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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霧津 紀行) / 해설 / 김승옥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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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霧津 紀行) - 김승옥


지은이 : 김승옥

갈래 : 단편 소설

배경 : 1960년대 무진(霧津)

시점 : 일인칭 주인공 시점

성격 : 서정적. 몽환적, 회고적, 독백적

제재 : 전보, 편지, 안개

문체 : 자연스러운 호흡과 세련된 언어 구사를 사용

구성 : 떠남 → 추억의 공간 → 복귀 형식의 여로 구조로 부분적으로 과거 회상이 나타나는 순차적 구성

발단 : '나'는 무진으로 내려감 - '나'는 무진으로 가는 버스에서 시찰원들의 무진의 명산물이 뭐냐는 대화를 무심히 듣고는 무진의 명산물은 안개라고 생각한다. 전무 승진을 앞두고 아내와 장인의 권유로 잠시 쉬기 위해 고향 무진으로 내려가게 된 '나'는 무진행 버스에서 어둡던 청년시절을 회상한다.

전개 : 하인숙을 만나 허무주의에 이끌림 - 평소 '나'를 존경하는 후배 '박'과 세무서장이 되어 거들먹거리는 중학교 동창 '조'의 집을 밤중에 방문한 '나'는 그곳에서 성악을 전공했다는 하 선생을 만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와 함께 걷던 하 선생은 자신을 서울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다. '나'는 무료한 무진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서울로 가고 싶어하는 그녀로부터 암울했던 자신의 옛 모습을 발견하고 연민을 느낀다.

절정 : 하인숙과의 정사 - '나'는 성묘길에 자살한 술집 여자의 시체를 목격하고 그로 인해 수없이 자살을 꿈꾸었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고는 그녀는 자신의 일부인 것처럼 느낀다. 바닷가에서 하 선생과 육체적 관계를 맺고, 그녀의 조바심을 통해 순수했던 과거를 다시 접하게 된 '나'는 그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갈등을 한다.

결말 : 전보를 받고 무진을 떠남 - 다음 날 아침, 상경하라는 아내의 전보를 받고 과거의 의식으로부터 벗어난 '나'는 하 선생에게 '사랑한다. 당신을 햇볕 속에 끌어 놓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하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썼다가 찢어 버린다. '나'는 과거를 배신한 채 무진을 떠나며 심한 부끄러움을 느낀다.

주제 :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갈등, 진정한 자아의 욕망을 저버리고 현실에 타협함으로써 일상을 유지하는 현대인의 자기 반성,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현대인의 허무주의적 의식

인물 :

나(윤희중) : 32세 현대인의 의식을 대신한 사람으로 인간적 고뇌와 세속적 안락 사이에서 갈등하는 허무주의에 빠져 있는 인물

하선생(하인숙) : 중학교 교사. '나'를 만나 '무진'에서의 지루함과 삶의 허무를 극복하기 위해 무진을 떠나려고 한다.

조 : '나'의 시골 학교 동창생. 고시에 합격하여 그 곳 세무서장으로 있는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인물

박 : '나'의 후배로 '나'를 존경하고 '하인숙'을 사랑하는 순수한 인물

특징 : 감각적인 문장의 구사로 발표 당시 '감수성의 혁명'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이상과 현실의 괴리 문제를 다루었고, '허무 안개'라는 상징을 빌려 표현했고, 서정적, 몽환적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줄거리 : '나'는 지금 '무진(霧津)'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있다. '나'는 장인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간부직을 맡고 있는데, 아내가 '나'의 승진을 위해 잠시 서울을 떠나도록 배려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의 내가 숱한 좌절과 방황 속에서 헤매던 고향인 무진에 가서 예전의 친구들을 만난다. 친구 '조'는 세무서장으로 근무하는 출세 지향형의 속물이다. 술자리를 함께 한 후배 '박'은 국어 교사를 하고 있다. '박'은 같은 학교 교사인 '하 선생'에게 순수한 사랑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 '하 선생'은 순수한 인물인 '박'보다는 출세 지향형인 '조'와의 결혼을 원하지만, '조'는 별로 관심이 없다. '나'는 '하 선생'에게서 자신이 젊은 시절에 앓았던 순수의 열병을 발견하고는 짙은 연민을 느낀다. '하 선생'은 무진에서의 생활이 싫어 서울로 올라갈 것을 원한다. 그러나 이미 현실에 길들여진 '나'로서는 용기가 나지 않는다. 결국, 나는 무진을 떠나면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 작품은 '무진'이라는 특정한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무진은 언제나 안개에 싸여 있어 사물들이 늘 흐릿하게 보이는 곳이다. 이 흐릿함 속에 묻혀 사람들은 자기 기만과 자기 위안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무진이라는 지역은 당대 사회의 한 특성을 함축하도록 설정된 공간이다. 주인공은 정신 없이 바쁘게만 돌아가는 서울 생활을 벗어나 휴양차 잠시 이 곳에 내려온다. 그리고 그 분위기에 모르는 척 합류하게 된다.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비해 투명한 의식을 지니고는 있지만, 자기의 과거를 잊어야 한다는 생각에 그 질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주인공은 주변 사람들이 모두들 전쟁에 참가할 때 이 곳으로 도피하여 어두운 골방 속에서 지냈던 기억이 있다. 그것이 늘 자신을 괴롭히는 과거이기에, 이번 기회에 완전한 탈출을 시도한다. 그가 무진에서 맞이하는 사건들은 그런 탈출의 도구이다. 그렇지만 주인공이 무진을 도망치듯 떠나면서 심한 부끄러움을 느끼는 대목에서 자아의 본모습은 그러한 작위적인 탈출로는 결코 부정할 수 없는 것임을 알 수 있게 된다. 작자는 이런 의식의 단면을 선명하게 그려 내고 있다.

  이 작품의 문체는 그 섬세한 인간의 의식이 가감 없이 드러날 수 있도록 뒷받침하고 있다. 스쳐 지나가듯 묘사하면서도 본질을 놓치지 않는 섬세한 서술 기법, 등장 인문들의 화법 등이 새로운 면모를 보여 주고 있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언어 예술로서의 소설이 지닌 묘미를 느낄 수 있다.(출처 : 김대행·김동환 저 교학사 문학)



이해와 감상2

 김승옥은 새로운 감수성(感受性)의 혁명을 일으킨 1960년대 문학의 선두 주자로 평가받았다. 이 작품에는 도시 사회 속에서 겪는 개인의 내면적인 갈등이 탁월한 문체와 구성의 도움을 받아 화려하게 펼쳐진다.

