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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록(懺悔錄) / 윤동주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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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록(懺悔錄) / 윤동주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滿)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懺悔錄)을 써야 한다.

―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요점 정리

지은이 : 윤동주(尹東柱)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율격 : 내재율

성격 : 반성적. 고백적, 참여적, 자기 성찰적, 미래지향적

표현 : 역사 의식의 표출. 내면적 자아와 대응. 자기 고백적 자세. 우주적 상상력

심상 : 상징적

어조 : 독백적 어조로 자기 성찰적 삶의 태도를 진솔하게 표현한 작품으로 이 시의 전편에 흐르고 있는 정서는 '욕됨, 부끄러움'이다.

구성 : 시간의 흐름에 따른 전개

 1연 :  망국의 욕된 자아(자기 확인) - 암울한 현실 속에서 꿈도 없이 살아가는 자신에 대해 자책하고 반성함.

 2연 : 참회의 자세(현재의 삶) - 자신의 삶을 한 마디 참회의 글로 대신하려는 각오를 다짐

 3연 : 참회의 자세(미래의 삶) - 암울한 현실 속에서 미래의 희망에 대한 다짐과 역사 발전에 대한 신뢰를 표출함.

 4연 : 성찰을 위한 노력(자기 정체) - 끊임없는 자기 성찰의 행위로써 강인한 의지를 다짐.

 5연 : 자아의 확인(내면과 일치) - 미래를 향한 시적 화자의 운명적인 삶.

제재 : 녹이 낀 구리거울. 자아의 생활

주제 : 자기 성찰을 통한 순결성 추구. 역사 속에서의 자아 성찰과 고난 극복 의지, 역사 속의 자신의 삶에 대한 참회와 밝은 역사에 대한 염원. 식민 치하에서 욕된 삶을 영위하는 자신에 대한 자책과 울분, 회의, 고독을 드러냄.

출전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

 

 

내용 연구

파란 녹(부정적 이미지로 역사의 쇠망, 흐려진 민족혼)이 낀 구리 거울 [낡고 퇴락한 청동 거울로 '거울'은 자아 성찰의 매개물로 망국의 부끄러운 역사적 유물이자 망국의 현실을 일깨우고 있음.]속에(식민지로 전락해 버린 치욕스런 민족의 현실)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욕되게 살아가는 망국민으로서의 자아)[파란 녹이 낀 - 남아 있는 것은 : '구리 거울'은 '역사'를, '녹'은 '쇠망(衰亡)'을 뜻하며, '얼굴'은 역사의 거울 속에 아직도 소멸하지 않고 남아 있는 욕된 자아상을 의미한다.]

어느 왕조의 유물[선대(先代)의 인류가 후세에 남긴 물건. 유품(遺品)으로 민족사와 관련해서 떠올린 자아상]이기에(제대로 전개되지 못한 우리의 역사)

 

이다지도 욕될까.[어느 왕조(王朝)의 - 이다지도 욕될까. : 여기에서 '유물'은 '구리 거울'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얼굴'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일제 강점기라는 욕된 세상을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역사적인 반성과 부끄러움을 나타낸 것이다.] - 망국민으로서의 부끄러운 자아 인식 

 

 

나는 나의 참회(懺悔 : 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깊이 뉘우치는 것)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줄이자',  '닦아보자'는 일상적인 어법에 어긋나지만 자신에게 청유형을 씀으로써 시적 화자의 내적 의지나 다짐 또는 각오를 한층 더 강하게 나타내 주는 효과를 줌 / 청유형은 동사의 활용형의 하나로 화자가 청자에게 같이 행동할 것을 요청하는 뜻을 나타내는 종결 어미]

