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 윤동주
by 송화은율길 / 윤동주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 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요점 정리
지은이 : 윤동주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성격 : 의지적, 상징적, 사색적, 자아성찰적, 반성적, 형이상학적
어조 : 자신을 성찰하는 차분하고 의지적인 어조
구성 : 상실 - 고행 - 성찰 - 고행
1연 : 잃어버린 것을 찾아 길에 나아감 - 상실감(길 출발)
2연 : 돌담을 끼고 가는 길(도정)
3연 : 쇠문을 굳게 닫은 돌담(닫힌 역사)
4연 : 길게 이어진 길로 성찰의 연속성
5연 : 부끄러운 자아 인식
6연 : 담 저쪽에 있는 역사에 갇힌 자아 확인
7연 : 참된 자아와 역사 회복 의지
제재 : 길(자아 성찰의 공간, 시련의 과정)
주제 : 진실한 삶을 살아가려는 의지와 반성적 태도, 성찰을 통한 자아와 역사 회복의 의지, 진정한 자아를 찾으려는 내면적 결의, 진실하고 본질적인 자신의 모습을 찾으려는 노력, 참된 삶을 살고자 하는 의지
특징 : 연희 전문학교 3학년에 재학하던 1941년 9월에 쓴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 시는 진정한 삶을 추구하는 식민지 지식인의 결연한 자세를 보여 주는 작품으로 바람직한 삶의 길을 '잃은 것'로 형상화했고, '길'과 '담', '문'이라는 보편적 상징을 통해 주제를 형상화했으며, 진정한 존재의 의미에 다다르기 위한 과정을 '길'을 통해 상징함.
의의 : 시대적 배경과 관련해서 일제 강점기하의 모든 것이 황폐화된 상황에서 민족의 비극적 현실을 직시하고 지식인으로서 자기가 걸어가야 할 삶에 대한 진지한 물음과 탐색(역사의식, 민족의식 투영)을 하고 있고, 이상적 가치 실현을 위한 지식인의 고뇌와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은 보편적인 삶의 방식이며 감동을 줄 수 있으므로 시의 보편성, 항구성을 획득한다고 볼 수 있음.
출전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
내용 연구
잃어버렸습니다.[목적어가 생략된 채로 시작하는 서두의 급박한 어조 때문에 독자의 주의를 집중케 함 / 자아상실의 상황 혹은 시적 상황]
무얼[6연의 '나'와 의미가 통함]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길을 나서는 행위와 대비되는 곳으로 시적 화자의 내밀한 공간으로 화자가 상실한 것은 결국 그의 내면에 있다는 것을 의미]를 더듬어
길[삶의 방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탐색의 과정, 출발과 도착의 과정을 지닌 행위의 공간이며, 자아의 성찰과 수련을 통해 이상적 자아 혹은 자신의 참모습을 회복하는 과정을 상징함]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이상적 자아의 회복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자 현실적 자아가 걷는 길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는 암울한 상징물임]을 끼고 갑니다.[2연에서의 길은 답답하고 갇혀 있는 느낌을 주는 길로, 같은 의미의 시어들은 돌과 돌이 연달아 있는 돌담, 쇠문을 굳게 닫고 있는 담, 풀 한 포기 없는 길]
담은 쇠문[차단, 단절의 의미로 진실한 삶을 살아가려는 시인의 노력과 의지를 가로막는 이 '쇠문'은, 양심을 지키며 살아가는 일이 너무도 어려운 어두운 시대, 곧 일제 강점하의 억압적인 현실을 의미하는 것으로 절박한 상황]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시적 화자의 절망감]를 드리우고[외롭고 암울한 부정적 현실의 분위기를 자아내게 하는 것으로, 담 너머 즉, 자신의 진정한 내면으로 들어가기가 어려움을 암시]
길[자아성찰과 자기 고행을 통해 본질적이고 참된 자아를 회복하는 인생의 역정이고 과정임]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삶의 과정 속에서 계속되는 탐색의 연속성을 의미하는 끊임없는 성찰의 자세를 의미 - 자아성찰은 살아가는 동안 계속된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돌담 때문에 자아를 찾지 못하는 현실 상황에서 느끼는 슬픔]
쳐다보면 하늘['나'를 재촉하는 존재, 자신을 깨닫게 하는 존재로 시적 화자가 지향하는 삶 / 자아성찰의 계기를 주는 이상 세계]은 부끄럽게 푸릅니다[자신이 잃어버린 진정한 삶을 찾기 위해 자신이 살아가지 못하면 부끄러울 것이라는 의미로 부끄러움을 통해 자아의 갈등과 각성을 형상화하고 있다. 자괴감, 비애감].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험난하고 외로운 인생길, 시적 화자가 처한 사회적 상황으로 시적 화자의 상황이 피폐함을 의미함]을 걷는 것은[길을 걷는 행위는 자신의 내면을 세계를 되돌아보는 과정을 상징]
담 저 쪽에 내[본질적 자아, 진정한 자아, 참된 삶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자아, 바람직한 삶의 길을 걸어가는 주체로 시적 자아가 찾고자 하는 진실된 자신]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길을 걷는이로 시인의 현실적 자아로 부끄러운 자아이자 시적 화자]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진정한 자아, 참된 자아, 본질적 자아, 양심의 부끄러움이 없는 내면적 자아]을 찾는 까닭입니다.[자아 탐색에 대한 화자의 진지한 자세와 결연한 의지를 나타내면서 시적 화자의 삶의 이유와 존재의 이유가 나타남]
