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에 대하여
by 송화은율맹자(孟子, 기원전 372-289, 84세설)
이름은 가(軻), 춘추시대 추(鄒)나라 사람.
책 [맹자]
맹자의 교육사상
❶ 유가(儒家)와 묵가(墨家)와 도가(道家)
한비자(韓非子)의 기록에 의하면 공자가 죽은 후에 유가는 여덟개의 지파로 나뉘어졌다. 자장(子張), 자사(子思), 안씨(顔氏), 맹씨(孟氏), 칠조씨(漆彫氏), 중량씨(仲良氏), 순경(筍卿), 악정(樂正) 등이 그것이다. 이 8대 유가의 지파는 동시에 생겨난 것이 아니고 공자가 죽은 후 약 200여년에 걸쳐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공자의 제자인 (曾子), 자하(子夏), 자유(子游), 자공(子貢), 민자(閔子) 등이 이 8대 유가에 들지 않고 있어서 후세의 사람들이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보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안씨, 자장, 칠조씨의 경우에만 공자의 직접 제자이고, 다른 학파들은 3대 내지 5대의 인물들이다. 그리하여 공자의 유가는 그 이상의 학파를 두고 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러한 유가의 전통이 이어지는 속에서 맹자는 공자의 손자인 자사의 문하생으로부터 배워 공자의 사상을 발전시킨 사상가이다. 공자가 지성(至聖)이라면 맹자(孟子)는 아성(亞聖)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유가의 전통에서는 공자 다음가는 스승으로 받들어지고 있다. 맹자는 공자의 인의의 도를 발전시켜 성선설과 왕도정치론을 편 사상가로서 당시대의 다른 학파인 묵가와 도가를 물리치고 유가적 정통성을 확립하였다.
전국시대의 사상계에는 유가 이외에 여러 학파가 있었으나, 그 세력으로 보면 묵가(墨家)와 도가(道家)가 그 대표적인 것이었고 후에 법가도 점차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러나 묵자(墨子)--본명은 묵적(墨翟)--가 어느 시대의 사람이었느냐를 두고 설이 분분하다. 어떤 사람은 공자와 같은 시대의 사람이었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공자보다 훨씬 후의 사람이었다고도 하나, 대체로 기원전 470년대에서 380년대에 살았을 것으로 본다. 묵가의 사상은 전쟁을 반대하고 도가처럼 개인주의에 빠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유가의 사상과 다소 유사성도 있기는 하지만 많은 점에서 공자의 사상에 대하여 비판적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도가의 근원인 은둔 사상가 양주(楊朱)도 묵자가 활동하던 시기에 생존하였을 것으로 본다. 후에 도가는 노자(老子)와 장자(莊子)에 의해서 크게 발전되어 유가와 묵가와 더불어 3대 사조의 하나로서 영향력을 미쳤다. 노자는 종래에 공자보다 앞섰던 시대의 사람으로 알려졌고 또한 중국 역사상 최초의 사상가로 인정되어 왔으나, 최근에는 노자를 공자보다 휠씬 뒤에 태어난 인물로 추정되고 있다. 장자는 맹자와 동시대의 사람이다.
묵자도 유가의 학업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유가의 예가 번거러움을 비판하였다. 묵자는 특히 장례식을 거창하게 치르는 것은 재산을 없애고 백성을 가난하게 만드는 것이며, 오래토록 상복을 입게 하는 것은 산 사람을 괴롭히고 일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하여 유가를 공격하였다. 그는 유가와는 달리 귀신의 존재를 믿는 명귀론자(明鬼論者)로서 종교적 정열을 가진 사람이나, 그러면서도 공리주의적 사고를 하였으며 사회의 개혁에 앞장선 사람이었다. 공자는 초기 주(周) 나라 때의 예악과 문물을 동경하였으나, 묵자는 전통적 제도와 관행에 반대하였다. 묵자는 공자가 주의 문, 무, 주공을 이상적인 성인으로 존숭하여 그 도를 퍼뜨린다고 주장한 것에 대하여 그보다 더욱 옛날의, 따라서 더욱 유덕한 하(夏)의 우왕(禹王)의 가르침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에 의하면, 우왕은 근검역행하며 민중의 모범이 되고 황하의 대홍수를 수습하여 세상을 구제한 군주이므로 정치가는 모름지기 이를 본받아 절약하고 장례식을 간단히 하며 음악 등 무용한 오락을 폐지하고 타인을 위해서는 몸이 가루가 되도록 봉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묵자는 유가가 주장하는 인(仁)은 자기 주위의 사람을 후대하고 멀어짐에 따라서 박하게 대우하므로 덕이 불충분하다고 하였다. 오히려 자타를 구별치 않고 ‘겸애하는 것’이 최고의 이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묵자의 사상에서 가장 기본적인 내용은 바로 이 ‘겸애설’(兼愛說)과 그의 독특한 논리적 방법인 ‘삼표법’(三表法)이다.
묵가의 영향력은 한 때 공자의 유가에 비길 만한 것이었다. 묵가가 유가를 비판하였으나 사상적 노선에 있어서 정반대되는 것은 유가라기보다는 오히려 도가(道家)였다. 도가도 묵가와 마찬가지로 당시의 난세에 대한 대응적 사상이었으나, 묵가는 적극적 대응이었다면 도가는 소극적 대응이었다. 「열자」(列子)의 ‘양주편’에 이런 기록이 있다. ‘옛날 사람은 털 오라기 하나를 뽑아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다고 해도 결코 하지 않았고, 온 천하를 맡긴다고 해도 받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털 한 오라기를 뽑지 않고 또 사람마다 천하를 이롭게 하려 하지 않는다면 천하는 안정되리라.’(열자: 양주--풍우란, 91) 이러한 도가적 태도는 공자 시대의 은자(隱者)들에게서 볼 수 있다. 은자란 난세를 피하여 숨어서 지내는 사람을 뜻한다. 은자들은 공자가 난세를 구하려고 쓸데 없이 애쓰는 사람이라고 하여 조소를 하였다.(논어 미자 5,6) 도가는 바로 이러한 은자들에게서 유래하였다고 여겨지고 있다.
