사람으로서의 심정이 가사에 드러나도록 한다.

·모둠별로 가장 재미있고 특이한 사례를 선정하여 발표한다. 

지도방법 : 이 활동은 작품 전체의 내용에 대한 이해를 돋움으로 문학 작품을 실제로 창작해 봄으로써 문학 가치를 내면화하기 위한 활동이다. 교과서에 제시된 조건에 따라 학생들을 몇 개의 모둠으로 나누고 내용을 협의하도록 하여 모둠별로 발표하도록 지도한다.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스스로 창작의 기쁨을 느껴 보도록 하는 것이므로, 가급적 긍정적인 평가나 격려의 조언을 해 주도록 한다. 



예시 답안 : 



물이로구나 헤

나는 이 길로 임은 저 길로

어차피 인생은 엇갈린 길인 것을

차라리 하늘을 이불 삼아

이슬 맞고 살아가려네.                     -       (출처 : 김윤식 외 4인 공저 '문학교과서')

육자배기 : 

 전라도의 대표적인 민요. 〈보렴〉·〈화초사거리〉·〈흥타령〉·〈개구리타령〉·〈새타령〉·〈성주풀이〉 등과 함께 남도잡가(南道雜歌) 또는 남도선소리에 포함된다. 〈육자배기〉는 6박의 느리고 긴 육자배기 뒤에 3박의 자진 육자배기를 잇대어 부른다.

 통속(通俗) 민요창자가 부를 때에는 느린 부분을 진양조에, 자진 부분을 세마치에 맞춘다. 먼저 제창으로 ‘구나에∼’를 두 장단 부른 뒤 독창으로 소리하고, 다시 제창으로 ‘구나에∼’를 한 장단 부른다. 이처럼 제창으로 받는 소리가 독창의 메기는 소리에 비하여 짧은 것은 다른 곡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드문 예이다.

 형식은 처음 두 장단의 제창을 제외하고, 독창 부분은 네 장단 단위의 구(句)가 셋이 모여서 이루어졌다. 자진부분은 처음 제창으로 ‘구나에야’를 한 장단 부른 뒤 계속하여 의미없는 입타령으로 네 장단짜리 구를 두 귀 부른다.

 그런 다음 독창으로 네 장단짜리 3구를 부르는데, 마지막 구는 끝에 제창으로 ‘구나에야’를 불러서 네 장단을 만들어준다. ‘구나에야’의 받는 부분이 메기는 부분에서 독립된 것이 아니라, 사설내용으로나 음악적으로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음계의 특징은 남도 특유의 꺾는 목, 평으로 내는 목, 떠는 목으로 되어 있다. ≪참고문헌≫ 한국민요집(한만영, 광음문화사, 1967), 國樂槪論(韓萬榮·張師勛, 韓國國樂學會, 1975), 韓國歌唱大系(李昌培, 弘人文化社, 1976). 



 김동리(金東里)가 지은 단편소설. 1948년 1월 ≪백민 白民≫ 12호에 실렸으며, 1950년 정음사(正音社)에서 같은 이름으로 간행한 단편집 ≪역마≫에 수록되었다.

하동·구례·쌍계사로 갈리는 세 갈래 길목의 화개장터에 자리잡은 옥화네 주막에 어느 여름 석양 무렵 늙은 체장수와 열대여섯 살 먹은 그의 딸 계연이 찾아온다. 이튿날 체장수는 딸을 주막에 맡겨놓고 장사를 떠난다.

옥화는 떠돌이 중과 관계하여 아들 성기를 낳았는데, 역마살이 끼었다고 열 살 때부터 절에 보내어 그곳에서 지내게 한다. 성기는 장날이 되면 절에서 내려와 책전을 펴는데, 옥화는 성기를 계속 옆에 머물게 하기 위하여 계연으로 하여금 성기의 시중을 들게 한다. 어느날 성기와 계연은 칠불암으로 가게 되었는데, 산나물을 캐고 산열매를 따먹기도 하면서 둘의 관계는 급속히 가까워진다.

그 뒤로 두 사람의 정은 더욱 깊어 가는데, 어느 날 옥화는 계연의 머리를 땋아주다가 왼쪽 귓바퀴의 조그만 사마귀를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 그리고 악양 명도에게 다녀온 뒤로 성기와 계연의 사이를 경계하게 된다. 마침내 체장수가 다시 와 계연은 아버지를 따라 여수로 떠나고, 성기는 갑작스런 이별에 충격을 받아 자리에 드러눕게 된다.

어느 봄날 옥화는 성기에게 그녀의 지난날을 이야기해준다. 체장수는 서른여섯 해 전 남사당을 꾸며 화개장터에 와 하룻밤을 놀고 갔던 자기의 아버지가 틀림없으며 자신의 왼쪽 귓바퀴의 검정 사마귀를 보여주면서 계연은 자기의 동생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어느 이른 여름날 화개장터 삼거리에는 나무엿판을 맨 성기가 옥화와 작별하고 육자배기 가락을 부르면서 체장수와 그의 딸이 떠난 구례 쪽 길을 등지고 하동 쪽으로 떠난다.

