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농우 / 전문 / 이근영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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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우 / 이근영

 

1

보리밭에 거름을 모두 내고 난 서생원은 해가 큰라산 위에 간당 간당 매어달렸을 때에야 집으로 향하였다. 빈 오줌독을 지게로 걸머지고 소를 앞에 몰고 갔다. 길가에서 탐나는 풀을 발견할 때마다 소가 걸음을 멈추면,

"이랴 쪼 쪼 쪼 쫏."

하고 서생원은 어린애 볼기짝을 두드리듯이 손으로 잘칵 하고 두서너 번 아프지 않을 정도로 친다.

소가 길을 조금도 서슴지 않고 가는 것을 생각할 때 그는 힘찬 아들을 앞세우고 가는 것 같은 든든한 마음이 드는 것이었다.

서생원은 소로 논밭을 갈거나 구루마를 끌거나 할 때 말을 잘 듣지 않더라도 달래서 듣도록 하지 아프게 매질을 하는 법은 도시 없다. 아무리 삯을 많이 받을 경우가 있더라도 소의 힘에 부칠 성싶은 일은 절대로 맡지 않았다. 이것은 그가 본래부터 보드라운 성질을 가진 것도 원인이겠지만, 무엇보다도 서생원과 소 사이에는 특별한 정이 들었던 것이다. 서생원은 나이 오십이 넘은 지금에도 장사라는 말을 듣지만 한참 당년에는 항우라는 소문이 그 도(道) 내에 쫙 퍼졌던 것이다. 그가 스물네 살 때부터 금씨름판을 찾아다니게 되어 서른일곱 살 때까지 소를 네 필이나 탔었다. 첫번 세 필을 탈 때까지는 오래야 삼 년 동안 부리고서는 팔아넘겨서 주막의 계집과 술 속에 버리다가 끝으로 한 필을 탔을 때부터는 갑자기 마음을 잡고 이번에는 소를 칠 년이나 부려먹은 나머지 돌도 못 된 암송아지하고 바꾸었다. 이 송아지의 손자가 바로 지금의 여섯 살 난 황소인 것이다. 씨름으로 소와 인연을 맺은 것이 삼십 년이나 소가 끊이지 않게 되자 '서생원'을 '소생원'이라고까지 부르게 되었다.

이런 관계가 있는만큼 혹 친구간에 소를 신줏단지같이 위한다고 핀잔을 주는 사람이 있어도 서생원은 조금도 고깝게 여기지 않았다. 사람 먹을 양식은 떨어지더라도 소가 먹는 여물과 콩은 지금까지 떨어져 본 일이 없었다.

"이랴 쪼 쪼 쪼 쫏."

하고 소를 몰고 가다가 서생원은 갑자기,

"소 한 필만 있으면 부자라는데……."

하는 생각이 나자 소궁둥이가 어리어 뵈면서 꽁지를 찾아낼 수 없었다.

육칠 년 전만 하더라도 양식 걱정은 그다지 심하지 않았지만 차차로 생활이 쪼들어지자 소를 팔고 빚을 얻어 쓰고서는 그 다음해에 가서 봄에 논갈이와 가을에 밭갈이와 또 구루마질로 모두 갚는다. 결국 돈을 얻어 쓴 다음해는 일년내 공일만 죽게 하여 주게 된다. 그러니 한 해씩 걸러야만 빚이라도 얻어 쓰게 되는데 작년에는 가물에 어거지 농사를 짓는다고 빚만 대추나무 연 걸리듯이 여기저기 걸어 놓게 되어 금년에는 소 핑계로 얻어 쓸 수도 없게 되었다. 빚은 둘째고 우선 급한 것은 보리 날 때까지 갚기로 하고 작년 아내의 병중에 얻어 쓴 빚 삼십 원을 어떻게 갚는가가 큰 문제이다. 더구나 그나마 헌 것이라도 있어서 부리던 구루마까지 인제는 영영 송장이 되어 버리고 소를 펀펀히 놀리는 때가 많았다.

서생원이 집 안에 들어서니 아들 문경이는 손바닥만한 마루에 드러누워서 책을 보면서 이따금씩 콧노래를 섞는 것이 전에 없이 흥이 나는 모양이다.

"너 오늘 가마니 몇 장이나 쳤냐?"

이 말소리에 아들이 벌떡 일어나자 부엌에서 저녁밥을 짓고 있는 옥님이가,

"여태 야학당으로 어디로 쏘다니다가 방금 들어왔대요."

하고 얼굴은 내어 보이지 않는다.

서생원은 오양깐에 소를 매면서,

"너도 한 길이나 큰 녀석이 야학당만 나다니지 말고 집에서 일 좀 하려무나. 야학당은 밤에나 가는 것이지 머 대낮부터 무슨 지랄들을 하는 거냐? 응."

하고 연해 소리를 질렀다.

아들은 아무런 대답도 못 하고 서 있다가 방으로 슬그머니 들어간다. 서생원은 한쪽 달아난 옹기 그릇에 물을 떠붓고 손과 발을 씻는다.

이때이다. 윤면장의 머슴이 헛기침을 하며 들어오더니,

"서생원 뭘 허시유?"

하고 인사하듯 한다.

"응 자넨가? 다아 저녁때 웬일인가?"

"지금 나으리께서 곧 오시래유."

"왜 무슨 일이간디?"

머슴은 누구를 찾는 듯이 사방을 둘레둘레 하고 나서,

"알 수 있간디라우."

하고 머뭇거린다.