 이 작품은 서울에서 고향인 무진으로 돌아가는 장면에서 시작하여,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기행(紀行)'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주인공은 서울에서 속물적인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고향인 무진에 와서도 삶의 순수한 가치를 되찾을 수 없다. 출구가 막힌 듯한 답답한 상황은 '안개'라는 상징을 통해 더욱 강렬하게 드러난다. 고향 '무진(霧津)'은 안개 마을인 것이다. 아직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는 후배 '박'과 속물이 되어 버린 친구 '조' 사이에서 망설이는 젊은 음악 선생 '하인숙'에게서 '나'는 연민과 동정을 느낀다. 순수한 삶과 타락한 삶 사이에서 방황하는 모습이 젊은 시절의 '나'와 흡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잊고 서울로 돌아가야 한다는 현실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아내의 전보를 받고 서울로 돌아가기 전, 나는 그녀에게 편지를 썼다가는 바로 찢어 버린다.

 그 편지는 이제 '무진 기행'을 읽는 독자들의 가슴 속에 전해질 것이다. 편지와 전보, 안개와 수면(睡眠) 등의 이미지를 서로 연결시켜 가며 작품을 감상하면 훨씬 깊은 묘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해와 감상3

 1964년 <사상계>에 발표된 단편 소설. 이 소설에는 두 가지 공간이 있다. 아내가 있는 서울은 세속적이지만 현실적 가치의 공간이다. 이에 반해 무진(霧津)은 나른하고 축축한 몽환의 세계이다. '나(윤희중)'는 회억(回憶)에 이끌려 무진에 갔다가 2박3일의 여정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다. 즉, 감상(感傷)을 떨치고 시민이 있고 책임이 주어지는 현실로 회귀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일상을 벗어나고 싶은 보편적 인간 심성을 기본 줄기로 한다.

 주인공인 '나'가 서울을 떠나 무진(霧津)으로 갔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온다는 '떠남→추억의 공간→복귀'의 여로(旅路) 구조이다. 그 여정(旅程)에서 '나'는 더 젊었던 시절의 고뇌를 다시 만난다. 즉, 무진의 골방 안에서의 불면의 밤과 수음(手淫), 담배 꽁초와 편도선, 6.25 전쟁의 상처, 우편 배달부를 기다리던 초조(焦燥) 등 어둡던 청년 시절을 다시 떠올리는 것이다.

 무진에서 '나'는 하인숙이라는 여인을 만난다. 그녀 역시 과거의 '나'가 그랬듯 서울행을 목표로 무진 탈출을 꿈꾸고 있는 존재다. '나'는 그녀의 모습에서 과거의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고,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그녀는 '나'에게 과거를 떠올리는 끈이요 감상(感傷)의 실체였다. 그러나 그 의식의 다른 끝에는 시민과 책임이라는 상대적인 가치가 놓여 있다. 그것을 일깨워 놓은 것이 아내의 전보이다. 그리하여 '나'는 한 귀향자(歸鄕者)의 마음에 안개처럼 축축히 배어드는 센터멘털리즘에서 서서히 벗어난다.

 작가의 표현을 빌면, "무진을, 안개를, 외롭게 미쳐 가는 것을, 유행가를, 술집 여자의 자살을, 배반을, 무책임을 긍정하기로 하자."고 '나'는 되뇌지만, 이것은 "마지막으로 한번만이다. 꼭 한번만"이라는 조건으로 인하여 사실은 무진과 그 체험을 부정한다는 의미이다.

 특히, "우리는 아마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쓴 하인숙에게의 편지를 떠나기 직전에 도로 찢어 버림으로써 무진은 또다시 추억의 공간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현실로 회귀한다.



"무진 기행"의 등장 인물들 

나(윤희중) : 서른세 살. 장인이 경영하는 제약 회사의 전무 자리에 오르기로 되어 있으나 이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자기 존재의 뿌리를 확인하려고 무진으로 가지만 허무만을 느낀 채 다시 서울로 돌아온다. 위선적·허무적 인물로, 당시의 시대 상황이 빚어낸 창백한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 준다.

하인숙 : 무진 중학교 음악 교사. '나'를 만난 수 허무를 벗어나기 위해 무진을 떠나고 싶어하나 결국 그 삶을 수용하며 무진에 남는다. 다소 자조적인 여자로서 등장 인물 중 가장 허구적인 인물이며 '나'의 젊은 날의 초상과 비슷하다.

조 : '나'의 시골 학교 동창생. 세무서장. 속물적 인간의 전형이다.

박 : '나'의 중학 후배. 교사. 하인숙을 사랑하는 순정적 인간. 등장 인물 중 가장 순수한 인물로서 독자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무진 기행"의 특징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인생의 보편적인 갈등이다. 이 작품은 이러한 갈등을 속물 근성을 지닌 세무서장과 순수한 성격의 중학 교사 사이의 대립, 서울의 아내와 고향에서 만난 음악 교사 하인숙 사이의 대립으로 바꾸고 있다. 또한 이러한 불화와 대립의 구도를 서울과 고향의 경계에 놓인 이정표, 무진 마을의 명산물인 '안개'라는 상징을 빌려 표현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안개의 상징성 

 안개는 물과 공기의 중간 상태이다. 비도 아니고 공기도 아니고 땅에 떨어지지도, 하늘에 속하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모호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는 순수한 인간적인 마음에서 나타나는 이상적인 지향점과 자신을 안정과 성공만을 지향하는 속물로 만드는 현실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모호한 이중적인 상태에 놓인 나의 번민에 찬 젊은 날이기도 하고, 근대화에 이끌려 속물화되고 있는 고향의 모습이기도 하다. 여기서 안개는 소설의 전체적 분위기를 이끄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안개란 사전적으로는 지표면 가까이에 아주 작은 물방울이 부옇게 떠 있는 현상이지만 모든 것을 감추어 버려 제대로 보이지 않게 한다. 안개의 모호함과 비구분성은 자연을 배경으로 해 자아를 외부와 차단하는 장애물이면서도 그 모호성으로 인해 체념이나 단절보다는 갈등과 아득한 그리움을 유발한다. 안개는 또한 인간의 존재론적 불안을 상징하며 자아가 존재하는 하나의 상황으로 표상되기도 한다. 불안한 자아를 위협하는 갈등 상황이며, 동시에 필연적인 극복 대상이 안개가 가지는 현대적 의미이다. 현대인은 안개 속에서 탈출하려고 하지만 결국 안개에 묻히고 만다. 그 안개는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제공하지만 결국 현실의 한 연장일 수밖에 없고 그것은 결국 주인공의 혼미스러운 내면 세계를 표현하는 상징물이다. 