― 만(滿) 이십사 년 일 개월을(과거의 삶 전체)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민족과 역사 앞에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시적 화자 자신의 삶에 대한 부끄러움이 묻어나는 고백이다. 이와 같은 고백을 하도록 한 시어는 '욕될까']. - 부끄럽게 살아온 지난 삶에 대한 반성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내일이나 - 즐거운 날에 : 현재까지 자신이 아무 기쁨 없이 살아 왔던 '만 이십사 년 일 개월'과 대비되는 구절이다. '즐거운 날'이란 현재의 자성적(自省的)인 참회 자체가 반성될 수 있는 날로 빼앗긴 나라를 되찾은 '광복의 날'을 가리키는 것으로 부끄러움을 고백하지 않아도 될 그 날로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잘 드러나 있음]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懺悔錄)을 써야 한다.(간단하고 분명하게 내 삶을 참회하자. 새로운 삶에 대한 다짐의 계기가 됨) [2연의 ‘참회의 글’과 3연의 ‘참회록’은 그 의미가 다르다. 즉, 2연에서는 24년의 생애를 돌아보며 반성하는 현재의 참회록을, 3연에서는 현재의 무기력한 삶에 대한 반성하는 미래에 쓸 참회록을 말한다. 이렇게 미래에 이르러서 과거 젊은 날에 참회의 글을 썼던 자신에 대해 참회록을 쓴다는 설정을 통해 현재의 삶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던가.(오늘의 고백에 대한 미래의 참회 - 미래의 어느 순간에 뒤돌아보아도 결코 부끄럽지 않도록 현재의 참회가 진정한 것이 되도록 다시 말해서 실천과 노력이 뒤따르는 것, 어느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되도록 해야겠다는 다짐이다. 다시 말해서 나약하고 소극적이고 무기력한 삶을 살아온 데 대한 부끄러움이 담긴 고백으로 역사적인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자책감) - 현재의 참회가 진정하고 올바른 참회가 되도록 하겠다는 다짐. 

 

밤(거울을 닦는 시간적 배경인 '밤'은 시적 화자가 부끄러운 자아를 인식하고 반성하는 시간이면서 한편으로는 어두운 현실, 즉 암담한 시대 상황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즉, '밤'은 시적 화자의 자기 성찰의 시간이면서 우리 민족이 처한 암울한 시기로 의미가 확장된다. 이 시간은 자아의 참모습이 나타나는 때로, '그 어느 즐거운 날'과 대립된다 또한 이 시의 화자가 온몸을 다하여 '밤'에 거울을 닦는 모습은 현재의 암담한 상황을 극복하고 맞이하게 될 미래를 위한 준비로 볼 수 있다. / 시대 상황의 인식에서 출발한 현실 세계를 상징하는 시어)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전통적으로 거울은 자신을 비추어 보는 대상, 즉 '자아성찰'의 의미를 지녀 왔다. 이규보의 '경설'은 자아와 사물의 본질에 대한 통찰에 대해 쓴 수필이고,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의 거울은 자아성찰의 매개체이고, 이상의 거울은 현상적 자아와 본질적 자아의 만남과 단절의 매개체이며, 노천명의 사슴에서의 '물 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는 행위는' 자아 도취와 향수를 드러내고, 윤동주의 '자화상'에서 우물은 자아 성찰의 매개체이다.]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밤이면 밤마다 - 닦아 보자. : 맑고 순수한 자아를 확인하기 위한 반성적 행위로 자아 성찰의 철저성을 구체적으로 드러낸 구절로, 여기서 '거울'을 닦아야 한다는 것은 나를 닦아야 한다는 말로, 투철한 자아 성찰(自我省察)의 자세를 가리킨다. 그리고 자기 성찰의 몸부림이 감각적으로 형상화된 부분이다.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는 온몸 또는 혼신의 힘으로 각성하자는 뜻으로 제유(提喩)적인 표현이다. 다시 말해서 거울은 파란 녹이 낀 거울인데, 자신을 제대로 비추지 못하는 거울을 성심성의껏 닦는 행위는 자기 성찰의 성실함으로 이해된다. 그것이 개인적인 윤리의 문제만이 아닌 민족의 문제이므로 보다 성실히 손과 발로 닦아야 하는 것이다. / '닦아 보자'라는 말은 ' 줄이자'라는 말처럼 어법에는 어긋나지만, 자신에게 청유형을 씀으로써 자신에 대한 내적 의진 다짐·각오를 한층 더 강하게 나타내 주는 효과를 나타낸다.] - 처절할 만큼의 자기 반성의 노력[자아성찰의 의지가 두드러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 유성(流星)이 대기 중에서 다 타지 않고 지구상에 떨어진 것. 별똥별로 불행의 역사, 슬픈 운명 암시, 혹은 시대적 배경을 참고할 때 절망과 암흑의 상태로 볼 수 있음. 거듭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둡고 답답한 세계를 마주해야할 운명을 슬퍼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순수함, 밝음, 동경의 대상으로 보는 견해도 있음) 밑으로[운석 밑 : 결국 암담한 시대 상황을 의미]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시적 화자의 모습으로 고독한 자아상이 절실하게 표현된 대목)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현재의 거울에 비친 미래의 모습]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사람의 뒷모양 : 미래의 시점에서 바라본 욕된 역사에 대한 책임감과 참회에 잠긴 외로운 자아의 표상이다. '슬픈 사람'은 시대적 상황에 의해 표면에서 사라져 가는 내성적인 인간의 모습을 가리키고, '뒷모양'은 즐거운 날인 미래의 시점에서 바라본 참회에 잠긴 자아를 가리킨다. 그런 점에서 '어느 운석'을 현재의 자아가 몹시 갈망하고 동경하는 세계를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 부분은 내면의 자아와의 일치를 드러내는 것으로 보고, 윤동주의 다른 시에 나오는 '별'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운석'을 서정적 자아가 처한 상황으로 4연의 '밤'이라는 말과 함께 부정적 이미지인 어두운 현실(암흑의 시대적 상황)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말로 보며, '슬픈 사람'으로 나타나는 것은 자아 성찰의 결과이며, 욕된 삶에서 의욕적이고 도덕적인 삶으로의 이행을 의미한다고 본다. 혹은 끊임없는 자아 성찰의 과정은 분명 뼈를 깎는 듯한 힘든 시간일 것임을 예언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으로 결국, 화자는 자아 성찰을 통해 암담한 현실을 홀로 극복해 나가는 자신의 슬픈 모습을 보는 것이다.]- 순교자적인 삶을 살아가기로 다짐하는 모습 

