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성암 / 전문 / 이북명
by 송화은율칠성암 / 이북명
1
오늘도 명찬(明燦)은 칠성 바위〔七星岩〕위에 올라앉아서 연송 담배만 피우고 있다. 도끼로 판 나막신처럼 울룩불룩한 검은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다.
무릎을 세우고 앉아서 바위를 감돌아 흐르는 냇물을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무릎 위에 두 팔을 세우고 두 손바닥으로 턱을 받치고 담뱃대를 물고 등을 구부리고 앉은 명찬은 흙으로 만든 조각 같다.
언제까지든지 명찬은 몸 한번 깐닥하지도 않고 침 한번 내뱉지도 않는다. 담뱃대 꼭지에서 연기가 나지 않는다.
지금 명찬의 눈앞에는 죽은 귀인순(貴仁順)의 환상이 아롱아롱 떠올랐다. 내년 가을이면 세상에서 제일 자랑스러운 자기의 마누라가 될 어린 귀인순의 영혼이나마 이 칠성 바위에 남아 있다면 잠시라도 동무하여 주고 싶었다. 명찬의 눈앞에 떠오른 귀인순은 소복 단장을 하고 머리를 풀고 안개 속에 서 있다. 명찬이가 곱이 낀 눈을 닦고 보니까 귀인순의 환상은 안개와 함께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다. 명찬은 잃어버렸던 귀인순의 환영(幻影)을 바위 밑 물 속에서 보았다.
그것은 너무나 참혹하게 된 귀인순의 볼꼴 사나운 광경이다. 지난 밤 꿈에 본 귀인순의 모양과는 어림도 없다. 명찬의 무릎과 두 손이 발발 떨렸다. 가슴은 훌쩍훌쩍 뛰놀았다. 어젯밤 꿈에 본 귀인순은 소복 단장을 하고 머리를 쪽찌고 명찬의 머리맡에 무릎꿇고 말없이 앉아 있었다. 명찬은 너무나 반가운 김에 이불을 차고 일어나 귀인순을 안으려고 두 팔을 벌리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귀인순의 자취는 연기처럼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다. 행여나 하는 마음에 명찬은 촛불을 켜들고 방 안으로부터 뜰 앞에까지 나가 찾아보았다. 그러나 귀인순의 자취는 간데온데 없다. 명찬은 다시 한번 귀인순의 아리따운 자태를 만나 보려고 자리에 누워서 눈을 감았으나 귀인순의 자태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 물 속을 들여다보는 명찬의 눈은 주린 독수리가 한 마리의 살찐 토끼를 발견하였을 때의 눈같이 긴장하고 정기가 있다. 얼굴의 근육이 푸득푸득 경련한다. 명찬이가 이런 심각한 표정을 하는 것을 본 사람은 이 동리에서는 아직 없으리라.
귀인순의 모양은 한 번 보고 다시 보지 못하게 악착스러웠다. 허리 아래가 찢어진 속곳으로 가려 있을 뿐 귀인순의 몸은 발가숭이가 되어서 물 속에서 떠 흔들리고 있다. 검고 길던 머리채는 오리오리 헤어져서 귀인순의 얼굴을 가린 채 바닷속의 미역처럼 흔들리고 있다. 드문드문 귀인순의 얼굴이 바위 위에 앉은 명찬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그 얼굴에는 차디찬 조소가 떠 있다. 가슴과 팔다리의 살은 군데군데 째어지고 뜯기고 하여서 물 속에서 너풀너풀 흔든다. 명찬의 손가락짬으로 곰방대가 미끄러져 물 속에 떨어졌다. 그래도 명찬은 모른다. 그의 몸은 점점 바윗가로 조금씩 조금씩 움직인다. 그러나 정신이 환장한 명찬은 이것도 모른다. 물 속의 귀인순의 환영을 내려다보는 명찬의 두 눈에는 온 세상이 그믐밤처럼 캄캄하였다. 심장은 푸득푸득 뛰놀았으나 머리는 모든 사색을 끊어 버렸다. 귀인순의 환영은 명찬의 정신과 육체를 완전히 사로잡고 말았다.
명찬은 마치 단거리 선수가 스타트할 때 모양으로 두 손을 바위 위에 세우고 왼쪽 무릎을 꿇고 손에다 조금씩 힘을 주면서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다음 순간 '흑' 하는 기성과 함께 명찬은 큰대자가 되어서 갯물에 뛰어들었다. 물은 깊지 않았다. 물에 뛰어든 명찬은 눈을 지그시 감고 귀인순을 꽉 가슴에 껴안았다. 명찬이가 와들와들 떨면서 눈을 떠보니 그것은 귀인순이 아니라 동그랗고 넓적한 돌이었다.
'음―' 하는 신음 소리와 함께 명찬은 그 돌을 물에 떨어뜨렸다. 혈관이 파열하도록 긴장하였던 그의 육신의 긴장이 순간 비 오는 날 쇠똥처럼 풀렸다.
"호호호호."
명찬은 허황한 소리를 연속 지르면서 다시 칠성 바위 위에 올라앉았다. 바지와 저고리가 폭 젖어서 피부에 착 들러붙었다. 무릎에서 피가 흘러 바지에 발갛게 물들었다. 옷에서 흘러 떨어지는 물과 피가 바위 위를 기어 개에 떨어져 맑은 물에 발간 문을 돋치면서 흘러간다.
"야들아, 곰이 물참붕(참봉)했다."
장난 좋아하는 이웃집 마당쇠새끼가 별것이나 본 듯이 올라뛰며 내려뛰며 하면서 동무를 모아 온다.
"야― 저거 봐라. 곰이 물참붕을 했다."
아이새끼들은 손뼉을 치면서 떠들어 댄다. 이 동리에서는 명찬을 '곰'이라고 부른다. 왜 곰이라고 부르느냐고 물어도 그럴듯한 해석을 들려 주는 사람이 없다.
곰처럼 힘이 세고 못생기고 우둔스럽고 능글능글하기에 곰이란 별명을 붙였다는 것이 동리 사람들의 일반적인 해석이다.
