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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새에 관한 명상 / 해설/ 김원일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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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점 정리

작가 : 김원일

갈래 : 중편 소설, 생태 소설

성격 : 사실적, 비판적, 생태학적

배경 : 현대 사회의 한 가정과 도요새가 서식하는 1970년대의 동진강 유역.

시점 : 시점이 다양하게 이동됨.(1인칭 주인공 시점, 3인칭 전지적 시점) - 이 작품은 가족들의 이야기를 제각각의 시점으로 서술하고 있다. 처음에는 병식의 눈으로, 둘째는 병국, 셋째는 아버지, 그리고 끝으로 작가가 직접 개입하여 서로 이질적인 인물들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객관적인 시선으로 묘사하고 있다.

서로 다른 화자의 입장

모두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 부분에서 서로 다른 네 명의 화자가 등장함.

첫 번째 부분 : 병식

두 번째 부분 : 병국

세 번째 부분 :

마지막 부분 : 3인칭 전지적 화자가 서술자로 각각 등장함.

병식은 철새를 독살하여 돈벌이의 수단으로, 병국은 이상, 지켜야 할 생명으로, 아버지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매개체로 아들 병국을 이해하고 지지한다.

구성 :

1 부 : 병식의 시각 - 나는 강 언덕에 서 갈매기들을 바라본다. 그 갈매기처럼 자유인이고 싶어 하는 형을 떠올린다. 형은 한때 가족과 친지들의 촉망을 받았으나, 지금은 낙백(落魄)한 지성(知性)일뿐. 공해 문제에 미쳐 있지만, 내가 보기에 형은 지나친 이상주의 자에 불과하다. 그는 결국 실패할 것이다. 나는 ‘족제비’ 를 생각한다. 그 녀석은 돈벌이를 하자며 도요새를 잡아다 팔자고 했다. 녀석의 철저한 실속주의는 나를 늘 감동시킨다. 어머니는 어떤 여자인가. 부동산 투기로 일확천금을 꿈꾸지만 제대로 되지 않고, 게다가 자식에게 걸었던 기대마저 무너지자 형과 나를 극도로 미워하는 안타까운 여자. 그렇다면 아버지는 돋보기 너머로 구 인 광고란을 들여다보는 게 취미인, 의식은 있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부친. ‘족제비 네 집에나 갈까. 박제품이나 만들어야지. 나는 참 쉽게 결정을 내린다.

 

2 부 : 병국의 시각 - 가을이다. 철새가 몰려드는 계절이다. 도요새는 자유의 상징이며, 내 유일한 꿈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보호되어야 한다. 나는 동진강 오염 실태를 조사하고 진정서를 내기도 했지만, 공장주들의 끈질긴 방해만 받아 왔다. 게다가, 철새를 박제 상에게 팔아넘기는 무리 중에 병식이 가 끼어 있다니. 나는 그 녀석을 타이르지만 내말을 들을 리가 없다. 차라리 나는 새가 되고 싶다. 인간이고 싶어하는 새가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새와 나를 바꾸고 싶다. 새 중에서도 툰드라가 고향인 도요새가 되고 싶다.

 

3 부 : 아버지의 시각 - 아내는 외출복으로 갈아입더니 차비에나 쓰라며 내게 동전 두개를 던진다. 스물다섯 해나 이 여편네와 살았다고 생각하니 한숨이 나온다. 무식한 수완가인 아내는 나와 큰애를 무능력자로 제쳐놓는다. 얼마 전 ‘육이오 전 강원도 홍천군 두백리에 살았던 분을 찾습니다.’란 신문 광고를 보고 나는 외마디 고함을 질렀다. 거기는 내 약혼녀가 있는 고향이었으니까. 그 때 아내는 나를 윽박질렀다. 그러나 큰애는 나를 이해했는지 편지를 띄워 보라고 했다. 나는 서둘러 편지를 썼고, 연락이 닿았고, 한사나이가 방문했고, 나는 수사 기관에 끌려갔다! 통천군 두백리에서 피난 온 고 향 사람이 남파 간첩과 접선이 되어 구속된 사건에 참고인으로 끌려갔던 것이다. 분단의 비극은 그 꼬리가 길다.

 

4 부 : 전지적 작가의 시각 - 박제사 이 씨는 익숙한 솜씨로 박제를 만들고 있었다. ‘족제비는 18, 000원을 받아 그 중 8, 000원을 병식에게 넘겨주었다. 그 날 저녁 병국은 버스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그 때 수백 마리의 도요새가 날아올랐다. 그 중 한 마리가 무리에서 낙오되더니 바다로 떨어졌다. 병국은 바닷가에 섰다. ‘도요새야, 너는 동진강 하구를 떠나 어디에 새로운 도래지를 개척했느냐?’ 도요새 무리는 그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제재 : 낙동강 공사 이후의 동진강 오염과 이를 둘러싼 인물들 간의 갈등

주제 : 타락한 삶에 대한 비판과 순수한 인간성 회복. / 민족의 역사적 비극과 산업화로 인한 공해 문제 / 비극적 역사 현실과 산업화의 폐해로 훼손된 인간성 회복

 

특징 :

산업화로 인한 환경 문제에 대해 선구적으로 문제를 제기함.

인물의 태도를 대비적으로 제시하고 상이한 화자들을 동원함으로써, 산업화 시대에 맞물린 정치적·사회적 문제들을 입체적으로 형상화함.