노자(老子)에게서도 양주의 개인주의적 은둔사상과 유사한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노자는 ‘제몸을 천하같이 귀중하게 여기는 사람에게 천하를 줄 수 있고, 제몸을 천하같이 아끼는 사람에게 천하를 맡길 수 있다’(노자 13)고 하였다. 그러나 노자의 사상은 개인주의에만 머물었다기보다는 우주 안에 있는 만물의 근원이 되는 도를 밝히는 것이었다. 그에 의하면, 모든 만물은 도에서 생겨났다. 그러나 그의 도는 ‘무위’(無爲)의 도, 즉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도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하지 않는 것이 없는 것이 도이다.(37장) 그것은, ‘천지 만물은 본래 유(有)에서 생기고 유는 무(無)에서 생긴다’(42장)는 말과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으며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42장)는 말이 시사하듯이 무와 무위의 개념은 일종의 파라독스를 표현하는 개념이다. 노자의 학문은 개인주의의 주장으로서 양주의 계열에 속한다고 할 수 있으나 쾌락주의가는 아니다. 그는 쾌락을 초월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유가가 존중하는 예제(禮制)도 또한 초월해야 할 대상이며 정신의 자유를 획득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다. 이러한 노자의 사상과 유사하게 장자(莊子)는 ‘무용’(無用)의 도를 내세워 단순한 현실적 은둔이 아니라, 오히려 무용의 쓰임을 들면서 무용은 결과적으로 크게 쓰임, 즉 대용(大用)을 뜻한다고 하였다. 가지와 잎이 무성한 큰 나무를 언급하면서 나뭇꾼이 그 나무를 베어가지 않는 것은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쓸모가 없기 때문에 그 나무는 크게 자랄 수 있었고 무성할 수 있었다는 것, ‘무용’은 이런 의미에서 곧 ‘대용’(大用)이다.
맹자는 도가와 묵가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이를 물리치는 일을 유가로서의 사명으로 생각하였다. 맹자는 당시에 양주와 묵적(墨翟)의 사상이 천하에 팽배해 있다는 사실에 긴장을 느꼈고, 천하의 의견이 양주와 묵적으로 기우는 현상을 두고 크게 우려하였다. 공자가 주 나라의 문왕, 무왕, 주공의 사상을 잇는 것에 대하여 묵적은 그 이전인 하(夏) 나라 우왕(禹王)의 사상을 잇는 것으로 대응하였다. 그러나 맹자는 다시 그보다 더 앞서 요(堯)와 순(舜)의 두 임금을 들어 자신의 유교는 요순의 도이며, 요, 순, 우, 탕, 문, 무, 주공, 공자의 법통을 잇는다고 가르쳤다. 맹자는 말하기를 ‘사악한 설이 떠돌면서 사람들을 속이고 인의의 도를 가로 막고 있다’고 하였다.(등문공하 9) 이 말은 도가와 묵가의 사상이 횡행함을 언급한 것이다. ‘양주는 자기만을 위하므로 이는 임금이 없음을 뜻하는 것이요, 묵적은 겸애를 주장하므로 이는 아비가 없음을 뜻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양주의 ‘위아설’(爲我說)은 자기의 이익을 구하고, 다른 한편으로 묵자의 ‘겸애설’(兼愛說)은 남의 이익을 구하고 있으므로 서로 대립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러한 양극적 사고에 대하여 맹자는 공자가 제창한 충서(忠恕)의 사상에 터하여 중도적이면서도 통합적인 원리를 내세우고자 하였다. 자기 가족에 대한 사랑이 그것으로 끝나면 위아적인 이기주의로 남지만 그 사랑으로 남의 가족에로 넓히면 이타주의적 태도를 포괄하는 것이 된다. 맹자는 인간이 지닌 인(仁)의 단서, 즉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있으므로 남의 고통을 그대로 넘길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부모와 남의 부모를 동등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자기 부모의 존재를 부인하고 자연의 애정을 손상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보았다. 본래 인간은 인의(仁義)를 소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류라고 할 수 있으나, 사물은 모두 똑 같은 것이 아니며 자기 부모를 더 사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정이다. 그러므로 자기 부모를 먼저 생각하고 측은지심의 단서를 계발하면 자연히 남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다.
맹자는 스스로 말하기를 역사상 여러 성인들이 있지만 자기가 바라는 것은 오직 공자를 배우는 것이라고 하였다.(공손추상 호연 13) 공자는 맹자의 당시에 성인으로 지칭되고 있던 백이(伯夷), 이윤(伊尹), 유하혜(柳下惠) 등의 성품을 전체로서 집대성한 성인이다. 백이는 성인 가운데서도 청념하고 성품이 곧은 성인(聖之淸者)이며, 이윤은 누군들 임금이 아니며 누군들 백성이 아닌가라고 하면서 백성들을 지도할 사명감에 넘치는 성인(聖之使者)이며, 유하혜는 더러운 임금을 섬기는 일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을 정도로 화해와 조화의 기질을 가진 성인(聖之和者)이다. 이들에 비하면 공자는 시의에 맞게 시종을 조리정연하게 전개하는 성인(聖之時者)이다. 그는 공자의 성품과 능력을 ‘집대성’으로 표현하고 음악으로 비유해서 설명하였다.
한편으로 종(鐘)의 소리를 내고 또한 편으로 경(磬)의 울려 조화를 이룬다. 종의 소리는 조리있는 시작을 뜻하고 경의 울림은 조리 있는 끝맺음을 나타낸다. 조리있게 시작하는 것은 지혜(智慧)에 속하고 조리있게 끝내는 것은 성덕(聖德)에 속한다. 다시 활쏘는 데에 비유하면, 지혜는 기교이고 성덕은 기력이다. ... 공자는 지(知)와 성(聖)을 겸하여 집대성한 것인다.(만장하 백이 5-6)
맹자는 사람들이 세상에 살기 시작한 이래로 공자같은 성인은 없다고 생각하였다. (공손추상 호연 14) 그러나 공자는 인(仁)의 도를 편데 비하여 맹자의 인과 의(義)의 두 개념으로 자신의 사상을 전개하였다. 인과 의의 차이와 관계를 맹자는 인심(人心)과 인로(人路), 혹은 안택(安宅)과 정로(正路)로 표현하였다. (이루상 자폭1) 인을 ‘인심’이라고 한 것은 그것이 인간의 본연의 마음이라는 뜻이며, (나중에 논하겠지만) 맹자는 인간의 마음은 본래 착한 성(性)을 소유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인을 ‘안택’이라고 한 것은 ‘편히 살 수 있는 집’에 비유될 수 있다는 것으로서 인간의 마음이 본래 거하여야 할 본연임을 뜻한다. 그리고 의를 ‘인로’ 혹은 ‘정로’라고 한 것은 인간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라는 것을 뜻한다.