그러나 '곰'이란 소리를 듣고 보면 어딘지 명찬의 행동에는 곰다운데가 있는 듯싶다. 어찌 되었든 간에 명찬이라면 동리에서 모르는 사람이 있어도 '곰'이라면 어린아이들까지도 알았다. 그것은 어떤 종류의 별명처럼 야비하고 조소적이고 경멸적인 감정이 없는 데 반하여 어딘지 믿음성 있고 밉지 않고 다정스러운 감정을 일으켜 주는 별명이다.
"곰이 미쳤다. 미친 곰아."
약속이나 한 듯이 코흘리개새끼들은 돌을 주워서 연송 칠성 바위를 향하여 던진다. 뒤에서 벼락이 치든 돌총이 오든 명찬은 무릎짬에다 얼굴을 파묻고 죽은 듯이 앉아 있다. 어느 아이가 던진 돌인지 명찬의 엉덩이에 가서 맞았다. 뜨끔하기에 명찬은 비로소 얼굴을 돌려 아이놈들을 보았다. 그러나 보았을 뿐이지 아무 행동도 취하자고 안할 뿐더러 그의 얼굴은 흙으로 만든 인형처럼 아무 표정도 없다. 다른 데가 있다면 그것은 명찬이 자신만 아는 가슴의 비애와 원한뿐이겠다. 표정 없는 그의 가슴에서는 뜨거운 불덩어리가 목구멍을 찌르고 솟았다. 명찬은 꿀꿀 하고 목을 울리면서 삼키곤 하였다. 칠성 바위 위의 명찬이, 그것은 의지할 곳 없는 인간의 표본이다. 산에서 나무를 한짐 하여 이고 내려오던 송과부 노파가 이 광경을 보고 나뭇단을 내려 던지고 먼저 아이놈들을 쫓아 버렸다. 동리 아이새끼들에게 대하여서는 송과부 노파는 호랑이였다. 그런 관계로 아이들은 송과부만 보면 곁눈질만 슬슬 하면서 갯가로 산으로 도망질을 치는 것이다.
송과부도 명찬의 참혹한 꼴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아이구 곰아, 글쎄 이게 웬일이냐."
송과부는 칠성 바위를 기어오르다가 미끄러져서 모래 위에 뒹굴었다.
"글쎄 이놈아, 빨리 내리 못 오겠늬?"
송과부는 발버둥을 치면서 고함을 친다. 명찬은 그제야 칠성 바위에서 어슬렁어슬렁 내려왔다.
송과부는 물이 뚝뚝 떨어지는 명찬의 저고리섶을 짜주었다. 명찬의 얼굴은 핏기를 잃고 입술은 거멓게 죽었었다. 피쌀알만씩 한 닭의 살이 몸에 돋쳤다. 초가을 물은 꽤 찼던 것이다.
"이렇게 물참봉을 하구두 춥지 않니?"
송과부도 민망스럽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린다.
"안 춥수다."
이렇게 대답하는 명찬의 얼굴에는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일종 무의미한 표정이 떠올랐다.
송과부는 명찬을 끌고 자기 집으로 갔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송과부가 자기 미친 아들을 끌고 자기 집으로 들어가는 것 같기도 하다. 명찬의 행동은 누가 보든지 미친 사람의 행동이다.
송과부는 발전소 합숙에 가서 모아 온 삯빨랫감 중에서 기름 묻은 공장복 아래위를 끄집어내서 갈아입혔다. 한 치 정도 째어진 무릎에 다는 성냥갑 종이를 뜯어 붙이고 싸매 주었다.
송과부가 명찬에게 대하여 이렇게 친절스럽게 하여 주는 것은 들어 보면 그럴듯한 이유가 있다.
오 년 동안이나 이웃에서 살면서 명찬의 사람됨을 알기 때문이다.
명찬은 빈한한 집 데릴사위 살림을 하면서도 여가만 있으면 남정이라곤 없는 송과부네 무거운 일 가벼운 일을 혼자서 도맡아 보았다. 나무를 하여다는 나누어 주고 뜨락을 청결하여 주고 때로는 물까지 길어 주었다. 봄철에는 으레 송과부네 온돌을 뜯어 고쳐 주고 가을이 되면 정해 놓고 볏짚으로 지붕을 이어 주었다. 해춘하여 밭갈 때가 되면 명찬은 자기 집 산전(山田)과 이랑 하나를 사이에 놓고 있는 송과부네 밭을 하루 한시에 갈아 주고 씨도 한시에 뿌려 주었다. 천성이 유순하고 정직한 명찬은 잡생각을 하지 않고 소같이 쉴 사이 없이 일만 하였다. 이렇게 작심하고 자기 집 일을 돌보아 주는 명찬을 송과부가 소홀히 대접할 리가 없다.
맛난 음식이 생기거나 빛다른 음식을 지으면 꼭꼭 명찬의 것은 간직하여 두었다가 그가 일터에서 돌아오면 불러다가 먹이곤 하였다.
명찬은 늘상 싱글벙글 웃으면서 다녔다. 그 웃음이야말로 아무 걱정 근심 없는 인간의 표정이며 동시에 자랑이었다.
그러던 명찬이가 지난번 홍수에 내년 가을이면 머리를 틀어 얹고 자기 마누라가 될 귀인순과 그의 부모를 물에 잃어버리고 넋없는 사람처럼 매일 갯가로 헤매는 것을 볼 때 송과부는 자기 남편이 세상을 떠났을 때처럼 마음이 쓰리고 아팠다. 벌써 명찬이 때문에 두 번씩이나 눈물을 흘렸다. 남편 죽은 후의 첫 눈물이다. 오늘 송과부는 명찬이 때문에 세 번째 눈물을 흘렸다.
송과부는 얼른얼른 불을 때어 고사릿국을 따끈히 데워서 조밥 한 그릇하고 상에 놓아서 명찬에게 가져다주고 화로에 불을 담아서 명찬의 곁에다 놓아 주었다.
"글쎄 이 미련한 사람아, 그 찬물에는 왜 들어갔니?"
송과부는 숟가락을 쥐어 주면서 핀잔을 준다.
"글쎄 물 속에 무에 있듸? 말을 좀 해봐라."
"귀인순이 물 속에 있습데다."
명찬의 국물을 뜨던 숟가락이 와들와들 떨려서 국물이 무릎 위에 떨어진다.
"이 곰같이 미련한 놈아, 정신이 환장을 했구나. 밤낮으루 죽은 아이를 생각하니 눈알이 좌우 배껴서 돌이 사람이 되어 뵈았구나."