이해와 감상
1연에서 화자는 잃어버린 것을 찾아서 방황하는 자신을 이야기한다. 목적어가 생략된 채 대뜸'잃어버렸습니다'로 시작하는 서두의 그 급박한 어조 때문에 독자의 주의를 집중케 한다. 상실감을 찾고자하는 의지를 촉발시키고 찾고자 하는 의지에 의해 길을 가게 된다. 상실의 상황과 그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나온 행동인 주머니를 더듬어 내려가는 행동이 형상화되어 있다. 두 손으로 잃은 것을 찾는 행위는 두 발로 길을 걸어가는 행위와 대비된다. 즉, 두 손은 두발로, 주머니의 좁은 공간은 길이라는 확장된 공간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주머니는 길에 비해 작고 내밀한 공간으로 화자의 내면과 동일화될 수 있다. 두 손으로 주머니를 더듬는 행위는 곧 잃어버린 대상이 화자의 내면에 존재해 있던 대상임을 추정케 한다.
2연은 화자가 걸어가는 길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돌과 돌이 연이어 있고, 담이 있으며, 그 담을 끼고 길이 계속되고 있는 길이다. 돌담은 화자가 걸어가는 길을 안과 밖으로 갈라놓는 경계 역할을 하고 있다. 돌담을 경계로 하여 화자는 한쪽 세계를 볼 수 없게 된다. 그것은 화자가 잃어버린 세계이며 도달해야 할 세계이지만, 그 세계는 결코 도달할 수도 볼 수도 없는 것이다. 돌담이 계속되는 한 화자가 걸어가야 할 길은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역으로 말해서 돌담과 같은 장애요소가 없다면 길의 존재 이유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길에서의 장애요소가 길 앞에 놓여진 것이라면 화자는 그 장애물을 뛰어 넘는다거나 깨뜨림으로써 고통의 세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자아에로의 지향을 뚜렷하게 나타낼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에서의 장애 상황은 앞에 놓인 것이 아니라, 화자와 평행으로 놓여진 돌담으로 자아의 안과 밖, 현실과 이상을 구분하면서 끊임없이 계속되는 삶의 과정인 것이다.
3연에서는 담 저쪽으로 갈 수 있는 통로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굳게 닫힌 쇠문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를 통해 담의 견고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으며 희망보다는 절망 쪽으로 기울게 한다.' 길 위에 긴 그림자'는 어둡고 암울한 분위기를 암시한다. 이 시에서 '길다'는 형용사는 1연의 길게 나아가는 화자, 2연의 돌담을 끼고 연달아 있는 길, 3연의 긴 그림자 등 길이라는 공간어의 선(線)의 개념과 연관된다. 그것은 길의 진행, 곧 시간의 경과를 의미하는 것으로,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다시 아침으로 연속되어 이어지는 시간의 지속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과정과 일치된다. 즉, 길을 걷는 것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며, 산다는 것은 잃은 것을 찾는 탐색의 일종인 것이다. 그것은 계속되는 방황과 고통을 함유하며, 그러한 시간의 깊이는 윤리적 가치의 깊이와 중복되어 있다.
5연에서는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는' 화자의 슬픈 모습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새로운 공간으로 푸른 하늘이 등장하고 있는데, 하늘은 화자의 부끄러운 무능과 대조되는, 무한한 능력을 가진 초월적 공간으로 윤동주 시에 자주 등장하는 중심어 중의 하나이다. 하늘은 비본질적 자아를 일깨워주는 지고(至高)한 존재이다. 존재 각성은 부끄러움이라는 행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부끄러움 또한 윤동주 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시어로 준엄한 자아성찰의 모습을 집약하고 있다.
6,7연에서는 삶에 대한 화자의 총괄적인 태도가 집약되고 있다. 시인은 그림자가 드리우고,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부정적인 조건에도 불구하고 모든 비참함을 넘어서 끊임없이 가야 하는데, 이는 잃어버린 자기 자신이 여전히 담 저쪽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담 저쪽에 남아 있는 자아는 화자가 잃어버린 참된 자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방황과 갈등 그리고 이쪽(담 밖)과 저쪽(담 안)의 선택을 의미하는 길 위에서 화자는 저쪽(담 안)의 세계를 선택함으로써, 이쪽(담 밖) 세계의 고통과 방황을 맞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외관을 넘어서 존재의 본질, 현재 잊고 있는 존재의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먼 역사를 찾아가는 것이다.
