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 해설 / 박완서
by 송화은율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 박완서
갈래 : 장편 소설, 가정 소설
작가 : 박완서(1931∼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성격 : 비판적, 사실적
배경 : 6·25 전쟁과 그 이후의 한국 사회
제재 : 이산 가족의 아픔, 이산가족의 가족사(家族史)
주제 : 전쟁과 분단으로 겪게 된 이산 가족의 고통, 중산층의 허위 의식에 대한 비판
특징 : 섬세한 심리 묘사, 사회 역사적 사실의 적극적인 형상화, 속물적 인간 군상에 대한 예리한 포착
분위기 : 중산층의 허위 의식을 섬세하게 파악하고 유려한 필치로 그려내는 고백적이고 여성적임
출전 :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1983)
구성 : 5단 구성 또는 4단 구성(절대적이 아니니 5단이니 4단이니 하는 말에 신경 쓰지 말 것).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건이 전개되는 추보식 구성, 복합 구성
인물 :
수지 : 1·4후퇴 때 여동생을 내버린 후 자신의 행위가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며 가장과 허위 의식 속에 살아가는 인물이다.
오목이 : 본명은 수인으로 수지의 여동생이다. 고아원을 거쳐 양녀로 입양되지만 자신이 이용되는 것이 싫어 뛰쳐나온다. 이후 수지의 가난한 옛 애인인 인재로부터도 버림을 받고 같은 고아원 출신이자 보일러공인 남편 일환을 만나 2남 3녀의 어머니가 되기까지 모진 고생을 하다가 결핵으로 죽는다.
수철 : 수지의 오빠로 가장의 역할을 하며 수지를 시집까지 보낸다. 익명으로 오목이를 후원하지만 자기 가정의 평온을 위해 그녀의 삶을 끝까지 외면하는 위선적인 인물이다.
줄거리 : 6·25 전쟁의 와중인 1951년 겨울, 1·4 후퇴의 경황없는 와중에 수지는 일곱살 된 여동생 수인을 고의로 놓친다. 아버지를 잃어버리고 어머니 또한 비행기의 기총소사로 죽게 된다.
아버지가 남긴 부동산 덕분에 수철은 어엿한 중산층의 가장이 된다. 수지는 대학원 졸업식 날 중매로 만난 좋은 조건의 청년과 결혼하게 된다. 수지는 오목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동생을 비밀리에 수소문하고 어느 고아원에 같은 이름의 소녀가 있음을 알고는 가끔 찾아 간다. 하지만 그 애가 오목이로 밝혀지면서 동생을 버렸다는 죄책감과 잃어버렸던 혈육을 찾았다는 반가운 마음이 앞서지만, 지난날 자신의 마녀 같은 행위가 들통 날 것이고, 자신의 삶의 축은 꺾일 것이라는 생각으로 진실을 밝히려 하지 않는다. 오빠 수철도 오목의 가족 찾기 신문 광고를 통해 그 고아원을 알게 된 후, 오목을 도와주며 일자리를 소개시켜 주는 익명의 독지가로만 남는다.
수지는 가난한 옛 애인인 인재와 오목이 만나는 광경을 목격한 날, 오목에 걸린 은표주박 노리개를 보게 된다. 수지는 질투심으로 인해 둘 사이를 잔인하게 갈라 놓고 오목은 결국 고아원 친구인 보일러공 일환과 살게 된다. 지하방을 얻어 신방을 차린 오목은 인재의 아이인 일남을 낳게 된다. 남편에 대한 오목의 죄책감과 일환의 사이에는 결국 술과 폭력과 고통의 나날만이 이어지게 된다.
세월이 흘러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된 수지는 고아원 자선 활동 등을 하는 위선적이고 정치적인 귀부인이 된다. 집 보일러를 수리하는 과정에서 이남 삼녀의 부모가 된 일환과 오목을 만나게 된다. 오목이가 너무 가난한 데다 자식이 다섯이나 되어 자기가 친언니라는 것이 밝혀지면, 뒤치다꺼리를 맡아야 될 것이라는 현실적인 걱정 때문에 자신이 친언니임을 밝히는 일을 주저하다가 서로 친자매임을 알게 된 오목은 수지에게 일환이 중동 건설 현장에 나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하고 수지는 일말의 죄책감을 씻는다는 생각으로 오빠 수철을 통해서 일자리를 얻어낸다. 일환이 중동으로 떠나는 날 오목은 결핵으로 쓰러진다. 오목이는 긴 가난과 질병 끝에 자식을 맡기고 죽음을 맞이하는데, 그녀는 마지막 순간에 수지에게 감사의 표시로 은표주박을 건넨다. 그 순간에야 수지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수지는 그 옆에 무릎을 끓고 참회하지만 오목이는 이미 죽어 있었다.
(전략)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과 동화될 수 없는 차이점은 이제 그녀 내부에 있었고 그건 근심이었다. 한번도 근심이라곤 깃들어 보지 않은 것처럼 오로지 즐겁기만 한 사람들 속에서 그녀 혼자 크나큰 근심을 지니고 있었다.