③ 분단의 문제를 실향민의 개별화된 문제가 아닌, 생명 회복의 차원으로 승화시킴.

④ 가족들의 이야기를 제각각의 시점으로 서술하고 있다.

 

인물 :

아버지

실향민이면서 무능력한 소시민. 한국 전쟁 때 인민군으로 참전하여 포로가 되었다가 국군으로 전향함. 그 후 부상을 입고 대위로 예편해 학교 서무 과장을 지내면서 아내의 강요에 못 이겨 공금을 유용하다가 실직하게 됨. 소극적이고 이상적인 성격으로, 고향을 그리워하며 현재의 삶에 애착을 느끼지 못함. 도요새는 북에 있는 고향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을 나타내는 대상임.

실천적이지 못한 소극적 가장. 진실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 / 나(병국의 아버지):동진강은 독물이 되어 버려 머지않아 새 떼가 자취를 감출 것이라고 한다. ‘나’에게 새는 고향이며 진정으로 살아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는 존재이다. 새 떼가 자취를 감춘다는 것은 진정으로 살아 있는 시간을 잃게 되는 것과 같다. 그런 점에서 동진강 하구의 오염을 매우 심각하고 절실하게 인식하고 있는 인물이다.

어머니

적극적이고 생활력이 강한 여성. 돈에 대한 욕심으로 남편에게 공금 횡령을 강요하다가 남편을 학교에서 쫓겨나게 함. 물질적 삶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인물

병국

장남. 가족과 주변의 기대를 한몸에 받던 수재이나 시국에 연루되어 제적당한 뒤 낙향하여 현실보다는 이상을 추구하며 사는 행동적이고 적극적인 인물. 도요새를 자신과 동일시하고 절대의 상징으로 여기며 도요새처럼 모든 구속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고 싶어 함. / 데모로 대학에서 제적된 수재(秀才). 도요새를 절대 자유의 상징으로 여기고 보호하려고 노력함. / 오염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인물이다. 시급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병식

차남. 재수생으로 고고장이나 찾아다니며 나날을 보내는 충동적이고 방종한 인물. 병식에게 새는 단지 돈벌이의 수단으로, 금전적․상품적 가치만을 지님. 이기적이며 타산적인 인물 / 재수생. 냉소적이며 이기적인 인물. 도요새를 밀렵하여 박제상(剝製商)에게 판다.

 

파견 대장

안보 이데올로기 강조 / 안보와 경제 성장이 환경 문제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점에서 노무과장처럼 환경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부족한 인물이다.

노무 과장

노무과장:경제 성장이 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고 환경오염으로 인한 문제는 사람이 죽고 사는 일이 아니라 한갓 새나 짐승이 죽는 하찮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중심적 가치관과 환경보다 산업 발전을 중시하는 성장 우선주의적 가치관의 소유자

 

줄거리 : ‘도요새에 관한 명상’은 우리 시대의 어떤 삶의 유형을 대변하는 네 명의 가족이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아버지는 의식은 있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무능함을 보여 주는 소극적 인물이다. 그는 월남민으로서 고생 끝에 안정된 직장을 갖는다. 그러나 아내의 강요로 공금을 유용하다가 직장을 잃게 되어 경제적 능력이 없어지자 결국 가정에서의 위치조차도 흔들려 무능한 인간이 되고 만다. 하지만 그러한 환경 속에서도 올바른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어머니는 물질적 풍요를 최대의 가치로 삼고 사는 인물로서, 부동산 투기 등을 통해 일확천금을 꿈꾸지만 제대로 되지 않고 자식에게 걸었던 기대마저도 깨어지게 되자 그 자식을 극도로 증오한다.

 

 큰아들 병국은 서울의 일류 대학에 다니던 촉망받는 인재였으나, 시국 사건에 관련되어 대학에서 데모를 하다가 제적된 수재이다. 그는 올바른 의식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고 싶어 하지만 현실적인 여러 가지 제약 때문에 시련을 겪지만 낙향해서 환경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조류와 동진강의 오염을 해결하기 위해 젊음을 불태운다.

 

 동생 병식은 재수생으로서 선악의 분별에 대한 의식도 없이 시대의 흐름에 적당히 편승해 가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가족들에게조차도 부정적이고 냉소적이다.

 

 하지만, 병국은 도요새를 노리는 밀렵꾼의 행태, 새들이 집단으로 죽어가는 원인과 동진강의 오염 상태 등을 추적하다가 군인들에게 붙잡혔다가 풀려난 병국은 새들의 죽음에 병식이 관련되었다는 단서를 잡고 병식을 추궁한다. 그러나 병식은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못하면서 그런 문제에 열중하는 형을 경멸하고 무시한다. 병국은 언젠가는 자신의 힘으로 동진강을 예전처럼 철새의 낙원으로 살리리라고 결심한다.

 

갈등 관계

 

 이러한 네 인물들은 곧 우리 사회에서 흔히 찾을 수 있는 삶의 유형들로서 서로 갈등하며 살아가게 된다. 여기에서 가장 큰 갈등 구조로 드러나는 것이 형 병국과 동생 병식의 갈등이다. 그것은 이들 사이에서 사건의 계기가 되는 도요새에 대한 갈등으로 구체화된다. 동생 병식은 도요새를 잡아다 팔아서 경제적 이익을 얻으려 하고, 형 병국은 그 새를 보호하려고 한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갈등은 필연적으로 수반되고 있다.

