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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序詩) / 윤동주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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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序詩) /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요점 정리

작가 : 윤동주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율격 : 내재율

성격 : 성찰적. 고백적. 의지적, 참여적, 반성적

어조 : 엄숙하고 정결한 분위기, 절대 순결을 윤리적 지표로 하는 청년의 양심 고백적 목소리, 고백적 어조와 의지적 어조

심상 : 별과 바람의 시각적 심상

구성 : 시간의 이동에 따른 전개 (과거 - 미래 - 현재)

1연

1-2행 부끄럼이 없는 삶에 대한 간절한 바람

3-4행 현실 상황 속에서의 고뇌

5-8행 사랑의 실천과 진실한 삶의 다짐

2연 - 시련과 고뇌의 현실 확인

제재 : 별(이상의 세계와 순수한 양심)

주제 : 부끄러움이 없는 순결한 삶에의 소망, 부끄러움 없는 삶에 대한 간절한 소망

특징 :

① 대조적 심상의 부각(별과 바람)

② 서술과 묘사에 의한 표현

③ 자연적 소재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함

표현법 : 자기 응시의 독백적 형식, 죽음과 삶의 대립적 구조, 고통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함

의의 : 서시(序詩)’라는 제목 그대로 윤동주의 시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첫머리에 수록된 작품이다. ‘'과거 - 미래 - 현재'의 순서로 시상이 전개되면서, 식민지 지식인의 고뇌와 현실 극복 의지를 간결하면서도 평이한 시어로 형상화하고 있다. 특히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로 표현된 순수한 삶에 대한 소망이 커다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출전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 

 


내용 연구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서시이다. 그래서 이 시에는 '하늘', '바람', '별'과 시인의 삶의 길이라고 할 수 있는 '시'가 담겨 있다. 삶의 절대적 기준인 '하늘'에서 어떠한 외부의 고난과 시련에도 빛을 잃지 않고 반짝이는 '별'은 당시 우리 민족이 처한 암울한 현실인 '바람', '밤'과 대비를 이루면서 시적 화자의 '시'를 향한 삶의 방향을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삶의 지향점 / 완전무결한 대상, 시적 화자가 양심을 비추어 보는 거울로 절대적 윤리의 표상이고 동양적인 의미의 천도(天道)를 뜻함]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죽는 날까지 ~ 부끄럼이 없기를 : 고난의 현실 속에서 세속적 삶에 타협하지 않으며 양심에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는 시적 화자의 태도로 인유(다른 예를 끌어다 비유함)적 표현한 것으로 맹자의 진심장 君子三樂(군자삼락) 중 仰不愧於天(앙불괴어천)과 관련이 깊다.

 

잎새에 이는 바람[바람에 흔들리는 잎새는 작은 고뇌와 갈등에 흔들리는 화자의 내면 세계를 형상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3행에서의 '바람'은 화자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요인이 되는 것이므로, '화자의 내면적 갈등'을 의미한다. / 현실적 시련과 고난을 주는 대상으로 '별'과 대립적 이미지로 '나'의 소망을 방해]에도

나는 괴로워했다.[시인의 시적 안목이 가장 섬세한 곳에까지 미치고 있는 3 ~ 4행임]

 

잎새에 ~ 괴로워했다 : 순결하고 도덕적인 삶을 살고자 했던 시적 화자의 의지와 고뇌와 연민이 드러나 있는 부분으로 그의 괴로움은 자신이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오지 못했다는 자책감에서 생겨난다. 부끄러움이란 잘못을 저질러서만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 일을 하지 못 하였을 경우에도 올 수 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자신을 돌이켜 보면서 결백한 삶을 추구하는 젊은이에게 있어서 그의 양심의 뜨거움에 비례한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사소한 것에서조차 괴로움을 느낀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잎새'는 '바람' 앞에서 끊임없이 실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 작고 연약한 존재를 상징한다.

 

별[화자가 추구하는 순수, 이상적 가치이거나, 화자가 걸어갈 길을 제시해 주는 도덕적 목표 등. 순결한 삶, 광명, 소망의 대상, 순수하고 도덕적인 양심]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별을 노래하는 마음 : 시적 화자가 지향하는 도덕적 순결성을 추구하는 삶의 자세]

 

모든 죽어 가는 것[일제 강점하의 우리 민족 / '죽어 가는 것' '잎새'와 유사한 의미를 지닌 것으로 삶의 고통에 부대끼는 모든 존재를 뜻함 / 살아있는 것의 역설적 표현<역설(paradox) : 겉으로는 모순되고 불합리하여 진리에 반대하고 있는 듯하나, 실질적인 내용은 진리인 말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사랑이 매 따위/ 역설(力說) : 자신의 뜻을 힘써 말함. 또는 그런 말.> / 연약한 존재]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역사와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지식인의 시적 화자가 해야 할 일 혹은 역할'을 의미함 / 민족을 위한 삶의 길, 인생의 과정, 역사적으로 부과된 사명, 짊어지고 가야할 십자가, 순명(順命)의 태도]을

걸어가야겠다.[의지의 표현 - 소명(사람이 일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는 일. '부름'으로 순화.) 의식]

 

~ 겠다. : 확신과 의도를 나타내는 종결어미(시적 자아의 의지) 

오늘 밤[어둡고 암울한 현실, 일제 강점기의 암담한 현실]에도 별['별'은 어두운 밤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으며, 시련의 바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외로운 양심을 상징]이 바람['별'과 대조되는 '바람'은 화자가 추구하는 참삶이나 지켜 오고 있는 양심을 흔들리게 하는 '현실적 시련'을 의미]에 스치운다.['나'의 현재적 상태임] 

 

시적 화자의 태도 :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고 있고, 도덕적으로 순결한 삶을 지향하고 있으며, 자신이 처한 현실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순교자적 자세로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려 한다. 
 