도덕성을 논할 때 인간이 추구하는 목적을 일차적으로 중시하여 ‘행복’, ‘덕성’ 등의 적극적 가치에서 궁극적 기준을 구하려는 목적론적 윤리설과, 인간이 지켜야 할 행위의 격률을 일차적으로 중시하여 ‘법칙’, ‘규칙’ 등의 소극적 가치에서 궁극적 기준을 구하려는 법칙론적 윤리설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설은 전자의, 칸트의 윤리설은 후자의 대표적인 것이다. 이러한 구분을 적용하면 공자와 맹자의 ‘인’은 목적론적 개념이라면 ‘의’는 법칙론적 개념이라고 할 수 있으며, 공맹(孔孟)은 인을 일차적 개념이라고 본다는 점에서 목적론적 경향을 취하고 있는 셈이다. 장지윤은 ‘인’은 보편적 원리이며 ‘의’는 개별적 실천의 원리라고 하였으나(장기윤 118), 보편성과 개별성, 혹은 지행(知行)의 논리를 두 개념의 관계에 적용하지는 어렵다. 오히려 인은 인간의 감정, 의지, 태도 등을 포함하는 마음과 그 성품을 전체적으로 나타내는 개념이라면, 의는 그 마음이 작용하는 질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둘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맹자는 의(義)의 개념과 공자가 중시한 예(禮)의 개념도 그 관계를 말하여 ‘의는 길이요 예는 문이다’(만장하 불견7)라고 하였다. 사람은 반드시 문을 통하여 길을 따라야 한다. 아무리 임금이 불렀다고 해도 의에 어긋나면 그 예를 지키지 않을 수 있으며, 아무리 세련된 예를 갖추었다고 해도 그것이 의에 어긋나고 인이 실린 것이 아니라면 진정한 의미의 예가 아니다.
❷ 성선설(性善說) 교육관
사람의 본성이 본래 선한 것인가 아니면 악한 것이가에 대한 대답의 향방은 교육의 목적과 성격을 밝히는 데 중요한 결정요인이 된다. 만약에 인간이 본래 선하다면 그 선성을 보존하거나 회복하는 것이 교육일 것이며, 만약에 악하다면 그 악성을 계속적으로 고쳐서 다시 악성으로 되돌아 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교육일 것이다. 맹자의 시대에 이 문제를 두고 상반된 견해가 있었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고 주장하였고, 같은 유가의 전통 속에 있던 순자(荀子)는 악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성선설과 성악설의 이원론적 대립과는 달리 고자(告子)는 인간의 본성이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고 주장하였다.
맹자는 ‘우산(牛山)의 비유’를 들어 사람의 본래 성품은 착한 것이었으나 혼탁한 세상의 영향으로 인하여 흐려져서 악하게 되기도 한다는 것을 이렇게 설명하였다.
우산의 수목은 본래 울창하게 우거져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 산림이 큰 나라의 국도에 인접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도끼로 마구 베어내었다. 그러니 어찌 본래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었겠는가? 그렇지만 잘린 나무의 뿌리는 밤낮으로 쉬면서 다시 자라고 또한 비와 이슬이 내려 적셔 주므로 새싹이 돋아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소나 양들이 와서 풀을 뜯어 먹었으므로 저렇게 뻔질뻔질한 헐벗은 산이 되고 말았다. 오늘 사람들은 그 뻔질뻔질한 산을 보고 원래부터 나무가 없었으리라고 생각하겠지만, 어찌 저렇게 헐벗은 모습이 산의 본래 모습이겠는가?
사람의 본성에 어찌 인의(仁義)의 마음이 없었겠는가? 사람들이 본래의 양심을 버리는 것은 마치 도끼로 나무를 잘라 버리는 것과 같다. 매일 잘라 버리니 어찌 아름다울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사람의 양심도 밤낮으로 자라고자 하며, 새벽의 청명한 기운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도 즐겨 추구하는 바와 싫어서 배척하는 바가 사람답지 못하고 낮에 일어나는 혼잡스런 일들 때문에 다시 교란되어 사라져 버린다. 그러한 일이 반복되면 결국에 가서는 밤의 기운도 없어지고, 밤의 기운이 없어지만 인간이 아닌 금수(禽獸)와 가까운 상태에 빠진다.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금수가 된 꼴 만을 보고 본래부터 착한 재성(才性)이 없었던 것과 같이 생각하겠지만 어찌 그런 것이 사람의 본성이겠는가? (고자상 우산장 1-2)
그러나 맹자가 성선설을 견지하려면 적어도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의문을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첫째로, 인간의 마음이나 행동이 선하거나 악하다고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인(仁), 의(義) 등의 도덕적 개념은 원천적으로 인간 혹은 인간의 마음에 외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재(內在)하는 것이어야 한다. 과연 그런가? 둘째로, 인과 의가 인간의 성품에 내재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은 본래 똑 같은 심성을 소유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세째로, 인간은 누구나 그 본성이 선하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근거에 의해서 그렇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질문과 관련하여 맹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첫째의 의문은 이것이다. 만약에 인과 의가 인성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관습에서 온 것이라면, 인간의 성품이 본래 선하다거나 악하다거나 하는 판단이 별로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선악의 판단은 인간의 심성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사회의 관습 혹은 제도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즉, 선악의 문제는 원천적으로 인간의 마음에 적용되는 것이거야 하기 때문이다. 과연 그러한 도덕적 기준은 내재적인 것인가? 맹자와 이 문제를 두고 논쟁을 벌린 고자는 인의 경우에는 내재적이라고 할 수 있으나 의의 경우에는 외재적인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두 가지의 예를 들었다. 첫째, 음식을 먹는 것과 이성을 좋아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으로서 내재적인 것이다. 그러나 연장자를 존경하는 것은 연장자라는 이유 때문에 존경하는 것이므로, 그것은 마치 어떤 물체가 흰색인 경우에 그것을 희다고 하는 것은 마음 속에 희다고 하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가 아니라 그 물체가 희기 때문에 희다고 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인은 내재적인 것이며 의는 외재적인 것이다. 둘째, 자기 동생은 사랑하지만 먼 나라 사람의 동생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인이 마음 속에 있기 때문이며, 남의 나라 영장자도 내 나라의 연장자처럼 모시는 것은 연장자라는 객관적인 사실로 인한 것이므로 의는 마음의 밖에 있는 것이다.(고자상 식생장) 이러한 고자의 논변에 대하여 맹자는 이렇게 반문하였다. 흰 말과 흰 사람의 경우에 희다는 사실은 같을 수 있으나, 그것으로 인하여 말과 사람이 같다고 할 수 있겠으며, 연장자를 존경하는 것을 의라고 하지 연장자 그 자체를 의라고 할 수 있겠는가? 흰 것을 희다고 하는 것과 연장자를 존경하는 것은 다른 종류의 일이며, 존경하는 마음이 없이 존경의 대상만을 두고 의를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둘째의 의문은 이것이다. 어떤 사람은 선하고 어떤 사람은 악하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어떤 사람의 마음은 본래 인과 의의 설정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할 수 있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기는 어렵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본래 성인은 성인으로 태어나고 범인은 범인으로 태어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맹자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즉, 「시경」(詩經)에서 말하기를 ‘하늘이 모든 사람들을 낳고 만물에는 법칙이 있게 하였다. 이에 사람들은 그 법칙을 지키고 아름다운 덕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하였듯이, 사람들은 본래 인간에게 주어진 법칙을 지키고 덕을 행하게 되어 있다.(고자 상 공도장) 만물에 주어진 법칙에 따라서 같은 종류의 사물은 비슷하게 마련인데 어찌 오직 사람만이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성인이나 나나 같은 종류의 사람이다.(부세장 3) 성인은 이(理)와 의(義)로 충만하므로 성인의 본성은 선하다. 성인과 나는 동류이므로 나는 동류에 속하므로 나의 성도 선할 수밖에 없다. 맹자는 지극한 마음으로 수양하면 ‘누구나 요(堯) 임금과 순(舜) 임금이 될 수 있다’(고자하 조교)고 하였다.