'무진 기행'에서의 '무진'의 의미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인 분위기로 채색되어 있는 '무진 기행'은, 환상적 기준과 결별하고 현실 원칙에 순응해 가는 김승옥의 소설적 여정을 모두 함축한 문제작이다. 주인공 윤희중이 삶의 어떤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찾아가게 되는 무진이란, 지도상에 존재하는 현실적인 지명이 아니라 흔들리는 자아의 정체성을 재정립하기 위해 근본적인 반성을 행하는 순수 의식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골방 안에서의 공상과 불면을 쫓아 보려고 행하던 수음과 곧잘 편도선을 붓게 하던 독한 담배 꽁초와 우편 배달부를 기다리던 초조함" 따위의 연상과 관련되어 있는 그 곳은 질식할 것 같던 젊은 날의 쓰라린 추억과 동시에, 이제는 잃어버린 과거의 삶에 내포되어 있던 매력을 모두 갇고 있다. 본래 고향이란 윤희중의 자기 의식을 소멸시키려는 전근대적 인륜성의 표상에 다름아니었다. 그는 무진에서 벗어나 스스로 서기를 간절히 원했고, 마땅히 그렇게 했으며, 적당한 타협을 통해 안정된 현재의 삶을 이루었다. 이리하여 5·16이후 본격화된 자본주의적 근대화를 배경으로 고향을 떠나 도회로 탈출하여 '출세한 놈'들의 자의식 속에는 사랑과 모성과 고향을 배반했다는 자책감이 뿌리 깊게 박혀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이룩한 삶의 안정성을 좀더 확고하게 만들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왔을 때, 잃어버린 과거의 고향이 뿌리칠 수 없는 매력으로 그에게 다가온다. 자기 보존의 본능은 언제나 자아 상실의 맹목적인 충동을 동반하기 때문이다.(출처 : 진정석, <글쓰기의 영도 : 김승옥론>) 



작가가 말한 무진 기행 

  '무진 기행'의 착상은 우연히 얻어진 것이었다. 어는 날 고향 거리를 우울하게 걷고 있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왜 사람들은 객지에서 실패하면 고향으로 가고 싶어하는 것일까? 귀소 본능이란 인간의 삶을 결정하는 데 뭔가 크게 작용하는 요소가 아닐까?' 또, 한 가지 우연히 얻은 소재는 어느 사사로운 모임에 갔더니 서울에 있는 모 음악 대학을 나온 여선생님이 노래부르는 모습을 보고 문득 '우리 나라에서는 대학을 다녔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서글픔에 잠시 잠긴 일이 있던 거였다. 당시는 대학을 나와도 취직 자리 하나 변변찮던 암울한 시대였다. 안개가 낀 듯이 미래가 보이지 않던 6·25 전쟁으로 전통적인 재산도 가치도 다 파괴돼 버리고 너나없이 속물이 돼 버린, 속물이 되지 않고서는 살아 남을 것 같아 보이지 않던 불투명한 시대가 바로 1960년대였고 젊은 날의 상황이었다.(출처 : 김승옥, '무진 기행'을 쓰던 무렵' 중에서)



편지와 전보의 상징성 

편지와 전보는 의사 소통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편지는 개인의 내면이나 정감을 표시하는 보다 전통적인 의사 소통 수단이고, 전보는 실용성이 강조되는 수단이다. 주인공과 하인숙은 편지를 통해 연결되고, 주인공과 아내는 전보를 통해 연결된다. 주인공이 편지를 찢어 버리고, 아내가 보낸 전보의 내용대로 행동하는 것은, 결국, 현실을 따르는 그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한 예이다. 소설에서는 대부분 인물 간의 갈등을 통해 사건과 주제가 제시되지만, 이처럼 간소하게 보이는 장치를 통해서도 그 주제를 선명하게 부각시킬 수 있다. (출처 : 한계전 외 2인 공저 대한교과서 문학) 



'편지'와 '전보'의 상징성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편지'와 '전보'의 상징성이다. '나'는 하인숙에게 절절한 편지를 썼다가 찢어버린다. 그리고는 아내의 전보를 받고는 서울로 다시 올라간다. 그 순간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무진기행'은 '편지'와 '전보' 간의 갈등으로 이해할 수 있다. 편지와 전보는 의사소통의 수단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공통점이 있지만, 편지가 개인간의 내밀한 내면과 정감을 의사 소통하는 것이라면 전보는 속도와 효율을 중시하는 의사소통 수단이다. 편지를 매개로 한 나와 하인숙의 관계와 전보를 매개로 한 나와 아내의 관계를 펼쳐 보이면 다음과 같다. 

① 나는 하인숙을 버리고, 아내에게로 돌아간다.

② 나는 편지를 버리고, 전보에게로 돌아간다.

③ 나는 고향을 버리고, 서울로 돌아간다. 

그것은 인용된 부분에서는 생략되었지만, 하인숙이 술자리에서 현실적인 처세술로 클래식을 버리고 대중가요인 '목포의 눈물'을 부르는 것과 상통한다. 이 작품에서 나와 하인숙이 내밀한 감정의 교류를 느끼는 것을 서울과 무진 사이에 있는 나와, 무능하지만 인간적인 사람과 현실적인 선택 사이에서 고민하는 하인숙의 처지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하인숙과 나의 선택은 모두 '이상과' 순수'를 버리고 '현실의 속물'이 되어가면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으로 귀결되고 있다. [출처 : 김만수, '속도의 기호학 : 편지와 전보사이', <희곡 읽기의 방법론>(태학사,1994)]



1960년대 이후의 소설 

① 시대적 배경

 이 시기는 역사적으로 4·19와 5·16 그리고 유신 통치에 이르는 한국 현대사의 격동기였다. 4·19는 자유당 정권의 부패와 이승만의 독재에 항거한 시민 혁명으로서 미완의 혁명으로 끝났지만 우리 현대사의 이념적 지향인 진정한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그러나 곧이어 젊은 군인들에 의해 야기된 5·16군사 쿠데타는 많은 사람들에게 정신적 좌절과 무력감을 가져다 주었다. 이 시기에는 고도의 경제 성장정책을 국가적 이념으로 삼았으므로 경제가 발전하였으나, 분배의 불평등 구조로 인해 소외 계층이 대대적으로 발생하고 사회의 부조리 현상이 만연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사회 구조적 모순은 폭넓은 비판의식과 저항 의식을 형성하게 하는 계기 역할을 하였다.

