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사람들 / 전문 및 해설 / 이근영
by 송화은율고향 사람들 / 이근영
겨울 내내 눈 한 잎 비 한 방울 떨어지지 않고, 강추위만 계속하다가, 며칠 전 눈이 한 자 가량이나 쌓이게 되고 바로 비가 이틀 동안이나 주룩주룩 퍼부었다. 그러잖아도 병자년 흉년보다 더 지독한 해를 겪은 그들은, 눈만 뜨면 하늘을 바라보고 마음 졸이는 것이 그날 그날의 일처럼 되었다. 이렇게 초조한 그들이 눈과 비를 흠뻑 받았으니 집마다 경사나 치른 듯이 웃음결이 떠올랐다. 눈 쌓인 위에 비가 와서 길이란 길은 발목까지 폭폭 빠지건만 사람들은 밖에 나오는 것이 하늘에 대한 인사나 되는 듯이 골목마다 사람으로 붐비었다.
허참판네 집 머슴 사랑방에 들어오는 사람은, 누구나 방문을 열면 인사하는 것보다도, 흙물에 빠진 버선이나 양말을 벗는다. 방 윗목에는 줄을 매어 놓고 양말과 버선이 죽 널려 있다. 그 아래에는 떨어지는 물을 받느라고 짚이 제법 두툼하게 깔려 있다.
"어 땅도 지독허게 질다. 날이 추웠으면 얼기나 허지."
점쇠는 맨발로 들어서더니 머리에 동였던 수건을 풀어 물기를 닦고서는 수건을 줄에 넌다.
"점쇠가 어째 오늘 밤은 늦었어?"
아랫목에 앉았던 봉갑이가 인사 대신 이렇게 말하자 모두가 점쇠를 돌려본다.
"젠장, 허고헌 대낮을 두고 하필 밤중에 닭을 잡으라고 혀서 늦었구먼. 자긴 첩네 집에 가 자고 보신약은 큰마누라 집에 와 먹구…… 그러니 큰마누라 속은 얼마나 뒤집히겠는가베."
하며 점쇠는 사람 틈을 비벼 뚫고 화롯가에 앉는다.
일이 없는 사람은 화롯가에 삥 둘러앉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뒤켠에 자리를 잡고 짚세기를 삶거나 새끼를 꼬거나 삼태미를 엮거나 한다. 유생원만 통나무 목침을 베고『조자룡전』을 보고 있는 것이 유달리 눈에 띈다.
"유생원, 이야기책은 왜 속으로만 보슈?"
점쇠가 묻는 말에 그는 목쉰 소리로 겨우 알아들을 만하게,
"목이 잔뜩 쟁겨서 그러네."
하고 미안하단 의미로 소리 없이 웃는다. 다른 때 같으면 유생원을 화롯가 일등석으로 모셔 놓고 육자배기조(調)와 단가조를 번갈아 가며 멋들어지게 읽는 이야기 소리에 방 안은 짝 소리 없을 것이건만 이날 밤은 혼자 보는 이야기책이라 유생원이 소용 없게 되었다.
화롯가에서는 모두가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데 석만이만 잠자코 무엇을 생각하는 체하더니 벌떡 일어나 윗목으로 간다.
"하두 좁아서 가슴이 죄드니 거 잘 됐다."
하며 봉갑이가 석만이 나간 자리까지 차지하고 화로에 바싹 당겨 앉는다.
석만이는 줄에 널린 양말을 걷어 한번 힘들여 짜가지고 먼저 자리로 돌아온다.
"봉갑이 이 사람아, 좀 비키소."
"난 아주 가는 줄 알구 잘 됐다 혔드니 또 왔네그려."
석만이는 아무 말도 없이 봉갑의 옆자리에 간신히 뚫고 앉아 양말을 말리기 시작한다.
"이 사람이 지금 정신머리가 있나? 없나? 자네 발목 고린내는 여편네도 맡기 싫을 거네. 우리 보고 대신 맡으라는가."
석만이는 들은 체도 않고 양말을 말린다. 제법 빠알간 깜부깃불 기운으로 양말에서는 하얀 김이 모롱모롱 올라온다.
"그놈의 양말 좀 치워 버려. 사람이 채신머리가 있어야지."
누구 하나가 갑자기 대쪽 째는 소리를 지르자 석만이는 눈을 힐끔 뜨고 그를 쳐다본다.
"쳐다보면 어쩔 텐가. 남이 싫다면 싫은 줄 알어야지."
"싫을 건 뭐 있단 말인가. 있는 불에 좀 말리면 어찌간디그려?"
"어따 그 사람 뭘 잘 히였다구 입을 까고 있는 거여? 나 같으면 염치없어서라도 죽은 듯이 있겠구먼."
이번은 봉갑이가 고개를 홱 돌려 석만이를 쏘아본다.
석만이는 형세가 험해질 것을 알고 실무시 궁둥이를 빼어 양말을 줄에 넌 다음 유생원 옆에 가 드러눕는다.
석만이는 머슴 사랑방에 오는 사람치곤 누구에게서나 미움을 받았다. 그는 머슴 사랑방에서 잔뼈가 굵어졌건만 공의(公醫) 덕으로 헌 인력거를 얻어 끌게 된 후부터는 양반이나 된 듯 머슴 사랑엔 일체로 발을 끊었다. 그러다가 이번 비로 자기 집 천장에서 물이 새게 됨서부터 다시 머슴 사랑을 찾아왔다. 그러니 여러 사람의 평시 가졌던 미움은 더한층 커지게 된 것이다.
"여봐들 곰개재에도 빨간 말뚝을 박었는데 거 뭐라는가."
봉갑이가 선뜻 생각난 것처럼 묻자 다른 사람들도,
"참 거 뭐라는 거여?"
하고 누구라 할 것 없이 서로 입을 쳐다본다.
"자동차 길이 난대여. 그래 우리집 주인 아들은 곰개다가 땅을 산다구 오늘 갔지."
점쇠가 큰 것이나 알아 가지고 온 것처럼 목을 가다듬은 다음 자신 있게 말을 하였다.
"아 그리어? 그것 참 미상불 편리허게 되었네그려."
석만이가 누운 채로 반갑게 응수를 한다.
"뭣이 어쩌구 어찌어? 너는 행길 나면 인력거품을 팔어서 네조하겠지만(좋단 말) 우린 큰일이다 큰일이여. 인제 화물 자동차가 부리나케 들락거려 일년 두구 우리 등으로 져내던 숯짐을 몇 차로 족쳐 낼 테니 등짐 품팔이도 못 히어 먹게 됐어."
