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 소설가
by 송화은율
박경리(朴景利, 1927- )
· 경남 충무생. 진주여고 졸
· 1956년 단편 <흑흑백백>이 추천되어 문단 등단
· 현대문학 신인상 수상 : <전도(剪刀)>, <불신시대>
· <전장과 시장>(1965) 제2회 여류문학상 수상
유적지 - 박경리 문학기념관 (강원도 원주시 단구동 742-9 현거주지 중심, 영동고속도로 원주 인터체인지에서 내려 시내로 진입, 서원대로변 끝부분, 한국도로공사 공사가 조성하고 있 는 박경리 기념공원 내)
(문학광장) <토지> 광복이후 대표소설로 뽑혀
박경리씨의 대하소설 [토지]가 광복 이후 한국 소설사를 대표하는 소설로 선정됐다. 계간 [문예중앙]이 문학 평론가 5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해방 50년 대표 소설 50편]에서 [토지]는 총 52표를 얻어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2위는 49표를 얻은 최인훈씨의 [광장], 3위는 45표를 얻은 조정래씨의 [태백산맥]이 각각 차지했다. 50편 중에 여러 편에 걸쳐 다득표를 얻은 작가들은 황순원, 김원일, 박완서(5편), 이문열씨(4편) 등이다.
이밖에 대표소설 50편에서 10위권에 든 작가와 작품의 득표순서는 다음과 같다. 황석영 [장길산], 안수길 [북간도], 이청준 [당신들의 천국], 김주영 [객주], 김원일 [노을], 이문열 [영웅시대], 복거일 [비명을 찾아서]
박경리 대하소설「토지」,「서사음악극」으로 꾸민다
박경리씨의 대하소설 「토지」가 서사 음악극으로 무대에 올려진다.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상임지휘자 김영동)이 5일 오후 7시반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선보이는 「토지」(전4막)는 박씨의 소설을 80분짜리 음악극으로 새롭게 꾸민 것. 전통음악의 현대화와 대중화를 위해 노력해온 김영동씨가 작곡하고 시인겸 소설가 이승하씨가 원작을 각색했다.
작곡자 김씨는 『5부작 전체를 극화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1, 2부만 축약해서 40여편의 노래에 담았다』면서 『일제하 민중들의 끈질긴 삶과 잃어버린 땅을 되찾고자 하는 강한 집념을 음악으로 얼마나 잘 풀어 내느냐가 큰 고민이었다』고 작업과정을 밝혔다.
그는 『「토지」의 묘미를 전하는데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경상도 방언을 리듬감있는 음악언어로 바꾸는데 많은 신경을 썼다』며 『기존의 음악극이 판소리 위주였던데 비해 이 작품은 3박자 리듬의 민요에 바탕을 두었다』고 설명했다.
음악극 「토지」는 원작과 달리 주인공 서희보다는 민초를 대표하는 용이와 월선이 쪽에 극의 비중을 두고 있으며 합창이 주조를 이루는 가운데 인물들이 사건이 있을 때마다 무대에 등장해 노래하며 줄거리를 풀어가는 식으로 진행된다.
극은 어머니 별당아씨가 머슴과 함께 달아나자 어린 서희가 눈물과 앙탈로 주변 사람들을 들볶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어 동학의 접주 김개남이 절에 불공드리러 온 윤씨부인을 겁탈해 환이를 낳게되고 환이가 서희엄마를 데리고 달아나는 사건이 2막에 담긴다.
조준구에게 재산을 모두 빼앗긴뒤 서희가 주변사람들과 함께 북간도로 떠나는 사연(3막)에 이어 길상과 결혼한 서희가 두아들을 낳은 뒤 조준구로부터 잃어버린 땅을 되찾고 고국으로 돌아오는 장면(4막)에서 막을 내린다.
전통가곡 이수자인 강권순씨가 서희역을 맡았고 용이역은 판소리 영화「휘모리」의 주인공을 맡았던 이태백, 월선역으로는 국립국악원의 젊은 소리꾼 유미리씨가 출연한다.
소설가 박경리씨 [동아일보] 창간 75주년 특별기고
세상이 무섭게 변해간다는 것은 요즘 누구나 하는 얘기로 충격적이거나 감동적인 것이 못된다. 매사는 그 빈도가 거듭될수록 신선함 격렬함이 사라지게 마련이고 타성에 빠지게 돼 있다. 지속적이지 못한 것은 에너지하고 관계가 있는지 모르지만 여하튼 그것은 인간의 한계가 아닌가싶다. 그 한계 때문에 우리는 현실에 적응할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적응이 최선이 아니라는 점이다. 경우에 따라 살아남을 수도 있고 소멸돼 버릴 수도 있다는 양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역사의 명운같은 것이기도 하다.
