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은- 김동명
by 송화은율내 마음은 - 김동명
내 마음은 호수(湖水)요,
그대 노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 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라. //
내 마음은 촛불이요,
그대 저 문을 닫아 주오.
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고요히
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리다. //
내 마음은 나그네요,
그대 피리를 불어주오,
나는 달 아래 귀를 기울이며, 호젓이
나의 밤을 새이오리다. //
<후략>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시의 각 연에 등장하는 ‘호수’, ‘촛불’, ‘나그네’, ‘낙엽’의 이미지가 서로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고, 그것이 전체적으로 어떻게 하나의 주제 아래 통일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이 시를 이해하는 지름길이다.
이 시는 작가의 작품 중, 드물게 참신한 이미지들을 지니고 있다. ‘내 마음’을 원관념으로 내놓은 다음 그에 상응하는 몇 개의 보저관념을 제시하는 은유법을 쓰고 있다. 가곡으로도 널리 애창되고 있는 이 시는 평이한 내용이면서도 아름다운 느낌을 주는 서정시라 하겠다.
▶ 성격 : 낭만적, 비유적, 상징적, 정열적
▶ 심상 : 시각적 심상
▶ 어조 : 호소하는 독백조(‘하오체’)
▶ 표현 : ① 함축적 표현
② 은유법
▶ 구성 : ① 사랑의 정열(1,2연)
② 사랑의 애달픔(3,4연)
▶ 제재 : 내 마음
▶ 주제 : 사랑의 기쁨과 덧없음
(사랑에 대한 내 마음의 상태 및 변화)
<연구 문제>
1. 제2연의 촛불과 비슷한 심상이 우리 고시조에도 나온다. 다음 시조를 완성시켜 보라.
☞ 겉으로 눈물 지고 속타는 줄 모르는고
房 안에 혓는 燭불 눌과 이별하였관대 ( ) 우리도 저 燭불 같아야 속타는 줄 모르노라. - 이 개 |
2. 이 시에서 ‘내 마음’의 보조 관념은 크게 둘로 대비된다. 그렇게 구분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60자 내외로 설명하라.
☞ 첫째, 둘째 연과 셋째, 넷째 연으로 대비된다. 그 이유는 앞의 두 연이 정열적임에 비해 뒤의 두 연은 애상적이기 때문이다.
3. ㉠, ㉡은 공통적으로 무엇을 표현한 것인지 10자 내외로 쓰라.
☞ 임에 대한 사랑의 정열.(임에 대한 헌신적 사랑)
4. ‘임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데 있어 고려가요 가시리와 어떤 점에서 비교가 되는지 분석하여 70자 정도로 설명하라.
☞ 가시리는 이별에 즈음한 여인의 은근한 정서가 나타나 있음에 비해, 내 마음은은 임에 대한 사랑이 남성적이고 정열적으로 표현되었다.
<감상의 길잡이>(1)
우리 시에서 은유의 좋은 예를 이 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선 ‘내 마음’의 비유어로서 각 연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어휘들을 살펴보자. ‘호수’, ‘촛불’, ‘나그네’, ‘낙엽’ 사이의 관련은 모호하다. 그래서 어떤 논자는 이 시가 애정의 어느 한 국면을 집중적으로 노래한 것이 아니라, 있을 수 있는 사랑의 여러 국면을 나열적으로 노래하였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좀더 유의해 보면, 네 개의 연들이 대등하게 각자의 독립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면, 이 시는 전반부(제1,2연)와 후반부(제3,4연)로 나눌 수 있다. ‘옥같이 …… 부서지리다’(제1연)와 ‘남김 없이 타오리다’(제2연)는 정열적인 느낌을 주고, ‘호젓이 나의 밤을 새이오리다’(제3연)와 ‘외로이 그대를 떠나오리다’(제4연)는 애상적인 느낌을 준다. 전반부가 사랑의 정열적인 면을 노래한 것이라면, 후반부는 사랑의 애상적인 면을 노래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시인은 사랑의 정열(전반부)과 사랑의 애수(후반부) 사이에 아무런 예고도 징검다리도 놓지 않는다. 그것이 의도적이라면 그 단절을 통해 작자는 충격적 효과를 노리고 있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이 시는, 사랑은 처음에는 즐겁고 불타오르는 것 같지만 결국은 외롭고 슬프게 끝나고 만다는, 사랑의 무상함을 충격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감상의 길잡이>(2)
김동명이 남긴 시 한편을 꼽으라면 제일 먼저 입에서 흥얼거려지는 작품이 「내 마음은」이다. 너무 순수하고 너무 아름답고 너무 완벽한 사랑의 시편이다.