이 작품은 역마살로 표상되는 동양적이며 한국적인 운명관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하룻저녁 놀다 간 남사당패에게서 옥화를 낳은 할머니, 떠돌이 중으로부터 성기를 낳게 된 옥화, 마침내 엿목판을 메고 유랑의 길에 오르는 성기 등 이들 가족은 인연의 묘리와 비극적인 운명의 사슬에 매여 있는 토착적 한국인의 의식세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민속적인 소재를 통하여 토속적인 삶과 그 운명이 시적으로 승화된 이 작품은 〈무녀도 巫女圖〉·〈황토기 黃土記〉·〈바위〉 등의 작품과 함께 김동리의 전통지향적인 의식을 나타내주는 초기 대표작 중의 하나이다. 

≪참고문헌≫ 韓國現代小說論(千二斗, 螢雪出版社, 1969), 한국현대소설사(이재선, 弘盛社, 1979), 현대소설의 精神史的硏究(李東夏, 일지사, 1989), 한국근대문학사상연구(김윤식, 아세아문화사, 1994), 東里文學硏究(白鐵 外, 서라벌문학 8집, 서라벌예술대학, 1973), 金東里의 驛馬硏究(李光淵, 국어국문학, 1980.6.).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해와 감상1 

이 작품은 '역마살'이라는 무속을 소재로 한국인의 집단 무의식을 나타낸 소설이다. 이 작품에서 체장수 영감과 성기가 역마살이 낀 인물들이다. 주인공인 성기의 역마살은 외할아버지인 체장수 영감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그것으로 인해 성기와 계연의 결혼은 불가능해진다. 이 소설에서 주된 갈등은 역마살을 제거하려는 인간들의 노력과 운명적인 역마살과의 대결이다.

역마살을 타고난 성기는 사랑하는 계연과 정착을 이루려 하지만 운명은 그를 죽음과 유랑의 길 중 어느 하나만을 강요한다. 여기서 성기가 유랑을 택한 것은 현실적으로 운명에의 패배를 뜻하지만, 그 내면에서는 한국인의 의식 속에 담긴 극기의 의지가 내포되어 있다. 자연법칙과 인간의 생명이 하나의 원리에서 조화되는 세계를 그리는 김동리 문학의 중요한 한 정신을 엿볼 수 있다. 팔자소관에 순응함으로써 도리어 죽음에서 구제된다는, 동양적 운명론을 실천하고 있는 작품이다.

한편, "역마"는 김동리의 단편소설 가운데 공간에 있어서 비상식적·비합리적 요소가 덜한 작품이다. 또한 공간 구성에 있어서도 "무녀도", "늪", "달"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분법적 공간 배치를 보이고 있지 않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화개 장터'는 3대에 이르는 가계의 사건이 벌어지는 곳일 뿐만 아니라 인물들의 삶에 있어서 상징적 공간으로서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화개장터는 성기의 외할머니가 하룻밤 놀다간 젊은 남사당패와 정을 통하고 성기의 어머니를 갖게된 장소이며, 어머니마저 떠돌이 승려와 인연을 맺어 성기를 잉태한 장소이다. 뿐만 아니라 성기마저도 부지간에 어머니의 이복 여동생과 관계를 갖고 하마터면 부부의 연까지 맺을 뻔한, 그 가족들에게 있어서 비슷한 사건들을 생산해 내는 장소이다.

이처럼 이 화개 장터가 갖는 가장 흥미로운 성질은 대를 잇는 운명의 순환성에 있다. 각각 그 가계의 인물들을 A, A', A''로 놓는다면 여기에 대응하는 떠돌이인 B, B', B''는 각대에서 일회적인 만남을 통해 그들과 정을 통하게되고, 일생에 지우지 못할 추억과 연민을 갖게 하고 결국 그것으로 인해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을 만들게 한다는 점에 있어서 똑 같다.

그런데, 남자인 성기의 대에 와서는 양상이 다소 달라지게 된다. 운명을 고착시키는 장소로서 화개 장터는 두 여성(할머니와 어머니)의 소극적 입장과 상응할 수 있지만, 성기의 경우에는 같은 사건을 경험했어도 그 양상은 달리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는 성기가 회개장터에서 일회적인 만남으로 일생일대의 전환기를 맞는다는 측면에서 보면 그 가계의 여성들과 같지만, 다른 한편으로 역마살을 지니고서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는 운명은 그 가계의 남성들(외할아버지와 아버지)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즉 성기는 그의 외할아버지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타고난 역마살로 인해 타지에서 동일 유형의 운명을 자손에게 부과할 수 있는 적극적 인자(因子)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는 또한 다음과 같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공간적 구도를 분석함에 있어서도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 다음 그림은 성기가 그 가계 내에서는 동일한 운명의 산물이지만, 삼대에 이르는 운명을 복사하여 다른 곳으로 유입시킬 수 있는 인자(因子)로서 자리 매김될 수 있음도 또한 보인다. 