마지막 연에서의 '내가 사는 것'과 '잃은 것을 찾는' 것의 동일화가 바로 그것을 암시하고 있다. 길의 행위 서술어인 '가다'의 의미는 마지막 연에서는 '살다'의 행위로 전환되고 있다. 즉, 1연 4행의 '길게 나아갑니다', 2연 2행의 '돌담을 끼고 갑니다', 6연 1행의 '이 길을 걷는 것'에서 반복되어 나타나는 서술어 '가다'는 인간의 실존적 조건 자체가 길의 과정, 즉, 여로임을 인식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잃어버린 나를 찾는 행위는 '가다'라는 서술어로 나타나며, 그것은 금방 도달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풀 한 포기 없는'불모의 길을 가는 것이며, 고통에 굴하지 않고 끊임없는 길의 선택을 계속할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것은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이며, 이러한 결의나 다짐의 태도는 윤동주 시의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길은 보편적인 의미에서 탐색의 과정을 상징하는 것으로 그것은 무위의 공간이 아니라 생명의 끊임없는 움직임, 즉 동성(動性)을 자극하는 요소를 지닌다. 또한 길은 출발과 도착의 과정을 지닌 행위의 공간이기도 한데, 항상 도달해야 할 목적지를 내포하고 있다. 윤동주의 <길>은 바로 그 목적지를 향해 가는 과정으로서의 길이며, 목적지에 다다르기 위해 시련을 극복해야 하는 정신적인 세계로서의 길이다. 결국 윤동주의 <길>은 깊은 자아성찰에의 지향성을 가지며, 본래의 자아를 회복하려는 형이상학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해와 감상1
연희 전문학교 3학년에 재학하던 1941년 9월에 쓴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 시는 진정한 삶을 추구하는 식민지 지식인의 결연한 자세를 보여 주는 작품이다. 윤동주의 시는 대부분 자아 성찰을 통한 자기 완성을 지향하는 특징을 갖는데, 그 자아 성찰의 공간으로 등장하는 것이 주로 '방','우물','길' 등의 이미지이다. '길'은 탐색의 과정과, 출발과 도착의 과정을 지닌 행위의 공간이므로 '길'의 공간성은 항상 도달해야 할 목적지를 지닌다. 그러나 그 목적지를 향해 가는 과정으로의 '길'에는 반드시 겪어야 할 시련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길'은 시련의 극복이라는 정신적인 세계의 의미를 갖게 된다. 이 시에서의 '길'은 자기 성찰과 자기 수련을 통해 식민지 시대를 극복하고 본질적 자아를 회복하는 과정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1연에서는 상실의 상황과 그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나온 행동을 형상화하고 있다. 화자는 무엇인가를 잃어버렸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또한 어디에서 잃어버렸는지 몰라 두 손으로 주머니를 더듬으며 길을 나서고 있다. 여기서 주머니를 더듬는 행위는 길을 나서는 행위와 대비되는 것으로, 결국 두 손은 두 발로, 주머니는 길이라는 확장된 공간으로 점차 나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머니는 길에 비해 작고 내밀한 공간으로 화자의 내면과 상통한다. 그러므로 두 손으로 주머니를 더듬는 화자의 행위는 곧 잃어버린 대상이 자신의 내면에 존재해 있던 것이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2연에서는 화자가 걸어가는 길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그 길은 돌이 끝없이 연달아 이어져 있는 돌담을 끼고 가는 길이다. 여기에서 돌담이 길을 안쪽과 바깥쪽으로 갈라 놓았기 때문에 그 길을 걷고 있는 화자로서는 결코 돌담 안쪽을 들여다 볼 수 없다. 그 곳은 바로 화자가 회복해야 할 이상적 자아의 세계이지만, 돌담이 그 길과 평행 상태로 끝없이 어어져 있기 때문에 화자는 그 곳에 도저히 도달할 수 없다. 따라서 돌담은 자아의 안과 밖, 현실과 이상을 갈라 놓으며 끝없이 계속되는 우리네 삶의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3연에서는 돌담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를 제시하고 있지만, 그것이 긴 그림자를 드리운 채 쇠문으로 굳게 닫혀 있다고 함으로써 절망적 상황임을 암시해 준다.
4연에서는 시간 속에서 시간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과정으로서의 길의 의미를 형상화하고 있다. 길의 진행은 곧 시간의 경과를 의미하는 것으로, 길을 걷는다는 것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며, 또한 산다는 것은 화자처럼 잃어버린 자아를 찾는 탐색 과정인 것이다.
5연에서는 부끄러움을 통한 자아의 갈등과 각성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상적 자아를 회복할 수 없음을 깨달은 화자가 쳐다본 하늘은 현실적 자아를 일깨워 주는 지고(至高)한 존재로 그에게 부끄러운 마음을 갖게 한다. 이 부끄러움이야말로 윤동주 시 세계의 기본 바탕을 이루는 것으로, 준엄한 자기 성찰을 통한 자기 완성을 지향하게 해 주는 원동력인 것이다.
