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목(裸木) / 해설 / 박완서
by 송화은율나목(裸木) - 박완서
지은이 : 박완서
갈래 : 장편 소설, 성장 소설, 전후 소설, 세태소설
배경 : 시간적- 6·25 전쟁 중
공간적- 명동의 미군 PX 초상화부와 서울 도심지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성격 : 고백적, 회상적, 체험적, 시대 증언적
문체 : 논리적이고 호흡이 긴 서술형 문체
어조 : 차분한 어조
제재 : 옥희도와 나의 삶, 화가 박수근과 그의 그림을 모티브 삼음
주제 : 청춘의 성숙 과정과 진정한 예술가의 길, 청춘의 성숙 과정과 진정한 삶에 대한 깨달음, 고독한 청춘과 진정한 예술가의 성숙 과정, 청춘의 방황과 성숙 및 예술가의 고독과 희망
구성 :
발단 - 폭격으로 두 아들을 잃고 삶의 의욕을 잃은 어머니와 오빠들의 죽음이 자기 때문이라는 죄의식에 휩싸여 암울하게 살고 있고 이런 집안 분위기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열망을 지니고 미군 PX의 초상화부에서 일하게 되는 이경은, 어느 날 옥희도가 이곳에 화가로 출근하게 됨.
전개 - 이경과 옥희도의 만남, 그리고 이경은 옥희도를 사랑하게 되고, 전쟁이라는 상황 아래, 삶의 의미와 기쁨을 잃은 이 둘은 완구점 앞에서 만나 데이트를 하면서 서로에게 위로를 받는다. 또한, PX에 근무하는 전기공 태수도 이경을 사랑하고, 마지못해 사는 듯한 엄마와 이경의 갈등이 나타난다.
위기 - 해가 바뀌어 이경은 전공(電工)인 태수를 만나지만, 별다른 느낌을 갖지 못한다. 옥희도에게 이경이 사랑을 고백하지만 옥희도는 서로 우리는 어울리는 사이가 아니라고 말한다.
절정 - 이경은 PX에 옥희도가 통 나오지 않자 그의 집을 방문한다. 이경은 옥희도의 집에서 그려진 그림을 죽어가는 고목이라고 생각하고 섬뜩해 하고, 이경은 옥희도에게서 삶의 기쁨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은 그의 부인 때문이라고 여긴 나머지 그녀에게 화가의 아내가 될 자격이 없다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이경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에 옥희도도 이경을 떠나고, 얼마 후에 이경은 태수와 결혼한다.
결말 - 세월이 흘러 이경은 어느날 옥희도의 유작전을 보러 가서 옥희도의 그림을 다시 보게 되는데, 그 그림 속의 나무는 삶의 희망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고목이 아니라, 나목이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음
특징 : 논리적인 서술형과 호흡이 긴문체로 실제 인물을 작품으로 허구화했고, 평범한 일상인의 눈을 통해 시대의 아픔을 통찰한 예술가의 혜안이 드러남.
인물 :
이경 : 두 오빠를 자신의 실수로 죽게 했다는 죄책감과 , 두 아들에 대한 회상 속에 살아가는 어머니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허무와 불안에 젖은 고독한 인물로 옥희도를 만나 사랑을 하게 되면서 성숙해 지는 인물
옥희도 : 화가 박수근을 모델로 한 인물로 미군의 초상화를 그려 먹고 살지만 전쟁과 가난 속에서도 진정한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는 화가가 되려는 인물로 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봄에의 믿음'을 꿈꾸며 헤쳐나간 나목과 같은 인물
황태수 : 미군 PX에서 전기공으로 아내와 사과처럼 볼이 붉은 사내아이를 낳아 단란하게 살려는 꿈을 가진 일하는 평범한 사람으로 이경을 정말로 좋아하고 따라다니다가 결혼하게 되는 인물
이경의 모친 : 폭사당한 두 아들의 주검을 본 후 삶의 의욕을 상실한 채 지내다 결국 폐렴으로 숨짐
인물의 갈등 : 이 작품은 얼핏 보아 이경과 옥희도의 사랑 이야기가 대부분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 관계의 복잡한 갈등 양상이 그려지고 있다. 옥희도에 대한 이경의 사랑은 근본적으로 아버지와 오빠들의 부재로 인한 어떤 상실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그보다 더 중요하게 포착하고 있는 사실은 아버지와 오빠들, 즉 남성들의 부재한 상태에서 어머니와 딸, 즉 여성들의 관계가 돈독해지기는커녕 오히려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깊은 갈등 상태에 빠졌다는 점이다. 그런데 어머니에 대한 이경의 환멸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암암리에 그녀가 기존의 가족 관계의 의미에 대해 근본적으로 회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부수적으로 초상화를 주문하는 미군들과 그들에게 품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한국인들 간의 갈등 역시 그려진다. 이렇게 이 작품은 전쟁으로 인해 첨예하게 드러나는 '여성 문제' 와 '가족 문제' 를 동시적으로 다루고 있고, 부수적으로 '외세의 문제' 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여 주고 있다.
줄거리 : 화가 박수근을 모델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한국 전쟁이 터진 이듬해 겨울, 서울이 막 수복된 직후를 배경으로 하여 초상화 가게에서 일하는 화가를 통해 예술과 삶 사이의 갈등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한국 전쟁 중 서울 명동의 미군 PX 초상부에 근무하는 주인공 이경은 미군에게 초상화를 그려 주는 화가들 속에서 옥희도를 만난다. 자기 때문에 두 오빠가 폭격으로 죽었다는 죄의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두 아들을 잃고 망연자실한 상태로 살고 있는 어머니와 암울한 집안 분위기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이경은 '황량한 풍경'이 담긴 눈을 가진 옥희도에게 끌린다. 두 사람은 명동 성당과 장난감 침팬지가 술을 따라 마시는 완구점 사이를 거닐며 사랑을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옥희도는 진짜 화가가 되고 싶어했다. 이경은 어느 날 PX에 나오지 않는 옥희도를 찾아 그 집에 갔다가 캔버스에 고목(枯木)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본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이경은 역시 미군 PX에서 일하는 황태수라는 청년과 결혼한다. 세월이 흐른 뒤 이경은 옥희도의 유작전(遺作展)에 가서 지난날 옥희도가 그리고 있었던 그림이 고목(枯木)이 아니라 나목(裸木)이었음을 알게 된다. (교과서 수록 부분 : 2, 9, 12, 17장의 부분들)
지은이의 '나목' 집필 배경 : '나목'은 어디까지나 소설이지 전기 실화가 아니다. '나목'을 소설로 쓰기 전에 고 박수근 화백에 대한 전기를 써 보고 싶었던 건 사실이지만, 내가 그를 알고 지낸 게 그나마 내가 가장 불우했던 동란 중에 일 년 미만의 짧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전기를 쓰기엔 그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었다. 그렇지만 한 예술가가, 모든 예술가들이 대구, 부산, 제주 등지에서 환장하지 않으면 견뎌 낼 수 없었던 1.4후퇴 후의 암담한 불안의 시기를 텅빈 최전방 도시인 서울에서 미치지도, 환장하지도, 술 취하지도 않고, 화필도 놓지 않고, 가족의 부양도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 살았나,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지극히 예술가답지 않은 한 예술가의 삶의 모습을 증언하고 싶은 생각을 단념할 수 없었다.('나목'의 집필 후기 중에서)
작품 개관 : 전쟁으로 황폐해진 환경 속에서 예술에 대한 탐구가 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이끌어 가는가 하는 것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일종의 예술가 소설이다 한 화가의 고통스러운 삶이 배어든 그림 한 장이 인상적이면서도 상징적으로 다루어진다. '나무와 두 여인'이란 그림에 대한 감상은 소설의 줄거리와 엮이면서 한국 전쟁 이후의 어려웠던 상황 속에서 인생과 예술의 깊은 상호 관계를 해석해 보여준다. 미술 작품 하나가 소설 전체의 이야기와 분위기를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는지 잘 보여 줄 수 있는 작품이고, 미술과 문학이 서로 어떻게 예술적인 깊이 속에서 만나게 되는지 느껴볼 수 있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전략)
2
새로 온 옥희도 씨는 환쟁이(조잡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의 이런 반발을 아는지 모르는지 듬직한 등을 이쪽으로 돌린 채 아무것도 진열되지 않은 쇼윈도를 가려 놓은 부우연 휘장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나는 그가 그릴 것을 마련하기 위해 서랍 속의 사진들을 모조리 꺼내었다. 기한(미리 정해 놓은 일정한 시기)에 관계없이 그리기 쉬운 것, 까다롭지 않은 주문을 찾아내기 위해서였다.[옥희도에 대한 나의 배려로 그에 대한 호감이 있다는 뜻]
숱한 얼굴, 얼굴들 ― 이국(異國)의 아가씨들은 한반도 전쟁이 머리 위를 왔다갔다 하는 일을 겪어 보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늘진 고뇌가 전연 없이 오히려 인간적이 아닌 동물이라기보다는 화사한 식물에 가까운 ― 만개한 꽃 같은 얼굴들이었다.[그늘진 고뇌가 - 꽃 같은 얼굴들이었다. : 자기와 견주어 볼 때, 외국 여자들은 그늘이라고는 없는, 밝디밝은 모습만이 돋보이기에 오히려 기품이 보이지 않는다는 화자의 주장은 전쟁의 참상 속에서 화려한 젊음의 기쁨을 맛보지 못한, 아니 맛볼 수 없었던 화자의 비참하고 쓰린 청춘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이와 같은 진술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고뇌가 있는 삶이 인간적인 삶이다라는 말이 있어야 한다.]