 

 도요새는 자유의 갈등이다. 형 병국에게 있어 도요새는 이러한 자유의 의미를 지니지만, 동생 병식에게 있어 도요새는 하나의 경제적 이익으로 비쳐진다. 병식에 있어서 자유라고 하는 절대 가치는 무의미하다. 이렇게 절대 가치를 포기한 인물에게 있어서는 선악의 관념이 있을 수 없으므로 사회에 대해서는 냉소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동생과 형의 내면세계는 결코 화해할 수 없는 평행선으로, 결국 갈등 속에 끝날 수밖에 없다. 병국은 개인적으로 동진강의 오염 실태를 조사하고 진정서를 내기도 했지만 공장주들의 끈질긴 방해를 받는다. 뿐만 아니라 동진강에 날아드는 철새들을 약으로 밀렵하여 박제상에 팔아넘기는 무리 중에 동생 병식이 끼어 있음을 알고 못하게 말렸지만 그것조차도 실패로 돌아간다.

 

 현대 사회는 현실적인 이익을 위해서 또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는 개인의 올바른 행위를 용납하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이익과 상충이 될 때에는 선(善)보다는 이익을 위해 악(惡)을 택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자유의 문제와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그것은 물질적 풍요를 위해서는 인간다운 삶이나 자유와 같은 절대 가치까지도 쉽사리 포기해 버리는 현대인들의 몰가치적 삶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현실적 물질적 이익의 추구를 위해 포기한, 절대 가치가 부재하는 사회는 그 어떠한 수준의 물질적 풍요로움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건전한 사회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의 양식으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이러한 병폐를 비판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내용 연구

 

도요새[아버지와 병국 사이에 존재하는 정신적 유대감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으며, 이 ‘도요새’는 아버지에게는 고향을, 병국에게는 정신적 자유를 상징하며, 이 ‘도요새’는 이들의 정신적 상처를 치유해 주는 역할을 한다.] 무리를 동진강 삼각주[강이 바다로 들어가는 어귀에, 강물이 운반하여 온 모래나 흙이 쌓여 이루어진 편평한 지형.]에서 발견했을 때, 나[아버지의 시점]는 마치 헤어진 부모와 동기간과 약혼녀를 만난 듯 반가웠다[아버지는 북에 가족을 두고 온 실향민]. 너희들이 휴전선 위 통천을 거쳐 여기로 날아왔으려니, 하고 대답 없는 물음을 던지면 울컥 사무쳐 오는 향수가 내 심사를 못 견디게 긁어 놓았다. 가져온 술병을 기울이며 나는 새 떼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고향에 대한 그리움]. 내가 말하고 내가 새가 되어 대답하는 그런 대화를 아무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새가 고향 땅 부모님이 되고, 형제가 되고, 어떤 때는 약혼자가 되어 내게 들려주던 그 많은 이야기를 나는 기쁨에 들떠, 때때로 설움에 젖어 화답하는 그 시간만이 내게는 살아 있는 진정한 시간이었다.[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과거를 그리워하고 있음]세월의 부침 속에 고향에 대한 내 향수도 차츰 식어갔다. 이제 새 떼가 부쩍 줄어든 동진강 하구도 내 인생과 함께 황혼을 맞고 있었다. 동진강이 악취 풍기는 폐수로 변해 버렸기 때문이었다.[도요새에 관한 ‘나’의 명상 : 실향민인 ‘나’는 도요새를 보며 가족, 약혼자, 떠나온 고향을 생각하며 향수를 달랬다. 고향 땅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철새는 나에게 고향에서 온 새였다. ‘나’는 도요새를 보며 고향을 생각하는 시간이 살아 있는 진정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진강이 오염되어 도요새의 자취가 사라지면서 ‘나’의 향수도 식어 간다. / 김광섭, ‘성북동 비들기’를 연상시킴] 지금 보는 바다 역시 헤엄쳐 북상하면 며칠 내 고향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던 거리가 까마득히 멀어 보였다. 철새나 나그네새[새는 자유로운 존재, 자유로운 삶 ↔ ‘나’는 속박된 삶]는 휴전선을 넘어 자유로이 왕래하건만 나는 그곳으로 갈 수 없다는 안타까움만 해가 갈수록 내 이마에 깊은 주름을 새겼다[깊은 시름과 근심에 빠짐]. - 도요새는 나에게 부모가 되기도 하고, 형제가 되기도 하며 때로는 약혼자가 되기도 한다. 계절이 바뀌면 날아드는 철새인 도요새는 막힘없이 고향인 북녘 땅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기에 나에게 ‘고향’이기도 하다.

 

 

 

 

이해와 감상

 

 이 작품에는 동진강을 배경으로 한 가족이 등장한다. 실향민으로 상이군인이기도 한 ‘나’(아버지)는 아내 때문에 직장을 잃게 된 후 경제적 능력이 없어지자 가족 내에서 무기력한 가장이 된다. 이에 반해 물질적 풍요를 우선시하는 아내는 생활력 강한 인물이다. 재수생인 병식은 도요새를 음독시켜 박제사에게 팔아 용돈 벌이를 한다. 큰 아들 병국은 대학에서 데모를 하다 제적당하고 고향인 동진강으로 돌아와 어머니의 냉대 속에 무기력한 생활을 한다. 이들 가족에게 도요새는 각기 다른 의미를 갖는다. 도요새의 비상은 ‘나’에게는 갈 수 없는 고향을 왕래하기에 고향을 전해 주는 매개체이고, 병국에게는 자유로운 비상을 꿈꾸는 ‘자유’를, 병식에게는 ‘일탈’을 의미한다.

