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삐딴 리 / 줄거리 및 해설 / 전광용
by 송화은율꺼삐딴 리( 1962년 7월, <사상계>)
작가:전광용(全光鏞, 1919 - 1989)
호는 백사(白史). 함남 북청 출생. 서울대 문리대 국문과 졸업. 서울대 교수 역임. 1939년 <동아일보> 신춘 문예에 동화가 당선되고, 195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흑산도」가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 이 작가의 특징은 철저한 현장 조사에 의한 창작에 있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리얼리티에 있다. 대표작에는 「진개원」, 「충매화」, 「초혼곡」 등이 있고 1962년 「꺼삐딴 리」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등장인물
이인국 박사:외과 의사. 철저한 변절적 순응주의자
줄거리
수술실에서 나온 이인국박사는 응접실 소파에 파묻히듯이 깊숙히 기대어 앉았다.
그는 백금 무테안경을 벗어 들고 이마의 땀을 닦았다. 등골에 축축히 땀이 잦아들어감에 따라 피로가 스며왔다. 두 시간 이십 분의 집도 위장 속의 균종적출. 환자는
아직 혼수상태에서 깨지 못하고 있다.
이인국 박사는 수술을 끝내고 나오며 불길한 예감이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느낀다.
자신이 살아온 삶의 역정을 돌이켜보던 그는 문득 미국에 유학을 떠나 있는 딸 나미의 편지를 생각한다. 그 편지에는 기필코 미국인과 결혼하겠다는 딸의 고집이 담겨 있다. 그는 마침내 자신이 그토록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닥쳐왔음을 깨닫는다. 상대는 동양학을 전공하는 외국인 교수.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 자신이 외국인 교수 앞에서 딸의 미국 유학을 주장했고, 또한 그 외국인 교수가 한국여성과 결혼하고 싶다고 했을 때에도 찬성했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는 담배 파이프를 지그시 깨문다. 백인 사위에 흰둥이 손자라, 그는 입맛을 쩝쩝 다시지 않을 수가 없다. 이같은 사실을 그는 자신의 후처인 혜숙에게 말한다. 그러나 혜숙은 자기와 아무 상관 없는 일이라는 듯 별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는 다시 입맛을 다시며 미국 대사관의 브라운씨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집을 나선다. 차을 타고 달려가면서 그는 해방을 전후한 시기의 기억을 떠올려보다.
38이북인 그의 고향에는 해방이 되자 느닷없이 소련군이 진주해 들어왔다. 그는 착잡한 심정으로 진주군의 탱크 행렬을 바라보았다. 벌써 며칠째 붐비던 그의 병원에는 이제 개미새끼 한 마리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그로부터 며칠 후, 그는 친일파라는 오명과 함께 치안대에 연행되어 온갖 욕설과 구타에 시달렸다. 이러한 와중에서도 그는 삶을 희구하는 가녀린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감방에 감금된 그는, 감방 안에 이질이 만연하자 형무소장의 명령에 의해 응급치실에서 일하게 된다. 그는 온갖 정성을 다해 환자들을 치료했다. 다른 무엇보다도 스텐코프라는 소련인 군의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였다. 그의 눈에 스텐코프의 왼쪽 뺨에 붙은 혹이 들어왔다. 그는 그 혹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겠다고 자청하고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 스텐코프는 그를 환대하였다. 그는 그뒤, 스테코프의 추천에 의해 하나뿐인 아들 원식이를 모스크바로 유학보냈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 해에 6 . 25사변이 터지고 말았다. 전쟁중에 남쪽으로 내려온 그는, 역시 자신의 기술과 수완으로 상당히 높은 위치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단지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아들의 소식을 생사조차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자동차가 브라운의 관사에 닿는다. 브라운과 만나 다정하게 담소를 나누는 동안 그는 브라운의 얼굴이 자꾸 스텐코프의 환영과 겹쳐지는 것을 느낀다. 그는 브라운으로부터 자신의 미국행에 대한 모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뿌듯한 무엇이 가슴 깊숙한 곳으로부터 치솟아오르는 것을 느낀다. 그느느 브라운의 관사를 나오면서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그리고 소련군 점령하의 북한에서, 또한 월남을 결행한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성공에 성공을 거듭했던 자신의 과거를 생각하며, 미국에 가서도 반드시 그러하리라고 확신을 가진다. 택시를 타고 느긋하게 달리는 그의 눈에 들어오는 가을 하늘은 더욱 높고 푸르게 느껴지는 것 같다.
이인국 박사는 캘리포니아 특산 시가를 비스듬히 문 채 지나가는 택시를 부러 세웠다.
그는 스프링이 튈 듯이 복스에 덜썩 주저앉았다.
“반도 호텔로......”
차창을 거쳐 보이는 맑은 가을 하늘은 이인국 박사에게는 더욱 푸르고 드높게만 느껴졌다.
해설
이 작품은 변절적인 순응주의자, 즉 카멜레온같은 인물을 모델로 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는 친일파, 해방 직후의 북한에서는 친소파, 월남 후에는 친미파로 시류에 편승해 영화를 누리고 살았던 한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노예적 속성을 비판함과 아울러 민족사의 비극을 암시한다. ’꺼삐딴‘은 영어의 ‘Captain(우두머리라는 뜻)’ 에 해당되는 러시아어로, 해방 후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들이 쓰는 말을 흉내내어 쓴 것인데, 이 ‘꺼삐딴 리’라는 제목에서도 힘 있는 것에 기대어 주체성을 망각하는 자들의 병든 인식을 우리는 읽을 수 있다. 냉정하게 세태 변화를 담는 객관적 수법이 이 ’이인국’ 이라는 주인공의 성격을 창조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주인공은 환자의 증세와 아울러 환자의 경제 정도를 진찰한다는 이중성을 보인다. 주인공은 전형적이고 평면적이며 출세지향적인 인물로 묘사되고 있으며, 작가는 이를 통해 진정한 인간의 삶의 가치를 반성하고 있으며 시류에 편승하는 기회주의적인 처세술을 비판하고 있다.신심리적인 수법과 몽타쥬 수법을 쓰고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유진오의 「김강사와 T교수」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많은 유사점을 보이고 있다.
(갈래) 단편, 본격 소설
(주제) 상황의 변화에 따라 변신하면서 적응해가는 인간의 풍자
(시점) 전지적 작가 시점
(성격) 풍자적, 냉소적,비판적
(경향) 신심리주의적 수법
(표현) 몽타쥬 수법
(구성) 역순행적 구성
참고문헌
임헌영 외(1991), 한국문학명작사전,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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