그 중에서 특징을 잡기 쉽고 모발이나 눈빛이 복잡하지 않은 것을 몇 장 골라 가지고 옥희도 씨한테로 갔다.
"시작해 보시겠어요?"
그는 조용히 시선을 창에서 나에게로 돌리더니
"고마워."
하고는 누런 종이 봉투에서 가늘고 굵고, 납작하고 둥근 각종의 붓을 우루루 쏟았다.[미술에 대한 옥희도의 성실한 자세를 보여줌]
"어머나, 붓까지 준비하셨어요, 붓은 여기도 있는데……."
나는 빈 깡통에 꽂힌 별로 쓸모 있어 보이지 않는 몽탁한 붓들을 눈으로 가리키며 필요한 몇 가지 일을 일렀다.
"붓이나 물감은 제공하기로 돼 있어요. 헝겊도 제공하기는 하지만 망쳐 놓으면 배상[남에게 입힌 손해를 물어줌]하셔야 되구요. 스카프 하나 망쳐 놓으면 그림 두 장 값이 날아가게 되니까 까딱 잘못하면 하루 종일 헛수고하게 되죠. 그래도 망쳐 놓은 만큼의 물감 값은 따지지 않으니 관대하다고 봐야겠죠. 그리고 참 손님이 마땅치 않아 하면 몇 번이라도 고치든지 뭣하면 아주 새로 그려 줘야 되구요. 아무튼 제일 중요한 건 닮게 그리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새로 온 옥희도에게 작업의 요령을 사무적으로 설명하는 나]
그는 대답 대신 어린애처럼 깊게 고개를 끄덕였다[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과는 다른, 옥희도의 진지한 자세와 행동을 보여주는 부분]. 그리고 잠시 그와 나의 눈이 깊게 마주쳤다[옥희도와 정신적 교감을 나누는 장면]. 내가 먼저 섬칫해져서 눈을 피했다. 아주 황량한 풍경의 일각(한 귀퉁이. 한 모서리. 한 부분) 같은 것이 그의 눈 속에 깊이 잠겨 있는 것 같아서였다.[아주 황량한 - 같아서였다 : 옥희도의 내면에 숨어 있는 쓸쓸한 모습을 발견하고, '나'가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되는 장면]
그는 연방 고개를 기우뚱거려 가며 밑그림을 그리면서 가끔 주문(呪文)처럼 나직이, "아주 닮게 아주 닮게." 라는 것이었다.[자신의 예술 세계와 초상화를 그리는 일이 맞지 않으므로 일종의 자기 암시를 통해 이를 극복하려는 모습]
나는 암만해도 그가 못 미더워 손님이 없는 사이사이마다 그의 곁에 가서 그림이 돼 가는 것을 지켜보고 내 돼먹지 않은 글씨[미군 손님들의 주문을 흘려 받아 적은 것]도 읽어 주며 하였다.
"너무 닮게에만 신경을 쓰실 필요는 없어요. 조금쯤 달라도 뭐……이를테면 사진보다 조금 예쁘게 닮을 수 있으면 그것도 괜찮으니까요. 요령이 있어야 해요."
"흥 그런 요령이 하루 아침에 생길 줄 아나베. 남은 몇 년 두고 익힌 거라구."[옥희도로 인해 자신의 수입이 줄어들 것을 걱정한 진씨의 마땅치 않은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부분이다.]
평소 말수 적은 진(秦)씨까지 오늘은 조금 빈정댄다.
"저……이런 그림에 경험이 좀 있으신지?"
"그야 난 본시가 환쟁인걸."[그림 그리는 것을 천직으로 생각하는 옥희도/ 환쟁이는 '화가(?家)'를 낮잡아 이르는 말로 자신의 의도하는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자괴감이 담겨 있음]
"그럼 전직(前職)도 역시……. 극장 같은 데도 계셔 봤겠군요."
"아니. 직장은 여기가 처음이고, 난 그냥 환쟁이었어요."[진정한 예술을 하지 못하고 돈벌이 위해 그림을 그려야 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자괴감이 드러나 있다.]
(그냥 환쟁이라? 그냥 환쟁이……)
(중략)
9
나는 완구점의 침팬지[태엽을 돌리면 춤을 추고 술을 마시고 마지막엔 축 늘어지는 장난감 침팬지는 '나'와 '옥희도'처럼 전후의 암담한 시대에 목표 의식 없이 체념적으로 살아가던 우리 민족의 모습을 상징]를 만나고 싶었다. 그 유쾌한 친구가 위스키를 따라 마시고 또 마시고 하는 광적인 폭음에서 차차 차차 동작이 느려지며 허탈로 돌아가는 모습 앞에 있고 싶었다. 여전히 노점인 완구점은 붐볐고 구경꾼은 거지반 어른이었다. 장난감을 좋아하는 어른이 나뿐이 아니어서 적이 마음이 놓였다.
무더기로 쌓인 자동차, 기차, 인형, 비행기, 총칼 따위를 다 제쳐 놓고 유독 손님들의 총애를 독차지하고 있는 침팬지란 놈이 주인을 위해 돈을 좀 벌어 준 것 같지는 않으니 뻔뻔한 놈이다.
오늘은 그 놈이 옆에 시종까지 거느리고 있었다. 눈이 툭 불그러지고 흰 이를 드러낸 검둥이 인형이 꽁무니에 태엽을 단 채 징을 들고 서서 주인의 향연(饗宴)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표정한 완구점 주인 영감이 하품을 늘어지게 하고 나서, 쭉 늘어선 구경꾼을 시들한 듯이 흘겨보고 마지못한 듯이 마른 나뭇가지 같은 손을 침팬지쪽으로 뻗는다. 개막 징을 듣는 관객같이 나는 숨을 죽이고 흥분을 누른다.[개막 징을 듣는 관객같이 - 흥분을 누른다. : 장난감 침팬지가 태엽 장치에 의해 위스키를 따라 마시고 또 마시고 하다가 결국은 동작이 느려지면서 고정되어 가는 과정을 하나의 연극으로 비유하면서 그 장난감이 움직이기를 기다리는 마음을 연극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흥분에 견주고 있다.]