 

동진강 하구의 오염이나 도요새의 멸종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병국과 ‘나’, 두 인물에 반해 동진강 하구의 오염에 대해 단순히 용돈 벌이로만 인식하는 병식이나 경제 성장과 안보에 비하면 하찮은 문제라고 인식하는 윤 소령과 노무과장, 이러한 갈등 구조와 무관하게 물질적 풍요만을 우선시하는 생활력 강한 어머니의 존재는 환경오염 문제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형상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환경오염 문제가 인간의 삶과 직결된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는 시각, 환경보다는 개발과 성장이 우선이라는 생각을 하거나 환경의 문제에 대해 아예 무관심한 시각을 형상화한 것이다.

 

 

심화 자료

 

도요새에 관한 명상

 

 한국 현대 소설에 있어서 환경 문제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다룬 작품으로 기억되는 것은 김원일의 “도요새에 관한 명상”이다. 이 작품은 1979년에 발표되었다. 1962년 제3공화국이 들어선 이후, ‘잘 살아 보자’라는 절대적 기치 아래 강행된 경제 개발과 산업 근대화는 우리의 삶을 여러 가지 면에서 크게 바꾸어 놓았다. 70년대에 들어와 무리한 산업화의 부작용에 대한 사회적 저항이 확산되었는데, 그것은 주로 성장에서 소외된 계층에 대한 억압과 착취 그리고 정치적 부정에 대한 저항이었다. 산업화가 환경을 어떻게 황폐화시키고 있는가에 대한 관심은 비교적 적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당시의 여러 가지 정황이 환경을 문제 삼을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또 환경의 훼손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가에 대한 인식이 얕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또 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환경의 훼손은 일부 특정 지역의 문제였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도요새에 관한 명상”은 신흥 공업 단지가 우리의 삶과 환경을 어떻게 파괴하는가에 주목하면서 환경 문제에 대한 선구적 문제의식을 보여 준다. (중략)

 

“도요새에 관한 명상”은 환경 오염을 사실적 묘사와 보고로 문제 삼으면서, 궁극적으로 우리 삶의 황폐를 이야기한다. 이 소설은 세 사람의 중심인물이 등장한다. 월남 피난민이요 6·25전쟁의 상이용사인 아버지의 두 아들이 그들이다. (중략) 둘째 아들 병식은 현재 재수생이다. 그는 입시 공부를 한다는 핑계로 독서실에서 생활하지만, 공부보다는 노는 일에 더 열중한다. 그리고 윤리 감각이 거의 없는 인물이다. 길을 가다가 여공들이 억울한 일을 당한 이야기를 엿들어도 병식은 여공들의 젖가슴에만 관심을 보이며, 철새를 밀렵하는 것을 비난하는 형을 오히려 비난하고, 아버지의 공통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그의 여러 가지 언행으로 미루어 그는 윤리적 백치에 가까우며, 성격이 비뚤어진 인물이다. 형인 병국은 그러한 아우와는 상반된 인물이다. 병국은 아주 우수한 학생으로 서울의 유명 대학에 다녔으나 반정부 데모를 하다가 제적된 후, 고향에 내려와 할 일을 찾지 못하다가 고향의 철새들이 점점 없어지는 것을 보고 환경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인물이다. 그는 고향의 철새 떼들과 그 터전인 동남만 일대를 사랑하였으나, 공장의 폐수로 그것들이 죽고 오염되는 것에 대해서 깊은 아픔과 분노를 느낀다. 한편 이들의 아버지는 월남 피난민인데 실향의 아픔으로 삶의 의욕을 갖지 못하는 선한 인물이다. 그는 아내의 돈 문제로 실직을 한 후 거의 폐인처럼 살아간다.

 

