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土地) / 해설 / 박경리
by 송화은율토지(土地) - 박경리
지은이 : 박경리
갈래 : 장편 대하소설, 가족사 소설, 순수 소설
배경 : 시간적으로는 1897년 한가위에서 1945년 광복후까지로 공간은 경남 하동 평사리에서, 서울과 만주 북간도와 용정
성격 : 사실주의적, (일부는 회상적, 추리적)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구성 : 전 5부 16권 25편 376장
1부 : 최 참판 댁의 몰락과 조준구의 재산 탈취 과정
2부 : 서희의 복수(최씨의 귀환)
3부 : 민중의 삶과 지식인 신여성의 삶
4부 : 길상의 활동과 유인실과 오가다의 사랑
5부 : 복잡한 민족의 삶
제재 : 최씨 가문의 4대에 걸친 애환과 민족사의 수난
주제 : 삶의 터전인 토지를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들이 펼치는 삶의 굴곡과 애환에 의한 민족 의식과 한, 한국 근대사의 인물들이 겪는 식민지적 고통과 운명을 통한 민족의 한과 의지. 또는 격동의 근대사를 살아 온 우리 민족의 삶의 애환과 강인한 생명력, 민족의 문화적 전통에 대한 애착을 드러냄. 한국 근대사의 한과 고통 속에 지켜 온 민족의 자존 의식
표현상의 특징 : 주로 지은이의 서술로 이루어진 간결체이며, 극적인 장면은 대화와 행동의 간결한 묘사를 통해 나타내고 있으며, 토속어 구사로 현장감과 사실성을 높이고 있고, 일정한 시점에 구애되지 않고 등장 인물이나 사건에 따라 다양한 시점이 사용되며, 다양한 진술 방식을 사용하고 있고, 대화와 행동 묘사에 의한 사건을 극적으로 형상화하고 있으며, 서술자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논평을 하기도 하며, 일제 강점기하의 한국인의 보편적이고, 총체적인 삶을 반영하고 있다.
인물 :
서희 : 최치수와 별당 아씨의 소생으로 외동딸이자 최 씨 가문을 이어가는 마지막 핏줄로, 최씨 가문을 이어가는, 굳은 의지를 지닌 인물. 최치수와 별당아씨의 외동딸. 최씨 집안의 마지막 핏줄. 조준구에게 재산을 빼앗기고 용정으로 가서 부(富)를 이룩함. 공노인과 임역관의 중개로 빼앗긴 토지의 대부분을 회수, 길상과 헤어져 귀국을 감행, 진주에 자리잡음. 몰락한 조준구로부터 집문서를 넘겨 받아 가문의 재건과 복수를 마감한다. 양현이를 윤국과 짝을 맺어 며느리를 맞이하고자 하는 집착이 양현의 거부로 좌절되고 길상의 재수감, 윤국의 학병지원으로 또 다른 한의 그림자가 생긴다. 이런 고통은 그 동안 방어적이고 폐쇄적이던 서희의 가슴을 열어 놓는 계기가 되어 자기 주장이 강하고 기상이 센 성격의 여인상에서 정감 있는 어머니 상으로 변한다.
김길상 : 신분이 다른 서희와 결혼한 독립 운동가. 고아 출신으로 연곡사 우관 스님의 보호로 자라다가 최씨 집안으로 심부름꾼으로 들어가게 된다. 침모의 딸 봉순의 은근한 사모를 받지만 서희에 대한 동정과 연모의 정을 가진다. 서희의 몰락 과정에서 그녀를 끝까지 보호한다. 용정으로 함께 이주하여 서희가 부를 축적하는 데 크게 기여, 드디어 둘은 결혼한다. 서희의 귀국에 동행하지 않고 간도에 잔류, 독립 운동에 투신한다. 2년의 감옥 신세를 지고 진주에 은둔. 동학당 조직을 재건하려 하나 좌절, 원력(願力)을 모아 관음탱화를 완성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정리한다.
최치수 : 윤씨 부인의 적자이자 최 씨 집안의 마지막 당주로, 선대에서 이룩한 만석의 재산을 누리며 평사리의 지배자로 군림한다. 버린 자식 김환(구천)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모자 관계를 의식적으로 피하는 윤씨 부인의 태도에 상처를 입고 독선과 아집으로 뭉친 냉소적 인간으로 성장한다. 그러나 귀녀의 음모로 죽음을 맞이한다.
구천(김환) : 윤씨 부인과 동학군 장수 김개주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출생의 비밀로 인해 자신의 신분을 감추며 살아가는 비극적 인물이자 문제적 인물로 동학 혁명의 실패로 아버지가 죽자 자신의 이름을 구천으로 바꾸어 최 참판 댁 머슴으로 숨어 들어간 후 형수뻘되는 별당 아씨를 사모하여 함께 도망을 친다. 최치수의 추적을 피해 도망을 하던 중 묘향산에서 별당 아씨가 죽은 후 전국을 유랑하다가 지리산을 본거지로 하여 독립 운동을 벌인다. 후에 김길상에게 정신적 감화와 영향을 끼친다.
조준구 : 최치수의 이종형으로 최참판 댁의 재물을 탐내는 욕심 많은 인물.
별당아씨 : 최 참판 댁의 며느리이자 안주인으로 어린 서희를 두고 구천과 도망가다가 병으로 죽는다.
윤씨부인 : 김개주와 사이에 태어나 버린 자식 김환(구천)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모자 관계를 의식적으로 피해 최치수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 최치수의 모친
귀녀 : 종의 신분을 초월하고자 하는 욕망과 양반에 대한 원한에 사로잡혀 있는 최참판 댁의 계집종으로 최치수의 씨를 받아 종의 신분을 면하고자 하나 그 뜻이 좌절되자 김평산으로 하여금 최치수를 교살(絞殺)하도록 사주(使嗾)하나 발각되어 형을 받는다. 옥중에서 강 포수의 지순(至純)한 사랑에 감동받아 자신의 죄를 뉘우친다.
상현 : 이동진의 아들로서 서희를 사랑하나 실패하여 방황하는 지식인.
최참판댁 하인들과 서민 군상 : 최참판 댁의 그늘에서 사는 하인들과 마을 사람들은, 거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양반 부류의 최치수, 윤씨 부인이나 서회와는 반대 부류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민감하고, 또 이해관계 때문에 싸우고 물어뜯는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조그마한 현실에 극히 민감하다. 호박 한 덩어리 없어진 것으로 온 동네가 시끄럽고, 누가 가져다 준 제사 떡 한 접시에 온 가족이 즐거워하는 등 그들의 모습을 통해 일상적인 삶의 희로애락이 생생하게 재현된다. 이들이 쓰는 언어는 최치수나 윤씨 부인, 서희가 사용하는 표준어가 아닌 경남 서부 지방의 사투리 그대로이기 때문에 더욱 생생하다. 이들의 희로애락은 일차적인 욕망과 관련이 있으며, 언어 역시 직설적이고 감각적이다. 거기에는 서로를 은폐하거나 혼자 고상한 체하는 가식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생활에는 냉랭함보다는 따뜻함이, 미적지근함보다는 화끈함이 있다.
특징 : 박경리의 작품 경향은 민중과 생명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과 결합된 역사 의식을 바탕으로 현실의 추악한 진상을 고발하였고, 우리의 근·현대사를 총체적으로 조망하였는데 '토지(土地)'는 구한말부터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해방에 이르기까지 장구한 민족사의 흐름을 배경으로, 최 참판 댁 일가를 중심으로 한 민족적 수난과, 토지에서 한을 안고 살아가는 민중들의 삶의 역정을 그려 낸 대화 장편 소설이다. 그 방대한 분량만큼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여 파란만장한 개인사와 그에 얽힌 인간의 욕망, 의지와 갈등을 보여준다. 따라서 문학이 인간 현실의 다양성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 살펴보는데 유익한 작품이고, 장대한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전개되어 농촌 공동체의 전통적인 삶의 양상이 그려져 있음을 주지시키고, 당시의 삶의 모습을 문화사 내지 풍속사의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
출전 : 토지(土地)(1944년)
줄거리 :
<제1부>(1987년 한가위 - 1908년 5월) : 동학농민운동, 갑오개혁, 러일전쟁에서의 일본의 승리, 을사 조약 체결, 전국 각지에서 의병 봉기, 1897년 대한 제국 성립, - 최참판 가문의 몰락, 조준구의 재산 탈취
구한말인 1897년 무렵, 경상도 하동의 평사리에는 5대째 지주로 군림하고 있는 만석꾼 최 참판 댁을 중심으로 농민들인 마을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다. 최씨가의 유일한 혈육인 어린 서희는, 엄격하면서도 자애로운 할머니와 무서운 아버지 밑에서 하녀 봉순이를 동무하며 자라고 있고, 머슴으로 들어온 구천이는 무언가 많은 고뇌와 비밀을 간직한 것처럼 보인다.
구천이는, 최 참판 댁의 정신적 지주인 윤씨 부인이 청상의 나이에 남편을 잃고, 훗날 동학당 접주가 되어 사형당하는 김개주에게 겁탈당하여 낳게 된 아들 '환'이다. 아버지를 따라 동학당에 참가했던 환은 몸을 숨기기 위해 구천이란 가명으로 최 참판 댁에 찾아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출생과, 이복형인 최치수의 부인 별당 아씨와의 사랑으로 괴로워하다가 결국 별당 아씨와 함께 지리산으로 도망친다.
자의식이 강하고 냉정한 최치수는 어머니를 감싸고 도는 비밀을 알기 위해 몸부림친다. 또한 재종형 조준구와 어울려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성적 무능력자가 된다. 그는 조준구가 구해 준 총으로 구천과 별당 아씨를 찾기 위해 지리산을 헤맨다. 별당 아씨는 환의 품에서 숨을 거두고, 환은 연곡사 우관 스님에게로 돌아간다.
자신의 신분에 큰 불만을 품고 있던 하녀 귀녀는 최 참판 댁의 씨를 얻으려 최치수에게 접근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자 그녀는 김평산과 음모를 꾸며 칠성이와 강 포수에게 몸을 허락하여 씨를 받는다. 최치수가 성불구자임을 모르는 귀녀는 강 포수의 출현으로 일이 틀어지자 김평산으로 하여금 최치수를 살해하게 하고 자기 몸의 씨를 내세워 집안의 대를 잇게 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하지만 아들의 죽음에 의혹을 가진 윤씨 부인은 침모 봉순네의 귀띔으로 귀녀의 자백을 받아 내고, 김평산과 칠성은 함께 죽음으로써 죄값을 치른다. 이 사건으로 인해 김평산의 아내 함안댁은 자살하고 칠성의 아내 임이네는 마을을 떠나게 된다.
한편 최 참판 댁의 소작인 용이는 무당의 딸 월선과의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인해 항상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질투심이 많은 아내 강청댁의 행패로 월선이는 그의 곁을 떠난다. 그리고 용이는 강청댁과의 성적 관계가 불가능하게 된다. 그는 마을로 다시 돌아온 임이네를 돌봐 주다 관계를 맺고 홍이라는 아들을 얻게 된다.
집안의 기둥을 잃어버린 최 참판 댁에 조준구가 부인 홍씨와 꼽추 아들 병수를 데리고 찾아든다. 김평산에게 최치수의 살해를 은연중 시사했던 그는 최 참판 댁 재산을 노린다. 그러던 중 마을을 휩쓴 호열자와 흉년으로 윤씨 부인과 김 서방, 봉순네 등 많은 사람이 죽는다. 그 와중에 살아남은 조준구 일가는 최 참판 댁을 차지하고 마음껏 세력을 휘두른다.
고아 신세가 된 윤씨 부인의 손녀 서희는 타고난 총명함과 함께 강하고 이기적인 사람이 된다. 최씨 집안의 마지막 핏줄인 그녀는 집안을 지키기 위해 조준구 일가와 맞서 나간다. 그러나 서희를 돌보던 수동이 죽고, 러일 전쟁이 터지고 을사 조약이 체결되는 등 상황은 더욱 조준구에게 이롭게 돌아간다. 조준구의 행패에 불만이 쌓인 마을 사람들은 목수 윤보를 선봉으로 의병을 일으켜 마침내 최 참판 댁에 들이닥친다. 그들은 재물을 탈취하고 조준구 내외를 죽이려 하지만 찾아 내지 못한다.
그 틈에 서희는 부친인 최치수를 모시던 종인 길상으로 하여금 토지 문서를 찾게 하여 일시 힘을 회복하지만, 조준구 내외를 죽이는 데에 실패한 그들은 고향에서는 더 이상 살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서희는 할머니 윤씨 부인이 남겨 준 재물을 지니고 이들과 함께 고향을 버리고 간도로 떠난다.
<제2부>(1911년 5월 간도 용정촌의 대화재 - 1917년 여름) - 경술 국치 후 지리산 동학 잔당 모임, 대한 광복군 정부 수립, 1912년 중국민국의 성립과 러시아의 정세가 중요한 배경이 되고, 1914년 1차 세계대전(-1918년), 1917년 러시아 혁명 - 서희의 복수, 최씨가의 귀환
간도에 정착한 서희는 가문을 되찾으려는 일념을 불태우며 윤씨 부인이 남긴 재물을 자본으로 길상과 공 노인의 도움을 얻어 두류(豆類)와 토지 거래에 성공하여 거부가 된다. 돈을 벌기 위해 그녀는 아버지의 친구인 이동진의 군자금 요청을 거부하고 친일적인 운흥사 공사에는 기부금을 내는 등 공공연한 친일 행위도 불사한다. 그녀는 이동진의 아들 상현을 사모하지만, 자존심 때문에 이미 결혼한 상현과의 사랑을 포기하고 길상과 결혼하여 두 아들을 얻는다.
길상은 서희와 결혼하기 전에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만났던 옥이네에 대한 죄책감으로 인해 괴로워한다. 그는 가문에 대한 서희의 무서운 집념과 완전히 허물 수 없었던 신분의 벽 때문에 고독을 느끼지만, 환의 출현으로 그의 비밀을 알게 되고 그와 함께 독립 운동에 투신한다.
환은 별당 아씨가 죽은 후 윤봉, 윤도집, 지삼만, 송관수,. 판술 등과 함께 의병 활동을 한다. 방법론상의 견해 차이로 윤도집, 지삼만 등과 대립하며 간도로 건너간 그는 길상을 만나고 이동진, 권필응 등과도 만난다.
서희와 길상의 결혼으로 충격을 받은 상현은 서울로 동아와 서의돈, 임명빈, 황태수 등과 사귀며 일본으로 유학도 한다. 그러나 그는 길상에 대한 패배감, 아버지 이동진과 가족에 대한 죄책감, 스스로의 무력감 때문에 정신적 방황을 계속한다.
한편 서희 일행과 헤어지고 기생이 된 봉순은 기화라고 이름을 바꾸고 천부적인 미모와 소리로 유명해진다. 그녀는 간도로 건너가 서희, 길상, 고향 사람들을 만나보기도 하지만 외로움 때문에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한다.
월선, 임이네, 홍이와 함께 용정에 정착한 용이는 월선과 함께 잠시 국밥집을 한다. 그러나 그는 임이네의 돈에 대한 욕심에 못 견뎌하고, 자신이 장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후 그는 홍이를 월선의 곁에 남겨 두고, 임이네와 함께 영팔이가 정착한 퉁포슬에서 청인의 소작인이 되어 농사를 지으며 겨울에는 벌목꾼으로 일한다.
임이네는 월선 몰래 가로챈 많은 돈을 용정의 큰 불로 잃게 되지만 탐욕은 갈수록 심해진다. 월선은 용이가 떠난 후 홍이와 함께 살지만 암으로 한 많은 일생을 마친다.
김평산의 아들 기복은 김두수로 이름을 바꾸고 간도 땅에서 일제의 밀정으로 활약한다. 그는 달아난 금녀를 되찾으려 하지만 실패하고, 대신 길상을 짝사랑하던 공 노인의 양딸 송애를 농락한다. 달아난 금녀는 독립 운동을 하던 장인걸의 도움을 얻어, 귀화한 한국인 쎄르란 심의 집에 은거하며 차츰 삶의 안정을 찾게 된다.
귀녀의 아들을 데리고 사라졌던 강 포수는 그 아들에게 두메라는 이름을 지어 주고, 그가 성장하자 송장환에게 교육을 부탁한다. 조준구 때문에 억울하게 죽은 정한조의 아들 석이는 송관수의 도움으로 공부를 하고 조준구에게 복수하기 위해 하인으로 가장하여 그의 집에 잠입한다.
서희는 공 노인을 내세워, 광산에 투자하여 큰 실패를 본 조준구에게 접근하여 빼앗긴 재산과 토지 문서를 되찾는다. 그녀는 월선의 장례식 후 영팔이네와 용이네를 귀향시키고, 독립 운동을 위해 환과 함께 떠나 버린 길상과 헤어져 두 아들(환국, 윤국)과 유모, 안자와 함께 그리던 귀향길에 오른다.
