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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十字架) / 윤동주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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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十字架) / 윤동주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 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요점 정리

지은이 : 윤동주(尹東柱)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상징시

율격 : 내재율

성격 : 기독교적. 결의적. 상징적. 독백적. 저항적

표현 : 상징어의 사용. 역설적인 표현. 결의적 자세가 드러남

심상 : 청각적, 시각적 심상

어조 : 결의에 찬 신념의 목소리

제재 : 십자가

주제 : 자기 희생의 의지, 고난을 짊어지려는 희생의 의지, 조국 광복을 위한 자기 희생 의지, 자기 희생을 통한 구원에의 다짐

구성 : 시간의 흐름과 인과관계에 따른 구성

   1연 - 십자가의 제시(희생적인 삶)

   2연 - 험난한 현실(자기 염원과의 거리)

   3연 - 암담한 현실 상황(구원의 길이 없음)

   4연 - 자기 희생의 필요(조국의 광복을 염원)

   5연 - 자기 희생의 각오(절연한 의지)

출전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        

 

                 

내용 연구

쫓아오던 햇빛[이상, 희망 / 조국의 광복]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첨탑]

십자가[종교적, 도덕적 삶의 목표 / 기독교의 상징으로 시적 화자는 교회당에 걸린 '십자가'를 보고 예수의 삶을 생각해 내고, 자신도 예수처럼 희생을 통해(4연의 '십자가') 조국 광복에 이바지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음. 여기에서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이므로 관습적 상징에 해당된다. 물론 1연의 '십자가'라는 의미에는 작자가 도달하기 어렵지만 동경하는 종교적 도덕적 목표도 담겨 있고, 예수의 희생이 담긴 근본적인 인류에 대한 큰사랑처럼 행할 수 없기에 시적 화자에게는 도달하기 어려운 도덕적 이상을 의미하기도 한다.]에 걸리었습니다.[쫓아오던 - 걸리었습니다.(1연) :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 상황에서 '햇빛'은 '광복, 이상'을 의미하는데 교회 꼭대기에 걸렸다는 것은 식민지의 속박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첨탑[尖塔 : 뾰족한 탑. 높은 첨탑만큼 광복의 길이 멀리 있음을 암시]이 저렇게도 높은데[이상과 현실의 거리 / 나약한 인간으로서 예수가 남긴 십자가의 의미를 실현할 수가 없다는 뜻도 담겨 있다. 그래서 이상 실현이 어렵다는 자신감을 상실한 표현이 되기도 한다.]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첨탑(尖塔)이 - 있을까요.(2연) : 삶의 목표가 도달하기 어려운 것임을 표현 / 현실 세계의 어려움이나 장애가 많아 쉽게 이루고자 하는 바를 이룩할 수 없는 시적 화자의 처지를 표현하고 있다. 자신이 추구하는 세계가 높다는 말로, 첨탑과 나의 거리는 멀고, 광복의 길은 험난하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종소리도[자유의 이미지] 들려 오지 않는데[신의 은총을 찾을 길 없는 상황, 절망적 상태이다. 이상 실현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암담한 상황 / 광복의 희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시적 화자가 처한 어려운상황]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현실에 뛰어들지 못하고 망설이는 소극적 태도가 나타나고, 바로 이 부분이 윤동주 혹은 시적 화자에게 부끄러움의 근원이 되기도 했다. / 방황과 고뇌의 소극적인 행동]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자신을 희생하여 인류를 구원하였으므로 행복하다는 뜻]처럼[괴로웠던 사나이, /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 앞 행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살아온 자신에 대한 자책이 나타나 있다. 희생의 고통이라는 괴로움에 처했으나 가치 있는 희생을 통한 인류 구원이라는 의미에서 행복임. 모순 형용의 표현, 역설적인 표현으로 자신의 삶의 의지를 제시한다. '처럼'을 독립된 행으로 처리하여 그에게 '십자가'의 의미가 예수의 경우와는 다를 수 있음을 나타낸 표현으로 예수의 희생적 삶을 본받고자 하는 시적 화자의 소망이 담겨 있다.]