수지는 오빠를 찾아온 게 바로 그 근심을 나누기 위해서였다는 걸 잊어 버린 양 그 근심에 강한 애착을 느꼈다. 그 근심을 수철에게 나누어 준다는 건(수철과 상의하는 것) 돼지에게 진주(값어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보물도 소용이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수지는 근심을 나누려고 오빠를 찾아왔으나 그것이 무의미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를 던져 주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이라는 극단적인 격정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그녀는 속으로 허둥지둥 그녀의 근심을 부둥켜안았다. 자신이 품고 있는 근심에 대한 이런 돌발적인 애착은 근심 없는 사람들을 경멸하는 마음까지 불러일으켰다. 근심 없는 사람들이 허깨비처럼 텅 비어 보였다. 즐거운 파티도 사람들이 몽땅 비워 놓은 자리에 아름다운 비단과 현란한 보석과 이국적인 훈향과 감각적인 소문만이 한데 어울려 들끓고 있는 것처럼 헛되고 허전해 보였다.(이 부분은 수지가 동생으로 인한 내면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말하며 이 심경적 변화는 자신이 속해 있던 계층에 대해 회의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너덧 패로 나누어져 있던 사람들이 여자 남자 두 패로 갈라져서 웃고 떠들기 시작했다. 여자들 사이에선 지압이 과연 기적의 회춘(① 봄이 다시 돌아옴. ② 중한 병에서 회복되어 건강을 되찾음. ③ 도로 젊어짐. ④ 노년기, 장년기의 하천이 다시 침식력을 회복하여 하저(河底)를 침식하고 유년기의 성질을 띠는 현상으로 여기서는 ③의 의미에 해당함)요법인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고(시끄럽다, 뒤숭숭하다, 어수선하다), 남자들은 그들이 현재 속한 신분보다 한층 높은 곳을 움직이는 인맥에 대해 아는 체하고 분석하느라 점차 목청이 높아졌다.(개인적인 외모와 일신의 영달과 이익 추구에만 관심을 갖는 중산층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남자들의 화제는 단연 수철이, 여자들의 화제는 영란이 리드하고 있었다.
수지는 수철의 점잖고 정력적인 뒤통수를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그는 기억할까? 천구백오십일 년의 겨울을, 그 겨울의 추위와 그 이상한 허기를.(동생 오목이를 버리게 된 주된 이유는 피난 중의 배고픔이었다. 허기 들린 귀신처럼 수지와 수철이의 밥마저 빼앗는 동생의 모습을 보며 수지는 그녀를 떼어버릴 것을 다짐했었던 것이다. 이 작품은 박완서의 많은 작품 중에서 중산층의 허위 의식을 고발하는 작품이라고 흔히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중산층의 단순한 이기적 발로라고 보기에는 아쉬운 점이 있다. 옛날 동생과 헤어지게 된 계기는 인간의 원초적 이기심과 사악함에 근거한 발로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 당시 동생을 버린 행위 자체는 단지 인간적 본능에 충실했던 것 뿐이지 다른 의도는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나중에 동생과 만나서 모른 체했던 일련의 행동들이 중산층의 이기적 발로라고 해석하기에는 미흡하다는 생각이다.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 없이는 왜 동생을 그렇게 모른 체하고 죽음에 이르게 했는가를 생각해 보게 만드는 부분이다.)
그 생각은 수철이 낯설게 느껴질 때마다 수지에게 문득문득 떠오르던 의문이었다. 그리고 그 대답은 늘 부정적이었다. 그에게 그것을 기억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알고도 모르는 척할 것이라는 음흉한 의심까지 없었던 건 아니었다. 수철을 자신에게 이로울 게 없는 기억에 대해선 얼마든지 시치미를 뗄 수 있는 위인이라고만 생각했지 그것을 정말 잊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러나 파티의 사람들을 보고 있는 사이에 수지는 수철이 그것을 정말 잊었다는 것을 스스로 알아차렸다. 수철이뿐 아니라 거기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천구백오십일 년의 겨울은 있지도 않았다는 걸 수지는 다소곳이 인정했다.[수철이뿐 - 다소곳이 인정했다. : 부와 명예만을 추구하며 주어진 현재의 삶에만 몰두하는 소시민들과는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분단과 이산 가족 등 6·25 전쟁의 상처와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없음을 수지가 깨닫게 된다는 의미이다.)
그 겨울은 결국 나만의 것이었어. 그 겨울이 없었던 사람하고 어찌 그 겨울의 죄과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랐던고.
수지는 처음으로 그 겨울에 저지른 죄와 그 죄의식(전쟁 당시 어린 수지는 동생 수인 즉 오목을 놓치게 된다. 우연히 수인을 다시 만나게 되면서 수지는 지난날 동생을 버렸던 죄의식에 사로 잡히게 된다) 때문에 떠맡게 된 온갖 근심을 자기만의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것이 자기만의 것이라고 생각되자 근심조차 소중했다. 마치 자기만의 진실인 양 그것을 조금만 덜어내도 담박 삶이 떳떳치 못해질 것 같았다. 그녀는 그 순간 뼈가 시리게 고독했지만 떳떳했고 떳떳하다는 느낌은 그지없이 좋았다[그녀는 그 순간 뼈가 시리게 고독했지만 떳떳했고 떳떳하다는 느낌은 그지없이 좋았다 : "아물었으되 피 흘리고 있음을, 딱지 앉았으되 곪고 있음을, 잘 차려 입었으되 벌거벗었음을, 춤추고 있으되 몸부림치고 있음을, 보고 느끼고 말하는 게 문학이 숙명처럼 걸머진 형벌이자 자존심이라면 저도 잠시 한낱 비통한 가족사를 폭로한 것 같은 수치심에서 벗어나 제 선배 수상자들이 그랬듯이 이 상 앞에서 늠름해지고자 합니다"는 '박완서'의 '엄마와 말뚝'으로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밝힌 연설 소감이다. 그 수상 소감 중 '아물었으되 피 흘리고 있음을'과 의미가 상통함. 가난하고 병든 오목이의 언니라는 사실을 밝히기를 꺼려했던 수지의 속물성이 완전히 사라지고 오목과 겪은 전쟁 때의 아픈 경험의 기억, 가족주의를 회복함으로써 수지는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 파티의 즐거움이나 그녀가 여태껏 살아오면서 맛본 어떤 행복감보다도.