 

서정적 자아가 거울을 통해 자신을 보는 태도는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고 있으며, 서정적 자아는 역사와 사회 속에서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확인하는 사회적, 역사적 사명 의식을 보이고 있다.

이상의 '거울'은 자아 분열과 관련된다면, 윤동주의 '거울'은 투철한 역사 의식을 동반한 끊임없는 자아 성찰과 관련된다. 그리고 둘의 공통점은 자아를 찾으려는 자세라고 볼 수 있다.

이 시에서 최종적으로 발견되는 자아상은 '인간의 근원적, 운명적인 고독과 비애를 지닌 모습'

 

 

학습 활동 풀이                              

1 이 시를 읽고 난 뒤 느낄 수 있는 정서는 어떤 것인지 다음 시구의 의미를 통해 확인해 보자.

이끌어 주기 : 시구의 의미를 통해 작품의 정서를 확인해 보는 활동이다. 이 시가 자전적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감안할 때 제시된 시구들은 화자의 과거, 현재, 미래의 삶에 대한 반성의 내용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도록 한다.

 

예시답안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 시적 화자는 과거 자신의 삶 전체를 참회하고 있다. 즉 자신의 과거에 대한 부끄러운 반성이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던가, : 시적 화자는 현재의 상황 속에서 무기력하게 절망하고 있는 자신을, 미래의 즐거운 날에 또다시 참회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근본적인 의미에서의 참다운 참회가 아닌 ‘부끄런 고백’일 뿐으로 현재에 대한 반성이다.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속에 나타나온다. : 미래에서 바라본 시적 화자의 현재 모습으로 참회에 잠긴 시적 화자를 가리킨다. 즉 미래에 대한 자아 성찰의 부분이다.

 

2 이 시에 나타난 화자의 고민이 개인적인 것인지 사회·역사적인 것인지 판단하고,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말해 보자.

이끌어 주기 : 문학의 윤리적 기능이란 곧 작자의 인생관, 가치관에 대한 이해를 통해 독자가 그 작품에서 제기된 삶의 윤리 의식을 내면화할 수 있는 기능을 말한다. 이때 작자의 인생관이나 가치관을 형성하는 요인으로서 그가 처한 시대적 상황이 중요함을 인식하도록 한다.