셋째의 의문은 이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그 본성이 선하다면 그 선성을 나타내어 주는 증거는 무엇인가? 고자는 사람의 본성이란 마치 버드나무의 가지나 물과 같이 이리저리 변화될 수 있는 것이지 선하거나 악하거나로 결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햐였다.(고자 상 기류장, 湍水章) 그러나 맹자는 어렇게 대응하였다. 즉, 버드나무의 가지를 사용하여 무엇인가를 만든다면 우리는 그 본성을 어기고 억지로 만드는 것이 아니며, 물이 이리저리 좌우로 흐를 수 있으나 항상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법이다. 물로, 이러한 일정한 본성은 선일 수도 있고 악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맹자는 인간의 본성을 선하다고 보았다. 그 근거는 무엇인가? 그 대답이 바로 맹자의 유명한 ‘사단설’(四端說)이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측은함을 느끼는 마음(惻隱之心)이 있고, 수치스러움을 느끼는 마음(羞惡之心)이 있으 며, 공경하는 마음(恭敬之心)이 있고, 시비를 가리는 마음(是非之心)이 있다.(고자상 공도)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이 인(仁)의 단서이고, 수치스러움을 느끼는 마음이 바로 의(義)의 단서이며, 공경하는 바음이 바로 예(禮)의 단서이고, 시비를 가리는 마음이 바로 지(知)의 단서이다. 인의예지는 밖으로부터 와서 나를 교화시키는 것이 아니고 나에게 본래 있는 것이나 단지 우리는 마음에 내재하는 바를 평소에 생각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찾아서 닦으면 그것을 얻지만 스스로 버리면 잃을 수밖에 없다. 스스로 찾는 사람과 스스로 버리는 사람의 차이는 성인과 법인의 차이처럼 크게 벌어질 수 있다.(고자상 공도장)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의 차이는 본래의 선성을 확충하는 양성(養性)과 그것을 잃어 버리는 실성(失性)의 차이이다. 이러한 인성관에 의하면, 교육의 목적과 방법은 선단(善端)을 확충하는 것과 잃어버린 선단을 회복하는 것으로 함축될 수 있다. 사단은 인간의 인의예지의 마음을 소유하고 있다는 단서라면, 확충하고 회복하는 것은 무엇에 관한 것인가? 즉, 선한 성품의 실체는 무엇인가? 마음은 본래 인의예지의 덕을 앟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재성과 능력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가정된다. 즉, 그것은 양심(良心)이다. 양심은 양지(良知)와 양능(良能)을 포함한다. 배우지 않고도 할 수 있는 것은 양능이며,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아는 것은 양지이다.(진심상 양능장) [이러한 ‘양지양능설’은 오늘의 서양 윤리학들이 양심(conscience)의 개념을 도덕적 판단의 인지적 요소와 도덕적 실천의 동기적 요소로 분석하여 설명하는 것과 매우 유사한 개념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
사람이 본래의 성정(性情)을 따르면 선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사람들이 착하지 못한 일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본래 악해서가 아니라, 본래의 재성를 다하지 못했기 대문이다.(고자 상 공도) 그러면 우리는 무엇이 그 재성의 발휘를 가로 막고 있는가를 물을 수 있다. 맹자는 대체로 세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는 환경의 영향이다. 풍년이 들어 넉넉한 해에는 젊은이들이 거의 선량하고 흉년에는 포악한데, 그것은 사람의 재성이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유인케 한 원인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마치 같은 땅에 같은 시기에 보리를 심어두면 하지(夏至) 때에 이르러 또 같은 결실을 하지 않는 것은 토질이 다르거나 기후가 다르거나 아니면 사람의 손길이 같지 않아서 그런 것과 마찬가지이다.(고자 상 부세장) 맹자는 인간의 성품의 변화에 미치는 환경의 영향을 여러 곳에서 언급하고 있다.