이러한 아버지와 두 아들 그리고 생존에만 악착스러운 어머니가 한 가족을 이루는데, 위의 언급에서 이미 짐작되는 바, 이들은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지 못하고 가족적 유대감도 전혀 없다. 이들 가족의 삶을 통하여 작가가 암시하는 것은, 우선 인간성의 황폐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아들 병식은 정신의 황폐를 보여 주고, 아버지와 병국 또한 그 삶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황폐한 모습을 보여 준다. 아버지의 황폐는 분단의 역사로부터 비롯된 것이고, 병국의 황폐는 독재 정권의 억압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병식의 황폐는 그러한 역사와 정치 상황 속에서 정상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작가는 이처럼 우리 현대사의 모순이 한 가정을 어떻게 파괴시켜 놓았는가를 주목하면서, 여기에 대위적으로 공업 단지가 동진강 하구를 어떻게 파괴시켜 놓았는가를 이야기한다. 즉 비극적 분단 역사와 부정적 정치권력이 삶을 황폐화시키는 오염원이라는 이야기와 공업 단지가 아름다운 철새 도래지를 황폐화시키는 오염원이라는 이야기를 중첩해 두고 있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이야기는 알레고리적 관계에 있다고 이해될 수도 있다. 선한 심성을 지닌 아버지와 병국은 마치 아름답고 귀한 새처럼 오염으로 생명을 잃어 가고, 그 대신 병식이나 그의 친구들 또는 어머니와 같은 사람들은 마치 공해에 강한 징그러운 벌레들처럼 기승을 부리는 것이다. 즉 잘못된 역사와 부당한 정치가 우리의 삶을 마치 동진강 하구처럼 오염시켰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보다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점은, 역사나 정치 상황의 오염과 환경의 오염이 동전의 양면처럼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잘못된 역사나 정치 상황을 이끌어 가는 세력들과 환경을 오염시키는 세력들이 동일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보다는 바람직한 삶에 대한 감각과 올바른 가치에 대한 기준이 상실되었을 때, 우리의 삶과 그 터전은 전반적으로 황폐화되며 나아가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정치 윤리와 환경 윤리와 개인적 도덕이 별개의 것이 아니며, 그것들은 보다 심층적인 연관성 속에 있음을 말한다. “도요새에 관한 명상”은 환경 오염의 심각성을 환기시켜 주는 작품이다. 그러나 단순히 환경 고발 차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전반적인 황폐를 문제 삼으면서, 역사나 정치의 황폐 그리고 환경의 황폐 또 인간성의 황폐가 결국 한 가지 황폐의 다른 모습임을 강조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런 점에서 “도요새에 관한 명상”은 선구적인 환경 소설이면서도 환경과 삶의 황폐에 대한 복합적인 사유를 보여 줌으로써 앞으로의 환경 소설에 좋은 모범을 보여 주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이남호, ‘문학은 녹색이다’, “녹색을 위한 문학”(민음사, 1998)

 

 

생태주의 문학

 

 배리 코모너는 생태주의의 원칙을 다음 네 가지로 밝힌다. 첫째, 모든 생물은 다른 모든 생물과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 둘째, 모든 것은 어딘가로 자리를 옮길 뿐 이 세계에서 없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셋째, 자연이 좀 더 잘 알고 있다. 넷째,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서 얻어지는 것은 없다. 이러한 생태주의적 관점에 닿아 있는 문학 작품을 우리는 생태주의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 생각해 볼 문제

1. 동진강 하구의 오염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각 인물들의 생각을 정리해 보자.

나(병국의 아버지):동진강은 독물이 되어 버려 머지않아 새 떼가 자취를 감출 것이라고 한다. ‘나’에게 새는 고향이며 진정으로 살아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는 존재이다. 새 떼가 자취를 감춘다는 것은 진정으로 살아 있는 시간을 잃게 되는 것과 같다. 그런 점에서 동진강 하구의 오염을 매우 심각하고 절실하게 인식하고 있는 인물이다.

병국:오염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인물이다. 시급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노무과장:경제 성장이 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고 환경 오염으로 인한 문제는 사람이 죽고 사는 일이 아니라 한갓 새나 짐승이 죽는 하찮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윤 소령:안보와 경제 성장이 환경 문제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점에서 노무과장처럼 환경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부족한 인물이다.

 

2. 병국에게 ‘도요새’가 상징하는 바는 무엇인지 말해 보자.

➡ 도요새는 자유로움을 찾아 비상하는 존재로 자유인이 되고자 하는 병국의 꿈을 의미한다. 하지만 낙오하는 도요새의 모습은 현재의 무력한 자신의 모습과 동일시된다.

 

3. 이 작품을 생태주의 문학이라고 볼 수 있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자.

➡ 실향민인 아버지에게 도요새는 새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나’(아버지)는 첫말을 약간씩 더듬는 불완전함과 가장의 권위를 잃은 무력한 모습 등에서 자연과 인간이 깊이 연결되어 있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새와 함께 하는 동안 진정 살아 있음을 느낀 나(아버지)는 새가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면서 향수도 잊어 가기 시작한다. 단순히 환경이 오염되었다는 문제를 고발하는 차원이 아니라 환경 오염의 문제를 인간의 삶과 깊은 연관 속에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생태주의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4. ‘나(아버지)’는 동진읍에 와서 도요새를 만났을 때 가족을 만난 듯 반가웠다고 한다. ‘나’에게 도요새는 어떤 의미인가?

➡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

 

5. 병국이 동진강 하구의 오염 원인을 밝히기 위해 한 일이 무엇인지 말해 보자.

➡ 병국은 환경 오염 물질을 배출하는 사업장을 고발하기 위해 진정서를 제출하고 오염 원인을 찾기 위해 폐수를 직접 조사하였다.

 

6. 윤 소령의 성격은 어떠한가?

➡ 윤 소령은 국가 안보와 산업 성장을 위해 환경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인물로, 환경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부족한 인물이다.

 

7.‘이 소설에서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가 당면한 문제가 무엇인지 쓰고, 그것이 우리의 현실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쓰시오.

➡ 아버지 세대는 분단으로 인한 아픔을 안고 살아가고, 아들 세대는 산업화로 인해 환경이 오염되는 문제에 직면한다. 이는 개인이나 한 사회의 문제를 넘어 이제는 범인류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8. 오규원의 현대시 <물증>에서, 제목을 ‘물증’이라고 붙인 이유는 무엇일까? ‘깨끗하게 썩’는다는 것의 의미를 생태 문제와 관련하여 의미를 생각해 보자.