서생원은 씻는 둥 마는 둥 빨리 끝내고 덕쇠 뒤를 따라가면서,

"거 무슨 일일까."

하고 궁금해 뵈었으나 덕쇠는 여전히,

"글쎄, 저도 잘 모르지라우."

하고 빨리 걷기만 한다.

서생원의 궁금한 마음은 더어 꼬치꼬치 캐어물을 만한 여유도 없었다. 해마다 이때면 으레 당하는 논 뗀다는 호령일까 그러잖으면 소 잡히고 삼십 원 빚낸 것 때문일까. 여러 가지로 머리를 짜아내었으나 꼭 단정할 수는 없었다. 하여간 반가운 일은 아니겠지 하매 맘은 몹시도 초조하였다.

2

아니나다를까 서생원이 윤면장 집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면장이 눈을 똑바로 뜨고 눈총을 매서롭게 놓고 있다.

서생원은 가슴이 콱 막히면서 전신이 어디로 사라져 버리는 것같이 몽롱하여졌다.

"면장영감, 저 부르셨습녀?"

하고 서생원은 손을 마주 잡고 허리를 굽히었다. 면장은 쭈그리고 앉더니 담뱃대를 입에서 빼어 들었다. 담뱃대는 신장대 모양으로 떨리기 시작하였다.

"그런 발칙스런 놈이 어디 있단 말인가."

"제가 무슨 죄진 일이 있습녀?"

서생원은 정말 죄진 것 모양으로 굽실굽실하였다.

"아무리 어린놈이기로서니, 제 신분이 어떤 놈인지도 모르고 아무 데나 그런담? 수원 못 배운 녀석 같으니."

"아 게 무 무슨 말씀인죠. 혹 제 자식놈이 죄를 진 일이 있습녀?"

"그래 자네는 모른단 말인가?"

"예 예, 혹 철모르고 무슨……."

"철모르다니? 이십이 다아 된 놈이 철이 없단 말인가?"

"……"

"우리집 작은아씨가 방학때라 내려온 김에 나물을 캐러 갔는데 아 그놈이 함부로 말을 걸고 버릇없이 놀랴고 했다니 그래, 그게 될 말인가! 우선 그런 걸 보고서 내게 말한 사람부터가 남이니 우리집 망신이 어쩌겄는가?"

하고서는 담뱃대를 마루에 땅땅 치고 담배를 태워 문다.

이 말을 듣자 서생원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충동이 치밀어 올라왔으나,

"예, 제가 단단히 나무라겠습니다."

라고 아니 할 수 없었다.

"한 번만 또 하면 직접 자네가 헌 것으로 책임을 져야 한단 말이네."

하고 면장은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면장 집을 나오는 서생원은 자기 발이 어떻게 떼어지는지 지금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정신을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그는 불덩이 같은 화가 복받쳤다. 봄날의 석양 바람이 약간 싸늘하게 얼굴을 스치고 지나갈 때에야 얼음덩이같이 굳었던 정신이 풀리는 것도 같았다.

"흥, 제 신분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덤빈다고."

서생원은 면장의 말을 되풀이하여 보았다. 저놈들은 무엇 말라비틀어진 것이냐? 제가 면장이나 하였으니깐 큰소리를 탕탕 하지 바로 제놈 아비는 사령 노릇을 하지 않았는가? 지체를 따진다면 우리가 저놈들 같을까? 우리 증조가 선비였고 조부가 진사 급제를 하였고 바로 우리 아버지는 고창 군수를 지냈는데…… 가문의 영락으로 가산이 치패하고 공부도 넉넉히 못 해서 이렇지 아무래도 저놈들 같을까? 서울 일본 사람에게 알랑거려서 사음깨나 하여서 재산 나부랭이나 모였고 그 덕분에 면장까지 하게 되니 바로 제 세상인 줄 아는감? 그저 지금 세상은 재산과 권력만 있으면 똥 친 나무에라도 절을 하게 되니……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내가 제놈의 논만 얻어 짓지 않으면 열 살이나 손아래 되는 놈한테 무엇 때문에 그런 욕을 당한단 말인가?

이런 생각을 할수록 서생원은 두 눈에서 불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서생원은 자기 집에 들어서면서,

"문경이 있냐?"

하며 번연히 있는 줄 아는 아들을 성낸 어조로 찾았다.

"예?"

하고 손에 책을 든 채로 나오는 아들은 전에 없이 대로한 부친의 언성에 얼떨떨한 모양이었다.

"너 이놈 면장네 딸에다가 무슨 짓을 하였냐? 응 무슨 짓을?"

이 말에 모든 것을 알아챈 아들은 얼굴이 확 붉어지면서 양편 어깨가 내려앉는다. 딸은 부지깽이를 든 채로 눈을 휘둥그리며 부엌에서 빨리 나온다.

"왜 속을 못 채리냐? 응."

하는 소리와 함께 서생원의 솥뚜껑 같은 손은 아들의 뺨을 벼락같이 때리었다.

이 바람에 아들의 얼굴은 한쪽으로 비틀어지는 것같이 홱 돌아간다.

"이 녀석아, 그까짓 ××× 싹뚝 잘라 버려라. 왜 남의 계집애들을 놀리다가 애비 얼굴에 똥칠을 허냐? 응."

"제가 먼점 걸었간디우? 보통학교 때부터 잘 지내다가 이런 책까지 사다가 주었는디우."

하고 책 든 손을 간신히 조금 쳐든다.

"어찌어? 그래 네 모양에 연애를 허는 푼수구나?"

