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小說家) 구보씨(仇甫氏)의 일일(一日) / 해설 / 박태원
by 송화은율소설가(小說家) 구보씨(仇甫氏)의 일일(一日) - 박태원
지은이 : 박태원
갈래 : 중편 소설. 심리 소설, 도시 소설, 세태 소설, 모더니즘 소설
배경 : 시간(1930년대 어느 하루). 공간(서울의 거리). 현실적 공간(서울에서의 하루). 의식의 공간(첫사랑을 시작한 어린 소년기 - 동경 유학시절)
성격 : 세태 관찰적, 심리적, 묘사적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구성 : 단순 구성, 1일 동안의 여로 형식(이 작품은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이라는 일반적인 소설의 구성 방식을 따르지 않고 있다. 다만, 외출해서 전차 안 → 다방 → 거리 → 술집 그리고 귀가까지의 작중 화자의 관찰과 심리가 서술되고 있을 뿐이다.)
제재 : 소설가 구보 씨의 하루 생활
주제 : 1930년대 무기력한 문학인의 눈에 비친 일상사, 한 지식인의 외로움과 이상과 현실에 대한 갈등, 소설가의 눈에 비친 일반인들 일상적인 모습
등장 인물 :
구보 : 외출에서 귀가까지의 관찰의 주체로서 소설가이다.
어머니 : 구보의 어머니이며 아들의 늦은 귀가와 결혼을 염려한다
줄거리 : 구보 씨는 동경 유학까지 하고 돌아왔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소일하는 작가이다. 집을 나선 구보는 서울 시내를 배회하면서 거리의 여러 풍경이나 군중과 마주칠 때마다 고독과 행복에 대하여 생각하고, 동경에서의 일을 회상하기도 하며, 다방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연인들을 바라보면서 질투와 고독을 느낀다. 친구들과의 목적 없는 만남 뒤에 구보는 친구와 술집에 들러, 모든 사람을 정신 병자로 관찰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밤이 되자 그는 늦게까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어머니를 생각하고, 어머니의 혼인 이야기를 물리치지 않기로 작정한다. 그는 벗에게 좋은 소설을 쓰겠다고 말하면서 헤어진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직업과 아내를 갖지 않은 스물 여섯 살의 구보는 정오에 집을 나와 광교, 종로를 걸으며 귀도 잘 들리지 않고 시력에도 문제가 있다는 신체적 불안감을 느낀다. 무작정 동대문행 전차를 타고는 전차 안에서 전에 선을 본 여자를 발견한다. 일부러 모른 체하고 있다가 그녀가 전차에서 내리고 난 후 후회한다. 혼자 다방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자기에게 여행비만 있으면 행복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고독을 피하려고 경성역 삼등 대합실로 가나, 오히려 온정을 찾을 수 없는 냉정한 눈길들에 슬픔을 느끼며, 거기서 만난 중학 시절 열등생이 예쁜 여자와 동행인 것을 보고 물질에 약한 여자의 허영심을 생각한다. 다시 다방에서 만난 시인이며 사회부 기자인 친구가 돈 때문에 매일 살인 강도와 방화 범인의 기사를 써야 한다는 사실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애달파하고, 즐겁게 차를 마시는 연인들을 바라보면서 질투와 고독을 동시에 느낀다. 다방을 나온 구보는 동경에서 있었던 옛사랑을 추억하며 자신의 용기 없는 약한 기질로 인해 여자를 불행하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을 느끼고, 또 전보 배달의 자동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며 오랜 벗에게서 한 장의 편지를 받고 싶다는 생각에 젖는다. 그리고 여금이 있는 종로 술집에서 친구와 술을 마시며 세상 사람들을 모두 정신병자로 간주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하고, 하얀 소복을 입은 아낙이 카페 창 옆에 붙은 '여급 다모집'에 대하여 물어 오던 일을 생각하고 가난에서 오는 불행에 대하여 생각한다. 오전 두 시의 종로 네거리, 구보는 제 자신의 행복보다 어머니의 행복을 생각하고 이제는 어머니가 권하는 대로 결혼을 하여 생활도 갖고 창작도 하리라 다짐하며 집으로 향한다.
특징 : 작가의 실제 생활을 반영한 자전적인 소설로 발표 직후 새로운 형식의 소설이란 평가를 받기도 했으며, 목적 없이 집을 나간 구보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길에서 부딪히게 되는 단편적인 여러 사실들, 그리고 그에 의해 촉발되는 두서 없는 생각들의 편린을 통해 1930년대의 나약한 지식인의 일상사를 엿볼 수 있으며, 이 작품은 어머니의 소망인 일상적인 '행복'과 지식인의 무료한 일상은 이 작품의 중요한 내용 구조를 이루고 있다. 또한 '산책'이라는 배회의 형식은 '관찰'과 '의식의 흐름'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장치이다. '구보'가 지나가는 길에 나타난 풍물은 근대화의 양면성을 드러내 주고 있으며 중요한 것은 내면 의식의 흐름이다. 그것은 여러 풍경에서 발견되고 있는, 그러나 자신에게는 결여된 '일상적인 행복'과 지식인의 '고독'이 두 축을 이루고 있다.