 

십자가[시적 화자를 소극적 자아에서 자기 희생을 감수하는 적극적 자아로 거듭나게 하는 매개체가 되기에 개인적 상징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전체적 맥락에서 본다면 개인적 상징 혹은 관습적 상징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개인적(창조적) 상징의 의미의 폭이 넓고 암시적이므로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서 상징의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관습적 상징과 개인적 상징의 차이는 그 상징이 쓰이는 상황에서 독창성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4연에서의 '십자가'는 '1연'의 '십자가'의 종교적 의미에 개인적 의미를 추가했기 때문에 개인적 상징이냐, 관습적 상징이냐라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가 허락된다면[자기 희생에 대한 소망]

 

모가지['목'의 속된 말]를 드리우고

꽃[비극적 황홀]처럼 피어나는 피[자기 희생의 의지 / 가치 있는 피는 자신이 추구한 삶의 실체와 같기 때문에 꽃처럼 순결하고 숭고하게 여긴다. 여기서 피는 희생의 상징으로 그 희생은 민족을 구원하는 것이므로 '꽃'처럼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암울한 시대 상황]

조용히 흘리겠습니다.[어두워가는 - 흘리겠습니다. : '어두워가는 하늘 밑'은 당시 암담한 현실에 희생양이 되겠다는 의지적 표현이다. '조용히'란 내면적 자아에 대한 다짐 / '꽃처럼 피어나는 피로써 '어두워 가는 하늘 밑'의 우리 민족을 위해서 희생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히고 있다. 일제 강점기 어두운 시대에 무기력하게 사는 자신에 대한 자책과 현실적 괴로움을 벗어내고 민족과 조국을 위해 예수가 그러했듯이 자신도 행복한 희생을 하고 싶다는 것임 / 내면 의지의 표현, 순수한 행동의 강조]

'십자가'에서 시적 화자가 추구하는 삶과 그가 처해 있는 현실 사이의 거리감을 나타내는 시어를 찾아보자.

교수. 학습 방법 :

 시적 화자의 이상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시어를 찾아보고 그것에 대한 시적 화자의 거리감이 나타나 있는 시어를 찾아보도록 지도한다. 학생들에게 거리감을 나타내는 시어를 찾아보게 한 후, 역으로 그것의 의미를 풀이해 보도록 지도할 수도 있다.

예시 학생 활동 :

  '쫓아오던 햇빛'은 시적 화자가 추구하던 이상을 의미하며, 그 햇빛은 '교회당 꼭대기/십자가'에 걸려 있다. 십자가가 있는 첨탑은 '저렇게도' 높이 솟아 있다. '저렇게도'는 공간적인 거리를 나타내면서 동시에 심리적인 거리를 의미하고 있다. '저렇게도'는 '산유화'의 '저만치'처럼 대상과 주체의 거리를 표현하는 시어로 사용되었으며, 시적 화자의 이상이 현실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십자가'의 시상 전개에서 시적 화자의 목소리가 크게 바뀌었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찾아보고,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말해보자.

교수. 학습 방법 :

 시 전체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보게 하고 각 부분에서 시적 화자의 목소리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생각해 보도록 한다. 이 시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 때문에 방황하는 시적 화자의 목소리가 나타나는 부분과, 자기 희생을 다짐하는 의지적 목소리가 나타나는 부분으로 크게 나뉠 있다.

예시 학생 활동 :

 '괴로웠던 사나이,~'에서 시적 화자의 목소리가 크게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3연에서 시적 화자는 자신의 이상을 억압하는 현실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4연 이하에서는 '십자가'라는 자기 희생의 길을 택함으로써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해와 감상

 이 시에서의 '십자가'에는 종교적 의미보다 조국 광복을 위한 고귀한 희생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다.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린 햇빛은 순결과 광명의 상징이자 조국 광복의 빛으로, 십자가는 구원의 상징이자 고귀한 자기 희생으로 확대 해석할 수 있다. 시인은 '종소리도 들려 오지 않는' 조국의 절망적 상황 앞에서 회의와 자책으로 서성댈 수밖에 없지만, 결국 예수의 고난을 '행복'으로, 수난 속에서 희생되는 사람의 피를 '피어나는 꽃'으로 인식함으로써 조국을 위한 자기 희생의 결의를 다짐한다. '꽃처럼 피어나는 피'야말로 조국 광복이라는 열매를 약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장(悲壯)하고 장렬한 최후를 황홀한 순간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숭고한 자기 희생 정신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이 시의 핵심은 수난 의식과 속죄양 의식에 놓여 있다. 그것은 기독교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러나 민족의 아픈 역사 속에서 조국 광복의 염원을 십자가라는 구원 및 자기 희생의 상징적인 이미지를 더하고 있다. 교회당의 꼭대기 십자가에 걸린 햇빛은 오갈 데 없는 조국의 현실을 암시하며 종소리조차 들려 오지 않는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시적 자아는 자신의 무능력을 자책한다. 예수가 진 십자가의 구원처럼 자신에게 그 조국을 위한 희생이 요구된다면 주저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시이다.