하고 서생원은 책을 채트리더니,

"지금 당장 연애를 안 끊으면 다리몽둥이를 끊어 버릴 것이다."

하고 나서 책을 오양깐으로 팽개를 쳐버린다. 소는 책이 먹을 것이나 되는 듯이 코를 씰룩거리며 냄새를 맡는다.

고양이 앞에 쥐 모양으로 서 있는 아들을 한참이나 노려보다가 서생원은 방으로 들어갔다. 화가 차차로 식어 감을 따라 아들이 한편으로 가긍스럽기도 하였다. 보통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도 남의 자식과 같이 공부를 더어 못 시키는 것이 아비의 죄가 아닌가? 사실 생각하면 한반에서 공부를 한 면장 딸이 자기 아들의 재주 있고 튼튼하고 얼굴 반반한 데서 마음이 쏠린지도 모를 일이다. 여기에 무슨 아들의 죄가 있단 말이냐? 죄가 있다면 부모를 잘못 만난 죄뿐일 것이다. 결국은 모든 것이 돈 없다는 한 가지 이유뿐으로 그런 망신을 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매 도적놈같이 족을 친 아들이 한없이 안타까웠다.

그래 서생원은 저녁밥상이 들어오자 아들을 불러서 함께 밥을 뜨며,

"다시는 그런 계집애허고는 상관을 말어라. 그저 무엇이구 없는 놈은 없는 놈끼리 해야 허는 게다."

하고 부드러운 소리로 타일렀다.

"예, 다시는 안 만날게요."

하고 아들은 다소곳이 대답한다.

그리고 사실은 이날 밤에 서생원은 후처의 맞선을 보러 가기로 하였던 것이다.

서생원은 상처한 지 만 일년이 되어 오지만 남달리 양기가 좋아 아내 없는 고독을 항상 느끼었고 또 과년한 딸을 정혼까지 해놓고도 살림할 사람이 없어 그대로 잡아 매논 형편이다. 그 동안 떠돌아다니는 낡은 여자를 세 번이나 갈아 들였지만 웬일인지 살림은 할 줄 모르는데다가 양식만 구는 것이 아까워서 오래야 열흘 살고서는 내어 쫓곤 하였다.

얼마 전에 송참봉 부잣집에는 어느 행세하는 집안의 과부가 개가를 하고자 와서 머물게 되었다. 이 과부는 나이가 서른일곱이고 언어 행동이 점잔하다는 소문이 동리 안팎으로 퍼지자 제일 먼저 서생원의 귀를 솔깃하게 하고 곧 송참봉의 머슴을 중간에 넣어서 맞선까지 보게 되었다. 그래 피차 합의가 되어서 이날 밤에는 동리 집에서 만나 가지고 정식으로 관계를 약속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아들의 여자 문제로 자기가 망신을 당하고 또 아들을 꾸짖고 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그 여자를 만나러 간다는 것은 어쩐지 죄를 범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생각다가 서생원은 딸을 시켜서 이튿날 밤에 만나기로 하고 이날 밤은 아들을 붙들어 놓고 가마니를 쳤다.

어쩐지 이날 밤은 아버지와 아들의 사이가 훨씬 가까워진 것같이 그들은 웃음 섞어 도신도신 이야기를 하면서 가마니를 쳤다.

3

"날도 참 청성맞다!"

서생원은 담배를 한 대를 태워 먹고 다시 논으로 들어갈 때 무심코 이렇게 감탄하였다. 그가 젊어서 소 판 돈으로 여자를 찾아다닐 때 자기 맘에 흡족할 정도로 이쁘게 생긴 여자를 보면 으레 하는 말이,

"계집도 청성맞게 생겨먹었다."

하고 도리어 여자한테는 푸념을 받았다.

이렇도록이나 이 날씨는 서생원에게 좋았다. 며칠 전의 비로 논에는 물이 빼작빼작 괴어서 아직도 발은 쌀랑하고 시리었으나 졸음 오기에 알맞은 따뜻한 봄날이다. 산들바람은 데수기에 부딪혀서 간지러울 때에야 비로소 바람이 부는 줄 알 만큼 고요하고도 부드럽다. 이 바람이 바로 비단결로 변하여 하늘을 엷게 덮은 것같이 하얀 구름을 통하여 푸른 하늘은 소리 없이 웃는다. 멀리서 달아나는 그 육중스런 기차도 그냥 봄바람에 불려서 가는 것같이 가볍고도 귀엽게 보였다.

"이랴 쪼 쪼 쫏."

하고 서생원은 주마등같이 생각히는 옛 기억을 떨으려는 듯이 갑자기 소리를 커다랗게 질렀다. 소는 영문도 모르고 기계적으로 빨리 달아나자 흙은 한편으로 파잦혀진다.

이때 서생원의 뒤편에서,

"여보게 여보게!"

하고 목멘 소리가 났다.

바로 윤면장의 아비 윤진사가 키보다도 높은 지팡이를 짚고 걸어오고 있다.

"저놈의 늙은이가 밤새 환장을 하였나."

하며 욕을 하면서도 서생원은 속으로 불안을 느끼었다. 어제 일을 늦게야 알고서 부랴부랴 야단을 치러 오는 것이 아닌가 하매 전날의 분이 다시 치밀어올랐다.

"아, 왜 오늘이 우리 논을 가는 날인데 남의 일만 하나? 응."

하는 윤진사는 숨이 턱에 닿아서 헐떡인다.

서생원은,

"와― 와―"

하여 소를 머무르게 하고 윤진사가 가차워지기만 기다렸다.