이 시가 감동을 주는 주된 이유는 ? : 순교자적 삶에의 기원과 각오 

 

 

3행과 9행에 '바람'이라는 시어의 차이점에 대해서 말해 보자 

지도 방법 : 이 활동은 똑같은 시어라 하더라도 문맥에 의해 얼마든지 다른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점을 학생들 스스로 파악하도록 하기 위한 활동이다. 다소 어려움이 뒤따르는 활동이므로 가급적 모둠별로 나누어 집단 사고를 통해 의미의 차이를 구별해 보도록 지도한다. 특히 문맥적 상황을 최대한 고려하여 섬세한 의미 차이를 발견해 보도록 유도한다. 여기서 ‘바람’은 상징적 표현이므로 그 의미의 차이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게 마련이다. 따라서 특정한 해석을 정답으로 강요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중요한 것은 그 의미를 명확히 밝히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똑같은 시어라 하더라도 문맥에 따라 의미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보는 것에 있다. 

 

: 1, 2행에서 화자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소망했는데, 3, 4행에서 잎새에 이는 바람에 괴로워하고 있다. 그러므로 바람에 흔들리는 잎새는 작은 고뇌와 갈등에 흔들리는 화자의 내면 세계를 형상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3행에서의 '바람'은 화자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요인이 되는 것이므로, '화자의 내면적 갈등'을 의미한다. 9행에서의 '바람'은 현실 상황과 관련된 의미를 지니게 된다. '별'과 대조되는 '바람'은 화자가 추구하는 참삶이나 지켜 오고 있는 양심을 흔들리게 하는 '현실적 시련'을 의미한다.(출처 : 김윤식 외 4인 공저 '문학교과서')

 

 

이해와 감상

 1945년 해방 직후 두 권의 유고 시집이 눈길을 끌었는데 그 하나가 <육사 시집>(1946)이요, 또 하나가 바로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였다. 윤동주의 이 시집은 그의 가족과 친구들이 스물 여덟의 젊은 나이로 일본 감옥에서 옥사한 고인을 추모하기 위하여 유고작을 모아 세상에 내 놓게 된 것이다. 이 시집에 수록된 첫 작품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서시"이다. 이 시에는 '1941년 11윌 20일'이란 창작 일자가 남아 있는데 이 때는 윤동주가 연희 전문의 졸업을 앞두고 진로에 고민하던 때로서 그의 나이 스물 넷이었다.

 

 서시란 '책의 서문 대신 쓴 시'라는 뜻으로, 그의 유고 시집에 수록된 작품 전체의 내용을 개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시를 분석함으로써 '부끄러움과 자아 성찰의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윤동주의 시 세계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서시"는 2연 9행으로 된 짧은 작품이다. 그러나 비록 짧지만 우리는 양심과 사랑을 추구하여 마침내 도덕적 순결의 자기 수행을 다짐하는 시인의 고뇌와 만날 수 있다.

 

 시상의 전개상 1연은 1행-4행 / 5행-6행 / 7행-8행 등의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과거 시제로 쓰여진 첫 4행은 식민지인으로서의 시인의 고뇌를 절절이 느낄 수 있으며, 조선인을 말살시키기 위해 급기야 창씨개명과 신사 참배를 강요했던 일제 말기에 조국과 민족, 무엇보다도 자신의 양심 앞에서 부끄러운 변절이나 타락을 하지 않으려는 도덕적 순결 의식이 나타나 있다. 1,2행의 표현은 <맹자>의 '군자 삼락(君子三樂)' 가운데 하나로 '우러러 하늘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고, 굽어보아 사람에게 부끄러움이 없다(仰不愧於天 俯不作於人)'의 인용이다. 바로 이런 군자의 마음으로 시인은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한 점'의 잘못조차 허용하지 않고, 부끄럼 없는 삶을 위해 고뇌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3행의 '잎새에 이는 바람'은 2행의 '한 점 부끄럼'을 비유하고 있는 시구로 '부끄럼'이란 추상적인 관념을 시각화시켜 감각적으로 훌륭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시인의 도덕적인 순결과 양심의 추구는 5,6행의 다짐과 7,8행의 강한 결의로 이어진다. 5,6행은 현재 시제로 쓰여진 점으로 보아 시인이 처한 현재에 대한 다짐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별'의 심상을 생각해 보기로 한다. '별'은 순수, 영원, 희망, 빛, 불변의 가치, 지고지순(至高至純)의 진리 등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별을 노래하는 마음'이란 '도덕적인 순결의 가치를 추구하는 마음' 또는 '불변의 가치를 예찬하는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마음으로 '죽어 가는 모든 것' 즉 '소멸되고 사그라지는 생명'들을 밝히는 사랑의 등불이 될 것을 다짐하고 있다. 맹목적이고 헌신적인 아가페 사랑을 말이다.