② 문학사적 특성

 이 시기의 우리 문학은 그야말로 비약적인 질적 심화와 양적 확대를 이룩한다. 특히 문학의 현실 참여에 대한 의식이 확산되어 문학은 시대의 반영이자 양심의 몫을 톡톡히 해 냈다. 사회 부조리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비인간화와 소외 현상에 대한 비판적 의식, 그리고 독재 정권과 경제적 불평등에 저항하는 리얼리즘 문학의 원류(源流)가 탄생한 시기이기도 하다.

 또 이 시기는 전쟁을 바라보는 일정한 객관적 시점이 확보된 시기로서, 맹목적 반공(反共)이나 체험적 전쟁 소설보다는 분단의 문제를 중립적 시각으로 보려는 문학적 경향이 대두하였다. 이것은 보다 더 성숙된 역사 의식의 소산이었다. 아울러 그러한 현실 비판적이고 민족 의식적인 문학의 뒤안길에서는 독특한 서정성과 기법을 담은 참신한 작품들도 쏟아져 나왔다. 이와 같은 현상은 근대 문학 이래로 꾸준히 발전해 온 우리 문학의 자양이 꽃 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학사적 발전은 1980 ∼ 1990년대를 거치면서 더욱 확대된 심화된 작법(作法)으로 이어진다.

③ 소설의 경향

(1) 인간의 실존적 갈등을 다룬 소설 : 보편적 인간의 실존의 문제 또는 인간 사이의 갈등이라는 본원적 문제를 다룬 작품이 여럿 나왔다. 김동리의 '까치 소리', 이청준의 '병신과 머저리','눈길' 등이 있다.

(2) 현실 참여의 소설 : 4·19와 5·16등 민족사의 심한 변동기에 처한 우리 소설 문학은 현실에 대한 비판적 안목을 본격적으로 갖추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의 작품들은 사외의 모순과 부조리한 현실, 그리고 소외된 민중들의 삶의 진솔함 등을 형상화하였다. 또 이 작품들은 리얼리즘 문화의 발달에 큰 역할을 하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김정한의 '모래톱 이야기','인간 단지',이호철의 '판문점',전광용의 '꺼삐딴 리',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한씨 연대기', 윤홍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등이 있다.

(3) 서정성과 감각적 문체의 소설 : 현실에 대한 치열한 고발과 비판보다는 문학의 예술적 형상화 및 문체의 우수성으로 문학의 질적 심화에 기여한 순수 소설들이 많이 나왔다. 이것은 인간의 삶과 이간 존재의 해명이라는 본질적 문제에 접근한 것으로서, 시대적 변화와 관계없이 지속적 맥을 형성해 온 경향이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김승옥의 '무진 기행(霧津紀行)','서울, 1964년 겨울',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 등이 있다.

(4) 민족적 비극과 분단의 문제를 다룬 소설 : 6·25 전쟁으로 인한 민족적 고통과 정신적 충격을 형상화한 작품도 다수 출간되었다. 황순원의'나무들 비탈에 서다', 오상원의 '황선 지대',최인훈의 '광장(廣場)', 윤홍길의 '장마' 등이 있다.

(5) 역사에 대한 관심 : 지나간 역사에 대한 냉정하고 객관적인 성찰 위에서 한민족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외세 및 수탈 계급과 싸워 온 민족 의식에 대한 천착이 본격화된 시기가 이때이다. 역사를 현실에 되비추어 봄으로써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현실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려는 데 목표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안수길의 '북간도', 박경리의 '토지(土地)' 등이 있다. 



귀향형 소설의 의미 

 귀향형 소설은 상경형 소설의 다음 단계에 씌어진다. 어쨌든 서울로 올라온 촌놈은 출세를 한다. 그 출세가 기껏해야 동네 봉제 공장의 사장 정도라 해도, 이빨 빠진 시골 할아버지들의 입을 한동안 다물지 못하게 하기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는 그런 종류의 출세일 것이다. 출세한 그가 무슨 일로 시골로 내려간다. 명절 때라면 더러 시골에 가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과장하여 뽐내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예전의 동네 사람들은 그러한 변화를, 출세임에 틀림없다고 응당 인정해 준다. 당사자는 그들의 찬사에 한편으로는 기뻐하면서도, 그러나 마음 한편에는 씁쓸함이 남아 있다. 설령 서울에 올라가서 돈을 벌고 약간의 지위를 얻었다는 점을 자위하더라도, 자신의 가슴속에는 예전에 고향에서 지녔던 그 무엇을 상실하였음을 새삼 깨닫게 되기 때문. 고향 시골집 툇마루에 걸터앉아 시종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아무렴, 시골이 좋지, 하고 말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잠깐이고, 휴가가 끝나면 그는 다시 마음을 다잡아 서울이라는 전쟁터로 떠날 차비를 한다. 귀향형의 소설이 1980년대 소설의 한 형식이라면 그것은 이런 점을 염두에 둔 것이다.

 김승옥의 소설은 이러한 1980년대식 주제를 1964년의 시각에서 포착하였다는 점에 그 새로움이 있다. 줄거리를 간단하게 살펴보자. 주인공인 '나'는 처갓집의 배려로 서울에서 어느 정도 출세한다. 그리고 이번에도 처갓집의 배려로 한 단계 승진하는 호기를 마련한다. 아내는 승진에 따르는 잡음을 줄이기 위해, '나'더러 며칠간 고향에 돌아가 있을 것을 주문한다. '나'의 귀향은 고딕체로 씌어진 '무진으로 가는 버스'라는 소설의 처음에서 '당신은 지금 무진을 떠나고 있습니다.'라는 소설의 결말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그 짤막한 귀향의 여정이 '기행(紀行)'의 형식으로 쌓여 있는 것이다. (출처 : 김병국 외 4인 공저 한국교육미디어 문학)5



이해하기

교과서 229쪽



1. 이 작품에서 주인공인 '나'의 고향인 '무진'의 상징적인 의미를 '안개'에 착안하여 설명해보자.

교수·학습 방법

 안개의 속성과 작품의 주제를 연결하여 이해한다. 안개의 속성이 무엇인지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보고, 작품의 주제를 확정한 후 연결시킨다.

