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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시(靑柿)-김달진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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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시(靑柿)-김달진


 

작가 : 김달진(1907-1989)

호 월하(月下). 경남 창원 출생. 불교전문 졸업. 1929문예공론에 시 잡영수곡(雜泳數曲)이 추천, 1932조선일보에 당선되어 등단. 시원(詩苑), 시인부락동인.

그는 불교적인 시상을 바탕으로 은인자적하는 삶을 노래하였으며, 전인류애적 시상을 동양적인 세계관 속에 용해했다.

시집으로 청시(靑柿)(청색지사, 1940), 큰 소나무는 변하지 않는 마음(시인사, 1983), 올빼미의 노래(시인사, 1983) 등이 있으며, 번역서인 손오병서(孫悟兵書)(1955), 고문진보(古文眞寶)(1957), 법구경(法句經)(1965), 장자(莊子)(1965) 등도 있다.

 

 

< 감상의 길잡이 >

현대에서는 단절되었거나 전혀 불필요하다고 보이는 노장적(老莊的) 세계(世界)를 고수하는 김달진의 시세계는 간결하고 명징한 이미지를 지닌다. 어떻게 보면 이 짧은 시에서 우리는 더 이상 무엇을 가감하여 말할 것이 없음을 느낀다. 인공의 손이 전혀 가해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묘사되고 있다. 거기에는 뜰이 있고, 미풍이 지나가고, 흔들리는 가지와 짙푸른 잎새 속에 아직 익지 않은 감이 감추어져 있다.

 

그러나 다시 읽어보면 이 모든 풍경은 `유월의 꿈이 빛나는 뜰'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 작은 뜰이야말로 삼라만상이 존재하는 세계의 중심이며, 화자는 이 작은 세계에서 빛나는 유월의 꿈을 포착하는 것이다.

 

훼손되지 않은 세계에는 훼손되지 않은 꿈이 있다. 아직 익지 않은 감이 있으므로 그가 염원하는 세계는 충만되지는 않았지만, 그 자체로서 자연 그대로 완결된 하나의 세계이다. 그는 지나가는 작은 바람의 흔들림에서 존재 그 자체를 인식하며, 그와 동시에 존재자인 시인 자신의 꿈도 자연스럽게 그 세계 속에 존재하도록 만든다. 존재자인 나와 만물(萬物)은 하나이며 나는 거기에 어떤 의도적인 작위도 가하지 않는다. 이 익지 않은 푸른 감을 매개물로 하여 현상적 움직임 속에서 존재의 본질을 통찰하고, 그 온전한 모습 속에 존재자로서 자신을 참여시켜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이 청시(靑柿)가 머금고 있는 근본적인 세계이다.

 

이는 장자가 말한 바 `만물일여(萬物一如)', 혹은 `만물제동(萬物齊同)'의 사상을 그대로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천지와 만물이 나와 함께 하나라는 장자의 사상은 관찰자와 관찰의 대상이 하나이며 주체와 객체가 하나라는 뜻이다. 인공의 힘을 가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성숙됨을 바라보는 것이 바로 김달진의 시각이다.

 

`()는 은폐(隱蔽)되어 이름이 없다'는 노자의 말은 그 도가 만물을 잘 가꾸어 주고 잘 양성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 말은 청시(靑柿)의 배후에 깔려 있는 김달진의 시적 직관을 떠올리게 해 준다. 인공의 손이 가해지지 않은 자연물을 그 자체로서 드러내 보인다는 시적 직관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짙푸른 잎새 속에 감추어진 열매가 머금고 있는 유월의 꿈으로 제시된다. 만물일여의 시적 사고를 가진 자아가 품고 있는 완전한 하나에의 꿈이 바로 감추어진 열매가 품고 있는 꿈이다.

 

수사가 제거된 간결한 시적 진술을 통해 우리는 은폐된 자연의 도를 깊게 통찰할 수 있다. [해설: 최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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