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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과 책읽기 / 이태동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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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과 책읽기 / 이태동 / 서강대 영문과 교수

   어릴 때 여름방학을 끝내고 학교로 돌아오면 그 동안 못 보았던 급우들이 무척이나 반가웠지만 한 뼘씩이나 자란 듯해서 낯설게 보였던 적이 있다. 이러한 기억은 여름이 모든 것을 짙푸르게 만드는 태양이 있고 소나기가 있는 풍요로운 계절이란 것을 일깨워준다. 그러나 여름은 또한 책과 함께 마음의 풍요를 가져올 수 있는 계절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학기 도중이고 한참 일할 시기여서 누구나 마음놓고 책을 읽을 수가 없다. 그러나 여름은 덥지만 방학과 휴가가 있기 때문에,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어서 마음을 지적인 풍요로 가득 채울 수 있다.


피서를 하는 길은 산과 바다로 가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독서의 삼매경(三昧境)에 빠져보는 데에도 있다. 여름에 독서를 즐기는 사람이면 누구나 책을 통해서 오는 깨달음의 열락(悅樂)이 더위를 이기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안다. 독서를 하는 사람들은 책 속에 바다가 있고 눈 덮인 산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무협소설이나 추리소설을 읽고 자신을 흥분시키면서 시간을 보내기에는 풍요의 계절인 여름이 너무 아까울 것이다. 무더운 여름동안만 이라도 뚜렷한 계획을 세우고 여느 때 다하지 못한 [감정교육]과 지적인 축적을 위한 독서생활을 즐길 것 같으면 누구든지 여름을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계절로 만들 수 있으리라.


독서를 할 때 책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어렵고 중요하다. 그것은 17세기 영국시인 안드류 마블이 {수줍어하는 애인에게}라는 그의 시에서 지적했듯이 우리의 인생은 유한하고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책을 다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오늘날과 같이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많은 양의 신간들을 제한된 시간 내에 수용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책을 올바르게 선택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무서운 시간의 힘과 싸워 이기고 살아남은 고전(古典)을 선택하면 큰 잘못이 없겠다. 고전은 일반 대중들이 잘못 이해하는 것처럼 오래된 책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급]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인간의 지적 삶의 경우처럼 책에도 생명이 있다. 책이 고전으로 오랫동안 역사 속에 머무르는 것은 그것이 그만큼 값지고 훌륭하기 때문이다. 물론 오늘날과 같은 정보화 사회에서 고전만을 읽을 수는 없다.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새로 나온 훌륭한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신간을 읽을 경우에도 권위 있는 서평(書評)을 통해 양서로 평가를 받은 책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양서의 선택은 결코 상업적인 광고에만 의존할 수 없다. 어떤 의미에서 책을 선택하는 것은 인생을 선택하는 것과도 같다. 책은 인간의 실제경험 보다 중요한, 선택된 경험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책으로부터 질서 있는 미학(美學)적 경험을 얻어 삶을 풍요롭게 하거나, 무질서한 경험에 실려 자신을 혼돈의 늪 속으로 빠뜨리는 것의 차이는 책에 대한 선택에 달려있다. 쇼펜하워가 말한 바와 같이 [악서를 읽지 않는 것은 양서를 읽기 위한 조건]이다. 그래서 책을 무조건 많이만 읽는 것도 문제가 있다. 이것은 S. 스마일스가 [부질없이 책을 읽는 것은 술을 급히 들이키는 것과 같다. 한때는 이것으로 가슴이 고동치지만, 심령을 살찌우고 품성을 함양하는 실익(實益)은 조금도 없는 것이다] 라고 말한 것에서 잘 나타나 있다. 또 E. S. 마틴이 지적한 것처럼, [잡서(雜書)의 난독(亂讀)은 일시적으로는 다소의 이익을 가져다 줄지 모르지만, 궁극적으로 시간과 정력의 낭비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프란시스 베이곤의 다음과 같은 충고에 조용히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어떤 책은 맛보고, 어떤 책은 삼키고, 소수의 어떤 책은 잘 씹어서 소화해야 한다.] 파스칼이 그의 {팡세}에서 [책을 너무 급히 읽거나 천천히 읽을 때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라고 말한 것 역시 위에서 언급한 책의 선택과 독서의 방법과도 깊은 관계가 있겠다.


그런데 고전에 속하는 책들은 사람에 따라 너무 어려울 수도 있고, 너무 쉬울 수도 있다. 그러나 고전은 독서 연령에 맞추어서 선택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하다. 고전은 다양한 분야에 걸친 명저들로 되어있기 때문에, 문학에만 한정시킬 수 없다. 그러나 필자가 문학의 고전을 권유하는 것은 그것이 인문주의의 중심으로서 우리들에게 가장 절실한 인생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개체적인 인간은 제한된 시간과 공간 속에 살고 있지만, 책은 앞서 간 사람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체험했던 귀중한 경험을 무한히 가져다 줄 수 있다. 나는 어릴 때 산 그림자가 드리우는 내륙(內陸)에 살았지만, 소년시절을 보내고 난 후 고등학교 시절에 읽은 워싱턴 어빙의 {스켓치북}에서 바다의 풍경을 경험했다. 파도치는 바다의 수평선 너머로 배를 타고 멀리  떠나는 사람들과 먼바다에서 귀향하는 사람들의 눈물의 이별과 감격적인 만남이 있는 부둣가의 풍경을 보았고 다니엘 데포와 허만 멜빌의 작품을 통해서 바다를 경험했다. 그리고 나관중(羅貫中)의 {삼국지(三國志)}를 통해서 광활한 중국을 보았으며 {플루타크의 영웅전}을 읽으며 한니발과 함께 알프스를 넘었음은 물론 역사 속에서 용기 있는 인간이 지닌 의무와 책임이 무엇인가를 배웠다. 찰스램과 알퐁스 도테를 읽으면서 삶에 대한 통찰력과 사색의 지평을 넓혔고 글을 쓰고자하는 욕망을 길렀다.


독서를 통해 얻은 풍요로운 경험은 우리의 인식능력을 활성화시켜 지적인 성장을 가져와서 전인교육을 시킬 뿐만 아니라, 사물을 분석하고 종합하며 판단하는 능력을 키워준다. 그래서 고전이나 훌륭한 책을 읽는 것은 눈에 보이는 직접적이고 공리적인 이익을 가져다 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지식을 제공해 주는 것 이외에 인간의 의식을 보이지 않게 성숙시켜 우리의 정신 에너지를 활성화시켜 줄 뿐만 아니라, 인류의 문화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상상력에 불을 지펴준다. 무더운 여름 동안 책을 한 권 더 읽고 못 읽는가에 따라, 가을에 돌아온 사람의 얼굴빛이 달라질 것임에 틀림이 없다. 이것은 어릴 때 여름방학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왔던 급우들의 얼굴들이 낯설어 보이는 것과도 같다. 무더운 성하(盛夏)의 계절에 읽는 한 권의 책으로 자신의 운명을 바꿔 놓을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 가능한 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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