출전 : 조선중앙일보(1934)
(전략)
9. 경성역에서 보는 인생들
조그만 한 개의 기쁨을 찾아, 구보(스물 여섯의 인텔리 소설까로, 타락한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살려 하다가 마지막에는 어머니의 소망대로 결혼을 하고 소설을 쓰기로 결심함)는 남대문을 안에서 밖으로 나가보기로 한다. 그러나 그곳에는 불어드는 바람도 없이 양 옆에 웅숭그리고(궁상맞게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는, 서너 명의 지게꾼들의 그 모양이 맥없다.[생기와 활력이 없는 남대문 밖 풍경]
구보(작가 박태원의 호이자 필명)는 고독(구보의 주된 심정)을 느끼고, 사람들 있는 곳으로, 약동하는(생기 있고 활발하게 움직이는) 무리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 생각한다.[사람들의 활기차고 따스한 인간미를 느끼고자 하는 고독한 소설가 구보씨의 소망이 나타난 구절] 그는 눈앞의 경성역을 본다. 그곳에는 마땅히 인생(활기차고 온정을 나누는 삶)이 있을 게다. 이 낡은 서울의 호흡과 또 감정이 있을 게다. 도회의 소설가는 모름지기 이 도회의 항구(도시 문명의 중심지)와 친하여야 한다.[도회의 소설가는 이 도회의 항구와 친하여야 한다. : '도회의 소설가'란 '현대 작가' 혹은 '모더니스트'의 뜻을, '도회의 항구'는 '도시 문명의 중심지'라는 뜻을 드러냄]
그러나 물론 그러한 직업의식은 어떻든 좋았다. 다만 구보는 고독을 삼등 대합실 군중 속에 피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오히려 고독은 그곳에 있었다[오히려 고독은 그 곳에 있었다. : 경성역에 와서 군중들의 모습을 봄으로써 고독을 확인할 뿐이었다. 도시 문명의 어두운 면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과 어울리는 서술이다. 군중 속의 고독]. 구보가 한옆에 끼어 앉을 수도 없게스리 사람들은 그곳에 빽빽하게 모여 있어도, 그들의 누구에게서도 인간 본래의 온정(구보가 추구하는 가치)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들은 거의 옆의 사람에게 한마디 말을 건네는 일도 없이 오직 자기네들 사무에 바빴고,(인정이 사라진 도시의 풍경) 그리고 간혹 말을 건네도, 그것은 자기네가 타고 갈 열차의 시각이나 그러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네들의 동료가 아닌 사람에게 그네들은 변소에 다녀올 동안의 그네들 짐을 부탁하는 일조차 없었다. [자신의 일상에만 매몰되어 주위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도시인의 일상적인 모습을 서술한 부분으로 1930년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전통적인 사회의 따뜻한 인간미를 상실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남을 결코 믿지 않는 그네들의 눈은 보기에 딱하고 또 가엾었다.
구보는 한구석에 가 서서 그의 앞에 앉아 있는 노파(연민의 대상)를 본다. 그는 뉘 집에 드난[(흔히 여자가) 남의 집에 매이지 않고 임시로 붙어 살며 일을 도와 주는 고용살이]을 살다가 이제 늙고 쇠잔한 몸을 이끌어 결코 넉넉하지 못한 어느 시골, 딸네 집이라도 찾아가는지 모른다. 이미 굳어버린 그의 안면 근육은 어떠한 다행한 일에도 펴질 턱 없고(오랜 세파로 감정도 상실) 그리고 그의 몽롱한 두 눈은 비록 그의 딸의 그지없는 효양(孝養 : 효도하며 봉양함)을 가지고도 감동시킬 수 없을지 모른다.[삶의 풍파로 인해 굳어버린 노파의 마음을 추측한 부분]
노파 옆에 앉은 중년의 시골 신사(구보의 비판의 대상)는 그의 시골서 조그만 백화점을 경영하고 있을 게다. 그의 점포에는 마땅히 주단 포목(베와 무명)도 있고, 일용잡화도 있고, 또 흔히 쓰이는 양품도 갖추어 있을게다. 그는 이제 그의 옆에 놓인 물품을 들고 자랑스러이 차에 오를게다.
구보는 그 시골 신사가 노파와의 사이에 되도록 간격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몰인정한 모습)을 발견하고 그리고 그를 업신여겼다[노파에게서 되도록 떨어져 앉으려는 시골 신사의 모습을 보며 구보는 그를 업신여기고 있다.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보면 무시하며 거리를 두려 하는 속성을 그 시골 신사에게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에게 옅은 지혜와 또 약간의 용기를 주면 그는 삼등 승차권을 주머니 속에 간수하고 일, 이등 대합실에 오만하게 자리잡고 앉을 게다.[구보는 한 구석에 가 서서 - 대합실에 오만하게 자리잡고 앉을 게다 : 영화에서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벌어진 단편적인 사건을 나란히 병치시키 때 사용하는 몽타주 기법을 사용하여 노파와 시골 신사의 처지를 서술자가 적고 있다. 여기서 시골 신사의 우월감에 대한 냉소적 비판][몽타주 기법 : 원래 따로 촬영된 필름의 단편을 창조적으로 접합해서 현실과는 다른 영화적 시간과 영화적 공간을 만드는 기법을 말한다. 문학에서 이러한 방법은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벌어진 여러 개의 작은 단편적인 사건이나 심상을 특별한 경계 없이 나란히 두거나 뒤섞어서 하나의 통일된 인상이나 주제를 이루게 하려는 기법을 의미한다.]