6-7연에서는 삶에 대한 화자의 태도를 포괄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풀 한 포기 없는' 불모의 길을 걷는 것은 담 저 쪽에 존재해 있는 잃어버린 자아, 즉 본질적 자아를 찾기 위함이다. '긴 그림자가 드리운' 돌담 같은 어둡고 절망적인 현실 상황 속에서도, '내가 사는 것은, 다만, / 잃은 것을 찾'기 위함이라는 독백을 하는 화자에게서 우리는 진정한 인간적 삶을 추구하기 위해 악랄한 식민지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아 회복의 길을 걷던 윤동주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해와 감상2
윤동주는 끊임없이 내면적 성찰을 통해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려고 노력했으며, 그 과정에서의 부끄러움의 내면 의식이 그의 시 속에 간단없이 드러난다. 그의 자아는 내면에서 사회로 이행해 가는 변모의 과정을 보이는데, 자화상으로 대표되는 내면 침잠에서 참회록 에 이르면 얼마간 사회 의식이 문면(文面)에 보이게 된다. 길은 이 둘의 중간 단계에 속하는 작품으로 여전히 내면 세계에 자아의 지향점이 설정되어 있지만, 사회 의식의 일단이 엿보이는 작품이어서 주목된다. 길 이라는 삶의 도정(道程)이 설정되고 담이라는 역사적 상황의 장벽이 자아와 함께 평행선을 이루면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화자는 자아가 담 저편에 놓여 있으며, 그것을 찾는 것이 사는 이유임을 분명히 한다. 그의 자아가 시대적 장벽에 의해 차단되었으며, 그것을 찾아야만 한다는 조용한 결의가 표명된 것으로 보아, 사회 역사적 자아 인식에 접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1연에서 자아는 잃어버린 방황 속에 길을 나선다.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모른다고 한다. 그저 당혹감과 허전함에서 길을 나선다. 그의 자아가 분명한 의식을 지니고 있지 못함이 드러난다. 그런데 길은 자아의 바깥에 위치한다. 그가 잃어버린 곳이 내면은 아니며 외부 세계라는 인식은 뚜렷하다. 따라서 외부적 상황에 대한 투철한 현실 인식은 없어도 막연히 외부에 의해 잃었다는 초보적 현실 의식은 엿보인다.
2연은 길과 나란한 돌담이 제시된다. 길은 화자가 걸어가는 도정이다. 이와 병행하여 돌담도 길과 함께 이어져 있다. 길이 화자의 삶의 지표이자 도정이라 할 때, 돌담은 그 삶을 차단하고 전망을 제거하는 억압적 시대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그 담은 돌로 이루어져 쉽사리 무너질 것 같지는 않고 어쩌면 영원히 이어져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가 걸어야 할 길이 얼마나 힘들고 절망적일 것인가를 짐작케 한다.
3연에서는 돌담의 위력적 성격이 분명해진다. 돌의 육중함과 함께 문마저 무겁게 은폐하는 쇠로 된 것이다. 그것은 또 나의 길에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결국 나의 길은 돌담의 억압적 위력 앞에 침해당하고, 그럴수록 그 길은 어둡고 쓸쓸하며 고통스러운 길이 될 것이다.
4연은 길의 영속성이 노래된다. 가야 할 길은 얼마간 노력과 인내로 도달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아침에서 저녁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 그 한 단절에 머무르는 것도 아니고 다음의 시간대인 아침에 또 이어져 있다. 이 길은 영원으로 통하는 길이다. 끝 간 데를 모르고 걷는 화자의 참담한 심정이 이 시간 인식에서 드러난다. 역사의 전망이 불확실한 가운데 막연히 그 길을 걷는 화자의 참담하고 고독한 모습 속에 그 길을 벗어나지는 않겠다는 잔잔한 결의가 더욱 가슴을 아프게 한다.
윤동주의 이런 태도를 앞에서 성실성으로 설명했는데, 겉으로 힘차게 표명하는 의지는 일견 남성적 풍모를 보여 주지만, 동시에 그것은 낭만적 초월에 불과하는 면이 있음도 지적해 두어야 한다. 윤동주의 시에는 여리면서도 성실한 의식, 양심을 지키려는 작은 결의가 곳곳에 스며 있다.
5연에는 윤동주의 특징적 의식인 부끄러움이 드러난다. 그가 부끄러워하는 것은 푸른 하늘과의 대비 인식에서 말미암는다. 푸른 하늘 이라는 천상적(天上的) 이미지는 윤동주 시에서는 지향점으로 표상된다. 양심의 부끄러움이 한 점도 없는 세계, 자아와 세계가 완전히 통합된 세계의 표상이 하늘이다. 그 하늘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자아와 세계가 불일치함에서 연유한다. 이 때의 세계는 돌담으로 가려진 저편이 상징하는 현실적 상황이다. 그 상황을 타파하는 진정한 자아가 확립되어 있지 못해 부끄러움을 가진다. 즉 잃어버린 것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것 이 진정한 자아임이 여기서 밝혀지기 시작한다. 욕된 자신에 대한 자괴감(自愧感)이 그로 하여금 눈물짓게 하고, 하늘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 것이다.