세계화 방향제시를얘기는 좀 달라지지만 민족주의에도 두가지 측면이 있다. 과거 일제가 내 민족의 생존권을 박탈하고 삶의 터전을 강점했을 때 민족주의에는 당위성이 있었고 도덕적이며 또한 정의였다. 반면 타민족을 도륙하고 국토를 강탈한 일본의 민족주의, 혹은 국가주의는 그 당위성을 인정할 수 없고 부도덕하며 불의였다.
그러나 힘의 논리로 가치기준을 삼는 사람은 약육강식의 자연법칙을 말한다. 물론 그것은 호도(糊塗)에 불과한 것, 기실 인간을 제외한 지구상의 생명들은 생존할 만큼 취할 뿐이므로 욕망무한의 인간이나 집단이 내세우는 약육강식은 내용적으로 그 개념이 다르다.
힘의 논리에 의하면 남을 정벌하여 나를, 국가를 부강하게 했다면 그것은 애국이며 나라를 지키지 못한 것은 치욕이라. 그러니까 살인자 강도도 영광이요 피해자는 전리품(戰利品)이라는 가치전도, 이른바 군국주의의 강변인데 그곳에는 문화가 있을 수 없다. 동물에게 문화가 없듯이. 세계화, 세계주의에도 양면성은 있다. 일찍이 알렉산더가, 가깝게는 일본, 독일의 히틀러가 전쟁을 전제로 세계정복을 꾀했지만 사실 세계주의는 인류 마지막의 꿈이기도 하다. 세계정부를 구심점으로 전쟁없는 평화, 인종 간의 약탈없는 평등을 이상으로 한 꿈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 세계화의 궁극적 목적은 무엇일까. 불분명하다. 무한경쟁이라는 말이 출정가처럼 울려퍼지고 실제 무역전쟁이라는 용어까지 나돌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결과임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현실 다음에 다가올 미래는 어떠할 것인가. 무한경쟁의 끝은 어디메일까. 요즘 세계추세를 보면 민족주의, 혹은 국가주의와 세계화가 전혀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세계주의와 세계화가 다르기 때문일까. 묘하게도 과거 식민지 쟁탈의 악몽같은 시대가 연상된다. 영토에서 경제로 대상이 바뀌었을 뿐 쟁탈전은 여전하니 말이다.
시대에 맞는 신문으로 물론 우리는 과거의 쓰라림, 그 전철을 밟지 않겠 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며 미래를 위해 현실을 희생시킬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위해 미래를 희생시킬 수 없는 것 또한 절실한 문제다. 이 딜레마를 푸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세계화의 작업이 아닐까.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 衣食住를 받쳐주는 생산보다 소위 삶의 질을 높인다는 산업의 생산고가 훨씬 앞지르고 있는 오늘, 그러나 역설적인 것은 삶의 질을 높인다는 바로 그것(文明)때문에 인류는 삶의 터전을 잃게 된다는 사실이다.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의식주는 자연과 더불어 순환하고 환원되는 것이지만 기본을 넘은 여타의 것은, 그것에 쏟아부은 인력과 자원은 순환하는 것이 아니며 되돌아오는 것도 아니며 결국 쓰레기로 남아서 환경이 파괴되고 오염되고 지구의 자원을 고갈시킬 뿐이다.
그렇다고 옛날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돌아갈 수도 없다. 여기서 우리는 세계화의 방향을 깊이 생각해야 하며 인류가 더불어 살아남을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21세기는 고도의 기술이 지구복원에 집약되어야 하고 순환하고 환원되는 새로운질서를 강구해야 하며 삶의 질을 내용에서 높여 가야 지구사막화 인간사막화에서 우리는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민족 수난기에 선도적 역할, 민족의 희망이기도 했던 東亞日報는 오늘 어떠한 위상일까. 생각해보면 영상매체나 첨단으로 치닫는 시대에 신문의 역할은 무엇일까. 이럴 때 신문은 다시 선도적 역할, 희망적 존재로서, 인류 생존을 위한 보다 본질적인 문제, 삶의 터전에다 말뚝을 박아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것은 미래로 향한 우리들의 간절한 소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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