<제3부>(1919년 3·1운동- 1929년 원산 총파업, 광주학생사건, 1919년 임시정부 수립, 1920년 김좌진장군의 청산리대첩, 1929년 사회주의 사회 단체인 계명희 사건 - 김환의 죽음으로 송관수 등의 민중적 삶과 서울의 임명희를 둘러싼 지식인과 신여성들의 삶이 그려짐.)
귀향 후 진주에 정착한 서희는 조준구와 만나 5천 원에 평사리의 본가를 되찾는다. 서희는 완전히 복수를 달성하지만, 알 수 없는 상실감에 시달리면서 두 아들을 보살피며 진주에서 살아간다.
용이는 임이네의 탐욕에도 무심해진 채 평사리 서희의 본가를 지키며 안정된 말년을 보낸다. 월선의 죽음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고 간도의 벗들과도 헤어진 홍이는 생모 임이네의 탐욕에 대한 증오와 자학으로 비뚤어진다. 그는 사랑하는 장이의 몸을 겁탈하지만, 의병의 혐의를 받고 잡혀갔다 온 후 마음을 잡고 운전 기술을 배워 김 훈장의 손녀 보연과 결혼한다. 그러나 그는 일본인과 결혼한 장이와의 불륜의 현장이 발각되어 고통을 받기도 한다. 그는 용이의 장례식이 끝난 후 오랫동안 계획해 오던 간도행을 준비한다.
윤도집과 운봉의 죽음으로 동학의 세력은 와해되고 지삼만은 청일교의 교주가 되어 많은 신도와 돈을 모으게 된다. 중국에서 귀국한 환은 지삼만의 밀고로 일경에 잡히지만 조직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지삼만 역시 심복인 지 서방에게 살해당한다.
김두수는 마침내 중국 여인으로 가장한 금녀를 붙잡고, 그녀를 통해 독립군의 정보를 빼내려 하지만, 모든 것을 포기한 금녀는 침묵으로 맞선다. 그 후 그녀는 치욕을 견디지 못하고 벽에 머리를 부딪혀 자살한다. 한편, 김두수는 관수의 주선으로 독립 자금을 전달하기 위해 간도로 간 동생 한복과 해후한다.
길상은 서의돈과 함께 계명희 사건에 연루되어 2년형을 언도받고 복역한다. 이에 서희는 서울을 왕래하면서 길상의 뒷바라지에 힘쓴다. 환국은 아버지 길상을 매우 존경하며, 그의 자질을 이어받아 그림에 소질이 있다. 그러나 어머니 서희의 뜻을 따라 와세다 대학 법과를 지원한다.
상현은 일본 유학 후 서울에서 기화를 모델로 소설을 쓰기도 하지만 3·1운동의 실패로 인한 무력감 때문에 방황한다. 임명빈의 누이 명희는 상현에 대한 사랑이 거부되자 조용하의 후처로 들어간다. 그러나 그녀는 시동생 찬하에 대한 남편의 질투와 외도 때문에 갈등을 겪는다.
마음의 안식을 찾지 못하던 기화는 상현을 사랑하나 그에게서 끝내 버림받고 상현의 딸 양현을 낳는다. 아버지 이동진의 죽음 등 여러 가지 문제로 갈등을 겪던 상현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각오로 중국행을 감행한다. 홀로 양현을 키우던 기화는 아편쟁이가 되어 서희의 도움으로 치료를 받지만, 상현과의 관계에 대한 죄책감으로 서희의 곁을 떠난다. 하지만 기화는 그녀를 사모하던 정석의 설득으로 다시 평사리로 돌아온다. 그러나 석이가 학교에서 쫓겨나고 가정 파탄이 일자 그것이 자기 탓이라 생각하고 섬진강에 몸을 던져 자살한다.
기화의 자살 소식을 전해 들은 상현은 긴 방황을 청산하고 소설을 써, 그 고료를 양현을 위해 써 줄 것을 부탁하는 편지를 명희에게 보낸다. 명희는 양현을 양딸로 데려가길 원하지만 서희는 이를 거부하고 진정한 사랑으로 양현을 키운다.
<제4부>(1930년-1939년) : 1933년 뉴딜정책, 독일의 나치 정권, 1936년 손기정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1937년 중일전쟁 발발, 1938년 남경학살사건, 유인실과 일본인 오가다의 사랑
김환이 죽고 길상이 수감된 후, 관수와 강쇠 등은 만주, 조선에 걸쳐 인망을 엮는 데 힘쓴다. 관수의 아들 영광은 강혜숙과 편지를 교류하는 중 신분이 탄로나고 퇴학까지 당하자 가출한다. 이것이 한이 된 관수는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독립 운동에 더욱 매진하게 된다. 길상의 출옥 후를 생각하며 관수는 서울 출신의 소지감을 운동에 끌어들이고, 지감은 그를 통해 지리산의 강쇠, 해도사를 알게 된다.
청년기의 환국과 윤국은 3·1운동 후 학생 운동이 연이어 일어나는 가운데, 자신들의 풍족한 처지와 현실 사이의 괴리감으로 인해 방황과 고민이 깊어가고, 윤국은 가두 시위에 참가하여 감옥살이를 하고 무기 정학 처분을 받는다. 서희는 아들들을 대견스럽게 생각하면서도, 집안의 재산을 부담스러워하는 두 아들을 보며 공허감이 더욱 커져만 간다.
불행한 결혼 생활에 점점 황폐해져 가는 명희에게 조용하는 동생 조찬하와의 불륜을 이유로 이혼을 선언한다. 항복을 받아 낼 것을 의도했던 조용하였지만 명희는 순순히 이혼에 응하겠다며 자진해서 떠나 버리고, 조용하는 분노에 몸을 떤다.
일본 여인과 결혼한 조찬하는 일본에서 오가다란 일본인과 사귀게 되는데, 오가다는 명희의 제자인 유인실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는 코스모폴리탄이다. 조찬하는 그와의 대화에서 일본적인 것과 조선적인 것을 구명해 보려고 애쓴다.
가출한 명희를 불러들인 조용하는 자존심을 회복하려고, 명희의 마음을 되돌리려 애쓰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산장에 가두고 능욕한다. 모욕감에 자살을 기도하다 살아난 명희는 여욕을 찾아가 일자리를 부탁하고, 결국 시골의 초등학교 교사 촉탁으로 일하게 된다. 조찬하는 유인실과 오가다와 함께 시골 학교의 명희를 찾아가지만 초라한 그녀의 모습에 놀라고. 그녀 역시 모멸감에 괴로워한다.
한편, 길상은 어느 새 중요해진 자신의 위치를 종종 낯설어하고, 가족의 사랑 속에서도 외로움을 느낀다. 그는 최씨 집안에서 꽃 같은 존재인 양현이 자신의 출신에 대해 자연스레 알아 나가기를 바란다. 조국에 대한 사랑과 오가다에 대한 사랑으로 갈등하던 유인실은 오가다에게 '생명보다 소중한 것'을 바치고, 결국 그로 인해 아이를 얻게 된다. 그녀는 아무도 몰래 일본에서 아이를 낳아 조찬하에게 부탁하고, 독립 운동을 하러 중국으로 떠난다. 그 곳에서 그녀는 송장환을 찾아가고 그를 통해 윤광오를 만나게 되고, 찬하는 고민 끝에 아이를 자식처럼 기른다.
인실이 떠난 후 상실감과 죄책감에 괴로워하던 오가다는 만주에 와 떠돌아 다니다 토건 회사에 취직하게 되고, 여행을 하던 중 하얼빈에서 우연히 인실의 자취를 발견한다.
<제5부>(1940년 8월 - 1945년 광복) : 1940년 광복군 결성, 1939년 제2차대전 발발, 1943년 카이로 선언, 일본의 항복- 광복을 향한 민족의 삶, 양현과 영광의 사랑과 갈등
일본은 제2차 세계 대전이 점점 장기전에 빠지며 열강에 외면당하고, 인적·물적 자원이 고갈되어 간다. 호열자로 인해 죽은 아버지 관수의 유해를 모시고 진주를 찾은 영광은, 강에 빠져 자살한 어머니 기화를 생각하며 그 강에 꽃을 던지는 양현을 보게 되고,.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백정의 자손과 기생의 딸로서 비슷한 슬픔을 나눈 두 사람은, 영광이 만주로 도피하면서 헤어지게 된다. 양현을 이 부사 댁에 입적시켜 둘째 아들 윤국의 배필로 삼으려한 서희는, 양현의 거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사이가 멀어진다. 상심한 윤국은 학병에 끌려가 소식이 없다. 의전을 졸업하고 인천에 취직한 양현은, 점차 정세가 불안정해짐에 따라 서희에게 이끌려 다시 귀향한다. 가산을 탕진하고 꼽추 아들 병수에게 얹혀 사는 조준구는, 중풍에 걸려 누워 지내면서 갖은 행악을 부리다 죽는다.
계명회 사건 이후 출옥한 길상은 도솔암에서 관음 보살의 탱화 제작을 결심하고, 화려함과 함께 삶의 본질인 외로움과 슬픔이 잘 어우러진 걸작을 남긴다. 보연의 금붙이 밀매 사건으로 진주로 송환된 홍이는, 이를 계기로 불편했던 김두수와의 관계를 끝내고, 하얼빈에서 극장을 운영하며 조직의 일을 계속한다. 여행 중에 하얼빈에 들러 우연히 인실을 본 조찬하는 인실로 하여금 오가다에게 아들의 존재를 알릴 것을 종용한다. 찬하의 아들 쇼지가 자신의 아들임을 알게 된 오가다는 한편으로 놀라고 한편으로 찬하에게 감사한다. 인실과의 계속된 만남을 간절히 바라는 오가다에게 인실은 일본이 망하는 날에 대한 여운을 남긴다.
홍이의 아이들인 상의와 상근은 진주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며 중학교에 다니나, 전쟁으로 수업은 거의 하지 못하고, 남학생들은 군사 훈련을, 여학생들은 간호 훈련을 주로 받는다. 상의는 완고하고 심술궂은 사카모도 선생과의 대립으로 자존심에 상처를 받으나, 무사히 졸업하게 되고, 졸업 후에 홍이가 있는 만주로 갈 계획을 세운다.
이상현은 윤광오, 수앵 부부가 마련해 준 집에서 석이와 함께 기거하며 약간의 활동도 하나 때로 주정도 한다. 민족주의의 강한 유대감이 점차 바래져 가고 사회주의 성향이 짙어 가는 때에, 강 포수가 내력을 숨기고 기른 귀녀의 아들 강두메는 투철한 공산주의자로 자라나, 상현 같은 인물은 차후에 도태해야 할 반동분자로 생각한다.
조용하가 자살한 후 그의 재산을 상당히 상속받은 임명희가 희사한 돈 오천원의 사용처를 의논하는 중, 산(山)의 조직을 독립 후에 사회주의 운동 조직으로 키울 야심을 가지고 입산한 과격한 사회주의자 이범호와 산 사람들 간에 충돌이 일어나며, 산 사람들은 이범호를 경계한다.
일본의 히로시마에 신형 폭탄이 떨어졌다는 소식으로 조선에서의 피폭을 걱정하는 가운데, 서희는 길상이 사상범 예비 검거령에 의해 옥살이를 하고 있는 서울로 식구 모두 올라갈 것을 결심한다. 상심해 있는 서희의 식욕을 위해 장에 가던 양현은 드디어 일본 천황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토지(마을사람들에게 보존되어야 할 삶의 원형으로 제시되고 있으며, 농민들의 삶의 터전이며, 최 참판댁과 소작의 관계를 이어주어 신분과 질서의 기준이 되며, 토지에 대한 욕망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이며, 또한 토지의 상실은 국권의 상실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1. 이 소설의 제목인 '토지'와 연관하여 다음 활동을 해 보자.
(1)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농경 민족이었다. 다음에 제시된 농경민족의 특성을 읽고 농경 민족과 토지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 농경 생활로 이행한 것을 두고 신석기 혁명이라고까지 말한다. 이와 같은 발전은 생산 경제로서 농경 생활이 가져온 인구 증가, 식량 저장, 농번기와 농한기라는 생활 리듬 확립, 정착 생활로 인한 문화 축적 등으로 인한 것이다. 이처럼 정착 생활로 인한 문화 축적, 생활 기반을 이루는 식물과 대지를 향한 신앙과 의식 형성, 토지 애착에서 오는 보수적 경향 등, 농경 민족은 유목 민족과는 매우 대조적인 삶의 양상을 보인다.
- 농촌 공동체로서 형성된 우리 민족의 삶의 진통은, 한 곳에 정착하여 대대로 뿌리 내려 삶을 영위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사는 유목 민족과는 달리 정착한 그곳에서 모든 생산과 경제 활동이 가능했던 농경 민족은 안정된 삶의 의식을 가질 수 있었다.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익숙함은 보수적 세계관을 형성하게 되었고, 나무나 풀, 꽃과 같은 식물과 대지(大地)에 대한 상상력을 형성시켰다.
2. '농악놀이'나 '달집 태우기', '지신 밟기'의 유래를 찾아보고, 각각 '토지'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말해 보자.
- 농경 생활로 형성된 우리 민족 고유의 민속놀이들이다.
2. 이 소설은 '1897년의 한가위'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소설의 배경을 염두에 두고 아래 제시된 활동을 해 보자.
(1) 타작하는 마당을 묘사하는 부분에서 어떤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지 말해 보자.
- 이 소설의 공간적 배경으로 제시된 평사리 마을은 지리적으로 볼 때 외부 세계와 단절된 공간일 뿐만 아니라, 이야기 전개상으로 볼 때에도 최참판 댁을 중심으로 한 봉건적이고 폐쇄적인 삶의 공간으로 드러난다. 이는 곧 소설의 공간이 민중적 유대감을 형성시키는 한편,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하는 서술자의 시선을 통해 구체화된다는 것을 말해 준다. 여기에서는 평사리 마을 사람들의 삶의 가치가 드러나 있고, 아이들은 기뻐서 날뛰고 어른들은 분주하게 타작 마당으로 모여드는 모습을 통해 한가위를 맞은 농촌 공동체 구성원들의 정겹고 흥겨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추석 : 마을 사람들은 들판의 곡식을 보며 위안을 삼기도 하지만, 풍경에 대한 작자의 비판적인 묘사는 삶의 허무를 뼈저리게 느끼게 한다. '텅빈 들판', '홀로 솟은 묏등', '물기 잃은 바람' 등의 표현이 이러한 허무 의식을 형상화한다.
달 : 한가위 보름달이 뜬 모습을 '한산 세모시', '청상과부' 등의 이미지와 결합함으로써 삶의 막바지에 이른 민중들의 한스럽고 고달픈 현실에 대한 작자의 비판적 시선을 드러내고 있다.
1. 최치수와 서희의 성격을 중심으로 아래 제시된 활동을 해 보자.
(1) 최치수는 자신의 삶에서 무엇을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보는가?
소설 속에 드러나는 인물의 성격은 행동이나 대화, 삶에 대한 태도,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가치관에 이르는 모든 내면적 인식과 밀접한 관련을 맺음을 알고, 최치수의 인물 묘사와 대화, 행동을 통해 그가 자신의 삶에서 가장 가치 있다고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유도한다.
- 최 씨 집안의 마지막 당주로서 선대에 이룩한 재산을 누리며 평사리의 지배자로 군림한다는 점에서, 그는 독선과 아집을 지닌 냉소적인 인간으로 그려진다. 이것은 그가 오직 전통적 계급 사회 질서의 유지를 가장 중요한 삶의 가치로 생각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2) 최치수와 서희 사이에 나타나는 갈등의 원인은 무엇인가?
소설의 갈등은 대체로 인물의 성격적 대립으로 인한 내적 갈등과, 그 인물이 처한 사회적 환경과의 부조화에 따른 외적 갈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둘 사이의 갈등은 소설의 서사적 사건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이전에 제시되는 갈등이라는 점에서 갈등의 원인은 두 인물의 삶을 지배하는 배경적 요인에서 찾아볼 필요가 있음을 주지시킨다. 특히 최치수가 최 씨 집안의 마지막 당주라는 점을 감안해서 집안의 내력이 어떠한지를 고려하도록 한다.
- 최치수는 오로지 집안의 권위와 명맥을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힌 까닭에 냉정함과 고집스러움을 잃지 않으려 하고, 이것이 딸 서희의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아버지의 사랑을 갈망하는 서희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오히려 아버지에 대한 반발과 증오를 형성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갈등은 결국 봉건 사회의 가부장적인 질서와 그 전통적 틀에 대한 보수적인 집착이 빚은 결과라 할 수 있다.
(3) 최치수를 대하는 태도를 미루어 서희는 장차 어떤 삶을 펼쳐나갈 것으로 예상되는가?
최치수가 왜 서희에게 냉랭하게 대하는 지를 생각해 보면서, 집안에서 서희가 차지하는 위치와 서희의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를 토대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한다.