6연에서는 길을 걷는 까닭이 분명히 제시된다. 풀 한 포기 없는 삭막한 길, 이 어렵고 고단한 길을 걸어야 하는 이유는 장벽 너머에 자아가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그의 길 걷기는 자아 찾기의 과정이다. 그러나 그 길은 험난하고, 즐거운 미래를 쉽게 만날 것 같지도 않다. 그런데도 가야만 한다는 인식에서 자아의 이중적 성격을 감지할 수 있다. 응당 가야 한다는 결의와 불투명한 전망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가 가야 할 길은 참담함이 함께 한다. 그 상황을 걸어가는 화자의 고독한 모습이 보인다.
7연은 6연의 발전이다. 화자의 삶의 목표가 뚜렷이 제시된다. 잃은 것을 찾기 위해서이다. 참다운 가치와 타락한 현실과의 갈등을 은밀하고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극복하려는 내면적 결의가 표명되어 있다. 여기에서 시대적 상황에 대한 의식이 아닐지언정 내면적으로 그 시대 상황에 맞서 순수한 자아를 지켜 가려는 성실한 태도가 독백으로 토로(吐露)된다.
심화 자료
길
사람 · 자동차 · 비행기 · 배 등이 왕래하는 곳. 길은 크게 나누어 세 가지 뜻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교통 수단으로서의 길, 둘째는 방도를 나타내는 길, 셋째는 행위의 규범으로서의 길이다.
교통 수단으로서의 길은 구상적 실체로서 본래는 단순히 보행을 위한 육상교통의 수단으로서의 길만을 가리켰다. 이런 뜻에서 길을 정의한다면, 사람이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오갈 수 있게 된, 거의 일정한 너비로 땅 위에 뻗은 공간적 선형(線形)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말에서는 그 길의 양태나 규모에 따라서 ‘ 길 ’ 앞에 어떤 관형어를 붙여 오솔길 · 고샅길 · 산길 · 들길 · 자갈길 · 진창길 · 소로길 · 한길 · 지름길 따위와 같이 의미를 구체화하여 사용한다. 이와 같은 보행을 위한 육상 통로는 교통기관이 발달함에 따라 개념이 확대되고 다양화되어 실체가 없는 관념적 통로까지를 일컫게 되었다.
그리하여 물위를 다니는 배의 통로는 뱃길, 철제의 궤조(軌條: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나 전철의 통로는 철길, 항공기가 다니는 공중의 통로는 이를테면 하늘길이 될 것이다.
이러한 교통 수단으로서의 길에서 뜻이 분화되어 어떤 일에 취해야 할 수단이나 방법을 뜻하는 방도(方途)라는 개념이 파생되었다. ‘ 무슨 길이 없을까? ’ , ‘ 손쓸 길이 없다. ’ 라고 할 때의 길은 교통 수단의 길이 교통 이외의 수단으로까지 확대된 개념이다.
또 교통 수단으로서의 길은 정신 문화가 깨쳐지면서, 특히 동양 사람들에 의해서 철학적 의미가 부여되었다. 서양에서는 흔히 인생을 연극에 비유하고 세상은 무대로, 사람은 배우로 관념하는 데 대해서, 동양에서는 인생이 곧잘 여행에 비유된다. 이때 세상은 여관으로, 사람은 나그네로, 인생살이는 길 가는 것으로 관념하는 일이 많다.
이백(李白)이 〈 춘야연도리원서 春夜宴桃李園序 〉 에서 “ 천지는 만물의 여관이요, 세월은 백대의 과객이라. ” 고 한 생각도 여기서 나온 것이요, 요즘 우리 가요에 “ 인생은 나그네길 … … ” 하는 노래가 불리고 있는 것도 같은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유교나 불교 · 도교 할 것 없이 동양 사상에서는 그 이념을 길[道 〕 이라 하고, 사람이 마땅히 취해야 할 심성이나 행위를 도의니 도덕이니 하여 길로써 표현한다.
왕도정치(王道政治)니 공맹지도(孔孟之道)니 하는 말이나, ‘ 군자 대로행 ’ 이니 ‘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고 말이 아니면 하지를 말라. ’ 는 우리 속담의 길도 모두 도의(道義)의 상징으로 쓰인 것들이다.
이때의 길은 최초의 개념인 교통 수단과는 동떨어진 것이지만, 사람들이 추상적인 ‘ 도 ’ 를 숭상한 데서 다시 실체로서의 길도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 왕도(王道)는 곧 치도(治道) ’ 라 한 ≪ 예기 ≫ 의 표현이나 하천에 다리 놓는 일을 인생 제도(濟度)의 실천적 행위로 해석하는 불가의 사고에서 그 구체적 사례를 엿볼 수 있다.
