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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정류(群衆停留) / 전문 / 송영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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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정류(群衆停留) / 송영

 



1

눈이 와서 온 세상은 은뚜껑을 해서 덮은 것 같다.

다 스러져 가는 듯한 초가집떼들이나 펼쳐 놓인 논밭 전지들도 다 하얗기만 하다.

더군다나 지금은 섣달 보름날 저녁! 달까지 밝다. 고요하고 쌀쌀하며 희고도 밝은 빛은 언제든지 어둡기만 하던 ××두메에 차서 있었다.

이 두메 안은 얼어 죽은 듯이 고요만 하다.

별안간 댕강댕강 하는 요령 소리가 두메 가운데서 난다. 그러자 바지 바람에 방한모만 뒤집어쓴 사람 두엇이 나타난다.

하나는 키 작은 늙은이, 하나는 멀쑥한 젊은이.

늙은이는 요령을 흔들고 앞을 서고 젊은이는 기다란 몽둥이를 들고 뒤를 따른다.

두 사람은 두메 끝까지 나와서 다시 두메 뒤로 돌아 들어간다. 한 바퀴 도는 모양이다.

그러다가 그 두메 맨끝 산기슭 아래 조그만 움집 앞까지 가서 딱 서더니 늙은이가,

"여보게 순호, 군호나 한번 하게."

젊은이는 퍽 팽팽하게 생겼다.

"왜요."

늙은이는,

"왜요가 다 뭔가, 혹시 순사가 오다가 듣더라도 순(巡)이나 돈 줄 알게."

순호는 생긋 웃으면서 목소리를 이상스럽게 내빼어서 '우후', '우후' 한다. 건넌마을에서도 역시 군호 소리가 건너온다. 양편 동네에서 '우후', '우후' 하는 소리는 마치 무슨 전조를 말이나 하는 듯하다.

2

움 속만은 말꾼으로 가득 찼다. 다 더러운 흙투성이 옷을 입고 한 이십 명은 둘러앉았다.

순호가 먼저 껑충 뛰어 내려가면서,

"엥히 추워. 경칠 순인가 뭔가 돌다가는 어른 돌아가시겠네."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담뱃대를 물고 있던 상투쟁이 하나가,

"그래 우리 조카놈 개똥 쌌다."

그러자 또 한편에 눈이 새물새물하게 생긴 자가,

"그럼 우리 손자놈이게."

"저런 내 증손자놈일세."

순호는 성은커녕 도리어 듣기 좋은 듯이 생글생글 웃으며,

"에키 버릇없는 애놈들 같으니. 저희 할아버질 가지고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러자 또 한 자가,

"에그 허리 아파, 왜 자꾸 부르니. 아무리 네 할아범이기로."

하면서 상을 찡그리고 허리를 탁탁 친다. 모두 웃음판이 되었다.

그러자 키 작은 늙은이가 들어온다. 모두들 말을 그쳤다. 상투쟁이가 옆의 사람을 꾹 찌르며 조그맣게,

"애 안달이 들어온다."

그 소리에 모두들 또 웃었다. 흘끔흘끔 안달이를 쳐다보면서 웃었다. 안달이는 웬 영문인 줄 모르고 따라서 웃고 한편에 가 앉는다. 그 앉는 모양이든지 생김생김새가 참 너무나 채신머리가 없어 보인다.

안달이 늙은이가 일부러 목소리를 점잖게 내면서,

"참말이지 순이라는 것은 잘 낸 노릇야."

순호는,

"왜요."

"어히 자네는 너무 막하네그려, 왜가 다 뭔가?"

"아뇨, 왜 그러냐 말씀이죠."

"그럼 생각해 보게, 요새 같은 대목에는 좀도적이 좀 많은가, 그러니까 서로 동내가 돌려 가면서 순을 도는 것이 서로 보아 주는 미풍(美風)이 아닌가?"

순호는 이제까지 시시덕거리던 빛은 없어지고 다소 긴장이 되었다. 퍽 다혈질로 생긴 사나이다.

"아니 미풍이라는 게 뭐 말라죽은 거야요."

막 들이대는 바람에 안달이 늙은이도 언성이 높아 갔다. 모든 사람들은 재미나 있는 듯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고 있다.

"아니 자네 그게 무슨 말버릇인가."