이해와 감상2 

 1948년 <백민(白民)>지에 발표된 "역마"는 역마살 또는 당사주(唐四柱)로 표상되는 한국인의 운명관을 형상화한 작품으로서, "무녀도(巫女圖)", "황토기(黃土記)", "바위" 등과 함께 전통 지향적인 면모를 잘 보여 주고 있는 김동리의 초기 대표작 가운데 하나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은 대부분 자신의 의지나 선택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닌, 운명적으로 주어진 역마살에 둘러싸여 있으며, 소설의 배경인 화개 장터 역시 역마살이 낀 장돌뱅이들의 집결지이다. 이 역마살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결혼을 통해 한 곳에 정착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인공 성기가 사랑하던 계연이 옥화의 이복 동생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두 사람의 결혼은 불가능해지게 된다. 성기가 역마살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유랑의 길을 떠나는 결말은, 운명을 거스르지 않음으로써 구원에 이르게 된다고 믿는 한국적인 운명관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삶의 한 형식으로 운명에의 순응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문학에서 본 운명관의 한 모습 : 

 이 작품은 구조상 거의 단편으로 완벽성을 이루고 있다. 무엇보다도 언어가 주체를 감당하고 있음이 주목된다. 결국 역마살로서의 팔자(八字)소관으로 주어진 운명적인 사실에서 주인공과 그 주변 사람들이 그것을 극복하려 시도했으나 실패하여 역마살을 따르고 만다는 것, 그리고 그 운명에 순종할 때 콧노래까지 나오는 생명 의식을 되찾는다는 이 작품을 두고 사람들은 다음처럼 간단히 지적 할 수도 있다. 즉, 한갓 광대나 주막집 하층민 나부랭이들의 생태이지 그것이 한국인의 운명관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라고. 이런 지적에 대한 문학측의 대답은 우선 예(藝)의 의미에로 되돌아간다. 우선 이 작품에 쌍계사라는 절이 관여되어 있다는 점과 장터라는 두 배경을 염두에 두어야 하리라. 그리고 장사꾼이나 광대들이 또한 배경으로 놓여 있다.

 이런 것들은 사대부나 뿌리박은 농민들에 있어 그들의 감정처리를 하는 하나의 장치로서의 의미 관련을 내포한다. 한 사회에는 정치적 질서, 경제적 질서 등등이 생활의 기반으로 놓여 있다. 그것은 많은 경우에 있어 섬세한 생(生)의 감각적 의미 혹은 촉각을 압살한다. 사르트르투로 보아 인간에겐 상상적 의식의 주체의 능력이 실천적 의식의 주체, 사유적 의식의 주체와 동등하게 놓여 있다면, 그것을 처리하는 장치가 곧 예(藝)라 할 수 있다. 화개 장터라는 연극적 공간에 불교와 장 보러 오는 보통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부분들의 정점(頂點)에 광대의 신명을 떨치는 예가 놓인다면 이 기호 체계는 종교도 아니고, 삶의 한 방식이면서 그것을 넘어서는 예인 것이다. 물을 것도 없이 당사주란 한갓 미신이며 곡두에 불과하겠지만, 그런 협박하는 장치가 발명, 수용된 것은 엄연한 실재이다. -김윤식, '한국 문학에서 본 운명관의 한 모습'

 

더 읽을거리 

김동리, ‘김동리 대표작선’, 책세상, 1994

김정숙, ‘김동리 삶과 문학’, 집문당, 1996

이재선 편, ‘김동리‘, 서강대학교출판부, 1995

이재선, ‘한국현대소설가’, 홍성사. 1979 



"역마" 비평(평론가 김윤식) 

한국인의 심상 구조(心象構造)의 원형(原型)을 밝힌다는 것은 매우 까다로운 학문적 과제에 틀림없다. 다만 그 일단을 작품을 통해 엿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 하나로 김동리(金東里)의 "역마(驛馬)"를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단편이며 1948년 '백민(白民)'지에 실린 것이다. 경상도와 전라도 사이, 하동과 구례, 쌍계사라는 절로 이르는 세 갈래 길목의 화개(花開) 장터가 배경으로 되고 시대는 지금부터 3, 40년 전쯤으로 된다. 이 작품에서, 화개 장터라는 배경 자체가 짙은 운명의 냄새를 피우고 있다는 점이 우선 주목된다.