사실 통로라는 개념 속에는 교량이나 나제통문 ( 羅濟通門 ) 같은 터널까지 포함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또 길은 구조상으로 길어깨 〔 路肩 〕 와 측구(側溝: 물이 잘 빠지도록 차도와 인도의 경계를 만든 얕은 도랑)까지를 포함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 ≪ 대전회통 ≫ 교로조(橋路條)에는 측구의 구격까지 명시되어 있는 것이다.
〔발생과 그 어원〕
우리말로 ‘ 길 ’ 이라고 읽을 수 있는 단어가 문헌상 처음 보이는 것은 신라의 향가에서일 것이다. 물론 그 당시에는 우리말을 적을 국자(國字)가 없었으므로 한자를 빌려서 그 음 또는 새김으로 우리말을 적는 향찰 ( 鄕札 ) 표기였다.
먼저 진평왕대에 융천사(融天師)가 지은 〈 혜성가 彗星歌 〉 와 효소왕대에 득오 ( 得烏 )가 지은 〈 모죽지랑가 慕竹旨郎歌 〉 에 각각 ‘ 道尸 ’ 라는 단어가 똑같이 나오는데 향가 연구가들은 예외 없이 이것을 ‘ 길 ’ 이라 해독하고 있다.
향가에는 이 밖에도 길을 뜻하는 말로 ‘ 노(路) ’ 또는 ‘ 도(道) ’ 도 보이고 있어 그것들은 ‘ 길 ’ 로, 또는 한자음 그대로 읽을 양면의 해독이 가능하겠다.
그러나 ‘ 道尸 ’ 의 경우는 ㄹ 받침으로 관용된 ‘ 尸 ’ 를 첨기함으로써 ‘ 道尸 ’ 의 ‘ 道 ’ 가 ‘ 도 ’ 라 읽지 않고 ‘ 길 ’ 이라 읽는다는 것을 밝히고 있어 의심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 길 ’ 이라는 말은 한자가 들어오기 이전부터 순수한 우리말로 써내려 왔을 것으로 추측해도 좋을 것이다.
고려 시대에 내려와서도 그런 흔적이 발견된다. 1100년 무렵의 고려어를 한자로 적어 전하는 송나라 손목(孫穆)의 ≪ 계림유사 鷄林類事 ≫ 고려 방언조의 ‘ 행왈기림(行曰欺臨) ’ 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간다는 말을 고려사람들은 ‘ 기림 ’ 이라 하더라는 것이다. ‘ 欺臨 ’ 은 글자대로 읽으면 ‘ 기림(ki-lim,ki-rim) ’ 이겠으나 아마도 ‘ 길님(kil-nim) ’ 의 연철 ( 連綴 ) 표기일 것이다.
‘ 길 ’ 은 물론 ‘ 道 ’ 요, ‘ 님 ’ 은 ‘ 가다(行) ’ 의 옛말인 ‘ 니다 ’ 의 명사형이 분명하다. 이로 미루어볼 때 신라어 ‘ 길 ’ 은 고려에서도 그대로 쓰이다가 조선 시대를 거쳐 자연스럽게 오늘날까지 일관하여서 사용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초기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는 ‘ 길 ’ 이 한글로 명백히 표기되어 ≪ 훈민정음 ≫ 과 같은 시대에 지어진 ≪ 용비어천가 ≫ 에도 용례가 나오고 있다.
그러면 과연 ‘ 길 ’ 이라는 말은 언제부터 쓰였으며 그 어원은 무엇일까? 본디 길은 인류의 생존사와 함께 생성, 발전한 것이므로 ‘ 길 ’ 이라는 말도 우리 민족사와 함께 발생한 원초적 어휘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한다. ‘ 길 ’ 이란 인간의 의식(衣食)과 주거(住居) 사이를 연결하는 공간적 선형이라 할 수 있다.
원시인들이 의식의 재료인 조수(鳥獸) · 과실 · 어패(魚貝) 따위를 주거인 굴혈로 운반하기 위해 반복 통행하면서 생긴 발자취가 곧 길의 원초적 형태였다면, 그들의 생활에서 가장 많이 반복 통행한 곳은 식수원(食水源)과의 통로였을 것이다.
따라서, 일정한 주거와 일정한 식수원인 골짜기와의 연결선에서 길의 첫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요, 동시에 길의 어원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옛 기록들에 나타난 것을 보면 우리 선민들은 산골짜기에서 굴을 파고 산 것으로 되어 있다. 즉, ‘ 골(ko:l) ’ 에서 ‘ 굴(ku:l) ’ 을 파고 살면서 ‘ 길(kil) ’ 을 따라 물을 먹으러 다녔다고 상상할 때 어떤 어원적 암시를 얻어낼 수 있다.
여기서 모음의 차이가 나타나지만 분화 전의 원형 모음을 ‘ · (아래아) ’ 라 한다면 ‘ 골(谷, 洞) ’ 과 ‘ 굴(穴居) ’ 과 ‘ 길(徑 · 路) ’ 은 모두 동일한 ‘ 可 ’ 을 어원으로 하고 있는 것이 된다.