순호는 슬쩍 눙치면서,

"아뇨, 잘못했습니다. 제 말버릇이 그렇답니다. 그런데 미풍이라뇨."

"아름다운 풍속 말야. 이웃사촌이라고 좀 존가, 그전 같아 보게그려, 서로 야순은커녕 옆집을 떠가도 그 옆집에서 내다나 보았나."

순호는 빙긋 웃으면서,

"그건 영감이 잘못 생각하셌어요."

"왜?"

"실상 순이라는 것은 저희들이 욕당하는 셈과 같애요."

"어째서."

"그럼 뭐야요, 순이라는 것은 도적놈 지킨다는 것이라죠. 그럼 저희같은 놈들이야 도적놈이 와야 집어갈 것이 있어야죠."

그러자 여러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암 그렇지."

"실상은 있는 사람을 위한 것이지."

"우리들은 실상 있는 놈을 더 좋게만 하는 셈야."

와글와글 야단이다. 두 사람의 문답은 끊어졌다.

그러다가 다시 순호가 더 힘있게,

"그러니까 그렇지 뭐야요. 실상 이 세상이라는 것은 없는 놈만 더 못살게 구는 세상이니까요."

'그래', '그래' 모두들 또 대꾸를 한다.

"참― 세상은 망할 세상이죠. 있는 놈은 떡― 자빠져 있어도 그저 생겨라 생겨라 하는 것이 돈이고 없는 놈은 그저 생겨라 생겨라 하는 것이 빚밖에 없죠. 이러고 세상이 온전해요?"

안달이 늙은이는 반대는 못 했다.

"그건 그래. 그렇지만 어떻게 인력으로 할 수야 있나. 다 운수지."

"운수요. 에그 영감 같으신 이는 똑― 그게 병야요."

"무슨 병야."

"병이라도 큰 병이시지요. 운수라는 것이 다 뭐야요. 세상 일은 사람이 저질러 놓고 또 해가는 것인데 운수가 다 무업니까. 운수 운수 하고 가만히 있으면 죽다가도 사는 수가 있나요."

"자넨 아직 젊어서 모르는 소릴세. 예전 사적을 보면 다 운수가 돌아야 성사도 되고 한다네……."

상투쟁이도 그럴듯이 여겨서,

"꼭 운수라는 것은 있나 봐요. 참― 저도 그렇게 살려고 애를 써도 밤낮 요 모양인데 저 건너 이뿐네 집은 그럭저럭하더니 곧잘 살지를 않습니까?"

늙은이는 득승이나 한 듯이,

"그럼, 이 세상은 뭐니뭐니 해도 꼭 천수가 있다네……."

그러자 느리광이로 생긴 사람 하나가,

"글쎄요, 운수려니 하다가도 어떤 때는 운수라는 것이 없는 듯도 하던데요."

"왜?"

"아니 옛날부터 하느님이란 공평무사하시다고 그랬죠. 그럼 왜 저 윗골 박주부네는 왜 개모양이 되었나요. 그렇게 사람 좋고 인정 있는 성인 같으신 양반이 지금 한 칸 방도 없는 거지가 되었나요."

"허― 그건 그렇지 않지.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잘못된다는 팔자를 타고난 거야 헐 수 있나?"

순호는 기가 막히는 듯이 웃으면서,

"팔자라니요."

"그럼 팔자지, 자네 김옥균이나 박영효 아나."

"그럼요, 개화당패이죠."

"그래 두 양반은 다 똑같은 개화당패가 아닌가. 몇백 년을 내려오면서 호인놈들에게 지질려 지내 오던 우리나라를 ××시키려고 야단야단치던 양반들이 아닌가? 왜 (더 힘있게) 그런 양반들이 다― 똑같이 진심갈력은 했건마는 왜 한 양반은 와석종신을 하고 한 양반은 육시처참을 당하였나, 다― 생각하면 운수지 뭔가?"

순호는 언성이 높아졌다. 불뚝하는 기운이 났다.

"별별 케케묵은 소리를 다 하슈. 그래 무슨 경칠 놈의 운수가 나쁜 놈만 잘 만들어 놓는단 말입쇼."

"사실이 그런 걸 어쩌나?"