장이 서지 않는 날일지라도 인근 고을 사람들에게 그 곳이 그렇게 언제나 그리운 것은 장터 위에서 화갯골로 뻗쳐 앉은 주막마다 유달리 맑고 시원한 막걸리와 펄펄 살아 뛰는 물고기 회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주막 앞에 늘어선 능수버들 가지 사이사이로 사철 흘러 나오는 그 한(恨) 많고, 멋들은 진양조 단가 육자박이들이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여기다 가끔 전라도 지방에서 꾸며 나오는 남사당 여사당 협률(協律) 창극 신파 광대들이 마지막 연습 겸 첫 공연으로 여기서 반드시 재주와 신명을 떨고야 경상도로 넘어 간다는 한갓 관습과 준례가 이 화개 장터의 이름을 더욱 높이고 그립게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이 인용에서 보듯이 전근대적인 한국인의 심정(心情)의 자리가 어떤 그리운 것. 한(恨)을 머금고 있는 진양조와 광대들, 그리고 광대라는 예(藝)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신명(神明)이라는 단어에 걸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장터란 전근대적 사회에 있어서는 하나의 연극적 공간의 의미를 띤다. '장 보러 간다(看市場)'는 한국어가 상업성과 무관하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들 광대에 의해 한국적 예의 가닥이 이어져 왔다고 할 때, 그 예란 무엇인가. 아마도 생명의 촉각화(觸覺化)일 것이며, 대체로 그것은 맹목적 혹은 맹목(盲目)으로 보인다. 도덕과 윤리에 짓눌리고 쫓긴 이 예의 의식은 시간이 지나가고 보면 가장 확실한 삶의 감각화임을 우리는 발견한다. 그것은 한을 동반한 가락으로 되고, 그 한의 처리가 신명을 떤다는 것으로 표현된다. 이들 예인(藝人) 혹은 광대가 신분적으로 천민(賤民)에 속한다는 것은 이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측면이다. 무당의 경우를 보면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어떤 장애라든가 세습적인 것이며, 광대의 경우도 천생 타고나는 것으로 되어 있는 측면도 많다. 이들 특수한 감각적 소유자가 하층 사회에서 민중 의식에 젖줄을 대고 있다는 것은 한국 예의 이해에 불가결한 이해점으로 보인다. 이러한 여러 복합적 의미 관련이 특수하고도 보편적인 모습으로 화개 장터에 걸려 있는 것이다.

이 장터에 옥화(玉花)라는 주막집 여인이 있다. 그녀에게는 역마살(驛馬煞)을 풀기 위해 쌍계사라는 절에 가 있는 아들 성기가 있다. 다음 인용에서 이들 주인공의 운명적 계보를 엿볼 수가 있다.

설흔 여섯 해 전에 꼭 하룻밤 놀다 갔다는 젊은 남사당의 진양조 가락에 반하야 옥화를 배게 된 할머니나, 구름같이 떠돌아다니는 중과 인연을 맺어서 성기를 가지게 된 옥화나 다같이 화개 장터 주막집에 태어났던 그들로서는 별로 누구를 원망할 턱도 없는 어미 딸이었다. 성기에게 역마살이 든 것은 어머니가 중서방을 정한 탓이요, 어머니가 중서방을 정한 것은 할머니가 남사당에게 반했던 때문이라면 성기의 역마운도 결국 할머니가 장본인이라 이에 할머니는 성기에게 중질을 시켜서 살을 떼우려고도 서둘러 보았던 것이고 중질에서 못 푼 살을 이번에는 옥화가 그에게 책 장사를 시켜 마저 풀어 보려고도 했던 것이다. 성기로서도 불경보다는 분명히 이야기 책에 끌리는 눈치요, 중질보다는 차라리 장사나 해 보고 싶다는 소청이기도 하여, 그러나 옥화는 꼭 화개장만 보이기로 다짐까지 받은 뒤, 그에게 책전을 내어 주기로 했던 것이었다.

역마살이란 당사주(唐四柱)에서의 시천역(時天驛)에 해당된다. 운명적으로(팔자소관) 이 살(煞)이 끼면 집에 머물 수 없이 한평생을 방랑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그리움의 세속적 논리라 규정된다. 옥화의 아버지가 그랬고, 남편이 그랬고, 이제 그 아들도 이 역마살이 끼어 있다. 이 살을 풀기 위한 방도로 쌍계사 절에 아들 성기를 어릴 때부터 중질을 시킨다. 그런데 그 아들은 자라면서 불교엔 관심이 없고 장사질이나 하고 싶어한다. 옥화도 할 수 없이 장날에만, 그것도 꼭 화개 장터에서만 책 장사를 시킨다. 그것도 성기가 택한 이야기 책 장사다.

어느 날 옥화네 주막에 채 장수 영감과 계연이라는 과년한 딸이 머문다. 아들 성기가 장날 내려와 계연과 사랑에 빠진다. 바야흐로 두 사람이 결혼하고 살림을 이루고 정착하면 소위 역마살이 풀릴 수가 있을 때, 그 계연이가 성기의 어머니의 친동생, 즉 성기의 이모임이 확인된다. 이 엄연한 사실 앞에 절망한 성기는 심한 열병으로 뼈만 남도록 생사를 해매게 된다. 오래 앓은 후 겨우 목숨을 건진 성기는 그 어머니에게 다음처럼 말한다.

"어머니, 나 엿판 하나만 마춰주."

"……."

옥화는 갑자기 무엇으로 얻어맞은 듯이 성기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지다시 한 보름이 지나……유달리 맑게 개인 화개 장터 가름길 우에서 성기는 그 어머니와 하직을 하고 있었다. 갈아입은 옥양목 고의적삼에 명주 수건까지 머리에 동여매고 난 성기는 새로 맞춘 새하얀 나무 엿판을 질빵해서 느직하게 엉덩이 즈음에다 걸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의 주막이 그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갈 무렵하여서는, 육자박이 가락으로 제법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가고 있는 것이었다.