둘째는 자포자기의 태도이다. 비록 인간에게 환경의 영향이 크다고 하여도, 순 임금과 같이 깊은 산속에서 야인들과 별로 다를 바가 없이 살았으마 착한 말을 듣고 착한 행동을 보면 그대로 실천에 옮기는 노력이 있으며 성인이 되기도 한다.(진심 상 수지장) ‘우산의 비유’에서 설명하였듯이 낮의 거칠고 문란한 행동과 밤의 안식을 통하여 순화하고 아침의 맑은 기운을 입어 사람은 다시 새롭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자포자기하는 데 있다. 맹자는 입만 열면 예의를 비난하는 것을 일컬어 ‘자포’(自暴)라고 하고 스스로 인에 거하고 의를 지키지 못한다고 여기는 것을 ‘자기’(自棄)라고 하였다. 이러한 자포하는 사람과는 말을 같이 할 수 없고, 자기하는 사람과는 일을 같이 할 수 없다고 하였다.(이루상 자포장)
셋째는 작은 것이 큰 것을 해치는 것이다. 맹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사람의 몸에는 귀한 부분과 천한 부분, 큰 부분과 작은 부분이 있다. 작은 것으로써 큰 것을 해쳐서도 안되고 천한 것으로써 귀한 것을 해쳐서도 안된다. 작은 것을 키우면 소인이 되고 큰 것을 키우면 대인이 된다.’(고자 상 인지장) 그것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 맹자는 마음의 관능(官能)을 육체의 관능보다 앞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진심상 鈞是장) 마음은 큰 몸(大體)이고 육체는 작은 몸(小體)인데, 마음을 따르면 대인이 되고 육체를 따르면 소인이 된다. 왜냐하면, 육체의 감각기관은 생각할 힘이 없고 물질에 가리지만 마음은 생각하는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맹자의 교육은 바로 선성의 보존, 양육, 회복에 관한 것이다. 맹자는 군자가 사람을 교육하는 방법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고 하였다.(진심상 군자장) 첫째, 제 때에 내리는 비가 초목을 저절로 자라게 하는 것과 같이 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방법은 인간 자체 속에 내재되어 있는 자연적 법칙에 따라서 성장할 수 있도록 적절한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교육의 가장 중심되는 원리로 생각하는 루소(Rousseau) 등의 자연주의적 교육관에서 말하는 방법과 유사하다. 둘째, 사람이 본래 지니고 있는 덕성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성선설적 인간관에서 일관되게 도출될 수 있는 방법이다. 덕성은 인간의 밖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부터 계발되는 것이다. 세째, 각자가 지닌 재능과 소질을 충분히 발달시킬 수 있도록 해 주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잠재력과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계발시키는 것을 의미하는 소위 ‘자아실현’(自我實現)이라고 표현하는 바 그것이다. 네째, 의심나는 것을 묻게 하여 깨닫게 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탐구학습의 원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다섯째, 혼자서 덕을 잘 닦아 나가도록 해 주는 것이다. 이 방법은 인간의 자율적 성장의 원리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맹자는 이러한 다섯 가지의 방법에 대하여 체계적인 이론적 정당화를 한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 아동중심교육을 내세우는 진보적 교육이론에서 주장하는 것과 그 정신과 원리를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자연적 성장을 기한다고 하여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은 마치 논밭에 김매기를 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나 빨리 자라게 하기 위하여 어느 송(宋) 나라의 농부가 모자리의 모들을 뽑아 올린 것과 같이 하면 모들은 말라 죽고 만다.(공손추 상, 호연장) 그러므로 교육에 있어서 중요한 사람에게 인위적인 통제나 제재를 가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적절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맹자는 당시의 송 나라 정치를 담당해 온 대불승(戴不勝)이라는 사람이 당대의 선량한 선비인 설거주(薛居州)를 등용하여 왕의 측근에 있게 함으로써 왕의 덕성을 높이고자 한 사실을 두고, 왕의 측근에 우글거리는 악한 무리들이 함께 있을 경우를 언급하면서 이렇게 평하였다. 초(超) 나라의 대부가 그 아들로 하여금 제(齊) 나라의 말을 배우도록 하기 위하여 제 나라의 사람을 시켜서 그를 가르치게 한다고 해서 제대로 가르치겠는가? 제 나라 사람 혼자서 그를 가르치고 주변에 초 나라 사람들이 욱실거린다고 하면, 글 때려서 가르친다고 해도 제 나라 말을 제대로 하겠는가? 차라리 제 나라의 거리에 내버려 두면 매일 같이 그를 때려서 초 나라 말을 하게 하더라도 오히려 제 나라의 말을 할 것이다.
이처럼 맹자는 교육에 있어서 환경의 영향은 절대적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자신이 교육받은 환경, 즉 그의 어머니가 세번이나 자식의 교육을 위하여 환경을 선택하여 옮겨 다닌 것(孟母 三遷之敎)에서 체득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환경 그 자체가 군자를 만든다는 보장은 없다. 군자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데는 적어도 두 가지의 양성(養性)의 원리가 따라야 한다. 하나는 ‘규구(規矩)의 개념’이고 다른 하나는 ‘호연지기(浩然之氣)의 개념’이다. 규구는 교육의 방법적 과정에서 적용되어야 할 원리라면 호연지기는 개체 인간을 위한 교육의 목표이다.
맹자의 교육방법은 어떤 점에서 상당히 방임적인 것 같이 보이기도 하지만 인간을 군자로서 성장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 성장을 이끌어 가는 규구(規矩), 즉 표준이 있어야 한다. 선성을 보존하고 자라게 하고 그것이 혼탁해졌을 때 회복하는 노력, 그것은 막연한 수양이나 극기를 통해서가 아니라, 마치 훌륭한 목수가 도제를 가르칠 때 규구준승(規矩準繩), 즉 콤퍼스, 곡척, 수준기, 먹줄 등을 사용하면서 가르치듯이 행위의 표준에 따라서 배우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진심상 공손장) 그 표준을 어디에서 구할 것인가? 그것은 옛날 요순(堯舜)의 두 임금, 그리고 삼대의 왕들, 하(夏)의 우왕(禹王), 은(殷)의 탕왕(湯王), 주(周)의 문왕(文王)과 무왕(武王) 등의 성왕(聖王)들, 또한 백대의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백이(伯夷)와 유하혜(柳下惠) 등의 성현들의 행적과 교훈에서 찾을 수 있다. 맹자는 ‘임금이나 신하나 모두 요 임금과 순 임금을 본받으면 된다.’(이루상, 규구장)고 하였다. 순이 요 임금을 섬기던 극진한 태도와 도리, 그리고 순과 요의 두 임금이 백성을 위하던 정성과 태도, 그것이 바로 인간 윤리의 표준이다. 군자를 기르는 사람은 배우는 사람에게 깨우쳐 주고 밝혀 주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 표준에 따라서 힘있게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기만 해야 한다. 그것은 군자교육의 궁극적 목표라고 할 수 있는 호연지기를 기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호연지기(浩然之氣)는 인간의 선성이 만개(滿開)한 경지를 의미한다. 이러한 기는 지극히 크고 굳센 것이므로 곧게 가꾸고 기르면 천지의 사이에 가득찬다. 그러므로 의(義)와 도(道)가 합친 상태에서라야 제대로 함양된다.(공손추 상 호연장) 호연지기가 크게 무르익은 경지의 사람을 ‘대장부’(大丈夫)라고 한다. 대장부는 ‘천하의 넓은 보금자리인 인에 살고 천하의 올바른 자리인 예를 지키고, 또한 천하의 대도인 의를 행한다. 뜻을 얻어 도를 행할 수 있는 자리에 오르면 백성들과 함께 그 도를 따르게 하고, 뜻을 얻지 못하여 재야에 머물면 홀로 선을 행한다. 부귀에 의해 마음이 타락되는 일이 없고 빈천으로 인해 절조를 굽히지 않으며, 어떤 위세나 무력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다.’(등문공 하 경춘장) 호연지기는 인간이 자기의 본성을 충분히 계발시킨 것일 뿐이므로 그것은 결코 한갖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누구나 실현할 수 것이다.