"오늘 하기로 하였다가 진사 영감이 볼일 계시다고 해서 모래로 미루잖었습녀."

"글쎄, 오늘 볼일이 훗날로 미루었는데 모레가 바로 궁술대회가 있는 날이란 말이네. 내가 꼭 구경을 가야겠으니 그날은 논일을 못 헌단 말일세."

하고 윤진사는 논둑에서 싸움이나 걸듯이 발을 구르며 야단을 친다.

"그런 사정이야 제가 알었습니까? 오늘 못 하신다고만 하시길래 딴 사람의 일을 맡었지유. 정 그러시면 영감이 안 보시더라도 저 혼자 잘 해드리지요."

"안 된다니께 안 되어. 내가 꼭 지켜서야지."

하고 윤진사는 좁은 논길을 급히 내려서다가 바른편 발이 논으로 빠졌다. 하얀 버선이 흙물투성이가 된 것이 잔뜩 마음에 걸린 윤진사는 흙물을 털고 나서,

"그래 정말로 우리 논일을 못 하겠는가? 정 그렇다면 여러 말 말고 작년에 고지 내먹은 것은 돈으로 갚고 또 소 잡히고 빚내 쓴 것을 이 당장에 갚게."

하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서생원은 논 한가운데에서 갓으로 나오면서 여전히 사정을 하였다.

"오늘 영감 댁 일을 허면 더 좋지만 남의 일을 중판메고 그만둘 수 있습니까? 늦지 않으니 훗날로 미루지라우."

"그만두게 그만둬. 저― 거시키 소만 내놓게, 그럼 내라두 논을 갈 테니께."

"소를 내면 이 논은 어떻게 갈구유?"

"그럼 내 돈일랑 그대로 떼먹을낭가?"

"그럴 리가 있겠습녀? 어이 구만 돌아가시죠."

윤진사는 할 수 없다는 듯이 서생원의 얼굴을 맞뚫을 듯이 한참이나 쳐다보더니,

"세상에는 별 도적놈도 다 많다."

하며 돌아서서 씽씽 달아난다.

"미친놈의 영감!"

하고 서생원은 헛웃음을 아니 칠 수 없었다. 자기가 내어 준 빚만 내세우는 것이 세상물정을 모르는 어린애의 장난도 같았다. 하여간에 서생원은 어느 것이나 지난해의 빚을 갚기 위해서 여러 사람의 새 중간에 끼여서 이리 내둘리고 저리 내둘리는 자신의 처지가 새삼스럽게도 서러웠다.

뒤도 안 돌아보고 걸어가는 윤진사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서생원은,

"저 늙은이가 무슨 심술을 또 부릴라나?"

하고 불안이 예감되었다.

그러나 서생원은 이 불안이 바로 하룻밤이 지난 날 닥쳐오리라고는 천만의외이었다.

이튿날이 바로 마누라의 제삿날이라 자기가 직접 가마니 이십 장을 걸머지고 장에 나갔다 전부 중자(中字)를 맞아 이 원 사십 전을 받아서 서생원은 제삿장을 보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 안에 들어서자 옥님이는 마루에 걸트려 앉아서 훌쩍거리며 울고 있고 문경이는 이마에 밤덩이만한 혹이 돋아 가지고 있었다. 서생원의 눈에서는 불이 번쩍 났다.

"웬일들이냐?"

하고 채 묻기도 전에 아들 문경이가,

"면장네 집에서 소를 끌어 갔으라우?"

하고 울상을 한다.

"뭐였?"

하며 서생원은 오양깐을 쳐다본 다음,

"그래 이 병신들아, 소를 끌어가드락까지 내버려두었단 말이냐?"

"제가 밖에 나갔다 오니께 이렇게 되었어요. 그래 면장네 집으로 가서 막 소를 끌어오랴니께 윤진사가 단장으로 치는 통에 이렇게 되었지라우."

하고 아들은 파랗게 먹진 상처를 손으로 가리킨다.

"날보고 도적놈이라더니 원 어떤 놈이 불한당인가 모르겠다. 어디 보자 소를 뺏기는가?"

하며 서생원은 불끈 쥐어진 손을 한번 떨더니 힘차게 뒤돌아서 걸었다. 아들도 그 뒤를 따랐다.

오후 네시가 채 못 된 때이라 머슴들도 모두 일 나간 후였고 면장도 아직 돌아오지 않고 윤진사만이 방 아랫목에 앉아서 담뱃대 문 채로 마당을 내다보고 있었다. 서생원과 아들은 대문 안에 들어서던 멀로 사방을 둘레둘레 쳐다보며 소를 찾았다.

 



이것을 알아챈 윤진사는,

"저 어떤 놈들이냐?"

하고 소리를 버럭 지르더니 버선발로 내달았다.

이때 서생원과 아들은 소가 도야지 울 옆에 매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가는 것이었다.

"이놈들 부자끼리 남의 집을 마구 떨어먹을 작정이냐? 왜 남의 집을 함부로 들어오는 것이여?"

하며 서생원의 팔을 끌어당기자 서생원은 입 한번 열지 않고 뿌리쳐버린다.

이때 아들은 도야지 울의 기둥에 매인 줄을 풀고 소를 끄르려 하는 것을 서생원은 이것도 믿음직하지 않아서 자기가 소줄을 아들한테서 뺏어 쥐었다.

"도적놈이야 도적놈이야."