- 서희는 몰락하는 집안의 마지막 핏줄로,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시련의 운명을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인물로 그려진다. 따라서 그러한 운명에 맞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방향에서 삶이 전개될 것이다. 우선 성장하는 과정에서 가문의 몰락을 경험하게 될 것이며, 서희는 집안의 대를 이을 유일한 혈족으로 가문의 부흥을 삶의 제 1의 목표로 삼고 살아갈 것이다. 이를 위해 가문에 피해를 입힌 자들에게 복수의 의지를 다지기도 할 것이며, 한편으로는 서희를 도와 뿌리를 이어가는 매개 역할의 인물이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어린 서희에게 동정과 연모의 정을 보인 길상이 그러하다.
2. 이 소설에 나타난 최 참판 댁 하인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어떠한지 행동이나 대화를 바탕으로 함께 이야기해 보자.
이 소설에서는 제각기 다른 성격의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인물 하나 하나가 살아있는 듯하고, 그들 모두가 제각기 다양한 인간 군상의 면모들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이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다. 최참판 댁 하인들의 삶의 태도를 살펴보고, 다양한 그들의 삶의 태도의 공통점을 인식하여 말해 보도록 한다.
- 최 참판 댁 하인들은 최 참판 댁 식구들과 대립적인 관계를 맺고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거나 비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현재 생활에 충실한 현실주의적 면모를 보여준다. 봉순 어미의 경우도 서희를 안쓰러워하고 잘 보살피려는 마음이 드러나고, 봉순이 역시 서희의 동무이면서 동시에 서희를 보살펴 주는 언니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남자 하인들 역시 서로의 심기를 상하지 않게 하려고 배려하면서 투박한 관심을 드러내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 준다. 단지 귀녀는 특이한 경우로, 무언가 야심을 품고 있는 분위기와 태도를 보인다. 소설 전반을 통해 볼 때, 귀녀는 신분 상승에 대한 강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설 '토지'에서 볼 수 있는 삶의 양상은 어떤 것인가?
- 작품의 중심을 이루는 최 참판 댁 일가의 삶과 그들을 둘러싼 평사리 마을 사람들의 삶은 서로 긴밀한 상관 관계를 가지면서, 우리 민족의 수난사와 토지에서 한을 안고 살아가는 민중들의 힘겨운 삶의 역정을 대변한다. 특히 최 참판 댁 하인들과 평사리 마을 사람들은 개인의 이해 관계에 민감한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면서도 가식 없는 현실적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즉 전통적 계급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최 참판 일가의 형식주의적 삶과, 그리고 구시대적 질서의 붕괴 과정에서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아가려는 민중들의 현실주의적인 삶이 대조적으로 드러난다.
우리 민족사를 통해 볼 때 소설 '토지'가 주는 의미는 어떤 것인가?
작품 속 등장인물들의 삶의 모습은 우리 민족의 전통적 삶의 현실을 그대로 담고 있다. 특히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 구한말에서 일제 치하에 이르는 우리 민족사의 격변기라는 점을 감안할 때, 농촌 공동체를 토대로 한 민중들의 삶의 모습은 우리 민족 정신에 내재해 있는 한의 정서를 느끼게 해 준다. 그러나 이러한 한의 정서는 시대적 격동의 현장에서 끈질기게 우리의 땅을 지켜 내려는 민족 구성원의 강인한 삶의 의지와 애환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작품은 우리의 근대사에 대한 애정 어린 인식을 환기시키기도 한다.
소설 '토지'를 읽은 느낌과 관련하여 자신이 생각하는 삶의 바람직한 가치는 무엇인가?
이 작품의 가장 핵심적인 가치관의 문제는 최 씨 집안의 마지막 당주로서 선대에 이룩한 재산을 누리며 평사리의 지배자로 군림하는 최치수와, 최 씨 집안의 대를 이를 마지막 혈족으로서 가문의 부흥을 삶의 최대 목표로 삼는 서희 사이에 나타나는 대립적 관념이다. 보수적인 관념을 가진 최치수는 오로지 전통적인 계급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만이 옳다고 믿고 있지만, 이는 구한말에서 일제 치하에 이르는 격동기를 살아가는 삶의 태도로서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과거에 얽매어 변화하는 사회에 대한 전망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서희는 전통적인 삶의 뿌리를 지키려는 강한 의지를 가지면서도 과거에만 집착하지 않고, 미래 지향적인 태도를 바탕으로 변화에 대처하면서 자신의 가치관을 관철시키려고 한다는 점에서 본받을 만하다.
1969년 《현대 문학》에 연재되기 시작하여 여러 차례 지면을 옮겨가며 연재되어 1994년 9월 제16권이 발간되면서 완성된 박경리의 대표적 대하 소설 <토지>는 한국 현대 문학 100년의 역사상 가장 훌륭한 소설로 손꼽힌다.
구한말에서 8·15까지 경남 하동 평사리의 대지주 최씨 가문의 4대에 걸친 비극적 사건을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한국의 개인사·가족사·생활사·풍속사·역사·사회사 등을 모두 포괄하는 총체 소설이라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첫째, 이 작품이 1897년부터 1945년까지 식민지 시대 전체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 둘째, 지주·소작인·친일파·밀정·의병·승려·지식인 등 여러 계층의 다양한 사상적 경향을 가진 가공적 인물을 등장시켜 그들의 인생 유전을 세밀하게 추적한다는 점, 셋째, 소설의 배경 무대가 한반도의 하단 평사리에서 시작하여 진주·통영·경성·만주의 용정·신경·하얼빈·일본의 동경으로 확대된다는 점, 넷째, 사건 중심의 기술에서 점차 등장 인물들의 개인사 중심 기술을 통해 궁극적으로 그들의 삶이 모두 유기적으로 연관을 이룬다는 점 등이다.
즉, <토지>는 인물로는 서희와 길상을, 공간적으로는 평사리를 각각 중심으로 하여 수많은 동심원을 그리는 확대 구조를 가진다. 이러한 기술 방법을 통해 이 작품은 식민지 시대 한국인의 보편적 혹은 총체적 삶을 재현한다.
그러기에 <토지>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가지로 나올 수가 있다. 우선 갈래에서 대하 소설, 역사 소설, 농민 소설, 총체 소설 등 여러 명칭이 쓰이는데. 이는 그만큼 이 작품이 한국이 역사는 물론, 농민의 근대적 각성, 죽음과 한의 철학, 토속적, 무속적 향수의 적절한 사용을 통해 격동기 민족의 수난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작품은 서술 방법과 구성 원리의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내용적으로 역사와 운명 모두를 포괄했다는 점에서도 총체적이다. 7,80년대의 탁월한 소설적 성취로 평가되는 <장길산>이나 <태백산맥>은 각각 민중적 세계관과 프롤레타리아 세계관에 입각한, 그 시대 역사 의식의 정직한 소산이다. 그러나 <토지>는 시대적 역사 의식에 비교적 자유로우면서, 한편으로 운명적인 것에 대한 집요한 탐구를 추가한다. 이것은 아마도 박경리 특유의 유기적 세계관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이해와 감상1
박경리(朴景利)가 지은 장편소설. 1969년부터 집필에 들어가 1994년에 전 5부 16권으로 완간한 대하소설이다. 한말의 몰락으로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시대에 이르는 과정을 지주계층이었던 최씨 일가의 가족사를 중심으로 폭넓게 그려내고 있다. 지난 시대 한민족(韓民族)이 겪은 고난의 삶을 생생하게 형상화해 낸 점에서 〈토지〉는 역사소설의 규준에도 적응하는 것이지만, 근본적인 의미에서 인간의 보편성에 대한 탐구로서 더 큰 성과를 얻고 있다.
〔내 용〕
제1부의 시간적 배경은 1897년 한가위에서부터 1908년 5월까지인데, 평사리라는 전형적 농촌마을을 무대로 하여 이야기가 전개된다. 평사리의 전통적 지주인 최참판댁과 그 마을 소작인들을 중심인물로 하여 최참판댁의 비밀(최치수의 살해사건 등)과 조준구의 계략, 귀녀·김평산 등의 애욕관계 등이 한데 얽혀 한말의 사회적 전환기의 양상이 그려져 있다.
특히 일제에 의한 국권상실, 봉건 가부장체제와 신분질서의 붕괴, 농업경제로부터 화폐경제로의 변환 등 한말 사회의 변화가 소설의 배경이 되면서, 최참판댁의 몰락과 조준구의 재산 탈취 과정을 주요한 사건으로 다루고 있다.
제2부의 시간적 배경은 1911년 5월 간도 용정촌의 대화재로 시작되어 1917년 여름까지인데, 여기서는 경술국치 이후 1910년대의 간도 한인사회의 삶의 모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는 조준구의 계략에 재산을 빼앗긴 서희의 간도 이민의 형태를 빌리면서 서사적 공간이 이동되기 때문이다.
간혹 지리산 동학 잔당의 모임을 제외하고는, 국내정세보다 간도를 둘러싼 중국과 러시아의 정세가 주요한 배경을 이루면서, 최씨 일가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독립운동의 양상을 폭넓게 나타내고 있다. 그러면서 서희의 복수, 곧 최씨 일가의 귀환을 향해 이야기가 집중되어 있다.
제3부는 1919년 3·1운동 이후 1929년 원산총파업과 광주학생사건까지 1920년대의 진주와 서울 같은 도시에서의 삶이 집중적으로 나타나 있다. 이것은 서희의 노력에 의한 최씨 일가의 대상(大商)으로의 성장이 발판이 되어 일제에 의하여 추진된 식민자본주의화 과정을 도시를 중심으로 그려놓고 있는 데 연유한다. 따라서 여기에는 운전수·의사 등 직업인과 교사·신여성·문필가 같은 지식층이 대거 등장한다.
그리고 복수 후 허무에 부딪친 서희의 삶과 동학 잔당의 세력을 규합하여 독립운동을 벌이려던 김환은 일제의 고문 끝에 죽음에 이르면서 이야기의 중심은 송관수로 전형화되는 민중적 삶과 서울의 임명희를 둘러싼 지식인과 신여성들의 삶으로 이동한다.
제4부는 1930년부터 1937년 중일전쟁과 1938년 남경학살에 이르는 시기가 배경이다. 서사의 공간은 서울·동경·만주에서 하동·진주·지리산까지 더욱 확대되면서 이야기의 중심은 더욱 다원화된다. 그러면서 민족주의·공산주의·무정부주의 등 독립운동의 여러 노선이 제시되는가 하면, 지식인들의 사상적 경향과 등장인물을 통해 일제에 대한 면밀한 분석도 시도된다. 길상의 출옥과 군자금 강탈사건, 윤인실과 오가다의 사랑이 중요한 서사적 의미를 지닌다.
제5부의 시간적 배경은 1940년부터 1945년 8·15광복까지인데, 〈토지〉의 대단원을 맺는 부분이다. 송관수의 죽음, 길상을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 단체의 해체, 길상의 관음탱화 완성, 오가다와 유인실의 해후, 태평양전쟁의 발발, 예비 검속에 의한 길상의 구속 등이 이어지면서 〈토지〉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특히 5부에서는 광복의 날을 기다리는 민족의 삶들이 펼쳐지는데, 양현과 영광, 윤국의 어긋난 사랑이 중요한 갈등을 이룬다.
이처럼 〈토지〉는 최씨 일가의 3대에 걸친 파란만장한 삶을 중심으로 그들의 삶이 이루어놓은 사회적 공간에 따라 당대 사회의 변모가 충실히 그려져 있다. 또한 서희와 조준구의 원한관계, 월선과 용이의 한(恨) 많고 영원한 사랑, 김환의 죽음 등 소설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의 삶의 양상 또한 폭넓게 형상화되어 작품의 대강을 형성하고 있다.
〔해석 및 평가〕
〈토지〉에 대한 작품 분석은 26년이란 오랜 집필 기간 속에서 부분적으로 실시되었는바, 전 5부가 완간되어 총체적인 분석이 가능해졌다. 작자 자신도 언급했듯이 〈토지〉는 여느 역사소설과 그 성격이 크게 다르다. 이것은 작자의 전반적인 소설세계의 맥락 속에서 살펴보아야 할 문제이다. 박경리 소설은 인간삶의 역사적 배경과 현실에 궁극적 관심을 두는 게 아니라 이 문제들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인간 삶의 근원적인 면에 대해 탐구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박경리는 인간의 보편성에 대한 근원적 탐구를 소설화했다. 특히 작자는 〈토지〉에서 간난(艱難)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한(恨)과 강인한 생명력에 대해 서사적 관심을 갖는다. 한이 깊은 자신의 삶을 사랑의 차원으로까지 아름답게 승화시킨 송관수나 주갑이·조병수 등은 박경리가 창조한 대표적 인물이고, 이 소설이 보여주는 인간 탐구 내용의 핵심이다.
작자에 따르면 한은 특정한 사람에게만 있는 정서가 아니라 인간이 유한한 존재라는 근원적 모순에서 생겨난 것이다. 따라서 한은 인간의 유한성으로 인해 일어나는 슬픔이기도 하지만, 모순을 극복하려는 동기와 염원, 희구를 낳는다는 점에서 미래지향적 성격을 지닌다. 영원한 것은 추구하기 위해, 혹은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이 풀어야 할 과제가 된다. 그러므로 이 한을 어떻게 승화시키는가 하는 문제는 작자에게 본질적 물음인 셈이다.
여기서 작자는 한을 지니게 되는 다양한 사건들을 제시하고 그들이 한을 간직한 채 어떻게 살아가며 대응하고 있는지에 대해 천착한다. 〈토지〉의 인물 대부분이 이 한을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한의 사상’은 작품의 핵심 중 하나이다. 곧, 작자는 한의 문제를 생명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로 형상화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인간탐구를 통해 〈토지〉는 인간의 보편적 본질에 대한 이해를 깊게 도모하는가 하면, 새로운 시대에 인류가 성취할 삶의 방식에 대한 전망을 보여 준다.
한편, 작자는 ‘한의 사상’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생명사상’을 형상화한다. 그리하여 작자는 생명을 억압하는 모든 물질적 힘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그 생명들이 균형과 긴장을 이루는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발양할 수 있도록 하는 사랑을 주제화한다. 작자는 이 생명사상을 소설 속 인물들의 사랑을 통해서 형상화해 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토지〉에 나타나는 사상은 ‘생명사상’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작자는 이 ‘생명사상’을 통해 한민족(韓民族)의 세계관이 지닌 인류보편적 가치를 선양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한을 삭이고 사랑으로 승화시켜 창조적으로 변용하는 인간을 그리는 것은 실제로 한민족에게 있었던 인간의 모습이며, 있어야 할 인간의 모습을 작자는 창조한 것이다.
그것은 모든 생명들이 자신을 창조성의 존재로 고양시키는 세계에의 기대이며 참다운 생명에의 희망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생명사상에 대한 형상화는 작품에서 관음보살상을 조성하는 일을 초반부터 예시하고 마지막에 이르러서 길상으로 하여금 실제 작업을 완수하도록 하는 데서 여실히 알 수 있다. 이로써 작자가 〈토지〉를 지은 것은 길상이 관음보살상을 그리는 것과 동일한 작업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작품에 그려진 인물들의 모습은 바로 그 큰 자애의 마음에서 창조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김두수나 조준구 같은 부정적 인물들, 정석이나 송관수 같은 험난한 인생 역정을 살아가는 인물들, 몽치나 모화처럼 강인한 생명력을 그리는 데 있어 작자는 자애의 마음으로써 형상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절대자에 대한 무조건적 헌신이나 복종보다도 개개 생명에 대한 큰 자애심을 강조하는 동양적 세계관이 이 작품의 심층에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토지〉가 한국소설사에서 갖는 소설사적 위상은 크다. 하지만 〈토지〉는 여러 논자들에 의해 한계가 언급되고 있다. 그것은 근대전환기의 역사 현실, 즉 봉건사회의 해체와 근대사회로의 이행을 토지와의 관련 속에서는 살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사회를 개혁하려는 제반 운동과 지향의 기본동력을 산출해 낸 봉건적 토지 소유관계의 모순과 그 모순의 발현양상에 대해서는 작자가 심도 있는 형상화를 하고 있지 못하다.