명찬은 국사발을 입에 대고 후― 후― 불면서 마신다. 여전히 얼굴에는 아무 표정도 없다.
"너무 심화를 쓰다가 병이나 들문 어떡하자구 그러니. 젊은놈이 혼자 늙으라는 법은 없니라."
명찬은 송과부의 말을 듣고 앉았다가 별안간,
"어마이(어머니), 정말 혼자 살라는 법은 없소?"
순간 명찬의 험상궂게 생긴 얼굴이 이상하게 틀어지면서 근육이 씰룩거렸다.
"없다. 짐승두 짝이 있는데 사람이 배필이 없겠니."
송과부는 저고릿고름에다 눈을 닦는다. 고름을 적신 눈물 가운데는 자기의 고약한 팔자를 슬퍼하는 눈물도 섞여 있었다.
"어마이, 내 벌써 서른한 살이 아니우."
명찬은 쥐었던 숟가락을 떨어뜨리면서 으흐…… 하고 목메어 울었다.
2
동리 사람들은 명찬을 정신이 조금 부족한 사람이라고 한다. 배 안에 있는 아이도 돈만 보면 뛰어나온다는 세상에서 명찬은 돈이 그리운 줄도 모르고 돈을 그렇게 탐하지도 않는다. 십여 살씩 먹은 계집애들도 발전소 복구 공사장(復舊工事場)에 나가 하룻동안 모래를 이어나르면 육칠십 전을 버는데 명찬은 한푼도 보수도 받지 않고 송과부네 일을 뼈빠지는 줄 모르고 하여 준다. 그나마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진하여 한다. 얄미차고 간사한 동리 사람들은 이런 점으로 보아 명찬을 부족한 인간이라고 한다.
그러나 명찬은 부족한 인간도 아니요 돈을 모를 인간도 아니다. 그는 사람이 그리웠다. 허물없이 자기 친척집처럼 다닐 수 있는 이웃을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사귀고 싶었다. 천애의 고아인 명찬은 아리따운 인정과 친척들 속에서 날마다 해를 보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행복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이 인정과 이웃을 사귀는 데서 그의 활동력은 무한히 커져 갔다.
명찬에게는 철천의 원수가 있다. 그것은 물〔水〕이다. 맑은 물이 아니라 흙물이다. 흙물이 지금에 있어서 명찬을 천애의 고아로 산중에 내버려두고 늙은 총각을 만들어 주었다.
명찬의 부모는 전통적 화전민이었다. 그 당시 용골 안에서도 십여 집 화전민 중에서는 제일 유복한 생활을 하였다. 그것이 지금으로부터 약 십 년 전 일이다. 산지대에는 주기적으로 홍수가 나고 냉환도 들었다.
명찬이가 스물둘 되던 해 여름에 큰 비가 왔다. 고산지대의 비란 한참 내릴 때에는 머리 위에서 물을 퍼붓는 듯이 천지를 뒤흔들어 주면서 쏟아졌다. 산이 패고 풀이 뿌리 빠져서 흘러갔다. 앞은 개요 뒤로 산.
앞 개의 물이 불어서 앞뒷산을 방축삼고 용골 전체를 밀어 가지고 흘렀다. 명찬네와 그 밖의 사오 가족들은 산으로 올라갔다. 늙은이를 부축하고 아이를 등에 업고 산을 올라가는데 와르륵 하고 산이 무너졌다. 흙과 돌, 바위가 무서운 소리를 내면서 굴러 왔다.
"앗!"
하는 사이에 사태는 사람을 휩쓸어 가지고 탁류 중으로 흘러들어갔다.
큰 바위 위의 노송을 껴안은 명찬은 자기도 꼭 죽은 줄만 알았다. 정신을 차려 가지고 산을 내려와서 시체라도 건지려고 갯변을 헤매었으나 그곳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없었다. 이리하여 명찬이만 남고 온 동리는 흘러갔다.
명찬은 부모를 잃고 약혼자 순돌까지 잃고 나니 눈앞이 캄캄하여졌다.
이때부터 오 년 동안 명찬은 방랑의 생활을 계속하였다.
이 산골에서 저 산골로, 이 동리에서 저 동리로, 이 절〔寺〕에서 저 절로, 이렇게 정처없이 다니면서 닥치는 대로 일하여 주고 하루에 세끼의 밥을 얻어먹었다.
이런 희망 없는 생활을 하다가 그가 스물여덟 살 된 해 가을에 박창근(朴昌根)이란 사람의 데릴사위로 들어가서 비로소 희망 있는 생활의 일보를 밟게 되었다. 창근 영감인즉 즉 귀인순의 아버지다. 그때 귀인순은 열세 살이었다. 아직 아무 철 없는 코흘리는 계집아이였으나 그래도 장래의 마누라 될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명찬은 한없이 기뻤다.
창근 영감은 유전의 해소병으로 농사일이라고는 하지 못하였다. 늘상 목에 가래가 걸려서 쿨쿨하면서 자리에 누워 있었다.
그런 관계로 온 집안일은 명찬이가 전부 하였다.
농사일은 물론 지게를 지고 산에 가서는 나무도 하여 오고 산나물이 날 때에는 바구니를 들고 나물 뜯으러 갔다.
그렇게 산으로 다니면서 좋은 자리를 택하여 화전을 만들었다. 명찬이가 오늘까지 만든 화전은 다섯 군데다. 그 다섯 군데의 총평수는 천 평이 훨씬 넘는다. 지금에는 일년을 먹고도 콩말씩이나 팔아서 가용을 쓴다. 산에 가서 하루 종일 일하고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귀인순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 한없이 마음의 위안이 되었다.
설거지를 하는 귀인순을 뚫어지게 바라볼 때 귀인순이 새쪽 웃기나 하면 그날 밤은 웃음으로 집이 흔들흔들하여서 깊은 잠을 들지 못하였다.
남의 눈이 아니면 귀인순을 꽁무니에 꿰어차고 다니고 싶었다. 명찬에게는 귀인순은 산에 핀 개나리꽃보다도 곱게 보였다. 명찬의 세계에서는 제일 귀여운 귀인순이었다. 귀인순만은 그의 희망의 봉이요 행복의 원천이었다. 얼른 컸으면 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한다.