좌중에서 나이 많기론 유생원 다음가는 홍생원이 빨끈해 가지고 석만의 말을 눌러 버린다.
"흥, 자넨 신작로 나면 자네 인력거가 뽐낼 줄 아는가 지랄두 틀렸어. 누가 자동차 타고 댕기지 다 찌그러진 자네 인력거를 탈 성부른가."
갑봉이가 또 깃달고 나서 석만이를 핀잔 준다.
"왜들 석만이만 가지구 놀려 주어? 노상이 석만이 말이 틀린 것두 아닌데. 행길 나면 일거리 없어지는 사람두 있지만 편리한 것두 많을 건 사실이지 뭐. 그런 말 모두 집어치구 우리 존 수가 하나 있어."
화롯불에 담배를 피고 있던 점쇠가 나섰다.
"다른 게 아니라 오늘 밤 이진사 댁 큰 제사가 있다닝께 단자(單子)를 보내 한잔 먹지."
점쇠 말이 떨어지자 그것 좋다고 모두가 야단법석이다. 편지지는 언문 깨친다고 말없이 공부만 하고 있는 칠성의 공책을 뜯어서 쓰고 봉투는 말을 내논 점쇠 돈 일 전으로 사왔다. 단자 사연은 유생원이 유식한 한문으로 쓴다는 것을 점쇠가,
"참 유생원두 고리타분하게 한문으로 쓸 건 뭐 있어유? 제가 술병하나 큼직하게 그려서 보냅시다. 그럼 술은 많이 보내겠지라우."
점쇠의 이 말에 좌중이 찬성하니, 그는 공책 한 장에 술병 하나를 제법 그럴듯하게 그려 내놓는 것을 보고,
"야― 점쇠 꼴불견이구나, 곧잘 그렸는데."
하고 여러 사람이 놀랐다.
"이래보여두 보통학교 다닐 때 도화룬 내가 제일이었다네. 복이 없어 이리 됐지."
점쇠는 이렇게 자랑 반절 한탄 반절 늘어놓고선, 두고두고 하는 이야기를 또 내놓았다. 그것은 그와 함께 사학년까지 다니고 성적은 항상 자기 밑에 놀던 사람이 지금은 판임관이 되었건만 자기는 중도에 퇴학한 후부터 품을 팔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내 저놈의 이야긴 어떻게 여러 번 들었는지 꿈에도 생각나더라."
봉갑의 이 말을 따라 모두 한바탕 웃어 젖힌다.
단자를 보내고 술상을 기다리는 동안 여러 가지 잡동사니 이야기가 서로 꼬리들을 물고 나왔다. 함경도 탄광에로 품팔이 갔다가 돌아온 사람한테서 들었다는 이야기, 요전 장날 다목 농장 사무원이 설탕을 많이 사려고 장꾼들을 시켜 한 근씩 모은 것이 삼십여 원 어치나 되었다는 이야기, 재민 구제사업으로 개천을 파는 데서 은숟갈 한 개가 퉁겨나오자 인부끼리 자기 곡괭이 뿌리로 파냈다고 다투다가 쌈이 일어나 대가리가 터졌다는 이야기, 경상북도에선 어떤 사람이 한 배에 네 쌍동이를 순산했다는 이야기―--- 누구 한 사람의 말이 끝나기만 하면 서로 이야기를 먼저 내려고 경쟁하는 형편이다.
"유생원, 그 이야기책에선 돈이 쏟아지는 게유? 그만 내 말 좀 들으시오. 아 올에는 용이 열두 마리라 놔서 서로 비를 미루는 통에 또 가물겠다니 그럼 큰일 아닌가유."
하고 홍생원이 남의 말을 가로채고 나섰다.
"글쎄 책력에는 일일 득신(得辛)에 십이 용 치수(龍治水)라고는 하였지만 열두 마리가 짝 맞으면 서로 샘을 내니라고 비를 더 줄는지도 모르지."
"그럼 홍수가 나서 어치피 흉년 들긴 마찬가지게유?"
유생원 말을 점쇠가 받았다.
"야 흉헙다. 말이라두 흉년 소린 말아."
"허긴 하늘이 사람 일도 모르는 게고 사람이 하늘 일도 모르는 것이라네. 풍년 흉년을 무슨 재주로 미리 안단 말인가. 이번 눈이 많이 왔으니 보리 풍년은 간데없을 게고 비가 또한 많이 내렸으니 나락 농사도 순조롤 게 아닌가. 이렇게들만 믿어 두게. 그럼 맘이라도 편할 테지."
유생원의 여덟 마지기 소작논이 작년에 말짱하게 타죽은 것을 모두 아는지라 그의 이런 말소리가 이상히도 여러 사람의 뱃속을 울리었다.
"그저 올에는 꼭 풍년이 들어야지 젠―장."
봉갑의 이 말소리가 그대로 가라앉는 것같이 방 속은 갑자기 침통해졌다. 그들은 작년 흉년에 놀란 가슴이 아직도 안정되지 않았다. 누가 연사(年事) 이야기만 내면 죽은 자식 말을 내는 것 같아서 콧등과 가슴이 찌르르 울리었다. 다시 흉년을 만날까 보아 전율을 느끼고 있는 형편인 것이다.
술상을 기다리다 못해 유생원과 석만이가 잠들었을 때, 비로소 가져왔다. 이진사 댁 머슴에게 은근히 부탁한 대로 안주보다도 술이 많이 놓였다. 유생원만 깨고 석만이는 자는 대로 둔 채, 술상을 둘러앉았노라니 석만이가 부시시 일어나던 길로 눈을 비벼 가며 한몫 끼였다.
"술안주가 정말 건데. 원체 인심 좋은 댁이라 이 흉년에도 다르구먼."
홍생원이 제육 한 점을 집으면서 말했다. 술상은 제육을 비롯해서 생선전과 누름파적 산적 탕 그리고 김치와 약과 밤 대추 곶감까지 상 위를 가득 덮었다. 이러고도 김치가 모자랄 것 같으매 송참판 머슴을 시켜 안에 가서 김치를 한 대접 가져오게 하였다. 술잔을 유생원과 송생원에게 차례로 권한 다음은, 단자 심부름한 사람과 술상 가지고 온 이진사 머슴에게 먼저 돌렸다. 그 다음 차례가 발언을 했다는 공으로 점쇠가 잔을 받았고 약속한 일도 없건만 맨 나중 돌아간 사람은 석만이었다.