문득 구보는 그의 얼굴에 부종(浮腫) : 피하 조직의 틈에 조직액 또는 램프액이 많이 괴어 몸의 전체 또는 일부가 부어 오른 상태)을 발견하고 그의 앞을 떠났다. 신장염. 그뿐 아니라 구보는 자기 자신의 만성 위확장을 새삼스러이 생각해 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나 구보가 매점 옆에까지 갔었을 때, 그는 그곳에서도 역시 병자를 보지 않으면 안되었다.[문득 구보는 - 보지 않으면 안되었다 :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병에 관하여 여러 차례 서술하고 있다. 이 서술을 통해 작가는, 주인공은 물론이고 경성의 도시인들이 심각한 정신적·육체적 질병을 앓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40여 세의 노동자. 전경부(前頸部 : 목의 앞부분)의 광범한 팽륭(澎隆 : 부풀어 오름). 돌출한 안구. 또 손의 경미한 진동. 분명한 '바세도우씨'병(Basedow, 문명의 발달로 인한 질병 발생을 강조하기 위해 작가가 의도적으로 사용). 그것은 누구에게든 결코 깨끗한 느낌을 주지는 못한다. 그의 죄우에 죄석이 비어 있어도 사람들은 그곳에 앉으려 들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그에게서 두 칸통 떨어진 곳에 있던 아이 업은 젊은 아낙네가 그의 바스켓 속에서 꺼내다 잘못하여 시멘트 바닥에 떨어뜨린 한 개의 복숭아가 굴러 병자의 발 앞에까지 왔을 때, 여인은 그것을 쫓아와 집기를 단념하기조차 하였다.
구보는 이 조그만 사건에 문득 흥미를 느끼고, 그리고 그의 대학노트(소설 창작 도구)를 펴들었다.[박태원은 눈 앞의 장면을 노트에 적고 그것을 그대로 소설화하는 창작 방법을 쓰면서 그것을 스스로 고현학(考現學)이라 이름을 붙였다. 그의 작품에서 고현학은 두 가지 형태를 나타난다. 하나는 공적인 인간의 사생활을 소설화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소설 작법을 겉으로 직접 드러내는 것이다. 전자는 이 작품이 이상과 김기림이라는 실제 인물의 사생활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후자는 대학 노트를 끼고 경성을 배회하면서 관찰 기록하고 있음을 작품상으로 드러내고 있음에서 확인된다.] 그러나 그가, 문 옆에 기대어 섰는 캡(모자) 쓰고 린네르 즈메리 양복 입은 사나이(일제 경찰의 정탐꾼으로 추정됨)와, 그 온갖 사람에게 의혹을 갖는 두 눈을 발견하였을 때, 구보는 또 다시 우울(구보의 주된 심정) 속에 그곳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었다.[타인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찬 사람들의 모습에 실망하는 구보가 자리를 떠남]
개찰구 앞에
두 명의 사나이가 서 있었다(황금만능주의에 빠진 인물). 낡은 파나마(파나마 풀잎으로 만든 여름 모자)에 모시 두루마기, 노랑 구두를 신고[도시적 풍습] 그리고 손에 조그만 보따리 하나도 들지 않은 그들을, 구보는 확신을 가져 무직자라고 단정한다. 그리고 이 시대의 무직자들은, 거의 다 금광 부로커[중개인이라는 말로 1930년대 대표적인 졸부]에 틀림없었다. 구보는 새삼스러이 대합실 안팎을 둘러본다. 그러한 인물들은, 이곳에도 저곳에도 눈에 띄었다.
황금광 시대 ……(일제는 조선에 있는 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금광 등의 개발을 장려하는 정책을 폈다. 이 결과 많은 사람들이 금광 개발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것은 '금광신드롬'이라고 할 정도로 사회적인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김유정의 소설 '금 따는 콩밭'은 이런 세태를 풍자한 작품이다. 여기서는 주로 물질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시대의 모습을 풍자하고 있다.)
저도 모를 사이에 구보의 입술에서는 무거운 한숨이 새어 나왔다.[황금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과 자신의 무기력에 대한 한탄] 황금을 찾아, 그것도 역시 숨김없는 인생의 문명한 일면이다. 그것은 적어도 한 손에 단장과 또 한 손에 공책을 들고, 목적 없이 거리로 나온 자기[거리의 풍경을 관찰하여 기록하는 소설가]보다는 좀더 진실한 인생이었을지도 모른다.[삶의 목적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자신의 삶에 대해 자조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시내에 산재한 무수한 광무소[금광 산업에 대한 당시의 열기를 보여주는 소재]. 인지대[인지의 대금으로 '인지'는 국가가 세금이나 수수료를 거두어 들일 때 그 증서에 붙이게 하는, 일정한 금액을 나타낸 표] 100원, 열람비 5원, 수수료 10원, 지도대 18전... 출원 등록된 광구, 조선 전토의 7할. 시시각각으로 사람들은 졸부가 되고 또 몰락하여 갔다.[시내에 산재한 - 또 몰락하여 갔다 : 금광 투자에 대한 열풍에 휩싸여 소수는 졸부가 되기도 하고 대다수는 경제적으로 몰락하기도 한 당시의 세태를 그리고 있다.] 황금광 시대. 그들 중에는 평론가와 시인, 이러한 문인들조차 끼어 있었다.