산에 올라 나무를 하다가 문득 귀인순의 생각이 나면 손에 쥐었던 낫을 내던지고 나무 근거리에 앉아서 앞날의 공상을 하여 보았다. 고요한 산중은 명찬의 공상의 세계였다.
산비탈 양지쪽에 네 치 기둥으로 집 한 칸 세우고 귀인순과 단둘이 살면서 부모를 섬길 수도 있겠지. 머리를 틀어 얹고 노랑 저고리에 남 치마를 입히면 귀인순은 세상에서 제일 이쁜 여자가 될 것이지. 흰 고무신도 사달라고 하겠지. 그럴 때에는 선선하게 일 원짜리 한 장을 내주어야지. 내가 밭에 갔다 좀 늦어지면 걱정하여 마중 나올 테지, 그때는 안 나오문 일없소 하고 핀잔을 줄 테야. 그러면 귀인순은 새쪽 웃으면서 그래두 걱정이 돼서 나왔소 하고 저고리고름을 입에 물고 몸을 한들한들 흔들 터이지, 그때는 안구 오나 업구 오나?
너무 또 이렇게만 해두 못쓰지. 응석을 부리니까 드문드문 호령도 해야지. 술을 건주히 취하여 가지고는 헛주정을 부려야지. 이년 남편이 술취해 들어오는데 마중도 안 나와? 하고 음성을 높여 보아야지. 에구 나는 몰랐수다. 다시는 안 그러겠소다! 이렇게 미안해하면서 내 곁으로 와서 나의 손목을 잡아 자리에 눕혀 줄 테지. 에구 좋아라!
이런 꿀 같은 살림을 한 해만 하면 아들을 낳겠지. 똑똑하구 울지않고 예쁜 놈일 게다. 나두 과히 밉게 안 생겼지만 귀인순이야 여북 예쁠라구. 이때가 되면 밭도 몇천 평 내 소유가 되겠다, 먹을 것이 걱정 없단 말이지. 예쁜 마누라가 있단 말이지. 지살이 오동오동 찐 귀여운 아들이 있단 말이지…… 세상에 이런 훌륭한 팔자를 타고난 놈이 또 어디 있을라구. 귀인순이 머리를 틀어 얹으면 무어라고 부를까? 귀인순이라고는 못 부를 것.
'마누라'라구 부를꼬? 그것은 좀 어색하다.
'큰덕?' 이것두 좀 부르기에 무엇무엇한데.
그저 얼른 아이를 낳아야지. '순돌 어미'든 '칠성바우 어미' 하고 부르기 쉬울 텐데…… 공상은 꼬리를 물고 자꾸만 명찬의 머리에 떠올랐다.
"히히히히히."
하고 명찬은 가슴을 안고 한참 웃다가 다시 낫을 쥐고 나무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나 어린 귀인순은 명찬의 마음의 백분지 일도 명찬을 알아주는 것 같지 않다. 도시의 처녀라면 십오륙 세부터 이성을 알기 시작하지만 용골 안에서는 아직 용골 밖으로 나가 보지 못하고 자라난 귀인순은 아직 천진난만한 가연의 소녀였다. 나 먹고 험상궂게 생긴 명찬을 볼 때 앞날의 자기 서방이라는 것보다도 자기 집 일꾼이라고 생각하였다. 귀인순의 눈으로 본다면 명찬의 얼굴에서는 벌써 청춘의 팔팔한 기색은 사라져 버렸다. 늙은이 축에 드는 사람이었다.
귀인순이가 드문드문 명찬을 보고 웃는 것은 그에게 교태를 보자거나 또는 말못할 애정을 표현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 먹은 명찬이가 입을 벌리고 혀를 내밀고 그 나에 맞지도 않는 표정으로 느물거리는 꼴이 우스워서다.
수건이나 내복을 빨아 달라고 내놔도 귀인순은 본숭만숭한다. 어머니한테서 한바탕 책망을 듣고야 할 수 없이 빨아 주었다.
이 모든 귀인순의 행동은 결코 도시의 처녀의 그런 행동과는 성질이 당초부터 다른 것이었다.
남자가 무섭다는 일종의 공포심으로 발생하는 철없는 산골 처녀의 본능이었다. 그러나 사춘기로 들어가는 처녀의 심리 변화란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시간이 해결지어 주었다. 작년 겨울까지도 명찬을 자기 집 일꾼으로 생각하고 아무 이성에 대한 감정이 손톱눈만치도 없던 귀인순은 금년 봄 봄바람이 용골로 불어들면서부터 갑자기 어른스러워지고 명찬을 대하는 태도도 훨씬 달라졌다. 열여섯 살로서는 육체가 아주 발달된 축이다.
명찬이가 산에 갔다가 늦게까지 안 돌아오면 자는 어머니를 깨워가지고 솔갱이불을 들고 산길을 마중 갔다. 감자를 삶아도 제일 굵고 맛있어 보이는 놈으로 골라 명찬의 주발에 담아 두었다. 명찬은 벙어리 예장을 받았을 때 모양으로 빙글빙글 웃기만 하면서 한 개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먹어 버린다. 어머니가 삶은 감자보다는 그 맛이 꿀 같았다.
아무리 이 세상에 애처가 있다고 하여도 아내가 물 길러 갈 때(물 길러 다닐 줄 모르는 부인을 가진 이는 별로 없지만) 발끝이 돌에 채어 넘어지겠다고 돌을 모조리 파내 버리고 모래를 지게에 져다가 깔아 주고 매일 아침 비로 쓸어 주는 남자는 없을 것이다. 명찬은 본땅 바탕이 돌로 된 용골에서 귀인순이 제일 세차게 다니는 길의 울국불국한 돌은 모조리 파내고 갯판에 가서 하얀 모래를 종일 메어다가 길에 펴주었다. 그뿐인가, 빨래하러 개로 오르내리기에 괴로워한다고 편석으로 계단을 만들었다. 명찬은 귀인순의 종이며 귀인순은 명찬의 천사였다.