 

예시답안 :

  이 시에 드러난 시적 화자의 고민은 사회ㆍ역사적인 것이다. 이는 일제 말의 암흑기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자신을 돌아보고, 그 인식을 내면화한 결과이다. 1연에서는 역사적 자화상에 대한 자괴감이 두드러지게 표현되고 있고, 시적 화자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반성 및 성찰이 작품의 주제를 이룬다.

 

3 조사ㆍ탐구  구성ㆍ창작  작자가 이 시를 쓴 시대적 상황에 대해 조사해 보고, 자신이 그 시대에 살면서 겪었을 법한 일을 한 가지 가상해서 그때의 심정을 떠올려 한 편의 시나 일기로 써 보자.

 

이끌어 주기 : 일제 말기는 수탈과 억압이 극심한 시대 상황이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자신이 당시의 상황에 처해 있었다면 어떤 일을 겪고 어떤 생각을 하였을지 상상해 보도록 한다.

 

예시답안 :

  시대적 상황 : 식민 통치의 초기부터 일본은 자국의 경제적 이익과 군수 물자 공급을 위해 한국을 착취의 대상으로 여기고 갖가지 악랄한 수탈 정책을 펼쳤다. 1930년대 전후에는 더욱 국수주의적인 성향을 띄면서 만주사변 등을 일으키기에 이르렀다. 이후 한반도에서의 식민 통치 정책은 날이 갈수록 혹독해졌으며, 1938년 소위 '국가 총 동원령', 1939년 '육군 특별 지원 병령' 등을 발표하여 한국민을 노력 동원, 전쟁 등에 내몰 준비를 하고, 1940년에는 ‘창씨 개명령’을 내림으로써 한민족의 민족혼을 뿌리채 흔드는 크나큰 상처를 안겨 주었다. 이러한 모든 정책은 근본적으로 한국민의 민족 정신을 말살하여 노예화하려는 계산에서 나온 것이었다. 더 나아가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1941년 ‘국민 근로보국 협회령’, 1943년 ‘강제 징병제’,1944년 ‘결전 비상 조치 요강’등으로 자신들의 전쟁터로 한국민을 내몰며 말기의 단말마적 악행을 서슴치 않았다.

 

 

1941.4.2.

 오늘 선생님께서 또다시 창씨 개명에 관한 말씀을 하셨다. 창씨를 하지 않는 아버지들은 불령선인(不逞鮮人)이며, 그 집안의 자손들은 더 이상 학교를 다닐 수 없다고 하셨다. 아버지가 가장 걱정하시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조상에 죄를 짓는다는 이유로 창씨를 하지 않고 버티어 오셨지만 나와 동생의 교육 문제 때문에 괴로워하시는 것 같았다.

 

 이제 친구들은 반 이상 이름을 바꾸었다. 병식이도, 선재도…… 이제 그들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나도 빨리 이름을 바꾸지 않으면 전학을 가야 할지도 모른다. 아마 이름을 바꾸지 않는다면 이 학교를 계속 다니는 건 어려울 것이다. 내가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도 자식 때문에 걱정하는 부모님 심정은 어떠할까? 양심에 따라 산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이해와 감상

이 시에는 우리 정신사적 흐름의 주류(主流)와는 다른 정신 세계가 깃들여 있다. 그것은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마음, 곧 참회의 정신이다. 이 시의 핵심적인 시상(詩想)을 이루는 거울의 심상을 생각해 보면 곧 이해될 것이다.

 

 한국 문학사의 거울로 오래 된 것은 신라 헌강왕(憲康王)의 '앵무가'에 나오는 것이며, 그것도 자기 애착, 자홀감(自惚感)의 거울이다. 노천명의 '사슴'의 거울(물)도 자홀감의 거울이며, 이상의 거울도 만남과 자아 회복이 불가능한 가짜 거울이다. 그런데 윤동주의 '구리 거울'은 참회의 거울이므로 진짜 거울이다.