구보는 일찍이 창작을 위하여 그의 벗의 광산에 가보고 싶다 생각하였다. 사람들의 사행심, 황금의 매력, 그러한 것들은 구보는 보고, 느끼고, 하고 싶었다(구보가 벗의 광산에 가 보고 싶은 이유). 그러나 고도의 금광열은 오히려 총독부 청사, 동측 최고층, 광무과 열람실에서 볼 수 있었다.
문득 한 사나이가 둥글넙적한, 그리고 또 비속한 얼굴에 웃음을 띄우고, 구보 앞에 그의 모양 없는 손을 내민다. 그도 벗이라면 벗이었다(친하지 않음을 말함). 중학 시대의 열등생. 구보는 그래도 약간 웃음에 가까운 표정을 지어 보이고, 그리고 단장 든 손을 그대로 내밀어 그의 손을 가장 엉성하게 잡았다[우연히 만난 중학교 동창에 대한 구보의 반갑지 않은 심리가 표출됨]. 이거 얼마만이야. 어디가나. 응, 자네는...
구보는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자네' 소리를 들으면 언제든 불쾌하였다. '해라'는, 해라는 오히려 나았다.(친하지 않은 사람으로부터 반말을 듣는 것보다 '자네'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 더 불쾌하였다. 친하지 않은 사람이 친한 척하는 것을 역겹게 느낀다는 의미이다.) 그 사나이는 주머니에서 금시계를 꺼내 보고(사나이는 자신의 부를 자랑하기 위해 금시계를 꺼내 보았으나 구보는 이런 사나이의 행동을 속물적인 것으로 여긴다.), 다음에 구보의 얼굴을 쳐다보며, 저기 가서 차라도 안 먹으려나.
전당포 집의 둘째 아들. 구보는 그러한 사나이와 자리를 같이 하여 차를 마실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에 한 개의 구실을 지어, 그 호의를 사절할 수 있도록 구보는 용감하지 못하다. (구보의 우유부단한 성격)그 사나이는 앞장을 섰다. 자, 그럼 저리로 가지. 그러나 그것은 구보에게만 한 말이 아니었다.
구보는 자기 뒤를 따라오는 한 여성을 보았다. 그가 한 번 흘낏 보기에도, 한 사나이의 애인 된 티가 있었다. 어느 틈엔가 이런 자도 연애를 하는 시대가 왔나[속물적인 중학교 동창에 대한 구보의 냉담한 심리를 드러내고 있다.]. 새삼스러이 그 천한 얼굴이 쳐다보였으나 그러나 서정시인조차 황금광으로 나서는 때다.(연애는 서양 문화를 먼저 받아들인 지식인들이나 하던 것이며 서정 시인들은 세속에는 초연하게 사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제는 세태가 변해 무식한 자들도 연애를 하고 서정 시인들마저도 돈을 벌기 위해 금광을 찾아 나서고 있다.)
의자에 가 가장 자신 있게 앉아, 그는 주문 들으러 온 소녀에게, 나는 가루삐스(calpis : 우유를 가열·살균하고 냉각·발효한 뒤 당액(糖液) 칼슘을 넣어 만든 음료수) 그리고 구보를 향하여, 자네두 그걸루 하지. 그러나 구보는 거의 황급하게 고개를 흔들고, 나는 홍차나 커피로 하지.
음료 칼피스를 구보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외설(猥褻 : 사람의 성욕을 자극하여 난잡함)한 색채를 갖는다('칼피스'가 남성의 정액을 연상시킨다는 말이다). 또 그 맛은 결코 그의 미각에 맞지 않았다. 구보는 차를 마시며 문득 끽다점에서 사람들이 취하는 음료를 가져, 그들의 성격, 교양, 취미를 어느 정도까지는 알 수 있을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여 본다[동창과의 대화 중에도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 있음].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그네들의 그때그때의 기분조차 표현하고 있을 게다.
구보는 맞은편에 앉은 사나이의, 그 교양 없는 이야기에 건성 맞장구를 치며, 언제든 그러한 것을 연구하여 보리라 생각한다.(구보는 속물적인 친구를 뿌리치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성격이다.)
(중략)
소설가다운 온갖 망상을 즐기며(동경에 있을 때, 다방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한 여성의 노트를 주운 구보는 그것을 돌려 주기 위해 그녀를 찾아가며 여러 가지 상상을 해본다.), 이튿날 아침 구보는 이내 이 여자를 찾았다. 우입구 시래정(牛 區 矢來町). 주인집은 그의 신조사(新潮社) 근처에 있었다. 인품이 좋은 주인 여편네가 나왔다 들어간 뒤, 현관에 나온 노트 주인은 분명히……[소설가다운 - 노트 주인은 분명히…… : 구보가 일본 동경에 있었을 때 사랑했던 여자의 집을 찾아가는 과거 회상 장면] 그들이 걸어가고 있는 쪽에서 미인이 왔다(이 대목은 과거 동경에서 경험한 사건과 현재의 사건이 뒤섞여 나열되었다. 미인이 나온 것은 현재의 사건이다.). 그들은 보고 빙그레 웃고 그리고 지났다. 벗의 다료(차를 마시는 곳) 옆, 카페 여급. 벗이 돌아보고 구보의 의견을 청하였다. 어때 예쁘지. 사실 여자는, 이러한 종류의 계집으로서는 드물게 어여뻤다[그들이 걸어가고-드물게 어여뻤다 : 현재 장면]. 그러나 그는 이 여자보다 좀더 아름다웠던 것임에 틀림없었다.