화장실 쪽으로 가던 흰머리가 수지를 보자 깜짝 놀라면서 한마디했다.
"충격입니다. 참으로 충격입니다."
"뭐가요?"
"글쎄요, 거기까지밖에 생각이 안 나네요."
흰머리가 어릿광대처럼 얼굴을 우수꽝스럽게 쭈그려뜨리고 말했다. 수지는 너그럽게 웃어줬다. 흰머리는 화장실 쪽으로 비틀대며 달려갔다.
수지는 흐느적대는 파티의 환락을 바라보면서 거기 충격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이미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건망증은 그렇게 확고해 보였고 순간의 환락은 기승(氣勝)스러웠다(남에게 굽히지 않아 굳세고 억척스럽다.).
수지는 더운 음식이 있는 테이블로 살금살금 걸어가 검고 윤기 나게 졸아붙은 갈비를 듬뿍 덜어왔다.
"먹어 둬야 돼. 곧 어려운 일이 닥쳐올 테니까."(1951년 겨울의 추위와 그 이상한 허기를 생각하며 당시에 벌어진 모든 일들에 대한 기억과 그에 대한 죄의식을 자신만의 것으로 떠안으려는 수지의 의지가 무의식적인 행동으로 형상화되고 있는 장면이다.)
수지는 부드럽게 익은 갈비를 손가락으로 쥐고 뜯으며 이렇게 중얼댔다.
무언가 부족한 걸 발견하고 부엌 쪽으로 가던 영란이 한쪽 구석에서 갈비를 아귀아귀 뜯고 있는 수지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멈춰 섰다. 그러거나 말거나 수지는 천천히 양념이 묻은 손가락을 깨끗이 핥았다.
"고모, 도대체 뭐 하는 거예요? 고모답지 않게 그게 무슨 청승이에요, 창피하게시리…… 파티에 참석하고 싶으면 샤워하고 옷 갈아입고 나와요. 내 옷 빌려줄 테니까 옷장에서 마음대로 골라 입어요. 참석하기 싫으면……."
영란이 말끝을 흐리며 눈썹을 우아하게 찡그렸다.
"갈게요, 언니."
수지는 오목이의 다섯 아이 중 둘이나 셋쯤을 나눌 수 있기를 기대했던 자신의 마음이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했다. 수철이가 맡는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떠맡아 양육할 사람은 영란인데 영란에게 그 아이들을 돌보게 한다는 건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는 일이었다.
맡기고 돌보게 하는 건 고사하고 그 아이들을 천인이나 거러지(거지의 방언) 대하듯 바라다볼 영란의 교만하고 정 없는 시선 앞에 그 아이들을 잠시 내보이는 것조차 단연코 허락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생각만으로도 그 아이들에 대한 최악의 모독이었다.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지 뭐야."
수지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대며 마치 그 아이들이 그 앞에 있는 양 허둥지둥 영란의 시선을 피해 그 아이들을 치마폭 가득, 품속 가득 껴안았다(동생 오목이의 아이들을 껴안으면서,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오목이에 대한 가슴 깊은 사랑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마음 속으로 껴안은 그 애들의 체온은 생생하게 따뜻했고 가슴 찐하도록 사랑스러웠다. 남의 자식을 그렇게 찐한 마음으로 안아 보긴 처음이었다.
영란의 시선을 그 아이들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모독이라고 느낀 순간부터 수지는 더 이상 그 아이들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속일 수가 없었다. 사랑하고 예뻐하고 책임까지 지고 싶은 마음은 아직도 좀 생소했지만 이기의 껍질로 더 이상 싸놓을 수 없을 만큼 싱싱하고 힘센 용트림을 하고 있었다(이기의 껍질로 - 용트림을 하고 있었다 : 수지는 사회의 중산층으로서 그동안 쌓아 놓았던 자신의 부와 체면 때문에 동생 오목이를 모른 척하고 지냈다가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그 이기심을 포기하자 그동안 좋아하지 못했던 오목이의 다섯 아이를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이 솟아났다.). 그 계집애들을 지겨워한 것조차 사랑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친정집에다 다섯 아이 중 몇을 덜기는커녕 행여나 하나라도 놓칠세라 치마폭 가득 품속 가득 껴안고 수지는 병원으로 달음질쳤다. 더 늦기 전에 오목이에게 자신의 모습을 자랑하고 싶었다. 용서를 빌기 전에 자랑 먼저 하고 싶었다. 베풀어진 은총처럼 마음 속의 다섯 아이가 그녀를 기쁨으로 가득 채웠다.
병원에선 오목이의 임종이 임박해 가족을 찾고 있었다. 주사로 임종을 잠시 유예(猶豫)하고 있는 상태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오목이의 의식은 또렷했고 표정은 해맑았다.
"아아, 언니! 언니, 어디 갔었어? 못 보고 죽을까 봐 얼마나 조바심했는 줄 알아.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거든. 진작 할 걸 왜 여태 참었나 몰라. 죽을 때까지 나 미련한 건 하여튼 알아줘야 한다니까."
오목이는 마지막으로 재미있는 농담이라도 한 것처럼 장난스러운 미소를 띠고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는 숲 속 길을 거닐 때 문득 옷소매를 스치고 나무들 사이로 도망치는 미풍이나 환청처럼 인간적인 애증과 갈등이 남김없이 걸러진 고요하고 무심한 것이었다.
그런 오목이의 목소리는 죽음에 끝까지 따라다니는 설마 하는 비현실감을 단숨에 몰아냈다. 그리고 죽음을 직시해야 하는 일을 피할 수 없게 됐다는 크나큰 두려움이 수지를 엄습했다. 수지는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오! 오목아, 나야말로 할 얘기가 있었는데, 진작 했어야 하는 얘긴데 왜 여태껏 못했나 몰라. 미련하게시리……."