이 작품은 구조상 거의 단편으로 완벽성을 이루고 있다. 무엇보다도 언어가 주제를 감당하고 있음이 주목된다. 결국 역마살로서의 팔자(八字) 소관으로 주어진 운명적인 사실에서 주인공과 그 주변 사람들이 그것을 극복하려 시도했으나 실패하여 역마살을 따르고 만다는 것, 그리고 그 운명에 순종할 때 콧노래까지 나오는 생명 의식을 되찾는다는 이 작품을 두고 사람들은 다음처럼 간단히 지적할 수도 있다. 즉, 한갓 광대나 주막집 하층민 나부랭이들의 생태이지 그것이 한국인의 운명관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라고. 이런 지적에 대한 문학 측의 대답은 예(藝)의 의미에로 되돌아간다.

우선 이 작품에 쌍계사라는 절이 관여되어 있다는 점과 장터라는 두 배경을 염두에 두어야 하리라. 그리고 장사꾼이나 광대들이 또한 배경으로 놓여 있다. 이런 것들은 사대부나 뿌리박은 농민들에 있어 그들의 감정 처리를 하는 하나의 장치로서의 의미 관련을 내포한다. 한 사회에는 정치적 질서, 경제적 질서 등등이 생활의 기반으로 놓여 있다. 그것은 많은 경우에 있어 섬세한 생(生)의 감각적 의미 혹은 촉각을 압살한다. 사르트르 투로 보아 인간에겐 상상적 의식의 주체의 능력이 실천적 의식의 주체, 사유적 의식의 주체와 동등하게 놓여 있다면, 그것을 처리하는 장치가 곧 예(藝)라 할 수 있다. 화개 장터라는 연극적 공간에 불교와 장 보러 오는 보통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부분들의 정점(頂點)에 광대의 신명을 떨치는 예가 놓인다면 이 기호 체계는 종교도 아니고, 삶의 한 방식이면서 그것을 넘어서는 예인 것이다. 물을 것도 없이 당사주란 한갓 미신이며 곡두에 불과하겠지만, 그런 협박하는 장치가 발명, 수용된 것은 엄연한 실재이다. 정치적·경제적 질서, 소위 정상적 유가(儒家)의 질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광기로서의 인간 정신의 질병이 필요했고, 이로 인해 소위 유가류(儒家流)의 정상(正常)이 유지될 수 있었다고 한다면, 그 균형을 취하는 하나의 장치가 요청되었을 것이다. 그런 심상 구조의 체계가 실재한다면 문학이 그 실재를 결코 외면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은 유일신(唯一神)이나 범신(汎神), 혹은 무신관(無神觀)과는 관계 없는 일에 속한다. 



김동리의 화개



사천 다솔사에서 운영하던 광명 학원(光明學院)에서 학생을 가르치던 김동리는 1940년(27세)에 처음 화개 땅을 밟았다. 쌍계사 건너 마을인 용강에서 양조장을 경영하고 있던 김종택의 초대를 받아서였다. 활발한 소설 발표로 이미 중앙 문단의 촉망 받는 신진 작가로 자리를 잡은 청년 작가이고, 아들 하나를 둔 신혼(1938년 결혼)의 젊은 가장이었던 김동리로서는 즐거운 소풍이었다.

화갯골의 민물 생선회와 막걸리, 그리고 화갯골의 경관은 김동리의 마음을 깊이 사로잡았다. 김동리의 기억 속에 ‘여름에 먹은 음식의 유일한 추억’으로 새겨졌던 화갯골의 민물 생선회와 막걸리, 그리고 화갯골의 자연 경관을 두고 김동리는 ‘아, 그 물고기 회 맛, 그 막걸리 맛, 그리고 그 햇빛, 그 수풀’이라 하여 최상의 찬탄으로 추억하였던 것이다.

사설 광명 학원의 교사로서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며 일제 말기의 숨 막힐 듯 어둡고 무거운 시간을 견디고 있던 김동리에게 이 같은 감격을 안겨준 김종택은 누구인가? 김종택은 양조장을 경영하고 있었지만, 소설 창작에 뜻 둔 문학 청년이었다. 이미 등단한 기성 작가인 김동리를 우러러 모시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 그는 ‘선생님’이라 부르며 김동리를 따라 배우고자 하였다.

김동리의 두 번째 화개행은 1942년 그의 나이 29살 때에 있었다. 조선은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모두가 죽음의 공포를 등에 지고 캄캄 어둠 속을 헤매고 있던 때이다. 김동리도 그러했다. 백형 김범보의 두 번에 걸친 검속, 두 단편의 전문 삭제(‘하현’과 ‘소녀’ 그리고 ‘두꺼비’, 1940), 조선 문인 협회 등 친일 문인 협회 가입 강요(물론 김동리는 입회 서류를 아궁이 속에 던져 불태웠다), 김동리의 주된 발표 무대였던 순 문예 잡지 “문장”과 “인문 평론”의 폐간(1941) 등으로 큰 충격을 받고 헤매었다. 그리고 1942년 광명 학원이 폐쇄되어 간이 학교로 바뀜으로써 그의 교사 생활은 끝났다.

게다가 큰아들을 잃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강제 징용장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잘 알고 지내던 조선인 순사한테 들었다. 김동리는 김종택을 찾아 화개로 피신하였다. 화개는 절망과 공포의 막다른 골목에 갇힌 김동리에게 구원지였다.