예시 학생 활동

 안개는 물이 되기 전의 수분의 응결상태이다. 그러므로 물과 공기의 중간상태이며, 이 둘의 특성을 모두 간직하고 있다. 비도 아니고 그대로의 공기도 아닌, 공중에 떠있는 수분의 응결은 모호한, 결정 이전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또한 다른 물질과의 사이에 시야를 차단시키며, 불확실한 시야에 대한 추측이나 공상을 발동시킨다. 이는 작품 전체에서 순수하고 인간적인 마음으로 표현한 이상적 지향점과 자신을 속물로 만드는 현실 사이의 모호한 상태와 유사하다. 무진은 그러한 마음이 잘 표현된 공간으로 안개와 함께 이상적 지향성이 살아 있으나 그것이 속물적 세계와 섞여 있는 상태로 표현된다.



2. 다음 구절에 담긴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추리·상상하여 써 보자.

교수·학습 방법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소설에서는 주인공의 내면이 섬세하게 제시된다.(1)에서는 의인법의 효과를 중심으로, (2)에서는 부끄러움의 의미를 전체 주제 내에서 파악하도록 한다.

(1) 오랫동안 우리는 다투었다. 그래서 전보와 나는 타협안을 만들었다.

예시 학생 활동

 다툰 일을 한 주어는 우리이다. 우리의 실체는 다음 문장에서 '전보와 나'로 밝혀진다. 여기서 전보는 의인화되어 있는데, 전보를 보낸 사람은 아내이므로 '전보=아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다투려면 전보가 나와 타협하기 위해서는 전보가 나의 상황을 알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전보의 실체는 아내가 아니라 아내가 바라고 있는 나의 모습일 것이다. 즉 여기서 전보와 나는 결국 아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과 무진에서 나의 모습, 즉 서로 지향점이 다른 두 심리가 다투었다가 타협안을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2)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예시 학생 활동

 무진을 떠나며 무진읍을 떠나고 있다는 팻말을 보며 주인공은 부끄러움을 느낀다. 앞서 안개를 통해 무진의 의미를 유추해 보았는데, 무진은 성공을 지향하는 도시의 속물들과는 달리 아직 순정이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세계이다. 그러므로 무진을 떠난다는 것은 결국 순정과 이별하였다는 얘기고, 팻말을 보는 순간 주인공을 자신의 타협안이 잠정적 타협이 아니라 남은 인생의 태도를 결정한 순간이라는 것을 자각하였다고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주인공의 부끄러움은 양심의 가책이다.



3. 이 작품이 1인칭 주인공 시점이라는 점을 생각하며, 다음 활동을 해보자.

 (1) 이러한 시점을 택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무엇인지 말해보자.

교수·학습 방법

 1인칭 주인공 시점의 특성을 서술하고, '무진 기행'에서 이 특성을 독특하게 사용한 부분을 찾아본다. 그리고 이러한 시점의 선택이 주제 구현에 어떻게 이바지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예시 학생 활동 :  

 1인칭 주인공 시점은 주인공의 자아를 표현하는 데 적절하다. 자아의 성장이나 반성 모두가 1인칭 주인공 시점일 때 강한 호소력을 가지며, 또한 개연성에 강하게 얽매이지 않아도 좋다는 강점이 있다. 주인공의 심리적인 면을 그리면서 '무진 기행'에서 취사선택한 제재들은 은유적으로 그 심리를 표출하는데, 이는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도 직설적인 표현이 아니라 간접적인 상징을 통해 주인공의 심리를 한번 더 생각하게 하는 장치가 된다. 작품에서 주인공의 심리는 현상과 마지막 결론 사이의 과정을 생략하면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다른 작품보다 주인고의 심리를 추측해야 할 부분이 많아지며, 독자에게 상상이나 사유로 채워야 할 폭을 넓히고 있다. 비교적 자유로운 서술이 가능한 시점의 특성을 최대한으로 살리고 있다.

 (2) '나'는 작품의 결말 부분에서 '당신은 지금 무진읍을 떠나고 있습니다.'라는 이정표를 본 다음, 심한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대목에서 '나'와 '당신'의 심리적 거리를 설명해 보자.

교수·학습 방법 :

 팻말의 일반적 의미와 작품 내에서 주인공에게 느껴질 독특한 심리적 의미를 정의한다. 팻말과 주인공의 거리는 독특한 심리적 의미가 부여될 때 분명해진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의 한계를 적절한 장치를 통해 극복하고 있다는 것을 파악한다.

예시 학생 활동 :

 '당신'이라는 대명사는 '나'에게 스스로를 돌아보는 반성적이고 객관적인 거리를 제공한다. 물론 일반적으로 마을의 초입에 서 있는 팻말은 마을을 떠나는 모두에게 보내는 전언이다. 그러나 자신에게 있어 무진이 어떠한 의미를 갖고 있는지 자각한 주인공에게 있어 '무진'을 떠나는 것이 자신이라는 것을 객관적으로 확인시켜 주는 팻말은 일반적 의미에 그칠 수 없다. 주인공은 자신에 대한 반성적이고 객관적으로 확인시켜 주는 팻말은 일반적 의미에 그칠 수 없다. 주인공은 자신에 대한 반성적이고 객관적인 거리를 상상하고, 그 팻말을 양심의 소리로 읽는 것이다.



4. 이 작품에서 주인공이 쓴 편지를 '인숙'은 읽을 수 없고 독자만이 읽을 수 있다. 그렇다면 편지 내용을 굳이 삽입한 이유를 말해보자.

교수·학습 방법 :

 먼저 편지 내용을 분석한다. 편지 내용의 분석은 편지를 찢는 행위의 설명과 이어진다. 다음으로 독자가 이를 보면서 무엇을 이해할 수 있는지를 파악한다.

예시 학생 활동 :

 편지 내용은 그간 주인공이 인숙에게 느꼈던 감정을 직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사랑'이라는 표현과 함께 '옛날의 저의 모습'이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도 설명되어 있다. 편지를 보내는 목적도 드러난다. 그러나 '옛날의 저를 오늘의 저로 끌어다 놓기 위하여'라는 말은 서울로 가는 것이 일종의 타협이라는 것을 숨기기 위한 변명에 불과하다. '옛날의 저'를 '오늘의 저'로 끌어다 놓는 것은 불가능하며, '옛날의 저'조차 '오늘의 저'로 만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편지를 찢는 것은 자신의 포기에 대한 확인이며 '옛날의 저'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방안이다. 독자는 이를 보면서 주인공의 심리를 분명하게 포착할 수 있다. 또한 그가 무진을 떠나면서 느끼는 부끄러움의 실체를 좀더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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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230쪽



1. 이 작품에서 '전보'와 '편지'는 서로 대립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잇다. 이것이 지닌 상징적 의미를 중심으로, 다음 활동을 해 보자.