주인 영감은 먼저 침팬지 꽁무니의 태엽을 틀어 주고, 이어 검둥이의 태엽을 틀어 나란히 세웠다.
두 놈은 리드미컬하게 어깨춤을 춰 가며, 한 놈은 위스키를 따라 마시고 한 놈은 신나게 징을 두드렸다. 두 놈은 아주 호흡이 잘 맞아 한 놈이 점점 빠르게 거푸거푸 위스키를 따라 마실수록 한 놈은 주흥을 돋구듯이 점점 세게 징을 쳤다.
그러자 구경꾼들은 덩달아 전신을 흐느적대고 웃고 또 웃었다. 나도 웃었다. 웃다웃다 나중에는 눈귀에서 눈물이 흐르도록 웃었다.
구경꾼들이 숨을 죽이기 시작하자 그 놈들의 동작도 점점 느려졌다. 그들의 동작이 완전히 멈추자 맥이 탁 풀리며 몸이 흐느적흐느적 땅으로 흘러내릴 듯한 피곤이 왔다.
눈귀의 눈물을 닦고 사람들이 흩어지고 새 사람이 오고 하는데 나는 그저 망연히 서 있었다. 머리가 텅빈 채 아무런 생각도 들어서지 않았다. 나는 문득 내가 쓰러지지도, 땅으로 흘러내리지도 않고 서 있을 수 있음은 누군가의 부축 때문인 것을 깨닫는다. 그의 부축은 능숙하고 편안했다. 찬란한 빛처럼 어떤 예감이 왔다[자신을 부축하고 있는 사람이 옥희도일 것이라는 것을 어느 순간 느끼면서 그것이 빛처럼 자신을 환하게 밝혀 주고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 나는 돌아보지 않고 오래도록 그 예감만을 즐겼다.
"그만 가지."
예감대로 옥희도 씨의 음성이었다. 따뜻하고 착한 시선이 나를 굽어보고 있었다. 오랜 별리(別離) 끝에 해후처럼 반가움이 벅차 왔다. 우리는 사람을 헤집고 나와 같이 걸었다.
"어린애같이 아직도 장난감을 좋아하나?"
"선생님은요?"
"별안간 그 놈이 보고 싶었어. 그 주정뱅이가……."
"저도요. 막 뛰어왔어요."
"나도 그랬어. 왜 그랬을까? 사뭇 걷잡을 수 없을 만큼이었어."
"우리는 우리의 해후를 예감했나 봐요."
"해후라니? 우리는 요새 늘 같이 있었는데…."
(중략)
12
"그림은 다 그리셨어요?"
제일로 궁금하던 것을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디 있어요? 좀 봐도 될까요?"
(중략)
무릎에 앉았던 막내가 벌떡 일어나더니 윗방으로 난 장지(방과 방 또는 방과 마루 사이에 있는 운두가 높고 문지방이 낮은, 미닫이와 비슷한 문으로 '장지문'의 준말)를 열었다. 나는 그제야 오늘 부인이 애들을 윗방으로 보내지 않은 이유를 알았다. 전등이 없는지, 있는데도 안 켰는지 윗방은 어둑한데 80호 정도의 캠버스가 벽에 기대여 놓여 있고 넓지 않은 방바닥은 온통 빈틈없이 어질러져 있었다. 테레빈유(송진을 수증기로 증류하여 얻는 정유로 특이한 향기를 내는 무색. 또는 담황색의 끈끈한 액체. 페인트 제조에 쓰임)의 냄새가 확 끼쳤다.
나는 캠버스 위에서 하나의 나무를 보았다. 섬뜩한 느낌이었다. 거의 무채색의 불투명한 부연 화면에 꽃도 잎도 열매도 없는 참담한 모습의 고목이 서 있었다. 그뿐이었다. 화면 전체가 흑백의 농담으로 마치 모자이크처럼 오톨도톨한 질감을 주는 게 이채(남다름)로울 뿐 하늘도 땅도 없는 부연 혼돈 속[황량한 내면]에 고목이 괴물처럼 부유하고 있었다.[화면 전체가 - 부유하고 있었다 : 옥희도의 그림으로부터 주인공이 받는 느낌은 한국 전쟁 중 서울 수복기라는 황폐한 상황과 오빠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으로 인한 허무와 절망의 내면을 동시에 반영하고 있다. 내일에 대한 선명한 희망과 기대가 불가능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처럼 '부연 혼돈' 속에 괴물처럼 서 있는 말라 죽은 나무, 즉 고목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한발(가뭄)에 고사한 나무 - 그렇다면 잔인한 태양의 광선이라도 있어야 할 게 아닌가? 태양이 없는 한발 - 만일 그런 게 있다면, 짙은 안개 속의 한발……무채색의 오톨도톨한 화면이 마치 짙은 안개 같았다. 왜 그런 잔인한 한발이 고사시킨 고목을 나는 그의 캔버스에서 보았을까?[왜 잔인한 - 캔버스에서 보았을까? : 옥희도의 그림은 그의 내면을 드러내는 기제로 작용한다. '잔인한 한발' 같은 전쟁에 고사(枯死)를 당한 그의 예술가적 열정이 하나의 '고목'과 같다는 것을 알아차린 화자는 그의 캔버스에서 생명이 사라진 황폐함의 정체를 본다. 궁극적으로 이경은 옥희도의 그림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꼬마는 잽싸게 장지문[지게문에 장지를 덧들인 문]을 닫아 버렸다.
향긋한 생강차가 식어가는데 나는 마실 구미를 잃었다.
나는 그림에 대한 전문적인 감상안이 전연 없는 채 그림을 단순하게 사랑하고 즐겨 왔었다. 국민 학교 교실 벽에 장식한 그림에서부터 화랑에 전시된 유명 무명 화가의 그림들, 또 인쇄 잘된 화첩의 대가의 그림들을 사랑했다.
나는 그런 그림들에서 어떤 언어를 시각했다기보다는 그냥 그 빛과 빛깔을 즐겼었다[나는 작품이 주는 심오한 메시지나 내용이 아닌 빛깔이 주는 아름다움을 즐겼다.]. 삶의 기쁨이 여러 형태의 풍성한 빛으로 나타난 그림들을 사랑했다. 이렇게 나의 그림에 대한 눈은 오색 풍선을 동경하는 아이들처럼, 포목점 앞에서 아름다운 천을 선망하는 여인처럼 소박하고 단순했다.
내 이런 소박한 감상안은 그의 그림에 적지아니 당혹하고 있었다.[내 이런 소박한 - 당혹하고 있었다. : 이제까지 화자가 사랑한 그림은 삶의 풍성한 기쁨을 담은 것들인 반면 옥희도가 새롭게 열어 보이는 세계는 그런 것이 사라진 세계, 즉 쾌락과 기쁨과는 무관한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
S회관 화랑은 3층이었다[시간의 변화]. 숨차게 계단을 오르자마자 화랑 입구였고 나는 미처 화랑을 들어서기도 전에 입구를 통해 한 그루의 커다란 나목(裸木 : 잎이 지고 가지만 앙상히 남은 나무)을 보았다.[그림 속의 나무 / 잎을 떨구고 서 있지만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나무]
나는 좌우에 걸린 그림들을 제쳐 놓고 빨려들 듯이 나무 앞으로 다가갔다.[과거에 자신이 강한 인상을 받았던 그림을 발견하고 주의를 집중하고 있다.]