"언니, 내가 먼저야."
오목이가 섬뜩하도록 강경한 목소리로 말하면서 믿을 수 없을 만큼 바싹 마른 팔로 허공을 휘저었다.
"언니, 내가 언니를 얼마나 싫어했는지 언니는 아마 모르고 있었을 거야. 고아원에서 처음 언니를 만났을 때부터 난 언니가 싫었어(오목이 수지를 다시 만나게 된 고아원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수지의 행동이 가식적이고 위선적임을 느끼고 쌀쌀하게 대했었다.). 왜 그렇게 미웠는지, 아마 질투였나 봐. 언니, 제발 용서해 줘. 일생에 누굴 그렇게 미워해 보긴 언니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어."
"난 미움 받아 싸단다. 난 널 용서할 자격도 없어. 아아, 내 죄(이기로만 살아 온 삶, 내가 너를 몇 번이나 버린 줄 아니?)를 네가 안다면……."(난 미움 받아 - 네가 안다면 : 동생을 버린 자신의 이기적인 모습이 폭로될 것만 같은 두려움에 휩싸여 가면을 쓰고 살아왔던 나날이 결국 오목의 죽음 앞에서 흔들리고 무너져 내리게 된다.)
"언니, 내 말 안 끝났어. 내 말 먼저 할 테야. 나에겐 시간이 없으니까. 근데 언니, 내 미움은 참 이상해. 내가 남을 내 마음처럼 믿고 의지하기도 언니가 처음이었으니. 언니를 다시 만나기 전에 난 이미 죽었어야 했어. 막내 낳을 때 안 죽은 걸 의사는 기적이라고 말했지만 그 때 난 죽을래야 죽을 수가 없었어. 아이들을 어떡하구 죽냐 말야. 언니도 알다시피 우린 두 내외가 다 고아 아뉴? 다 망가진 몸을 정신력 하나로 살아 있다는 게 얼마나 고달픈 일인지 언니는 아마 모를 거야. 그 때 언니를 다시 만난 거야. 언니를 만나고부터는 정신력으로 살아 있는 그 지겹고 고된 일로부터 놓여날 때가 됐다 싶은 생각이 왜 그렇게 분명히 떠올랐을까. 참 이상해. 아무튼 자기가 죽은 후 자기 어린 자식들을 마음놓고 맡길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누구를 믿는다는 건 동기간에도 여간 우애 있는 동기간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난 하필 죽도록 미워하고 있다고 생각한 언니에게 그런 걸 느낀 거야. 언니, 언니에게 힘든 짐을 지워주려고 일부러 꾸민 얘기가 아냐. 꾸민 것처럼 이상한 얘기지만 정말이야. 자기 자식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을 만큼 남을 믿을 수 있다는 건 너무도 큰 은총이야. 언니 정말 고마워. 언니에 대한 내 믿음과 사랑과 감사의 표시로 언니에게 이걸 주고 싶었어. 이건 내 전 재산이자 내 모든 거야. 내가 죽는 날까지 알기를 그렇게 원했지만 결국 못 알아내고만 나의 정체까지도 아마 이 속에 포함되었을 거야. 내가 고아가 되기 전부터 내가 지녀온 유일한 물건이거든. 난 이걸로 내 정체를 어떻게든 건져 올려 보려고 무지 애썼지만 허사였어. 아아, 내 아이들……."
오목이가 천근의 무게처럼 힘겹게 건네 준 건 은표주박이었다(그 물건에 담긴 삶의 고통을 의미하는데, 은표주박의 노리개는 수지에게는 죄악의 씨앗이었고, 오목이에게는 불행의 시작이었다. 수지는 피난길에서 오목이에게 은표주박을 주어 헤어지게 된 이후로 위선이라는 가면을 쓰고 살아야 한다는 형벌을 받게 되고 오목이는 불행한 고아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은행알만하고 청홍의 칠보(七寶)무늬가 아직도 영롱한 은노리개였다. 수지는 벼락을 맞은 것처럼 공구(몹시 두려움)해서 풀썩 바닥에 무릎을 꺾고 그것을 받았다.(오목이가 - 그것을 받았다 : 죄악의 시작이었던 '은표주박'을 다시 건네받는다는 것은 수지가 앞으로 오목이의 아이들을 책임지고 길러야 하는 형벌, 즉 참회의 시간을 죽는 순간까지 받아야 함을 암시한다. 또한 이 소설에서 오목의 장남인 일남이와 수지의 두 아들이 함께 장난치고 어울리는 모습이 평화롭게 묘사되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전쟁과 이기심과 무관심으로 이어진 이산의 아픔과 비극을 오목과 수지의 아이들 세대에는 더 이상 물려줄 수 없다는 지은이의 절실한 희망이 이 같은 결말을 남겼다고 볼 수 있다. 은노리개 즉 은표주박은 수지와 오목이가 헤어질 당시, 수지가 오목이에게 건네준 것이다. 수지는 오목이에게 은표주박을 건네줌으로써 오목이의 관심이 온통 은표주박으로 쏠리게 한 뒤, 피난민의 행렬 틈바구니에서 오목이를 잃어버리게 한다. 그러니까 일부러 오목이와 헤어지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징표인 은표주박을 받고 수지는 그동안 자신의 이기심을 일순가 무너뜨리게 된다.) 어쩌면 수지가 지금 꺾은 것은 무릎이 아니라 이기로만 일관해 온 그녀의 삶의 축이었다. 마침내 그것을 꺾으니 한없이 겸허하고 편안해지면서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다.
"오목아, 아니 수인아, 넌 오목이가 아니라 수인이야. 내 동생 수인이야. 내가 버린 수인이야. 내가 너를 몇 번이나 버린 줄 아니……?"