"사실 아니라 오실이라도 전 그렇게 운수라고만 생각을 안 해요. 그저 목이라도 턱―턱― 베어 죽일 놈들이 있어서들 그 모양이죠."

점점 문답은 높아 가고 어려워 간다. 모든 말꾼들은 그래도 순호의 하는 소리에 공명들이 되는 모양이다.

"여보게 자네 괜히 그렇게 엇먹지 말게."

"뭘 엇먹어요."

"아니 꺽덕댄단 말이지. 지금 세상에는 쓸데없이 큰소리만 하면 큰코 다치네."

"무슨 큰소리예요, 똑바른 말이죠."

"그럼 자네 큰소리만 하면 별수 있나. 자네도 뻔히 보면서 그러나. 세상은 점점 강팔라 가서 서로 눈만 감으면 코를 다 베어 먹을 판이고…… 그저 별수없네. 아무렇게 굽실굽실거리더라도 다 있는 놈한테 다수굿하고 사는 게 그중이지!"

"아니 개모양으로요."

"허허, 그야 실상 말하면 개모양이나마 되나. 배 주고 뱃속 빌어먹는 분수밖에는 안 되지. 그렇지만 운순걸 어떡하나?"

순호는 아주 흥분이 되었다.

"그러니까 요 모양이죠. 영감 같은 것들이 젊은이 노릇을 하고 지내 왔으니 이렇게밖에 더 되어요. 에히, 그저 죽일놈은 조선놈밖에 없어……."

성을 냈다. 움 안은 긴장이 되었다. 시시덕거리고 잡소리를 하던 기분은 사라지고 말았다.

"참, 큰일났지."

"몇 해만 있으면 어떻게 되려는지……."

"그저 자꾸 죽어 가다가도 끝이 있을는지……."

하는 절망의 탄식은 이곳저곳에서 일어난다.

 


3

이런 판에 움 문이 탁 열린다.

그러면서 어떤 암상꾸러기로 생긴 농군 하나가 쑥― 들어와서 움 안을 휘휘 둘러보다가 순호를 보더니,

"아니 자네 여기 있었네그려."

순호는 얼굴이 좀 불쾌하여지며,

"그래!"

그자는 득의한 목소리로,

"아니 그래가 뭔가, 자넨 정신이 없나."

"왜?"

"아니 오늘은 무슨 날인지 아나."

"알고말고. 보름날이지."

"흥, 퍽은 뻔뻔하이…… 어서 가보게. 여러 계원들이 아주 야단이 났네."

순호는 점점더 불쾌한 소리로,

"별 빌어먹을 소리를 다 하는구나. 야단이 무슨 야단야, 멀쩡한 망할자식들 같으니."

그자는 두 눈을 샐쭉하게 뜨고 갈거 잡아당기는 소리로,

"아니 자네 그걸 말이라구 하나."

말을 채 끝내지를 못하여 순호는 벌떡 일어나며 메다붙이는 소리로,

"이런 망할자식, 넌 무슨 참견이냐. 거지 같은 녀석 같으니. 왜 너도 쉰둥개 밥통에 가 매어달렸으니까 그러니. 흥, 더러……."

그 소리에 방 안은 또 웃음판이 되었다. 호화로운 웃음이 아니다. 그리고 모두들 쉰둥개의 모양을 생각하고 있다.

원래 쉰둥개라는 것은 이 동리에서 그중 부자인 지주의 별명이다. 옛날에 무엇을 지냈는지는 모르나 하여간 돈 있는 계제로 김참의라고 지내는 어른이다. 더군다나 이 리의 구장이며 또는 동척회사의 농감이었다. 어디로 보든지 세력이 팽팽하고 또는 자기의 앞을 더 터가려는 욕심뿐만을 가진 늙은이다.

원래 쉰둥개라는 별명도 역시 순호가 지은 것이었었다. 어느 때 김매느라고 한참 바쁘던 여름날 해가 서쪽 봉화둑에 가 걸려서 붉고 빛나는 빛을 온 들에 비추었을 때이다.

여러 농군들은 푸른 물결 같은 논 가운데에 가 하얗게 들어서서 김을 매던 판이었었다. 별안간에 순호는 벌떡 일어났다. 그의 눈에는 불평이 어리어 있었다. 새삼스러이 화가 복받치는 듯이 진흙투성이가 된 호미를 논두렁에다가 탁 하고 내어던졌다.