귀인순이 꽃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명찬은 길에 흘러 있는 마른 소똥을 하루 종일 주워다가 뜰 앞 한구석에 화원을 만들어 주었다. 금년 여름에 화원에는 봉선화, 산나리꽃, 진달래꽃, 그 밖에 이름 모를 산꽃들이 만발하였다. 귀인순은 짬만 있으면 화원 앞에 섰다. 명찬은 귀인순이 꽃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산에 가서는 별별 꽃나무를 뿌리째로 파다 심었다. 꽃밭 앞에 선 귀인순은 어느 때보다도 한층 더 예뻤다.
"이것 어디 심을까?"
명찬은 지게에서 조심조심히 꽃나무를 내려 가지고는 귀인순에게 물었다.
"무슨 꽃이우?"
귀인순의 얼굴에는 꽃보다도 예쁜 미소가 떠올랐다.
"글쎄 나두 모르지!"
명찬은 이런 좋은 기회에는 쓸데없는 말이라도 길게 붙여 보려고 애를 쓰나 삼십 평생에 젊은 여자에게 한마디 말이라고는 붙여 보지 못하고 자라난 명찬이라 가슴이 울렁거리면서 말문이 막혀서 그냥 지게를 들고 뒤뜨락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다가 바로 큰물 난 한 달 전 동흥리 장날이었다. 명찬은 산나물을 한 짐 지고 삼십 리 밖에 있는 장으로 팔러 나갔다. 이 원 사십 전을 받았다. 명찬은 사 년 만에 처음 귀인순의 저고릿감을 한 감 끊었다. 노랑빛 인조견이다. 그리고 옥돌 비녀를 하나 샀다. 아버지를 위하여 도야지 고기 한 근까지 사고 나니 수중에 남은 돈이 일 원 삼 전뿐이었다. 명찬은 그 돈에서 이십 전 어치 술을 사먹고 늦은 저녁 때에야 장마당을 떠났다.
이날 밤은 보름달이 명랑하였다. 명찬은 꼬불꼬불한 산비탈길을 걸으면서 흥겨워서 코타령을 불렀다.
귀인순이 얼마나 기뻐할까 하고 생각하니 얼른 뛰어가고 싶었다.
명찬이가 외나무다리 목에 왔을 때다.
"이제 오시우."
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 발을 멈췄다. 달빛에 바라보니 늙은 소나무 밑에 귀인순이가 오도카니 서 있지를 않은가.
"아, 이런……."
명찬은 너무나 반가운 김에 말문이 막혀서 혼난 소리를 치면서 귀인순을 바라보다가 뛰어가서 귀인순의 앞에 섰다. 명찬은 어느새 귀인순의 손목을 쥐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것이 부끄러워서 얼른 손을 떼고 한 걸음 물러섰다.
"집에 있지. 이 멀리꺼정……."
명찬은 가슴이 떨려서 말할 수가 없었다. 둘이 이렇게 조용한 틈을 타서 만난 것은 사 년 만에 처음이다.
"암만 기다려두 오는 치 없어서 나왔수."
귀인순은 머리를 숙이고서 저고리고름을 깨문다. 모기떼가 앙 울면서 달려든다.
"어마이가 마중 가랍데까!"
명찬은 누가 보지나 않나 하고 사방을 휘 돌아본다.
"아―니."
"그럼 아버지가……."
"아―니."
"그럼 뉘가……."
명찬은 모기를 쫓으면서 용기를 내어 물었다.
"날루 왔지요."
"무섭지 않소?"
"아―니."
귀인순은 머리를 들었다. 눈과 눈이 마주쳤다. 귀인순이 방긋이 웃으면서 달을 쳐다본다. 동그란 달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말없이 흐르고 있다.
"으흐……."
명찬이도 달을 쳐다보면서 울음도 웃음도 같지 않은 기성을 질렀다.
달밤에 가까이 세워 놓고 보니 다 자란 귀인순이다. 양어깨가 쩍 벌어지고 키도 훨씬 커져 보이고 몸집도 후하다. 어디로 보든지 미추룸하게 다 자란 처녀다.
"참 내가 잊었군."
명찬은 달을 쳐다보면서 웃다가 귀인순의 저고릿감과 비녀 생각이 났다.
"이거 무에유?"
귀인순은 신문지에 싼 것을 받으면서 물었다.
"펴보문 알지."
"글쎄 무에유?"
"글쎄 펴보문 안다니까."
명찬은 꽤 대담하여져서 느물거린다.
귀인순은 조심조심히 신문지를 편다. 거의 폈을 때 옥돌 비녀가 미끄러져 모래 위에 떨어졌다.
"아뿔싸!"
"에구."
명찬이와 귀인순의 놀란 소리는 거의 동시였다. 명찬은 얼른 주워가지고 달빛에 보았다. 다행히 상처는 없다.
"큰일날 뻔했군."
명찬은 옥돌 비녀를 적삼 소매에 닦아서 귀인순에게 주었다.
귀인순은 오른손에 노랑 비단 왼손에 비녀를 들고 번갈아 보면서 기뻐한다. 명찬은 손으로 모기를 쫓아 준다.
"참 빛두 곱다. 한 감에 얼마유."
"얼마나 주었겠소? 어디 값을 맞춰 보오."
명찬은 장에서 산 궐련 한 대를 피워 물고 귀인순의 곁에 나아선다. 이 한밤을 새도록 이 자리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이 다리를 건너 조금만 걸어간다면 오돌네 집이다. 그 집부터는 드문드문 집이 있다. 거기에 가면 남이 볼까 두려워서도 귀인순과 이야기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명찬은 늦는 줄은 알면서도 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귀인순에게 말을 붙인다.
"열 냥(이 원)이나 주었수?"
"예, 그러 주었소."
명찬은 귀인순이가 자기 상상보다 훨씬 좋은 천으로 값때리는 데 만족하여 어름어름하게 대답하였다.
"이 비내(비녀)는 얼마우?"
"그것두 값을 맞춰 보오."
"얼마나 주었을꾸? 이기 돌이우?"
"암 그렇지. 우리 죄선(조선)에는 그런 돌이 없다오. 저― 청국에서 나오는 돌인데 옥돌이라오."
명찬은 그 돌이 무슨 돌인지 몰랐다. 늙은이들에게서 얻어들은 돌이야기 중에서 생각나는 대로 이렇게 말을 한 것이다.
"참 곱다. 비싸겠수다."
"그래두 안 비싸, 두 냥 반(오십 전)이야."