이런 비단결 같은 시를 남긴 김동명이지만 그의 일생은 곡절이 너무 많고 가슴 아픈 참변도 여러 번 있었다. 공수래 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는 말이 생각날 정도로 그는 가난하게 태어나 가난하게 갔다. 강원도 명주군 노동리 산골에서 찢어지게 가난한 소작농의 외아들로 태어난 그는 여장부 어머니 덕분에 신학문을 배울 수 있었고 순전히 남의 도움으로 동경 유학까지 할 수 있었다.
68세 되던 1968년 1월 그가 중풍으로 타계할 무렵, 그는 직업도 없고 원고료 수입도 없는 빨간 맨손이었다. 살던 집을 줄이고 줄여서 약값 대다가 마지막은 ‘서울의 시골 지역’ 남가좌동 모래내의 다 허물어져가는 집에서 숨을 거두었다. 빈수래 빈수거(貧手來貧手去)라고나 할까.
김동명은 자기의 아호를 초허(超虛)라고 스스로 지었으나 한번도 써먹지 않았고 또 자기의 일생을 초허(超虛)스럽게 살지도 않았다. 일 욕심이 많은 그는 남이 하는 짓은 모두 해보려고 했다. 20대에는 시인으로 이름을 얻었고 30대에는 장사 수완을 발휘해서 목재상, 땔나무 장사, 양곡배급소까지 경영해서 큰돈을 만져 보았는데 심지어는 흥남 역전에 부동산 투기를 크게 하기도 했다. 통일이 되어서 요행히 원 소유권이 찾아지면 그 자녀들이 막대한 땅을 유산 받게 될 것이다.
40대부터 김동명은 흥남을 떠나 서울에서 학자의 길을 걷게 된다. 어느 날 그는 신문지에 세면 도구를 싸서 들고 ‘어슬렁어슬렁’ 동해안 금강산 산기슭을 걸어 그만 월남을 해 버렸다. 해방 후에 생긴 정당에 관여했다가 별재미를 못보고 흥남에서 여러모로 물을 먹은 그는 서울살이를 결심하고 가족들을 잇달아 불러들였다. 서울에는 김사익(金士翼), 김재준(金在俊), 송창근(宋昌根) 등 신학 계통의 선배들이 있어 큰 도움을 받게 되고 곧 이화 여대 교수직을 얻게 된다.
학자의 일을 하는 한편, 그는 정치가적 기질도 발휘해서 조선 민주당 정치부장도 하고 민주 국민당 문화부장도 한다. 흥남에 있을 때는 조선 민주당 흥남시 지부당 위원장까지 했는데 최용건(崔鏞健)에게 밟혀서 내쫓기고 절치 부심하다가 월남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결국 4·19 이후 민주당의 공천을 받아 60세 되던 해에 참의원에 당선됐다. 그러나 5·16으로 그 자리마저 잃은 후로는 정해진 수입 없이 정치 평론, 시, 수필 등 닥치는 대로 써서 생활을 꾸려 나갔다.
김동명의 일생이 이처럼 좌충우돌 뛰는 말 같은 것은 그가 꽁생원 아버지를 닮지 않고 이통이 시원시원 틘 어머니의 기질을 이어받은 탓이었다. 그는 수필 등에서 아버지 이야기는 별로 안하고 어머니 이야기를 열심히 썼다. 어릴 때 어머니는 수없이 많은 설화, 고담을 들려주었고 심청전이니 장화홍련전이니 하여간 그때 나온 이야기책은 모두 읽어 아들에게 들려주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결코 외아들을 과보호하지 않았는데 아들을 새삼스레 한참 바라보다가 “암만 봐도 너는 못생겼다.” 이러기도 하고, 아들이 집에 편지 한 장이라도 보내면 꼭 흠을 잡아서 “아직 멀었다. 너 친구 아무개의 글보다는 못하다.”하는 식으로 아들을 채찍질했다.