이것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면, 즉 주거처인 ‘ 골 ’ 에 있는 ‘ 굴 ’ 에서 식수원인 ‘ 跏 올 ’ 과의 사이를 잇는 통로가 곧 ‘ 길 ’ 인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분화되기 전의 공통 어원은 모두 ‘ 可 ’ 이었으니, 따라서 길의 어원도 ‘ 可 ’ 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 길 ’ 이라는 말은 선사 이전부터 있어온 말이 아닐까 한다.
〔역 사〕
앞에서 길은 인류사와 함께 생성, 발달해왔다 하였으나, 그것이 사료로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아프리카 알제리 영내의 사하라 사막에서 발견된 타시리 나젤 암벽화 중 ‘ 소의 시대 ’ 라고 분류된 서기전 45 ∼ 15세기기(期)에 소를 타고 여행하는 그림과 배의 그림이라 하니 길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 전부터 있어 왔는가는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우리 나라에서의 길의 역사는 민족의 이동과 정착 과정에서부터 더듬어야 할 것이나 이 방면의 연구가 아직 미진한 상태이므로 섣불리 언급할 수 없고, 삼국의 성립에서부터 사료 중심으로 살펴볼 수밖에 없게 된다.
우리의 역사적 문헌에서의 길은 ‘ 도로 ( 道路 ) ’ 또는 ‘ 도(道) ’ 나 ‘ 노(路) ’ 등 한자어로 표현되어 있다. 물론 우리말의 길이 도로가 아닌 것은 아니지만 관념상으로는 이미지가 다소 다르다.
우리말의 길이라 하면 좀더 자연스런 통로를 연상하는 데 비해 도로라 하면 이른바 신작로 이후의 인공으로 정비된 고규격의 길을 연상한다. 우리 국어 사전에도 도로는 “ 사람이나 차들이 편히 다닐 수 있도록 만든 비교적 큰 길 ” 따위로 주석되어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한자에는 길을 뜻하는 글자가 10여 자가 있어 각기 조금씩 다르게 해석되지만, 길의 규모에 따라 많이 쓰이는 글자는 경(徑) · 도(道) · 노(路)의 셋이다.
≪ 주례 周禮 ≫ 의 주석에 따르면 “ 경은 우마를 수용하고, 진(軫)은 대거(大車)를 수용하고, 도는 승거(乘車) 한 대를 수용하고, 도는 두 대를 수용하고, 노는 세 대를 수용한다. ” 고 하였다. 짐작컨대 경은 우리의 오솔길이나 소로길에, 도는 그보다 좀 나은 길에, 노는 가장 큰 길에 해당할 것 같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고려의 역로 이름을 ‘ 운중도 ( 雲中道 ) ’ 따위와 같이 모두 ‘ 도 ’ 로 썼는가 하면 조선 시대의 법전에는 ‘ 도성내 도로 ’ 와 같이 ‘ 도로 ’ 라 하다가 ‘ 대로 · 중로 · 소로 ’ 와 같이 ‘ 노 ’ 를 쓰기도 하여 일정한 기준이 없었다.
삼국사에서 도로와 관련된 자료가 비교적 많은 나라는 신라이다. 신라는 서기전 37년경 이미 경주를 중심으로 6촌이 흩어져 있었는데, 이들로부터 추대된 혁거세왕은 6촌을 순회하면서 민정을 살피고 농잠을 장려하였으며, 서울에 성을 쌓아 금성 ( 金城 )이라 하였다는 ≪ 삼국사기 ≫ 권1 신라본기 제1 시조 혁거세거서간 17년조 및 21년조의 기록으로 미루어 경주와 6촌 사이에 육로가 열려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2세기 중엽에는 영로(嶺路)가 개척되어 156년(아달라왕 3)에는 계립영로(鷄立嶺路)를 개척하였고, 이듬해에는 왕이 장령진(長嶺鎭)을 순행하였으며, 158년에는 죽령 ( 竹嶺 )을 개척하였다고 했으니 국내 전역에 걸쳐 통로가 제법 정비되었을 것이다.
434년(눌지왕 22)에는 백성에게 우거지법(牛車之法)을 가르쳤다 하였으니 이것을 민간에 소달구지 사용을 장려한 것이라 해석한다면 부분적으로나마 꽤 큰 규격의 도로가 있지 않았나 추측되기도 한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것은 487년(소지왕 9) 역참제(驛站制)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우역(郵驛)의 설치와 관도(官道)의 치수(治修) 기록이다.
584년(진평왕 6)에는 육상 교통을 담당하는 기관인 승부 ( 乘府 )가 설치되고, 678년(문무왕 18)에는 해상 수송을 담당하는 선부 ( 船府 )가 설치되는 등 교통 체계가 제법 확립된 것 같다.
고구려는 북방 계통과 중국 계통의 문화가 전파되는 경로로서의 지리적 조건 때문에 삼국 중 가장 먼저 개화한 나라로서 서울을 5부로, 지방도 전국을 5부로 나누었다.