➡ 제목의 ‘물증’은 ‘물적 증거’를 뜻하는 말로, 이 시에서는 현대인들이 안고 있는 문제와 미래에 대한 전망을 확인할 수 있는 물적 증거로 3억만 년 동안 진화하지 않은 폐어를 소개하고 있다. 진화할 수 있음에도 견디는 것으로 일관하여 더 이상 진화하지 못하는 폐어처럼 현대인들 역시 더 이상 진화하지 못하는 부정적인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진화하지 못하는 현대인은 마치 땅속에 묻혀 썩지 않고 자연을 오염시키는 비닐, 플라스틱처럼 현대가 낳은 문명이면서 오염 물질만을 만들어 내는 존재일 뿐이라는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생태 문제는 단순히 환경 오염만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계를 이루고 사는 생태 속에서의 문제로 환경 오염의 문제는 곧 인간 생태의 황폐화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 작가의 집필 동기-작가의 말 : 한 장의 사진이 던져준 화두 : 한국일보문학상과 나

☞ 수상작인 중편소설 ‘도요새에 관한 명상’은 출판사에서 열심히 밥벌이를 하던 30대 중반에 썼다. 아동물을 내던 출판사였는데, 당시 학생용 백과사전을 편찬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해외 시사사전을 더러 활용하던 중,라이프지 사진기자 유진 스미스 부부가 일본 구마모토현 미나마타시의 신리치 질소비료공장의 환경오염으로 방생한 속칭 ‘미나마타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처참한 주민들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을 보게 되었다.

 

 여기에 힌트를 얻어 우리나라도 공업화에 따른 환경오염이 조만간 문제화될 것임을 알고 이 소설에 착수했는데 그때까지도 경제성장의 그늘에 가려 환경 공해문제는 사회적 이슈가 되지 못했다. 공업단지로 인한 중금속 폐수문제 실향민을 통한 남북문제, 제적당한 운동권 학생의 고뇌, 배금사상이 팽창 일로인 오늘의 시장주의 문제를 한정된 분량 속에 우겨 넣으며 과욕을 부렸으니 그게 바로 젊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어 그때를 돌이켜 보았다. (중략)

 이제 내 세계를 떳떳이 떨쳐나가도 되겠구나 하는 자신감을 주었기에 이상의 수상이 소중하고, 이 작품은 내가 쓴 소설 중에 괜찮은 작품이란 말을 지금도 듣는다.

                                 - 출처: 한국일보 2008년 11월 5일 기사 -

 

 

▣ 작품의 시대적 배경 : 1970년대의 사회상

▶통금 : 우리나라에서는 1945년부터 82년까지 야간 통행금지가 실시되었다.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 통행을 금지했으며 이를 줄여서 통금이라고 불렀다. 만일 자정이 넘어 통행하는 사람이 발견되면 경찰서에 붙들려 가서 새벽 4시 이후에야 귀가할 수 있었다.

▶간첩 : 분단 이후 북한에서는 무장 비무장 간첩을 계속 내려 보냈다. 이러한 간첩 활동은 1960년대 후반 절정을 이루었고, 1970년대까지 매년 수십 차례씩 간첩출몰 사건이 있어서 사회적으로 안보에 대한 긴장감이 팽배했다.

 

산업화

사회

변화

- 경제의 급성장 - 근대적 산업 체제 확립

- 도시의 확장 - 대중문화의 확산

- 사회 구조와 생활방식의 변화 - 물질주의적 가치관 확대

사회

문제

-경제적 토대의 취약성

-산업화 추진을 빌미로 삼은 독재정권

-불합리한 삶의 조건에 대한 노동계층의 반발

-농촌의 소외와 지역간의 격차에 따른 갈등

-환경오염문제

                  

 

▣ 인물의 이해 : 노무과장과 젊은이의 가치관 : 인간중심적인 이기적인 가치관 : 경제성장 우선주의 가치관

                 파견대장 윤소령의 가치관 : 국가안보를 최우선으로 생각함.

 

▣ 공장 굴뚝에 대한 묘사 : 가스를 태우는 불꽃과 검은 연기가 날아가는 모습을 비유적으로 (묘사)하여 중화학 공업으로 대기오염이 확산되는 현실을 암시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다.

 

▣ 바다의 역할 : ‘나’(아버지)가 어린 병국과 바다 구경을 했던 과거를 회상하게 하는 (매개체).

 

나(아버지)

병국

초등학생이던 병국과 ‘나’가 바다 구경을 나감

이북의 고향을 그리워하며 돌아가기를 소망함

‘바다’는 고향으로 갈 수 있는 길(경로)

기선을 보고 싶어 하며 큰 꿈을 키움.

(꿈과 이상을 품음)

 

▣ 새의 상징성

 

 

나(아버지)

병국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매개체

이상과 자유, 동경의 대상

지켜야 하는 생명

자유롭게 남과 북을 오갈 수 있는 존재

↔ 고향으로 갈수 없는 ‘나’처지 강조

넓은 세상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존재 : 동경의 대상

 

마거릿 미드

 

1978년 11월 15일, 한 미국인 여성이 77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이 여성의 죽음이 알려지자 오세아니아 대륙의 작은 나라인 파푸아뉴기니에 위치한 마누스섬의 마을 사람들은 일종의 5일장을 치렀다. 마을 사람들이 24시간 동안 외출을 삼가고 5일을 애도한 이 여성의 이름은 ‘마거릿 미드(Margaret Mead)’. 그녀는 사망 직후 유럽과 미국의 저명한 학자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추모가 끊이지 않았던, 위대한 문화인류학자였다.