이렇게 목멘 소리로 시작해서 길고 긴 참회를 끝냈을 때 수인이는 이미 죽어 있었다. 그러나 수지는 용서받은 것을 믿었다. 수인의 죽은 얼굴엔 남을 용서한 자만의 무한한 평화가 깃들여 있었으므로.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분단 문제를 빼놓을 수 없고, 이 분단 문제는 이산가족이라는 문제와 늘 연관되어 왔다. 특히 1980년대의 이산가족 찾기 운동으로 인해 더욱 관심이 고조된 이산 가족의 아픔에 관한 이야기들은 소설 속에서도 나타났다. 소설가 박완서는 6·25를 몸소 체험하고 그 고통을 겪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더욱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산의 문제는 환상을 동반하고 있었다. 수십 년 동안 서로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마음의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지만, 현실 조건으로 그것을 받아들일 때는 인간적인 문제들이 생겨나고 그로 인해 갈등을 겪게 된다. 이러한 상처와 치유 극복의 현실적 어려움을 이 작품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다.
이 소설은 1982년 한 해 동안 한국일보에 게재된 연재 소설이다. 그러니까 1983년 한국 방송 공사에서 이산가족 찾기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박완서는 예언가적 비전을 가지고 이 소설을 통해서 이산가족 문제를 다루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 당시 이산(離散)가족의 만남에의 열망과 만남 후의 환희와 감동은 이산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소설을 혈연 관계만으로는 화해하기 어려웠던 이산 가족의 현실 문제를 다루었다. 열렬히 자신의 핏줄을 찾고자 하는 이산가족의 뒷편에는 일부로 외면하며 잃어버린 가족을 찾지 않은 사람들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실제 상봉한 이산가족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가족을 찾기 위해 이렇다 할 노력을 하지 않은 사람들도 상당수 있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들의 문제를 파헤침으로써 작가는 전쟁과 분단으로 인한 문제와 아울러 중산층의 허위 의식을 비판하고자 하였다.
소설 속에서 수지는 평소 탐욕스럽게 먹어대는 동생 수인이와 피난길에서 일부로 헤어지게된다. 그 증거는 동생이 그렇게 갖고 싶었던 은표주박을 순순히 내줌으로써 자기의 손에서 자연스럽게 떠날 수 있게 했다는 점과 전쟁 후 평소에 부르던 오목이라는 이름 대신 호적상의 이름 수인이를 내세워 동생을 찾았다는 사실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우연한 기회에 고아원에서 찾은 동생 수인이를 만났을 때도 혈육의 정보다는 자신의 애써 이룬 가정의 평화를 깨뜨릴까 두려워했다는 점은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서 드러내고자 했던 중산층의 가장된 허위 의식이다. 중산층으로 살아가는 수지가 자신의 이기심과 개인주의로 인해 빈민층 사이에 있는 심연을 뛰어넘지 안고 자신들만 위해 살았기 때문에 분단의 고착화와 이산가족 간의 진정한 화해 가 이루어지지 못했음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출전 : 김병국 외 4인 공저 한국교육미디어 문학)
이해와 감상1
- 작가의 말로 보는 이해와 감상
발단은 1·4후퇴에서 비롯됐지만, 내가 그리고자 한 것은 전쟁의 비극이 아니라 풍요의 비극이었다. 폐허에서 떨치고 일어나 60년대의 악착같은 생존 경쟁, 70년대의 기적적인 경제 성장을 거쳐 80년대의 국민의 반수 이상이 중산층을 자처하게 된 안정과 풍요가 얼마나 냉혹한 이기심과 배타성을 가지고 있나를 보여 주고자 했을 뿐이다. 나는 수지를 조금도 특별한 악인이라고 여기지 않았고 중산층 이상의 안이하고 우아한 생활이 보편적으로 함유하고 있는 악을 보여주고자 했을 뿐이다.
<중략>
물론 대부분의 이산가족은 피난을 따로 나오거나 피난 도중 잠깐의 부주의로 헤어진 경우였다. 그렇더라도 그들의 너무 오랜 헤어짐에 그들이 잘못이 조금도 없었다고 할 수 있을까. 만나서 감동하고 눈물을 흘리고 혈연임을 확인하는 것만으로 가족이나 친척이 될 수 없다.
가족이나 친척은 혈연 관계인 동시에 오랫동안 서로 공들인 관계다. 헤어져 산 일이 없는 가족이나 친척도 가진 것의 차이나 생각의 차이로 결속이 불가능해지고 반목까지 하게 되는 것을 우리는 너무 많이 보아왔다. 특히 가진 것의 차이는 이산가족이 다시 가족이나 친척으로 맺어지는데 가장 큰 장애 요인이 되리라.
이 소설에서 이데올로기가 갈라놓은 것 못지 않은 완강한 힘으로 잘살게 된 우리 사이를 갈라놓고 있는 풍요의 울타리, 안일주의의 무자비한 '모르는 척' 등을 집요하게 드러내 보인 건 작가의 몫이었지만, 독자의 몫은 그것을 넘어서 정말 있어야 할 삶의 모습을 꿈꾸는 것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게 나의 꿈이다. [출처 : <오늘의 역사·오늘의 문학> (중앙일보사, 1987)]
이해와 감상1
이 작품은 이산 가족의 아픔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전국을 눈물 바다로 만들었던 이산 가족 찾기 운동이 시작되기 직전에 신문에 연재되었던 작품이다. 따라서 어떤 비평가는 이 작품의 내용이 '예언자적 비전'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물론 우리 나라의 비극적인 근대사는 많은 이산 가족을 만들어 냈다. 일제 강점기가 끝나고, 6·25가 휴전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많은 가족이 이산의 슬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냉정한 시각에서 보면 사람들 사이의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어떤 불가항력적인 운명보다는 다분히 의도적인 회피 때문일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작품에서 수지와 수인의 이산(離散)은 급박스러운 전쟁 상황에서 비롯되기도 하였지만, 수지의 미묘한 경쟁심과 질투심, 이기심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작가는 전쟁과 분단으로 인해 겪게 된 고통, 중산층의 허위 의식을 주된 주제로 다뤄왔다. 이 작품 역시 전쟁으로 헤어져야 했던 자매의 이야기를 통해 전쟁이 가져다 준 상처에 대해 언급하면서도, 혈육마저 냉정하게 버리려는 중산층의 이기심과 허위 의식에 대한 비판을 바탕에 깔고 있다. 작가는 이를 통해, 중산층 특유의 이기심과 개인주의가 결국은 분단 상황을 고착화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주제 의식을 전하고 있는 셈이다.