 

 덧붙여, 이 시에서 '십자가'는 문맥에 의하여 의미가 특수화되어 있다. 즉 시적 자아가 도달하기 어려움을 절실히 느끼면서도 동경하여 마지않는 종교적 또는 도덕적 생활의 목표를 상징하는 것이다. 첫째 연의 '십자가'는 문자 그대로의 뜻,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라는 대상 자체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러나 넷째 연의 '십자가'는 교회당 꼭대기에 걸린 물질적 차원의 것이 아니다. 이 '십자가'는 이 작품의 화자가 처한 정신적 상황을 나타낸다. 뿐만 아니라 그 함축적 의미는 기독교적 속죄와 희생에 그치지 않는다. 특히 '괴로웠던 사나이'라는 표현을 통하여 윤동주에게서 '십자가'가 예수의 경우와는 다르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것은 일제 강점기에 항일 저항의 마음 자세를 가다듬으면서, 이를 위하여 자기 희생을 감수하겠다는 결의를 다지는 것이다.   

 

 

이해와 감상2

 이 시는 윤동주에게 드러나는 소명 의식과 그것의 행동화 결의가 비교적 뚜렷하게 나타나는 작품이다.

 천상(天上)과 지상(地上)의 이원 구조로 볼 때, 천상의 의미와 지상적인 것의 의미가 비교적 선명하게 대립되고 그 중간항이 되는 교회의 첨탑은 그 높이에 있어 양자의 의미를 분명하게 구별 짓게 한다.

 

 우선 화자가 서 있는 공간의 배경을 살펴보자. 높다란 첨탑 위에 십자가가 걸려 있고 그 위에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으며, 햇빛은 첨탑 위에 비친다. 화자는 그것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는 구도로 되어 있다. 화자는 햇빛이 첨탑의 십자가에 걸려 반짝이지만 지상에 도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상을 싹 틔운다. 햇빛은 하늘에 속하는 것이며, 하늘이 온전하고 바람직한 가치의 표상, 구체적으로 사랑과 평화, 진리의 표상이라면, 그 세계로부터 도래한 햇빛은 그것을 고스란히 안은 것이 된다. 그러나 그것은 지상에 도달하지 못한다. 십자가까지만 당도할 뿐이다. 따라서 햇빛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은 나에게는 주어지지 않았고 십자가만 가진 것이다. 십자가는 바로 그리스도의 표상이다. 이런 점에서 하늘, 햇빛, 십자가는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그 지고한 가치가 화자에게는 아득한 높이로 인식된다.

 

 그의 의식은 그 숭고한 가치를 지향하지만 인간의 세계에 발 디디고 사는 한계 속에 놓여 있는 한 그 세계에의 도달은 어려운 것이다. 그것을 화자는 의식한다. 자신의 무기력함, 용기 없음에서 우러러보는 첨탑은 저렇게 높을 수밖에 없고 거기에 어떻게 도달하겠느냐고 자신 없어 한다. 여기에 부끄러움은 또 개입한다. 지향은 하면서도 선뜻 행동화하지 못하는 머뭇거림, 비겁 앞에 자신을 쓸쓸히 바라보는 것이다. 이런 심리 상태의 화자는 괴로워하고 방황한다.

 

 '종소리'는 교회의 종소리다. 휘파람은 인간의 소리다. 종소리가 들려 오지 않는다는 것은, 종소리가 표상하는 의미, 즉 하늘의 뜻이 화자의 내면에 자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종소리의 울림이 화자에게 다가올 때, 그는 행동화의 출발을 보이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그저 지상의 소리, 인간의 소리인 휘파람이나 불 따름이다.