윤진사는 입에 게버큼을 내면서 이렇게 외치다가 서생원의 팔을 두 손으로 붙들었다. 서생원은 있는 힘을 다 내어 앞으로 채트리는 바람에 윤진사는 넉장거리로 떨어졌다. 서생원은 소를 뺏었으나 소는 싸움에 놀란 듯이 사람을 쳐다만 볼 뿐 순순히 따라오지 않았다. 그래 서생원은 소 고삐를 움켜쥐고 끌어서야 소는 따라섰다.

윤진사는 콧등과 이마가 땅에 스쳐서 피가 나오고 있다. 땅에 주저앉은 채로 사람 죽인다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으나 며느리, 손자 며느리가 달려올 뿐이었다.

서생원은 소를 자기 집 오양깐에 매어 두고서는 마당가에 서 있는 봉숭아 나뭇가지를 꺾어 들고 소를 때렸다.

"아무리 멍청한 놈의 소라도 글쎄 남의 집에 가서 그대로 있단 말이냐? 응 주인이 가야 주인을 알어보는가."

하고 이번에는 목덜미를 때렸다. 삼십 년 동안 처음으로 소에게 매질을 하는 서생원의 눈에는 눈물까지 글썽글썽하였다. 그는 말 못 하는 소까지가 자기를 업수이여기는 것 같아서 분하기는 하였으나 매질을 하면서도 느물느물 맞고만 있는 소가 안타깝기도 하였다.

서생원은 빚 삼십 원을 보리 날 때까지 갚기로 하였으나 어떤 법률을 가지고 오더라도 소를 뺏겼을 리는 없으나 단 한나절 동안이나마 남의 손에 뺏겼던 것이 분하였다. 그는 저녁 밥상을 받고 수저를 쥐었을 때도 손은 그대로 떨리었다.

이날 밤 제사를 지낼 때 아들과 딸들은 서럽게 울었으나 서생원은 산 마누라에게 하듯 혼자 성을 내가지고 대답을 했다.

"○○○○ 소까지 잡혀서 약을 써주었으면 죽은 귀신이라도 그런 줄은 알어야지, 늘 가야 빚만 더 많어지고 인제는 소까지 뺏기게 생겼으니 허다못해 꿈에 선몽이라도 하야 줄 게 아닌가?"

하고 서생원은 혼자 중얼중얼하였다.

그는 다시,

"제삿밥이라도 잘 얻어먹을랴면 산 사람을 잘살게 해야지 글쎄."

하고 말을 더 이으려 하다가,

"아버진 허구한 날 다 두고 하필 제삿날에 이러셔요?"

하고 딸의 울음 소리가 와락 커지는 통에 입을 다물었다.

4

이튿날 서생원이 눈을 뜬 후부터 그는 얼굴에 찬물을 끼얹은 것같이 정신이 번쩍 났다.

전날 면장 집에서 한 일이 꼭 화약에 불을 붙인 것만치나 그는 앞으로 닥쳐올 결과가 무서웠다. 정당한 수속을 밟아서 소를 찾아왔더라면 별일은 없을 것인데 하고 후회도 되었다.

이날만은 논갈이를 나가려도 일거리가 없고 집에서 가마니를 치나 머릿속이 뒤숭숭해서 일이 잘 되지 않았다. 이러다가 애써 친 가마니가 모두 불자(不字)만 맞을 것도 같아서 그는 항상 버릇으로 보리밭 구경을 나왔다. 서생원의 보리밭은 응달진 곳이라 겨울이면 쌓인 눈이 녹을 줄을 모른다. 보리는 눈이 이불이라고 눈에 덮인 것을 마당 다지듯 꾹꾹 밟아 주어 아무리 혹독한 바람이라도 보리싹과 뿌리를 상하지는 못한다. 작년 겨울의 기후는 근래에 없이 추워서 양달진 곳은 금방 얼었다가도 금방 풀리고 하는 통에 보리가 뿌리까지 상하여 해동을 기다려서 다시 씨를 뿌렸으니 자라려면 아직도 멀었다. 그러나 서생원의 보리는 일곱 치나 될 만큼 자라나 그 탐스러운 것이 조롱을 부리는 어린아이같이도 귀여웠다.

마음이 상하다가도 보리만 구경하면 재미가 옥실옥실 나던 서생원이지만 이번은 보면 볼수록 마음이 더 상하였다. 그렇다고 보리 구경을 않고서는 못 배기었다. 금년만은 보리 농사를 오시란히 하기 전에는 보리싹 하나도 남에게 주지 않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러나 윤달까지 들은데다가 양식이 달려서 할 수 없이 송참봉 집에 가 보리 농사를 잡히고 쌀 한 가마니 얻어 온 것이 바로 사오 일 전이었다. 무럭무럭 자라나는 보리를 잡힌 것이 꼭 죄를 지은 것만 같고 겨우내 헛농사만 진 것 같아서 가뜩이나 마음이 아픈데다가 전날 밤 일로 서생원은 더욱 괴로웠다. 그래 보리밭을 풀기없이 한바퀴 돌고서 바로 내려왔다.

그는 저녁밥을 먹고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윤진사 집에서 벼락만이 떨어질 것같이 마음이 조마조마하였다. 그래 서생원은 송참봉네 널찍한 머슴사랑을 찾아갔다.

방 안에 들어서자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서 빨간 한 사람의 얼굴만이 떠돌아다니는 것같이 몽롱하였다.

"야― 서생원 오시는구나."

하는 소리와 함께 웃음 소리가 와그르 쏟아졌다.