이처럼 토지와의 관련을 고려하지 않을 때, 신분질서의 해체는 단순한 현상에 불과할 뿐이지 역사 전개의 본질을 담아내는 데까지 미치지 못한 문제점을 낳는다. 자칫하면 근대전환기라는 서사적 배경이 소재주의로 전락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토지〉는 앞서 언급한 바처럼 ‘한의 사상’과 ‘생명사상’을 근간으로 한 인간의 본원적 진실을 탐구하고, 언어예술로서의 사투리와 속담·격언 등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한국어가 지닌 미적 특질을 최대한으로 살림으로써 한국소설사에서 역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소설사(김윤식·정호웅, 예하, 1993), ‘토지’를 읽는다(최유찬, 솔, 1996), ‘토지’와 박경리 문학(한국문학연구회 편, 솔, 1996).(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해와 감상2
박경리(朴景利)의 장편 대하소설. 1969년 집필을 시작, 94년까지 제 5 부작 총 16권으로 완성되었다. 내용은 최씨 일가 3대에 걸친 가족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제 1 대는 하동(河東) 평사리의 대지주 가문인 최참판댁 <윤씨부인>을 중심으로 조선말 사회적 전환기에 몰락하는 집안의 모습이 가문의 출생비밀과 얽혀 전개된다. 제 2 대는 윤씨부인의 손녀 <서희>를 중심으로 국권피탈 이후 간도(間島)에 이주하여 재산을 되찾고 가문을 일으키려는 그녀의 노력과 당시 간도의 독립운동·한인사회의 모습이 최씨 일가를 중심으로 폭넓게 묘사되고 있다. 제 3 대는 서희의 아들세대인 식민지 지식인층이며 3·1운동 이후 식민지화와 자본주의화가 함께 진행되는 서울 등의 도시에서 그들이 겪는 개인적·역사적 삶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 작품은 조선말에서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큰 변혁기의 한국 근대사 속에서 다양한 인물들이 겪는 운명과 고난, 민족의 한(恨), 역사의 상관성을 깊이있게 부각시켜 1970년대 이후 한국의 대표적 장편 대하소설로 꼽히고 있다.(출처 : 파스칼세계대백과사전)
박경리(朴景利, 1927- )
1926년 10월 28일 경상 남도 충무에서 출생했다. 1945년 진주고등여학교를 졸업하고 결혼했으나, 한국 전쟁중 부군이 납북된 후 창작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1955년과 그 이듬해에 걸쳐 <현대 문학>에 단편 <계산>과 <흑흑백백>이 추천되어 문단에 등장한 이래 <전도>, <불신 시대>, <암흑 시대>등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1957년 부정과 악에 강렬한 고발 의식을 보여 준 <불신 시대>를 발표하여 제3회 현대 문학 신인상을 수상하였고, 여류 작가로서의 기반을 굳건히 하였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대체로 한국 전쟁 때 남편을 잃고 홀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거나 딸 하나를 데리고 사는 전쟁 미망인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아들 작품에서는 전쟁 미망인들의 삶, 또는 그들의 눈을 통해 사회 현실의 훼손된 국면들을 예리하게 파헤쳤다.
1959년에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고독한 여인의 심적 방황을 그린 장편 소설 <표류도>를 발표하여 제3회 내성 문학상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장편 소설의 집필에 주력하였다. 이후 <내마음은 호수>, <은하>, <푸른 은하> 등의 신문 연재 소설을 발표하는 한편, 1962년에는 전작 장편 <김약국의 딸들>을 발표하였다. <김약국의 딸들>은 이전의 전쟁 미망인을 즐겨 등장시킨 자전적 사건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시선을 확보하였고, 공간적 배경도 전쟁터가 아닌 통영으로 바뀌었으며, 제재와 기법면에서 다양한 변모를 보인 전환기적 작품이다. 1964년에는 한국 전쟁이라는 민족사의 비극을 생활인으로서의 시각과 전쟁을 수행하는 이데올로기의 시각을 통해 예리하게 부각시킴으로써 역사를 정면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노력을 담은 전작 장편 <시장과 전장>을 간행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았고, 이듬해에 제2회 한국 여류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이어 <가을에 온 여인>, <늪지대>, <타인들>, <환상의 시기>등을 연재하였다.
1969년 이후부터는 대하 장면 <토지>에 몰두하고 있다. 하동의 대지주 최 참판네 일가를 중심으로 한말에서부터 식민지 시대를 거쳐 조국 광복에 이르는 민족사의 변천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보여지는 광대한 스케일과 한국 근대사의 전개에 관한 작가의 독특한 시각은 우리 소설사에서 매우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972년에는 <토지> 제1부로 제7회 월탄문학상을 수상하였다.
토지의 작가의식
"토지"에 나타난 작가의식의 요체는 곧 민주주의와 한이다. 우선 작자의 민족주의는 전통에 대한 애착과 더불어 문화민족의 관점을 드러낸다. 곧 봉건 조선의 와해와 더불어 진행된 식민지 자본주의화의 과정에서 작자는 봉건 조선의 사회 경제적 붕괴를 인정하지만, 봉건 조선의 선비와 그 시대 백성을 대표하는 농민들이 간직하고 있던 정신주의적 세계와 윤리적 보수성에 대한 애정을 보여줌으로써 전통 지향성을 드러낸다.
이러한 전통적 정신 세계에 대한 작자의 애착은 민족주의와 연결된다. 가령 '토지'의 민족주의는 정신문화의 위엄을 간직하고 있던 우리 민족이 결국은 생명을 무시하고 생명성이 거세된 물질문명의 위력에 의한 일본 민족에게 핍박을 당하는 상황에 대한 저항으로부터 출발하는 문화사적 시각을 드러낸다. 민족의 문화적 고유성에 집착하는 이른바 문화 민족의 개념은 관념적이고도 신비한 민족 정신에 대한 호소로 다소 복고적이고 낭만적인 성향을 띈다. (중략)
한은 흔히 '토지'의 기본주제로 언급된다. 그런데 작자에게 있어 한의 문제는 정서적인 차원의 것을 넘어선 형이상학의 문제이다. 한이란 다시 말해 인간 조건의 근원적인 부조리에 대한 질문이며, '토지'의 비중 있는 인물들은 대체로 이러한 문제와 대면하게 됨에 따라 것은 작품의 주요한 주제가 된다. 인간 존재의 근원적 물음으로서의 한은 극히 개인적 실존에 관한 것일 수도 있으나, '토지'에서 나타나는 변화하는 사회 역사적 상황에 놓인 한 인간의 존재 조건에 대한 물음은, 인간과 사회 역사의 운명을 좀더 극적으로 드러내는 기능을 한다. (출처: 양문규, '<토지>에 나타난 작가 의식')
작품의 공간과 시점상의 특징
이 소설의 서두는 외부 세계로부터 고립되어 있는 평사리 마을을 무대로 진행된다. 평사리는 지리적으로 외지와 단절되어 있을 뿐 아니라 최 참판 댁을 중심으로 한 이 마을의 삶의 질서 역시 봉건적이고 폐쇄적이다. 철성, 윤보 등이 외부 세계와 평사리를 드나드는 인물들이지만 그들 또한 마을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는 못한다. (중략)
도입부는 전지적 시점으로, 장편 소설이 의례 그렇듯이 소설 공간을 총괄하는 화자의 시선이 나타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시점의 주체는 전능한 신처럼 비인격적이고 초연한 존재는 아니다. 즉 '있을 것이다', '있을지도 모른다' 등의 추측하는 듯한 말투는 냉엄한 전지성 대신에 따뜻한 인격적 요소를 느끼게 해 준다. 이런 추측하는 말투에 의한 화자의 인격성은 평사리를 무대로 한 이 소설의 초반부에 계속 이어진다. 그러면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이 화자의 독특한 어조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추측과 확신을 포함한 화자의 어조는 그가 마치 평사리 마을의 일원인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화자는 가능한 한 과거형의 단정적 어조를 피함으로써, 그가 평사리 외부의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마을을 잘 알고 있는 또 다른 인물인 듯이 여겨지게 한다. 다시 말해, 추측의 어조는 화자를 이야기 세계 내부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화자의 전능성은 그가 이야기 세계 외부에 위치함으로써 얻어진다. 전지적 작가가 일인칭 화자와는 달리 인격적 요소를 상실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화자는 마을을 잘 아는 전능한 존재이지만 그의 전능성은 이야기 세계 외부의 초월적 위치에서 얻어진 것이 아니다. 화자는 오히려 마을 내부의 사람들과 친밀성을 거듭 유지함으로써 전지성을 얻은 듯한 존재로 나타난다. 또한 그것이 가능한 것은 이 마을이 오래도록 외부와 차단되어 왔으며 내부적으로만 깊은 유대를 지니기 때문일 거이다. 따라서 전능성을 지닌 채 이야기 세계 내부에 존재하는 화자의 독특한 위치는 그와 마을 간의 끈끈한 유대와, 더 나아가 마을 사람들 상호간의 유대를 의미한다. 화자와 마을, 그리고 마을 사람들 간의 이런 제휴 관계는 평사리가 폐쇄된 공동체적 원환(圓環)의 세계임을 암시한다. (출처 : 나병철, '<토지>의 시점 연구')
<토지>의 문학사적 성과와 가치
박경리의 장편소설 <토지>는 무려 25년에 걸쳐서 줄곧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탄생한 것으로, 그 규모와 문학적 성취로 보아서 우리 소설사 또는 문학사에 커다란 획을 긋고 있다. 이 작품은, 구한말에서 일제 말기에 이르는 시간과 공간의 역사를 조명하는 방대한 작품으로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계보는 4대를 다루고 있으며, 이들의 개인적인 고통과 민족애, 가정사 에 얽힌 이야기를 다룬 역사적인 소설이다. 또한 문벌과 재물로 백년 넘게 평사리를 군림한 대지주요 양반계급인 최참판댁의 몰락과 전이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가족사소설로서의 성격도 지니고 있다.
<토지>는 그 근원적인 성격에 있어서 역사적인 상상력에 의해서 그려지고 극화된 역사의 상상적인 초상이다. 그렇기 때 문에 역사와 인간의 관계에 대한 작가의 비전이나 숙고가 짙게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표제의 <토지>는 단순한 땅 이나 흙으로서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항속적인 성격을 가지면서 생성의 수용력과 창조력을 가진 생의 원천과 자궁으로서 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역사 그 자체를 표상하며, 인간이란 그 역사의 밭에 뿌려지는 씨앗과 같은 것이라는 농경적인 상상력이 근거되어 있는 것이다. 밭과 씨앗의 기본 관계로 이어지는 것이 농경이듯 이 역사는 그 역사의 밭에 뿌려진 인간의 생성과 소멸 , 지속과 변화의 거듭되는 과정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작가 박경리가 광대한 <토지>의 역사적인 무대 위에 역사를 움직였던 역사적인 실제 인물들을 등장시키지 않고 오히려 숨은 역사를 대리하는, 그 역사 속에서 살아간 이름은 있으되 역사적으로는 무명상태인 허구의 인물들을 주역으로서 등장시키고 있다는 것은 역사의 민중성에 대한 그의 신뢰와 인지의 면모를 드러내주는 의의를 지니는 것이다. 또한 <토지 >는 인간의 보편적인 삶의 진실을 기록한 점에서 가치를 지니고 잇는데, 그것은 한민족이 일제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싸우는 과정에서 획득한 역사적 진실이면서 인류의 보편성을 드러내는 진실이다. 이밖에도 <토지>가 언어 예술로서 사투리와 속담, 격언 등을 효과적으로 이용하여 한국어가 지닌 미적 특질을 한껏 살리고 있음을 비롯하여 <토지>가 보여주는 장엄한 우주, 생명에 대한 깊은 연민과 사랑, 문학적 실험을 이끌어온 작가적 치열성 등은 높이 살 만하다.
토지 줄거리
[토지]는 하동 평사리의 대지주 최씨 가문의 비극적인 사건으로 문을 연다.
최씨 집안의 안주인인 윤씨부인(최치수의 모친)은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갔다가 후에 동학 접주가 되어 처형당하는 김개주에게 겁탈당해 김환(일명 구천이)을 잉태한다.
그후 김환은 최씨 가문으로 잠입하여 하인이 되지만, 최치수의 아내인 별당아씨와 사랑에 빠져 둘은 지리산으로 도망친다. 최씨 가문의 재산을 탐낸 귀녀와 몰락 양반 김평산의 음모로 최치수는 교살당하고 음모를 꾸민 두 사람은 윤씨부인에게 발각되어 사형당한다.
최씨 집안의 외가 쪽 먼 친척인 조준구는 윤씨부인이 마을을 휩쓴 콜레라(호열자)로 죽자 최씨 집안의 재산을 강탈하려고 한다. 그는 한편으로 최씨 집안의 유일한 생존자인 최치수의 외동딸 서희를 몰아내고 마을 사람들을 분열시키면서 일본인들의 힘을 빌려 모든 재산을 손아귀에 넣게 된다.
여기에 더해 서희와 자신의 아들 병수를 결혼시키려는 음모를 꾸미자 서희는 충직한 하인 김길상 등과 함께 용정으로 탈출한다. 서희는 용정에서 윤씨부인이 남긴 금은괴를 자본으로 장사로 성공하여 거부(巨富)가 되고, 하인이었던 길상과 혼인한다. 여기까지가 토지 1 2부의 개괄적인 내용인데, 국권상실, 봉건 가부장 체제와 신분 질서의 붕괴, 농업 경제로부터 화폐 경제로의 변환 등 1900년대와 1910년 한국 사회의 변화가 소설의 밑그림으로 담겨 있다.
3, 4부는 1, 2부와 연속선상에 놓이면서도 시대 배경 인물의 변화와 변천에 따라 이야기의 축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3, 4부의 시간적 배경은 2, 30년대인데, 이 시기의 한국 사회의 격변이 소설의 중요한 관심사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3 1운동이 실패로 돌아갔음이 확인되고, 일제의 총독 정치가 가혹해지기 시작한 1920년대 식민지 상황의 암울한 분위기가 무겁게 소설을 누르고 있다.
국권을 빼앗긴 식민지 백성들은 굳건히 발붙이고 살 정착지가 없기 때문에 자연히 여기저기 떠도는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은 소설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소설의 무대가 다변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1부(1897~1908. 5)에서는 평사리, 2부에서는 용정으로 거의 국한되어 있다시피 한 소설의 무대가 3, 4부에 와서는 서울 부산 진주 평사리, 그리고 국외로는 간도 일대와 일본까지 확대된다. 여기에 민족주의 공산주의 무정부주의 등 독립 운동의 여러 노선이 제시되며, 지식인들의 사상적 경향과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면밀한 분석도 시도된다.
이런 가운데 1 2부의 주역들은 하나둘씩 세상을 떠난다. 용이와 그의 아내 임이네는 병으로 죽고 기생으로 전락한 끝에 이상현의 씨를 낳고 아편 중독자가 되고 만 기화(봉순)는 끝내 서희의 비호와 정석의 애끓는 연정을 뿌리치고 투신 자살한다.
동학 잔당의 세력을 규합하여 독립운동을 벌이려던 김환(구천이)은 고문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용정 공노인의 부인과 조준구의 악착같은 부인 홍씨도 세상을 뜬다. 이들의 죽음과 함께 [토지]에서는 이들의 후손들이 점차 주역을 차지한다. 서희의 두 아들 윤국과 환국, 용이의 아들 홍이, 조준구의 아들 꼽추 조병수 등이 소설의 전면으로 나온다.
이와 함께 3 4부에 오면 새로운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대부분 인텔리 계층으로 작가는 이들을 통해 희망 없는 식민지 상황의 암울함을 드러낸다. 임역관의 딸 명빈과 명희를 비롯해 귀족층의 조용하, 급진적 사회주의 사상가 서의돈, 극작가 권오송, 성악가 홍성숙, 조선에 대해 동정적인 일본인 오가다 지로, 유인실, 강선혜, 황태수 등과 진주 쪽의 박효영, 허정윤 등이 그러하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극단적 양상으로 치닫는 1940년대를 배경으로 광복의 감격까지를 다루고 있는 5부는 [토지]의 대단원의 장이다. 송관수의 죽음, 길상을 중심으로 한 독입 운동 단체의 해체, 길상의 관음 탱화 완성, 오가다와 유인실의 해후, 태평양 전쟁의 발발, 예비 검속에 의한 길상의 구속, 양현 영광 윤국의 어긋난 사랑 등이 이어지면서 대하소설 [토지]는 거대한 마침표를 향하여 달려간다. (출처 : 문학사전 p. 278~280)
대하소설
앙드레 모루아가 처음 이 명칭을 사용한 이후부터 일반화되었다. 모루아의 정의(定義)에 의하면, 대하소설이란, 내용의 줄거리 전개가 완만(緩慢)하고 등장인물이 잡다하며, 사건이 연속해서 중첩되어 마치 대하의 흐름과 같이 계속되는 장편소설이라는 것이다. 특히 시간은 끊임없이 흘러가며 과거는 돌이킬 수 없다는 인상을 독자에게 주는 점이 주요 특징이다.
최초에는 이러한 경향이 강한 R.롤랑의 《장 크리스토프》(1904∼12), M.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la Recherche du Temps Perdu》(1913∼1928), 마르탱 뒤가르의 《티보가(家)의 사람들:Les Thibault》(1928), 뒤아멜의 《파스키에가의 이야기:Chronique des Pasquier》(1936) 등, 프랑스 현대작가들의 작품만을 대하소설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1866), T.만의 《부덴브루크가》(1901), 골즈워디의 《포사이트가의 이야기》(1922), C.P.스노의 《타인과 형제》(1940∼1970) 등의 작품도 대하소설에 포함시키고 있다.
