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廣場) / 줄거리 및 해설 / 최인훈
by 송화은율광장(廣場, 1960년 10월, <새벽>, 1968년, 현대한국문학전집)
작가:최인훈(崔仁勳, 1936 - )
함북 회령 출생. 1950년 월남 후 목포고교를 거쳐 서울법대에서 수학하다가 4학년 중퇴. 육군에서 통역 장교로 근무. 1959년 <자유문학>에 「그레이(GREY) 구락부 전말기」를 발표하면서 등단. 1960년 「가면고」와 「광장」을 발표하면서 작가적 명성을 얻게 됨. 그 뒤 「구운몽」(1962), 「서유기」(1966,1971),「소설가 구보씨의 1일」(1969,70), 「총독의 소리」(1967,68)를 발표하였고 1966년 「웃음소리」로 동인문학상 수상.
그의 작품 세께는 주로 지식인의 의식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현재 서울예전 교수.
등장인물
이명준:철학도.진정한 광장을 찾아 월북, 남하, 전쟁 중에 포로가 되었으나 중립국을 선택함. 배위에서 투신 자살.
이형도: 명준의 아버지. 월북한 혁명가. 이상적인 혁명가가 아닌 부정적 이미지를 보임
윤애: 남한에서의 명준의 애인. 명준의 월북 후 명준의 친구인 태식과 결혼
은혜: 명준의 북에서의 애인. 발레리나. 북한군 간호장교로 종군, 명준의 아이를 배고 낙동강 전투에서 폭사함.
갈매기: 중요한 소재. 배 위에서 은혜와 그의 딸로 상징됨. 명준 자살의 동기.
줄거리
바다는 숨 쉬고 있었다.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중립국으로 가는 석방 포로를 실은 인도 배 타고르호는 흰 페인트로 말쑥하게 단장한 3천톤의 몸을 떨면서 물건처럼 빼곡히 들어찬 동지나해의 공기를 헤치며 미끄러져 가고 있었다.
주인공 이명준은 해방 후 만주에서 귀국하였다. 서울에서 그의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 이형도가 당신의 이념에 따라 월북하자 그는 아버지의 친구인 변 선생의 후의로 더부살이를 한다. 대학의 철학과에 다니면서 그는 변 선생의 아들인 태식과 가까이 지내면서 현실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고 지내지만 현실에 대하여 깊은 환멸을 느낀다. 자기만의 밀실에 들어 앉아 현실을 관념적으로만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던 중 월북한 남로당원 아버지로 인해 명준은 경찰서에 끌려가 취조를 당하게 되고, 고문을 당하게 된다. 이 일로 인하여 비로소 현실에 눈을 뜬 그에게 비친 남한의 현실은 타락하고, 부조리하며, 보람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는 윤애라는 여인과의 사랑을 통해 이 관념과 현실의 간격을 없애려 노력하나 실패하고 번민과 환멸 속에 인천에서 배를 얻어 타고 월북하고 만다.
그러나 그가 찾아 월북한 북한도 만족한 곳은 아니었다. 이상적인 혁명가로 생각했던 아버지는 젊은 여자와 재혼하여 부르주아적인 생활을 하고 있고, 북한은 혁명은 간데 없고 혁명의 자취만 있는 곳이었다. 즉, 이데올로기와 허위에 가득찬 곳이었다. 공개적인 광장만 있을 뿐, 개성적인 삶은 없는 곳이었다.북한에서 그는 아버지의 힘으로 노동신문의 기자가 되지만 그가 작성한 기사가 당 간부들에게 핀잔을 듣자, 기자 생활을 버리고 노동판에 뛰어들어 작업한다. 그러던 중 실족으로 다리를 다치게 되고, 위문온 무용수 은혜와 만나 새로운 사랑을 누리게 된다. 북한 사회에서 못 느끼는 삶에 대한 애착을 은혜를 통해 느끼려는 듯 명준은 은혜에게 매우 집착한다. 은혜의 모스크바 유학으로 명준은 은혜와 떨어지게 된다.