키가 육 척 장군인 덕쇠가 와락 달려들어서 서생원의 팔목을 잡고 아랫목으로 끌면서,

"서생원 물볼기 맞는담서유?"

하자 웃음 소리가 다시 터진다.

"물볼기라니? 미친놈들."

하고 코웃음을 치며 서생원은 벽에 기대어 앉는다.

열서너 명이나 되는 사람들은 드러누웠다가도 일어나서 서생원 앞에 바싹 모아 앉았다. 모두 서생원보다 훨씬 젊은 층이었다. 서생원이 무식하기는 하면서도 구변이 좋고 정직하고 인정이 많아서 동리 빈농층이나 머슴층에서는 엄지손가락을 꼽는 인물이었다.

"아, 서생원 윤진사 댁에서 볼기 친단 말을 못 들으셨수?"

덕쇠가 이렇게 말하자 어쩐지 이번에는 방 안이 갑자기 고요하여졌다. 서생원도 먼저는 볼기 맞는다는 말이 옛날이야기와도 같이 새삼스럽게 들리었으나 윤진사라는 말을 듣자 머리끝이 쭈삣하여졌다. 그는 아무 말도 없이 코앞에 널려 있는 여러 얼굴만 번갈아 쳐다보았다.

"오늘 사정에서 궁술대회가 있잖었어유? 모두 끝난 뒤에 김진사가 구경 나온 노소(老所) 영감들을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서 한바탕 먹였지라우. 진탕 그려 먹고 나서 윤진사가 서생원 부자한테 봉변을 했다는 이야기를 하자 모두 자기 발에 불덩이나 떨어진 듯이 노발대발하면서 야단이더만?"

하고 다른 사람이 채근채근 말을 한다. 그는 침을 삼키고 다시 계속한다.

"그 중에도 부안 군수를 지냈다는 양철집 늙은이가 나서더니만 서생원을 노소 마당에 꿇려 놓고 볼기를 쳐야 한다고 펄펄 뛰겠지라우."

"아이고 그 쥐새끼 같은 늙은이가?"

하고 서생원 옆에 앉은 사람이 고개를 쑥 내밀며 묻는다.

여러 사람은 서생원의 얼굴에서 무엇이나 읽을 듯이 자꾸 쳐다보는데도 서생원은 석고상같이 굳은 표정으로 말하는 사람의 입만 주의해 본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은 뭐라고 히여?"

하고 한편 구석에서 물으니,

"암 그렇구말구, 그런 버릇없는 놈들이 있냐는 둥 부자가 작당코 노인을 때리다니 하늘이 무섭잖냐는 둥 그만 야단이더만."

하고 먼저 사람이 대답한다.

"그리고 웬 허리를 다쳤다고 엄살을 부리면서도 술은 황소 물 먹듯 허더만그려."

"그려도 콧등과 아마에는 흰 분가루 같은 걸 발렀어!"

하고 서로서로 자기도 보고 들었다는 듯이 다투어 말한다.

"지금이 어느 세상이라구 볼기 맞는다든가? 미친놈들."

하고 서생원의 무거운 입문이 열렸다.

"그럼 볼기 맞을랴고 허셨던 그라우?"

"그까짓 윤진사는 뭣이라는 게여? 가짜 진사를 가지고 돈 있다는 세력으로 남 볼기까지 치는만?"

"뭐니뭐니 히여도 술 한잔이라도 얻어먹을려고 그 칙살스럽게 구는 늙은이들이 더 미워 죽겠어."

"사실 지체를 따진다면 윤진사가 노소에 들어갈 자비나 되간?"

모두들 자기 일같이 흥분되어 가지고 떠든다. 이런 중에 먼저 말하던 덕쇠가,

"자―들 그런 이야기보다도 서생원이 만일 볼기 맞는 날이면 가난뱅이 우리들 전부가 볼기 맞는 거란 말이여. 그러니 첫대는 서생원보고 물어 봐야지. 맞으시겠는가 안 맞으시겠는가를!"

"암 그렇지."

하고 이구동성으로 찬성한다.

"미친 사람들, 그런 말을 물어서 무엇에 쓴담. 불문가지지."

하고 서생원이 힘있게 말한다.

"그런데 만일 안 맞는 날이면 윤진사가 서생원의 논을 뗄는지도 모른단 말여."

하고 덕쇠가 더한층 힘을 들여 말하자,

"그러면 가만있을라나?"

"재작년 가을 때만으로 합심해서 덤비지."

"그런 건 걱정 없어."

하고 다 같이 자신 있게 말한다.

방 안에는 힘이 터질 듯이 갑북 차 있는 것같이 모두들 흥분이 되고 밑자리가 들먹거려졌다.

이러다가 서생원보다 여섯 살 아래인 김첨지가,

"자네 모레 장가든다지?"

하고 쉰 목소리로 말을 하자 또다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렇게 화제머리가 돌려지면서 방 안의 긴장도 차차로 풀려지는 것 같았다.

"참, 옷이랑 무엇이랑 모두 가지고 모레 서생원 댁으로 온다지요?"

하고 덕쇠가 진정으로 물었다.

"그렇다네, 인제 홀애비를 면해야겠는데!"

하고 서생원도 웃어 보인다.

"그러나저러나 오래 살으야 할 말이지."

"이번 부인네는 참 얌전허다닝께. 아마 영구히 살 걸요?"

"글쎄 두고 보야 알지."

하고 서생원은 좀 겸손하여 보인다.

 



5

"아버지 아버지, 누가 찾어왔으라우."