박완서(朴婉緖,1931~) :
소설가. 경기도 개풍군 출생. 1950년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지만, 전쟁이 곧 터져 대학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고향도 잃었다. 약 20년이 흐른 뒤 '나목'으로 문단에 등단. 박완서의 소설은 전쟁과 분단으로 말미암은 가족사적 불행 체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 산업화로 인해 등장한 중산층의 이기심과 허위 의식을 보여 주는 소설 등으로 나뉜다. 작품에 '도시의 흉년' , '엄마의 말뚝' , '그 많던 싱아는 다 어디로 갔을까' 등이 있다.
박완서의 작품 세계
첫째, 전쟁과 분단을 통해 겪었던 가족사적 불행을 그려낸 것이다. 실제 박완서에게 전쟁은 숙부와 오빠를 앗아간 상실의 시기였다. 북쪽에 고향을 둔 한 가족사의 특수성을 이 민족과 시대의 특수성에서 유려(流麗)하게 파악함으로써, 소설 속의 인물의 특성을 시대적 특성으로 이끌어 내었다. 이러한 이유로 그의 소설은 추상적이지 않고 실제적인 분단 문제를 바라보게 하였다. 이러한 작품으로는 '나목(裸木)', '엄마의 말뚝',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등이 있다.
둘째, 그의 작품에서는 물질 만능주의 삶 속에서 팽배해진 중산층들의 도덕성을 문제 삼았는데, 특히 그들의 이기적이며 물욕적이고 허위 의식에 사로잡힌 점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1970년대 산업화로 인해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졌지만, 그 내면은 더 황폐해지고 조잡해지고 말았다. 이에 해당하는 작품에 '지렁이 울음 소리', '휘청거리는 오후' 등이 있다.
셋째, 여성 문제도 다루어 대체로 결혼과 이혼 등의 문제 의식을 중심으로, 여성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살아있는 날의 시작' 은 가부장제의 사회 질서에 길들여진 문청희라는 인물이 남편의 억압에 얼마나 눌려 사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결국 문청희는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함으로써 구조화된 불평들을 청산하고자 한다. 그 밖에도 '서 있는 여자' ,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등이 이에 속한다.
더 읽을 거리
박완서, '나목'
줄거리 :
6.25 전쟁 중에 미군 PX 초상화 가게에서 일하던 이경은 불우한 화가 옥희도를 만난다. 당시 이경의 어머니는 전쟁 중에 죽은 두 아들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으므로 이경은 이 암울한 분위기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이때 옥희도의 눈에서 '황량한 풍경'을 보고 그에게 끌리게 된다. 두 사람은 명동 성당과 장난감 침팬지가 술을 따라주는 완구점 사이를 다니면서 사랑을 나누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진짜 화가가 되고 싶어했던 옥희도가 가게에 나오지 않자 이경은 그의 집에 찾아가 캔버스에 그려진 고목을 발견한다. 두 오빠에게 죄책감에 시달렸던 어머니가 죽자 이경은 태수라는 인물과 결혼하게 된다. 옥희도의 유작전(遺作展)에 갔다가 그때 그 그림이 고목이 아니라 나목이었음을 깨닫는다.
작품 해제 :
고목은 이미 성장이 멈춘 나무이다. 그러나 나목은 지금은 죽어있는 듯 보이나 봄이 되면 잎이 돋아나고 꽃을 피울 수 있는 성장 가능성을 가진 나무이다. 6·25 전쟁 이후에 사회는 전쟁의 상처로 인해서 황량한 세계였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이경의 어머니는 잃은 두 아들로 인해 죄책감에 시달리고, 옥희도는 미군 PX에서 초상화를 그리며 생계를 유지한다. 황량한 정신의 소유자인 이들이 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고 성장할 수 있는 것은 그 가능성의 발견에서 시작하는데, 이것을 작가는 나목이라는 상징물로 그려냈다.
박완서, '엄마의 말뚝'
줄거리 :
이 작품의 연작은 모두 세 편으로 되어 있다.
연작의 첫 편은 고향인 박적골에서 남편을 여읜 어머니가 어린 오누이와 함께 서울로 옮겨와서부터 억척과 의지로 마침내 집 한 채를 마련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애초에 고향을 떠날 때의 거창한 포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사대문 밖 현저동 산꼭대기에 여섯 칸짜리 누옥을 장만한 어머니는 드디어 서울에 말뚝을 박았다고 감개무량함을 표현한다.
두 번째 편은 전쟁과 오빠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 해방 뒤 한때 좌익에 가담했다가 전향한 오빠는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하고 있는 동안 이웃의 고발로 끌려가서 의용군으로 입대한다. 그러다 1.4후퇴가 시작될 즈음 육신과 정신이 모두 망가진 오빠가 돌아온다. 시민증이 없는 오빠 때문에 피난 대열에 합류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인민군의 재입성을 앉아서 기다릴 수만도 없던 일가는 예전에 살던 집을 피난처로 정해 틀어박혔으나, 오빠는 결국 인민군에게 발각되어 죽임을 당한다.