나무 옆을 두 여인이, 아기를 업은 한 여인은 서성대고 짐을 인 한 여인은 총총히 지나가고 있었다.
내가 지난날, 어두운 단칸방에서 본 한발 속의 고목(枯木 : 죽어서 생명력을 잃은 나무)[과거 옥희도 집을 방문했을 때 본 그림 속 나무], 그러나 지금의 나에겐 웬일인지 그게 고목이 아니라 나목(裸木)이었다[나무에 대한 인식이 달라짐]. [내가 지난날, - 나목이었다. : 세월이 흐른 뒤 이경은 옥희도의 유작전에 가서 지난날 옥희도가 그리고 있었던 그림이 고목이 아니라 봄을 기다리며 나뭇잎을 떨어뜨리는 나목이었음을 깨닫는 장면으로 비슷한 모양의 나무임에도 불구하고, 이제 화자의 눈에는 지난날의 '고목'이 '나목'으로 보이게 되는데, 이는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려는 옥희도의 예술혼의 산물이자 절망의 나락에서 가까스로 스스로를 건져 낸 화자의 내면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절망의 상황에서 희망의 의지로 변화 / '나'가 전쟁의 휴유증에서 벗어난 이후의 평가로 이경의 정신적 성숙을 의미 / 과거에는 죽은 나무로 보였던 것이 지금은 다만 잎이 떨어졌을 뿐 생명을 가진 나무로 보이는 이유는 시대적 상황과 연관이 있다. 과거에 고목으로 보였던 때에는 우리 모두가 불우했던 시절이며 따라서 앞날의 희망을 이야기할 수 없는 때였다. 그러나 지금 그 나무가 나목으로 보인 것은 앞날에 대한 희망, 즉 '봄에의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것은 비슷하면서도 아주 달랐다[같은 그림을 보고 다른 인상을 받음 / 외양은 비슷하지만 생명력의 유무에 차이가 있음]. 김장철 소스리 바람(으스스하고 쓸쓸하게 부는 바람.)에 떠는 나목[초겨울의 추위는 암담한 현실을 비유함], 이제 막 마지막 낙엽을 끝낸 김장철 나목[미래에 대한 희망을 지닌 채]이기에 봄은 아직 멀건만 그의 수심엔 봄의 향기가 애달도록 절실하다.[그림이 지닌 깊은 의미를 깨닫고 이에 공감하게 됨 / 봄에 대한 믿음과 희망이 있음]
그러나 보채지 않고 늠름하게, 여러 가지[枝]들이 빈틈없이 완전한 조화를 이룬 채 서 있는 나무, 그 옆을 지나는 춥디 추운 김장철 여인들.[초겨울을 의미하며 예술가 옆에서 시련의 시기를 견뎌야 하기 때문에]
여인들의 눈앞엔 겨울(시련과 고난을 상징)이 있고, 나목에겐 아직 멀지만 봄에의 믿음[봄을 기다리는 희망]이 있다.[나목이 고목과 다른 점]
봄에의 믿음―나목을 저리도 의연(毅然)하게 함이 바로 봄에의 믿음이리라.[나목을 통해 봄을 의연히 기다리는 삶의 태도를 깨달음]
나는 홀연히 옥희도[화가 박수근이 소설 속에서 허구화된 인물] 씨가 바로 저 나목이었음을 안다[옥희도는 힘든 삶을 살면서 희망을 잃지 않고 예술가로서 예술가의 길을 걸었음을 알게 됨]. 그가 불우했던 시절[PX에서 남의 초상화나 그리고 생계를 유지했던 힘든 환쟁이 시절], 온 민족이 암담했던 시절[6.25 전쟁 전후], 그 시절을 그는 바로 저 김장철의 나목처럼[봄을 기다리며 의연하게 서 있는 나무, 진정한 예술을 하겠다는 의지] 살았음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또한 내가 그 나목 곁을 잠깐 스쳐간 여인[한때 사랑했었던]이었을 뿐임을, 부질없이 피곤한 심신을 달랠 녹음을 기대하며 그 옆을 서성댄 철없는 여인이었을 뿐임을 깨닫는다.[나는 또한 - 깨닫는다 : 나는 나의 괴로움을 알아주고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그를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지난날 자신의 미성숙함을 깨달음]
'나무와 두 여인'……그 그림은 벌써 한 외국인의 소장으로 돼 있었다.
나는 S회관을 나와 잠깐 망연했다(아득하다. 망망하다.). 오랜 여행 끝에 낯선 역에 내린 듯한 피곤인지 절망인지 모를 망연함[오랜 여행 끝에 - 절망인지 모를 망연함. : 화자가 오랜 동안의 자신의 절망과 방황에 종지부를 찍고 삶에 대한 새로운 희망의 의지를 깨닫는 대목으로 옥희도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감정, 그러나 그것을 망연함이라고 말함으로써, 그간의 고통과 갈등을 짐작할 수 있다. 고은의 시 '눈길' 작품의 한 구절인 '귀 기울여 들리나니 대지의 고백 / 나는 처음으로 귀를 가졌노라'], 그런 망연함에서 남편이 나를 구했다.[옥희도 화가에 대한 생각에 골똘하다가 남편이 말을 건네자 현실로 돌아와 그림에 대한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있었다. 남편 때문에 의식이 일상적 현실로 돌아오게 됨]
"어디서 차라도 한 잔 하고 쉬었다 갈까?"
"저기가 어때요?"
나는 턱으로 바로 눈앞에 보이는 덕수궁을 가리켰다.
덕수궁 속의 은행의 낙엽은 한층 더 찬란했다.[은행잎이 떨어지는 곳에 그냥 앉아 있는 나와 남편]
우리는 은행나무 밑 벤치에 앉아서 황금빛 세례[떨어진 은행 잎]에 몸을 맡겼다.
아이들이 뛰고, 연인들이 거닐고, 퇴색한 잔디에 쏟아지는 가을의 양광(햇볕)은 차라리 봄보다 따습다.
"아이들을 데려올걸."[그림에 빠져 있는 나와는 달리 일상의 세계에 있는 남편, '나'에게 일상적 세계를 일깨워주는 역할을 함 ]
남편이 다시 나를 상식적인 세계[옥희도에 대한 회상과 상념에 잠겨 있는데 남편이 일상적인 생활에 대화로 그것을 깨뜨린다는 말임. 예술의 세계하고는 다른 일상 생활의 세계를 의미하지만 예술과 사회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관점에서 볼 때는 문제가 될 수 있는 발언임]로 끌어들인다.
빨간 풍선[일상적 삶에 묻히기 전에 품었던 젊은 시절의 이상과 꿈]을 놓친 계집아이[주인공의 마음을 대신해 주는 인물]가 자지러지게 운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로 빠져들 듯이 풍선이 멀어져 간다.[젊은 시절의 열정과 꿈이 사라져 감을 보여 줌]
드디어 빨간 점을 놓치고 만 나는 눈물이 솟도록 하늘의 푸르름이 눈부시다[잃어 버린 아쉬움 속에서 또다른 깨달음을 얻고 있다 / 젊은 시절의 이상과 꿈은 사라졌지만 그것의 여운이 주는 행복감을 느끼고 있음].
옆에 앉은 남편도 풍선을 좇았던가 고개를 젖힌 채 눈이 함빡 하늘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뿐[일상적 세계에 갇혀 있는 남편의 모습을 안타까워 함], 이미 그의 눈엔 십 년 전의 앳된 갈망은 없다. 그뿐이랴. 여자를 소유하고 가정을 갖고 싶다는 세속적인 소망 외에는 한번도 야망이나 고뇌가 깃들어 보지 않은 눈[삶의 진지한 고뇌]. 부수수한 머리가 늘어진 이마에 어느새 굵은 주름이 자리잡기 시작한 중년의 그가 나는 또다시 낯설다.