 

 지사혼(志士魂)이나 지절(志節) 정신은 남의 허물을 통렬히 지적하며 자기 행위의 정당성을 옹호하기에 신명(身命)을 건다. 그런데 '참회'의 정신은 남을 탓하지 않는다. 잘못된 모든 일이 다 자기의 허물 때문임을 고백한다. 이 시의 정신사적 의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시는 '자기 응시와 성찰'을 통해 망국민(亡國民)으로서의 자신의 무력한 모습에 부끄러워하고 참회하는 시인의 내면을 잘 보여 준다. 1연은 망국민의 욕된 자화상을 표현하고 있으며, 2연에서는 시적 자아는 자신의 삶 전체를 참회하고 있다. 그러나 3연에서 시적 자아는 현재의 상황 속에서 무기력하게 절망만 하고 있는 자신을 미래의 즐거운 날에 또 다시 참회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시적 자아는 현재의 참회가 근본적인 의미에서 참다운 참회가 아님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단지 그것은 자성적인 삶의 내면성을 확보한 '부끄런 고백'일 뿐이다.

 

 이 시에서 진정한 의미의 참회는 현재의 자성적(自省的)인 참회 자체가 반성되어야 함을 보여 준다. 그것은 4연과 5연을 통해서 선명한 이미지로 드러난다. 흐린 거울을 전심 전력으로 닦아 낸다는 시적 자아의 진술은 자아 성찰의 성실성을 구체적으로 느끼게 한다. 그리하여 시적 자아는 현실의 자아를 냉정한 시선으로 응시하면서 고독하고 슬픈 자화상을 확인한다. 한편, 이 시의 핵심적 시상(詩想)인 '거울'의 이미지는 자기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는 것으로, 일제 강점기 시인들의 '자화상'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은 미래의 행위를 현재화하고 있다. 즉, 이 시는 현재의 삶의 의미에 대한 참회 의식과 미래의 즐거운 날에 현재를 또다시 참회해야 하는 복합적인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3연 2행의 '써야 한다'와 마지막 행의 '나타나온다'라는 현재형은 '써야 할 것이다'와 '나타나올 것이다'로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가 현재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시인의 미래에 대한 확신이 당위의 차원에서 표출되고 있음을 말해 준다.

 

 한편, 이 작품에서 '슬픈 사람의 뒷모양'은 모호하다. 거울 속에는 앞모습이 나타나는 것이 과학적 사실인데도 불구하고 시인은 분명히 '뒷모양'이라고 했다. 이것은 현재에서 미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미래에서 현재를 생각한 것이다. 그러기에 미래의 영광스런 자아가 된 입장에서 현재의 자신을 생각하니까 현재의 실존은 '슬픈 사람'이고, 전도된 시간적 양상에서 앞모습이 아닌 '뒷모양'이 거울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해와 감상1

 윤동주는 이상(李箱)과 더불어 '거울 보기'를 보여 주는 대표적 시인이다.

 이상(李箱)이 지적인 태도로 거울을 들여다보며 자아의 분열된 상태를 비정(非情)한 응시(凝視)를 통해 시화(詩化)한 반면에 윤동주는 거울을 통해 내면의 자아를 응시하고 현상적 자아와 내면적 자아의 간극(間隙)만큼 그 불일치(不一致)의 부끄러움을 느끼며 내면적 성숙을 위한 자아의 진정한 성찰을 보여 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윤동주의 시는 진지한 내면적 고백의 어조가 차분하게 드러난다.

 

 이 시도 '거울 보기'의 하나인 것이다. 먼저 이 시의 대칭적 구조를 살펴보자.

      녹이 낀 구리거울 (A)  ---  녹을 닦아 낸 거울 (B)

      (A)에 비친 나         ---  (B)에 비친 나

 

 위의 구조에서 좌항은 변증법적 극복을 통해 우항으로 지향된다. 이 극복은 '거울 보기'로 실현된다. 이 거울 닦기는 밤이면 밤마다 지속되는 외롭고 고통스런 일이며, 전심 전력으로 임해야 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한 극복의 도정인가? 그것은 A의 부정적 의미를 제거하는 일이며, 동시에 B를 위한 목표 때문이다.

 

 이 시는 참회라는 자기 반성을 모티프로 한다. 망국의 식민지 지식인, 그것도 조국을 떠나 만주 땅에서 우리 민족의 모순을 그대로 안고 살아가야 하는 욕된 자아의 정체와 끊임없는 내적 성찰을 통해 갈등의 내외적인 자아가 통일을 이루는 화합의 장면을 보여 준다.