 

 그러나 화자는 그러한 세계로 향해야 하는 당위를 잊지 않는다. 만약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수난이 주어진다면, 그 수난을 달게 받아 차라리 정신적으로 행복감에 젖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흘리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그러나 이것은 가정이다. 그러한 상황이 주어질 때 희생양처럼 피를 영혼과 양심을 지키려고 내적 다짐을 하면서도 적극적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 점이 여기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윤동주는 정신의 순결을 지향하는 지순한 영혼의 소유자였지만 의지가 굳센 남성적 태도와는 얼마간 거리가 있는 시인임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이 시에서 '십자가'는 문맥에 의하여 의미가 특수화되어 있다. 즉 시적 자아가 도달하기 어려움을 절실히 느끼면서도 동경하여 마지않는 종교적 또는 도덕적 생활의 목표를 상징하는 것이다. 첫째 연의 '십자가'는 문자 그대로의 뜻,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라는 대상 자체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러나 넷째 연의 '십자가'는 교회당 꼭대기에 걸린 물질적 차원의 것이 아니다. 이 '십자가'는 이 작품의 화자가 처한 정신적 상황을 나타낸다. 뿐만 아니라 그 함축적 의미는 기독교적 속죄와 희생에 그치지 않는다. 특히 '괴로웠던 사나이'라는 표현을 통하여 윤동주에게서 '십자가'가 예수의 경우와는 다르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것은 일제 강점기에 항일 저항의 마음 자세를 가다듬으면서, 이를 위하여 자기 희생을 감수하겠다는 결의를 다지는 것이다.

 

 

이해와 감상3

 '십자가'에는 윤동주의 종교관과 역사관, 인생관이 잘 나타나 있다. 또한 이 시에는 욕된 자기, 부끄러운 자신을 인식하고 괴로워하고, 욕되지 않은 삶,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자 하지만 그런 삶을 방해하는 세상 속에서 번민하는 자아의 목소리가 두드러지게 드러나 있다. 이는 윤동주 시에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자아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 시에서 '십자가'는 자기 희생의 자세를 상징적으로 의미하고 있다. '십자가'는 관습적인 상징으로서 기독교의 징표와 형벌의 도구를 의미하면서 개인적인 상징으로서 자기 희생을 의미한다.

 

 1연에서는 `쫓아오던 햇빛', 즉 나의 희망 또는 목표가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려 있다고 진술하고 있다. 이는 시대적 상황 때문에 정의로운 삶의 자세를 견지할 수 없음을 밝힌 것으로, `쫓아오던 햇빛'은 조국의 해방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햇빛'은 이상이나 희망의 이미지로 사용되었으며, `십자가'는 시적 화자의 종교관이나 역사관 또는 인생관과 관련된 목표를 뜻한다. 2연과 3연에서는 시인의 삶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 수 있다. 2연에서는 첨탑이 너무 너무 높아서 올라갈 수 없음을 설의적으로 표현하여, 이 같은 상황 인식에 대해서 독자의 동의를 구하고 있다. 그리고 3연에서는 그러한 상황 인식을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는 자조적인 행동으로 나타내고 있다. 두 연에서는 공통적으로 삶의 목표와 시적 화자의 거리감, 그리고 이에 따른 고독과 고뇌, 갈등을 읽을 수 있다.

 

 4연에서는 시적 화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역설적 행복을 이야기한다. 그리스도는 인류의 모든 짐을 대신 지고 괴로워했지만 십자가에 못 박혀 희생했기 때문에 행복했다는 것이다. 화자는 그런 그리스도를 본받아 고난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민족을 위해 속죄양이 되고 싶어한다. 그래서 여기에서 십자가는 시인이 도달하고 싶어하는 정신 세계를 대변하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5연에는 자기 희생이나 속죄양 의식이 응측되어 나타나 있다. `어두워 가는 하늘 밑'은 더욱 암울해져 가는 당시의 현실 상황을 의미하며, `꽃처럼 피어나는 피'는 희생을 통한 구원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자신 또한 예수 그리스도처럼 어두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시키겠다는 심정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속죄양 의식은 기독교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것이지만, 일제 치하의 어두운 시대에 무기력하게 사는 자기 자신에 대한 자책과 현실적 괴로움이 더 직접적인 동기가 되고 있다. 그 자책과 괴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시키겠다는 소명 의식을 시적 화자의 의지적인 목소리를 통해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심화 자료