 

 그의 "십자가"란 시를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괴로웠던 사나이 /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 나에게도 십자가가 / 허락된다면 / 꽃처럼 피어나는 피로 /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이 시는 예수가 너무나도 인류를 사랑하여 스스로 인류의 죄를 대신 속죄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듯이 시인도 이 조국과 민족을 사랑한 나머지 기꺼이 어두운 시대의 속죄양이 되어 시대를 밝히겠다는 간절한 소망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십자가"의 그 지고지순한 사랑이 바로 "서시"의 '모든 죽어 가는 것'에 대한 사랑과 일치한다. 이처럼 시인이 추구하는 사랑은 죽음을 각오하고 죽음을 사랑하는 종교적 사랑인 셈이다.

 

 사랑의 다짐이 미래에의 결의로 나타난 시행이 7,8행이다. 도덕적인 양심과 아가페적인 사랑을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으로 알고 결의를 다지고 있다. 자기 수행의 길을 주어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시인의 엄숙하고 경건한 자세가 사뭇 진지하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1연이 시인 자신의 양심, 사랑, 수행의 다짐이었다면, 1행으로 된 2연은 주체가 '나'가 아니라, '별'이 되고 있다. 여기서 '별'은 '순수 소망 양심의 세계', '이상적 삶'을 가리킨다고 앞에서 이미 지적하였다.

  '오늘 밤'은 시인이 어둠의 역사로 규정한 식민지 현실을 암시한다. 캄캄한 이 어둠의 세계를 빛으로 밝혀 주는 동시에 시인이 지향하던 순수와 불멸의 세계인 '별'이 '바람'이라는 시련에 놓여 있음을 객관적으로 제시해 주고 있다. 그리고 그런 시련은 그젯밤도, 어젯밤도, 오늘밤에도 계속되어 왔다. 이러한 시련의 제시는 그저 단순한 제시만은 아니다. 오히려 바람이 사납게 불고, 밤이 더욱 캄캄해질수록 시인의 별은 더욱 빛을 발할 것이라는 냉혹한 현실에 대한 다짐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이해와 감상1 

 이 '서시(序詩)'는 2연의 시이나 다음과 같이 의미를 4단락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연 1행-2행은 결백하고자 하는 진실의 선언이며, 3행-4행은 욕된 삶을 살아야 하는 인간적 고뇌, 5-8행은 영원한 생명의 나라를 찾아 떠나고 싶은 갈구, 2연은 아픈 자기 성찰로 발전한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던', 부끄럼 없는 삶을 살기 위한 결백한 양심의 선언이 이 '서시'의 주제로 부각된다. 특히 9행은 암담한 상황을 상징적. 서정적. 극적으로 형상화했다.

 

 특히 '서시'에서 '별'과 '부끄럼'과 '죽음'이 주요 모티브가 된다. 별의 이미지는 몇 가지로 유추해 볼 수 있다. 첫째로, 별처럼 멀리 있는 육신의 고향, 북간도의 이국 정서와 단풍잎 같은 동심적 정서가 결합되어 별로 나타난다. 이런 자연 묘사의 수법을 통해 과거의 자아를 회상하는 매개체로서의 별이다. 둘째로, 신념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별로 나타난다. 이 때 별은 '순수한 마음'을 뜻하고, 또한 영혼의 깊숙한 곳에 위치한 아름다운 혼의 표상으로 제시된다.

 

 부끄러움의 미학은 자기 혼자만 행복하게 살 수 없다는 아픈 자각의 표현이다. 이와 같은 여성 이미지인 부끄러움은 조국에 대한 역사적 민족적 사명을 다하지 못한 송구스러움, 죄책감, 기독교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도덕적 순결성에 대한 욕됨 등으로 또한 심화되기도 한다. 

 

 

이해와 감상2 

 이 작품은 해방 후 간행된 윤동주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첫머리에 놓여, 참답고 올곧은 삶을 지향했던 시인의 정신을 대변해 주는 명시(名詩)이다. ‘과거(1~4행) - 미래(5~8행) - 현재(9행)’의 시간 순서를 축으로 하여 자기 양심 앞에 추호도 부끄럽지 않게 살려는 화자의 내적인 번민과 간절한 소망을 잘 형상화하고 있다.