 

 이 시는 서정적 자아가 '거울'이라는 매체를 통해 망국에 처한 자신의 모습을 조망하는 데서 출발한다. 푸른 녹이 낄 정도로 방치되고, 무관심했던 삶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며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이라는 자아의 삶의 기간에 대해 다소 처량한, 그러나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처럼 참회의 내용은 짧다. 그리고 이렇게 가다가는 미래의 내 모습도 결국 또 참회록을 쓸 상황이 되고 말 것이라는 위기감도 드러나 있다. 내일이나 모래의 '즐거운 날'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 자세이면서 삶의 반전을 꾀하는 부분이다. 다시 또 이러한 다짐 속에 암담한 현실의 밤을 자신을 성찰하는 고백 노력으로 지새운다. 성찰의 매체가 된 거울을 닦음으로써 욕된 자아와 결별하고 도덕적인 자아를 만나려는 것이다. 손바닥 발바닥이 드러내듯 온몸으로 노력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슬픈 사람은 상황에서 비쳐진 모습이다. 그리고 그는 빛을 잃은 우주 공간의 운석 위에 있다. 자신의 내적 성찰을 통한 사람은 도덕적이다. 희망을 예비하는 일은 이렇게 도덕적이어야 한다. 거울 속의 나는 적극적 의지의 자아이며 내적 갈등이 해소된 모습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미래의 행위를 현재화하고 있다. 즉, 이 시는 현재의 삶의 의미에 대한 참회 의식과 미래의 즐거운 날에 현재를 또다시 참회해야 하는 복합적인 의식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3연 2행의 '써야 한다'와 마지막 행의 '나타나온다'라는 현재형은 '써야 할 것이다'와 '나타나올 것이다'로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가 현재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시인의 미래에 대한 확신이 당위의 차원에서 표출되고 있음을 말해 준다.

 

 한편, 이 작품에서 '슬픈 사람의 뒷모양'은 모호하다. 거울 속에는 앞모습이 나타나는 것이 과학적 사실인데도 불구하고 시인은 분명히 '뒷모양'이라고 했다. 이것은 현재에서 미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미래에서 현재를 생각한 것이다. 그러기에 미래의 영광스런 자아가 된 입장에서 현재의 자신을 생각하니까 현재의 실존은 '슬픈 사람'이고, 전도된 시간적 양상에서 앞모습이 아닌 '뒷모양'이 거울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해와 감상2

 이 작품은 윤동주의 다른 시들처럼 자아 성찰과 자기 반성의 태도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윤동주 시에 나타나는 '부끄러움의 미학'은 개인의 철학적이고 윤리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일제 말 암흑기를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고민하는 역사적 실존으로서 자신을 돌아보고, 그 인식을 내면화한 결과라는 점에서 시대적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반성적 태도가 삶에 대한 윤리적 결단과 의지의 표명으로 승화됨으로써 그의 시는 일제 말 저항시로서의  가치를 얻게 되는 것이다.(출처 : 한계전 외 4인 공저 '블랙박스 문학')

 

 

심화 자료

 

윤동주와 '부끄러움'의 미학 

 윤동주의 시를 두고 저항시라고 보는 견해와 더불어 최근에는 자아 성찰의 내면적 고백의 시라는 관점이 제기되고 있다. 이 중에서 '부끄러움'은 후자의 관점에 따른 것이다. 즉, 윤동주는 일제 강점기 양심 있는 지식인의 고뇌를 '부끄러움'의 미학으로 극복하여 식민지 후기의 무질서한 정서에 하나의 질서를 부여한다. 그의 부끄러움의 미학은 자신과 생활에 대한 애정 있는 관찰, 그리고 자신이 지켜야 할 이념에 대한 순결한 신앙과 시의 형식에 대한 집요한 탐구의 결과이다. 그의 부끄러움의 미학은 자신의 욕됨, 미움, 자신에 대한 가엾음과 부끄러움 등의 양상으로 나타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윤동주 시의 부끄러움은 그로 하여금 그가 가야 할 길을 가게 하는 자각의 가장 높은 심적 계기를 이룬다는 점과, 자기 혼자만 행복하게 살 수 없다는 아픈 자각의 표현이라는 점이다. 