명찬은 이렇게 값을 높여 놓고는 소나뭇가지를 꺾어 들고 모기떼를 몰아친다.
"볼소, 비내를 안 사문 일 있소?"
귀인순은 비녀를 어루만지다가 갑자기 부끄러운 생각이 났다. 그래 명찬을 가늘게 핀잔 주었던 것이다.
"그런 비내를 사기 쉽소. 한번 머리 틀구 꽂아 보오, 흐……."
명찬은 자기 말이 자기도 부끄러우면서도 우스웠다.
"싫소."
"머 내년 가을이문 머리를 틀겠는거 한번 틀어 보오."
"싫소."
귀인순은 홱 돌아섰다. 삼단 같은 머리태가 엉덩이까지 드리웠다.
"글쎄 한 번만 꽂아 보라니까."
"안 꼽겠소."
"아무두, 보지 않는데, 한 번만……."
명찬은 귀인순의 어깨를 잡아 돌려 세웠다.
"열해(부끄러워)서……."
"열하긴 무에 열해, 내가 있는데……."
귀인순은 비녀를 입에 물고 줄먹거린다.
"글쎄, 서방이 섰는데 무에 열해서……."
"그럼 저리루 돌어서요."
명찬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돌아서 달을 쳐다보는 척하면서 곁눈은 귀인순이 머리 트는 모양을 도적하여 본다. 세 번이나 고쳐 틀고 하더니 비녀를 가져다가 꽂았다.
비녀를 머리에 꽂는 것을 보자 명찬은 돌아서 귀인순의 양팔을 붙잡았다.
"이거 놋수, 열해 죽겠소."
귀인순은 머리를 숙였다. 비녀를 꽂은 머리는 어떤 여자의 것보다도 크고 아름다워 보였다. 명찬은 달빛에 비녀 꽂은 머리를 불붙는 듯한 눈으로 내려다보고 섰다. 그 순간 그는 온 세상의 행복을 혼자 독차지한 듯한 만족감을 뼈가 저리도록 육신에 느꼈다. 이냥 온 세상이 영원히 고요하고 달 밝은 밤이 되어 주었으면 하였다.
"이거 놔주."
귀인순은 손을 빼자 얼른 비녀를 뺐다. 머리태는 저절로 풀려서 등에서 굽실거린다.
"머리를 트니 더 이쁘군, 히……."
명찬은 흐르는 침을 꿀떡 하고 삼켰다. 어디선지 개가 짖는 소리가 들렸다.
"이전 가볼까."
명찬은 앞서 걸었다.
명찬에게는 일생을 두고 잊히지 않는 하룻밤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제일 귀여운 여자가 귀인순이고 세상에서 제일 행복스러운 남자는 귀인순의 남편 될 사람 자기라고 생각하였다.
"빨리 내년 가을이 왔으면 좋겠지?"
명찬은 귀인순을 돌아보면서 웃었다. 귀인순은 고개를 약간 끄덕 하면서 머리를 숙였다.
말없이 걷는 명찬이와 귀인순은 영화 '대지'에 나타나는 왕룽과 아란을 연상시켜 주었다.
3
부전봉(赴戰峰) 위에 시꺼먼 구름이 떠돌기 시작한 것은 십삼일날 석양이다.
부전봉 위에 검은 구름이 뜨면 비가 온다. 이것은 긴 세월을 두고 경험하여 온 산사람들의 기상학이다.
나물 캐러 갔던 명찬이와 귀인순은 대충 뜯어 가지고 집으로 내려왔다.
아니나다를까 부전봉 일대를 회색의 운해가 덮어 버리더니 천지가 어두컴컴하여지면서 콩알만큼씩 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비는 한참 동안 콩볶듯이 내리붓더니 그쳤다. 그러나 산사람들은 그것으로써 안심하지는 않았다. 온 하늘을 덮었던 검은 구름은 부전봉을 향하여 경주나 하듯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새들은 제 집으로 날아들고 도야지가 우리를 뛰어나자고 고함을 친다. 큰비 올 징조다.
비는 다시 오기 시작한다. 이번은 보슬비다. 내리며 그치면서 십오일날 석양까지 계속이 되더니 갯물이 흐리기 시작하였다.
명찬은 할 일도 없고 해서 그물을 들고 갯가로 나갔다. 흙물을 먹은 고기들은 물살이 세니까 갯가로 몰려 나왔다.
명찬은 잠방이 하나만 입고 고기를 떴다. 그물을 풀뿌리에 대고 발로 풀뿌리를 막 밟았다. 숨어 있던 고기들이 달아나다가 그물에 걸리곤 한다.
한번 뜨기만 하면 '버들개', '곤돌모기', '뚝쟁이'가 사오 마리씩 걸렸다.
명찬이뿐 아니다. 갯판에는 여기저기서 고기 뜨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산골 물에 무슨 고기가 있겠다고―---생각하는 이도 있을 터이나 사실인즉 상상 이상으로 고기가 많았다. 그 맛이란 셋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만하다.
명찬은 풀뿌리가 잘 보이지 않을 때까지 갯가를 오르내리면서 고기를 떴다.
큰놈 작은놈 합하여 한 되 반이나 떴다.
절반이나 집에 내놓고 조금은 송과부를 주고 나머지를 가지고 마당쇠네 집으로 갔다. 마당쇠 아비는 풀풀 뛰는 물고기를 보더니 마당쇠에게 됫병을 주어 술 사러 보냈다.
명찬이가 얼근드레 술이 취하여 집에 돌아왔을 때부터 비는 소리를 치면서 쏟아졌다. 천지를 뒤흔들어 주는 빗소리는 물소리와 어울려서 용골 일대를 한입에 삼켜 버리려는 듯하다.
"이게 무슨 비가 이렇게 오나. 무진년 창파에두 이처럼 하더니……."
병석에 누운 귀인순 아버지의 걱정하는 소리다.
"그런 물이 또 나겠수, 하눌 생겨 한 번이지."
명찬은 이렇게 말하였으나 자기도 마음 한구석으로 걱정이 되었다. 흙물을 미워하는 그의 마음은 때로는 비까지 미워하였다. 한잔 건수히 마시고 베개 베고 누워서 빗소리를 듣는 명찬의 머리에도 십 년 전 여름의 일이 떠올랐다. 부모와 약혼자 순돌 그리고 동리 사람 십여 명이 성난 탁류에 삼켜져 버렸던 그때의 광경이 눈앞에 아롱아롱 나타났다. 명찬은 웬일인지 졸음이 오지를 않았다. 하도 물소리가 굉장하게 들리기에 솔갱이불을 삿갓 밑에 들고 밖에 나가 보았다.