 

윤동주 시에 나타난 속죄양 의식과 저항 의식

 '괴로움, 슬픔, 부끄러움, 욕됨' 등으로 요약되는 윤동주 시의 소극적 부정적 정신과 시의식은 그가 자신의 분노와 비판 의식을 적극화하지 못한 데서 오는 자기 혐오와 자책적 저항 의식은 다시금 자기 희생 또는 속죄양 의식으로 연결되어 나타난다. 그러한 보기가 되는 시가 '십자가'이다. 이 시의 핵심은 수난 의식과 속죄양 의식에 놓여 있다. 그것은 기독교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보다 직접적인 동기가 되는 것은 무기력한 자신에 대한 자책감과 현실적인 괴로움에 연원한다. 현실에서는 고난과 역경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 모든 인류의 짐을 지고 괴로웠던 예수 그리스도, 그러나 모든 인류의 죄와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희생되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행복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양 의식은 윤동주의 그것과 통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윤동주의 생애와 시에 있어서 그의 유년부터 가족적 신앙인 기독교 정신은 그 정신적 기조를 형성해 왔던 것이다. 따라서 윤동주의 저항 의식에 있어서도 그리스도적 수난 의식과 속죄양 의식이 그 핵심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 점이 좀더 적극적, 전투적 저항 방식의 관점에서 볼 때는 한계적인 것으로 해석될 수 있게 한다.

 

 

윤동주의 작품세계

 윤동주는 일제 강점기 지식인으로서 겪어야 했던 정신적 고통을 섬세한 서정과 투명한 시심으로 노래한 시인이다. 그의 시의 특성은 고요한 내면 세계에 대한 응시를 순결한 정신성과 준열한 삶의 결의로 발전시킨 데 있다. 초기 동시는 일상생활에 대한 애정어린 관찰과 화해의 세계를 구축하며, 산문을 통해 청년기의 내적 고뇌를 표현한다. 그의 시가 추구한 핵심적 문제는 현실적 존재의 슬픔이 어디로부터 나온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비록 소극적이고 자책적이며, 어떤 경우 자기 분열의 상태까지 이르기도 하지만, 윤동주의 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음을 가치가 있다. 그의 생애를 마감할 무렵인 일본 유학 시적의 시는 비로소 윤동주의 저항 시인으로서의 평가를 가능하게 해 준다. 그의 시는 근본적으로 그의 생애의 흐름과 일치하며 발전한다. 즉 개인적 자아 성찰에서 역사와 민족의 현실에 대한 성찰로 인식을 확대하는 것이다. 민족의 해방을 기다리며 자신의 부끄럼 없는 삶을 위해 죽을 때까지 잃지 않은 시인으로서 그의 시는 일제 강점기의 종말에 대한 희생적 예언으로서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는 그의 시세계의 정신적 기반으로서 기독교적인 원죄 의식과 종말관이 뒷받침되기도 한다.

 

 

'부끄러움'의 미학

 윤동주는 식민지 지식인의 정신적. 윤리적 고통을 섬세한 서정과 투명한 시심(詩心)으로 노래하였다. 그의 시에는 절박한 시대 상황 속에서 순교자적 신앙의 길을 선택한 한 청년의 끝없는 자기 성찰의 자세가 반영되어 있다. 이와 같은 자기 성찰은 항상'부끄러움'을 수반한다. 이 '부끄러움'의 감정은 현실적인 문맥에서 이해하자면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행동성의 결여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만 이해하는 것은 그의 시를 단순화시키는 것이 된다. 왜냐 하면, 그의'부끄러움'은 좀더 근원적인 것, 말하자면 절대적인 윤리의 표상인'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소망하면서 부단히 자신의 삶을 채찍질하도록 만드는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부끄러움'은 삶과 시를 지탱해 주는 근원적인 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삶의 계기마다, 그리고 그의 시마다 가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면서 '십자가' 같은 시에서 볼 수 있는 순결한 순교자 의식으로 수렴된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부끄러움'을 이해하는 것은 그의 시가 지닌 아름다움과 그의 삶이 지닌 투명한 아름다움을 이해하는 관건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윤동주 시 연구