"점쇠, 내 자네게 꼭 부탁이 있네. 꼭 들어주려는가?"
홍생원이 술잔을 점쇠에게 건네면서 물었다.
"들을 일이면 듣구말구요."
"물론 들을 수 있는 일이지. 다른 게 아니라 말일세, 자네 그 이야기 좀 꼭 히여 주게."
무슨 긴한 부탁이 나올까 하고 모두가 궁금히 여기는데 이 말이 나오자 와그르 웃었다. 그 이야기란 점쇠가 대판을 몹시 가고 깊은데 도항증은 도저히 낼 수 없고, 생각다 못해 궤짝 속에 들어앉은 채 화물로 부쳤던 것이 바다를 감쪽같이 건너기는 했으나, 저편 소창역(小倉驛)이란 데서 발각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신문에 났다고 동리가 모두 알긴 하지만, 자기들 눈으로 직접 신문을 본 것도 아니고 또 보았다는 사람 말을 들으면 자상하지도 못하거니와 이야기가 사람마다 달라서 믿어지지 않았다. 그래 홍생원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당자인 점쇠한테 한 말을 듣고 싶었으나 입을 절대로 열진 않았다. 점쇠를 짐으로 부쳐 가지고 간 사람은 한번 건너가서 다니러 오지도 않고, 산 속에서 점쇠를 궤 속에 넣어 가지고 정거장까지 짊어지고 갔다는 봉갑만은 자세한 이야길 점쇠한테 들어서 알겠지만, 그 역시 입을 다물고 있으니, 그럴수록 그들은 알고 싶어 조바심이 났다.
"여보게, 오늘 밤은 정말 이야기 좀 허소."
"별소릴 다 허십니다. 홍생원두 참, 심심하시면 술이나 자시기라우."
하고 점쇠는 받은 잔을 홍생원에게 돌렸다. 점쇠는 겉으론 태연한 기색을 띠었으나 이 말만 내면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고 가슴을 쥐어뜯고 싶도록 무안쩍고 후회가 났다. 그때 무슨 환장을 했기에 궤짝 속에 들어갔던가 하고 자기로도 믿을 수 없었다. 하긴 궤짝 속에 들어갈까말까 하고 이틀이나 꼼박 굶은 끝에 결심했던 것이 무슨 옛날 이야기나 되는 듯이 까마득하기도 하다.
"이 사람이 술을 더 좀 취해야 이야길 할랑가 부네."
하더니 홍생원은 다시 점쇠게로 술잔을 권한다. 다른 사람에게까지 눈짓을 하여 그를 권하게 하매 술잔은 자연 점쇠에게로 몰리게 되었다. 한사코 사양하건만 이핑계 저핑계로 달래 가며 술잔은 에누리 없이 달리고 만다. 주량이 별로 없는지라 얼마 아니 가서 점쇠는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지고 차차 떠들게 되었다.
"그런데 제일 애탄 때가 정거장에서 차에 싣기 전이었지 그것 참."
점쇠는 무슨 말끝에 이런 말을 엉겁결에 내놓았다. 여러 사람은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다음 말을 재촉했다. 역시 점쇠는 입을 다물려 했으나 한번 내논 말을 중판메면 죽어서 구렁이가 된다는 등의 우스운 말을 섞어 가며 치근치근 매달리는 통에 할 수 없이 다음을 계속했다.
"궤짝에 공기 구멍을 내느라고 양편에다 큰 밤만하게 두 개를 뚫었지. 그 구멍으로 내다보니까 역부가 뵈잖겠다구? 아 이놈이 꼭 나를 보구선 쫓아오는 것만 같은데 그땐 정말이지 간이 콩만해지데. 그러다가 화물차에다 덜커덩 하고 실어 노닝께 어떻게 반갑던지, 밀어 내붙이는 통에 머리통이 웽 하고 울렸지만, 인자 됐다는 생각이 실무시나데."
어떤 사람은 배를 쥐고서 웃느라고 화로에 이마를 부딪치기까지 하였다.
"먹을 것은, 물까지 너가지고 갔더람서?"
"음 그렸지."
"연락선 탈 때는 어떻던가."
홍생원은 남의 말을 일쑤 앞서서 물었다.
"바다 위를 가는지 어쩐지 몰랐지만 지금 생각허면 쑥 올라갔다 쑥 내려오구 할 때가 연락선 탔을 때던가 봐."
"어떤 때가 그 중 아프던가."
홍생원이 또 묻자마자,
"아따 홍생원두 궤짝을 타구 가시구 싶어서 대구 물으시는그라우?"
하고 봉갑이가 말을 쑥 내밀었다.
"미친 사람."
홍생원은 이렇게 말하고 피식 웃긴 했으나 얼굴이 단번 화끈해지며 수그러졌다. 사실 그는 손재주도 있으니, 동경 대판에만 가면 공장같은 데 가서 돈을 잘 벌 것만 같았다. 갖은 힘을 다 써가며 도항증을 내려 했으나 실패하고, 점쇠의 부린 꾀가 그럴듯도 생각되었다. 점쇠가 바다까지 건너가서 실패하게 된 것만 잘 때울 수 있다면 그것이 제일 상책일 것 같아서 자세한 걸 묻고 싶었던 것이다.
점쇠는 죽자 하고 이야기를 더 계속하지 않았다. 점쇠가 궤짝 속에 든 채 바다를 건너가려고까지 하게 된 동기는, 홍생원처럼 돈벌겠다는 욕심만은 아니었다. 남의 집 머슴살이만으로는 늙도록 가야 집 한칸 생길 것 같지 않으니, 달리 변통하자매 조선을 뜨는 것이 술 것 같았다. 그리고 삼 년 전에 그와 정이 들었던 화선이가 대판 조선 술집으로 팔려 간 후부터는 항상 그를 만나고 싶은 생각이 목구멍까지 치미는 것이었다. 애초 갈 때는 이 년 기간을 맺었었는데, 삼 년이 되도록 그저 있다. 더구나 대판 간 후 안부 편지 한 장이 있은 후론 아무리 편지를 띄워도 답장까지 없다. 혹시 죽기나 했나 하고 화선네 집에 알아보면 살아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러니 점쇠는 더욱 몸이 달았다. 경관에게 잘 보여 도항증이나 얻을 맘으로 공일도 많이 해주고 부역 때도 맨 끝까지 일을 하기도 했으나 경관은 으레,
"점쇠의 맘씨와 부지런한 것은 다시없지만 국가의 방침이니까 할 수 없어. 그 정성을 가지고 조선에서 노동하면 돈도 잘 벌 텐데 그래."