 

이상의 '거울'에 나타난 '거울'과 윤동주의 '참회록'에 나타난 '거울' 

 현대시에서 거울이 소재로 활용된 예는 이상의 '거울'과 윤동주의 '참회록' 등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상의 '거울'에서는 거울이 현실을 거꾸로 비춘다는 속성을 이용하여 '거울 속의 자아'와 '거울 밖의 자아'를 만나게 하는 매개체임과 동시에 그 둘의 분열과 단절을 인식하게 하는 도구가 된다. 윤동주의 '참회록'에서의 거울은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이라는 역사적 유물로 설정됨으로써 시적 화자의 자신은 물론 민족 공동체와 역사로까지 그 범위가 확장되어 그것들을 성찰하게 하는 매개체가 되며, '밤이며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라고 하여 철저한 자기 성찰과 반성을 다짐하는 매개체로 등장하게 된다. 
 

자기 성찰과 거울 

 이 작품에서 거울은 1연에서 보듯이 역사의 유물로 남겨진 "구리 거울" 이자, 4연에서 보듯이 "나의 거울" 이다. 거울을 대한다는 것은 자기 성찰을 위한 일인데, 작자가 마주한 거울은 "어느 왕조의 유물" 이기에 우리 역사에 대한 참회를 동반하게 된다. 욕된 현재를 참회하고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부끄러웠던 지난날에 대한 참회록을 쓸 수 있기 위해서는, 4연에 나타난 것처럼 끊임없는 자기 성찰의 노력을 해야만 한다. 

 

문학의 윤리적 기준 

문학 작품에서 형상화되는 선(善)과 악(惡), 호(好)와 오(惡), 진선미(眞善美)와 같은 윤리적 범주들은 문학의 효용성이라는 본질적인 기능에 작용할 뿐만 아니라, 그 작품의 문학적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권선징악(勸善懲惡)이라는 기준이다. 이 윤리 의식은 우리의 고대 소설이나 교술 문학에서는 지나치게 상투화되어 나타나기도 하지만, 이러한 이분법적 가치의 대결과 긍정적인 윤리관은 당대의 문학 수용층에 대한 교훈적 의도가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근대 문학에서는 오히려 부정적 가치를 실천하는 인물을 통해 바람직한 윤리 의식에 대한 반성적 사고를 가능하게 하기도 한다.

 

 

산문 ‘별똥 떨어진데’

 

밤이다.

하늘은 푸르다 못해 농회색으로 캄캄하나 별들만은 또렷또렷 빛난다. 침침한 어둠뿐만 아니라 오삭오삭 춥다 이 육중한 기류 가운데 자조(自嘲)하는 한 젊은이가 있다. 그를 나라고 불러 두자.

 

 나는 이 어둠에서 배태(胚胎)되고 이 어둠에서 생장하여서 아직도 이 어둠 속에 그대로 생존하나 보다. 이제 내가 갈 곳이 어딘지 몰라 허우적거리는 것이다. 하기는 나는 세기의 초점(焦點)인 듯 초췌(憔悴)하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내 바닥을 반듯이 받들어 주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내 머리를 갑박이 내려 누르는 아무것도 없는 듯하다마는 내막은 그렇지도 않다. 나는 도무지 자유스럽지 못하다. 다만 나는 없는 듯 있는 하루살이처럼 허공에 부유하는 한 점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하루살이처럼 경쾌하다면 마침 다행할 것인데 그렇지를 못하구나!(…중략…)

 

 나무가 있다.

 그는 나의 오랜 이웃이요 벗이다. 그렇다고 그와 내가 성격이나 환경이나 생활이 공통한 게 있어서가 아니다. 말하자면 극단과 극단 사이에도 애정이 관통할 수 있다는 기적적인 교분의 표본에 지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처음 그를 퍽 불행한 존재로 가소롭게 여겼다. 그의 앞에 설 때 슬퍼지고 측은한 마음이 앞을 가리곤 하였다. 마는 돌이켜 생각건대 나무처럼 행복한 생물은 다시 없을 듯하다. 굳음에는 이루 비길 데 없는 바위에도 그리 탐탁치는 못할망정 자양분이 있다 하거늘 어디로 간들 생(生)의 뿌리를 박지 못하며 어디로 간들 생활의 불평이 있을소냐. 칙칙하면 솔솔 솔바람이 불어 오고, 심심하면 새가 와서 노래를 부르다 가고, 총총하면 한 줄기 비가 오고, 밤이면 수많은 별들과 오순도순 이야기할 수 있고-보다 나무는 행동의 방향이란 거추장스런 과제에 봉착하지 않고 인위적으로든 우연으로서든 탄생시켜 준 자리를 지켜 무진무궁한 영양소를 흡취하고 영롱한 햇빛을 받아들여 손쉽게 생활을 영위하고 오로지 하늘만 바라고 뻗어질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 행복스럽지 않으냐.