저만치서 고등 학생들이 배드민턴을 친다. 콕이 나비처럼 경쾌하게 날아와 라켓에 부딪치는 소리가 마치 젊은 연인들의 찰나적인 키스의 파열음처럼 감각적으로 들린다.
나는 충동적으로 그의 이마의 주름진 곳에 그런 키스를 퍼부었다.[남편에게 키스한 것은 그가 '낯설어' 보였기 때문으로, 야망이나 고뇌가 없이 평범한 일상을 사는 것보다 어렵더라도 자기만의 꿈과 이상을 가지고 사는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을 행동으로 보였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일상적 삶의 세계에만 갇혀 있는 남편의 모습에서 낯설음을 느끼고 이를 극복해보려는 행위를 하고 있다.]
그가 낯선 게 견딜 수 없어서였다[철저히 일상의 세계에 머물고 있는 남편에 대한 낯설음]. 그가 아주 타인처럼 낯선 게 견딜 수 없어서였다.
나무들의 그림자가 길어지고 우수수 바람이 온다.
이미 낙엽을 끝낸 분수가의 어린 나무들이 벌거숭이 몸을 애처롭게 떨며 서로의 가지를 비빈다.
그러나 그뿐, 어린 나무[서로 호감이 있으면서도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경과 옥희도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어린 나무들이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떨고 있는 것은, 인간은 근본적으로 외로운 존재이기 때문에 근원적인 고독은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들은 서로의 거리[삶에 대한 서로의 이해를 상징]를 조금도 좁히지 못한 채[인간의 근원적인 고독을 해결되지 않음을 암시함] 바람이 간 후에도 마냥 떨고 있었다.[자연 묘사를 통한 결말 처리 방식 : 주인공은 옥희도 씨의 그림 전시회를 본 후 과거 사건이 떠올라 애상적인 감정에 빠져 있다. 이러한 주인공의 심리 상태가 낙엽이 다 떨어진 어린 나목의 모습과 연관되면서 작품의 분위기를 형성한다. 그리고 상징적인 소재인 '어린 나목'을 등장시킴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마음 속에 짙은 여운을 느끼게 한다.]
이 작품은 온 민족이 암담했던 시절(6·25)을 살아 내면서 인간다움 내지는 가치를 실현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미군 PX의 종업원 이경은 두 오빠를 자기 실수로 죽게 했다는 죄책감과, 두 아들에 대한 회상 속에 살아가는 어머니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고독한 인물이다. 미군 애인의 초상화를 그려 먹고 사는 옥희도 역시 고독한 인물이다. 이 두 사람은 서로의 고독을 확인하고 가까워진다. 그러나 접점에서 맴돌며 사랑을 나누곤 했던 두 인물은 마침내 제 갈 길로 간다.
옥희도는 진정한 화가가 되기 위한 길을 가고 이경은 태수와 결혼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렇게 헤어진 것은 아니다. 옥희도는 나목을 그림으로써 진정한 화가가 되었고, 그 나목을 고목으로만 보았던 이경은 옥희도의 유작전에서 그것이 나목이었음을 확인하고 과거의 제 모습과 자신에 대한 옥희도의 의미를 뚜렷이 자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점에서 이 소설은 청춘의 성숙을 다룬 것이다.
이해와 감상1
소설 '나목'은 1951년 겨울 서울이 막 수복된 직후, 미 8군 지하의 초상화 가게에서 영어에 능통한 20대 영업부 직원인 경아와 불우하기 그지없는 '간판쟁이' 화가인 옥희도를 통해 전쟁으로 황폐해진 삶의 현장과 그 속에서 몸부림치는 예술가의 내면 세계를 그리고 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화가 옥희도의 실제 모델은 박수근으로 알려져 있다. 경아는 자기 때문에 두 오빠가 죽었다는 자책감에 시달리는 인물인데,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는 자신이 옥희도의 집에서 본 그림이 고목이 아니라 나목임을 알게 된다. 이는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 중 하나이며 주제 의식을 가장 심도 있게 드러낸 대목이기도 하다. 여기서 경아는 그림을 통해, 황량하고 메마른 1950년대의 불모성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힘을 얻고, 그로 인해 황량한 겨울을 온몸으로 견디면서 내면의 꿈을 키우는 싱싱한 생명력을 얻게 된다.
박완서의 소설 '나목'의 주제와 분위기는 박수근의 '나목' 계열 그림들과 연관시킬 때 훨씬 깊이 있게 감상하고 이해할 수 있다. 박수근의 그림들은 꺼칠꺼칠하고 건조한 화폭을 특징으로 하는데, 그것은 한국전쟁을 겪은 사람들의 황량한 삶과 대응된다. 그의 '나목'들은 꽃과 이파리들이 다 떨어진 겨울 나무들이다. 그것은 우람하지도 풍요롭지도 않다. 그 나무들은 흐릿하게 불확실한 모습으로, 가난에 움츠러들며 방황하는 인간들의 길가에 서 있다. (출처 : 한계전 외 4인 공저 '문학교과서')
이해와 감상2
박완서의 '나목'은 1970년 《여성동아》의 장편 공모에 당선된 작품으로, 한국 전쟁이 벌어지고 있던 시절의 서울을 배경으로 청춘의 성숙 과정과 진정한 예술가가 되기 위한 길을 교차시키고 있다.
이 작품은 온 민족이 암담했던 시절을 살아가야 했던 때에 인간다움 혹은 가치를 실현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미군 PX에서 근무하는 이경은 미군에게 초상화를 그려 주는 화가들 속에서 옥희도를 만나 사랑을 느낀다. 이경은 자기 때문에 두 오빠가 폭격으로 죽었다는 죄 의식이 있으면서, 동시에 두 아들을 잃고 망연자실한 상태로 살고 있는 어머니와 암울한 집안 분위기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있는 인물이다.
옥희도 역시 고독한 인물로, 두 사람은 서로의 고독함을 확인하고 가까워진다. 술 먹는 침팬지 앞에 이경과 옥희도는 함께 모이며 사랑을 나누곤 한다. 침팬지를 보는 동안 이들은 이들이 가진 고독을 털어 버리고 유쾌할 수 있기 때문에 둘이 침팬지 앞에서 모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인물은 각자 제 갈 길을 찾아간다.
옥희도는 진정한 화가가 되기 위한 길을 가고, 이경은 태수와 결혼하여 평범한 아내의 길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렇게 헤어진 것이 아니다. 옥희도는 '나목'을 그림으로써 진정한 화가가 되었고, 그 나목을 고목으로만 보았던 이경은 옥희도의 유작전에서 그것이 나목이었음을 확인하고 과거의 제 모습과 자신에 대한 옥희도의 의미를 뚜렷이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 작품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시각적 심상이 있다. 그것은 '부우연' 휘장·'부우연'캔버스와 같은 '부우옇다'는 심상이다. 이것은 이경이 옥희도의 눈에서 본 '황량한 풍경의 일각 같은 것'과 같은 심상이다.
외부의 세계가 부옇게 보이는 것은 '자신의 눈에 무엇이 덮여 그렇게 보이는 것'과 '정말로 외부의 세계가 부옇다'라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여기서 나타난 '부우연'의 의미는 인물들 속에 내재되어 있는 생각들이, 그들이 바라보는 세계를 부옇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이경은 옥희도가 그리던 그림을 죽어버린 나무, 생명력을 상실한 나무로 보았고, 후에 가정을 가지고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된 후, 겨울 한철을 이겨내고 있는 나무인 나목(裸木)으로 보았다. 이 점에서 이 소설은 청춘의 성숙 과정을 다룬 것이다.