연작의 마지막 편은 어머니가 아들과 마찬가지로 화장되어 강물에 뿌려지길 바랐던 당신의 소망과는 달리 서울 근교의 공원묘지에 묻히기까지의 이야기이다.
작품 해제 :
이 작품은 6·25로 인해 이산(離散)된 한 가족이 겪은 전쟁 당시의 상황과 현대의 서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리하여 분단의 비극이 아직도 우리의 삶 속에서 꺼지지 않은 불씨로 시퍼렇게 살아 있다는 점을 어머니의 정신 착란에서 끄집어내고 있다. 연작 중 '엄마의 말 뚝2' 에서 '말뚝' 의 의미가 드러나는데, '나' 의 말뚝은 가정이라는 울타리이고 '나'는 그 말뚝에 매여 자신의 인생을 찾을 수 없다. 이에 비해, 어머니의 말뚝은 죽은 오빠에 대한 애통함이다. 즉 '나' 의 말뚝보다 더 참혹한 것으로, 어머니의 말뚝은 바로 오빠에 대한 애정, 다시 말해 원한 맺힌 분단의 상처인 셈이다. 이렇게 6·25의 비극과 함께, 오빠라는 존재를 사이에 둔 모녀간의 오랜 갈등을 통해 그 상처가 삶 속에서 깊게, 지속적으로 덧나는 것을 보여 준다.그리고 그것의 근원적 치유는 결국 죽음이라는 형식을 기다릴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진심을 제시함으로써 인간의 존재의 심연을 나타내고 있다.
이해하기
1. 이 작품에서 주인공 수지가 친동생으로 밝혀진 오목이를 대하는 태도의 변화를 정리해보자.
교수·학습 방법 :
이 작품을 이해하는 큰 줄기 중의 하나는 중산층의 허위 의식을 폭로하고 비판하는데 있다. 수지는 중산층을 대변하는 인물로서 이기주의와 허위 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럼 인물이 오목이와의 만남을 통해 그리고 오목이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어떤 심정의 변화가 나타났는지 살펴보는 것은 중산층과 빈민층 간의 거리를 어떻게 좁혀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학생들은 수지의 오목이에 대한 태도를 표현한 문장을 찾아보고 그 표현 속에 담겨진 의미를 생각하도록 해야 한다.
예시 학생 활동 :
수지는 처음으로 그 겨울에 저지른 죄와 그 죄의식 때문에 떠맡게 된 온갖 근심을 자기만의 것으로 받아들였다. : 오목이에 대해서 죄의식을 느낌, 반성
수지는 오목이의 다섯 아이 중 둘이나 셋쯤으르 나눌 수 있기를 기대했던 자신의 마음이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했다. : 오목이에 대한 죄의 댓가를 오빠인 수철과 나누어지려다가 뉘우침, 의무감이 책임감으로 변함.
더 늦기 전에 오목이에게 자신의 모습을 자랑하고 싶었다. : 용서를 구하는 것이 기쁨이 됨.
2 이 작품을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는 근거를 찾아보자.
용래 : 이 작품은 전쟁과 이후의 분단 상황으로 인해 고통받는 이산가족의 문제를 다루고 있어.
여정 : 이 작품은 중산층의 허위 의식을 반영하고 있어.
교수·학습 방법 :
이 작품은 크게 두 가지 주제를 담고 있다. 전쟁과 분단으로 겪게 된 고통과 중산층의 허위 의식이 바로 그것이다. 전쟁은 국토를 분단해 놓았을 뿐 아니라 반쪽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계층을 다시 나누어 놓았는데 박완서는 이 점을 포착하여 전쟁이 분단한 중산층과 빈민층의 간격을 하나의 문제로 제기하고 있다. 이 두 부분을 포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살펴보는 데 이 문제의 의의가 있다. 그러한 근거들을 소설 본문에서 찾아보도록 지도한다.
예시 학생 활동 :
전쟁과 이후의 분단 상황으로 인해 고통받는 이산가족의 문제 : 수지는 처음으로 그 겨울에 저지른 죄와 그 죄의식 때문에 떠맡게 된 온갖 근심을 자기만의 것으로 받아 들였다.-> 전쟁으로 인해 헤어져야 했고, 헤어진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죄의식에 고통받아야 했던 이산가족들의 아픔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중산층의 허위 의식 : 수지가 지금 꺾은 것을 무릎이 아니라 이기로만 일관해 온 그녀의 삶의 축이었다.->허위 의식이란 겉과 속이 다른 모습이다. 수지는 자신이 그동안 일부러 몇 번이나 오목이를 외면했었는지 고백하면서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이었던 자신의 삶을 뉘우치고 있기 때문이다.
3. 이 작품을 읽고, 다음 내용을 추리해서 말해 보자.
교수 학습 방법 :
현대 소설의 특징은 세세한 부분까지 독자를 위해서 설명해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머지 부분들은 독자들이 각자의 상상력으로 채워넣는 것이다. 박완서의 소설도 마찬가지로 핵심적인 부분들을 정확하게 드러내지 않고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이 소설에서 수지가 가지고 있었던 근심과 수지가 오목이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어했던 말들이 이에 해당한다. 따라서 학생들의 답은 논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한 답이 될 수 있다. 답은 여러 가지 가능성으로 열려 있다.