 

이 밤도 과제를 풀지 못하여 안타까운 나의 마음에 나무의 마음이 점점 옮아오는 듯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랑을 자랑치 못함에 삐저리듯하나 나의 젊은 선배의 웅변에 왈(曰)선배도 믿지 못할 것이라니 그러면 영리한 나무에게 나의 방향을 물어야 할 것인가. 어디로 가야 하느냐, 동이 어디냐, 서가 어디냐, 남이 어디냐, 아차! 저 별이 번쩍 흐른다. 별똥 떨어진 데가 내가 갈 곳인가 보다. 하면 별똥아! 꼭 떨어져야 할 곳에 떨어져야 한다.(출처 : 이건청 편,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 윤동주 평전)

 

 

윤동주의 죄 "한글로 시를 쓴 것은 치안유지법 위반"

1995년 2월 16일, 일본 교토 도시샤대학의 이마데가와 캠퍼스에 한국의 대표 시인인 윤동주의 시비가 만들어졌습니다. 이것은 윤동주와 같은 한국인 졸업생 모임인 '도시샤 한국인 교우회'에 의해 건립된 것으로, 당시 취지문에는 "나라와 민족, 종교, 사상 등을 떠나 돌아가신 분들의 진혼가"라고 써 있습니다.

윤동주(1917~1945)는 옛 만주(현 중국 동북부) 간도에서 태어나 1941년 연희전문학교(現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히라누마 도추'라고 창씨개명한 뒤 릿쿄대학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같은 해 10월, 도시샤대학 영문과에 입학한 그는 1943년 7월14일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교토 시모가모 경찰서에 체포 기소되어 징역 2년형을 받고 후쿠오카 형무소로 옮겨졌지만, 1945년 2월16일 27세의 젊은 나이로 옥사했습니다. 

윤동주의 사망 원인은 아직도 베일에 싸여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 기소된 뒤,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한 고종사촌형 송몽규(교토제대생, 1945년 3월10일 사망)의 증언에 따르면 두 사람 모두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사를 매일 맞았다고 합니다.

유해는 멀리 간도에서 달려온 아버지에 의에 화장되었고, 다 담지 못한 유해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도중 현해탄에 뿌려졌다고 합니다. 아들의 유골을 안고 조선 반도의 남에서 북까지 가는 아버지의 길은 얼마나 멀게 느껴졌을까요.

1910년 윤동주 일가는 기독교에 입교했습니다. 일제에 의한 한국 강제 '합병' 이후, 간도에는 토지를 빼앗긴 농민들이 거친 땅을 일구어 살았으며, 독립운동 지사들도 이곳을 거점으로 항일운동을 전개하고 있었습니다. 윤동주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민족정신과 신앙심을 키워갔습니다.

윤동주의 죄는 다름 아닌 한글로 시를 썼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독립운동으로 간주되고, 이로 인해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것입니다. 단지 모국어로 시를 썼다는 이유로 큰 변을 당하게 된 것은 누구의 탓인가요. 

당시 일본 통치 하에 있던 조선에서는 조선의 민족성을 빼앗고, '황국 신민화 정책'을 위해서 고유의 언어인 한글 사용이 금지되었고, 인격의 표상인 이름도 창씨개명을 강요당했으며, 국어라면 일본어라고 하는 상황에 있었습니다. 윤동주는 이 속에서 민족 문화를 지키기 위하여 하숙방에서 남몰래 한글로 시로 짓고 있었던 것입니다.


                          (출처 :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333895&ar_seq=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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