1930년대와 1940년대 한국문학에서는 염상섭의 《삼대(三代)》, 박태원(朴泰遠)의 《천변풍경(川邊風景)》, 채만식의 《태평천하》, 김남천(金南天)의 《대하(大河)》, 이기영의 《봄》, 한설야(韓雪野)의 《탑》 등의 가족사소설 ·연대기소설, 역사적으로 실재하였던 시대와 인물에 문학적 상상력을 가한 역사소설 등이 대하소설에 속한다.
안수길의 《북간도》(1959~1967), 박영준의 《가족》, 황순원의 《움직이는 성》, 박경리의 《토지》 이래로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유주현의 《조선총독부》, 홍성원의 《육이오(六 ·二五)》, 황석영의 《장길산(張吉山)》, 김성한의 《요하(遼河)》, 김주영의 《객주(客主)》, 조정래의 《태백산맥》 등 대하소설이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출처 : 동아대백과사전)
'토지'와 근대사
(1) 1부(1897년 한가위~1908년 5월) : 동학농민운동, 갑오개혁,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 을사보호조약 체결,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함, 1897년 대한제국의 성립 - 최참판 가문의 몰락, 조준구의 재산 탈취
(2) 2부(1911년 5월 간도 용정촌의 대화재~1917년 여름) : 경술 국치 후 지리산 동학 잔당(殘黨)의 모임, 대한 광복군 정부 수립, 1912년 중국민국의 성립과 러시아의 정세가 중요 배경이 됨. 1914년 1차 세계대전(~1918년), 1917년 러시아혁명 - 서희의 복수, 최씨가의 귀환
(3) 3부(1919년 3 1운동 ~ 1929년 원산 총파업, 광주학생사건) : 1919년 임시정부 수립, 1920년 김좌진의 청산리 대첩, 1929년 사회주의 사회 단체인 계명회 사건 - 김환의 죽음으로 송관수 등의 민중적 삶과 서울의 임명희를 둘러싼 지식인과 신여성들의 삶이 그려짐
(4) 4부(1930년 ~ 1939년) : 1940년 광복군 결성, 1933년 미국의 뉴딜 정책, 독일의 나치정권, 1936년 손기정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1937년 중일전쟁 발발, 1938년 남경학살 등 - 김길상의 출옥, 군자금 강탈 사건, 유인실과 일본인 오가다의 사랑
(5) 5부(1940년 8월 ~ 1945년 광복) : 1939년 제 2차 대전 발발, 1943년 카이로 선언, 일본의 항복 -
광복을 향한 민족의 삶, 양현과 영광의 사랑과 갈등
문학으로 만나는 역사
동학농민전쟁이 실패로 돌아간 뒤 조선의 식민지화는 걷잡을 수 없는 흐름을 타게 되었다. 러시아와 일본은 각기 아관파천과 명성황후 살해를 통해 조선의 식민지배를 꾀했다. 일본 낭인들의 국모 시해라는 전대미문의 치욕을 맛본 유생들은 단발령을 계기로 수하들과 농민군 잔여세력을 규합하여 전국적인 의병투쟁을 전개하지만, 일본군의 우세한 화력을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농민군의 분발에 당황하고 일본의 이른바 내정개혁 강요에 몰린 정부는 갑오개혁을 단행한다. 왕권 제한, 조세의 금납화, 도량형 통일, 문벌 타파, 과거제 폐지, 노비법 폐지, 과부의 재혼 허용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갑오개혁은 농민전쟁에서 집약적으로 분출된 봉건체제의 내부모순을 누그러뜨리려는 시도였음에는 틀림이 없으나 그것이 일본의 조선 내 영향력을 강화시키는 쪽으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었다.
박경리(70)씨의 대하소설 <토지>는 농민전쟁과 갑오개혁, 을미의병 등이 차례로 근대사의 연표를 채우고 지나간 1897년 한가위로부터 문을 연다. 이후 일제의 본격적인 식민지배와 민중의 검질긴 독립투쟁, 그리고 2차 대전에 이은 해방까지의 긴박한 역사를 큰 호흡으로 훑어 내려갈 소설의 첫 장면은 뜻밖에도 평화롭고 풍요롭다.
"까치들이 울타리 안 감나무에 와서 아침 인사를 하기도 전에, 무색 옷에 댕기꼬리를 늘인 아이들은 송편을 입에 물고 마을길을 쏘다니며 기뻐서 날뛴다. (…)고개가 무거운 벼이삭이 황금빛 물결을 이루는 들판에서는, 마음놓은 새떼들이 모여들어 풍성한 향연을 벌인다."
그렇기로서니 수상한 세월 힘없는 나라에서 맞이하는 박복한 백성들의 명절이 어찌 평화와 풍요의 겉보기에만 그칠 것인가. 과연 작가는 곧 이어서 "팔월 한가위는 투명하고 삽삽한 한산 세모시 같은 비애는 아닐는지"라며 시의 경지를 방불케 하는 문장을 내밀고 있다. 더구나 그 비애의 속내인즉, 산문적 사실성과 치열성으로 가득차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하고많은 이별을 생각해보는 것이다. 흉년에 초근목피를 감당 못하고 죽어간 늙은 부모를, 돌림병에 약 한 첩을 써보지 못하고 죽인 자식을 거적에 말아서 묻은 동산을, 민란 때 관가에 끌려가서 원통하게 맞아죽은 남편을, 지금은 흙 속에서 잠이 들어버린 그 숱한 이웃들을, 바람은 서러운 추억의 현을 가만가만 흔들어준다."
<토지>는 만석꾼 대지주 최참판댁의 마지막 당주인 최치수와 그의 고명딸 서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토지의 상실과 회복을 둘러싼 대하 드라마를 전개한다. 치수의 어머니 윤씨 부인이 동학 접주 김개주에게 겁탈 당해 낳은 자식 김환이 의붓 형수인 별당아씨와 밤도망을 치는 사건은 장강처럼 흘러갈 소설의 초입에 물살 급한 여울목을 마련해 놓는다. 상피붙은 남녀를 쫓는 긴박한 추격전이 벌어지는 한편에서는 치수의 고임을 받아 그의 만석지기 농토를 차지하고자 하는 하녀 귀녀의 음모, 치수가 비명횡사한 뒤 최참판댁 재산과 토지를 노리는 그의 재종형 조준구의 행보, 마을 남정네 용이와 무당 딸 월선이의 비련 등 인간사의 오욕칠정이 쉬임없이 피었다 진다. 거기에 동학군 출신인 대목수 윤보, 의병에 가담하는 김훈장,
독립군으로 변신하는 길상과 그 아들, 조준구가 대표하는 상업영농과 서희의 곡물무역의 자리바꿈에서 볼 수 있는 경제의 단계적 발전 등 사회·역사적 변모가 포개진다.
<토지>의 무대는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전북 진안에서 발원한 섬진강이 3개 도 12개 군에 걸치는 남도 5백리를 내려와 하동포구에서 남해로 흘러들기 전에 강의 북동쪽으로 빚어놓은 악양들을 내다보며 자리잡고 있는 마을이다. 폭이 넓지도 수심이 깊지도 않으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강으로 꼽히는 섬진강은 발원지에서부터 남해 바닷물에 몸을 풀기까지 지리산 자락의 높고 낮은 봉우리들을 좌우에 거느리고 구비쳐 내려오는데, 강을 바투 쫓아오던 경상도쪽 산자락이 문득 멀찍이 물러나 앉으면서 조물주의 선물처럼 이루어 놓은 너른 벌이 바로 악양들이다. 김제?만경의 광활함에는 턱없이 못 미치지만 그래도 근방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규모다. `외지 거지가 악양에 들어와도 1년은 놀고 먹을 수 있다'는 말은 그런 규모가 가능케 하는 풍요와 여유를 가리키는 것일 터이다. 하동에서 멀지 않은 통영에서 출생해 진주에서 학교를 나온 박경리씨는 1960년대의 어느 날 화개의 친척집을 방문하는 길에 악양들을 접하고는 이곳을 당시 구상하고 있던 <토지>의 무대로 삼기로 했다. 그러나 소설을 집필하는 도중 평사리를 직접 답사하지는 않았다. 소설 속 동네 구조와 실제의 평사리의 모습이 같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다.
겨울 한복판의 악양들에는 <토지> 서두와 같은 벼이삭의 물결 대신 날선 바람의 갈기만이 휘날리고 있다. 어쩌다 한둘 트랙터로 논을 갈아엎는 이들이 눈에 뜨일 뿐 너른 들에 사람 그림자도 찾아보기 힘들다. 개 짖는 소리와 닭 우는 소리, 소의 음메 소리가 서로 화답하는 마을에서도 사람을 마주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담쟁이 덩굴이 벋어 올라간 오래 묵은 돌담들, 담 옆 헐벗은 나무에 달랑 두 개 달려 있는 까치감, 마루 밑에 넣어 둔 단호박 덩이들과 처마 밑의 메주, 시레기 다발 따위가 대신 사람의 자취와 체온을 전해준다.
악양들의 옥답과는 달리 산쪽으로 다가 앉은 마을에는 유난히 돌이 흔하다. 거의 모든 집의 담이 돌로 되어 있음은 물론 마을 뒤편의 다랑논의 논둑 역시 돌을 쌓아 만들어 놓았으며, 돌을 고르다 못한 언덕빼기는 단감나무 밭으로 알뜰하게 활용하고 있어 땅밖에 모르는 농부들이 박토를 일구며 흘린 땀을 짐작케 한다. 마을 한가운데에는 소설 속 임이네와 강천댁, 두만네, 막딸네 등 아낙들이 시름을 털어놓거나 신세를 한탄하는가 하면 작은 일로 아옹대기도 했음직한 공동우물과 빨래터가 남아 있다.
박경리씨는 평사리를 답사하지 않았지만, 이곳 주민들은 <토지>에 대해서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볼 기 뭐 있다꼬 사램들이 시도 때도 없이 와 쌓십니더"라는 가게 주인 아주머니의 말에서 평사리가 이미 문학사적 지명으로 자리잡았음을 알 수 있다. 평사리에는 여관이나 여인숙, 식당은 물론 민박집 하나도 변변한 것이 없다. 아마 앞으로도 그런 것이 생겨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달랑 지도 한 장 들고 물어 물어 찾아오는 수많은 독자들을 위해 마을 입구에 이곳이 소설 <토지>의 무대라는 안내판 하나 정도는 있어도 좋지 않을까.
<줄거리>
[토지]는 하동 평사리의 대지주 최씨 가문의 비극적인 사건으로 문을 연다. 최씨 집안의 안주인인 윤씨부인(최치수의 모친)은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갔다가 후에 동학 접주가 되어 처형당하는 김개주에게 겁탈당해 김환(일명 구천이)을 잉태한다.
그후 김환은 최씨 가문으로 잠입하여 하인이 되지만, 최치수의 아내인 별당아씨와 사랑에 빠져 둘은 지리산으로 도망친다. 최씨 가문의 재산을 탐낸 귀녀와 몰락 양반 김평산의 음모로 최치수는 교살당하고 음모를 꾸민 두 사람은 윤씨 부인에게 발각되어 사형당한다. 최씨 집안의 외가 쪽 먼 친척인 조준구는 윤씨부인이 마을을 휩쓴 콜레라(호열자)로 죽자 최씨 집안의 재산을 강탈하려고 한다. 그는 한편으로 최씨 집안의 유일한 생존자인 최치수의 외동딸 서희를 몰아내고 마을 사람들을 분열시키면서 일본인들의 힘을 빌려 모든 재산을 손아귀에 넣게 된다.
여기에 더해 서희와 자신의 아들 병수를 결혼시키려는 음모를 꾸미자 서희는 충직한 하인 김길상 등과 함께 용정으로 탈출한다. 서희는 용정에서 윤씨부인이 남긴 금은괴를 자본으로 장사로 성공하여 거부(巨富)가 되고, 하인이었던 길상과 혼인한다. 여기까지가 토지 1 2부의 개괄적인 내용인데, 국권상실, 봉건 가부장 체제와 신분 질서의 붕괴, 농업 경제로부터 화폐 경제로의 변환 등 1900년대와 1910년 한국 사회의 변화가 소설의 밑그림으로 담겨 있다.
3, 4부는 1, 2부와 연속선상에 놓이면서도 시대 배경 인물의 변화와 변천에 따라 이야기의 축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3, 4부의 시간적 배경은 2, 30년대인데, 이 시기의 한국 사회의 격변이 소설의 중요한 관심사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3 1운동이 실패로 돌아갔음이 확인되고, 일제의 총독 정치가 가혹해지기 시작한 1920년대 식민지 상황의 암울한 분위기가 무겁게 소설을 누르고 있다. 국권을 빼앗긴 식민지 백성들은 굳건히 발붙이고 살 정착지가 없기 때문에 자연히 여기저기 떠도는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은 소설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소설의 무대가 다변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1부(1897~1908. 5)에서는 평사리, 2부에서는 용정으로 거의 국한되어 있다시피 한 소설의 무대가 3, 4부에 와서는 서울 부산 진주 평사리, 그리고 국외로는 간도 일대와 일본까지 확대된다. 여기에 민족주의 공산주의 무정부주의 등 독립 운동의 여러 노선이 제시되며, 지식인들의 사상적 경향과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면밀한 분석도 시도된다. 이런 가운데 1 2부의 주역들은 하나둘씩 세상을 떠난다. 용이와 그의 아내 임이네는 병으로 죽고 기생으로 전락한 끝에 이상현의 씨를 낳고 아편 중독자가 되고 만 기화(봉순)는 끝내 서희의 비호와 정석의 애끓는 연정을 뿌리치고 투신 자살한다.
동학 잔당의 세력을 규합하여 독립운동을 벌이려던 김환(구천이)은 고문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용정 공노인의 부인과 조준구의 악착같은 부인 홍씨도 세상을 뜬다. 이들의 죽음과 함께 [토지]에서는 이들의 후손들이 점차 주역을 차지한다. 서희의 두 아들 윤국과 환국, 용이의 아들 홍이, 조준구의 아들 꼽추 조병수 등이 소설의 전면으로 나온다.
이와 함께 3 4부에 오면 새로운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대부분 인텔리 계층으로 작가는 이들을 통해 희망없는 식민지 상황의 암울함을 드러낸다. 임역관의 딸 명빈과 명희를 비롯해 귀족층의 조용하, 급진적 사회주의 사상가 서의돈, 극작가 권오송, 성악가 홍성숙, 조선에 대해 동정적인 일본인 오가다 지로, 유인실, 강선혜, 황태수 등과 진주 쪽의 박효영, 허정윤 등이 그러하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극단적 양상으로 치닫는 1940년대를 배경으로 광복의 감격까지를 다루고 있는 5부는 [토지]의 대단원의 장이다. 송관수의 죽음, 길상을 중심으로 한 독입 운동 단체의 해체, 길상의 관음 탱화 완성, 오가다와 유인실의 해후, 태평양 전쟁의 발발, 예비 검속에 의한 길상의 구속, 양현 영광 윤국의 어긋난 사랑 등이 이어지면서 대하소설 [토지]는 거대한 마침표를 향하여 달려간다.
박경리의 '토지'와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 비교
박경리의 〈토지〉, 언어표현상 문제 많다
농악 :
농부들이 두레를 짜서 일할 때 치는 음악. 넓은 의미로는 꽹과리·징·장구·북과 같은 타악기를 치며, 행진·의식·노동·판놀음 등을 벌이는 음악을 두루 가리키는 말이다. 굿·매구·풍장·금고(金鼓)·취군 등으로도 불린다.
굿은 흔히 무당이 노래와 춤을 벌이며 소망을 신에게 비는 의식을 가리키지만, 농악을 가리키기도 한다. 농악 치는 것을 ‘굿한다’고 하며, 또 당산굿·샘굿·성주굿과 같이 굿패들이 농악을 치며 벌이는 민간신앙의식을 가리키고, 길굿·삼채굿과 같이 농악가락을 가리키며, 오방진굿·도둑재비굿과 같이 농악대들이 판놀음으로 벌이는 판굿의 놀음을 가리키기도 한다.
풍장은 두레풍장·장풍장·배치기풍장과 같이 풍악으로 벌이는 고장(북장단)이라는 뜻이다. 금고는 징·꽹과리와 같은 쇠붙이로 된 악기와 북이 합주하는 음악이라는 뜻이며, 취군은 행진음악을 연주하는 악대라는 뜻이다.
매구는 섣달 그믐에 잡귀를 몰아내고 복을 불러들이고자 치는 매굿, 또는 꽹과리를 꽹매기·매구라 하듯이 꽹과리를 가리키는 말로도 풀이된다.
〔종 류〕
농악을 공연하는 목적·계기·방법에 따라 종류를 나누어 보면, 당산굿·마당밟이·걸립굿·두레굿·판굿이 있고, 그 밖에 기우제굿·배굿 등 여러 가지가 있다.
(1) 당산굿 굿패들이 마을굿〔洞祭〕을 하며 치는 농악을 가리킨다. 마을굿에는 무당의 가무, 제관의 독축헌잔(讀祝獻盞), 굿패들의 농악이 따르는데, 농악에서는 마을굿에서 치는 농악을 ‘당굿’ 또는 ‘당산굿’이라 한다.