흙물은 고기를 뜰 때보다 두 자는 잘 불었다. 비가 아니라 물덩어리 그대로다. 머리 위에서 물을 퍼얹는 듯이 삿갓을 내리때린다. 캄캄한 밤이다. 명찬은 한참 물가에서 원망스러운 눈으로 탁류를 내려다보다가 집 안으로 들어갔다. 무서운 밤이다. 이튿날 아침에 동리 사람들은 가재도구를 꾸려서 산으로 옮겼다.
명찬은 자기 집이 동리에서 제일 높은 데 있는 것을 믿고 짐을 꾸리지 않았다. 그날 점심때에야 그렇게 세차게 오던 비가 좀 그쳤다. 회색 하늘에서 히슥히슥 흰구름이 군데군데 보였다.
명찬은 아주 안심하여 버렸다. 동리 사람들도 하늘을 쳐다보고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면서 성급하게 가재 도구를 산에서 지게에 지어 내렸다. 아― 그러나 하늘이 이 무지하고 불쌍한 화전민들을 속일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동리 사람들은 마음을 턱 놓고 못 잔 잠을 깊이 들었다.
그칠 듯하던 비는 용골 사람들을 깊은 잠을 들여 놓고 다시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갯물은 낮에 비하면 줄었다. 용골 사람들은 웃비가 오지 않아서 물이 불지 않을 줄만 알았다.
비는 용골의 모든 것을 파가지고 나갈 듯이 쏟아진다.
"비 더 오는데두 가만 앉었구!"
귀인순은 툇마루에 나가 하늘을 쳐다보고 들어와서 명찬을 흘겨보면서 핀잔을 준다.
"웃비가 안 오기 다 걱정 없지."
명찬은 싱글싱글 웃으면서 담배만 피운다.
"하늘두 밑이 빠졌는지 무슨 비가 이렇게 오누."
꾸벅꾸벅 졸던 귀인순의 어머니가 딸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이렇게 중얼거린다.
바람이 불기 시작하였는지 빗방울이 간을 두고 와락와락 문풍지를 때린다.
천지가 소연한 가운데 캄캄한 밤은 깊어 간다.
조금 후다. 명찬은 쏴― 하는 소리를 듣고 뛰어 일어나서 앞문을 열어 보았다. 그러나 그 소리는 집 뒤에서 들리는 소리 같았다.
명찬은 솔갱이에 불을 켜들고 뒷문을 열고 나섰다.
앗! 명찬은 깜짝 놀랐다.
뒷산에서 사태가 나서 토사가 암석을 굴려 가지고 흘러 온다.
"산태가 났소."
명찬은 비호같이 뛰어들어와서 귀인순을 껴안고 밖으로 나갔다.
"이 사람아, 우리를 어떻게 하라니."
장모의 비명이다. 그러나 명찬은 그 소리를 못 들었다. 명찬은 귀인순을 안고 앞길에 나섰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갯물이 갑자기 불어서 아래윗길을 끊어 가지고 갔다.
피하려야 피할 수가 없다. 바람이 산을 울리면서 지나간다. 용골의 사람들은 깊은 골 안에서 큰 사태가 나서 격류를 막아 버려서 물이 불지 않은 줄을 몰랐다.
토사에 막혀 찰 대로 차 있던 물이 길을 트고 불시에 내리밀었던 것이다.
앞으로도 뒤로도 피할 수가 없이 되었다.
기세를 얻은 탁류는 용골의 전부를 삼키고 으르렁거리면서 흐른다. 물 속에서 바위가 구르는 소리가 쿵쿵 하고 들린다.
명찬은 귀인순을 칠성 바위 위에 올려놓았다.
"여게서 깐닥 해두 못 쓰오."
명찬은 미친 사람 같았다.
"빨리 들어가서 아바지 어마이를 데리구 오우."
귀인순은 엉엉 울었다.
명찬은 물을 차고 집으로 뛰어들어갔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부축하여 가지고 나왔다.
명찬은 아버지를 등에 업고 어머니의 팔을 끌고 나왔다. 동시에 아버지가 무어라고 볼 부은 소리를 하였으나 명찬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비도 점점더 퍼붓는다. 인간들의 당황하는 꼴이 재미스러워할 짓인 듯도 하고 또는 죄 많은 인간들에게 큰 벌을 주는 듯도 하였다.
네 식구는 칠성 바위 위에다 몸을 싣고 운명을 하늘에 맡겼다.
와지끈 하는 소리가 나더니 집이 무너져서 떠내려간다. 명찬은 마지막이 왔다고 생각하였다.
귀인순과 어머니가 울음을 냈다.
"이거 그치오. 사람이 죽겠다는데."
명찬의 거센 소리에 모녀는 울음을 그쳤다.
모두가 탁류다. 남아 있는 것이 오직 네 운명을 실은 칠성 바위뿐이다.
아버지는 비를 맞더니 천기가 돌아 바위에 누워 금방 죽어 가는 듯이 기침을 하면서 신음한다. 그러나 누구 하나 돌보지 않는다.
명찬은 손을 내밀어 귀인순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명찬은 귀인순을 자기 바로 곁에 세웠다. 그 다음에 어머니가 섰다. 죽어도 함께 껴안고 죽자는 것이다.
아버지도 숨이 있는지 없는지 엎드려 있다. 어머니가 앉아서 머리를 자기 무릎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이런즉 어찌하랴! 물은 칠성 바위를 넘는다.
명찬은 자기 바지띠 끝으로 귀인순의 팔목을 단단히 매었다. 그러고 나서 아버지를 부축하여 세웠다. 그러나 아버지는 물이 급하기보다도 냉한에 견디지 못하였다.
"사람 살리오."
어머니가 고함을 쳤다. 그러나 그 소리를 들을 사람도 없으려니와 그 소리는 지르자마자 물소리에 삼켜져 버렸다.