 실제 일제 말의 궁핍한 현실에서는 인간적 품격과 자존심에 근거하여 자기 자신의 삶 하나도 제대로 지켜가기 어려운 실정이었을 것이 확실하다. 이런 때일수록 살아 있는 정신의 상징으로서의, 그리고 인간적 존엄성과 생명의 핵으로서의 `간(肝)'을 잃지 않고 끝까지 지킨다는 것은 지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것들은 윤동주의 시에 있어서의 저항 의식의 특성을 말해주는 동시에 그 한계 지점을 명확히 설명해 준 것이 된다. `괴로움, 슬픔, 부끄러움, 욕됨' 등으로 요약되는 윤동주의 시의 소극적, 부정적 정서와 시 의식(意識)은 그가 자신의 분노와 비판 의식 등 저항 의식을 적극화하지 못한 데서 유발되는 자기 혐오와 자책의 감정에 기인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소극적, 자책적 저항 정신은 다시금 자기 희생 또는 속죄양 의식으로 연결돼 나타난다.

 

 핵심은 수난 의식과 속죄양 의식에 놓여 있다. 그것은 기독교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보다 직접적인 동기가 되는 것은 무기력한 자신에 대한 자책감과 현실적인 괴로움에 연원한다. 현실에서는 고난과 역경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 모든 인류의 짐을 지고 괴로워왔던 예수 그리스도, 그러나 모든 인류의 죄와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희생됐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행복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양 의식은 윤동주의 그것과 통한다. 윤동주의 생애와 시에 있어서 그의 유년부터 가족적 신앙이 기독교 정신은  그 정신적 기조를 형성해 왔던 것이다. 따라서 윤동주의 저항 의식에 있어서도 그리스도적 수난 의식과 속죄양 의식이 그 핵심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 점이 좀더 적극적, 전투적 저항 방식의 관점에서 볼 때는 한계적인 것으로 해석될 수 잇다. `십자가가 허락된다면//모가지를 드리우고/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어 가는 하늘 밑에/조용히 흘리겠습니다.'라는 구절 속에는 수난에 대한 인고의 정신과 속죄양 의식으로서의 저항 정신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는 것이다.  [출처 : 김재홍, <한국 현대 시인 연구>(일지사, 1996)]

 

 

십자가의 상징(象徵, Symbol)적 의미

① 어느 대상이 다른 대상을 표시하거나, 본래의 고요한 의미 외에 다른 의미를 나타내는 표현 기법이다.

② 상징은 의미의 암시성과 다의성을 지닌다.

③ 비유에서는 원관념 : 보조 관념 = 1:1의 유추적 관계를 보이지만 상징에서는 1: 다수의 다의적 관계이다.

④ 상징의 종류

㈀ 관습적 상징(고정적 사회적 제도적 상징)

일정한 세월을 두고 사회적 관습에 의해 공인되고 널리 보편화된 상징으로 기독교의 징표 또는 형벌의 도구로의 십자가 → 기독교, 비둘기 → 평화로 알려진 상징

㈁ 개인적 상징(창조적 문화적 상징)

관습적 상징을 시인의 독창적 의미로 변용시켜 문화적 효과를 얻는 상징으로 윤동주의 '십자가'에서 ' 십자가'의 의미 → 윤동주 자신의 희생 정신을 나타냄.
(ㄷ) 원형적 상징

역사, 문학, 종교 등에서 되풀이되어 나타나 인류에게 유사한 정서나 의미를 불러 일으키는 상징이다. 인간의 잠재 의식에 담긴 원초적인 이미지로 전인류적인 보편성을 갖는다.

 

이육사와 육동주 시의 차이

 윤동주와 이육사는 일제 말의 암울한 식민지 시대의 현실을 살아가면서 그 불우했던 상황을 시로써 극복하려고 했던 대표적인 저항 시인으로 평가 받고 있다. 물론 윤동주 시인에 대한 저항 시인이라는 평가에 대해서 다른 이견도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두 시인의 시 세계는 이들의 전기적 삶의 차이만큼이나 서로 다르다. 윤동주의 시가 남성적이고, 외향적인 어조로 강인한 의지를 드러내는 지사적이고, 예언자적 풍모를 담고 있다면, 윤동주의 시는 여성적이고, 자기 고백적인 어조로 순결한 인간의 고뇌를 표현하는 '부끄러움의 미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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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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