호남지방을 비롯한 남쪽지방의 마을굿에 농악이 따르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전라남도 완도군 완도읍 장좌리 당제, 광주광역시 남구 칠석동의 당제와 같은 마을굿이 당산굿 농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당산굿을 치는 순서와 가락은 고장에 따라 다르나, 굿패들이 영기(令旗)·농기·서낭기 따위를 앞세우고 풍장을 치고 당에 가서 제물을 차리고 제를 지내기도 하고, 바로 농악을 치며 절을 하고 당마당에서 한바탕 판굿을 벌이고, 농악을 치며 마을에 내려와 도청(都廳)이나 우물을 돌고, 그리고 집집마다 도는 집돌이〔家家巡訪〕를 하는 경우가 많다. 집돌이 끝에는 줄다리기와 같은 마을사람들의 경기나 놀이가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2) 마당밟이 굿패들이 마을 수호신인 당(서낭)을 모시고 마을의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불러들이는 집돌이 의식을 하며 치는 농악을 가리킨다. 지신밟기·뜰밟이·답정(踏庭)굿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마당밟이는 마을굿의 집돌이의 일종인데, 당산제를 모시는 마을굿이 아니고 정초에 집가심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마당밟이는 마을굿의 집돌이와 공연형식이 같으나 집돌이에 더욱 치중한다. 먼저 당에 가서 당굿을 치고 당을 모시고 샘굿·도청굿을 치고 집집마다 들러서 집굿을 치는데, 집굿 치는 순서는 고장마다 다르나 흔히 문굿·샘굿·마당굿·성줏굿·조왕굿·터주굿·장독굿·마구간굿·측간굿 순으로 치는 경우가 많다.
마당굿에서는 작게 판굿을 치고, 성줏굿에서는 마루에 고삿상을 차리고 상쇠나 소리꾼이 〈고삿소리〉 또는 〈고사반〉이라 하여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불러들이는 노래를 부른다. 마당밟이 농악으로는 부산의 ‘동래지신밟기’가 널리 알려져 있다.
(3) 걸립굿 걸립패들이 마을마다 돌며 집집마다 들러서 고사를 지내고 돈과 쌀을 거두며 치는 농악으로, 일명 ‘걸궁’이라 한다. 걸립패의 의식과 농악은 마당밟이 농악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없다.
다만 마당밟이는 마을굿패가 하는 경우가 많고, 걸립굿은 직업적으로 고용된 농악수들로 조직된 걸립패가 하는 경우가 많다.
걸립은 목적에 따라 절에서 시주를 걷는 절걸립, 다리를 짓기 위하여 돈을 걷는 다리걸립, 서당걸립·나루걸립 등이 있다. 또, 재인들이 하는 신청(神廳)걸립이 있고, 단순히 돈을 구걸하기 위하여 걸립하는 낭걸립, 구경꾼들에게 돈을 받을 목적으로 하는 포장걸립 따위가 있다.
신청걸립패와 같은 큰 걸립패는 마을굿패가 하는 마당밟이보다 규모나 형식이 훨씬 확대되어 있다. 걸립패가 마을에 들어오기 전에 문굿을 크게 치며, 집돌이에서도 마당굿과 〈고삿소리〉를 크게 벌이고, 밤에는 따로 마을사람들을 위하여 판굿을 벌인다. 따라서 농악이 오늘날과 같이 발전한 것은 걸립패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4) 두레굿 농부들이 두레를 짜서 김매러 갈 때나 김맬 때, 그리고 김매고 돌아올 때, 또한 호미걸이와 같은 축제를 벌일 때 치는 농악으로, 일명 ‘두레풍장’이라 한다. 두레를 짜게 되면 두레기를 세우고 농신(農神)을 받는데, 이 두레기는 흔히 농기라 하며, 그 밖에 용기(龍旗)·용당기·용둣기·덕석기·농상기 등으로 불린다.
두레패들은 농신에게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농기를 앞세우고 김매러 갈 때, 그리고 김매고 돌아올 때 풍장을 치는데, 고장에 따라서는 흥을 돋우고 피로를 덜기 위하여 김맬 때에도 친다.
전라북도 정읍·김제 지방에서는 두레패들이 김매러 갈 때 치는 농악은 들풍장, 김맬 때 치는 농악은 풍장·장풍장 또는 지심풍장, 밭에서 나올 때 치는 농악은 날풍장, 김매기가 끝나고 마을에 들어가며 장원질놀음을 벌일 때는 ‘꽃나부선다’ 하여 무동을 세우고 치는 꽃나부풍장 등으로 나누고 있다.
김매기가 끝나면 두레패들이 농신을 모시고 풍년을 비는 축제를 벌이는데, 이것을 호미걸이·호미씻이·두레먹기·질먹기·풋굿〔草宴〕·술메이쉬는날 등으로 부르며, 백중 무렵에 논다 하여 백중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호미걸이 의식은 대개 농악을 치며 술먹고 노는 것으로 고장에 따라 다르나, 모든 고장의 의식을 종합해 보면 농신맞이(당제)·기 절받기·농사풀이·농사순방·판굿 등으로 구성된다.
(5) 판굿 굿패나 걸립패·두레패와 같은 농악대가 마당에서 마을사람들에게 구경시키기 위하여, 온갖 구색을 갖추고 순서를 짜서 노는 농악을 가리킨다. 판굿은 당굿·마당밟이·두레굿 등 모든 농악의 기예를 동원하여 한판 놀 수 있게 짠 것이며, 노는 순서는 고장에 따라 다르나 흔히 여러 가지 도형으로 도는 진(陣)놀이를 먼저 벌이고, 여러 가지 솜씨를 보여주는 구정놀이를 나중에 벌인다.
진놀이에는 나선형으로 도는 멍석말이(방울진·고동진), 멍석말이를 5방(五方)에서 차례로 벌이는 오방진(五方陣) 등이 있으며, 구정놀이에는 장구놀이·상쇠놀이·법고놀이·무동놀이·동고리(무등타기)·열두발채상 등이 있는데, 근래에 설장고놀이 등 개인놀이가 발달하고 있다.
판굿에는 농사풀이·도둑재비·수박치기·콩동지기와 같은 놀이를 곁들이기도 한다. 농악은 판굿뿐만 아니라 당산굿·마당밟이·걸립굿·두레굿 등 모든 종류의 풍장을 가리키는 것이지만, 농악 공연은 여러 농악의 종류 가운데 판굿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농악경연대회에서 겨루는 것도 판굿이며, 중요 무형문화재 제11호인 농악의 공연도 판굿이다.
〔악 기〕 농악에 쓰이는 악기는 풍물(風物)이라 한다. 풍물이란 풍장에 쓰이는 기물(器物), 즉 악기라는 뜻이다. 여기에는 꽹과리·징·장구·북·소고·호적·나발이 있다. 농악기는 대부분 타악기이며, 호적과 나발은 관악기이다. 그리고 호적만이 선율악기이다.
악기는 지방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는데, 경기 북부에서는 바라를 쓰며, 영동지역에서는 소고를 다시 소고와 법고로 나누기도 한다. 영남지방에서는 땡각〔令角〕이 쓰이기도 한다.
농악은 꽹과리가 주가 되며, 꽹과리 제1주자인 상쇠가 농악대를 지휘한다. 호적의 선율은 꽹과리가락에 조주(助奏)하는 구실에 그치므로 없어도 괜찮다.
〔편 성〕 농악을 치는 악대를 쇠꾼·치배·군총·취군이라 한다. 또, 농악의 종류에 따라 굿패·굿중패·걸립패·걸궁패·중매구패·두레패라 부르기도 한다. 걸립패나 굿중패를 ‘뜬쇠’라 하고 두레패를 ‘둥렁쇠’라 하는데, 이것은 곁말(은어)이다.
농악대의 편성은 지역에 따라 다르나 기를 드는 기수, 악기를 연주하는 재비〔樂手〕, 탈〔假面〕을 쓰고 여러 가지 배역으로 분장하여 춤추는 잡색(雜色)으로 편성되는 경우가 많다. 농악대는 고장에 따라 기수가 앞서고 다음에 재비, 맨 뒤에 잡색이 따르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호남 농악에서는 재비를 ‘앞치배’라 하고 잡색을 ‘뒷치배’라 한다.
(1) 농악에 쓰이는 기 기(旗)에는 영기(令旗)와 대기(大旗)가 있는데, 요즈음은 대기를 농기로 통칭하고 있다. 대기는 농기·용기·용당기·용둣기·덕석기·서낭기·농상기 등으로 부른다. 영기는 작은 기이며 창이나 삼지창으로 깃봉을 달고, 네모 또는 세모로 된 기폭에 영자(令字)를 쓴다. 대기, 즉 농기는 영기에 견주어 매우 큰 기이다.
긴 대나무로 깃대를 만들고 끝에 꿩장목이라 하여 꿩꼬리로 깃봉을 달고 매우 큰 기폭을 다는데, 기폭에는 기의 종류에 따라 용을 그리기도 하고 정방형의 도안을 그리기도 하며, 신상(神像) 또는 신위(神位)를 쓰는데, 이를 ‘신농유업(神農遺業)’이라 한다. 근래에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고 쓰는 경우가 많다.
기폭의 가에는 지네발을 달고 끝에는 오색 깃발을 단다. 깃봉 밑에는 방울이나 종이 술을 달며, 그 밑에는 무명으로 길게 벌이줄 또는 붓줄이라고 하는 줄을 서너 가닥 달아서 사방에 늘어놓아 넘어지지 않게 한다.
굿패나 걸립패의 대기에는 서낭신을, 두레패의 대기, 즉 두레기에는 농신을 각각 받는다. 신을 받은 기는 쓰러뜨리지 않고, 농악대들이 음식을 먹을 때에는 먼저 음식을 바친다. 호남지역 걸립패에서는 대기 대신에 영기를 신기(神旗)로 쓰는 경우도 있다.
(2) 재비 농악은 꽹과리재비·징재비·장구재비·북재비·소고재비 순으로 서서 행렬하며, 소고와 법고가 나누어지는 지방에서는 소고재비가 앞서고 법고재비가 뒤에 선다. 나발수는 영기 앞에 서며 호적수는 농기 뒤에 서는데, 일정하지 않다.
재비들의 복색(服色)을 쇠옷이라 이르는 곳도 있다. 꽹과리재비는 더그레를 걸치고 색띠를 띠고 부포상모를 단 전립(戰笠)을 쓰는 곳이 많다. 징재비·장구재비·소고재비·북재비는 더그레를 걸치고 색띠를 띠고 채상모를 단 전립을 쓰는 지역이 많고, 고깔을 쓰는 지역도 있다. 두레풍장을 칠 때는 따로 복색이 없이 농복 차림이다.
꽹과리재비는 2∼5명으로 편성되는데, 상쇠·부쇠·종쇠·사쇠·끝쇠라고 부르는 지방이 많다. 상쇠는 꽹과리재비 우두머리일 뿐 아니라 농악대 전체의 음악을 지휘하는 우두머리 구실을 하며, 고장에 따라서는 상공운·설쇠라고 부르기도 한다. 상쇠가 춤을 출 때, 또는 상쇠가 허튼가락이라 하여 자유자재로 변주된 가락을 칠 때는 부쇠가 농악대의 쇠가락을 주도한다.
징재비는 하나 또는 여럿을 쓰는데, 수징·부징·종징·끝징 등으로 부른다. 수징은 고장에 따라 설징·상징으로 부르기도 한다. 장구재비는 둘에서 다섯 명 정도로 편성되는데, 설장구·부장구·종장구·사장구·끝장구로 부른다.
설장구는 고장에 따라 상장구 또는 수장구라고 부르기도 한다. 북재비는 하나 또는 여럿을 쓰는데, 수북·부북·종북·사북·끝북 등으로 부른다. 수북은 설북 또는 상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소고재비는 대개 여덟 명쯤으로 편성되며, 수법고·부법고·종법고·사법고·끝법고 등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수법고를 설법고 또는 상법고라고 하는 고장도 있고, 끝법고를 꼬리법고라고 부르기도 한다. 호적재비는 하나를 쓰기도 하나 쌍호적이라 하여 둘을 쓰기도 한다. 나발도 하나를 쓰기도 하나 쌍나발이라 하여 둘을 쓰는 경우가 많다. 호적수와 나발수는 더그레를 걸치고 전립을 쓰거나 따로 복색이 없는 경우가 많다.
(3) 잡색 농악에 쓰이는 잡색은 고장에 따라 다르다. 영동지역에서는 무동을 쓰고, 경기지역에서는 무동·사미(중애)·양반광대를 쓰며, 남쪽 지역에서는 대포수(大砲手)·조리중·양반·할미·각시·창부(倡夫)·무동 등 여러 가지를 쓰기도 한다. 두레풍장에는 잡색이 없다.
대포수는 철릭에 관을 쓰거나 더그레에 벙거지를 쓰고 조총(鳥銃)을 메고 망태를 든다. 조리중은 장삼을 입고 송낙을 쓰고 바랑을 멘다. 창부는 창옷을 입고 초립을 쓴다. 양반은 도포를 입고 띠를 띠고 관을 쓴다.
할미광대는 검은 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고, 각시는 붉은 치마에 노랑 또는 녹색 저고리를 입는다. 원래 잡색은 탈을 쓰는 것이나 쓰지 않는 고장이 많다.
무동은 붉은 치마에 노랑 또는 녹색 저고리를 입고 남쾌자를 걸치는데, 고장에 따라서는 고깔을 쓴다. 사미는 흰 장삼에 흰 고깔을 쓴다. 잡색은 춤을 추는 것이 구실이지만 때로는 재담도 하고 놀이도 한다.
〔음 악〕
농악의 음악은 타악기의 리듬 음악이 주가 되고, 호적의 선율은 농악가락의 조주(助奏)에 그친다.
(1) 장단 농악의 주된 악기가 꽹과리이므로 농악 장단은 흔히 꽹과리가락으로 나타내며 쇠가락이라 부른다. 농악에는 여러 가지 쇠가락, 즉 장단이 있고, 이는 고장에 따라 다르다.
쇠가락에는 3분박 4박자, 즉 8분의 12박자가 가장 많이 쓰이고, 빠른 3박과 2박이 섞인 혼합박자도 더러 쓰이며, 드물게 2분박 4박자, 즉 4분의 4박자도 쓰인다.
농악에 쓰이는 장단은 가짓수도 많고 또 고장에 따라 이름도 다르게 되어 있으나, 흔히 알려진 것은 길군악·길군악칠채·오채질굿·굿거리·덩더꿍이·다드래기와 같은 것이다.
덩더꿍이는 일명 덧뵈기라 하며, 3분박 보통 빠른 4박자(8분의 12박자)이며 자진모리장단에 맞는다. 이 장단의 경우 옛날에는 징을 3점 쳤기 때문에 삼채 또는 삼채굿이라 하였다. 삼채는 다시 느린삼채와 자진삼채로 나누어진다.
느린삼채는 3분박 보통 빠른 4박자이며 느린 자진모리장단에 맞는데, 일명 긴삼채라고도 부른다. 꽹과리는 ‘갠지갱, 갠지갱, 갠지갱, 갯깽-’(위의 방점은 징을 치는 자리임) 하고 치며, 징은 제1·2·3박의 강박에 1점씩 쳐 모두 3점을 친다. 자진삼채는 3분박 좀 빠르기에서 빠른 4박자이며, 빠른 자진모리장단에 맞는다. 꽹과리는 ‘갠-지, 갠-지, 갠-지, 갯깽-’ 하고 치며, 징은 제1·2·3박의 강박에 1점씩 쳐 모두 3점을 친다.
마을농악에서는 삼채에 징을 3점씩 치나, 직업적인 농악대에서는 징을 자주 치는 것이 시끄러워 1점 또는 2점만 치는 경우가 많다. 덩더꿍이는 농악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쇠가락(농악 장단)으로, 매우 흥겨운 느낌을 준다. 굿거리는 3분박 좀 느린 4박자(8분의 12박자)이며, 호남농악에서는 풍류굿·외마치질굿이라고 부른다.
꽹과리는 ‘갠지갱, 갱개개개개, 갠지갱, 갯깽-’ 하고 치며, 경기도와 강원도에서 징은 제1·2박에서 강박에 1점씩, 제3박에서 강박, 그리고 제2부박(副拍)에 1점씩 모두 4점을 치며, 전라도나 경상도에서는 첫 박에 1점만 친다. 이 장단은 행진과 춤의 반주에 주로 쓰이며 유장하고 흥겨운 느낌을 준다.
다드래기는 3분박 빠른 4박자(8분의 12박자)이나 2분박 매우 빠른 4박자를 가리키며, 이러한 박자를 호남농악에서는 세산조시라 하고, 경기도에서는 자진가락이라고 부른다. 경기도 자진가락에서 꽹과리는 ‘갱-, 개개, 으개, 갱-’ 하고 치며, 징은 첫 박과 둘째 박에 1점씩 치는데, 요즈음은 첫 박에 1점만 치는 경우가 많다. 다드래기는 경쾌하고 격렬한 느낌을 준다. 이것은 농악에서 가장 빠른 가락이다.