 

‘문화인류학’이란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학문이다. 1920년대 초에 미드를 가르친 프란츠 보아즈 교수가 그것을 창시했다고 본다면, 이제 갓 100여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문화인류학은 인간이 만들어 낸 문화를 모두 다룬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문화상대주의’라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지만, 어떤 문화가 절대적으로 우월하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는 것이 문화상대주의다.

 

미드는 서구 문명이 자리잡지 않은 곳에 사는 미개인(未開人)들이, 아직 발달이 덜 된 사람들이 아니라 나름의 조직 체계와 사회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個人)임을 밝혀냈다. 한편, 여성과 남성에게도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며, 그 차이를 차별이 아닌 공존의 근거로 삼으려고 노력했다.

 

그녀는 연구를 위해 사모아, 파푸아뉴기니와 같은 오세아니아 지역의 작은 나라들에서 현지 조사와 참여 관찰을 시도했다. 평생에 걸쳐 아메리카 인디언, 발리를 포함해 원시 상태에 놓여 있는 여덟 개 부족의 생활을 둘러보았다고 한다. 앞서 말한 마누스섬에서의 애도 역시, 그녀가 그 기간 동안 입으로만 문화상대주의를 외친 것이 아니라 몸으로 실천을 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다음은 초기 사모아 방문에 대해 미드가 남긴 말이다.

 

“나는 서구사회 우월주의의 관점에서 원시부족을 깔보는 당시의 일반적인 믿음을 입증하기 위한 학문의 대표자로서 사모아에 간 것이 아니다. 나는 문화만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우리 자신과 같은 인간들에 대해 좀 더 깨닫기 위해 갔다.

부족들의 삶 속으로 뛰어들다

 

1901년, 20세기가 시작되는 해에 마거릿 미드는 태어났다. 우리가 사는 한반도는 아직 대한제국 시기였고, 세계적으로는 서구 열강들이 식민지 쟁탈에 한창이던 이른바 ‘제국의 시대’였다. 미드의 아버지는 경제학 교수였고 어머니도 당시로는 드물게 석사 학위까지 받은 여성이었다. 5남매의 장녀로 태어난 미드는 적극적이고 낙관적인 성격을 타고났다고 전한다.

1919년 대학에 입학한 그녀는 공부를 계속하기를 원했지만, 그저 지위를 높이기 위해 사교활동에만 매진하는 남학생들과 배우자 찾기에만 신경을 쓰는 여학생들을 보고 이내 실망하게 된다. 결국 여학생들도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다른 여대로 옮기고 나서, 인류학 교수인 프란츠 보아즈의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보아즈의 영향으로 문화인류학을 전공하기로 결정한 그녀는 바로 현지 조사에 뛰어든다. 첫 조사는 1925년에 이루어졌다. 지금도 그러한 악습에 젖어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당시는 여자가 아버지나 남편의 집을 떠나 보호자 없이 멀리 다니는 것을 금기시하고 손가락질하던 시기였다. 사라져가는 원시 문화를 빨리 접해야 한다는 학문적 열정과 남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는 적극성이 맞물린 결과, 그녀의 현지 조사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랬다. 낯선 사람들과 만나 낯선 문화 속에 들어가 그 차이를 이해하는 것, 그리고 그 차이를 견주는 내 마음 속의 편견을 점검하는 것. 진정한 소통은 그때야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었다.

 

미드의 현지 조사 결과물 가운데 하나인 <세 부족 사회에서의 성과 기질>은 아라페시, 문드그머, 챔불리라는 세 부족을 관찰한 내용이다. 우리의 시각에서 볼 때 아라페시는 남성과 여성이 모두 여성적인 반면, 문드그머는 모두 남성적이고, 챔불리는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완전히 바뀐 부족이다. 즉, 그녀는 성 역할이 고정된 것이 아니고 각 사회의 문화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을 입증한 셈이다. <세 부족 사회에서의 성과 기질>은 다음과 같이 끝을 맺었다.

 

“만약 우리가 좀 더 풍부한 문화, 즉 서로 대조적인 가치들도 상존할 수 있는 다원적 문화를 이루고자 한다면, 인간의 잠재적 능력 전체를 포용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덜 임의적인 형식으로 엮어 각 개인들의 다양한 재능이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자신에게 한정된 세계를 넘어서다

 

죽기 직전까지도 마거릿 미드는 발리에 다시 방문하는 등 연구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녀가 마지막에 집중했던 문제는, ‘친구와 친족 관계의 유대를 강하게 하려면 집 구조와 지역 사회 공간을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가’라는 것이었다. 미드는 위대한 학자이기도 했지만, 사회를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는 활동가이기도 했다. ‘인류의 소통’ 혹은 ‘사회적 소통’이 그녀 삶의 평생 주제였던 것이다.