 

 처음 4행에서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이라고 하여 초월적 세계와 도덕적 순결성을 지향하는 화자의 삶의 지표를 제시하고, 막상 현실 속에 부대끼며 그렇게 살지 못했던 자신을 반성함으로써 부끄러움 없는 삶에 대한 소망을 표현하고 있다. 다음 4행에서는 운명에 대한 인식과 투철한 역사 의식에서 비롯된 소명 의식을 표현함으로써 미래의 삶에 대한 다짐과 각오를 보여 준다. 마지막 행에서는 이와 같은 결의를 어둠과 바람 속에서도 결코 꺼지거나 흐려질 수 없는 외로운 양심을 의미하는 ‘별’의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 작품은 식민지 상황에 처해 있는 젊은 지식인의 고뇌와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표백(表白)한 시다. 그래서 더욱 진솔(眞率)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고백적인 시가 감상에 흐르거나 관념에 빠지기 쉬운데, 이 시는 적절한 상징과 시각적 심상을 활용하여 서정시로 승화시키고 있다. 

 

 

 

이해와 감상3

 이 시는 해방 후 간행된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모두(冒頭)에 놓여 참삶을 추구, 지향하는 윤동주의 모든 것을 대표하는 명시(名詩)이다. 윤동주는 식민지라는 암담한 현실 속에서 지성인으로서 겪어야 했던 정신적 고뇌와 아픔을 섬세한 서정과 투명한 시심(詩心)으로 노래한 시인이다. 그는 고요한 내면의 세계를 응시하려는 순결한 정신의 소유자요, 자신이 걸어야 할 삶의 길에 순응하고자 했던 인간이다. 그를 일제 말기라는 문학적 공백기에 민족적 의지와 양심을 지켜주던 대표적 시인으로 평가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의 시가 시대적 상황의 투시와 양심에서 배태된 '부끄러움'의 인식 때문이다.

 

 이 작품의 구조는 2연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시간의 변화에 따라 세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1연은 둘로, 즉 1∼4행과 5∼7행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단락은 과거 시제로 지금까지 화자가 살아온 생활의 고백이고, 둘째 단락은 미래 시제로 미래의 삶에 대한 화자의 신념의 표명이다. 셋째 단락인 2연은 현재 시제로 현재의 시적 상황의 제시이다. 결국 이 시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이며, 지금 현재는 어떠하다는 구조에 따라 시상이 전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의 배경은 별과 밤 하늘이다. 별이 빛나는 그 밤 하늘 아래 시적 화자인 '나'가 존재하고 있다. '밤'은 암울한 시대 상황이며 자아의 실존적 암흑 의식을 표상하고 있으며, '별'은 외로운 양심의 표상이자 구원(救援)의 지표로 희망과 이상 세계를 상징하고 있다. 이런 배경 속에서 화자는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 없기를' 희원(希願)하며, 도덕적 결백성과 순결성 때문에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고 있다. '별'과 대조가 되는 '바람'은 화자가 추구하는 참삶과, 지켜 오고 있는 양심을 흔들리게 하는 현실적 시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시에서는 우주 섭리(攝理)에 따라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에 충실하는 한편, '별을 노래하는 마음(이상 세계를 지향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죽어가는 모든 것과 조국과 민족의 고난을 포근히 감싸 안고자 했던 시인의 지극한 휴머니즘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특히, 마지막의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라는 시행은 그가 처한 암담한 현실 상황을 대변하는 동시에, 바람에 부대낄수록 더욱 밝은 빛을 발하는 별과 같이 자신의 이상도 빛날 것임을 암시하고 있어, 아직 채 완성되지 못한 24세 때(1941.11.20) 쓴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투철한 현실 인식과 뛰어난 자기 인식으로 드러나는 그의 인간적 성숙도를 짐작하게 해 준다. 그러므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28세의 젊은 나이로 후쿠오카 어두운 감옥에서 숨을 거둔 그가 하늘과 양심 앞에 조금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자 했던 번민과 의지의 결실인 이 시는, 우리 모두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귀중한 교훈을 주는 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이해와 감상4

 윤동주(尹東柱)가 지은 시. 1941년 11월 20일에 창작되었고 그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1948)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윤동주의 생애와 시의 전모를 단적으로 암시해주는 상징적인 작품이다. 


왜냐하면, 이 시는 윤동주의 좌우명격 시인 동시에 절명시에 해당하며, 또한 ‘하늘’과 ‘바람’과 ‘별’의 세 가지 천체적 심상(心像)이 서로 조응되어 윤동주 서정의 한 극점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서시〉는 내용적인 면에서 세 연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 연은 ‘하늘-부끄럼’, 둘째 연은 ‘바람-괴로움’, 셋째 연은 ‘별-사랑’을 중심으로 각각 짜여져 있다. 


 첫째 연에서는 하늘의 이미지가 표상하듯이 천상적인 세계를 지향하는 순결 의지가 드러난다. 바라는 것, 이념적인 것과 실존적인 것, 한계적인 것 사이의 갈등과 부조화 속에서 오는 부끄러움의 정조가 두드러진다. 


둘째 연에는 대지적 질서 속에서의 삶의 고뇌와 함께 섬세한 감수성의 울림이 드러난다. 셋째 연에는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서의 ‘진실한 마음, 착한 마음, 아름다운 마음’을 바탕으로 한 운명애의 정신이 핵심을 이룬다. 