길군악장단은 대개 매우 빠른 3박과 2박이 섞인 혼합 박자로 이루어진다. 가장 간단한 것은 매우 빠른 3박과 2박이 2+3+3+2, 즉 8분의 10박으로 짜여지는 것인데, 이것을 경기농악에서는 ‘마당일채’라고 한다.
꽹과리는 ‘갱-, 갠지갱, 갱-갱, 깽-’ 하고 치며, 징은 첫 박에 1점만 친다. 이 장단은 전국적으로 가장 널리 쓰이는 행진가락이다.
길군악은 매우 빠른 3박과 2박이 여러 가지로 복잡하게 짜여서 그 종류가 매우 많으나, 이 가운데 길군악칠채와 오채질굿이 가장 널리 알려진 장단이다.
길군악칠채는 경기농악에서 행진 및 판굿의 멍석말이에 쓰는 장단으로, 매우 빠른 3박과 2박이 3+2+3+2, 3+3+3+2, 3+2, 2+3+3+2로 짜여진 8분의 36박자 장단이다. 꽹과리는 ‘갠지갱, 깽-, 갠지갱, 깽-, 갠지갱, 갠지갱, 갠지갱, 갠지갱, 깽-. 갠지갱, 깽-, 갠지, 갠지갱, 깽-깽, 깽-’ 하고 치며, 징은 7점을 친다. 징을 7점 치는 행진가락이라는 뜻으로 길군악칠채라 부른다. 이 가락은 생동하고 꿋꿋한 느낌을 준다.
오채질굿은 호남우도농악의 판굿 첫머리에서 치는 장단으로, 매우 빠른 3박과 2박이 2+3+3+2, 2+3+3+2, 3+2+2+3, 3+3+3, 3+3+3으로 짜여져 8분의 48박자로 된 장단이다. 꽹과리는 ‘갱-, 갠지갱, 갠지갱, 깽-. 갠지, 갠지갱, 지갱깽, 깽-. 개깽-, 개(르)갱, 개(르)갱, 갱깽-, 개깽-, 갱-개, 갱-개. 개깽-, 갱-깨, 개(르)갯깽’ 하고 치며, 징은 5점을 친다. 징을 5점 치는 행진음악이라는 뜻으로 오채질굿이라 한다. 이것도 꿋꿋하고 생동하는 느낌을 준다.
(2) 채와 마치 농악이나 무악(巫樂)에서 채 또는 마치라는 말은 장단·가락·박이라는 뜻으로 두루 쓰인다. 즉, 농악 장단에서는 징의 점수에 따라 일채·이채·삼채·오채·칠채 또는 한마치(외마치)·두마치·세마치·열두마치와 같이 수치를 매겨 부른다. 이 가운데 마당일채·삼채(세마치)·외마치질굿·오채질굿·길군악칠채가 널리 알려져 있다.
호남좌도농악에서는 판굿의 첫머리에 채굿이라는 순서가 있다. 1점·2점·3점 이렇게 일련의 수치대로 징을 치는 장단을 자의적으로 짜서 치는 것인데, 일채(외마치)에서 십이채(열두마치)까지 짜서 치는 것이지만, 점수가 많으면 연주하기가 까다로워 대개 칠채까지만 친다.
십이채가 널리 알려지니까 진주 삼천포농악에서는 판굿의 순서를 12종으로 갈라서 12차(十二次)라고 부르기도 하나, 이것은 근래에 자의적으로 만든 것이다.
한편, 한 장단이 길게 계속될 때 한 리듬형만 계속 반복되는 것을 외가락이라고 하는데, 이는 단순한 느낌을 주므로 어떤 지역에서는 리듬형에 상대적인 리듬을 교대로 쳐서 강약을 다르게 하여 변화를 주기도 한다. 이를 암채숫채라 하기도 하고, 대삼소삼이라 하기도 한다.
외가락이나 암채숫채의 교대는 리듬이 단순하므로 호남농악에서는 단순한 가락을 내드름, 즉 제시하는 가락으로 내고, 이것을 길게 달고 가면서 리듬감을 고조시키다가 가락을 변화시켜 굴리고 나서 맺는 가락이라 하여 종지형 리듬으로 끝맺는 리듬기교를 잘 구사하는데, 이를 맺고 푸는 가락이라고 한다.
〔지역적 분류와 특징〕
농악은 지역마다 특징이 달라서 여러 가지로 분류된다. 지역적 특징에 따라 분류하면 대개 경기농악·영동농악·호남우도농악·호남좌도농악·경남농악·경북농악으로 갈라진다.
(1) 경기농악 경기도, 강원도 영서지방, 충청도 북부지역에 전승되는 농악을 가리키며, 안성·평택 등지가 중심이 된다. 평택농악이 중요 무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되었다.
① 편성과 복색 : 영기·농기·나발·호적·상쇠·부쇠·종쇠·징1·징2·설장구·부장구·삼장구·북·상법고·부법고·종법고·사법고·오법고·육법고·칠법고·꼬리법고(끝법고)·상무동·종무동·삼무동·사무동·오무동·육무동·칠무동·중애(사미)·탈광대 등으로 편성된다.
상쇠를 비롯한 재비들은 흰 바지저고리에 밤색 더그레(덧저고리)를 입고, 나비상이 달린 벙거지를 쓰고, 가사(색띠)를 맨다. 무동은 붉은 치마, 노란 저고리에 남색 쾌자를 걸치고 가사를 맨다. 중은 흰 장삼을 입고 붉은 가사를 걸치고 흰 한삼을 매고 흰 고깔을 쓴다. 탈광대는 흔히 양반으로 분장한다.
② 장단 : 쇠가락에는 길군악칠채·쩍쩍이·자진가락·마당일채·덩더꿍이(삼채)·양산다드래기(연풍대)·굿거리 따위가 있으며, 다른 지역에 비해 가락이 분명하다.
③ 판굿 : 돌림법고·오방진·올림법고·당산벌림1·당산벌림2·절구댕이법고·사통백이·좌우치기·가세벌림·가세좌우치기·돌림법고·쩍쩍이·연풍대·소리굿·동리 따위로 구성된다.
(2) 영동농악 강원도 대관령 동쪽지방에 전승되는 농악으로, 강릉·삼척 지방이 중심이 된다.
① 편성과 복색 : 농기·쇄납(호적)·상공운(상쇠)·부쇠·삼쇠·징·장구1·장구2·큰북1·큰북2·상소고·부소고……팔소고·상법고·부법고……칠법고·끝법고·상무동·부무동·삼무동……칠무동·끝무동·화동(花童)으로 편성된다.
꽹과리재비는 바지저고리에 남색 동지기를 걸치고, 삼색띠를 띠고, 상모가 달린 벙거지를 쓴다. 징수·장구수·큰북수·소고수는 바지저고리에 색띠를 띠고(동지기를 걸치지 않고) 고깔을 쓰거나 상모를 달지 않은 벙거지를 쓴다. 법고재비는 바지저고리에 색띠를 띠고 긴 상모가 달린 벙거지를 쓴다. 무동은 붉은 치마, 노란 저고리에 남색 쾌자를 걸치고 색띠를 띠고 고깔을 쓴다. 화동은 장삼을 입고 가사를 걸치고 한삼 소매를 걸치고 흰 고깔을 쓴다.
② 장단 : 쇠가락에는 일채(천부당만부당)·이채·삼채·길놀이·굿거리·구식길놀이·오채 따위가 쓰인다. 옛날에는 길군악칠채를 치는 경우도 있었으나 드물었고, 지금은 치는 이가 별로 없다. 다른 지역에 비하여 속도가 빠른 가락이 많고, 외가락을 써서 맺고 푸는 변화가 없어 단조롭다.
③ 판굿 : 멍석말이·발맞추기·황덕굿1(소고놀이)·황덕굿2(법고놀이)·황덕굿3(무동놀이)·진놀이·지신밟기·농사풀이·동고리·열두발채상모·뒷굿으로 구성된다. 농사풀이에는 논갈이·모찌기·모심기·김매기·벼베기·타작·방아찧기 등 여러 가지가 있으나, 이것은 요즘 꾸민 것이라고 한다. 영동농악은 소박하고 단순하며 향토적 특색이 짙다.
(3) 호남우도농악 전라도의 김제·정읍·고창·영광·장성·화순·보성·고흥 등 서남지방에 전승되는 농악으로, 정읍·장성 지방이 중심이 된다.
① 편성과 복색 : 영기·농기·나발·쇄납·상쇠·부쇠·종쇠·수징·부징·수장구·부장구·종장구·수북·부북·수법고·부법고·종법고……칠법고·끝법고·대포수·창부·조리중·양반·할미광대·비리쇠·무동 등으로 편성된다. 꽹과리재비는 바지저고리를 입고 색드림을 하고 색동이 달린 홍동지기라는 붉은 덧저고리를 입고, 부포상모가 달린 벙거지를 쓴다.
징재비·장구재비·북재비·소고재비는 홍동지기에 고깔을 쓴다. 대포수는 철릭과 같은 대포수 옷을 입고 커다란 대포수 관을 쓰고 조총을 메고 망태를 든다.
② 장단 : 쇠가락에는 오채질굿·외마치질굿·느린삼채·자진삼채·두마치·세산조시·호호굿·풍류굿·다드래기 등이 있다. 다른 지방에 비하여 느린 가락이 많으며, 맺고 푸는 가락을 써서 리듬의 변화가 다양하다. ③ 판굿 : 우질굿·좌질굿·을자진(乙字陣)·오방진·쌍방울진·호호굿·다드래기·미지기·짝두름·일광놀이·영산다드래기·개인놀이·잡색놀이·소리굿·도둑재비·부넘기·탈복굿으로 구성된다.
호남우도농악은 쇠가락·춤사위·판굿놀이의 변화가 다양하고 흥겹다.
(4) 호남좌도농악 전라도 동북지방에 전승되는 농악으로, 진안·장수·완주·임실·순창·남원·곡성·구례·화순 등지가 중심이 된다.
① 편성과 복색 : 영기·농기·나발·쇄납·상쇠·부쇠·끝쇠·수징·부징·수장구·부장구·끝장구·수북·부북·수법고·부법고·종법고·칠법고·끝법고·대포수·창부·조리중·양반·할미광대·농구·각시·무동으로 편성된다.
꽹과리재비와 징재비는 바지저고리에 홍동지기를 걸치고 부들 부포상모가 달린 벙거지를 썼으나, 요즈음은 홍동지기를 걸치지 않고 색띠만 띤다. 장구재비·북재비·법고재비는 상쇠와 같되 채상모가 달린 벙거지를 쓴다. 잡색의 복색은 호남우도농악과 같다.
② 장단 : 쇠가락에는 굿거리(풍류굿)·삼채굿(자진모리)·휘모리·채굿(일채∼칠채)·질굿·짝두름·호호굿 등이 있다. 호남우도농악과 경상도농악의 중간적인 성격을 띠어 생동감 넘치는 가락이 많다.
③ 판굿 : 채굿·쌍방울진·미지기·잡색놀이·영산·소리굿·호호굿·돌굿·수박치기·등지기·도둑재비·탈머리 등으로 구성된다.
호남좌도농악은 우도농악과 경남농악·경기농악의 특색을 고루 지녀, 음악·춤사위놀이가 완벽한 짜임새를 갖는다.
(5) 경남농악 경상남도지방에 전승되는 농악으로, 함안·진주·삼천포 등지가 중심이 된다.
① 편성과 복색 : 나발수·영기·대기·양반·집사·상쇠·부쇠·끝쇠·수징·부징·설북·중북·끝북·설장구·목장구·끝장구·수법고·목법고·삼법고·사법고·오법고·육법고·칠법고·끝법고로 편성된다.
꽹과리재비와 징재비는 바지저고리에 색띠를 띠고, 종이로 만든 부포상모가 달린 벙거지를 쓴다. 북재비·장구재비·법고재비는 바지저고리에 색띠를 띠고 채상모가 달린 벙거지를 쓴다. 양반은 호남농악과 복색이 같다.
② 장단 : 쇠가락에는 홑다드래기·겹다드래기·삼차다드래기·잔다드래기·덧뵈기·길군악·오방진가락 등이 있다. 가락을 내어 빨리 몰아가므로 매우 씩씩한 느낌을 준다.
③ 판굿 : 어림굿·오방진놀이·다드래기놀이·덧뵈기놀이·쌍진풀이·덧뵈기법고놀이·자진얼림굿놀이·군악놀이·앉은법고놀이·삼차다드래기·웃물놀이·영산다드래기·양반포수놀이·연풍다드래기·먹법고웃놀이·삼채법고놀이·자진다드래기·다듬이품앗이놀이·재삼차법고놀이·반법고웃놀음·연풍대얼림굿놀이·운봉대놀이·사거리놀이·중거리놀이·달거리놀이·별거리놀이·호호굿놀이·날진풀이·허치자놀이로 구성된다.
경남농악은 자진가락이 많으며 씩씩하고 활기차다.
(6) 경북농악 경상북도지방에 전승되는 농악으로, 김천·청도·영주 등지가 중심이 된다.
① 편성과 복색 : 서낭기·나발수·쇄납수·양반·포수·각시·상쇠·부쇠·종쇠·끝쇠·징수1·징수2·상북·이북·삼북……팔북·설장구·이장구·삼장구·설소고·이소고·삼소고……칠소고·끝소고 등으로 편성된다.
꽹과리재비·징재비는 흰 바지저고리에 남색 쾌자를 걸치고 색띠를 띠며, 종이부포가 달린 벙거지를 쓴다. 북재비·장구재비는 흰 바지저고리에 남색 쾌자를 걸치고 색띠를 띠고, 채상이 달린 벙거지를 쓰거나 고깔을 쓴다. 소고재비는 흰 바지저고리에 쾌자를 걸치고 색띠를 띠고, 채상이 달린 벙거지를 쓴다. 양반은 도포를 입고 띠를 띠고 정자관을 쓴다. 포수는 두루마기를 입고 감투를 쓰고 조총을 손에 든다.
② 장단 : 쇠가락에는 굿거리·부정굿·조름쇠·살풀이·자진마치·덩더꿍이·다드래기·길군악 등이 있다. 외가락으로 빨리 몰아가는 경우가 많아서 소박하고 씩씩한 느낌을 준다.
③ 판굿 : 굿거리·춤굿·부정굿·차츰걸음·연풍기굿·호호딱딱·자진모리막조으기·물레굿·진굿·농사풀이(논갈기·모내기·김매기·타작)·조름판굿·오방진굿 등으로 구성된다. 경북농악은 꿋꿋하고 향토적인 고박(古朴)함을 간직하고 있다.
〔농악춤〕 무춤으로는 악기를 갖지 않고 연희하는 무동들의 사위춤(일정한 틀을 가진 동작)이 있다. 경기농악의 쩍쩍이춤(깨끼춤)과 좌우치기·찍금놀이, 강원농악의 쾌자자락의 춤, 충청농악의 꽃나부춤, 호남농악의 나비춤 등이 있는데, 공통적인 것은 쾌자자락을 쥐고 춤추는 것이라고 하겠다.
쇠꾼들이 행하는 부포놀이로 경기농악에는 외사·양사·찍임상, 강원농악에는 외사·양사·꼭두상모, 충청농악에는 외사·양사·세마치, 경상도농악에는 외사·사사·팔사·꽃이상모, 호남농악에는 외사·양사·사사·팔사·퍼넘기기·전조시·꾀꼬리상모·산치기·배미르기·돛대치기·복판치기·이슬털이·연봉놀이 등이 있다.
이러한 부포놀이는 한쪽으로만 돌리는 사위와 좌우로 번갈아 가면서 돌리는 사위, 그리고 부포를 앞뒤로 꺾는 사위 등이 기본이다.
또한, 호남지방 농악무의 유형이 다양한 이유는 가락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어느 지방을 막론하고 공통적인 것은 소고의 앞뒷면을 번갈아 가며 스쳐 치는 것, 소고를 밑에서 위로 올리며 꼬아서 가슴 앞에 가져오는 동작, 원형선상(圓形線上)을 빨리 회전하는 연풍대와 공중에서 몸을 틀어 회전하는 자반뒤집기 등이 있다.
또한 지방에 따라 독특한 사위춤이 있다. 예를 들어, 경기농악의 말법고·엎어백이·삼채법고·칠채법고·마당일채가락 등과 호남농악의 물푸기·사채와 사사·나비상·두루거리·맺는상·지계북·앉은상·가래들고 앉은상 등이 그것이다.
설장구춤은 판굿에서 볼 수 있는데, 이 가운데서도 호남농악(특히 우도농악)에서 한결 돋보인다. 예를 들면, 숙바더듬·고갈더듬·통돌림·채밖음치기·사채·궁굴채던지기·접시돌리기·태돌림·발림·학걸음 등이 있다.