하고 딸이 흔들어 깨는 바람에 서생원은 눈을 떴다. 전날 밤은 닭 울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머릿속을 썩이다가 겨우 눈을 붙인 것이 해가 동동 떠오른 뒤다.

"누구여?"

하고 서생원이 기지개를 늘어지게 키고서 방문을 여니 윤진사 머슴이었다.

"접니다. 웬 잠을 여태까지 주무시유?"

"좀 늦게사 잤더니만……."

서생원은 모든 것을 직각하고 얼굴이 찌푸려졌다. 윤진사 머슴은 말을 내놓기가 어려워서 머뭇거리다가,

"저― 그런데 이런 말 전허기가 퍽 안되었습니다만 오늘 저녁때 노소로 오시어서 볼기를 맞으시라는데."

하고 나서 그는 서생원을 정면으로 쳐다보지 못한다.

"자네 그런 말 전할랴면 우리집에 당초 오지 말게. 가소 가. 듣기 싫네."

서생원은 단번에 몰아낼 듯이 성을 내어 가지고 서둔다.

"뭐 그렇게 제게다 화내실 건 없잖어유? 사실 저도 주인댁을 욕하고 싶지 서생원을 잘못이라구는 허잖어요. 저는 밥 얻어먹는 죄로 이 말만 전했으니 그리 알으시기라우. 주인 영감태기가 볼기 안 맞을랴면 뒷일을 생각허라고까지 제게다 당부헙데다만 머 하늘이 뚫어지기야 허겠어유?"

"……"

"저도 여러 말 전하기가 싫으니 그리 알으시기라우?"

하고서는 뒤돌아서 나간다.

머슴이 나가자마자 딸과 아들이 겁을 내가지고,

"아버지 볼기 맞으라니요?"

"아버지 그저께 일 땜에 그렇지요?"

하고 딸은 울려고까지 하는 것을,

"걱정 말고 가 일들이나 하려무나."

하고 서생원은 귀찮다는 듯이 벌떡 일어났다.

간밤에는 그렇게도 의기충천할 듯 기운이 나더니만 이른 아침 윤면장 머슴이,

'뒷일을 생각'하라는 말을 남기고 간 후로는 여러 가지 불행한 일만이 번개같이 지나가곤 하였다. 서생원은 남의 논을 갈아 주면서도 쟁기를 알맞게 댈 줄을 모르고 그저 소가 끌고 가는 대로만 따라가다가 정신을 차리곤 하였다.

기운 저녁때가 가까워졌을 때이다.

"서생원."

하고 정답게 부르는 소리에 서생원은 정신을 차려서 돌아다보았다.

의외에도 한 동리 구장이었다. 그전에는 양반 행세를 한다고 '서서방'이라고 깍듯이 부르던 것을 웬일인지 이날은 '서생원'이라고 정답게 불렀다.

"이리 좀 나오구려."

하고 구장이 부르는 대로 서생원은 논두렁길로 나왔다.

"여까지 웬일이셔유?"

"좀 긴히 헐 말이 있어서…… 오늘은 일기가 매우 좋군! 요새 한참 논갈이할 때라 꽤 분주하겠소그려."

구장은 박람회네 공진회네 요자쿠라(밤벚꽃놀이)네 하는 통에 서울 구경을 몇 번 한 것뿐이건만 말하려면 항상 경조(京調)를 쓰느라고 애를 쓴다.

"바쁘긴 죽게 바쁘지만 어디 실속이 있으야지유. 작년에 고지 얻어먹은 걸 갚니라고 공짜일만 하여 주는데……."

"자, 저기가 좀 앉어서 말하드라구."

하고 구장이 앞서서 가자 서생원도 뒤를 따랐다.

조금 올라서서 보리밭가에 있는 잔디풀을 방석으로 하고 둘이 앉았다.

"여보 서생원, 웬 일을 그렇게도 철없이 한단 말요."

하고 구장은 걱정하듯 한다.

"무엇을요?"

"이왕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가서 볼기 맞는 시늉이라도 허면 되잖소?"

이때야 비로소 구장의 뱃속을 들여다보는 듯하였으나 어쩐지 화를 낼 수도 없을 만큼 구장의 구변은 묘한 힘을 가졌다.

"우리끼리 있으닝께 허는 말이지만 사실 그 진사영감이 성질은 참 괴팍스럽지. 그전의 상 사람이 돈 덕으로 양반 노릇을 허게 되니 그저 양반 대우만 잘 해주면 좋아하는구려. 선의 옛날 원님 정치가 없어진 후로는 누구 한 사람 볼기 친 일이 없는데 자기가 이것을 한번 처음으로 해보겠다는 호기심이란 말이여. 서생원에게 분풀이한다는 것보다도 다만 이기심이지. 그러니 가서 순순하게 맞어만 보우. 도리어 이후로는 서생원을 더 생각헐 터니깐."

구장은 흉금을 털어놓고 비밀 이야기나 하는 듯 말소리를 낮추어서 한다.

"만일 끝끝내 안 듣는 날이면 논 떨어질 것은 물론이고 빚으로 소까지 뺏길 건 빤한 일 아니오? 좀 챙피하더라도 실속을 차려야 한단 말이여. 자 어떻소, 어때?"

이때 서생원 생각으로는 구장의 말 중에서 한마디도 흠잡을 만한 것을 찾아낼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렇겠소' 하고 시원시원 대답하기는 싫었다. 서생원의 이런 맘을 들여다본 듯이 구장은 일어나더니,

"하여간 잘 생각하였다가 내일 아침에 노소로 나와."