(1) 전보와 편지의 일반적인 차이점에 대해 말해 보자.

교수·학습 방법 :

 전보는 효율을 강조하는 통신 수단인 반면, 편지는 좀더 감정적인 의사소통 수단이다. 이러한 일반적인 차이를 확대시켜, 전보=아내=서울, 편지=인숙=무진의 의미를 읽어내도록 지도한다.

예시 학생 활동 :

 편지의 주목적은 정서와 교감을 전달하는 것이다. 전보에서는 있을 수 없는 안부 편지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따라서 편지에서 중요한 것은 정보보다는 감정의 교류이며, 간결한 정보만을 전달하는 전보와는 주목적이 다르다.

(2) 이 작품에서 '나'는 아내와는 전보로 연락을 취하고 있는 반면, 인숙과는 편지를 통해 소통하고자 한다. (1)에서 정리한 전보와 편지와의 차이점을 인용하면서, 아내와 인숙 사이에 놓인 '나'의 심리적 상태를 설명해 보자.

교수·학습 방법 :

 주인공이 인숙에게서 느끼는 사랑의 감정은 젊은 시절의 자신이 겪었던 아픔을 인숙에게서 발견하고, 인숙이 과거의 자신을 닮았다는 데에서 출발하는 연민의 감정에 기초하고 있다. 이러한 복합 감정을 이해해야 '나'의 심리 상태를 설명할 수 있다.

예시 학생 활동 :

 주인공은 인숙의 모습에서 젊은 시절의 자신을 발견하고는, 그녀를 동정한다. 이러한 연민은 곧 사랑의 감정으로 연결되고, 결국에는 그녀를 돕기로 결심한다. '나'는 인숙과 편지를 통해 감정의 교류를 나누는 것이며, 이에 반해 아내와는 전보를 통해 간결한 정보를 나눈다.



2. 이 작품에서 편지를 썼다가 찢어 버리는 주인공의 행위는 상식적으로 보면 납득하기 어렵다. 다음 문제를 중심으로 서술자의 태도에 대해 알아보자.

교수·학습 방법 :

 왜 편지를 찢었는가? 질문에서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지만, 사실 이 작품이 단편소설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식의 급작스러운 결말이 필요하다. 편지를 전달했다면 뒷부분의 이야기가 한참 더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뒷부분을 이어나가는 글쓰기는 작품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과정의 일부가 될 수 있다. 학생들에게 과제를 부여한 다음, 이를 토대로 작품의 다양한 수용 양상을 정리할 수도 있다. 학생들이 쓴 뒷부분과 '무진 기행'의 결말 부분을 서로 비교해보는 것도 수용과 창작의 측면에서 볼 때, 좋은 공부 거리가 될 수 있다.

(1) 편지를 찢는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말해 보자.

예시 학생 활동 :

 주인공은 감정적으로는 예전의 이상을 허용하고 있지만, 이미 현실 속에 안주하고 있다. 그가 편지를 쓸 때까지는 자신의 감정이 허용하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용기도 여력도 없다. 그러므로 주인공은 편지로 연결되는 인숙과의 관계를 청산해야 한다. 이처럼 자신만을 위해 현실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때, 주인공의 심리 상태는 부끄러움으로 요약된다.

(2) 만약 편지를 찢지 않는 쪽으로 사건을 전개시켰다면, 뒷부분에 이어지는 사건은 어떻게 되겠는지 뒷부분의 이야기를 이어서 써 보자.

예시 학생 활동 :

 편지를 부쳐야겠다고 생각하자, 막상 어디로 부쳐야할지 막막했다. 인숙의 학교를 떠올려보았지만, 편지를 받아볼 인숙의 당황해하는 얼굴이 생각났고, 인숙의 표정을 재미있게 주시하고 있을 학교의, 그렇고 그런 사람들 생각이 났다. 후배인 박 선생의 주소로 편지를 부치기로 했다. 박 선생이라면 내 사정을 충분히 이해해 주리라. 아마 내 편지로 인해 박 선생과 인숙이 가까워질 수도 있다는 엉뚱한 생각도 났다. 인숙이 서울로 떠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박 선생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 인숙을 붙잡을지도 모른다. 이제 결론을 내려달라고……. 당신이 무진을 떠나기 전에 뭔가 나에게도 말해달라고…….

 1년쯤 후에 서울의 내 직장에는 전화가 걸려 오겠지……. 결혼 날짜가 잡혔으니, 꼭 내려와달라고……. 꽃피는 무진에는 이제 안개가 걷혔노라고…….

(3) 편지를 찢는 장면으로 소설을 끝내는 경우와 편지를 보낸 이후의 이야기를 보탠 소설의 경우를 비교해 보고, 두 가지 방식으로 서술할 때의 장단점에 대해 토론해 보자.

예시 학생 활동 :

·학생1 : 편지를 보낸 이후의 이야기를 보태자면, 좀더 길어질 거야. 인숙과 주인공 사이의 관계는 어쨌든 지속될 것이고, 아마 박 선생과 인숙, 주인공과 박 선생 사이의 관계도 좀더 미묘하게 얽힐 듯 싶어. 그런데 인숙과 주인공의 관계가 진전되면 될수록, 젊은 시절의 사랑과 이상이라는 이 작품의 선명한 주제는 약해질 거야.

·학생2 : 편지를 부치지 못한 채 서울로 올라갔다가 아내가 그 편지를 우연히 읽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아내는 두 사람의 관계를 의심하고, 어쩌면 이 일로 인해 파경에 이를 수도 있다고 봐. 파경에 빠진 주인공이 우울한 마음으로 다시 무진에 오지. 그리고 다시 인숙과 만나 새로운 미래를 약속해. 이런 일도 가능할 듯 싶어. 물론 이를 다 표현하기 위해서는 중편 소설의 분량으로 늘어나긴 하겠지.



