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글라우코스와 스킬라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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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라우코스와 스킬라  


어부인 글라우코스는 어느 날 엄청나게 많은 물고기를 잡았다. 그는 강 한가운데에 있는 조그만 섬에서 고기를 쏟아 놓고 종류별로 나누기 시작했다. 그런데 풀밭에 있던 물고기들이 되살아나 물 속에서처럼 지느러미를 움직여서 그가 놀라 멍하니 바라보는 사이 물 속으로 뛰어 달아났다.

"이것은 신의 조화인가, 아니면 저 풀에 어떤 영험이 있는 것인가, 그래 혹시 풀에 영험이 있다면 어떤 풀인지 알아봐야겠다."

글라우코스는 이렇게 생각하며 풀을 조금 뜯어 입으로 맛보았다. 그러자 그는 갑자기 물이 몹시 그리워졌다.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그는 결국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물 속에는 강의 신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글라우코스를 환영하였다. 또한 그들은 바다의 신 오케아노스와 테리스의 허락을 얻어 인간의 냄새를 깨끗이 씻어주었다. 글라우코스의 머리 위에 백 개의 강이 부어졌다. 그러자 그의 인간적인 감각과 생각은 말끔히 씻겨져 내렸다. 잠시 후에 그는 완전히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의 머리카락은 바다처럼 파랗게 일렁이며 물위로 길게 올랐고, 어깨 폭은 넓어졌으며 하반신은 물고기의 꼬리가 되었다. 바다의 신들은 모두 그의 모습을 칭찬하였다. 그는 이제 훌륭한 신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어 느날 그는 아름다운 처녀, 스킬라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그리고는 모습을 물위로 드러내 말을 건냈다.

" 아가씨, 소원입니다. 제발 그곳에 머물러 있어 주세요."

그러나 그녀는 기겁을 하여 높은 절벽 위에까지 도망쳐 갔다. 대체 어떤 것인지도 모를 것이 자기에게 말을 걸다니.... 그녀는 그것이 이름 모를 신이거나 아니면 바다 괴물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 모습의 형상과 색깔은 그녀에게 겁만 안겨줄 뿐이었다. 글라우코스는 줄곧 물 위에 상체만 드러내놓고 바위에 기댄 채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가씨, 아가씨, 나는 신이랍니다. 나를 괴물이나 바다 짐승으로 보지 마세요. 프로테우스와 트리톤의 신분도 나보다 아래랍니다. 예전에는 나도 인간이었답니다. 그때에는 생계를 위해 물로 나갔지만 지금은 신이 되었고 바다 안에 살고 있지요." 그리고 그는 자신의 모습이 변하게 된 이야기와 현재의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된 이야기를 하였다. 그리고 덧붙였다. "하지만 스킬라여, 그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면 내가 아무리 이야기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스킬라는 더 이상 듣지 않고 등을 돌려 달아나 버렸다. 그는 실망했으나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의 머리에 마법사 여신인 키르케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 길로 그는 키르케의 섬으로 가 사정을 말했다.

"키르케 신이여, 제발 나를 가엾게 봐 주세요. 나의 고통을 덜어 줄 분은 오로지 당신밖에 없습니다. 여신이시여! 당신은 나를 변하게 한 그 영험스런 약초를 잘 아실 것입니다. 나도 이미 그 영험을 잘 알고 있답니다. 아아, 나는 지금 스칼라라고 하는 한 여인을 사랑합니다. 부끄럽습니다만 그녀에게 온갖 방법으로 구애하고 맹세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냉담합니다. 부탁합니다. 요술을 부리시든지 그보다 더한 영험한 약초를 쓰시든지 해 주십시요. 그래서 그녀가 내가 사랑하는 만큼 나를 사랑하게끔 하여 주십시요."

이 말에 키르케는 대답하였다. 그녀는 언제나 푸른빛을 지닌 이 신에게 매력을 느꼈다.

"당신을 원하고 있는 상대를 구해봄이 어떠실지요. 당신은 힘써 구애를 하지 않아도 구애를 받아야할 가치가 있는 훌륭한분입 니다. 그런 당신이 쓸데없이 구애는 왜 합니까? 자신을 가지세요. 스킬라가 당신을 소홀히 하면 당신도 냉담하게 대하세요. 나는 여신으로 약초도 잘 다루고 주문에도 능통하지만 당신이 구애하신다면 받아들이겠어요. 그러니 당신도 당신을 원하는 상대를 맞이하세요."

케르케의 말을 들은 글라우코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해저에서 수목이 자라고 산꼭대기에 해초가 자란다고 하더라도 내 사랑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신 케르케는 대단히 분노했다. 그러나 그녀는 글라우코스를 벌할 수도 없었고 벌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의 사랑은 어느새 그만큼 깊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모든 분노를 연적 스킬라에게 돌렸다. 키르케는 여러가지 다른 독초를 뜯어 주문과 함께 섞었다. 그리고 자신의 마술로 동물이 된 무리 사이를 사이를 걸어 시실리 해안으로 갔다. 그곳에는 스킬라가 곧잘 바람을 쏘이기도 하고 목욕을 하곤 하는 작은 만이 있었다. 키르케는 이곳에 가져온 독물을 풀고 주문을 외웠다.

스킬라는 예전과 다름없이 만으로 왔다. 그리고 허리까지 물 속에 몸을 담갔다. 그러다가 그녀는 자신의 주위에 뱀과 짖어대는 괴물들이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녀는 괴물로부터 달아나 괴물을 쫓아버리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가 가는 곳마다 괴물은 쫓아다녔다. 하도 이상하여 스킬라는 자신의 다리를 만져 보았다. 그렇지만 손끝에 와 닿는 것은 다리가 아니라 괴물의 벌린 입이었다. 그제서야 그녀는 괴물이 자기 몸의 일부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놀라 뿌리가 내린 듯 그 자리에 붙박히고 말았다.

그러자 성격도 외모와 같이 추악해졌다. 그녀는 그 자리에 서서 어쩌다 재수 없이 걸려든 뱃사공들을 잡아먹었고 이것을 즐거움으로 삼았다. 이렇게 해서 오디세우스의 동료 여섯 명을 해치웠고 아이네이아스의 배를 난파시켰다. 그러다가 그녀는 결국에는 한 개의 바위로 바뀌었는데 이 바위는 지금도 암초로 남아 선원들을 위협하고 있다.

키이츠의 '엔디미온'에서는 여기에 새 이야기를 더하고 있다. 그 이야기는 글라우코스가 키르케의 은근한 말에 넘어간 것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글라우코스가 어느 날 키르케가 동물들을 잔인하게 다루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에 협오감을 느낀 그는 그녀로부터 도망을 쳤으나 이내 붙잡히고 말았다. 그녀는 그를 매우 원망한 뒤 놓아주었으나 그후 천 년을 노망과 고통 속에서 보내게 했다.

글라우코스는 바다로 돌아와 키르케의 바뀐 모습을 보고 또 그녀가 익사되었음을 보았다. 여기에서 그는 자신의 운명을 깨닫는다. 천 년 동안 물에 빠져 죽은 연인의 시체를 남김없이 수습하면 신탁을 받은 젊은이가 자신을 구원해 준다는 것이다. 뒷날 엔디미온은 이 예언을 실현하여 글라우코스에게 젊음을 주었고 스킬라와 다른 익사한 연인들에게도 모두 새 삶을 주게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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