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멸망과 재창조

 

인류의 멸망과 재창조

 

이리하여 세상에 사람이 살게 되었다. 그 최초의 시대는 죄악이 없는 행복한 시대로서 '황금 시대'라고 불리어진다. 강제적인 법률이 없어도 진리와 정의가 행하여 졌고, 인간을 위협하거나 벌을 주는 관리도 없었다. 배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자르는 일도 아직 없었고 마을 주변에 성곽을 쌓는 일도 없었다. 칼이나 창이나 투구 같은 것도 없었다.

대지는 인간이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며 노동을 하지 않아도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생산했다. 계절의 구분이 없이 항상 봄이 지배하였고, 꽃은 씨를 뿌리지 않아도 피었으며 강은 우유와 술과 더불어 흐르고 오크나무에는 황금 빛 꿀이 넘쳤다..

다음에는 '은의 시대'가 왔다. 이 시대는 황금 시대만은 못했으나, 구리 시대보다는 나았다. 제우스는 봄을 줄이고 일년을 계절별로 나누었다. 인간은 비로소 추위와 더위를 이겨내야 했고, 집이 필요하게 되었다. 동물이나 잎이 우거진 숲 덤불, 나뭇가지로 엮은 오막살이가 최초의 집이었다. 씨를 뿌리지 않으면 곡식이 나지 않았다. 따라서 농부는 씨를 뿌려야 했으며 소는 쟁기를 끌어야 했다.

다음에는 '구리 시대'가 왔다. 이 시대부터 사람들이 야만스럽고 무력을 행사하기 시작했으나 그래도 극악하지는 않았다. 가장 폭력적이며 타락한 시대는 철의 시대였다. 범죄는 홍수처럼 쏟아져 겸양과 진리와 명예는 사라졌다. 그대신 사기와 거짓말, 폭행과 사악한 욕심이 나타났다.

나무는 배의 용골에 쓰이기 위해 산에서 벌채되었다. 배를 띄울 때는 돛이 바람을 맞아야 했고, 대양의 물결을 헤쳐야 항해 할 수 있었다. 이제까지 공동으로 경작되던 땅이 분할되어 사유물이 되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은 땅의 표면에서 생산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 속까지 파헤쳐 여러 종류의 광물을 끄집어냈다. 철과 금이 산출되었는데 둘 다 재난의 근원이었다. 특히 금이 그러하였다. 철과 금을 무기로 하여 전쟁이 일어났다.

친구의 집에 있으면 안전하지 못했다. 사위와 장인, 형제와 자매, 남편과 아내도 서로 믿지 못하였다. 이들은 재산을 상속받기 위하여 아버지가 죽기를 바랐다. 가족애는 사라졌다. 대지는 살육의 피로 물들었다. 이렇게 도자 신들도 하나하나 대지를 떠났는데 순결의 여신 아스트라이아 만이 남아 있다가 마침내 그녀도 떠나갔다. 이제 신들은 지상을 돌보지 않게 되었다.

지상의 이러한 모습을 논 제우스는 크게 노하여 회의를 열기 위해 신들을 소집했다. 그들은 소집에 응하여 하늘의 궁전을 향해 길을 떠났다. 청명한 밤에는 누구나 볼 수 있는 이 길은 공중을 횡단하고 있는데 '은하'라고 불리어진다. 이 길가에 유명한 신들의 궁전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공중의 일반 서민들은 그 좌우에 떨어져 살고 있다.

제우스는 신들이 모이자 지상의 무서운 상태를 설명하고, 자기는 지상의 인간들을 다 멸망케 하고 그들과는 다른 새로운 종족을 만들 것이라고 선언한다.

제우스는 번개를 손에 들고 그것을 이 세계에 던져 불태워 버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불이 일어나면 하늘도 화재를 면치 못할 것으로 생각한 제우스는 세상을 물바다로 만들어 버릴 작정으로 북풍을 붙들어 매고 남풍을 불게 했다. 순식간에 온 하늘은 암흑으로 뒤덮였다. 구름이란 구름은 다 달려와서 굉음을 애고 폭우가 내렸다. 곡식은 넘어지고 농부의 한해 동안의 노동은 순식간에 수포로 돌아갔다. 제우스는 자기의 물만 가지고는 만족하지 않고, 동생 포세이돈(바다의 신)에게 도움을 청했다. 포세이돈은 여러 강물을 육지로 흘려 보냈다. 동시에 그는 지진을 일으켜서 대지를 동요시키고 바닷물이 역류하도록 해 해안을 휩쓸었다. 사람과 가축들, 가옥이 유실되고 신성한 담으로 둘러싸인 신전들은 더렵혀졌다. 유실되지 않은 큰 건물도 물 속에 침몰되고 그 누각은 물결 밑에 잠기었다. 모든 것 은 물로 뒤덮였다.