하고 의미 없이 웃어 보인다.

"생각은 하여 보겠습니다만……."

서생원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해보겠습니다만이 아니라 난 꼭 믿고 가우."

하고 발을 떼어놓는다.

'남의 일 가지고 저렇게 몸 달을 게 뭐 있단 말인가.'

서생원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을 하자 구장이 추잡하게 보였다.

서생원은 이날 밤은 밖에도 나가지 않고 생각하였다. '만일 안 맞는다면?' 하고 그 뒤에 오는 결과를 생각하였다. 논 일곱 마지기가 떨어지고 다른 사람 논 두 마지기만 남게 된다. 그리고 소를 빼앗기게 된다. 그러면 일년 내내 돈 한푼 돌려 쓸 수도 없다. 새로 아내를 맞아들여서 잘 좀 살아 보겠다는 보람은 영영 깨어지고 만다. 아니 네 식구가 바가지를 들고 문전걸식을 하게 될는지도 모를 일이다. 서생원은 단번에 앞이 캄캄하였다. 윗목에서 검은 끄름을 토하는 석유불이 마치 안개 낀 항구의 뱃불과 같이 몽롱하였다. 볼기 몇 번 맞고 창피당하는 것은 여기에 비하면 그야말로 천양지판이었다.

잠 한소금도 못 이루고 뜬눈으로 날을 샌 서생원은 아침밥을 함께 먹으면서 아들과 딸에게 이렇게 부탁하였다.

"이따가 나 없는 동안에 새 어머니가 오면 어디 급한 볼일이 있어서 나갔다고 그래라. 그리고 잘 대접을 히여."

"예, 이번 오시는 어머니는 참 얌전하다고들 히어요."

하고 딸은 영문도 모르고 반가워한다.

'하필 마누라가 오는 날?'

하고 서생원은 입맛을 다시면서 오래도록 망설이다가 그는 결심이나 한 듯 벌떡 일어났다. 그는 노소를 향하고 걸어갈 때 오래전 자기가 판 소가 도소장에 끌려간단 말을 듣고 불쌍한 맘으로 쫓아가서 본 것이 떠올랐다. 그때 도소장을 향하고 가던 소와 자기가 무엇이 다르냐? 이렇게도 생각되었다.

노소 대문 앞에 이르러 그는 다시 주저하다가 뒤를 한번 돌아보고 나서야 들어섰다. 노소에는 볼기치기를 제일 먼저 주장하였다는 전 부안 군수와 서너 명의 늙은이들이 바둑과 장기를 두고 있다.

맨처음 부안 군수가 서생원을 보더니,

"음, 오는가?"

하고 나서는 박서방(노소지기)을 부른다.

"여보게 박서방, 윤진사 댁에 가서 서서방이 왔다고 여쭈고 또 노소영감님들 모두 오시라구 허게."

"예이."

하고 박서방은 허리를 굽히더니 조심성 있게 물러간다.

제일 먼저 달려온 것이 윤진사와 구장이었다. 윤진사는 서생원을 힐끗 보더니 더러운 것이나 본 듯이 얼굴을 홱 돌리고 지나간다. 뒤이어 노소 영감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여 아홉 명이나 되었다.

구장의 명령으로 뜰 밑에 마당에는 군데군데 떨어진 멍석이 펴졌다. 서생원은 속으로 '대문이나 걸었으면' 하였는데 이것 역시 구장의 명령으로 잠가졌다. 그리고 박서방이 집 모퉁이에서 곤장을 가지고 나오는 것을 보자 서생원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것은 두툼한 판자를 좁게 쪼개어서 손잡이까지 만든 것이다.

늙은이들은 다 각기 원님이나 되는 듯이 높은 마루에 앉아서 파뿌리 수염을 쓰다듬으며 위엄을 보이고 있다. 한가운데는 윤진사가 버티고 앉아 있다.

"멍석 우에 앉게."

하고 전 부안 군수가 턱으로 가리킨다.

서생원은 모든 것을 각오한 이상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멍석 위에 꿇어앉았다. 박서방과 구장은 서생원을 중간에 두고 양편으로 갈라섰다. 서생원은 멍석 위에 앉은 채로 땅 속의 수만 길 속으로 떨어지는 것같이 정신이 아뜩하였다. 이때이다. 대문을 발로 차는 소리가 나자마자 와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대문짝이 떨어져 나자빠진다. 그러자 맨 앞에 덕쇠 그 다음으로 열댓 명의 청년 장년 노년의 헙수룩한 농군들이 살기가 등등해 가지고 몰려온다.

"저게 어떤 놈들이야?"

하고 늙은이들은 소리소리 지른다. 이것을 본 서생원은 전기를 통한 것같이 벌떡 일어나더니 덕쇠를 껴안고 그 넓은 가슴에다 얼굴을 파묻는다. 덕쇠는 서생원을 안은 채 그대로 있고 다른 사람들은 멍석을 한쪽으로 밀어 치우는 둥 널판대기를 뺏어서 팽개치는 둥 법석을 이루었다.

"서생원을 무엇 땜에 볼기 치는 거냐?"

하고 외치자,

"어째 이놈!"

하더니 구장이 이 사람의 뺨을 잘팍 쳤다. 여기에 농군들은 더욱 살기가 등등하여져 마당은 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이런 중에도 서생원은 덕쇠를 붙들고,

"차라리 나를 죽여 주게."

한마디 겨우 하고서는 다시 얼굴을 덕쇠 가슴에 파묻는다.



출전:신동아56(19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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