특히,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라는 구절은 운명애에 대한 확고하면서도 신념에 찬 결의를 다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운명애의 결의와 다짐은 험난한 현실에서 도피하지 않고 운명과 맞서서 절망을 극복하려는 자기 구원과 사랑에 있어 최선의 방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절망의 환경일수록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자기자신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윤동주가 택한 자기 구원의 방법은 운명에 대한 긍정과 따뜻한 사랑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운명애의 길은 관념적으로 도출된 것이 아니라 진솔한 자아 성찰과 통렬한 참회의 과정을 겪으면서, 변증법적 자기 극복과 초월의 노력에 의해 마침내 획득되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참된 생명력을 지니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운명 감수의 태도가 아니라 그 극복과 초월에 목표를 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서시인 이 작품은, 시집의 전체적인 내용을 개략적으로 암시하고 있는 시이며, 존재론적 고뇌를 투명한 서정으로 이끌어 올림으로써 광복 후 혼란한 시대에 방황하는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에게 따뜻한 위안과 아름다운 감동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正音社, 1948), 韓國現代詩人硏究(金載弘, 一志社, 1986), 尹東柱論(金烈圭, 國語國文學 27, 1964), 윤동주론(金興圭, 창작과 비평 33, 1974), 윤동주의 문학사적 위치(吳世榮, 現代文學 244, 1975), 윤동주특집(나라사랑 23, 1976), 윤동주시와 시론의 반성(홍정선 외, 현대시 1, 1984).(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심화 자료

 

맹자(孟子)는 《맹자(孟子)》〈진심편(盡心篇)〉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다[(君子有三樂(군자유삼락)].

천하의 왕이 되는 것은 여기에 넣지 않다[而王天下不與存焉(이왕천하불여존언)].

 

양친이 다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 첫번째 즐거움이요[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부모구존 형제무고 일락야)].

우러러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보아도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요[仰不愧於天 俯不作於人 二樂也(앙불괴어천 부부작어인 이락야)].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得天下英才 而敎育之 三樂也(득천하영재 이교육지 삼락야)].

군자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으나 천하는 통일하여 왕이 되는 것은 여기에 들어 있지 않다[君子有三樂, 而王天下不與存焉(군자유삼락 이왕천하불여존언)].

 

 맹자가 말한 세 가지 즐거움 중에서 첫번째 즐거움은 하늘이 내려 준 즐거움이다. 부모의 생존은 자식이 원한다고 하여 영원한 것이 아니므로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써 즐겁다는 말이다. 두번째 즐거움은 하늘과 땅에 한점 부끄럼이 없는 삶을 강조한 것으로, 스스로의 인격 수양을 통해서만 가능한 즐거움이다. 세번째 즐거움은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즐거움으로, 즐거움을 혼자만 영위할 것이 아니라 남과 공유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맹자는 세 가지 즐거움을 제시하면서 왕이 되는 것은 여기에 들어 있지 않음을 두 차례나 언급하여 강조하고 있는데, 국가를 경영할 경륜도 없고 백성을 사랑하는 인자함도 없으면서, 왕도정치에는 귀도 귀울이지 않고 오직 전쟁을 통해서, 백성들의 형편이야 어찌 되든 패자가 되려고만 했던 당시 군왕들에게, 왕노릇보다 기본적인 사람이 되라는 맹자의 질책이었다.(출처 : 두산세계대백과사전) 

 

이 작품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구절을 찾아보고, 그 이유를 말해 보자. 

지도방법 : 이 활동은 학생들의 능동적인 감상을 권장하면서 문학의 아름다움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 보게 하는 활동이다. 그러므로 시의 전체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는 과정에서 학생 자신이 감동을 느끼는 구체적 대목을 짚어보게 하고, 그 이유를 스스로 생각해 보도록 유도하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문학적 취향과 감수성에 대해서도 인식할 수 있으므로, 교사는 학생들의 말하기 활동이 끝나면 적절한 반응을 통해 개별 학생의 감상과 취향에 자신감을 북돋워 줄 필요가 있다. 심지어 “그냥 좋아요.” 라고 대답하는 경우라도 가급적 긍정적인 조언을 해 줌으로써 문학을 가까이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예시답안 

1. “저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라는 대목이 가장 마음에 들어요. ‘바람’은 대게 시련을 의미하는 것일 텐데, ‘잎새에 이는 바람’이면 얼마나 작겠어요? 그런데 그런 것에도 괴로워한다는 것은 화자가 얼마나 도덕적으로 깨끗하고 순결한 사람인가를 잘 드러내고 있잖아요? 저도 이 화자처럼 깨끗하고 순수한 삶을 살고 싶어요.”

2. “저는 마지막 대목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라는 구절이 마음에 듭니다. 바람이 스치고 지나가도 흔들림 없이 밝게 빛나는 별처럼 화자 자신의 이상이라든지 삶의 자세 같은 것이 밝게 빛난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시련을 딛고 이겨 내는 꿋꿋함 같은 것이 느껴져서 정말 마음에 듭니다.”