 

말년에 쓴 자서전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복잡한 실험 장치로도 사모아 사람, 마누스 사람, 혹은 발리 사람으로 자라는 것을 흉내낼 수 없다. 대개의 경우 원시 주민들의 실제 행동에 대한 관심은 극히 부족하며, 또 우리 자신의 역사적 전통과는 다른 전통 위에 세워진 문화 간의 비교 가능성을 모른다. 현대의 유럽인이나 미국인들은 여전히 자민족 중심적이며 자신에게 한정된 세계에만 관심을 가질 뿐, 자신의 시대를 넘어서서 생각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늘날 원시 주민들이 아직도 존재하는 곳에서 결국은 그들과 우리의 아이들을 구하게 될 지식을 얻기 위해 그들의 동료나 협조자가 되기 위해 애쓰는 사회과학자들이 과연 몇이나 되는가?”

 

문화인류학에 관계된 말 같지만, 유럽이나 미국의 위치에 나 자신을 넣고 원시 주민과 소통해야 할 상대방을 대입해도 말이 된다. 오늘 내가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은 그들 자신만의 배경과 가치관을 가진 하나의 세계와도 같다.

 

소통이 잘 되지 않게 하는 범인은, 말귀를 못 알아듣는 상대방이 아니라 바로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가진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 상대를 존중하며 이루어지는 소통의 결과물은, 나와 상대를 모두 다 구하게 될 것이다.

 

 

 서로 다르지만 아무도 틀리진 않았다, 마거릿 미드 / 글 : 자유기고가 김희연

 

인류학의 새 길을 연 마가렛 미드

 

 마가렛 미드는 아마도 가장 건강한 미국인 중 한 사람일 것이다. 그는 미국이 세계 패권을 잡아가기 시작한 1920년대에 대학을 다녔고, 2차 대전이후 냉전시대에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한 인류학자다.

 

 산업화 이전의 부족사회나 비서구 사회를 연구하던 인류학은 원래 광대한 식민지를 가진 유럽 학자들의 전유물이었는데, 1차 대전이라는 세계사적 참사가 일어나는 와중에 그 중심이 서서히 미국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미국 인류학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는 프란츠 보아즈는 당시 아메리칸 원주민 연구에 집중하면서 영국과 프랑스의 구조 기능주의적 인류학과는 다른 미국적 문화인류학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의 수제자였던 마가렛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는 미국의 인류학을 미국 내 원주민 연구에서부터 전 세계의 지역연구로 확장시켰고 심리 인류학이라는 분야를 개척하면서 미국 인류학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미드에게 미국은 기질적으로 상당히 맞는 사회였을 것이다. 매우 실용적이고 현실참여적인 미드는 자기 나라를 적절한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게 훈련하는 인류학적 트레이닝 덕분에 비 서구사회 뿐만 아니라 미국사회를 꿰뚫어보고 미국 사회를 비판적으로 성찰했다. 그는 한 사회가 가진 전제는 늘 변하는 것이므로 자기 사회에 대한 분석을 게을리 말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미드의 초기 연구는 사모아 지역에서 주로 이루어졌는데 그 연구는 1928년에 『사모아의 성년(Growing Up in Samoa)』이라는 책으로 출간됐다. 그 연구에서 미드가 주목한 현실은 예측 불가능한 행동으로 부모와 사회를 놀라게 하는 ‘사춘기’였다. 당시 심리학자들은 이를 호르몬이 변하면서 생기는 보편적 현상이라고 말했는데 미드는 호르몬의 영향보다 문화적인 제도가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하면서 사춘기적 현상은 현대 개인주의를 강조하는 핵가족 사회에서 나타나는 특수한 현상임을 밝혀냈다.

 

 이후 그는 『세 부족사회의 성과 기질』(1935)에서 남성과 여성의 성 역할 구분도 특정 사회에 따라 달리 배열되는 것을 밝혀내면서 모든 사회현상은 그 사회의 역사 문화적 맥락에서 분석돼야 함을 강조했다. 48세에 쓴 『남성과 여성』(1949)은 미국 사회를 정면으로 다룬 책으로 인류학자들이 자국 내 삶에 개입하는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그는 미국 자연사 박물관 학예책임자이자 콜롬비아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학문탐구와 후배 양성 뿐 아니라 날카로운 문화 비평과 대중 교육자로서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미드는 애초에는 목사의 아내가 돼 많은 아이를 낳아 키우며 살고 싶어 했는데 아이를 낳지 못하자 이혼을 했다. 대학원에서 인류학도로 현지조사에 몰입하면서 낯선 현지에서 만난 인류학자들과 두 번의 결혼을 했다. 그의 세 번의 결혼은 당시 물의를 일으킬 사건이었지만 그는 고정관념을 깨트리는 것이 자신이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흔들림 없이 자기 길을 갔다. 미합중국을 만든 선조들처럼 스스럼없이 자기 삶을 개척하고 인류학의 새 길을 낸 그는 직접 자서전을 쓴 후에 78세로 삶을 마감했다. 늦게 얻은 딸은 인류학자로서 어머니의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마치 선지자처럼 지휘봉처럼 생긴 지팡이를 들고 다니던 그분의 모습이 눈에 선 한데, 남을 위해 무슨 일 하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시대에 그가 더 그리워진다.

 

필자 : 조한혜정 연세대·문화인류학(필자는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박사를 했다. 주요 저역서로 『한국의 여성과 남성』,『세 부족 사회에서의 성과 기질』등이 있다.)

 

출처 : 교수신문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21804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2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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