어서 옵쇼. 설렁탕 두 그릇만 주(현재 장면) - 구보가 노트를 내어놓고, 지기의 실례에 가까운 심방(尋訪 : 방문하여 찾아봄)에 대한 변해(辨解 : 말로 풀어 밝힘)를 하였을 때, 여자는 순간에 얼굴이 붉어졌었다. 모르는 남자에게 정중한 인사를 받은 까닭만이 아닐 게다. 어제 어디 갔었니. 길옥신자(吉屋信子 : 요시야 노부코).[동경의 다방에서 주운 노트에 기록되었던 낙서이다] 구보는 문득 그런 것들을 생각해 내고, 여자 모르게 빙그레 웃었다.[구보가 노트를 내어놓고, - 여자 모르게 빙그레 웃었다. : 과거 회상 장면]
맞은편에 앉아 벗은 숟가락 든 손을 멈추고 빤히 구보를 바라보았다. 그 눈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 물었는지도 모른다. 구보는 생각의 비밀을 감추기 위하여 의미 없이 웃어 보였다.[맞은편에 앉아 - 의미 없이 웃어 보였다. : 현재 장면] 좀 올라오세요. 여자는 그렇게 말하였었다. 말로는 태연하게, 그러면서도 그의 볼은 역시 처녀답게 붉어졌다. 구보는 그의 말을 쫓으려다 말고 불쑥, 같이 산책이라도 안하시렵니까, (구보의 말)볼일 없으시면. 일요일이었고, 여자는 마악 어디 나가려던 차(次)인지 나들이옷을 입고 있었다.
통속소설은 템포가 빨라야 한다.(통속 소설은 사건의 필연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흥미위주의 우연한 사건들이 중심을 이루면서 사건의 진행 속도가 빠른 것처럼, 노트 주인인 여성과 자신의 관계가 빠르게 진척되고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여자와의 사랑에 진정한 의미를 두지 않는 구보의 가치관이 드러나 있다.) 그 전날, 윤리학 노트를 집어들었을 때부터 이미 구보는 한 개 통속소설의 작가였고 동시에 주인공이었던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는 여자가 기독교 신자인 경우에는 제 자신 목사의 졸음 오는 설교를 들어도 좋다고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여자는 또 한 번 얼굴을 붉히고 그러나 구보가 만약 볼일이 계시다면, 하고 말하였을 때, 당황하게, 아니에요, 그럼 잠깐 기다려주세요(여자의 말), 그리고 여자는 핸드백을 들고 나왔다. 분명히 자기를 믿고 있는 듯싶은 여자 태도에 구보는 자신을 갖고, 참, 이번 주일에 무장야관(武藏野館)도 구경하셨습니까.(구보의 말)
16. 이슬비 내리던 저녁
그리고 그와 함께 그러한 자기가 하릴없는 불량소년같이 생각되고 또 만약 여자가 그렇게도 쉽사리 그의 유인에 빠진다면, 그것은 아무리 통속 소설이라도 독자는 응당 작가를 신용하지 않을 게라고 속으로 싱거웁게 웃었다.[또 만약 - 싱거웁게 웃었다. : 여자에게 데이트를 신청하는 자신에 대해 스스로 멋쩍게 생각하는 구보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그러나 설혹 그렇게도 쉽사리 여자가 그를 쫓더라도 구보는 그것을 경박하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경박이란 문자는 맞지 않을게다. 구보의 자부심으로서는 여자가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족히 믿을 만한 남자로 볼 수 있도록 그렇게 총명하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여자는 총명하였다. 그들이 무장야관 앞에서 자동차를 내렸을 때, 그러나 구보는 잠시 그곳에 우뚝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뒤에서 내리는 여자를 기다리기 위하여서가 아니다. 그의 앞에 외국 부인이 빙그레 웃으며 서 있었던 까닭이다.
구보의 영어 교사는 남녀를 번갈아 보고, 새로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웃고 '오늘 행복을 비오' 그리고 제 길을 걸었다. 그것에는 혹은 30 독신녀의 젊은 남녀에게 대한 빈정거림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구보는 소년과 같이 이마와 콧잔등이에 무수한 땀방울을 깨달았다. 그래 구보는 바지 주머니의 수건을 꺼내어 그것을 씻지 않으면 안되었다. 여름 저녁에 먹은 한 그릇의 설렁탕은 그렇게도 더웠다.