이해와 감상3
이 작품은 6.25전쟁으로 인해 황폐해진 정신을 갖게 된 사람들이 그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치밀한 묘사로 그려 낸 장편 소설이다. 폭격으로 인한 두 오빠의 죽음이 자신의 잘못 때문이라 느끼며 살아가는 이경과 전쟁의 와중에 생활난 때문에 미군 PX에서 초상화를 그리며 살아가는 옥희도는 사회적 상황이 만들어 낸 황량한 정신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태엽을 감아야 온갖 재롱을 피우는 완구점의 침팬지처럼 어떤 힘에 의해 조종당하는, 의식 없는 꼭두각시가 되어버린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황량함을 평범한 여인의 일상 생활로 되돌아가 극복하는 경아, 그리고 화가의 길에 들어서 작품을 남기고 떠난 옥희도는 꽃과 무성한 잎을 다시는 피우지 못하는 고목(枯木)이 아니라 잠시 성장을 멈추고 어려운 한 시기를 극복하는 나목(裸木)이었던 것이다.
나목의 상징성
'나목'의 의미 : 1970년도에 발표된 이 작품은 박완서의 데뷔작이면서 대표작의 하나이다. 이 작품은 한국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있는데, 작품의 제목인 '나목'이란 바로 전쟁으로 인해 정신적 물질적으로 헐벗은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우리 민족의 모습을 상징한다 하겠다. 물론 그러한 헐벗은 삶의 모습이 추상적으로 제시되는 것은 아니며 인물들 간의 갈등을 매개로 하여 그려진다.
1. 이 소설의 내용을 바탕으로 다음 활동을 해 보자.
(1) 이 소설의 주인공은 화가 박수근을 모델로 한 것이다. 박수근의 경력에 대해서 알아보고, 이 소설에서 특히 주목하는 부분은 그 화가의 어떠한 삶에 대한 것인지 생각해 보자.
이끌어주기 :
이 작품에서 주목하는 것은 고단한 삶 속에서도 예술적인 삶의 가치를 찾고자 하는 예술가의 모습이라 하겠다. 학생들이 진정한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 작품을 통해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한다.
예시답안 :
화가 박수근의 삶과 예술은 '서민의 화가'하고 한마디로 요약된다. 그는 곤궁한 시절에 힘겹게 살아갔던 서민화가 그 자체였다. 1941년 강원도 양구 산골에서 태어난 박수근은 가난 때문에 초등 학교밖에 다닐 수 없었다. 한국 전쟁 중 월남한 그는 부두 노동자, 미군부대PX에서 초상화 그려 주는 일 따위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는 그 힘들고 고단한 삶 속에서도 삶의 힘겨움을 탓하지 않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서민들의 무던한 마음을 그렸다.
그는 예술에 대하여 거의 언급한 일이 없고 또 그럴 처지도 아니었지만 그의 부인 김복순 여사가 쓴 '아내의 일기'를 보면 박수근은 '나는 가난한 사람들의 어진 마음을 그려야 한다는 극히 평범한 예술관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 것이 있다. 화가의 이러한 마음은 곧 그의 예술 의지가 되어 서민의 모습을 단순히 인상적으로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평면화 작업을 추구하게 되었다. 거기 그렇게 존재하고 있다는 '존재론적 사실주의'를 지향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박수근의 그림은 부동의 기념비적 형식이 되었으며 유럽 중세의 기독교 이론과 비슷한 성서의 분위기가 감지되고 화강암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처럼 움직일 수 없는 따뜻한 정이 동시에 느껴진다. 그리하여 박수근은 가장 서민적이면서 가장 거룩한 세계를 보여 준 화가가 되었고, 가장 현대적인 화가로 평가되고 있다.
(2) 고뇌 어린 예술가의 삶을 부각시키기 위해 주인공은 자신의 남편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말해 보자.
이끌어주기 :
이 작품에서는 예술적 삶과 일상으로서의 삶을 극단적으로 구분하고 있다. 예술적 삶의 측면에 옥희도가 있다면 일상으로서의 삶의 측면에는 남편이 있다 하겠다. 이러한 사실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옥희도와 남편에 대한 각각의 묘사를 찾아보게 한다.
예시답안 :
옥희도는 그가 그린 그림 속의 '나목'은 처음에는 지상의 모든 삶들을 다 짓밟은 한발 속에서 괴물처럼 부유하는 존재로 묘사된다. 잔인한 환경의 거친 도전을 온 몸으로 가득 끌어안고 있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화자의 남편은 그렇게 처절한 그림의 내용과는 상관없는 소시민적 일상 속에 있다. 그 그림이 전시됨직한 미술관 옆의 잔디밭 벤치는 남편에게는 편안한 휴식공간이며, 가족들에게는 단란하게 그 휴식을 즐기고 싶은 공간인 것처럼 화자는 느낀다.
(3) 박수근의 그림에 나오는 나무와 여인의 이미지와 이에 대해 소설에서 묘사한 부분을 서로 비교해 보자. 소설 속의 묘사가 그림의 어떤 특징들을 연상하여 이루어진 것인지 각자 생각해 보고 그에 대해 토론해 보자.
이끌어주기 :
이 단원의 목적에 가장 적합한 활동이다. 예술의 다른 영역과 문학 영역의 접합지점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한다. 박수근의 그림에서 학생들이 느낀 바를 말하도록 하고, 묘사된 부분과 비교해 보자.
예시답안 :
박수근의 그림에는 나무와 두 여인이 등장한다. 아이를 업은 한 여인은 서성대고 짐을 머리에 인 한 여인은 총총히 지나간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여인의 옷차림과 거친 느낌을 주는 화면으로 인하여 토속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림에서 나무는 화면 전체를 덮고 있으며, 그 나무에 대해 감상하는 이마다 다른 느낌을 가질 것이다. 소설에서 화자는 그 나무를 단지 나뭇잎을 떨어뜨린 나목이라고 생각했다. 화자에게 나무가 말라 죽어버린 고목이 아니라 단지 겨울에 잎사귀를 떨군 나목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나무에게서 봄의 향기를 기다리는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다. 늠름하게, 빈틈없이 화면은 가득 채우고 있는 나무를 보며 화자는 나무가 그렇게 의연하게 서 있는 이유를 봄에의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도 여겼다. 그래서 화자는 이 그림의 나무를 나목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박수근과 양구
들리는 소문에 양구에 머잖아 '박수근기념관'이 설 거라 했지만 정작 양구땅에는 박수근의 스케치 하나 남아 있지 않다. 화가는 평생 고향과 서민들의 삶을 그려왔건만 정작 서민들은 그 그림을 만지기조차 어려운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박수근은 일찍이 "나는 우리나라의 옛 석물에서 말한 수 없는 아름다움을 느낀다"고 했지만 실제로 양구는 파로호 상류에 아직도 고인돌, 선돌 등 선사 유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돌의 고장이기도 하다. 기름기 없는 무채색의 가난한 들길을 걸어 정림리 산마루턱 생가터에 이르는 동안 산천과 사람 어디를 둘러보아도 선함 투성이다.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을 그려야 한다."는 그의 고백이 아니더라도 박수근의 그림에 왜 악은 위악마저도 찾아볼 수 없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닌게 아니라 사진만으로도 박수근에게서는 카톨릭 교회의 신부나 개신교 목사 같은 성직자의 느낌이 난다. 열두 살 때 처음 책에서 밀레의 '만종'을 보고서는 "하나님, 저도 이런 화가가 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는 그.
실제로 그는 광야의 선지자처럼 고달픈 예술가의 길을 걸어갔다. 가난과 전란 속에서 양구, 춘천, 평양, 군산 그리고 서울의 창신동과 전농동 일대를 떠돌며 때로는 도청 서기로, 미군부대 초상화가로, 심지어 부두 노동자로 전전하면서 죽기까지 그 손에서 화필을 놓지 않았던 것이다.