위대한 개츠비

 피츠제럴드(Fracis Scott Fizgerald, 1896-1940) : 미국 중서부 미네소타주에서 출생. 최초의 자서전적 장편 「낙원 이편에서」를 발표하여 일약 문단의 사랑을 받았다. 사치로운 성격으로 파티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단편을 발표. 최고 걸작은 '위대한 개츠비'로서, 시대의 풍속과 정신을 멋지게 표현했다.



줄거리

 제1부. 중서부 출신으로 증권업에 종사하기 위해 뉴욕으로 온 닉은 롱 아일랜드의 웨스트 에그에 셋집을 얻는다. 그의 바로 옆집에는 제이 개츠비라는 사람이 살고 있는데 여름 내내 수백명의 손님이 참석하는 화려한 파티를 벌이는 수수께끼같은 인물이다. 데이지 부캐넌은 웨스트 에그 건너편의 이스트 에그에서 엄청난 부자인 남편 톰 부캐넌과 살고 있다. 그녀는 닉의 육촌 동생이고 톰은 닉과 예일대 동창이다. 닉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데이지 집안과 교류를 시작하면서 조던 베이커라는 여자 골퍼하고도 사귀게 되고 옆집에 사는 개츠비의 파티에도 초대된다. 데이지의 남편 톰은 기차에서 만난 하류 계급의 여자 머틀과 불륜의 관계를 맺고 있다. 개츠비의 수수께끼같은 과거 때문에 그에 관한 여러 가지 소문이 무성하다. 개츠비와 점점 가깝게 지내면서 닉은 그가 데이지와 연인 사이였으며 전쟁에 나간 사이에 데이지가 부자인 톰과 결혼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5년동안 데이지만을 생각하며 재산을 모은 개츠비는 데이지를 만나려는 희망으로 그녀의 집이 보이는 곳에 집을 사고 언젠가는 그녀가 자신의 파티에 걸어들어오기를 바라면서 날마다 파티를 여는 것이었다. 닉은 개츠비의 부탁으로 데이지와 자연스럽게 만날 기회를 만들어주고 드디어 데이지도 남편 톰과 함께 개츠비의 파티에 참석하게 된다.

 제2부. 개츠비의 파티에 참석한 데이지는 개츠비의 재력과 그의 변함 없는 사랑에 빠져든다. 데이지의 남편 톰은 아내와 개츠비와의 사이를 불쾌해 하면서 개츠비의 뒷조사를 한다. 데이지는 개츠비와 닉과 조던을 자기 집으로 초대한다. 데이지는 점점 노골적으로 개츠비와의 사랑을 과시하고 뉴욕에 놀러갈 것을 제안한다. 톰과 개츠비는 서로의 차를 바꿔 타고 뉴욕으로 향한다. 톰은 도중에 기름을 넣기 위해 머틀의 남편 윌슨이 운영하는 주유소에 들렀다가 그들이 서부로 이사할 것이라는 얘기를 듣는다. 뉴욕의 한 호텔에 도착한 네 사람. 5년의 세월이 만들어낸 데이지와의 간격에 조바심을 느낀 개츠비는 과거로 되돌아가기를 바라면서 데이지가 톰을 사랑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고 말하도록 강요한다. 분위기가 격해지면서 데이지와 개츠비는 먼저 호텔을 나와 집으로 향한다. 개츠비의 차를 운전하던 데이지는 톰이 운전하는 줄 알고 뛰어나온 머틀을 치어 숨지게 하고 그대로 달아난다. 데이지를 위해 자신이 운전했다고 말을 하는 개츠비. 머틀의 남편 윌슨은 개츠비를 찾아와 그를 권총으로 쏴 죽이고 자신도 자살을 한다. 그리고 데이지는 남편 톰과 골치 아픈 일에서 도망치듯 여행을 떠난다. 개츠비의 장례식에는 그동안 그 집을 드나들던 수백 명의 사람들 중 단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는다. 개츠비가 그토록 사랑한다고 믿었던 데이지는 찾아오기는 커녕 꽃 한 송이도 보내지 않는다. 그녀 하나만을 되찾기 위해 5년 동안 온갖 방법으로 그 꿈을 좇아온 개츠비. 개츠비의 허무한 죽음과 쓸쓸한 장례식을 지켜 본 닉은 동부에서의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위대한 개츠비 

남의 잘잘못을 따질 때는 언제나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너처럼 좋은 환경에서 자라지 못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는 오히려 누군가가 마음속의 비밀을 털어놓을 것 같은 기색이면 잠이 든 체하거나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젊은이들의 은밀한 고백이란 적어도 그 표현법에 있어서만큼은 남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하거나 심리적인 부담 때문에 횡설수설하기가 십상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어떠한 의견표명도 삼가고 있다는 것이 상대에게는 무한한 희망을 주기도 하는 모양이다.

인간의 행위 가운데는 단단한 바위에 뿌리를 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질퍽한 늪에 근거를 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어떤 행위가 그 한계를 넘어서게 되면 나는 그것이 어디를 기반으로 한 것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의 내 생활에서 이러한 것들을 되살려 전문가 중에서도 모든 학식을 고루 갖춘 이른바 '박식하고 원만한 사람'이 되어 볼 작정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바람이 아니다. 결국 인생이란 하나의 창으로만 내다보는 사람이 훨씬 성공하기 쉬운 법이니까.

혹시 일 년 중에서 낮이 가장 길다는 그날을 기다리다가 막상 그날이 오면 깜빡 잊고 지나쳐 버린 일이 없어요? 난 말예요. 항상 그날을 기다렸으면서도 그만 그날을 지나쳐 버리지 뭐예요.

그들은 곧 저녁식사도 끝이 날테고 이 밤 또한 여느날처럼 평범하게 끝을 맺게 될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이것이 동부와 서부의 다른 점이었다. 이곳에서의 저녁시간은 실망할 것이라는 예감이 하염없이 밀려오거나 혹은 긴장된 두려움 속에서 쫓기듯 지나가 버리고 만다.

간호사가 딸이라고 하더군요. 전 얼굴을 돌리고 울고 말았어요. 그리고 이런 생각을 했지요. '좋아, 딸이라서 다행이야. 바보같은 아이라면 좋겠어. 그게 이 세상에서 여자가 될 수 있는 최상의 것이니까. 예쁘게 생긴 바보아이.' 전 이 세상 모든 일이 끔찍하게만 느껴져요.

"정말 놀라운 일이에요."

그녀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되풀이해서 말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벌써 당신의 궁금증을 부추기고 말았군요."