1934년 8월 1일부터 9월 19일까지 <조선 중앙 일보>에 연재된 중편 소설로서 고도의 소설적 기교를 사용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소설은 홀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미혼의 소설가 구보가 어느 날 집을 나서서 서울 거리를 배회하면서 거리의 풍물 및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내면 의식이 주로 서술되고 있다. 그렇지만 그러한 내면 의식은 도중에 우연히 부딪히게 되는 단편적 사실들에 의해 촉발되는 두서 없는 생각들일 뿐이다. 그리고 내용 연구에 실린 글의 일부의 장면은 주인공이 왜 무료한 일상을 지속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잘 보여 주고 있다. 주인공이 원하는 것은 '조그만 한 개의 기쁨' 즉 활력과 생기가 넘치는 도시의 생활이다. 그러나 그가 경성역 주변 풍경에서 발견하는 것은 암울한 인간 군상이며, 끝내 주인공은 군중 속의 고독 즉 우울함만을 확인한 채 그 곳을 떠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물론 경성역이란 매우 의미 있는 공간 설정이다. '기관차'로 표상되는 근대 문명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작품의 주요 내용으로 근대 문명의 부정적 측면(예컨대, 지게꾼, 쇠잔한 노파, 병자 등을 통한 관찰에서 제시된 것)을 예리하게 관찰해 보여 주고 있음을 지적한다면, 이 장면이 그 적절한 예가 된다고 할 수 있겠다.
이해와 감상1
박태원(朴泰遠)이 지은 중편소설. ≪조선중앙일보≫에 1934년 8월 1일부터 9월 19일까지 연재되었다. 민족항일기에 문학을 하는 당대 지식인의 무기력한 자의식에 비치는 일상의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이상(李箱)이 하융이란 필명으로 삽화를 그렸다. 직업과 아내를 갖지 않은 26살의 구보는 정오에 집을 나와 광교·종로를 걸으며 귀도 잘 들리지 않고 시력에도 문제가 있다는 신체적인 불안감을 느낀다.
그리고 무작정 동대문행 전차를 탄 뒤 거기서 선을 본 여자를 발견하나 모른 체하고 후회하며, 혼자 다방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자기에게 여행비만 있으면 행복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고독을 피하려고 경성역 삼등대합실에 가나, 오히려 온정을 찾을 수 없는 냉정한 눈길들에 슬픔을 느끼며, 거기서 만난 중학 시절 열등생이 예쁜 여자와 동행인 것을 보고 물질에 약한 여자의 허영심을 생각한다.
또 다방에서 만난 시인이며 사회부 기자인 친구가 돈 때문에 매일 살인강도와 방화범인의 기사를 써야 한다는 사실을 애달파 하고, 즐겁게 차를 마시는 연인들을 바라보면서 질투와 고독을 동시에 느낀다. 다방을 나온 구보는 동경에서 있었던 옛사랑을 추억하며 자신의 용기 없는 약한 기질로 인해 여자를 불행하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을 느낀다. 또 전보배달의 자동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며 오랜 벗에게서 한 장의 편지를 받고 싶다는 생각에 젖는다.
그리고 여급이 있는 종로 술집에서 친구와 술을 마시며 세상 사람들을 모두 정신병자로 간주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하고, 하얀 소복을 입은 아낙이 카페 창 옆에 붙은 ‘여급대모집’에 대하여 물어오던 일을 기억하며 가난에서 오는 불행에 대하여 생각한다. 오전 2시의 종로 네거리, 구보는 제 자신의 행복보다 어머니의 행복을 생각하고 이제는 생활도 갖고 창작도 하리라 다짐하며 집으로 향한다.
이 소설은 작자 자신의 자전적 소설로서 1930년대 문학인의 정신구조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 당시 문학인의 사회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지표를 제공하고 있다. 또 〈성탄제 聖誕祭〉·〈비량 非凉〉 등의 초기 단편들에서 인물의 심리를 면밀하게 탐구하던 것과, 장편 〈천변풍경 川邊風景〉에서 나타나는 철저한 관찰적 방법과의 혼재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중편이라는 점에서 작자의 작품 변모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작품이다. ≪참고문헌≫ 한국현대소설사(이재선, 弘盛社, 1979), 小說空間壙大의 한 樣相―仇甫의 경우―(趙東吉, 공주사범대학논문집 인문과학편 23호, 1985).(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해와 감상2
박태원이 자신의 창작 방법론을 고현학(考現學 the study of modern phenomena, - 현대적 일상 생활의 풍속을 면밀히 조사 탐구하는 행위)이라 했는데, 이를 적용시킨 작품이 바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다.