강원도 산골 가난한 살림살이 박차고 흥남 부둣가에서 생선 장수라도 하는 것이 낫다고 아이디어를 낸 사람도 아버지가 아니고 어머니였다. 금강산 아랫자락 산골에서 금강산 윗동네 항구 도시로 이사간 그 일이 바로 김동명을 오늘의 김동명으로 만든 계기였다. 산골 가난한 농군으로 늙어 죽을 아들을 시인으로, 대학교수로, 사업가로, 정치가로 만든 것은 바로 여장부 어머니의 넓은 식견 덕분이었다.
사실상 김동명의 야단스럽고 요란한 인생도 자기의 뜻에 의한 인생이 아니고 어떤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살아진’ 인생이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학생 시절에는 어머니에 얹혀서 살아졌고, 사회인이 되어서는 선배 동료의 도움으로 혹은 능력 있는 아내들(그는 세 번 결혼했는데 모두 처복이 있었다)의 뒷바라지 덕에 적토마 같은 한평생을 산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의 대표작 「내 마음은」에는 청순 가련형의 ‘수동적 마음’만 나타나 있을 뿐이다. 호수, 촛불, 나그네, 낙엽 이 모두가 연약하고 피동적인 상징물들이다. 흰 그림자, 비단 옷자락, 피리, 뜰은 모두 여성의 상징물이다. 김동명에 있어서 여성은 어머니의 상징어이자 아내들의 상징어라 보아도 좋다.
그는 어머니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만큼 여성을 사랑했고 모든 여성적인 것에 대해 다소곳이 포용하는 마음 자세를 평생 지니고 살았다. 그런 그의 마음 상태가 「내 마음은」과 같은 절창(絶唱)을 낳게 했다고 보아서 틀림없다. 그래서 그런지 주로 여학생들이 김동명의 시들을 줄줄 잘 외운다. 그는 어떤 글 속에서, “세상에 여자를 있게 해 주신 신의 은총이 한량없이 가슴 벅차고 감격스럽다고 했으며 여자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 어느새 버릇으로 되었다”고 쓴 일도 있다.
<감상의 길잡이>(3)
가곡으로 작곡되어 널리 애창되고 있는 이 시는 4행이 한 연을 이루는 전 4연 구성 속에 사랑의 기쁨과 정열, 그리움과 애달픔이라는 사랑의 실상을 매우 아름답게 담고 있다.
‘호수’․‘촛불’․‘나그네’․‘낙엽’ 등으로 은유된 ‘내 마음’을 주지(主旨, tenor)로 한 다음, 거기에 대응되는 ‘배’․‘옷자락’․‘피리’․‘뜰’ 등으로 표현된 ‘그대’를 각각의 매체(媒體, vehicle)로 하여, 앞의 두 연은 동적(動的)이고 직접적인 방법에 의해 사랑을 즐거운 것과 타오르는 것으로, 뒤의 두 연은 정적(靜的)이고 간접적인 방법에 의해 사랑을 외롭고 슬픈 것으로 구상화하여 참신한 이미지 창출에 성공하고 있다.
1연에서는 임을 위해 부서짐으로써, 2연에서는 타 버림으로써 임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고 있다. 또한 1연에서는 호수를 통한 넓이의 사랑으로, 2연에서는 촛불이라는 소멸의 의지를 통한 깊이로 임에 대한 사랑을 형상화하고 있다. 촛불은 남을 위해 자신의 몸을 불태우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리다.’라고 노래하는 것은 임에 대한 절대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 주는 것이 된다.
그러나 임에 대한 열정적인 사랑의 감정을 ‘부서지며’․‘태우며’로 노래한 전반부와는 달리, 후반부에서는 ‘나그네’․‘낙엽’으로 전이된 화자가 만남의 약속도 없이 쓸쓸히 임의 뜰을 떠나가겠다고 하면서 사랑의 감정에서 빚어지는 외로움을 심상화하고 있다. 이렇게 이 시는 사랑의 상반된 두 감정의 교묘한 배합을 통해 기쁨과 아픔이라는 사랑의 실상을 보여 주는 것이다.
또한 각 연의 매 2행은 경어체인 ‘오오’․‘주오’․‘하오’로, 매 4행은 ‘지리다’․‘오리다’로 끝맺음으로써 임에 대한 사랑을 더욱 절실하고 호소력 있게 하였으며, 아울러 이 시를 섬세한 어감과 분위기의 작품으로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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