가난은 평생 그의 벗이었다. 그 가난 속에서 가족은 자주 흩어져 살아야 했고 관전에는 번번이 낙방하였다. 어린 아들의 죽음을 당했는가 하면 화가에게 생명 같은 눈의 발병으로 한 눈이 실명되기까지 한다. 그가 그린 앙상하게 메마르고 뒤틀린 나목들이야말로 이런 쓰라린 세월의 내면 풍경화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 풍경화 속의 인생행로를 숙명처럼 걸어가는 촌부며 노인들은 바로 그 자신의 모습이자 선한 이웃들의 모습인 것이다.
화강암 질감 같은 풍경 속을 걸어 언덕배기에 있는 박수근 화백 기념 공원에 오른다.
읍내를 바라보며 앉아 있는 그의 동상 옆에는 오래된 석조 건물의 교회당이 서 있다.
석양을 배경으로 서 있는 그 녹슨 종탑의 교회당에 오르니 천국이 아주 가까이 있는 것 같다.
척박한 세월을 만나 그림으로 선종한 박수근은 고달픈 생애를 접으며 이렇게 말했다.
"천당이 가까운 줄 알았는데......멀어, 멀어......" (출처 : 김병종, '화첩기행2')
박완서과 작품 세계
박완서의 소설은 두 개의 원천을 가지고 있다. 그 하나가 일상과 인간 관계에 대한 중년 여성 특유의 섬세하고 현실적인 감각이라면, 다른 하나는 6.25에 의해 초래된 비극적 사건의 기억이다. 이 중 박완서 문학의 본령이라 할 만한 것은 두 번째 것인데, 이는 그의 처녀작 <나목>에도 희미하게나마 투영되어 있으며, <세모> <부처님의 근처>와 <카메라와 워커>를 거쳐 <엄마의 말뚝>에서 그 전모를 드러내고 있다.
그의 소설 속에서 이러한 기억의 절실성은 천의무봉이라 할 만한 그의 문체와 결합되었을 때 더욱 빛을 발한다. 그는 끔찍할 정도로 생생하게 그 비극적 현실을 그려낸다. 그 비극으로부터 벗어나 현실의 삶으로 돌아 왔을 때, 거기에는 정치한 심리 묘사와 능청스러운 익살, 지나가 버린 삶에 대한 애착, 핏줄에 대한 절절한 애정과 일상에 대한 안정된 감각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박완서의 소설은 한국 문학의 성숙을 보여주는 단적인 지표라 할 수 있다.
박완서 작품 세계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전쟁과 분단을 통해 겪었던 가족사적 불행을 그려낸 것이다. 실제 박완서에게 전쟁은 숙부와 오빠를 앗아간 상실의 시기였다. 북쪽에 고향을 둔 한 가족사의 특수성을 이 민족과 시대의 특수성에서 유려(流麗)하게 파악함으로써, 소설 속의 인물의 특성을 시대적 특성으로 이끌어 내었다. 이러한 이유로 그의 소설은 추상적이지 않고 실제적인 분단 문제를 바라보게 하였다. 이러한 작품으로는 '나목(裸木)', '엄마의 말뚝',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등이 있다.
둘째, 그의 작품에서는 물질 만능주의 삶 속에서 팽배해진 중산층들의 도덕성을 문제 삼았는데, 특히 그들의 이기적이며 물욕적이고 허위 의식에 사로잡힌 점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1970년대 산업화로 인해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졌지만, 그 내면은 더 황폐해지고 조잡해지고 말았다. 이에 해당하는 작품에 '지렁이 울음 소리', '휘청거리는 오후' 등이 있다.
셋째, 여성 문제도 다루어 대체로 결혼과 이혼 등의 문제 의식을 중심으로, 여성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살아있는 날의 시작' 은 가부장제의 사회 질서에 길들여진 문청희라는 인물이 남편의 억압에 얼마나 눌려 사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결국 문청희는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함으로써 구조화된 불평들을 청산하고자 한다. 그 밖에도 '서 있는 여자' ,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등이 이에 속한다.
"나목"의 시각적 심상
이 작품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시각적 심상이 있다. 그것은 '부우연' 휘장·'부우연' 캔버스와 같은 '부우옇다'는 심상이다. 이것은 이경이 옥희도의 눈에서 본 '황량한 풍경의 일각 같은 것'과 같은 심상이다. 외부 세계가 부어옇게 보이는 것은 세계를 모래 바람 같은 것이 뒤덮었거나 눈에 무엇이 덮였을 때이다. 옥희도와 이경은 후자의 경우이다. 옥희도가 그린 그림이 부우연 캔버스에 고목이었던 것은 옥희도가 그 황량한 풍경의 일각을 그림에 투사했기 때문이다. 반면 이경은 제 눈의 그것을 없애지 못했기 때문에 나목이 고목으로 보였고 평범하고 안정된 생활 끝에 그것이 없어지고 나자 고목이 나목으로 보였던 것이다.
박완서와 6.25
박완서 초기작에서 현재에 이르는 작품들에 나타나는 그의 문학적 주제는 6.25전쟁이 한 가족에 미친 영향으로서 6.25이후에 분단상황하의 개인적 삶의 모습에 투영이 있다. 특히 6.25와 관련되고 전쟁과 분단을 다룬 작품들은 박완서의 초기작에서부터 근래에 이르기까지 관심이 지속되어 왔는데, 이는 작가 체험과 밀접한 관련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파악될 수 있다. 전쟁의 소설도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될 때, 보다 절실한 체험에 진실성이 구현될 수 있다. 박완서에게 있어서 전쟁이란, 자신의 가족을 붕괴시켰고 따라서 민족적 비극 이전에 개인적 비극으로서 직접적인 체험이 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소설이 6.25와 관련된 가족사적인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다. 6.25의 참변 속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은 후에 받은 상처로 인해 어머니가 겪는 한을 그리고 있는 「나목」,「엄마의 말뚝2」, 그 외 「부처님의 근처」,「카메라와 워커」,「겨울나들이」,「어느 이야기꾼의 수렁」,「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틀니」 등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이 작품들은 6.25가 가져온 현실 생활의 파괴와 그 후 사회와의 부조화 속에서 살 수 밖에 없는 인물들을 내세워 분단의 아픔을 전하고 있으며, 작가 개인의 체험을 바탕으로 두면서 6.25회고담이 삽입되어 있는데, 전쟁의 희생자인 오빠의 죽음은 가족을 파괴하였고,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개인들이 분단시대라는 상황 속에서 그 피해의식을 제각기 드러내고 있다.
전쟁체험을 바탕으로 한 「나목」
1970년에 발표된 박완서의 처녀작인 「나목」은 자신의 체험을 배경으로 한 소설로 전체가 17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951년에서 1952년에 걸치는 겨울을 시간적 배경으로 UN군에 의해 재수복되긴 하지만 아직 환도는 이루어지지 않은 서울을 배경으로 청춘의 성숙 과정과 진정한 예술가가 되기 위한 길을 교차시키고 있다.