여기 저기 솟아있는 산꼭대기에는 몇 명의 사람이 남아있고, 농사를 짓던 밭에는 소수의 사람들이 보트를 타고  노를 저었다. 물고기들은 나뭇가지 사이에서 헤엄을 치고 닻은 정원 안에 나뒹굴었다.  조금 전까지 온순한 양이 놀던 곳에는 사나운 물개가 뛰어 놀았다 늑대는 양 사이에 헤엄치고 누런 사자와 범은 물 속에서 몸부림쳤다. 물 속에서는 멧돼지의 힘도 사슴의 재빠름도 소용이 없었다. 새들은 날다 힘이 지쳐도 앉아 쉴 곳이 없기 때문에 물 속으로 떨어졌다. 물난리를 면한 생물들도 결국은 굶어 죽었다.

모든 산 가운데 오직 파르나소스 산만이 물위에 솟아 있었다. 그 곳으로 프로메테우스의 동족인 데우칼리온과 그의 아내 피라가 피난하였다. 남편은 올바른 사람이었고 아내는 신을 모시는 마음이 돈독한 충실한 신도였다. 제우스는 오직 이들 부부만이 살아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들의 흠잡을 데 없는 삶과 경건한 태도를 기억하고는 북풍에 명령하여 구름을 쫓고 공중을 지상에 지상을 공중에 나타나게 하였다.

포세이돈도 아들 트리톤에게 조개 껍질을 불러 물에게 물러나도록 명하게 하였다. 물은 복종하였고 바다는 해안으로 돌아가고 강물도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그때 데우칼리온은 피라에게 말하였다.

"오, 아내여. 생존하고 있는 유일한 여인이여! 우리는 처음에는 혈연과 결혼의 인연으로 맺어졌고, 지금은 공동의 위험에 의하여 맺어졌소. 우리가 조상 프로메테우스와 같은 힘을 가지고 그가 처음에 새로운 종족을 만든 바와 같이 그것을 갱생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소? 그러나 이 일은 우리의 힘에 겨운 일이므로 저기 있는 신전에 가서 신들에게 장차 우리는 무엇을 해야 좋을지 물어보기로 합시다."

그들이 진흙으로 더렵혀진 신전으로 들어가서 제단에 다가가 보니 성화도 꺼져 있었다. 그들은 땅에 엎드려서 테미스 여신에게 어떻게 하면 이 재난을 극복할 수 있을지 가르쳐 달라고 기도를 올렸다. 그러자 신탁이 내려졌다.
"머리에 베일을 쓰고 옷은 벗고 이 신전을 떠나라 그리고 너의 어머니의 뼈를 너의 뒤에 던져라"
  부부는 깜짝 놀랐다. 피라가 먼저 침묵을 깨고 말하였다.
"저희들은 복종할 수 없습니다. 저희들은 감히 부모의 유골을 더럽힐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나뭇잎이 우거진 그늘 밑으로 가서 신탁이 한말을 곰곰이 생각했다. 마침내 데우리칼리온이 말하였다. "내 생각이 들리지 않는다면 신탁의 명령에 복종해도 불효는 되지 않으리라고 믿어. 대지는 만물의 위대한 어머니이고, 돌은 그 뼈야. 우리는 이것을 우리 뒤에 던지면 돼. 내 생각으로는 이것이 신탁의 의미인 것 같아. 어쨌든 그렇게 해보아도 나쁠 것은 없겠지." 그들은 얼굴로 베일을 가리고 옷을 벗고 돌을 주워 뒤로 던졌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돌은 말랑말랑해져서 형체를 취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의 형태에 가까운 모양을 갖게 되었다. 돌에 묻어 있던 습기와 진흙은 살이 되었고 돌 자체는 뼈가 되었다. 남자가 던진 돌은 남자가 되고 여자가 던진 돌은 여자가 되었다.

그들은 건강하여 노동에 적합하였다. 오늘날의 인류는 그들 종족에서 유래하였다.

프로메테우스는 예로부터 여러 시인들이 즐겨 시제로 삼아왔다. 그는 인류의 친구로서, 제우스가 인류에게 노하였을 때, 인류를 위해 화해토록 해주었고, 또 그들(인류)에게 문명과 여러 기술을 가르친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제우스의 분노를 사 카우카소스 산의 바위에 쇠사슬로 묶이고 말았다.

독수리가 와서 그의 간을 쪼아먹었지만 먹고 나면 그 자리에 바로 새살이 생겼다. 프로메테우스는 독재자인 제우스의 뜻대로 따르기만 했다면 이와 같은 고통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제우스가 왕위를 지켜나갈 수 있는 그 비밀을 알고 있었고, 이 비밀을 그에게 가르쳐 준다면 그의 총애를 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이와 같은 행동을 경멸하였다. 따라서 그는 부당한 수난에 대한 영웅적인 인내와 독재에 반항하는 의지력의 상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