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고향 / 윤동주
by 송화은율또 다른 고향 / 윤동주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白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 곱게 풍화 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지조(志操)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으로 가자.
요점 정리
지은이 : 윤동주
갈래 : 서정시, 자유시
성격 : 상징적, 성찰적, 관조적, 의지적, 저항적
구성 :
① 귀향과 자아 분열(제1,2연) - 어두운 현실을 느낌
② 두 자아의 분열과 갈등(제3연) - 자아의 갈등
③ 현실적 자아를 일깨우는 소리(제4,5연) - 불안과 강박 관념
④ 이상향의 동경(제6연) - 이상향의 동경
제재 : 고향의 상실
주제 : 이상향에 대한 동경
특징 : 자아의 대립에 의한 갈등 구조를 바탕으로 상징적 시어를 통해 시적 화자의 처지 및 내면을 드러내어 주제 의식을 표현하고, 현실적 자아와 이상적 자아간의 갈등 구조를 바탕으로 하며, 시대 현실에 고뇌하는 지식인의 모습이 형상화되어 있다.
내용 연구
고향[현실 도피적 세계]에 돌아온 날 밤에
내[나는 분열된 두 자아 사이에서 갈등하는 현실적 자아] 백골(白骨)[나약한 현실 도피적 자아 / 현실에 안주하여 살고자 하는 도피적 자아]이 따라와 한 방[부자유스런(닫힌) 세계]에 누웠다.
어둔 방[닫힌 세계 / 암담한 상황 / 갈등의 공간이면서 또 다른 고향을 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공간]은 우주[열린 세계]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열린 세계로 인도하는 존재 - 현실 안주를 꾸짖음]이 불어온다.
어둠[일제 강점기로 암담한 세계] 속에 곱게 풍화 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갈등하는 현실적 자아]
백골이 우는 것이냐?[ '백골'과 '아름다운 혼' : 시적 화자가 의식의 분열을 일으켜 서로 갈등을 일으키는 구조로 되어 있음 ]
아름다운 혼[이상적 자아 /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이상적인 자아]이 우는 것이냐?[어둠 속에서 ~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 분열된 자아를 바라보며 느끼는 상실감과 비애감의 표현]
지조(志操) 높은 개는[나약한 현실적 자아를 꾸짖는 존재로 어둠을 짖는 개]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우국지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우국지사의 높은 혼이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화자를 '또 다른 고향'에 가도록 재촉한다는 점에서 화자를 구속하는 존재이기도 함 / 나약한 현실적 자아를 꾸짖는 존재 / 화자가 갈등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지향하게 하는 획기적 계기를 마련해줌]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가자'라는 반복을 통해 간절함을 강조하고 있음]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화자가 추구하는 이상 세계 혹은 광복된 조국을 의미]으로 가자.[자아의 정체성 회복과 자아 분열의 극복 의지]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일제 강점하의 부정적 현실 공간을 뛰어넘은 영원한 삶에 대한 동경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윤동주의 개인사를 알아야 된다. 윤동주는 고향인 북간도에서 아름다웠던 유년 시절을 보냈으나 서울 유학 생활을 하면서 현실의 암담한 상황을 깨닫게 된다. 그후 고향에 돌아왔으나 마음에 그리던 고향을 상실하고 내적 자아가 분열을 일으키고 있는 상태를 형상화한 시로 '나, 백골, 아름다운 혼'의 관계를 파악하고 접근해야 한다.
이 시는 전 6연으로 이루어진 조금 난해한 작품이다.
제1연은, 그리던 고향에 돌아왔으나 그 곳에는 유년의 평화로움이나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어둠으로 가득찬 장소일 뿐이다. 이미 육신이나 영혼이 함께 편안히 안주할 수 있는 장소는 아니다. 고향에서 안주하고자 하는 '나'는 이 암담한 식민지 현실 속에서 이미 죽어 백골과 같은 존재가 되고 말았다.
제2연에서는 닫힌 세계('어둔 방')에 있으려니 '나'를 열린 세계('우주')로 부르는 바람 소리가 들린다. '하늘에서 불어 오는 바람'은 현실에 안주하려는 '나'를 새로운 세계로 향하게 한다.
제3연은 고향에 돌아와 자아가 분열되어 갈등을 일으키는 현상을 형상화한 것이다. 현실에서 안두하고자 하는 현실적 자아('백골')와 현실의 안주를 거부하고 이상을 추구하려는 이상적 자아('아름다운 혼')가 갈등을 일으킨다. '백골'은 식민지 현실 속에서 생명력이 이미 다한 자신의 현실적인 모습을 표현한 것일 터이다.
제4연에서는 어디선가 본질을 지키라는 소리가 들린다. '어둠을 짖는 개'는 암담한 현실 속에서 무력한 생활을 하는 '나'를 일깨우는 것으로 풀이된다.
제5연에서는 '나'의 안일한 자세를 일깨우는 소리가 '나'의 양심을 압박해 온다. 강박 관념을 표현한 것이다.