(1) 수지가 오빠를 찾아가서 나누고자 했던 '근심'의 내용
예시 학생 활동 :
근심의 내용은 표면적으로 자기들의 친동생인 오목이가 죽어간다는 것과 오목이가 남겨놓은 다섯 명의 자녀들의 양육 문제이다. 그 이면에는 그동안 수지가 중산층으로서 잘 살아오면서 동생이 어렵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도 돕지 못했던 죄의식과 6·25 전쟁 당시 일부러 자신이 동생을 잃어버리고서도 나중에 다시 동생을 만난 후에도 자신이 언니임을 밝히지 못한 것을 죄책감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러한 근심을 오빠 수철과 나누고자 했다.
(2) 수지가 오목이에게 말하고자 했던 내용
예시 학생 활동 :
수지는 오목이에게 용서를 구하기에 앞서 자랑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 자랑을 하고 싶어했던 내용은 자신이 그동안 중산층의 허위 의식에 사로잡혀서 겉과 속이 다른 행동을 해왔는데 이러한 자신의 내면이 변화되었다는 점이다. 동생 오목이의 자녀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품을 수 있는 마음이 생겼다는 자체가 수지에게 커다란 변화이며 이것을 동생에게 자랑하면서 그동안 동생을 속여 왔던 사시에 대해서 용서를 구하고자 했을 것이다.
확장하기
박완서는 분단을 다룬 작품 '엄마의 말뚝'으로 문학상을 수상한다. 그리고 수상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자신의 문학관을 밝히고 있다. 이를 읽고, 다음 활동을 해 보자.
문학이 구호에 봉사하느냐, 이런 숨겨진 처절한 아픔 편에 서느냐는 기로에 서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웃이 부당하게 겪는 아픔과 슬픔, 몸부림, 그러면서도 결코 단념할 줄 모르는 그들의 꿈, 그런 것들과 무관하지 않기 위해선 끊임없이 정신을 쥐어뜯어야 할 만큼, 우리를 일률적으로 행복하고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구호의 최면술은 날로 막강해지고 있는 거나 아닐는지요.
아물었으되 피 흘리고 있음을, 딱지 앉았으되 곪고 있음을, 잘 차려 입었으되 벌거벗었음을, 춤추고 있으되 몸부림치고 있음을, 보고 느끼고 말하는 게 문학이 숙명처럼 걸머진 형벌이자 자존심이라면 저도 잠시 한낱 비통한 가족사를 폭로한 것 같은 수치심에서 벗어나 제 선배 수상자들이 그랬듯이 이 상 앞에서 늠름해지고자 합니다.
(1) '문학이 구호에 봉사' 한다는 뜻을 말해 보자.
교수·학습 방법 :
'문학이 구호에 봉사'한다는 의미는 그와 대구를 이루는 '숨겨진 처절한 아픔 편에 서느냐' 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서 출발해야만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뒤에 이어지는 박완서의 수상 소감에서 단서를 찾아낼 수도 있다. '이웃이 부당하게 겪는 아픔과 슬픔, 몸부림, 그러면서도 단념할 줄 모르는 그들의 꿈'이야말로 후자에 해당하는 내용일 것이고, '우리를 일률적으로 행복하고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구호의 최면술'은 전자에 해당하는 내용일 것이다. 이와 관련지어 문학이 구호에 봉사한다는 뜻을 생각해 보도록 지도한다.
예시 학생 활동 :
여기에서 숨겨진 처절한 아픔이란 바로 분단의 고통을 말하는 것이다. 통일이라는 말이 도처에 범람하고 있지만, 그것이 애절한 꿈으로서가 아니라 그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구호로서 행세하고 있는 현실이다. 구호는 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붙이는 강렬한 짧은 메시지이다. 이들은 이런 구호를 내세워 마치 무슨 일이든지 다 이루어진 듯 사람을 현혹하기 쉽다. 통일이 직업인 사람은 될 수 있으면 많은 구호를 만들어 내어 분단을 치장하면 되겠지만 진실로 통일이 꿈인 사람들은 끊임없이 분단된 상처를 쥐어뜯어 괴롭게 피 흘리게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문학이 구호에 봉사한다는 뜻은 분단의 문제와 통일의 문제가 진실로 이루어져야 할 간절한 꿈이 아닌 단지 직업적으로 수행해야할 과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문학 행위를 비판하는 것이다.
(2)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속에서 '아물었으되 피 흘리고 있음'의 사례를 찾아보자.
교수·학습 방법 :
우리 겨레의 분단이 오래 전에 피 흘리기를 멈추고 굳은 딱지가 되었고, 통일을 꿈꾸지도 않은 지 오래된 것처럼 보인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토막난 채 아물어 버리면 다시는 이을 수 없음을 알기에 그 틈새에 끼어있는 통일을 염원하는 이들은 자꾸 상처를 내고 피 흘리기를 원하고 있다. 그래야만이 진정한 치료가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해하에서 작품 속에 나타난 분단 문제로 고통받는 이산 가족의 아픔을 살펴보도록 한다.
예시 학생 활동 :
박완서가 '그해 겨울은 따듯했네'를 통해서 표현하고자 했던 바는 분단 현실을 그저 당연한 현실처럼 받아들이고 그것이 고착화되어 가는 데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일깨우고자 함에 있다. 박완서는 남북 분단의 문제는 정치적으로나 행정적으로 다루기에 앞서서 그 분단을 가슴 속에 담고 살아가는 자들의 진실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다가가길 원했다. 이 소설에서 파티에 참석하고 있는 사람들은 1951년 겨울은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유쾌하게 지내고 있다. 수지는 같이 그 시절을 체험했던 수철조차도 그해 겨울의 추위와 그 이상한 허기를 잊은 듯 보이자, 그 근심이 자신만의 것처럼 여겨져 뼈가 시리도록 고독함을 느꼈다.
블로그의 정보
국어문학창고
송화은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