 

 

언어의 속성 : 

 언어는 음악과 관련되는 리듬의 측면, 회화(繪畵)와 연관되는 이미지의 측면, 그리고 철학이나 역사 혹은 과학 등과 통하는 의미의 측면을 가지고 있다. 작가에 따라서는 이러한 언어의 어떤 측면을 강조하는가가 달라지기도 한다. 순수시가 리듬을 중시한다든지, 회화시가 이미지를 중시한다든지, 리얼리즘 시가 의미를 강조하는 것 등이 그 예에 해당된다.

 

리듬 : 잘 다듬어진 언어 표현 속에 들어 있는 음악적 자질

이미지 : 언어에 의하여 재현된 감각적 체험의 표상

의미 :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생각이나 느낌 

 

내재적 의미 : 작품의 감상 방법을 묻는 문제로 작품의 내재적 의미에 주목한다는 것은 작가, 독자, 현실 등 작품 외적 요소들과의 관계를 일절 배제한 채 작품 안에서 작품을 이루고 있는 언어의 의미와 그 언어의 유기적 관계를 분석하는 접근 방법이다.

 

(나)의 밑줄 친 부분은 (가)의 처음 두 행과 공통되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는 문학 작품으로 인정되고, (나)는 그렇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지도 방법 : 이 활동은 똑같은 생각이나 느낌을 언어로 표현하였더라도 모두 문학 작품이라고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해 보도록 하기 위한 활동이다. 바로 앞에서 학습한 대로 리듬, 이미지, 의미 등의 요소를 중심으로 생각해 보도록 지도한다. 

풀이 : 

(가)와 (나)의 두드러진 차이는 예술적 형상화의 여부일 것이다. (가)에서는 생각과 느낌을 직접 표현하지 않고 ‘잎새에 이는 바람’, ‘별을 노래하는 마음’ 등으로 구체적인 사물들을 통해 형상화하고 있다. 이에 비해 (나)에서는 예술적 형상화를 거치지 않고 생각과 느낌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려 하고 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 이것은 인생을 오래 살아 본 사람의 달관한 말이 아니다. 세상의 갖은 풍상을 다 겪어 본 나이 지긋한 사람이라면 감히 이렇게 말하지는 않는다. 세상은 불완전하며 갖가지 그늘과 어둠을 가지고 있다. 그것들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쉽사리 자신의 순수한 마음을 버리고 세속적 삶에 타협하게 한다. 그래서 그의 그런 부끄러움이 없이 살려는 의지가 더욱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다음 대중 가요의 가사를 문학 작품으로 볼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토론해 보자.

 

지도 방법 : 이 활동은 문학의 특성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한 활동이다. 문학과 비문학을 구별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며, 더구나 노래에서 시와 음악이 갈라져 나왔다는 점, 제시된 자료가 문학적 특성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는 점으로 보아 정답은 없다. 다만 학생들을 찬성과 반대의 입장을 취하는 두 개의 모둠으로 나누고 모둠별로 각자 논거를 확보하기 위한 협의를 충분히 거치도록 하는 과정에서 문학의 본질적 속성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생각해 보도록 한다. 

 

예시 답안 : 

학생 (갑) : 저는 이 노래 가사도 훌륭한 문학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사의 내용을 보아도 시에서 볼 수 있는 간결미나 운율적 표현, 압축성이라든가 예술적 형상화의 과정 등 모든 면에서 거의 차이를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라는 표현이 특히 마음에 듭니다, 삶의 고달픔에 시달린 화자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이 표현되어 있지 않습니까?

학생 (을) :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대중가요의 가사입니다. 물론 시의 흉내를 내고 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겉치레에 불과합니다. 중요한 것은 창작 동기가 아닐까요? 이 노래는 실연을 당했다거나, 뭔가 인생에 큰 실패를 경함한 사람의 넋두리에 불과합니다. 그런 것을 교묘하게 포장해서 대중에게 팔기 위해 만든 것이라는 얘기죠. 예술에서는 무엇보다 동기의 순수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시'에 대한 다른 해석 

 개화이전의 우리 조상들은 성조기를 화기(花旗)라고 불렀던 모양이다. 그 별 모양을 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고구려 벽화의 성좌도(星座圖)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원래 한국의 별은 단추처럼 둥근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제는 아이들이 먹는 별사탕에서 장군들의 계급장에 이르기까지 그 별표 모양은 우리에게도 아주 친숙해졌지만 그것이 인체(人體)를 도안화한 것이라는 사실은 아직도 생소한 것같다. 펜터그램(☆표)은 위로 솟은 머리와 수평으로 올린 두 손, 그리고 양쪽으로 벌린 두 다리의 모습을 표시한 것으로 人體와 天體(별)를 동일시하고자 한 인간이 비원을 담고 있다. 그러고 보면 별표 밑에는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칠성 싱앙이나 [별 하나 나 하나]라고 노래한 우리 민요의 정서와도 통하는 구석이 있다.