이런 말로 점쇠를 타이르는 것이었다.
점쇠는 바다까지 건너 가지고 발각된 것이 몹시도 원통하였다. 그놈의 공기 구멍으로 자기 머리가 내다뵌 것이 발각된 실마리라는 것을 생각하면, 차라리 숨이 막히더라도 공기 구멍을 바늘귀만하게 뚫었을 것인데―--- 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후회한다. 어떤 때는 잠결에 벌떡 일어나 무의식중에 무릎을 탁 치며 실심하는 때도 이따금 있다.
이튿날이었다. 점쇠가 주인 첩 집에 심부름 가느라고 면사무소 앞을 지날 때, 김주사와 마주쳤다. 그 사람은 아직 갓서른밖에 못 된 젊은 사람이지만 맘씨가 고맙대서 일꾼들 층에선 그를 존경하는 의미로 '김주사'라고 불렀다.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동료 직원들에겐 주사 소릴 않는데 자기에게만 하는 것이 민망쩍을 뿐 아니라 그 말이 귀에 어울리지도 않아서 여러 번 말리기도 했으나, 그들은 일상 '우리들의 주사 양반은 한 분뿐이닝께' 하며 더한층 따르는 형편이다. 면장과 구장이 명령해서 안 되는 일이라도 김주사란 사람이 나가면 그게 소리 없이 시행된다.
"점쇠, 어딜 이렇게 급히 걸어가는 거여."
"작은집 좀 가는구만유."
"점쇠가 작은집을 두었지."
그는 점쇠가 심부름 가는 줄을 알면서 이렇게 농담으로 받고 둘이 웃었다.
"그런데 내지 안 가고 싶은가."
이 말 한마디가 점쇠는 머릿속에 모닥불을 일으키듯 화끈하였다.
"아―니 무슨 말씀을…… 거 정말잉가유?"
"정말이구말구. 그런데 점쇠가 가고 싶어하는 대판은 아니고만 북해도란 곳이지. 대판도 지나구 동경도 지나서 아주 북쪽에 붙은 땅인데 거게 석탄광에서 인부를 모집하러 왔어."
하루 품삯이 이 원부터 오 원까지고 기한은 이 년이란 것까지 자세히 말해 주었다.
"북해도두 이쁜 색시가 얼마구 있으니 가보라구. 하루 일 원씩만 저금한대도 이 년이면 칠백 원이 아닌가. 그러구 한번 팔려 가서 빠져나기 어려운 화선이만 생각하면 무슨 수가 나나?"
사실은 이 사람이 내지 시찰단에 끼여서 대판에 들렀을 때 화선이 있는 술집을 찾아갔다. 색시가 열 명이나 득세기고 상술집으론 상당히 컸다. 화선이가 그를 만나자 고향 사람이라서 반가워하긴 했으나 이편에서 점쇠 이야길 내놓았어도 그리 달갑게 여기지는 않았다.
"전 이런 데서 늙든지 천행으로 돈 있는 은인이나 만나서 호강할 수 있다면 좋지요. 소원이란 이것뿐예요. 지긋지긋한 놈의 가난이 꿈에라도 따라올까 무서워요."
하고 술을 사양하지도 않고 마시는 품이 점쇠를 잊은 제는 오래인 것이 확실했다. 그러나 이 말을 전하면 점쇠의 실망이 너무도 클 것 같아서 누구에게도 화선이 만났다는 이야긴 하지 않았던 것이다.
"첨엔 북해도까지 가는 여비를 각자가 담당허얀다기에, 그럼 모집해 줄 수도 없고 설령 간다는 사람이 있대도 못 가도록 붙들겠다구 막 뻗었지. 그래 결국은 회사에서 여비까지 당해 주기로 되었으니 몸뚱이만 빠져나가면 되는 거여."
점쇠는 면사무원이 친구와 이야기하는 것처럼 정답게 말하는 것이 몹시 고마웠다. 모두가 자기를 생각해서 하는 말 같았다.
점쇠는 주인 첩 집에 가서 장작을 패기 시작했다. 일하는 동안 머릿속은 몹시도 뒤숭숭해졌다. 대판―---화선이―---탄광―---돈―---이런 생각이 어지럽게 떠올랐다간 사라지고 다시 떠오르고 했다. 장작은 제대로 두고 모탕을 몇 번이나 헛찍기까지 했다.
"웬 장작을 팬다고 뿌시레기만 자꾸 내는 거여?"
이 소리에 점쇠가 정신을 차려 보니 주인 첩이 마루 끝에 쪼그리고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젠장맞을것. 한 달 전까지도 술집 계집년이든 게 반말을 탕탕 허구. 나이로도 내가 훨씬 위고 제가 사내를 안 때보다 내가 계집을 안 때도 훨씬 먼절 텐데…….'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그 여자를 옆눈질로 흘겨보았으나 그는 먼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점쇠는 그전부터 아니꼽던 생각이 한꺼번에 치밀었다. 모탕을 내동댕이치고 나와 버리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고 건성건성 일을 마치었다. 그는 주인 첩 집을 나오던 길로 곧 봉갑이 집을 찾아갔다. 보리밭에 거름을 주러 갔다기에 삼 마장이나 되는 데를 달음질쳐 갔다. 마침 봉갑이가 빈 오줌 동이를 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들은 나란히 서서 걸었다.
"봉갑이 존 수가 생겼네. 우리 북해도 가지 안 할라나."
"북해도가 어딘데?"
"내지 땅이지."
"거긴 뭘 허러 간단 말인가."
점쇠는 면서기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자세히 일러 주었다.
"그럼 자넨 가기로 하였는가."
"내가 가닝께 자네보구 가자지."
점쇠는 부모 형제도 없고 일가라곤 재당숙 하나뿐인데, 그나마 이십 리 밖 촌에서 사는지라 일년이면 두 번 만나는 것이 보통이다. 그는 이렇게 고독한 사람이라, 봉갑이와 단짝으로 친해지는 정도는 갈수록 더하였다. 두 사람이 하루만 못 만나도 공연히 마음이 쓰이고 불안한 것이다. 이런 봉갑이와 함께 북해도를 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그를 끌려 하는 것이었다.