❸ 귀족주의적 왕도정치
맹자는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社稷)은 그 다음이며 임금은 가장 가볍다’고 하였다. 그리고 ‘백성들(丘民)의 민심을 얻어야 천자(天子)가 될 수 있고 천자의 신임을 얻어야 제후(諸侯)가 될 수 있으며 제후의 신임을 얻어야 대부(大夫)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진심 하 귀위장) 이 표현으로 보면 장기윤이 말했듯이 맹자는 민주정치의 가장 중요한 선언을 한 것으로 보인다.(장기윤, 127) 통치권의 행사가 궁극적으로 민중을 위한다는 데 있다고 선언한 것이므로 그야말로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조건을 충족시킨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을 위한 정치’ 그 자체만으로 민주정치의 충분한 조건이라고 할 수는 없다. 주권의 근원이 민중에 있지 않으며 주권의 소유가 또한 민중에 있지 않는 한 ‘백성 이 가장 귀하다’고 한 것만으로 완전한 민주정치를 선언한 것이라고 할 수는 결코 없다. 전재정치나 귀족정치의 경우에도 통치권의 도덕적 정당성을 언제나 위민(爲民)의 정신에서 찾고자 한다.
그러나 맹자는 전재적 왕권국가가 이상적인 국가라고 보지는 않았다. 민중은 왕의 절대적 의지를 위하여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자의로 전횡을 행사할 수 있는 지배적 존재도 아니다. 오히려 맹자의 왕은 도덕적 상징으로서, 그리고 도덕적 관리자로서 존재한다. 그리하여 맹자의 이러한 정치를 ‘왕도정치’(王道政治)라고 하고 ‘패도정치’(覇道政治)와 구별하였다. 왕도는 인의의 도덕으로써 인정(仁政)을 행하는 것이고 패도는 인정을 가장하여 무력으로써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다.(공손추 상 가인장) 패도에 의한 통치는 그 세력을 넓히고 복종을 강요하지만 실제로 민중은 심복(心服)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왕도에 의한 통치는 마치 공자의 70 제자들이 스승에게 진심으로 복종하듯이 덕으로써 복종케 한다. 맹자는 왕도정치의 표본을 옛 성왕들이 천하를 다스리던 것에서 찾고자 하였다.
통치자의 임무는 영토와 인민과 정사(政事)르 지키는 일이라고 하였다.(진심 하, 제후장) 이러한 임무는 하늘로부터 받은 것, 즉 천명(天命)이므로 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민심(民心)으 배반한 것이 되고 결국 천심(天心)을 잃은 것이 된다. 이러한 상황하에서는 ‘역성혁명’(易姓革命)도 정당화 된다. 말하자면, 집권자의 정통성이 부정당하고 천명이 바뀐다는 것이다. 은(殷) 나라의 탕왕(湯王)이 하(夏) 나라의 걸왕(桀王)을, 그리고 주(周) 나라의 무왕(武王)이 은 나라의 주왕(紂王)을 토벌한 것도 이러한 역성혁명의 논리에 의해서 정당화된다.
역성혁명이 정당화되는 경우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통치자가 천명을 잃었을 때이다. 맹자는 백성을 배반하고 잔적(殘賊)을 일삼는 자는 그가 왕일지라도 이미 왕이라고 할 수 없는 일개 필부(匹夫)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주 나라의 무왕이 은 나라의 폭군인 주왕을 정벌한 상황을 두고 이렇게 말하였다. 즉, ‘인도(仁道)를 어기는 자를 적(賊)이라고 하고 의리(義理)를 어기는 자를 잔(殘)이라고 한다. 잔적을 일삼는 자는 일부(一夫)라고 한다. 일부에 불과한 주를 죽였다는 말은 들었어도 임금을 살해했다는 말은 아직 듣지 못하였다.’ 다른 하나는 반복해서 간(諫)해도 듣지 않을 경우이다. ‘나라의 임금에 큰 과오가 있으면 간하고, 그것을 되풀이 하여도 들어주지 않으면 그 지위를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버린다.’(만장 하 문경장) 그러나 맹자의 역성혁명론은 국민의 적극적인 권리선언과 같은 것이 아니라 통치자의 도덕성에 대한 긴장을 자극하는 예방적 발언에 불과하다고 보려는 경향이 있다. 은 나라의 건국에 공을 세운 이윤(伊尹)이 왕인 태갑(太甲)을 추방했다기 태갑이 현명함을 되찾자 그를 다시 맞이한 사실이 있다. 이에 대하여 맹자는 이윤과 같은 현명한 판단에 근거한다면 왕을 그렇게 다루는 것을 시인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함부러 허용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 사실을 두고 맹자도 결국 극악의 상태가 아니라면 역성혁명을 적극적으로 바란 것은 아니라고 해석한다.
천명은 하늘이 준 통치력 혹은 지배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도덕적 바탕을 의미한다.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자의 관계는 도덕적 관계이다. 맹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만약에 임금이 신하를 자기의 손발처럼 여겨서 사람하면 신하도 임금을 자기의 배와 가습처럼 아낄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임금이 신하를 개와 말 같이 대하고 마구 부리기만 하면 신하도 임금을 평범한 인간으로 대할 것이다. 더욱이 만약 임금이 신하를 초개(草芥)같이 여기고 함부러 짓밟으면 신하도 임금을 도덕이나 원수같이 여기고 증오할 것이다.’
맹자에 있어서 도덕성은 모든 것의 위에 놓인다. 맹자가 언급한 ‘군자의 삼락’(君子之三樂)에는 왕노릇하는 것이 거기에 들지 못한다. ‘부모가 모두 생존해 있고 형제들이 모두 무고한 것, 그것이 첫째의 즐거움이다. 우러러 보아 하늘에 부끄러움이 없는 것, 그것이 둘째의 즐거움이다. 천하의 영재들을 얻어서 그들을 교육하는 것, 그것이 세째의 즐거움이다. 군자에게는 이 세 가지 즐거움이 있으나 천하에 왕노릇하는 것만은 거기에 들지 않는다.’ (진심 상 삼락장) 군자의 도덕성은 왕위보다도 귀한 것이며, 왕위 그 자체도 민중의 삶의 질과 나라의 정사보다 귀하게 여길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정치란 천명을 실천하는 것이며, 천명은 인간의 마음 속에 하늘이 부여한 성품, 즉 도덕적 성품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것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왕에 부여된 정치적 임무이기 때문이다. 맹자에게 있어서 하늘은 도덕적인 하늘이다.(풍우란 106) 인간은 하늘을 앎으로써 천민(天民)이 될 수 있다. 하늘을 안다는 것은 ‘천작’(天爵), 즉 하늘의 벼슬을 얻는 것이다. ‘인의충신(仁義忠信) 등의 선을 즐겨 실천하고 싫증내지 않는 것은 하늘의 벼슬을 받은 것이오, 공경대부(公卿大夫) 등은 인간이 준 벼슬이다.’(고자 상 천작장) 천작을 얻는 길은 다른 일이 아니라 나에게 본래 갖추어져 있는 만물의 이치를 스스로 통찰해 보고 성실히 행하는 것 이상의 어떤 것도 아니다.(진심상 만물장)
그러면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한 실제적인 정책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 맹자는 ‘항산’(恒産)과 ‘항심’(恒心)의 원칙을 제시하였다. 일정한 경제적 바탕을 갖추는 것을 ‘항산’이라고 하고 일정한 정신적 안정을 기하는 것을 ‘항심’이라고 한다. ‘항산이 있으면 항심이 있게 마련이지만 항상이 없으면 항심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등문공 상 위국장) 항산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무농(務農), 즉 농사에 전력할 수 있게 하는 것이며, 항심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거학(擧學), 즉 교육을 진흥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맹자의 ‘귀족주의’(貴族主義)가 노출된다. 무농이라고 해서 나라의 모든 인민이 농업에 종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거학이라고 해서 모든 인민이 교육을 받는다는 말이 아이다. 농업에 종사하는 것은 소인(小人) 혹은 야인 (野人)의 일이며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은 군자 혹은 대인(大人)의 일이다.