 윤동주의 '별'(시) 읽기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사용해 온 틀은 기독교적 사상이 아니면 일제에 대한 저항시인이었지만, 실제로 그 [서시]나 [별 헤는 밤]에 나타난 것들은 그보다 훨씬 고태형(古態形)을 지닌 별이다. [서시]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의 인유(引喩)로부터 시작하고 있는 것만 해도 그렇다. 고전을 들출 것도 없이 그것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무엇을 다짐하거나 자신의 결백성을 주장할 때 곧잘 쓰는 말이다. 그러니까 그 하늘은 특정한 종교성보다는 소박한 민간신앙의 경천(敬天)사상이 깃들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神보다도 하늘-땅으로 대응해 온 신화적 공간의 무대에 가까운 그 하늘인 것이다.

 

 그러므로 1-2행의 하늘 다음에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 했다]의 3-4행이 짝을 이룬다. 하늘은 땅, [우러러]보다는 [굽어보다]로 그 공간을 교체하면 잎새에 이는 바람이 출현하게 된다. 그래서 하늘을 우러를 때의 그 무구한 마음(부끄러움이 없기를)이 땅을 향할 때에는 그 잎새에 이는 바람을 보고 괴로워하는 마음으로 변한다.

 

 그리고 다시 땅에서 하늘로 공간을 바꾸면 그 잎새는 별이 되고 그 괴로움 역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반전된다. 이렇게 하늘-땅으로 교체되는 윤동주의 시선과 마음은 마치 정교한 대위법(對位法)으로 구성된 음악처럼 [하늘의 별]과 [땅의 잎새]를 완벽하게 연주해 낸다.

 

 그래서 [하늘]은 [별]로 응축되고, [잎새]는 [모든 죽어가는 것]들로 대치되면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5-6행)라는 새로운 하늘-땅의 관계가 나타난다. 그러면서 놀랍게도 [괴로워했다]가 [사랑해야지]로 바뀐다. [잎새]와 [모든 죽어가는 것]들은 동격인데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감정은 부정에서 긍정으로 역전되어 있는 것이다. 괴로움이 사랑으로 바뀌는 드라마는 지금까지 하늘과 땅, 별과 잎새의 대립항을 이룬 병렬구조를 통사축의 사슬관계로 눈을 돌리게 한다. 즉 지금까지 관계없이 보였던 ①부끄럼이 없기를 [다짐하다] ②풀잎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다] ③별을 [노래하다] ④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다]가 일련의 계기성(繼起性)을 지닌 사슬구조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래서 [서시]의 공간구조가 하늘, 땅, 바람의 삼원구조로 되어 있듯이 그 시간구조 역시 과거(1-4행[괴로워했다]), 미래(5-8행 [[사랑해야지] [걸어가야겠다]), 그리고 현재(9행 [스치운다])로 삼등분된다.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7-8행)는 직설적인 산문적 표현에도 불구하고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길]은 바로 [서시]의 병렬구조와 통사구조를 결정짓는 중요한 매개항으로 공간(하늘-땅)과 시간(어제-내일)을 통합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길은 공간에 속해 있지만 화살표와 같이 방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과거에서 미래로 가는 시간성을 표시하기도 한다. [나에게 주어진 길]이라고 할 때는 과거의 시간을 나타내지만 [걸어가야겠다]라고 할 때의 그 길은 [사랑해야지]와 마찬가지로 의지와 행동을 내포하고 있는 미래의 시간으로 출현한다.

 

 그 길은 공간성으로 볼 때에는 땅(잎새)에서 하늘(별)로 오르는 언덕길 같은 것이 될 것이며, 시간성으로 볼 때에는 과거(괴로움)에서 미래(사랑해야지)로 향하는 그 도상(途上)의 현재가 될 것이다.

 

 그래서 [서시]는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로 끝맺고 있다. 일행으로 단독 연(聯)을 이루고 있는 이 시행은 본문으로부터 외롭게 떨어져 나가 앉은 섬처럼 보인다. 앞의 시들이 과거나 미래형으로 되어 있는데 비해서 이 마지막 연(聯)만이 [스치운다]로 현재형이다. 그냥 현재가 아니라 [오늘밤에도]라는 [도]의 조사가 의미하듯이 그것은 끝없이 반복하고 있는 [오늘]인 것이다. 지금 나의 눈앞에 있는 것은 밤과 바람, 그리고 별이다. 공교롭게도 모두가 [?]음으로 시작되어 있는 이 세가지 단어들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로 얽혀있다.

 

 어둠과 빛은 대립된 개념이지만 별빛은 밤의 어둠 없이는 빛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동전의 양면처럼 분리할 수 없는 관계로 밀착되어 있다. 그리고 별빛과 결합된 어둠은 부정축에서 긍정축으로 그 의미의 화학변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바람 역시 그렇다. 땅의 잎새와 하늘의 별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서로 접촉할 수가 없지만, 그 단절을 메워주는 것이 바로 그 바람이다. 풀잎에 이는 바람은 저 무한한 높이의 별들을 스치는 바람이기도 한 것이다. [일다]와 [스치다]라는 한국말이 이렇게도 절묘하게 어울린 예를 우리는 일찍이 보지 못했다. 밤을 통해서 별을 만나듯 바람을 통해서 풀잎은 별과 만난다. 하늘과 땅사이를 매개하고 있는 바람은 [길]과도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그것은 소멸의 잎새와 불멸의 별 사이의 바람부는 공간, 그리고 끝없이 되풀이 되는 [오늘]이라는 그 도상성(途上性)이다. 하지만 '괴로워하다'가 '노래하다'로, '노래하다'가 '사랑하다'로, 그리고 '사랑하다'가 '걷다'(실천하다)로 바뀌어가는 행동은 별과의 스침을 통해서 가능해진다. 별은 바람과 밤의 부정적 상황을 긍정적으로 들려주는 낮은음자리표이며 지상적인 언어의 네가를 반전시키는 감도높은 인화지인 것이다. 