"하루 일 원씩만 저금히여두 이 년 후면 칠백 원은 넘을 게 아닌가. 자넨 이 년 후 그 돈을 한몫 가지고 오면 살림이 좀 피겠는가베. 그리고 여보소, 나는 말이네 이 년만 고스란히 있다가 돌아올 땐 말여 대판에 가 떨어져 버릴라네."
"북해돌 가는 것도 화선이 만날려구 그러느만?"
"화선이두 만나구 돈두 뫼구."
점쇠는 돈을 맞벌어서 장래 살림 밑천을 삼겠다는 생각도 물론 있으나 이 년 후 대판에 떨어져서 거기서 돈도 벌고 화선이 만나는 것이 희망이다. 이 두 가지를 저울로 달아 보면 화선이 편이 좀 처질 것 같았다.
"어쩔라는가? 다소 뭣하더라도 내 청으로 함께 가자꾸나."
"가만있게. 집에서 아버지랑 성님이랑 상의히여 보아야겠네. 될 수만 있다면야 자네허구 떨어지겠는가. 자네가 못 가든지 내가 가든지 양단간은 날 테지."
밤에 만나기로 하고 두 사람은 동리까지 함께 와서 갈렸다. 점쇠는 그 길로 면사무소로 달려갔다.
"김주사 어른 계서유?"
하고 점쇠가 물었더니,
"김주산 왜 그려? 지금 공사장엘 나가구 없어."
하고 입구에 자리잡고 있는 늙수그레한 호적계 서기가 머퉁이나 하는 것 같은 어조로 대답했다. 점쇠는 다소 불쾌하긴 했으나 그대로 나왔다. 공사장까지는 이 마장이 짱짱하다. 동리 앞 평야 한복판을 흐르는 내가 장마지면 넘치기 쉽고, 가물면 마르기 쉬워서 한 해 구제공사를 기회로 개수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냇바닥을 훨씬 깊이 파고 언덕을 단단하게 만들기로 되었다. 한동안은 나무 뿌리와 흙덩이로 뱃속을 채우던 것을 이 공사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좁쌀로라도 배를 돌보게 되었고, 또 하천공사만 완성되면 장마가 지든 가물든 흉년을 탈 것 같지는 않았다. 그들은 이 내가 이상스럽게도 귀엽고 믿음직했다. 공사장의 십장이나 감독이 까다로운 사람이건만 불평을 말하지 않고 일이 착착 진척되는 것도 이 내를 위하는 그들의 심정의 관계도 많았다. 점쇠는 면서기를 꼭 만나야 할 일도 없지만 그는 무엇이든 보고를 하여야만 할 것 같았다.
"마침 점쇠 잘 왔네."
면서기는 이렇게 말하고 점쇠 온 것을 반가워하더니,
"북해도 갈 사람을 우리 면에서 삼십 명은 꼭 모집허야겠는데 이 많은 사람 중에 단 둘뿐이어. 석만이허구 판술이허구."
하고 다시 말을 계속했다.
"그러니 점쇠가 열 명은 모집하여 줘야겠어."
점쇠는 아직 봉갑이가 갈지말지 하는 판에 보기 싫은 석만이가 맨 먼저 결정되었다는 것이 '이것 마수 없는 징조가 아닌가' 하고 생각도 들었으나 그것은 잠깐이었다. 그는 흙을 파서 높직이 쌓아 올린 데에 서서 한창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 땅이 단단히 얼어서 얼마 동안 일을 중지했다가 해동과 함께 일을 또 시작한 지 멀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그들은 신을 내서 흙을 파고 져내고 누구나 열심이었다. 며칠 전의 그 고마운 비와 눈이 아직도 차갑게 쏘는지라 일하기가 곤란하겠다 생각하매 점쇠는 자기가 높직이 올라서서 구경하는 것이 민망스러워서 어느결에 내려서고 말았다. 이 사람이면 되겠지 하고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이 천복이었다. 천복이는 소고(小鼓)의 명수다. 소고잡이를 발견했으니, 징을 칠 사람이 없는가 하고 물색했다. 하룻밤 새도록 징을 쳐도 무겁다 하는 일 없이 한 번도 삐지 않고 잘 치는 최서방이 흙짐을 지고 가다가,
"점쇠 왔는가."
하고 알은체를 했다. 그러나 최서방은 보통학교 졸업한 큰아들이 허참판 농장 급사로 들어가서, 제가 똑똑하니까 장부 적발까지 하여 논도 여러 마지기 얻게 되고, 매월 잔돈푼도 들어오는 형편이라 집을 떠나갈 일은 절대로 없을 것 같다. 그래 징 칠 사람이 또 없는가 둘러보았다. 삽질을 부산나케 하고 있는 판암이가 눈에 띄었다. 그는 징을 잘 치는 편은 못 되나 남이 치는 것을 억지로 뺏어 치기가 일쑨데 별로 삐는 일은 없다. 점쇠는 무엇보다도 소고잡이를 점찍어 둔 것이 몹시도 반가웠다. 아까 봉갑이를 만났을 적엔 생각지도 않았는데 이제 비로소 '이만하면 풍장〔農樂〕한 패는 훌륭하다'는 생각이 번쩍 들은 것이다. 동리에서 꽹과리로 봉갑이, 장고로는 점쇠가 맨 으뜸이다. 봉갑이 꽹과리와 점쇠 장고는 어쩌다가 하나가 삐더라도 감쪽같이 둘러 맞추어 삔 가락이 그대로 맞아 넘어갈 수 있도록 그들은 손이 척척 맞았다. 점쇠는 봉갑이 천복이 판암이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데리고만 가고 싶었다. 천악 한 벌도 기어이 마련해 가지고 가리라 하였다. 점쇠는 천복이 판암이 외에도 선달의 둘째아들과 다른 다섯 사람을 맘으로 잡아 두었다. 면서기와 몇 마디 이야기를 하고 있노라니, 쉬라는 호각 소리가 기다랗게 세 번 났다. 모두 일제히 일을 멈추고 삽 곡괭이 지게 등 자기 물건은 자기가 가지고 언덕 위로 나온다. 점쇠와 눈인사만 했던 사람들이 커다랗게 소리를 내서 말을 건네는 둥, 점쇠가 아니 가면 점쇠 있는 곳으로 일부러 와서 알은체를 하는 둥 제법 시끄러웠다. 남의 머슴살이를 하는 점쇠가 뜻밖에 공사장에 나타나자, 허참판 집에서 쫓겨나와 일자리를 보러 왔는가 하고 누구나 생각되었던 것이다. 그래 걱정스런 낯빛과 목소리로 말을 걸면,
"아녀, 이 년 만에 만석꾼이가 될 수 있는 곳이 생겼는데 나 혼자 가기가 서운해서 함께 가자구 왔어."