‘대인’과 ‘소인’, 혹은 ‘군자’와 ‘야인’의 구분은 사회적 계급의 구분을 나타내는 말이지만, 공자는 그 구분을 도덕적 품위의 구분으로 사용하였다. 맹자도 대인과 소인은 큰 몸 즉 마음을 쓰는 사람과 작은 몸 즉 육체를 쓰는 사람으로 구분할 때 그것은 도덕적 품위의 구분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든지 마음을 쓰서 선성을 계발하면 군자가 될 수 있고 그렇지 못하여 육신의 욕정에만 매이면 소인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맹자는 한 편으로 모든 사람은 선성을 확충하거나 회복하면서 군자가 될 수 있다고 하면서, 동시에 다른 한 편으로 군자가 아닌 소인들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말하고 있는 셈이다. 마음을 쓰는 사람(勞心者)을 육체적 힘을 쓰는 사람들(勞力者)이 양식을 공급해야 한다는 것은 ‘천하의 통의(通義)’라고 하였다.(등문공 상 신농장) 이러한 사회적 기능의 분담은 옛 「좌전」(左傳)에 ‘군자는 마음을 쓰고 소인은 힘을 쓰는 것, 이러한 전통은 옛 임금 때부터 내려 오는 제도이다’라는 말에서 표현되어 있기도 하다. 토지제도상으로도 정전제(井田制) 아래서 노심자 계급을 위한 공전(公田)을 먼저 가꾸고 그것이 끝난 후에야 사전(私田)을 돌보는 것으로 되어 있다.(등문공 상 위국장) 그리고 학교를 세워서 교육을 하는 것도 인륜을 밝히기 위한 것이나 ‘군자의 삼락’에서 언급되었듯이 천하의 영재를 모아서 가르치는 것이다. 즉, 엘리티즘의 국면을 보여 주고 있다.
이와 같이 노심자가 노력자의 부양을 받을 수 있는 근거는 바로 그의 도덕주의적 논거에 있다. 공손추가 옛 「시경」(詩經)에 ‘일하지 않고서 먹어서는 아니된다’고 하였는데 군자가 농사를 짓지 않고서도 살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고 물었을 때 맹자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군자가 나라에 살고 있으므로 임금이 그를 등용하여 안부존영(安富尊榮)을 기할 수 있고, 그 나라의 젊은이들이 군자를 따라서 배우면 효제충신(孝弟忠信)을 지키게 된다. 그러니 군자는 거저 녹을 먹는 것이 결코 아니다.’(진심상 시왈장)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유인은 생산에 종사하지 않고 여가를 누리면서 학문에 종사하여 한다고 생각하였던 것과 거의 유사한 사고의 경향이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는 귀족계급 자체의 행복한 삶을 위한 것이었고 맹자의 경우는 사회적 기능의 분담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서민은 인간의 이성적 활동을 할 수 없고 맹자늬 소인은 선성을 계발할 수 없다는 점에서 마찬가지이다.
❹ 맹자와 순자
공자의 유가사상은 두 갈래로 나뉘어 발전하였다. 그 하나는 증자(曾子)가 이끌어 맹자로 이어지는 학파이고 다른 하나는 자하(子夏)가 이끌어 순자(荀子)로 이어지는 학파이다. 증자와 맹자의 계틍은 주로 인의(仁義)를 중심으로 하여 하나의 일관된 체제를 발전시킨데 비하여 자하와 순자의 계통은 예의(禮義)를 중시하여 실천적 원리의 체제를 발전시켰다. 순자(기원전 322 - 234)는 맹자의 뒤에 태어난 사람으로 직하문(稷下門)에서 활동하던 전국시대(戰國時代)의 학자였다. 순자의 사상은 맹자의 성선설에 대립되는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하여 후대, 특히 송(宋) 나라의 유학자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비록 인간의 본성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맹자와는 성선설과 성악설의 차이를 보이기는 하지만, 교육의 과제는 다같이 선성을 기르는 것이라는 점에서 마찬가이다. 맹자는 선한 성품의 회복을 교육적 과제로 삼았으나, 순자는 악한 성품의 개조를 교육적 과제로 삼았다. 맹자는 도덕성의 선천성을 주장한 셈이지만, 순자는 도덕성의 사회성을 제시하였다. 순자는 착한 인간은 선천적 본성의 회복에 있는 것이 아니라 후륭한 관습과 제도가 사람을 착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맹자는 천도(天道)와 천심(天心)을 중시하였으나, 순자는 인도와 인심을 중시하였다. 순자의 도는 천지의 도(天地之道)가 아니라 사람이 지켜야 할 도(人之所道)이다. ‘도는 하늘의 도도 아니고 땅의 도도 아니다. 사람이 도로 삼아서 행하는 것이며 군자가 행하는 바 그것이 도다’(儒效篇) 순자의 이론에서는 신비주의적인 요소가 없다. 그는 성인(聖人)이라면 하늘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군자는 자기 자신 안에 있는 것을 공경하는 것이지 하늘에 있는 것을 따르지 않는다. 소인은 자기 자신 안에 있는 것을 놓아 두고 하늘에 있는 것을 따른다. 그러므로 군자는 날마다 진보하나 소인은 날마다 퇴보할 수밖에 없다.’(天論篇)
순자에 의하면, 인간의 본성은 모든 것의 근본이요, 처음이요, 아무 것도 손대지 않은 소박한 그대로를 말한다. 만약 인간에게 본성이라는 것이 없으면 인위적인 노력으로 더 할 것이 없고 또한 인위적인 노력이 없다면 인간의 본성은 아름다와질 수가 없다.(禮論篇) 순자에게 있어서 본성은 악한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인간의 본성은 악한 것인데 이것을 착한 것이라고 하는 것은 인위적인 것(僞)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제 사람의 본성을 보면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이익을 좋아하고 그것을 그대로 따르기 때문에 자연히 다른 사람과 싸워서 빼앗으며는 마음이 생기고 사양하는 마음이 없어지는 것이다. 또 사람은 나면서부터 아름다운 소리와 색을 좋아하는 이목(耳目)의 욕망이 있어서 이것을 그대로 따르기 때문에 자연히 음란한 행실이 생기게 되고 동시에 예의와 조리가 없어지는 법이다.(性惡篇)