 

 만약 윤동주의 별을 일제에 대한 저항의 시각으로만 바라보면 어떻게 될 것인가. [잎새]는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고통받고 있는 한국민족이 될 것이고, 바람과 그 밤은 일제의 압제(壓制)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별은 광복의 별이다. 그렇게 되면 [모든 죽어가는 것들]에 대한 사랑은 민족애(民族愛)로 축소되고 만다.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는 말 역시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맹세로 들린다.

 

 반대로 기독교적인 시각에서 보면 잎새와 [모든 죽어가는 것]들은 원죄를 지은 모털(Mortal)로서의 인간이 되고 그 안에는 일제 관헌들까지도 포함된다.

 

 그러므로 [사랑해야지]라는 말은 기독교의 박애(博愛) 정신과 직결되고 그 길 역시 신앙의 길이 된다. 그 결과로 종교와 정치는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별을 만들어 내고 만다. 그 어느 시각으로 보아도 우리가 [서시]에서 읽는 그 별 이야기와는 분위기가 맞지 않는다. 그러나 인체의 모양이 그대로 빛나는 천체(별)의 모양과 하나가 되는 펜터그램이 그 도형처럼 작은 잎새들이 하늘의 별자리가 되어 빛나는 신화의 마당에서는 그런 모순들이 모두 사라진다.

 

 그리고 그 [서시]는 정치론이나 종교론이 아니라 고통에서 사랑을, 그리고 어둠에서 빛을 탄생시키는 희한한 시의 마술… [별을 노래하는 마음]의 시론(詩論)이 되는 것이다. (출처 : 이어령, '시 다시 읽기') 

 

 

부끄러움의 시학(詩學) 

 윤동주가 도쿄에 가기 전에 쓴 작품 중에서 서시(序詩)가 있다. 이 작품은 아마도 그의 도덕적인 의미를 시화(詩化)한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이와 같은 결의는 미상불 비범한 것일 수밖에 없는데, ‘한 점의 부끄럼’도 용납할 수 없다는 순정함은 보통 사람이 결의할 성질의 것이 안 된다. 이 한 구절에서 윤동주의 작품에도 나타난 바, 세계 속에 있는 ‘나’의 도덕적 정립은 비상한 엄숙성을 수반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된다. 가령 ‘잎새에 이는’ 자연스런 바람을 보면서도 자신의 도덕적인 견실과 결백함이 추호라도 흐트러질까 염려하는 세심한 배려가 섬려(纖麗)한 감각으로 시화되고 있다. ‘잎새에 이는 바람’의 생동적 심상은 미동의 흐트러짐도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그의 삶 전체에 걸친 준엄한 정신적 태도인데, 그것을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이라는 시각 심상을 통해, 엄숙성을 생경하지 않으면서 아름답게 감각화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이와 같은 견실함, 결백함, 순정(純正)함은 그만큼 어려운 고행적 결의이며, 흔히 있는 결의와는 상당히 다른 진지성으로 일관되어 있다고 하겠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이 노래에서 ‘별을 노래하는 마음’은 그의 신앙적인 경건함을 느끼게 하는데, 실제로 우리의 가시적(可視的) 세계에서 높고 아름답고 멸(滅)하지 않는 심상의 대표적인 하나는 어두운 밤 하늘에 빛나는 별이라고 생각된다. 이것을 미루어 그의 도덕적 결의는 거의 신앙적 경지에까지 도달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고, 이에 다라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의 종교적 사랑이 무리 없이 발로된다. 이러한 사랑이 아니었다면 윤동주는 아마도 그렇게 괴로워하지도 고독과 싸우지도 않았을 것이며, 내면화된 자기 수행의 준엄한 길을 택하지도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는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는 담담하면서도 속찬 다짐을 다시 한다. 이 작품은 곧바로 ‘참회록’의 부끄러움에로 연결되며, 세계를 자기화하는 거인적 주체 의식의 발로이기도 하다. 실상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은 예수나 부처와 같은 종교적인 사랑이다. 그러나 이 시인은 그것을 마음속으로 깊이 다짐하고 겸허하게 실천할 뿐이지 결코 허황하거나 과장된 수사를 거기에 용납하지 않는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에서 지고한 불멸의 가치로 지향하려는 그의 태도가 천명(闡明)되어 있다. 이 시대의 민족적인 부끄러움을 극복하려는 정신주의가 드러난다. 별은 자아가 승인하는 지고한 결정체이고, 그 빛은 윤동주의 불멸에의 의지를 상징한다고 생각한다.[출처 : 신동욱, ‘하늘과 별에 이르는 시심(詩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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