"아따 우리도 벌써 알었단다. 점쇠가 궤짝을 타고도 내지를 못 가더니 인제 봐란듯이 가볼랴구 그러능가."
"왜 못 가긴. 가긴 갔었지만 벤또 한 그릇만 얻어먹고 쫓겨 왔지."
"화선일 만날랴면 대판으로 가야지 북해도로 가면 화선이가 거까지 따러올까."
이미 면서기한테 들어서 알고 있는 그들은 이런 말로 점쇠를 구슬리고서는 서로 웃었다.
점쇠는 천복이와 판암이를 멀찍이 떨어진 데로 데리고 가서, 담배 한 개씩 나누어 주고 말을 꺼냈다. 구변 있는 대로는 모두 털어놓고 끝으로 힘을 들여 다시 말했다.
"여기서 뼈빠지게 일하구, 하루 잘 벌어야 일 원 이십 전이 아닌가. 거기 가면 못 벌어도 이 원 이상은 벌 수 있고, 또 남서부터 백 리 밖을 못 가본 우리가 공짜로 내지 구경할 수 있고, 또 그뿐인가. 이 년만 지나면 돌아오는 길에, 대판이나 동경에서 슬쩍 내리면 누가 아나? 뒤떨어져 가지고 일터만 잘 잡으면 하루 오 원도 벌구 십 원도 벌구. 이 말은 아무보구두 하지 말게. 이렇게라도 허야 우리도 한 세상 볼똥말똥 허잖겠는가. 그러고 말여, 봉갑이도 간다구 히였으닝께 자네 둘만 가면 북해도 가서도 풍장을 치구 심심할 것 없이 지낼 수 있단 말일세. 폐일언허구 꼭 가세, 김주사 어른이 우릴 생각허구 권하는 게지 괜시리 가라겠는가, 이 사람들아."
이 말이 면서기의 위엄 있는 말보다 훨씬 맘속을 두드렸다. 천복이 와 판암이는 즉석에서 승낙하고 말았다. 선달이 둘째아들과 다른 사람 하나까지 해서 점쇠가 네 사람을 모집한 것이다.
"인제 면서기 자리를 점쇠게로 줘야겠네. 나는 아까부터 와서 단 두 사람만 승낙 맡었는데, 점쇠는 잠깐 동안에 네 사람이나, 북해도 가서도 그런 식으로만 허면 돈을 남의 배는 벌겠네."
면서기가 점쇠에게 담배를 권하며 이렇게 말할 때는 아닌게아니라 너무 좋아서 몸이 둥둥 뜨는 것도 같았다.
동리로 돌아올 때는 면서기와 함께 걸었다. 점쇠는 주인집 대문 앞에 이르자 미안한 생각이 들긴 했으나 허참판의 왕먹어리 소리의 호령이 전처럼 겁나지는 않았다. 그는 부지런히 두엄을 져낸 것이 거의 반나절 일을 단번에 끝낸 듯하다.
맘이 들떠서 저녁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봉갑이를 빨리 만나서 작정된 것을 속히 듣고 싶어, 소죽을 아무렇게나 주어 버리고 나오려 하는데, 사랑에서 주인의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쳇, 무슨 일을 시킬랴구 그러는고?"
하고 점쇠는 중얼거리며 사랑으로 나갔다.
"낮에 때는 어딜 갔었간디 그렇게 불러도 소리가 없었단 말인가. 작은댁 도야지란 놈이 떨어져 그걸 잡을랴다가 복숭아나무가 모두 쓰러졌다니 어이 가서 일으켜 노소."
이 말을 들으니 점쇠는 봉갑의 만날 것이 자꾸 아득해지는 것만 같았다. 점쇠는 북해도 가는 일에 비하면 꽃나무 몇 개 쓰러진 거야 바람에 재티 날아간 일 푼수밖에는 안 되었다. 그는 주인 첩네 집과는 반대편으로 걷기 시작했다.
"점쇠."
갑자기 부르는 소리에 앞을 보니, 어둑한 초저녁 어둠 속에서 누구하나가 걸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또 한번 부를 적에야 봉갑의 목소린 줄 알았다.
"껑충껑충 걸어오는 것을 보구 자넨 줄 알었지."
"그런 말은 천천히 허구, 대관절 어떻게 되었는가."
"어따 그 사람, 난리가 쳐들어오는가 부다. 가기로 하였으닝께 인제 맘놓고 지나소. 우리집 일은 성님허구 동생이 맡기루 히였네. 여편네보고는 지금 다섯 달 된 것을 잘 나서 키워 노면 세 살 되는 해 모자 양복 구두를 사가지고 와 입혀서 주마구 그랬지. 그리고 그때 또 하나 만들어야 터도 알맞게 팔 것 아닌가."
봉갑이는 점쇠의 어깨를 치며 함께 웃어 댔다.
"봉갑이 미안하네."
"미친놈."
늦장가 든 지 일곱 달밖에 안 되는 봉갑이를 아내와 떼놓는 것이 자기 탓인 것만 같아 점쇠는 몹시도 미안하였다.
"자네는 각시를 잘 두어서 아무 때구 잘살고 말 것이네. 얼굴 이쁘고 맘 곱구 그리고 말이네, 시집 온 지 겨우 일곱 달이고 애기까지 뱄는데 떨어지려는 것이 여간한 여자가 아니거든."