1943년 장조카 지홍의 소개로 사천읍 양곡 배급 조합 서기로 취직하여 떠날 때까지 6개월 가량 화개에 머물렀다. 김동리는 ‘만자당사건(卍字黨事件)’[만자당(卍字黨)은 1929년에 결성된 만당(卍黨)을 가리키는 것으로 1930년 결성된 독립운동 비밀 조직이었다. 1938년 일본 경찰에 붙잡혀 취조를 받았으나 구체적인 물증이 없었기 때문에 모두 방면되었다고 한다.]에 연루되어 쌍계사에 피신해 있던 장도환, 박근섭 등의 독립지사와도 어울렸고, 고향인 함안에서 징용을 피해 면 서기로 있던 평론가 조연현, 서울에서 내려온 양주동 등과 만나기도 하였다.

1940년과 1942년, 두 번에 걸친 화개 체험은 김동리에게 여러 편의 소설을 선물하였다. 문학사적 평판작인 ‘역마’를 비롯, ‘염주’, ‘당고개 무당’, ‘당고개 무당’을 확대한 장편으로 기획되었으나 미완성 유고로 남은 제목 없는 작품 등이 그것들이다. 이 밖에도 김동리는 화개 체험을 회고하는 내용의 수필을 여러 편 남겼는데, 하나같이 화갯골의 자연 경관과 음식에 대한 깊은 애정을 담고 있는 글들이다. 이들 소설과 수필을 통해 우리는 화갯골 체험이 일제 말기의 어둠 속에서 방황하고 있던 상처 입은 이무기 김동리를 위무하여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은 깊은 인상을 남겼음을 알 수 있다. 그 깊은 인상이 시간을 따라 성숙하고 틀을 갖추어 ‘역마’를 비롯한 뛰어난 작품들로 결실했던 것이다. - 정호웅, “김동리 소설과 화개” (문학교육학, 2009)



운명의 윤회 - ‘역마’

이 토속 내음이 물씬물씬한 소설에서 먼저 강력한 인상으로 접근해 오는 것이 윤회론적 운명론이다. 옥화의 어머니는 ‘꼭 하룻밤 놀다 갔다는 젊은 남사당의 진양조 가락에 반하여 옥화를 배게’ 되었으며 옥화 역시 ‘구름같이 떠돌아다니는 중과 인연을 맺어서 성기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 성기는 ‘세 살 때 보인 그의 사주에 시천역(時天驛)이 들어’ 있는 운명을 타고나 있었다.

운명을 벗어나려는 집요한 원망(怨望)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기는 떠돌이 남사당의 할아버지, 떠돌이 중의 아버지처럼, 그리고 하룻밤 살을 섞어 옥화를 낳고 성기를 가진 할머니와 어머니의 운명의 전승처럼 엿판을 지고 집을 나서게 된다. 성기의 이 운명에 대한 순종은 차라리 체념을 넘어 생의 희열로까지 보인다. 그것은 당연히 가야 할 길을 가는 자의 슬픈 행복이며 항거를 포기한 자의 생의 진상(眞相)을 터득한 사람이고 니체와 다른 의미에서의 동양적인 ‘운명애(運命愛, amor fati)’이다. 이 운명애의 근저에는 한(恨)이 숨어 있다. 그것은 비극으로 승화되기 전의 근원적인 슬픔이며 이 부조리한 상황, 억압된 삶에 대한 묵종(默從)의 지혜다. 그것은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며 그 질서에 자기를 귀의시키는 삶의 태도다. ‘역마’에 그처럼 풍성히 나타나는 자연의 진한 색깔과 향기 자체가 한(恨)의 배경을 이루는 것이다. [김병익, ‘운명의 윤회 - 역마’]- 이재선 편, “김동리”(서강대학교출판부, 1995)



작가의 말

화개 장터와 ‘역마’

다솔사에서 약 오십 리가량 되는 하동에서 김종택(金鍾擇)이란 문학 청년이 다솔사로 나를 찾아와 내 백씨에게 가르침을 받고, 또 나를 찾았다.

거기서 김 군은 자기의 신상 이야기를 대강 들려주었는데, 자기의 집은 하동읍이지만, 자기는 하동에서 약 오십 리 남짓 되는 쌍계사 앞에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따로 살림을 나 있나?”

“아임니더. 거기 아부지가 경영하시는 양조장이 있습니더. 아부지는 읍내에 많이 계시고, 실지로는 지가 양조장 일을 맡아보고 안 있습니꺼. 경치 좋은 데가 여러 군데 있습니더.”

그 뒤 한 반년쯤 지났을까. 나는 그 김 군이 양조장을 경영하고 있다는 화개협(花開峽)을 찾기로 했다. 김 군은 과연 쌍계사 입구에 해당하는 화갯골의 양조장 뒷방에서 산적(山積)된 문학 서적 속에 파묻혀 있었다.

화개협의 장관은 과연 김 군이 말한 대로 장관이었다. 화개 장터에서 쌍계사까지는 약 이십 리가량 되었는데, 굽이굽이 주막이 있고, 색시가 있고, 노래가 있고, 은어 회가 있고, 해서 나는 조금도 피로를 모른 채 걸을 수 있었다.