한국 전쟁이 발생하고 인민군 정치보위부 장교가 되어 서울로 남하한 명준은 그곳에서 친구인 태식과 그의 아내가 된 옛 여인 윤애를 만나게 된다. 점령군 장교로서 그는 간첩 혐의로 잡혀온 태식을 구하기 위해 찾아온 윤애를 겁탈하려고 하나, 하지 못하고 둘을 탈출시킨다. 그리고는 치열한 낙동강 전투에 배치받아 가게 된다. 거기서 명준은 뜻밖에 간호병으로 자원 참전한 은혜를 다시 만나 동굴 속에서 재회의 기쁨을 누린다. 재회 속에 명준의 아이를 임신했음을 명준에게 말하고 헤어져 가던 중 그녀는 전사하고 만다.
결국 밀리는 전투 속에서 포로가 된 명준은 포로교환이 있을 때 남한도 북한도 아닌 중립국을 택한다. 그가 본 두 사회는 모두 환멸만이 있으며, 보람있는 삶을 줄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인도로 가는 배 위에서 갈매기를 은헤와 딸의 환영으로 보고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하고 만다.
타고르호는 흰 페인트를 말숙하게 단장한 3천톤의 선체를 진동시키면서 한 사람의 선객을 잃어버린 채 물체처럼 빼곡히 들어찬 남지나해의 대기를 헤치며 미끄러져 가고 있었다.
흰 바닷새들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마스트에도, 그 주변 바다에도.
아마 마카오에서 다른 데로 가버린 모양이다.
해설
이 작품은 우리에게 ‘이념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고 있다. 곳곳에 스며있는 낭만적인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우리에게 이념에 의한 남북한의 분단과 그로 인한 비극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인간은 무엇보다도 밀실이 필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마음껏 소리치고 누릴 수 있는 광장도 필요하다.
이 작품은 두 가지에서 의미가 있다. 하나는 남북 분단 문제를 정면에서 다룬 본격적인 장편이라는 것이다. 이 문제를 다룰 수 있었던 것은 4.19 때문이었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4.19에 의해 남북 분단을 정면으로 다룰 수 없다는 금기가 깨졌다는 것이다. 작자는 이명준이 남한도 북한도 선택하지 않고 제 3의 중립국을 택한다는 것은 현실에서의 패배이며 죽음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조국의 현실을 벗어난 제 3의 길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개인주의적이고 관념적인 지식인의 망명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은 민족의 현실에 대한 투철한 인식이 없이 남북한을 단순히 양자택일적인 것으로만 인식한 결과이다. 둘째, 이 작품이 남북한의 문제를 밀실과 광장이라는 인간의 본래적인 존재의 문제와 연결시켜 놓았다는 점이다. 인간에겐 누구나 자기의 고유의 밀실이 필요하면서, 동시에 타인과 교섭하면서 공동체적 삶을 살 광장이 필요한 법이다. 그런데 주인공은 진정한 시민적 광장에 대한 진실한 추구보다는 자신의 관념적이고 폐쇄된 밀실에 너무 기울어져 있었다.
이 소설에서 ‘바다’는 여성을 상징하는 원형상징으로 쓰이고 있다. 이명준이 바다에 빠져 자살하는 것을 ‘은혜와 그 아기에 대한 사랑 희구’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주인공은 인간중심주의적인 삶을 살다가 좌절한다. 그리고자신의 몸을 바다에 던짐으로써 사랑을 구한다. 여기서 자살은 가치있는 삶의 성취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어떤 시대적 상황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인간성이나 정당한 삶의 조건을 상실당한 인물들이 결국은 새로운 삶을 영위해 나가는 구조를 지닌 작품을 ‘상실과 되찾음의 이야기 구조’라 한다. 이러한 구조는 분단 문학에 자주 등장한다.
이 작품은 1960년 10월 잡지 <새벽>에 중편으로 발표되었으나 단행본으로 간행되면서 장편으로 개작되었다. 사실 이 작품은 작가에 의해서 5번 정도의 개작 과정을 거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제) 분단 이데올로기 속의 바람직한 삶과 사회의 추구
분단 이데올로기 속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 의미 추구
(갈래) 장편 소설
(성격) 관념적, 철학적
(시점) 전지적 작가 시점
(구성) 복합 구성, 분석적 구성
(표현) 전체적으로 회상 형식
철학, 사회학 용어의 빈번한 사용
부분적으로 의식의 흐름 수법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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