마법에 걸린 듯한 대도시의 황혼 무렵이면 나는 종종 떨쳐버릴 수 없는 외로움에 휩싸이곤 했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거리를 서성이며 혼자만의 저녁식사를 위해 너절한 식당으로 들어갈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가난한 사무원들 - 어둠 속에서 밤과 인생이라는 가장 황홀한 순간들을 헛되이 낭비하고 있는 젊은 사무원들에게서 나는 그것을 느꼈다.

그녀는 세상의 도덕적인 규범에서 벗어난 행동 같은 것은 절대 저지르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 틈에서 살아가는 편이 안전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녀의 솔직하지 못한 성격은 고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불리한 입장에 놓이게 되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최소한 기본적인 미덕 중 한가지쯤은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나의 미덕은 이것이다. 즉, 지금껏 보아 온 얼마 안 되는 정직한 사람 중의 한사람이 바로 나라는 것이다.

술꾼들과 어울리면서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건 여러모로 유리하거든요. 술을 마시지 않으면 지나치게 말을 많이 할 필요도 없고 흥에 겨워 정도가 지나치는 일이 있더라도 남들이 술에 취해 눈뜬 장님이나 마찬가지니 안심이죠.

세상에는 쫓기는 자와 쫓는 자, 분주한 자와 지친 자가 있을 뿐이다.

그는 창조적인 정열을 기울여 자기 환상 속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환상을 키워 나가며 자기멋대로 찬란한 깃털로 장식해버렸던 것이다. 아무리 뜨거운 정열이나 순수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한 남자가 자기 가슴 속에서 키워온 환상을 만족시킬 수는 없는 법이다.

나는 그 파티를 데이지의 눈을 통해 새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껏 자신의 시각으로 보아온 사물을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새롭게 본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이곳 사람들이 쓰고 있는 말투 속에 살아 꿈틀거리는 생명력과 결국에는 무로 돌아갈 인생인데도 기를 쓰며 경쟁하고 있는 이곳 사람들의 강한 힘 같은 것 따위에서 느끼게 되는 두려움이었다. 그녀는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 단순함 앞에서 어떤 무서운 힘을 느꼈던 것이다.

나는 그의 얘기를 들으며 그가 데이지를 사랑하면서 갖게 된 그 무엇인가를 되찾으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아마 자신에 대한 어떤 신념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인생은 그때부터 엉망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는 예전으로 되돌아가 그것을 되풀이할 수만 있다면 자신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이었는지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단순한 사람에게 닥친 혼란처럼 혼란스러운 것도 없다. 톰은 차를 몰면서 심하게 채찍질을 당하는 듯한 초조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한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이 아내와 정부는 모두 그의 손 안에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두사람 다 그에게서 벗어나려 하고 있지 않은가?

"아, 당신은 내게 너무 많은 걸 원하고 있어요!"

"난 지금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그거면 충분하지 않나요? 지난 일은 어쩔 수 없다구요!"

"한때는 저 사람을 사랑했어요. 하지만 당신도 사랑했어요."

서른살! 그것은 독신인 남자가 알아야 할 일들의 목록은 얇아져가고, 정열이 든 가방의 부피도 줄어들고, 머리숱도 옅어져갈 고독한 10년을 예고하는 나이다.

그는 아마 자신의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을 다 얻고 나면 떠나버릴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어느덧 성배를 찾아 헤매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데이지가 특별한 여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여자가 얼마나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는지는 몰랐던 것이다.

내가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차라리 그녀가 나를 버려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나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녀 또한 나를 사랑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녀는 자기가 모르고 있던 것을 내가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그 사람들 전부를 합한 것보다 더 가치있는 사람이오!"

나는 그때 그렇게 말했던 것을 지금까지도 기분좋게 생각하고 있다. 그것이 내가 그에게 보낸 유일한 찬사였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구체성을 띠고 있는 별개의 세계였다. 그 곳에서는 공기를 마시듯 꿈을 들이마시는 유령들이 그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유령들은 일정한 형체도 없는 나무들 사이를 미끄러지듯 지나 그에게로 다가온다. 마치 인간의 모습을 한 잿빛 그림자처럼.

그날 오후 형사로 보이는 남자가 윌슨의 시체를 살펴보면서 '미친 놈'이라고 했는데 그의 말은 이튿날 아침 신문에 그대로 실렸다. 신문에 실린 기사는 대부분 악몽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상야릇하면서도 아주 상세했지만 대부분은 진실과 거리가 멀었다.

나말고는 그 누구도 그에게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구든 최후를 맞이했을 때에는 주변사람들로부터 막연하나마 관심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개츠비에게는 그런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우정은 죽은 다음이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에 베푸는 것이라는 걸 이해해주었으면 좋겠소."

"그 다음엔 모든 것을 모르는 척하고 내버려두는 게 내 삶의 원칙이오."

톰도 개츠비도 데이지도 나도 저던도 모두 서부출신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동부에서의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공통된 결함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동부가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을 때에도, 오하이오 강너머로 지루하게 뻗어 있는 도시들보다는 동부가 훨씬 낫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에도 나는 동부가 어딘지 왜곡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특히 웨스트에그는 지금까지도 내 악몽 속에 나타난다.

"당신은 운전이 서툰 사람은 운전이 서툰 다른 사람을 만날 때까지만 안전하다고 했어요. 그렇다면 전 당신처럼 운전에 서툰 또 다른 사람을 만난 셈이지요. 제가 이런 억측을 하는 건 생각이 깊지 못한 때문인지도 모르죠. 저는 당신이 정직하고 꾸밈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당신의 매력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내 나이 벌써 서른이오. 나 자신을 속여가며 그걸 명예라고 생각하기에는 나이가 다섯 살이나 더 먹었소."

톰과 데이지는 정말 무책임한 인간이었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뭐든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자기들은 돈이나 자신들의 부주의 또는 자신들을 묶어 두는 것이라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그 속으로 숨어버리는 인간이었다. 자신들이 저지른 일의 뒤처리는 전부 남에게 맡겨둔 채 말이다.

개츠비는 해가 거듭될수록 우리 앞에서 멀어지고 있는 녹색 불빛의 존재를 , 그 격정의 미래를 굳게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이미 우리들의 손안에서 빠져나갔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내일 우리는 더 빨리 달려가 길게 팔을 내뻗을 것이기에, 그 어느 해맑은 날 아침에...

이렇게 우리는 물살에 휩쓸려 과거로 떠내려가면서도 노젓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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