점쇠는 봉갑의 아내를 이렇게 추켜 주면서 화선이를 또 생각했다. 얼굴이야 봉갑이 아내보다 오히려 나은 편이지만, 맘씨가 그만 할는지가 걱정되었다. 이 까닭인지 이날 밤 화선이 꿈을 꾸었다. 화선의 사진을 잃어버리고 애써 찾는 것을 또 꿈꾸었던 것이다. 이따금 꾸는 것이지만 이날 밤 꿈에는 더 몸을 달았다. 점쇠는 화선이가 떠날 때 주고 간 명함만한 사진을 뻣뻣한 종이로 싸서 지갑 속에 넣어 가지고 다니다가 생각날 때마다 펴보는 것이 재미였다. 작년 봄 일하다가 쉬느라고 못가에 앉아 그는 곧 화선의 사진을 꺼내어 보았다. 한참 들여다보다 무릎 위에 놓고 담배 한 개를 태워 물 때 갑자기 바람이 불어 오더니, 그만 사진이 날아 못 가운데에 떨어졌다. 물이 차가운 것을 알면서도 점쇠는 발가벗고 들어가는 도리밖에는 별수없었다. 물 속에 들어가자 단번 숨이 딱 막히며 입이 벌어졌다. 그러나 이것도 순간이었고 그는 헤엄쳐서 사진을 건져 가지고 나왔다. 볕에 말리는 동안 마음이 쓰여서 일이 잘 되지도 않았다. 사진이 바람에 날린 것도 가벼운 까닭이고, 지니고 다니는 데 구겨지기 쉽다 하여, 그는 과자갑을 오려서 사진 뒤에 붙이었다. 그런데 봉갑이가 장가 들 때 술이 잔뜩 취해 가지고 뛰놀고 이튿날 아침에야 사진이 빠진 것을 알고, 맘 짚이는 곳은 모두 찾아보았으나, 종시 발견하지 못했다. 가벼워 바람에 날아갈까 봐서 무겁게 만들었던 것이 되레 화가 되고 말았다. 차라리 가벼운 대로 두었더라면 저절로 빠질 리는 없을 텐데 하고 후회도 했었다. 하긴 이때가 궤짝을 타고 가려는 결심을 세웠던 것이다. 그러나 차마 실행하진 못하고 화선의 사진을 잃은 것이 대판도 못 가고 영영 화선이를 만나지 못할 징조로만 생각되었다. 그래 일년 동안을 두고 몸만 졸이다가 실행한 것이 실패되자, 그는 오랫동안 맥이 풀려 손에 일이 잡히지도 않았던 것이다.
예정 인원인 삼십 명은 별 지장 없이 모집되었다. 북해도 간다는 데에 점쇠에게 못지않을 만큼 희망을 가진 사람으론 홍생원과 석만이도 빼놓을 수 없었다. 그러나 홍생원은 면서기와 점쇠의 노력도 소용 없이 나이가 너무 많고 몸이 약하다는 이유로 떨어지고 말았다. 석만이는 공의 인력거를 끌게 된 것이 큰 벼슬이나 한 것같이 뽐냈으나 왕진을 갈 때마다 공으로 끌어 주는 것이 대부분이고, 자기 주머니로 들어오는 돈은 구경하기가 어려웠다. 전같이 기차 정거장까지 자동차가 아니 다닌다면 인력거에 목을 매고 지낼 수도 있지만, 이젠 자동차의 운전 횟수를 더 늘린다니 돈 구경은 더 어려울 것 같다. 그래 인력거를 공의에게 돌려주는 대신, 그 동안 끌어 주었다는 사례금으로 주는 이십 원을 받아서 살림을 처리하고 아내는 다섯 살 된 아들을 데리고 남의 집 식모로 들어가게 하였다. 그의 속계산으론 이 년간 모은 돈을 가지면 세 식구 목구멍은 유지해 나갈 수 있는 밑천을 얻을 것도 같았다. 석만의 이런 이야기가 동리에 퍼지자 동료들은 그를 전같이 미워하던 맘이 차차 사라지고 도리어 동정하게 되었다.
출발하기로 된 전날 밤 면사무소 발기로 학교 교실 하나를 빌려서 떠나는 사람 삼십 명과 농군청의 선배 격인 사람 십여 명을 모아 놓고 송별 연회를 열었다. 술은 막걸린데 맘껏 먹으라고 석유통으로 셋이나 가져왔다.
안주로는 명태를 찢어서 고추장을 찍어 먹게 하고 난로 뚜껑을 벗기고선 커다란 냄비를 올려놓고 짠김치와 깍두기에 도야지고기를 넣어서 찌개로 만들었다. 이것도 김주사란 사람이 서둘러 부잣집에서 몇 원씩 거두어 만든 것을 잘 알고 있는 그들은 고마운 생각이 한층 더 뼈에 배었다. 면장이 인사말로 조선 사람 노동자의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일을 잘 하고 한푼이라도 많이 벌어 가지고 이 년 후 무사히 돌아오라고 부탁하고서는, 바쁜 일이 있다는 핑계로 곧 가버렸다. 다음 북해도 탄광회사에서 온 키는 작고 똥똥하게 생긴 사람이, 자기 회사의 탄광 일은 조금도 위험이 없으니 안심하고 가자는 뜻으로 말을 하고, 김서기가 나와 주의사항을 말하였다. 답사는 보통학교를 졸업한 진수라는 사람이 그중 유식하다 하여 그가 하였다.
"우리들을 좋은 곳으로 인도해 주신 것도 한없이 고마운데 이렇게 잔치까지 히여 주시니 참말로 고맙습니다. 저만은 한 몸뚱입니다만 다른 사람들은 부모 형제와 처자를 두고 떠나기를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노상히 말하면 누구를 물론하고 고향을 떠나 낯선 데로 품팔러 가는 것은 참말이지 슬픈 일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돈을 벌러 갑니다. 힘껏 일을 히여서 돈을 잔뜩 벌어 가지고 와서 잘 살겠습니다. 하느님이 무심치 않으니 꼭 그리 될 것입니다. 여기 오신 여러 어른네들은 저들이 올 때까지 부디 평안히 계시고 농사를 잘 지십시오. 올에는 꼭 풍년이 들 것입니다. 만리타향에 있는 우리들은 고향에 풍년이 들게 하여 달라고 항시 축원허겠습니다. 더 말씀드리고 싶지만 목이 메는 것 같어서 고만두겠습니다."
자리로 돌아와 보니 누구나 울상을 하고 있다. 봉갑이와 석만이는 느껴 울기까지 하고 있다. 나란히 앉아서 고개를 맞대고 울던 봉갑이와 석만이는 술이 거나하게 취하자 집안 식구가 도무지 잊혀지지 않는다는 말을 되뇌었다.
"석만이, 그 동안 섭섭히 지낸 것을 아주 잊어버리세. 만리타향으로 고생하러 가는 우리가 서로 위하고 서로 불쌍히 여겨야 할 게 아닌가."
석만이에게 이 말을 내기는 봉갑이가 처음이었으나 평시 그와 거칠게 지낸 사람은 모두 말하고 풀었다.