박완서의 작가관
박완서의 문학은 대중 지향적이다. 평범한 일상적인 개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면서 주인공은 자신의 삶의 기반을 이루고 있는 현실적 조건을 거부하지 않고 일상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선, 소설에 등장하고 있는 중산층의 생활양식에 대한 해석을 작가의 이데올로기적 지평과 연관하여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중산층을 소설적 무대로 설정하여 일상성의 의미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그리고 가족 내적인 문제를 중심으로 사회 윤리적인 판단의 기준을 제시하기도 하고, 가족 구조의 변화를 역사적인 사회 변동의 한 양상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이러한 태도는 사회적 단위 집단으로서의 가족 구성의 원리와 그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를 통해 현실 사회의 내면적인 변화와 그 문제성을 비판적으로 형상화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녀의 문학은 여성 중심의 문학이다. 또한 6.25 전쟁과 분단 체험의 문학이다. 작가의 소설에서 중요한 역사적 배경은 전쟁과 분단의 체험도 민족 분단의 상처를 안고 있는 독자에게 영향을 미친다. 민족 분단과 전쟁은 사회구조의 급격한 변동을 초래하면서, 그 속에 살고 있는 인간의 사회 윤리적 규범을 붕괴시키고 있다. 가치관이 전도되고 심성조차도 변질된다. 인간적인 가치의 붕괴를 형상화하기 위해, 전쟁으로 인한 파괴가 그만큼 강조되는 것이다. 박완서는 분단이나 전쟁 자체를 문제삼고 있기보다는 그러한 상황적 조건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존재 방식을 따지고 있는 것이다.
박완서는 문단 데뷔작인 <나목>부터 최근의 자전적 작품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 이르기까지 집요하게 한국전쟁의 경험을 형상화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목마른 계절>은 중산층 여성의 속물 근성에 대한 냉엄한 비판과 함께 박완서 문학의 기둥을 이루고 있는 전쟁과 분단 현실에 대한 인식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작품의 시간적 배경을 살펴볼 때에 전쟁의 후유증을 담아내고 있는 <나목>과 전쟁의 경험을 다루고 있는 <목마른 계절>은 하나의 연속된 과정 속에 있다. 그래서 작품을 통독하다 보면 한 개인이 거대 이념의 틈바구니에서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고통을 겪다가 '문학'이라는 영역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과정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런 의미에서 <나목>과 <목마른 계절>은 박완서 문학의 원형질이라고 할 수 있다.
박완서의 문학이 한 가족에 미친 전쟁의 상처를 탐구하는데 바쳐지고 있다면, 이 작품에서도 나타난 바 있는 오빠의 죽음이라는 모티브는 <나목>부터 <부처님 근처>, <카메라와 워커>, <엄마의 말뚝> 등의 작품을 거쳐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 이르기까지 줄기차게 반복되고 변주된다. 그것은 "생때 같은" 한 청년의 죽음이야말로 한 가족의 슬픔의 차원을 넘어서 민족 전체의 비극을 대표하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이란 어머니의 삶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아들을 집어삼킨 폭력의 과정이었고, 신앙과도 같았던 아들을 빼앗아 가버린 전쟁으로 말미암아 어머니는 삶의 의욕을 상실해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는 한 젊은 처녀의 눈으로 바라본 전쟁을 담고 있다. 전장이 아니라 후방에서 여성들이 겪게 되는 비참한 현실과 생존에 대한 간절한 욕망이 드러나는 것이다.
객관적 상관물(客觀的 相關物)
T.S.엘리엇이 실생활에 있어서 정서와, 문학 작품에 구현된 정서의 절대적 차이를 강조하는 입장에서 이용한 문구로서 '어떤 특별한 정서를 나타낼 공식이 되는 한 떼의 사물, 정황, 일련의 사건으로서, 바로 그 정서를 곧장 환기시키도록 제시된 외부적 사실들'을 말한다.
개인의 감정과는 상식적으로 직접적 관계가 없는 어떤 심상, 상징, 사건에 의하여 구현된다는 사상, 즉 개인 감정의 예술적 객관화의 사상이 강조된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정서를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아닌 구체적인 사물을 지시하는 가운데 간접적으로 정서를 환기하는 방법이다. 즉, 일상 생활의 감정이 그대로 문학 작품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어떤 이미지, 상징, 사건에 의해 구현된다는 것이다. 엘리엇은 "예술의 형태 속에 정서를 표현하는 유일한 길은 객관적 상관물을 발견하는 데 있다. 달리 말해 어떤 정서를 나타낼 공식이 되는 한때의 사물, 정황 사건들로써 바로 그 정서를 곧장 환기하도록 제시된 외부적 사물을 발견하는 데 있다."라고 하였다. 이런 생각은 어떤 대상에 대해 직접적으로 감정을 토로하는 일이 예술일 수 없다는 반낭만주의적 발상에 토대를 두고 있다. 즉, 개인적인 감정은 어떻게든지 객관화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객관적 상관물이 필요하다는 견해이다.
그러한 객관화를 위해 이용된 심상, 사건, 상징 등이 바로 객관적 상관물이며, 이 작품 속에 나오는 '나목'이 그 한 예이다. 또한, 시조를 예로 들면 조헌의 작품
지당에 비 뿌리고 양류에 내 끼인 때
사공은 어디 가고 빈 배만 매였는고
석양에 짝 잃은 갈매기는 오락가락하노매
이 시조에서는 시적 화자가 자신의 외로움을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화자가 외롭고 쓸쓸할 것이라는 짐작을 할 수 있다. '빈 배'와 '짝 잃은 갈매기'와 같은 객관적 상관물이 제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박수근(朴壽根)
1914∼1965. 서양화가. 강원도 양구 출신. 아버지 향지(享智)와 어머니 윤복주(尹福珠) 사이에서 6남매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양구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가세가 몰락하게 되자 진학을 포기하고 독학으로 그림 공부를 시작하였다.
1932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수채화 〈봄이 오다〉가 입선된 이후 1936년부터 1944년의 마지막회까지 이 전람회의 공모 출품을 통하여 화가로서의 기반을 닦았다.
1952년 월남하여 대한민국미술전람회와 대한미협전(大韓美協展)을 통하여 작품 활동을 계속하였다. 1959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의 추천 작가가 되었으며, 이어 1962년에는 심사 위원이 되었다.
그는 “나는 인간의 착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내가 그리는 인간상은 단순하며 그들의 가정에 있는 평범한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물론 어린아이들의 이미지를 가장 즐겨 그린다.”라고 하였다.
주제에 있어서 앞의 말대로 그가 실제로 체험하였던 주변의 가난한 농가의 정경과 서민들의 일상적이고도 평범한 생활 정경을 주로 사용하였다. 또한 이러한 주제에 풍부한 시정(詩情)을 가미하여 일관성 있게 추구하였다. 그리고 표현 방법에 있어서도 향토색 짙은 자신의 독자적인 양식을 구축하였다.
특히 돌밭이나 화강암의 질감을 연상시키는 마티에르는 그의 화풍상의 큰 특징이다. 붓과 나이프를 사용하여 자잘하고 깔깔한 물감의 층을 미묘하게 거듭 고착시켜 마치 화강암 표면 같은 바탕을 창조하였다. 그리고 그 위에 독특한 감흥을 주는 굵고 우직한 검은 선으로 형태를 단순화시켜 한국적 정감이 넘치는 분위기를 자아내게 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1952년 이후 보다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하여 말년에 이르러 한층 더 심화되었다. 공간 구성에 있어서도 요약화된 형태들을 평면적으로 대비시켜 배치함으로써 그의 특이한 구성미와 현대적 조형성을 더욱 충실하게 이룩하였다.
그가 이룩한 회화 세계는 그가 죽은 뒤에 1965년 10월 중앙공보관에서 열렸던 유작전과 1970년 현대화랑에서의 유작전을 계기로 재평가되었다 그래서 유화로서 가장 한국적 독창성을 발휘한 작가로 각광을 받고 있다.
대표작으로 〈절구질하는 여인〉(1952년)·〈빨래터〉(1954년)·〈귀가 歸家〉(1962년)·〈고목과 여인〉(1964년) 등이 있다.
≪참고문헌≫ 朴壽根作品集(文軒怜廊, 1975), 韓國現代繪怜史(金潤洙, 韓國日報社, 1975), 韓國現代美術史(吳光洙, 悅話堂, 1979), 朴壽根怜集(現代怜廊, 悅話堂, 1985).(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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