평양으로 천도한 뒤에는 국내성과 평양, 그리고 지금의 서울에 3경을 둠으로써 3경을 잇는 간선, 5부를 연결하는 준간선, 그리고 각 중심성과 그 관할하에 있는 작은 성들과를 연결하는 지선으로 도로망이 조직되었으리라 짐작되나 그 구체적 기록이 없다.
그러나 고분의 벽화에 그려진 기마도(騎馬圖)나 귀인이 타던 소수레 등은 당시 길의 상태를 어느 정도는 짐작하게 한다.
백제는 한강 유역과 금강 유역을 장악하고 전국을 남 · 북 · 동 · 서의 4부로 행정 구역을 편제하였다가 웅천으로 천도한 뒤에는 왕도와 전국을 각각 5부씩으로 가르고, 왕도 5부는 5항(巷)씩, 전국 5부는 10군(郡)씩으로 갈라 편제하였으므로 이들 행정 구역 상호 간에 연결된 도로망을 상상할 수 있으나 역시 직접적인 기록이 없다.
고려 시대에는 995년(성종 14)에 10도(道)를 제정, 설치하였고 1173년(명종 3)에는 7도와 5도가 있다고 하였다. 이 중 5도는 북계 ( 北界 )의 운중도 · 흥화도 ( 興化道 )와 동계의 명주도 ( 溟州道 ) · 삭방도 ( 朔方道 ) · 연해도(沿海道)가 그것인데, 이 중 연해도를 제외한 나머지 4도는 역도 ( 驛道 )의 이름과 중복되는 것으로 이 때의 ‘ 도 ’ 는 길을 뜻하는 도와 행정 구역의 도를 혼용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 시대의 길은 체계적인 역도로서 전국적으로 정비되었다. 22개의 역도는 대로 · 중로 · 소로의 3등급으로 가르고 모두 525개의 역참을 두었다. 역참은 다시 6과(科)로 등급을 나누어 1과에는 75인, 6과에는 7인 하는 식으로 등급에 따라 역정(驛丁)을 배치하였다.
〔길을 소재로 한 글〕
길은 예로부터 우리 생활과 밀접하므로 길을 소재로 한 글이 많다. 먼저 우리 격언이나 속담에 나타난 길의 예를 찾아보면, ‘ 길로 가라 하니까 뫼로 간다. ’ , ‘ 길을 두고 뫼로 가랴. ’ , ‘ 길 닦아 놓으니 용천배기 먼저 간다. ’ , ‘ 시앗 싸움엔 길 아래 돌부처도 돌아앉는다. ’ , ‘ 길을 알면 앞서 갈 것이지. ’ , ‘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고 말이 아니면 하지를 말라. ’ 등이 있다.
고시조에 읊어진 길에는 이황 ( 李滉 )과 같이 도의(道義)의 뜻으로 쓴 길도 있고, 장만 ( 張晩 )과 같이 실체의 길을 뜻한 것도 있다. “ 고인도 날 못보고 나도 고인을 못뵈/고인을 못 뵈와도 예던(행하던) 길 앞에 있네/예던 길 앞에 있거니 아니 예고 어이리. ” (이황), “ 풍파에 놀란 사공 배 팔아 말을 사니/구절양장(꼬불꼬불한 산길)이 물도곤 어려왜라/이후란 배도 말도 말고 밭갈기만 하리라. ” (장만)
김동인 ( 金東仁 )의 단편 〈 배따라기 〉 에는 주인공이 살아 있는 한 탐색이 계속되어야 하는 숙명의 길이 나타나 있다고 김용희(金鏞熙)는 분석하였다.
즉, 형수가 물에 빠져 죽은 데 대해 형에게 원망을 품고 떠나가는 아우의 육로는 구도자의 고행길이요, 형이 찾아 나서는 뱃길은 아내의 죽음에 대한 속죄의 길로서 여기서는 영원히 만날 수 없음을 암시하는 숙명이 표현되어 있다는 것이다.
시인 장순하(張諄河)는 길을 제재로 한 시를 10여 편 연작으로 발표한 바 있는데 그 중 ‘ 길 시리즈 ② ’ 라고 부제가 붙은 〈 지쳐 누운 길아 〉 한 편을 보기로 한다. 여기에 표현된 길은 실체로서의 길과 인생이라는 상징적인 길이 뒤섞여 나타나 있다.
“ 어디에나 길은 있고/어디에도 길은 없나니/노루며 까막까치/제 길을 열고 가듯/우리는 우리의 길을/헤쳐가야 하느니. //땀땀이 실밥 뜨듯/잇고 끊긴 오솔길/신발끈 고쳐 매며/한 굽이는 왔다마는/호오호 밤부엉이가/어둠을 재촉한다. //날 따라 다니느라/지쳐 길게 누운 길아/한심한 눈을 하고/한숨 몰아 쉬는 길아/십자가 건널목에는/신호등도 없어라. ” → 도로
≪ 참고문헌 ≫ 三國史記, 三國遺事, 大典會通, 古時調集, 韓國道路史(韓國道路公社, 1980), 現代文學(1986.9.).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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