어떤 사람은 김서기를 붙들고 울다가는 술을 권하고 다시 울기도 하였다. 김서기도 술이 농창하게 취했다. 누구 할 것 없이 취기가 돌았을 때 봉갑이가 꽹과리를 뚜드리며 나서자, 점쇠 천복이 판암이가 제각기 한 가지씩 들고 나섰다. 동리 사람이 특별히 생각하여 두 벌이던 농악물(農樂物)을 한 벌 가지고 가라고 나누어 주었다. 다만 꽹과리가 너무 깨져서 점쇠 돈으로 새로 산 것이다.
"자, 마지막으로 한바탕 멋지게 쳐보자."
판암이가 소고를 두드리며 소리치고 나섰다.
"마지막은 죽으러 간단 말인가. 어이들 치기나 잘 허게들. 난 춤을 추겠네."
유생원은 아직도 터지지 않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농악 소리는 자지러지게 울렸다. 어떤 사람들은 궁둥이를 그대로 붙이고 술을 권커니 잣거니 하기도 하고 서로 붙들고 사설을 늘어놓는 사람도 있다. 대개는 일어서서 입에 담뱃대 문 채 혹은 든 채로 춤을 너울너울 추었다. 농악 소리 웃음 소리 말소리 어느 것이나 척척 어울렸다. 탄광회사에서 온 사람은 처음은 어리둥절하고 보고만 있더니 차차 흥이 나는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어 궁장을 맞추고 있다. 그들은 동리에 대한 인사나 하는 듯이 농악을 따라 동리 골목을 한번 돌았다.
장터 광고판 앞에서 모두 헤어지려 할 때,
"우리 성황당에 가서 한번 치고 갈리세. 자들 나만 따러오소들."
하고 석만이가 맨 앞 서서 춤을 추며 가니, 모두 그 뒤를 대어 섰다. 석만이는 농악 앞을 지성스럽게 따라다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면 기뻐서 날뛰기도 하고, 어떤 사람을 만나면 목을 껴안고 울기도 하고 누구나 실성한 사람같이도 보였다.
성황당은 동리에서 반 마장 가량 떨어져 있는 행길가에 있다. 제법 높은 고갯길이라 동리 사람들은 여기 당도하기만 하면, 돌을 한 개씩 던져 주는 일이 많다. 이날 밤만 새고 나면 그들은 화물자동차를 타고 성황당 앞을 지나가는 것이다. 그들의 가슴속에는 누구나 북해도에 가서 무사한 몸으로 돈 많이 벌게 해달라는 기도가 성황당에 당도하기 전부터 용솟음쳤다.
석만이는 성황당이 아직 멀었건만 길가에서 큰 돌 한 개를 발견하자, 두 손으로 떠받쳐 들고 껑충껑충 뛰어 누구보다도 먼저 당도했다. 그는 사람들이 오기 전에 맘속을 조용히 가다듬고,
"성황님네 그저 우리집 식구들을 잘 좀 살게 히여 주십시오. 식구가 각분 동서하는 판이니 이 년 후면 모두 성한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 나갈 걱정은 없게 하여 주소서."
그는 숨을 헐떡이면서 이렇게 빌었다. 누가 옆에 있으면 넉넉히 알아들을 수 있도록 소리내어 빌었다. 농악이 당도하자 그는 굵다란 눈물을 손등으로 씻고 나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또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농악은 늦은 가락으로 고치어 치기 시작했다. 누가 부탁하지도 않았건만 유생원은 떠나가는 사람들을 대표해서 성황당 앞에 섰다. 점쇠는 농악을 치고 유생원 뒤를 지나가며,
"내 소원 좀 잘 빌어 주슈."
하고 그를 찌뻑거렸다. 이것으로도 부족해서 점쇠는 다시 한번 돌아 성황당 앞을 지날 때,
"그저 대판을 꼭 가게만 하여 주십시오."
하고 장고 가락이 삘까 보아 이 한마디만 빌었다. 그래도 장고 가락은 삐고 말았다.
"화선이 생각을 허나!"
장고 삔 것을 책하는 듯 봉갑이가 점쇠를 한번 흘겨보고는 꽹과리를 잠깐 멈추었다가 자진가락으로 고쳤다.
성황당 옆 동리 아이들 한패가 소리를 지르며 구경하러 달음질쳐오고 있었다.
출전:문장23(1941.2)
작자소개
이근영(李根榮: 1910- ? )
전북 옥구 출생. 보성 전문 법과 졸업.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역임. 해방 후 <조선 문학가 동맹>에 가담. 1935년 단편 <금송아지>를 <신가정(新家)>에 발표하여 등단. 그는 일제 식민지 하의 빈곤과 외부적 세력에 의해 수탈되는 농촌 현실을 주로 다루었다.
주요 작품으로는 <과자 상자>,<고향 사람들>, <제3 노예>, <이발사>, <장날>, <흙의 풍속>, <고구마>, <탁류 속을 가는 박 교수> 등이 있다.
이해와 감상
<고향 사람들>은 1942년 2월 <문장> 23호에 발표된 단편 소설로서 그의 <당산제(堂山祭)>(1939.1 <비판>)와 함께 1930년대의 빈한한 농촌 현실을 소재로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가난이 극심했던 농촌 사회에서 먼저 희생당하는 자는 소농(小農)과 소작인이고 그 중 소작인의 아내나 딸이 가장 먼저 희생당한다는 줄거리를 통해서 아웃사이더의 아웃사이더로서 변두리 주변에서 간신히 매달려 있다가 중심이 흔들리면 가장 먼저 떨어지는 아웃사이더들의 삶의 현실을 그리고 있다. 즉, 작가 이근영은 석만이가 돈을 벌려고 북해도 탄광 인부로 팔려 가고, 석만이 아내가 다섯 살 된 아들을 데리고 남의 집 식모로 들어가야 하는 농민의 이산 현실을 통해서 1930년대의 궁핍한 시대상을 여실하게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줄거리
주인공 점쇠는 남의 집 머슴살이만으로는 늙어 죽도록 집 한 칸 생길 것 같지도 않고, 3년 전 대판의 조선 술집으로 팔려 간 애인 화선이를 만날 겸 해서 궤짝 속에 숨어 밀항을 한다. 그러나 점쇠는 일본까지 갔으나 일본 관헌에 들켜 강제 귀국을 당한다.
"전 이런 데서 늙든지 천행으로 돈 있는 은인이나 만나서 호강할 수 있다면 좋지요. 소원이란 이것뿐예요. 지긋지긋한 놈의 가난이 꿈에라도 따라올까 무서워요."
하며 하소연하던 화선이의 목소리가 아직도 점쇠의 귀에 쟁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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