나의 ‘역마(驛馬)’란 소설도 이때 얻은 착상이다.

‘역마’에 나오는 화개 장터니 쌍계사니 화갯골이니 하는 것이 김 군이 살던 고장이었다.

우리는 이 화갯골에서 잡아내는 은어, 붕어, 껄떼기 따위를 사서 회를 치게 하고, 마늘과 풋고추를 알맞게 다져 놓은 초고추장에다 막걸리를 먹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꿈 같기만 하다.

아, 그 물고기 회 맛, 그 막걸리 맛, 그리고 그 햇빛, 그 수풀. - 김동리, “김동리 전집 8 나를 찾아서”(민음사, 1997)



김동리(金東里) 

1913∼1995. 소설가·평론가. 본관은 선산(善山). 호적명이 창귀(昌貴), 족보명은 태창(太昌), 아명(兒名)은 창봉(昌鳳). 자는 시종(始鍾), 호는 동리(東里). 경상북도 경주 출생. 조선 초기의 문신 김종직(金宗直)의 17대 손으로 아버지는 임수(壬守)이다. 동리에게 아버지와 같은 존재인 큰형은 동양철학자 범부(凡父) 김기봉(金基鳳)이며, ‘동리’라는 호는 그가 지어준 것이다.

5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동리는 어머니가 기독교인이었던 관계로, 기독교 계통의 학교에서만 수학하였다. 경주 제일교회 소속의 계남소학교와 대구의 계성중학교 및 서울로 편입한 경신중학교 모두 기독교 계통의 학교이다. 하지만 그의 학창 생활은 17세 되던 1929년 경신중학교를 중퇴하고 낙향하는 것으로 종료된다.

큰형의 제자였던 서정주(徐廷柱)와 교우 관계를 맺으면서, 그와 함께 한국문학사에 있어 순수문학의 전통을 수립하게 된다. 서라벌예술대학 교수를 거쳐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장을 역임하였고, 한국문인협회 회장·예술원 회장·한국소설가협회 회장·한일문화교류협회장 등 주요 문예 단체의 대표를 맡아 활발한 문단 활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1968년에 ≪월간문학≫을 창간하였으며, 1973년에는 ≪한국문학≫을 창간하였다.

193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백로 白鷺〉가 입선되면서 등단하였고, 이듬해 1935년 ≪조선중앙일보≫ 신춘문예에는 단편소설 〈화랑(花郞)의 후예(後裔)〉가 당선됨으로써 소설가로서 창작 활동을 펼치게 된다. 이어서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산화 山火〉가 또 다시 당선된다.

그리하여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시작한 그는 단편 〈무녀도 巫女圖〉(중앙, 1936.5.)·〈바위〉(신동아, 1936.5.) 등의 문제작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1930년대 후반 가장 주목받는 신세대 작가로 부각된다. 특히, 유진오(兪鎭午)로 대별되는 구세대의 문학과 이른바 세대 논쟁을 벌이면서 1930년대 후반 신세대 문학의 기수가 된 그는 서정주와 함께 ≪시인부락≫(1937)을 결성하면서 자신의 문학세계를 구축하게 된다.

이후 그는 해방공간에서 좌우익의 대립과 혼란 속에 좌익계 문학단체인 ‘문학가동맹’에 대항하여 우익계 단체인 ‘한국청년문학가협회’를 결성하고, 1946년 초대 회장에 오른다. 1947년부터 1948년까지 또다시 순수문학 논쟁을 벌이는데, 그는 〈순수문학의 진의(眞義)〉(서울신문, 1946.9.14.)를 계기로 다수의 평론을 발표하며 김병규(金秉逵)·김동석(金東錫) 등의 좌파 이론가와 맞서서 논쟁을 벌인다.

한편 소설작품에서도 우파의 정치적 관점을 적극적으로 투영시키는 작품을 발표한다. 좌파 이론가와 논쟁을 벌인 그는 ‘본격문학’이란 용어를 사용하면서, 좌파 계급주의 민족문학론에 대항하여 인간주의 문학론을 제창한다.

그가 제창하는 인간주의 문학론은 그 스스로 ‘본령정계의 문학’으로 명명한 것인바, 〈순수문학의 진의〉에서 “자본주의적 기구의 결함과 유물변증법적 세계관의 획일주의적 공식성을 함께 지양하여 새로운 보다 더 고차원적 제3세계관을 지향하는 것이 현대 문학정신의 세계사적 본령이며, 이것을 가장 정계적으로 실천하려는 것”이 바로 “순수문학 혹은 본격문학”으로 규정을 내린다.

즉, 그는 문학의 사회 참여와 공리성을 부정하는 문학적 입장에 서 있다. 그리하여 그의 대표작인 단편소설 〈무녀도〉·〈황토기 黃土記〉(문장, 1939.5.)·〈실존무 實存舞〉(문학과 예술, 1955.6.)와 장편소설 〈사반의 십자가〉(현대문학, 1955.11.∼1957.4.)·〈을화 乙火〉(문학사상, 1978.4.) 등을 통해 역사와 현실을 초월한 인간의 본질적 문제를 탐구하여 들어간다.