북춤은 두레농악에서는 ‘모방구’라고 하며, 모내기 할 때와 판굿에서 춘다. 대체로 경상도형과 호남형의 두 가지 유형이 있는데, 경상도 북춤은 철저하게 덧뵈기가락의 원박(原拍)에 맞추어 북판과 북통을 번갈아 치면서 남성적인 배김새춤을 추는데, 배김새춤은 어느 방향으로 몸을 던져 정지하고 제자리에서 얼렀다가 긴장을 풀어 주는 춤이다.
반면에 호남지방의 북춤은 북판과 북통을 번갈아 치면서 유연하게 잔가락을 만들어 추는데, 특히 진도지방에서는 양손에 북채를 가지고 추는 것이 특징이다.
(1) 경기·충청 농악무 판굿의 진행에서 가세벌림과 당산벌림이라고 하는 耆자형이나 사각형의 대형(隊形)놀음이 있다. 쇠가락은 쩍쩍이가락처럼 빠른 가락이 발달되어 있으며, 무동춤과 놀이가 다른 지역에 비해 다양하게 발달되어 있다.
춤으로는 경기농악의 깨끼춤·좌우치기·적금놀이 등과 충청농악의 2층 무등타기인 ‘동리’, 3층 무등타기인 ‘삼동’, 3층과 양 옆으로 두 사람을 올려 놓는 ‘동고리’, 그리고 3층 무등타기라 할 수 있는 ‘맞동리’ 등이 있다.
(2) 영동농악무 가락은 외가락이거나 2박 가락으로 비교적 빠른 가락 위주로 되어 있고, 춤은 무동춤으로 쾌자자락을 좌우로 흔들면서 추거나 양손을 벌린 채 손바닥을 안으로 향하게 하고 그 손을 흔들어 춘다.
소고나 법고춤은 몸을 약간 앞으로 숙이고 뛰면서 대형변화(隊形變化)를 주는데 앞으로 전진하는 춤이 많고, 소고는 몸 앞에서 한 번 치거나 밑에서 머리 위로 올리는 동작을 반복하는 것이 주된 동작이다. 장구춤은 장구를 머리 위로 올려서 좌우로 흔들거나 외방망이치기·양방망이치기 등을 한다.
상쇠는 꽹과리를 들고 채를 8자(양상치기)로 돌리거나 상모놀이로 외상모·양상모·꼭두상모 등을 하는데, 12발상모는 뒤에서 손을 합치고 외상모로 하는 것, 양 상모로 하는 것, 땅에 엎드려 외상모로 하는 것 등이 있다.
그 밖에 소고나 법고가 하는 농사풀이가 있는데, 그 놀이는 가래질·논갈이와 논삼기, 못자리 누르기·모찌기·모심기·논매기·낫잡기·벼베기·벼광이기·태치기·벼모으기·방아찧기 등이며, 즉흥적으로 놀이를 줄이기도 하고 늘이기도 한다.
무동타기는 2층으로 만든 단동고리와 3층으로 만든 삼동고리,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3층을 만들고 4층에 어린 무동을 올려 상모놀이(외상모)를 하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3) 호남우도농악무 가락이 다양하고 섬세하며, 상쇠가 추는 부포놀이의 외사·양사·사사·산치기·양산치기·배미르기·돛대치기·좌우치기·복판치기·전조시 등 고갯짓춤과 설장구춤이 고도로 발달되어 있다.
소고춤의 경우 큰 소고를 들고 느릿하게 추는 굿거리춤은 팔을 많이 움직여서 허튼춤을 춘다. 또한, 큰 소고를 쓰는 까닭에 상모놀이보다는 고깔법고춤이 더 유명하다. 예를 들어 소고를 치는 방법, 물 푸듯이 농경모의를 하는 동작, 소고를 옆으로 벌렸다 몸 앞에서 교차하는 동작, 앉은 법고춤 등 멋있는 동작들이 많다.
또 판굿에 노래굿과 같은 것이 있을 뿐만 아니라 오방진·사방진·미지기굿·달아치기·을자진(乙字陣)·방울진 등의 진풀이, 잡색들과 상쇠·장고재비들이 같이 노는 일광놀기, 도둑재비와 같은 연극놀이도 있다.
(4) 호남좌도농악무 쇠꾼의 부포놀이에서 부들상모를 이용한다는 것이 호남우도농악과 다르며, 부포놀이는 외사·양사·사사·팔사·퍼넘기기·좌우치기·이슬털이 등이 대표적인 동작이다.
또한, 우도 굿에 비하여 장구놀이가 좀 뒤지나 북춤이 돋보이며, 상모 돌리기를 위주로 한 동작이 발달되어 있다. 예를 들면, 외사·양사·사사·팔사·앉은상·나비상·연풍대·자반뛰기·차고앉은상·지계북 등의 묘기가 있다.
또 판굿을 할 때 멍석말이를 하게 되는데, 이때 빠른 가락으로 몰아서 전투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특이하며, 군영(軍營)놀이·도둑재비 같은 전쟁놀이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놀 이〕 잡색들의 놀이와 소고재비들이 하는 농사굿, 무동들이 하는 무동놀이가 있다. 잡색들이 하는 놀이는 대포수·각시·조리중·양반 등의 배역자가 농악대를 따라다니면서 재담과 동작으로 풍자적인 연극놀이를 하게 되는데, 이 가운데서도 호남농악의 경우 그 형식이 한층 구체적이고 배역도 다양하다.
또한, 지방에 따라서는 목가면(木假面)이나 종이가면을 쓰는 경우도 있다(경상남도의 서남지역 농악에도 가면이 있는 경우가 있음). 예를 들어 전라남도 영광지방의 농악을 보면, 포수(중개 역)·양반·참봉(공술을 좋아함)·창부(중개하는 종)·조리중(각시를 희롱하는 중)·비리(말뚝이 역)·홍잡삼(술꾼)·할미·각시 등이 있는데 모두 가면을 쓰고 있고, 진도지방의 농악에서도 종이가면을 쓰는데, 이러한 잡색들의 놀음은 재담과 몸짓으로 표현한다.
또 판굿을 할 때 도둑재비라는 것이 있는데, 여기서는 상쇠와 잡색들 사이에 군영놀이가 전개된다. 강원농악과 경상도농악에는 농경적인 동작을 연희하는 농사굿이 있다. 그 내용은 씨뿌리기를 비롯하여 모찌기·모내기·김매기·벼베기·타작·벼끌어모으기·풍로부치기 등이다.
그 밖에 무동들이 하는 놀이로 강원농악인 경우 단동고리·상동고리가 있으며, 경기농악에는 외동타기·곡마당·맞동리·동고리 등의 놀이가 있는데, 이는 일종의 곡예적인 놀이이다.
≪ 참고문헌≫ 韓國의 民俗藝術(韓國文化藝術振興院, 1978), 公演藝術叢書 Ⅳ-춤사위-(鄭昞浩, 韓國文化藝術振興院, 1981), 農樂(鄭昞浩, 열화당, 1986), 重要無形文化財指定資料-農樂 12次와 가락-(朴憲鳳外, 文化財管理局, 1965), 重要無形文化財調査報告書 33-湖南農樂-(洪顯植外, 文化財管理局, 1967), 農樂의 채에 대한 音樂的考察(李輔亨, 韓國民俗學 22, 韓國民俗學硏究會, 1970), 無形文化財調査報告書 100-安城農樂-(沈雨晟, 文化財管理局, 1972), 韓國民俗綜合調査報告書 十三-農樂· 漁祭·民謠篇-(文化財管理局, 1982), 神대와 農旗(李輔亨, 韓國文化人類學 8, 韓國文化人類學會, 1976), 마을굿과 두레굿의 儀式構成(李輔亨, 民族音樂學 4, 서울大學校 音樂大學 東洋音樂硏究所, 1981), 農樂에서 길굿(길군악)과 채굿(李輔亨, 民族音樂學 6, 서울大學校 音樂大學 東洋音樂硏究所, 1984).(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달집태우기
정월대보름날 밤 달이 떠오를 때 생솔가지 등을 쌓아올린 무더기에 불을 질러 태우며 노는 세시풍속. ≪동국세시기≫나 ≪열양세시기 洌陽歲時記≫에는 그 기록이 보이지 않으나 전국에 널리 분포하며, 달맞이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심지어 일본 민속에도 널리 분포하는 민속의 하나라는 점들을 생각할 때, 그 역사는 매우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달집태우기는 정월대보름날의 행사로서 달맞이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때로는 쥐불놀이·횃불싸움과도 연관성을 가지는 놀이이다. 청년들이 풍물을 치며 각 가정의 지신밟기를 해주고 나서 짚이나 솔잎을 모아가지고 오는 수도 있고, 청소년들이 각자 나무나 짚을 직접 해가지고 모여드는 수도 있다. 이것을 언덕이나 산 위에 모아서 쌓기도 하고, 조그만 오두막이나 커다란 다락같은 것을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대보름달이 떠오르기를 기다려서 불을 지른다. 피어오르는 연기와 더불어 달을 맞고, 빨갛게 불꽃이 피어오르면 신나게 농악을 치면서 불이 다 타서 꺼질 때까지 춤을 추며 주위를 돌고 환성을 지르기도 한다. 개중에는 달집 속에 대나무들을 넣어서 그것이 터지는 폭음으로 마을의 악귀를 쫓는다는 곳도 있다. 또, 그때까지 날리던 연을 비롯한 여러 가지 태울 것들을 달집 위에 얹어서 다같이 태우기도 한다.
이 때 소년들은 이웃 마을들과 횃불싸움을 하는 수도 있고, 또 “망울이”, “망울이불” 하고 소리지르면서 이웃 마을의 불길과 어느 쪽이 더 높이 올라갔나를 비교하여 이겼다고 소리지르면서 좋아하는 수도 있다. 망울이란 ‘망월(望月)’의 잘못 전해진 음인 것으로 보인다.
대보름달은 풍요의 상징이고 불은 모든 부정과 사악을 살라버리는 정화의 상징이다. 부족함이 없는 넉넉한 새해, 질병도 근심도 없는 밝은 새해를 맞는다는 사람들의 꿈이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 달집태우기이다. 달집이 탈 때 고루 한꺼번에 잘 타오르면 풍년, 불이 도중에 꺼지면 흉년이 든다고 판단하는 곳도 있다.
또, 달집이 다 타서 넘어질 때 그 방향과 모습으로 그해 풍흉을 점치는 수도 있다. 이웃 마을과의 경쟁에서 이기면 자기 마을이 더 풍년이 든다고 좋아하는 수도 있다. 그러한 점에서 달집태우기는 횃불싸움과도 통하는 것이고 줄다리기나 차전놀이 등과 같이 싸워서 이김으로써 풍년을 보다 확실하게 다짐하려는 세시풍속의 하나이다.
≪참고문헌≫ 韓國의 歲時風俗(崔常壽, 高麗書籍, 1960), 韓國의 歲時風俗(張籌根, 螢雪出版社, 1984), 韓國歲時風俗硏究(任東權, 集文堂, 1985).(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지신밟기
음력 정초에 지신을 진압함으로써 악귀와 잡신을 물리치고, 마을의 안강(安康 : 평안과 건강함)과 풍작 및 가정의 다복을 축원하는 민속놀이. 벽사진경(陽邪進慶 : 요사스런 귀신을 물리치고 경사스러운 일을 끌어들임)을 목적으로 하는 신앙적 마을행사로, 지방에 따라서 마당밟기·매구〔埋鬼〕·걸립(乞粒)·걸궁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꽹과리·징·북·장구·쇠납 등의 민속악기로 구성된 풍물을 선두로 소고패·양반·하동(河童)·포수·머슴과 탈을 쓴 각시 등이 마을의 당산(堂山)굿을 비롯하여 집집마다의 지신을 밟으면서 지신풀이가사를 창하며 춤과 익살, 재주를 연희하는 것으로, 마을의 지신에 대한 공연적(供演的) 성격을 띤 놀이이기도 하다.
지신밟기패가 자기 집에 당도하면 주인은 주·과·포의 고사상을 차리고, 또 주식(酒食)을 대접하며 전곡을 성의대로 희사하면, 그것을 모아 마을의 공동비용으로 사용한다. 농경민족인 우리 겨레는 예로부터 지방마다 행하였을 것으로 생각되나 현재는 영남지방에 많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지신밟기의 절차는 지방마다 다소의 차이가 있으나 그 대강을 약술하면 다음과 같다.
음력 섣달 중에 악기·의상·도구를 준비하고 연습하는데, 인원은 기수(旗手)·사대부·팔대부·하동·포수·머슴·촌로(村老)·촌녀·각시(탈을 씀.) 등이며, 악사는 꽹과리·징·북·장구·날라리·소고로 구성하되 인원의 다과는 다를 수 있다.
사대부는 총지휘자격이고 하동과 포수가 상대역으로서 흥을 북돋우는 구실을 하면서 굿거리장단에 덧뵈기춤과 창을 주로 한다. 절차는 대개 정초에서 14일까지 주산(主山)과 당산을 비롯하여 집집마다 밟는다. 그 순서에 따라 간략한 설명과 창사(지신풀이)를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1) 주산지신풀이 주산의 신을 모시는 의미에서 맨 먼저 주산에 가서 술과 안주를 놓고 분향 재배한 연후에 풀이를 시작한다. “지신 지신 지신아 주산지신을 울리자. 천지현황 생긴 후에 일월성신이 밝았다. 산천이 개탁하고 만물이 번성할 제……주산성님께 발원이요. 이동네 가가호호 나갈 때는 반짐지고 돌아올 때는 온짐지고 부귀영화 안과태평(安過太平) 점지하여 주옵소서. 어히여루 주산님 만대유전(萬代流傳:길이길이 전하여 내려옴)을 누리소. (후렴)”
(2) 당산지신풀이 이때에도 주산에서와 마찬가지로 당산신을 위한 고사를 지낸 뒤에 지신을 밟는다. “지신 지신 지신아 당산지신을 울리자. ……이동네 동민들은 남녀노소 막론하고 단명자 수명장수 박복자 부귀공명 무자자 자손창성 병고자 즉득쾌차 농사자 장원하고 상업자 재수대통 왕기대통 주옵소서. 어히여루 당산님 만대유전을 누리소. (후렴)”
(3) 집돌이 당산풀이를 마치면 집집마다 지신풀이를 하는데, 그 순서에 따라 약술하면 다음과 같다. 지신밟기패가 집에 당도하면 주인은 반가이 영접하고 소반에 정화수 세 그릇, 촛불 두 자루를 쌀을 담은 그릇에 꽂아 불을 밝힌다. 지신밟기 패는 마당놀이부터 시작하여 끝판에 이르는 동안 여러 가지 춤과 잡희를 한다.
① 대청지신풀이 : 이 대목은 장단·춤·가사가 대표적인 것으로 창사가 매우 길다. “지신 지신이 내려온다. 하늘이 생겨서 갑자년 땅이 생겨서 을축년…… 옥도끼 둘러메고 좌우로 노놔 서서 십리 만치 물러가 오리 만치 뛰어들어 한찰 치고 두찰 치니 나무 넘는 소리 봐라. 천지가 요란하고 사방이 진동한다. (후렴)”② 큰방성주풀이 : “모셔 오자 모셔오자 이 집 성주를 모셔오자. ……울리소 울리소 만대유전을 울리소. 잡귀잡신은 물알로 만복은 이리로. (후렴)”③ 각방치장풀이 : “이 집짓던 석 달만에 이집좋다 말을 듣고 온갖 사람 구경온다. 이 집 치장을 둘러봐라. ……교자상 자개판에 만판 진수를 차려놓고 일배일배 부일배에 세상만사가 여길세. (후렴)”
④ 조왕지신풀이 : “어히여루 지신아 조왕지신 울리자. 큰솥은 닷 말치 작은 솥은 서 말치. ……(후렴)”⑤ 우물지신풀이 : “어히여루 지신아 용왕지신 울리자. ……(후렴)”⑥ 장독지신풀이 : “어히여루 지신아 장독지신 울리자. ……(후렴)”⑦ 도장지신풀이 : “……개리(가려)보자 천 석 만 석 개리 보자. ……(후렴)”
⑧ 마굿간지신풀이 : “……마굿간 지신을 울리자. 기리(르)자 우마 대마를 기리자. ……(후렴)”⑨ 정낭(뒷간)지신풀이 : “……정낭지신 울리자. 막우자 온갖 질병 막우자 설사병도. ……(후렴)”⑩ 삽짝(사립짝)지신풀이 : “……총든 도적도 칼든 도적도 막우자. ……(후렴)”
지신풀이가 끝나면 주인이 대접하는 음식을 먹고 전곡을 얻어 가지고 간다. 이때, 전곡을 많이 얻기 위하여 하동과 포수가 갖은 수단과 골계적 희극을 부린다. 얻은 재물은 마을의 공동경비에 사용한다. ≪참고문헌≫ 釜山의 文化財(釜山市, 1977), 韓國의 民俗藝術 1(韓國文化藝術振興院, 1978).(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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