이 작품은 1934년에 '조선 중앙 일보'에 연재되었던 중편 소설인데, 민족 항일기에 문학을 하는 지식인의 무기력한 자의식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심리주의 작가로 알려진 이상(李箱)이 '하융'이란 필명으로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 이 소설은 박태원의 생활을 반영한 그의 자진적 소설로, 발표된 직후 새로운 형식의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주인공인 '구보(仇甫)'가 집을 나서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까지(집 → 천변길 → 종로 네거리 → 화신 상회 → 전차 안 → 조선 은행 앞 → 다방 → 거리 → 경성역 → 조선 은행 앞 → 다방 → 거리 → 다방 → 거리 → 식당 → 거리 → 다방 → 거리 → 술집 → 카페 → 종로 네거리 → 집) 하루 동안, 길거리에서 만나게 된 여러 가지 일들 속에서 반응하고 있는 구보(仇甫)의 의식 세계가 주요 내용이다. 그런데 그것은 일정한 의식의 기분에 의해 통일된 입장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도중에 우연히 부딪히게 되는 단편적인 사실들에 의해 촉발되는 두서 없는 생각들일 뿐이다. 이 소설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특별한 목적 없이 외출하여 걷고 다방에 들어가고 벗을 만나고 하는 구보(仇甫)의 행동이 아니라, 일상성의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주인공 부고의 의식의 추이와 그것을 서술하고 있는 서술 양식이다. 따라서, 이 소설에서는 전통적인 소설 장르에서 중시하는 사건이나 행위, 갈등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소설을 이끌어가는 것은 구보의 지각과 의식의 유동뿐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공간은 스물여섯 살 구보의 서울에서의 하루이지만, 의식의 공간은 첫사랑을 시작한 어린 소년기에서 동경 유학 시절에 이르기까지 확대되어 있다. 따라서, 플롯을 중심으로 하는 서사 구조가 약화되어 있는 반면, 과거에 대한 회상이나 의식의 추이에 대한 서술이 강화되어 있다.
이 소설은 1930년대 문학인의 일상사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 당시 문학인의 의식 구조를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지표를 제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성탄제", "비량" 등의 단편 소설들에서 인물의 심리를 면밀하게 탐구하던 것과 장편 소설 "천변풍경(川邊風景)" 에 나타나는 철저한 관찰적 방법과의 혼재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중편 소설이란 점에서, 박태원의 작품 변모 과정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작품이다.
소설가 구보 씨의 '고독'의 의미
구보의 고독은 정신적인 징후로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신경 쇠약증이 있다. 믿기 어려운 시력과 청력으로 시달리고 있으며, 무의식을 뚫고 의식되는 많은 연상들 후에 느끼는 두통은 매번 그에게 피로한 삶을 환기시킨다. 억압된 욕망이 의식의 영역으로 뚫고 나온 것들을 의식하면서 정신적으로 피로한 구보는 점점 망가져 가는 육체를 느끼게 되며 고독감은 심화된다. 이렇듯 소설가 구보는 세속적인 일상과 거리를 두기 위해 고독을 선택하고, 세계와의 화해를 거부하는 고독한 삶은 그 증후로 모든 신경 조직의 불편을 호소하기에 이른다. 소설가 구보는 정신과 육체, 모든 면에서 일시적 욕망으로 가득 찬 자본주의적 현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구보는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 의식, 무의식으로 세계와의 불편한 관계를 거부하며 화해를 꿈꾸기도 한다. 이것은 고독 때문에 억압된 욕망들이 무의식 저편에 꿈틀거리고 있는 것의 한 양상이다. 구보의 갈등은 이런 이중적인 태도를 뚫고 억압된 욕망들이 구보의 의식 속에 들어오면서 시작된다. 집을 나오면서 어머니에게 대답을 못해 드린 것을 자책하는 구조는 바로 무의식 저편에 삶에의 욕망을 꿈꾸는 고독한 소설가의 뒷모습이라 할 수 있다. (출처 : 강진호 외, '박태원 소설 연구')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의 문학사적 의의
한 칼에 잘라서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해 예술가로서 그가 택하는 방식이 바로 박태원의 상징인 '단장'과 '노트'이다. 현대적 삶을 쫓아다니면서, 삶의 양태를 기록하고, 그럼으로써 현대적 삶의 의미와 그것을 지배하는 질서를 발견하려는 것, 그것을 구보는 '모더놀러지 - 고현학(考現學)'이라고 한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이 우리 문학사에서 의미를 갖는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다. 삶의 의미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보임과 동시에, 자신의 소설의 방법론을 작품의 전면에 내세우는 것, 이것을 우리는 미적 자의식이라 부를 수 있고, 이 미적 자의식으로 해서 그는 모더니스트라고 불리는 것이다. 그러나 삶의 가치를 회복해 보고자 하는 노력의 끝은 어떠한가.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의 말미에서 구보는 더 이상 나돌아 다니지 않고, 집에서 좋은 소설을 쓰겠다고 한다. 생활을 갖겠다고 한다. 나돌아 다니지 않겠다는 것은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 드러낸 자신의 소설 방법론을 버리겠다는 것이고, 이제까지는 불확실했던 삶의 의미를 나름대로 찾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갖겠다는 생활로서 낭만적 사랑 대신에 '가정'과 소시민적 '행복'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출처 : 채호석, '지식인의 도시 체험과 식민지 시대의 삶의 윤리')
'박태원'의 작품 세계
박태원의 초기 소설은 문체, 기법, 주제 등에 있어서 모더니즘 소설의 여러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의 소설에 나타나는 특기할 사항은, 문체와 표현 기교에 있어서의 과감한 실험적 측면과, 또 시정 신변의 속물과 풍속세태를 파노라마식으로 묘사하는 소위 세태소설의 측면이다. 이러한 특징은 그가 예술파 작가임을 말해주는 중요한 요건이다. 작품의 이데올로기보다는 문장 그 자체의 예술성을 중시하고, 새로운 소설적 기법을 시도하는 한편, 인물의 내면 의식 묘사를 중시하는 등 강한 실험 정신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이러한 작품 경향으로 인해 박태원은 이상(李箱)과 함께 1930년대의 대표적인 모더니스트 작가로 꼽힌다. 이 모더니즘적인 실험 정신은 "천변풍경"을 전후로 변모하여, 1930년대 말경부터는 도시의 세태와 자신의 체험을 서술한 작품과 역사 소설을 주로 발표하게 되었다. 특히 당시의 도시 세태를 세밀하게 묘사한 장편 "천변풍경"은 리얼리즘의 확대와 관련된 논쟁을 야기한 바 있다.