두 번째 어머니가 사람 살리오 하고 고함을 쳤을 때다. 아버지가 바위에서 미끄러져서 곤드라지는 것을 어머니가 날쌔게 손목을 잡았다. 잡기는 하였으나 물살에 밀려 둘이 함께 바위 위에 넘어졌다.
"어마이."
하고 귀인순이가 놀란 소리를 지르면서 허리를 굽혀 어머니의 손목을 잡으려고 할 때는 어머니와 아버지는 얼싸안은 채로 탁류에 삼켜져 버렸다. 어떻게 물살이 센지 미처 손쓸 사이가 없었다.
"어마이, 아바제."
귀인순은 물장구를 치면서 목을 놓아 울었다. 물은 이미 무릎을 스치고 지나간다. 혼자서도 몸을 견디기가 어렵다.
"울기는 왜 울어."
명찬은 호령을 하면서 귀인순의 몸을 껴안았다. 견디기가 어렵다. 명찬은 아무것도 생각지 않았다. 귀여운 귀인순까지도 지금에는 큰 짐이 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명찬은 죽을 힘을 다하여 몸을 버텼다. 귀인순은 울지도 않고 아무 소리도 없이 명찬의 가슴에 안겨 있다. 귀인순은 그때 정신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바로 그때다. 명찬의 다리에 물럭물럭한 것이 철석하고 걸렸다. 그바람에 명찬은 귀인순을 안은 채 앞으로 넘어졌다. 명찬은 한쪽 손으로 다리에 걸린 물건을 밀쳐 버리려고 물 속에 손을 찔렀다. 순간 명찬은 전기에 감전되었을 때처럼 정신이 아찔하여졌다.
명찬이가 물 속에서 쥔 것은 틀림없는 상투다. 주검이 다리에 걸렸던 것이다. 명찬은 죽을 힘을 다하여 일어났다. 그는 귀인순이가 자기의 가슴에 안긴 줄도 잊고 두 손으로 주검을 밀쳐 버렸다. 동시에 명찬의 허리가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을 때처럼 가쁜한 것을 깨달았다.
"앗!"
귀인순이가 간데온데 없다.
"아이구."
명찬은 한마디 비명을 지르고는 바위 위에 무릎을 꿇고 눈을 감았다. 그 다음 명찬은 어떻게 되었는지 어떻게 하여 떠내려가지 않았는지 전연 모른다. 웬만한 신체를 가진 사람이라면 심장마비를 일으켜서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명찬은 곰같이 튼튼하였다.
명찬이가 정신을 차린 것은 이튿날 점심때다. 얼었던 몸이 풀리고 등이 뜨거워나기에 그는 비스듬히 눈을 떠보았다. 비 오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개고 태양 광선이 눈부시게 용골을 쏘아 준다.
그 영악스럽게 으르렁거리던 흙물도 절반 이상 줄었다. 건너다보니 조금 남은 길에는 사람이 모여서 무에라고 손짓을 하면서 떠들어 댄다.
그러나 아직 물살이 세어서 칠성 바위까지 들어갈 수가 없다.
명찬은 이제는 살았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일어나려고 하다가 기운없이 바위 위에 쓰러졌다.
또 정신을 잃었다. 명찬이가 송과부네 집에 구출된 것은 그날 석양이다. 마당쇠 아비가 허리에 밧줄을 매고 들어가서 구하여 낸 것이다…….
송과부의 두터운 간호로 일주일 만에 명찬은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의 정신은 혼돈하였다. 웃음을 잃고 희망을 빼앗기고 날마다 미친 사람처럼 칠성 바위에만 올라앉았다.
다시는 마누라가 생기지 못하리라고 절망하는 명찬의 기운 없는 모양을 보고 동리 사람들은 같은 말로 위로하여 주었다.
"걱정 말게. 그래두 여편네가 생길 테니."
그러나 명찬은 그 말이 조금도 반갑지 않았다.
날마다 귀인순의 자취를 찾아 칠성 바위에 올라앉았다. 천근같이 무거운 한숨이 쉴 사이 없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
"차라리 그때 같이 죽어나 버렸드문!"
명찬은 삶에 대한 희망을 모조리 던져 버렸다.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행복스럽다고 자신하던 명찬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4
남자나 여자나 혼자 살라는 법은 없나 보다. 석 달이 못 되어 명찬이가 처녀장가를 갔다.
하루 내가 일터에서 돌아오니까 송과부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영남이 아부지, 오는 스무날 잔치 보러 오우."
하면서 반가워한다.
"잔치라니요?"
나는 도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곰이 장가를 가지 않수."
"곰?"
"아 명찬이 말이오. 열야들 살 되는 처년데 인물 잘났고 참 똑똑하다오."
나의 아내가 설명하여 준다.
"그거 참 반가운 일이오."
그렇다. 노동할 수 있는 건강한 자는 혼자 살 수도 없고 혼자 살라는 법도 없나 보다.
잔칫날 난 일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봉투에 넣어 가지고 잔치 보러 갔다.
명찬은 나를 보더니,
"선상님 오셨소."
하면서 손을 비빈다. 구변이 없는 그의 반가워할 때 쓰는 표정이다.
"반갑소."
나는 봉투지를 내주면서 인사하였다. 나도 진심으로 반가웠다.
"선상님, 이거 이러지 않으문 일있수."
명찬은 두 손을 내밀어 봉투를 받았다. 그의 얼굴에는 웃음과 행복의 빛이 숨길 수 없이 그늘지고 있다. 나는 더운 국수 한 그릇을 맛있게 먹고 잔칫집을 떠났다. 명찬은 나를 대문 밖까지 바래주었다.
'명찬의 아내 되는 여자는 얼마나 행복스러울까.'
나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명찬이만은 이 세상의 뭇 남성들 가운데서 누구보다도 제일 자기 아내를 사랑하여 주리라.
며칠 후에 나는 명찬이가 일하는 발전소 공사장에서 점심밥을 이고 나온 그의 아내를 보았다. 얼굴이 넓적하고 키가 크고 몸집이 뚱뚱한 여자다. 곱지는 못하나 미운 얼굴은 아니다. 상글상글 웃는 얼굴에는 건강한 빛이 붉게 나타나 있다.
"행복스러운 부부고나."
나도 마주 서 무어라고 소곤거리며 그들의 앞날에 행과 복이 많기를 빌었다.
출전:조선문학16(19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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