그것은 인간과 생명의 원형질적 정수(精髓)를 탐구하는 것이다. 이처럼 그는 ‘본격문학=순수문학=민족문학’이란 문학적 이념 아래 왕성한 창작 활동을 보였다. 그는 한국 소설사에서 토착적이고 민족적인 소재를 ‘생(生)의 구경적(究竟的) 탐구’로써 형상화하여 민족문학의 전통을 정립하고 확대시킨 작가이다.

그밖에 주요 작품으로 〈역마 驛馬〉(1948)·〈등신불 等身佛〉(1961)·〈까치소리〉(1966) 등의 단편소설이 있고, 단편집으로 ≪무녀도≫(1947)·≪황토기≫(1949)·≪실존무≫(1955)·≪등신불≫(1963)·≪바위≫(1973)·≪밀다원시대 密茶苑時代≫(1975) 등과, 평론집으로 ≪문학과 인간≫(1948)·≪소설작법≫(공저, 1965)·≪고독과 인생≫(1977)·≪문학이란 무엇인가≫(1984), 시집으로 ≪바위≫(1973)와 유고시집 ≪김동리가 남긴 시≫(1988), 수필집으로 ≪자연과 인생≫(1977)·≪사색과 인생≫(1973) 등의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의 정력적 창작 활동과 화려한 문단 활동으로 아세아자유문학상, 예술원 문학부문 작품상, 3.1문화상 예술부문 본상, 서울시문화상 문학부문 본상, 5.16민족문학상 등을 수상하였고, 또한 국민훈장동백장과 국민훈장모란장을 수여 받았다. 

≪참고문헌≫ 김동리전집(민음사, 1997), 김동리 문학 앨범(웅진, 1995), 사반과의 대화(김윤식, 민음사, 1997), 김동리 삶과 문학(김정숙, 집문당, 1996), 김동리(이동하, 건국대학교출판부, 1996)(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소설가 이문구의 "역마" 감상 

"역마"는 특히 단편 소설에서 완성미의 경지에 이르렀던 김동리가 1948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평단의 문학사적인 조명은 그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퍽 소루했던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무슨 이유일까. 결론이 앞지르는 셈이지만 짐작하건대 아마 가장 탈이념적인 작품이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역마"는 지리산 길에서 내려오는 산나물과, 하동길에서 올라오는 해산물과, 전라도의 구롓길에서 건너오는 생필품이 모이고 흩어지는 화개 장터를 배경으로, 사주에 역마살을 타고 난 '자연적인 사람들'끼리 자연스럽게 '제 길'을 가면서 펼치는 낭만적인 인생 유전극이다. 그들은 누구인가. 화개 장터에 들러서 놀다간 남사당패의 육자배기 가락에 반하여 하룻밤의 풋사랑으로 아비 없는 아들을 낳아 기른 할머니와, 그 딸이 자라나서 지나가는 중과 배가 맞아 아비 없는 아들을 기르며 주막을 차려 살아가는 옥화와, 그 아들이 자라서 역마살을 풀기 위해 절에 들어가 '중질'을 하며 화개장에서 책을 성기와, 젊어서는 사당패로 떠돌고 늙어서는 체장수로 떠돌며 36년 만에 화개 장터를 다시 찾은 체장수 영감, 그리고 체장수 아비에 의해 옥화네 주막에 맡겨져 '흰자위 검은 자위가 꽃같이 선연한 두 눈'으로 성기의 넋을 앗아간 열대여섯 살짜리 소녀 계연 등이다.

옥화는 역마살 탓에 언제 어디로 떠돌는지 모르는 성기를 집에 붙잡아 놓기 위해 성기와 계연 사이에 어서 이성의 싹트도록 마음을 쓴다. 그러나 성기와 계연이 사랑에 눈 뜰 무렵 옥화는 계연이 귓바퀴에 난 사마귀가 자기와 같다는 것으로 체장수는 자기 아버지이며 계연은 배다른 동생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옥화는 기구한 운명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끝까지 숨긴다. 성기는 체장수 부녀가 고향으로 떠난 뒤에야 저와 계연이 그럴 수 없는 사이였음을 깨닫고 제돌에 이르도록 몸을 가누지 못한다. 하지만 옥화가 '아들의 뼈만 남은 손을 눈물로 씻던' 날, 성기는 '무슨 새로운 결심이나 하듯 입술을 지그시 깨물' 더니 마침내 엿장수가 되어 옥화가 맞춰 준 엿목판을 메고, '육자배기 가락으로 제법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정처없는 발길을 내딛고 만다.

이 작품은 읽으면서 책 속에서 청산을 옮겨 놓은 듯한 치밀하고 현란한 자연 묘사에 전율하고, 성기와 계연의 애틋한 이별에 가슴이 아리며, 성기가 오롯이 길을 떠나는 종장에서 이것이 바로 문학이구나 하는 아련한 감동을 받는다.

성기가 가는 길은 지리산길 하동길 구롓길이 아니라 동양적인 무위자연행(無爲自然行)이며, 정한에 사무친 한국적 낭만과 풍류가 아닐는지. "역마"는 전통적인 민족 정서가 섬진강처럼 흐르는 한국 소설 문학의 백미라고 생각한다.(글 - 소설가 이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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