아울러, 그의 단편집인 <소설가 구보씨의 1일>은 1938년 12월 7일 문장사(文章社)에서 간행되었다. "성탄제(聖誕祭)", "옆집 색씨", "오월의 훈풍", "사흘 굶은 봄ㅅ달", "피로", "딱한 사람들", "전말", "거리", "길은 어둡고", "비량(悲凉)", "진통", "방란장주인(芳蘭莊主人)",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등 모두 13편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대표작인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1934년 8월 1일부터 9월 19일까지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된 중편 소설로서 일제 치하에서 살아가는 당대 문학인의 무기력한 자의식에 비친 일상의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이 작품이 연재될 때 이상(李箱)이 하융이란 필명으로 삽화를 그렸던 점도 유명하다. 이 소설은 시력이 약하고 장가도 안 간 무기력한 소설가 구보씨가 종로 네거리를 바라보고 걷기도 하고, 다방으로 돌아다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구보씨는 모든 사람을 정신병자라고 시찰하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낀다. 이상분일증(理想奔逸症), 언어도착증, 과대망상증, 지리멸렬증 등, 문득 구보씨는 그런 것에 흥미를 느끼려는 자기가 이미 하나의 환자임을 깨닫고 웃으며, 비가 내리는 거리를 걸어 집을 향한다. 이 소설은 1930년대 문학인의 정신구조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 당시 문학인의 사회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지표를 제공하고 있다. 또 "성탄제", "비량" 등의 초기 단편들에서 인물의 심리를 면밀하게 탐구하던 것과, 장편 "천변풍경(川邊風景)"에서 나타나는 철저한 관찰적 방법과의 혼재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중편이라는 점에서 박태원의 작품 변모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작품이다.
박태원[朴泰遠(소설가)]
1909∼1987. 소설가. 호는 구보(丘甫, 또는 仇甫). 서울 출생. 경성사범보통학교를 거쳐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1929년 일본 호세이대학(法政大學) 예과를 중퇴하였다.
1930년 단편 〈수염〉을 발표하면서 작가 생활을 시작했으며, 이광수(李光洙)를 사사하였다. 1933년 이후 이태준(李泰俊)·이효석(李孝石)·이무영(李無影) 등의 예술파적 작가들과 함께 구인회(九人會)의 주요 멤버로서 활약하였다.
당시 최재서(崔載瑞)·임화(林和)·안회남(安懷南)에 의해 이상(李箱)·채만식(蔡萬植)·김남천(金南天) 등과 함께 1930년대 주요 작가로서 평가받았다. 일찍이 문학 매체인 언어에 대한 자각을 보여 작품의 형식과 문장의 기교 등에 의식적인 관심을 기울였다. 광고·전단 등의 대담한 삽입, 콤마 사용에 의한 장문의 시도, 중간 제목의 강조, 한자의 남용 등 독특한 문체를 낳았다.
그의 작품 경향은 프로문학 쪽과 같은 이데올로기 성향에 가담하지도 않았고, 또한 이효석과 같은 예술지상주의에 기울지 않은 채 작가 자신이 포함되어 있는 서울 서민층이 식민지 치하에서 변모하는 양상을 객관적인 서술 방식으로 묘사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그가 광복 전까지 창작했던 작품 수는 대략 60여 편에 달하며 그것을 유형별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천변풍경 川邊風景〉·〈길은 어둡고〉·〈성탄제 聖誕祭〉 등 시정 (市井)에 흐르는 여러 가지 소시민적인 사건을 소재로 한 세태소설류, 〈소설가(小說家) 구보씨(仇甫氏)의 일일(一日)〉·〈전말 顚末〉·〈비량 悲凉〉 등 심리주의적인 수법으로 당대의 무기력한 인텔리의 생태를 그리고 있는 작품군, 〈우맹〉·〈애경 愛經〉 등 신문이나 잡지의 흥미를 위주로 한 통속류, 〈약산(若山)과 의열단(義烈團)〉 등 광복 후의 애국소설류 등이 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딱한 사람들〉(1934)·〈전말〉(1935)·〈비량〉(1936)·〈진통〉(1936)·〈성탄제〉(1937) 등의 단편과, 중편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34), 장편 〈천변풍경〉(1936) 등을 들 수 있다.
≪참고문헌≫ 리얼리즘의 擴大와 深化(崔載瑞, 조선일보, 1936), 戱作者 朴泰遠(金文輯, 조선문학, 1939.5.), 九人會時代와 朴泰遠의 모더니티(白鐵, 東亞春秋, 1936.3.), 小說空間擴大의 한 樣相-仇甫의 경우-(趙東吉, 공주사범대학논문집, 1985.12.).(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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