제6연은 현실에 안주하고자 하는 부끄러운 자아를 떼어 놓고 새로운 이상의 세계로 가자는 것이다. '또 다른 고향에 가자'는 말은 시대적 상황으로 정신적 고뇌를 겪고 있는 스스로를 구현하기 위해 새로운 세계(즉, 미래의 이상향)를 지향하는 것으로 읽힌다.
윤동주 시의 주요한 모티프를 이루고 있는 '그리움'은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특히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대단하다. 평화롭기만 했던 유년 시절의 추억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시는 고향에 대한 단순한 그리움만을 노래한 것은 아니다. 평화롭고 아름답기만 했던 고향을 떠나 평양, 서울, 일본을 전전하면서 암담한 현실을 깨닫고 고향에 돌아와 보니 옛날의 고향이 아님을 알게 되고 비애, 불안 심리, 강박 관념에 사로잡히게 되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고향으로 가자는 것이다. 이 시는 그 갈등과 화해의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
이해와 감상1
이 시는 1941년 9월 연희 전문학교 졸업반 때 쓴 작품이다. 인간은 누구나 현실에 바탕을 둔 내면 세계와 탈(脫)현실의 단면을 띤 또 다른 내면 세계를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고향마저도 실재하는 현실적 고향과 스스로 그려서 이룩해 낸 탈현실의 고향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 시는 현실적 자아가 누워 있는 '고향'(만주 용정)과 이상적 자아가 도달하고자 하는 '또 다른 고향'(정신적 안식처)을 두 축으로 설정하여 그것들이 서로 엇갈리는 가운데 빚어지는 고뇌와 불안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이 시에서는 '고향'과 '또 다른 고향'이 한 대응 체계를 이루고 있는 한편, '백골'과 '나'와 '아름다운 혼'으로 빚어진 또 하나의 대응 체계가 있다. '나'는 개인적 자아·본래적 자아요, '백골'은 사회적 자아·유한적 자아로 이 둘은 모두 현실적 자아를 의미하고, '아름다운 혼'은 종교적 자아·영원한 자아로 이상적 자아를 뜻한다.
현실적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백골'이라는 피압박의 자의식이 '나'를 따라와 함께 눕는다. '어둔 방'으로 표상된 불안과 고독의 절망적 분위기 속에서, 본래적 자아인 '나'와 사회적 자아인 '백골'과 이상적 자아인 '아름다운 혼'으로 분열된 자아가 하나로 통합되어, '백골을 들여다 보며 / 눈물 짓는' 자아 성찰의 몸부림을 한다. 그러나 '나'는 '고향'과 '백골'을 벗어나 '또 다른 고향'과 '아름다운 혼'의 차원으로 승화하고 싶은 욕망 때문에 '고향'과 '또 다른 고향', 그리고 '백골'과 '아름다운 혼'은 화합을 이루지 못한 채 끝끝내 대립을 이루게 된다.
'고향'의 어두운 방에 '백골'로 누워 괴로워하고 있는 그 때, '나'를 '또 다른 고향'인 '우주'(어둔 방은 우주로 통한다고 했음)로 승화시켜 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는 '바람'이 불어오고, '어둠을 짖는 개'의 울음 소리가 들려 온다. '아름다운 혼'을 지향하는 지조(민족 정기) 높은 그 '개'는 '백골'과 등가(等價)를 이루는 '어둠'을 떨쳐 버리기 위하여 밤을 새워 짖는다. ('백골'은 '소리처럼 불어오는 바람'으로 인해 풍화 작용을 하여 소멸하는 것이고, '어둠'은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 개'의 울음 소리로 점차 사라지는 것이기에 이 두 사물은 등가를 이룬다.) 결국 이 작품은 현실적 공간을 뛰어넘어 밝고 넓은 초현실의 공간으로 승화하고자 하는 영원한 삶에 대한 동경을 노래하고 있는데, 이 몸부림을 더욱 자극시키고 채찍질하는 것이 바로 소리처럼 느껴지는 '바람'과 '지조 높은 개'가 밤새워 우는 '울음'인 것이다.
심화 자료
그리움과 실향의 비애 :
윤동주의 시에서 많이 느낄 수 있는 것은 비애의 감정이다. 이러한 비애의 감정은 실향 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윤동주는 당시의 식민지 시대에 삶의 터전을 잃고 떠도는 영혼의 뿌리 깊은 상실감 등으로 인한 비애의 감정을 여러 작품에서 표현하였다. 그러한 정서는 그리움으로 발전하여 때로는 비극적으로 때로는 서정적으로 윤동주의 여러 작품을 통해 형상화되고 있다.
부정적 현실과 죄의식 :
일제 강점하의 여러 지식인들의 모습이 그러했지만, 그 중에서도 윤동주는 특히 자학에 가까운 자기 부끄러움의 의식이 많았던 지식인이었다. 윤동주는 여러 작품들에서 방황하고 있는 자신을 스스로 매우 꾸짖으며, 또 절대적 자아에 대한 성찰 의식으로서의 부끄러움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러한 죄의식은 많은 사람들에게 현실에 대한 저항 의식이라고 평가되기도 하고, 부정적이고 비판적 현실에서 스스로 적극적인 저항 의식을 펴지 못하는 데에 대한 자책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평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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