그러면 인간은 어떻게 도덕적으로 착하게 될 수 있는가? 인간의 본성이 본래 악한 것이므로 그대로는 세상의 혼란을 가져 올 수밖에 없기 때문에 옛 성왕(聖王)은 예(禮)를 제정하여 모두 지키게 하였다. 인간의 악한 본성은 반드시 스승과 법도가 있기 때문에 바로 잡히고 예가 있기 때문에 다스려진다. 예는 바로 인위적으로 본성을 바른 기준에 의해서 바로 잡은 것이며, 그것은 사회적 산물이다. 유가에 있어서 예는, 앞서 공자를 논할 때 이미 언급했듯이, 매우 광범한 뜻을 지니고 있다. 예는 예의(禮儀), 의식(儀式), 제도(制度), 관습(慣習) 등을 포괄하는 것이다. ‘예라는 것은 한 마디로 말해서 사람의 욕망을 알맞게 길러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먹줄은 직선의 최고 표준이고, 저울은 공평의 최고 표준이며, 그림쇠는 방형(方型)과 원형(圓型)의 최고 표준이며, 예는 인도의 최고 극치이다.’ 그리고 ‘예는 긴 것은 끊어 주고, 짧은 것은 이어 주고, 넘치는 것은 덜어 주고, 모자라는 것은 보태 주는 것이다.’(예론편)
순자는 예의의 수양이 있느냐 없느냐로써 군자와 소인을 구별하였다. 수양은 곧 도(道)를 아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마음이 어떻게 도를 알 수 있는가? ‘대청명’(大淸明)의 원리가 있다. 즉, 마음을 비우고 하나로 가다듬어서 고요하게 한다는 것이다. 순자도 맹자와 같이 마음이 육체보다 크고 높은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마음은 육체의 왕이며 신통하고 영묘한 주체로서 명령을 내리되 외부로부터 명령을 받는 일이 없다’고 하였다.(解弊篇) 그러나 수양은 사색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군자가 되는 길은 사색에만 잠기는 것보다 배워서 실천으로 옮겨져야 한다. ‘군자의 학문은 귀에 들어가 마음에 붙고 몸에 퍼져서 행동으로 나타난다.’ ‘듣지 않음은 들음만 못하고 들음은 보는 것만 못하고 보는 것은 아는 것만 같지 않고 아는 것은 행함만 못하다. ... 성인은 인의에 근거하고 시비를 바로 하며 언행을 같게 하여 조금고 어긋남이 없으며 딴 길이 없고 오직그것을 행할 뿐이다.’(유효편) 마음은 도를 알지만 몸에 의한 실천이 따라야 한다.
마음의 작용으로 생각하고 깨닫는 과정이 있고 환경과의 관계에서 예에 따른 좋은 습관을 길러야 선의 경지에 나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수양을 위한 학문은 범인(凡人)으로부터 선비, 군자, 성인의 경지로 나아가는 데 그 목적이 있으며, 이러한 학문은 「詩書」의 경전을 외우는 데서 시작하여 최고 표준이 되는 「예기」(禮記)를 정독하여 몸소 실천하는 데서 완성되는 것이다. 어진 스승의 지도를 받고 예의를 실천하며 마음을 하나로 가다듬어 통일하고 덕성의 조리를 몸에 익히면 자연히 완벽한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순자는 또한 완전한 예는 마치 훌륭한 음악이 천지와 동화하는 것과 같이 천지와 조화를 이룬다고 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음악은 덕성의 교육을 위하여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는 음악을 예찬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음악은 대체로 즐겁다. 인간의 감정으로서는 반드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음악이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음악이 없을 수 없다. 즐거우면 반드시 소리로 나타내고 행동으로 표현된다. 사람으로서 즐거움이 없을 수 없다면 반드시 겉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겉으로 표현된 것이 도에 맞지 아니하면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옛 성왕은 그 혼란을 싫어하여 아송(雅頌)의 음악을 제정하여 길잡이로 하고 그리로 하여금 족히 즐겁도록 하되 함부러 이탈하지 않게 하였다. 가사의 뜻은 충분히 또렷하면서도 끊이지 않게 하였다. 그 소리는 굽기도 하고 곧기도 하며, 복잡하기도 하고 단순하기도 하며, 날카롭기도 하고 부드럽기도 하며, 꺾이기도 하고 이어지기도 하여 충분히 사람의 마음이 착하도록 감동을 줄 것이며, 사악하고 더러운 기운이 닫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 ······ 그러므로 음악이라는 것은 사람을 다스리는 데 탁월한 방법이 될 수 있다.(樂論篇)
성선설을 주장한 맹자와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가 결과적으로 다른 점이 무엇인가? 맹자는 인간의 악한 성품이나 행동은 본연의 것이 아니라 마음의 본성이 흐려지고 양지(良知)와 양능(良能)이 마비된 현상으로 본 데 비하여, 순자는 악한 성품과 행동 그대로가 인간의 본성으로 보고 성인의 경지는 그러한 본성을 다듬어 예(禮)을 실천한 결과라고 보았다. 맹자는 악한 것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본연으로 되돌아 감을 의미하였고, 순자는 인간이 선을 행하는 것은 관습과 제도로써 인간의 마음을 바로 잡은 것을 의미하였다. 설명의 방식이 다를 뿐이지 수양과 학문의 원리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인간의 근본적 본성에 대한 차이는 인간으로서의 도덕적 존엄성을 평가는 데 중요한 차이를 나타낸다. 맹자는 본연의 인간에 대하여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데 비하여 순자는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순자는 관습과 제도가 지닌 도덕적 질서와 의미를 높게 평가함으로써 문화의 가치를 긍정적으로 낙관적으로 수용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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