"이런 우라질 일이 있담."

그 옆에 늙수그레한 사람 하나가,

"아니 자네 별안간 무슨 화가 그렇게 복받치나?"

그는,

"엥히 그 쉰둥개 생각이 나서요."

아주 험상궂었다. 모두들 이상스러이 생각했다.

그 늙은이는,

"쉰둥개라니?"

그 말에 키 작고 바라지게 생긴 자 하나가,

"아니 암캐 말이냐. 에따 그 녀석 암캐 생각을 다 하고 제법일세."

그 소리에 모두 웃음판이 되었다. 그도 웃었다. 그러나 더 큰 목소리로,

"개란 놈은 쥔에게 아첨을 하겠다. 그리고 얻어먹겠다."

그 중에 우스운 소리 잘하는 떠벌이가,

"어― 알았네. 그만 집어치게. 쉰둥이 농감 빚쟁이…… 알었네."

손가락 셋을 쪽 붙여 번쩍 들면서,

"이렇게 똑같단 말이지!"

모두들 그 우습게 하는 소리에 깔깔 웃었다. 그는,

"그래 옳다. 그놈의 쉰둥개들 때문에 우리들이 살 수가 있어야지."

새는 노래하고 해는 넘어가는 여름날 석양에 훈훈한 바람은 푸른 벼를 흔들어 내는 광경이 눈앞에 보일 제 그들은 잘된 곡식을 다 뺏겨 버리고 벌벌 떨고 지내 갈 앞날들이 생각났다.

그리하여 잠깐 동안은 모두가 잠잠하였다. 이것이 이 김농감이 쉰둥개란 별명을 듣게 된 이야기다.

 


4

김농감 집 사랑방은 한 이 칸통은 된다.

방 안에는 백립 쓰고 담뱃대 물고 있는 시골 사람들이 좍― 하고 둘러앉았다. 한 이십 명은 된다.

오늘은 곗(契)날이다. 이 동리와 또는 이 근처에 있는 사람들 중에 그래도 밥술이나 먹는다는 패들이(지주, 사음, 농감) 모아 놓은 계이다. 그리고 계장 겸 도가(都家)가 이 쥔영감이었었다.

순호는 역시 불쾌한 얼굴로 들어섰다. 얼굴뿐 아니라 그의 가슴속까지라도 매우 험하여졌다.

예전 같으면 아무렇게 해서라도 굽실굽실거려 가며 여러 빚쟁이들의 환심을 사서 잠깐 봉변만은 피하려 들었으나 그는 아주 달라졌다.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가 놓았으니 뒤에서 따라오는 자에게 더 쫓기어 갈 수 있는 것이다. 죽든지 살든지 간에 다시 돌쳐서 나오는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김농감, 즉 쉰둥개 영감은 아랫목에 가 정좌하였다. 그의 앞에는 백지로 맨 계의 치부책과 돈 담는 대접이 놓였다. 지전 몇 장에 은전 몇 푼이 담겨서 있다.

"어서 들어오지."

"네―"

"다른 게 아닐세. 오늘은 곗날이 아닌가?"

순호의 마음은 찢어지는 듯이 되었다. 향방 없는 울분만 떠올랐다. 그러나 역시 작은 소리로,

"네―"

여러 계원들의 눈은 다 순호에게로 모였다.

"자네도 그만 경우는 모를 사람이 아닌데 어째 그렇게 무심하단 말인가?"

순호는 좀 언성이 높아졌다. 떨렸다.

"무에 무심해요."

쉰둥개 영감도 좀 목소리가 커가며,

"아니 뭐가 다 뭔가?"

"무에 무심하냐 말씀이죠."

"왜 낼 돈을 안 내느냐 말야. 밤낮 밀고만 지내고……."

"없는 것을 억지로 해요. 제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다 사정이 그런 걸 제가 유심한들 소용이 있겠어요."

영감도 이 소리에 흥분이 되었다.

"아니 난 그런 줄 몰랐더니 자네도 퍽 흐린 사람일세그려."

말이 끝나지도 못해서 순호는,

"무엇이 흐려요. 없어서 갚지 못하는 게 흐려요."

그 소리에 일좌는 긴장이 되었다. 그 중에 치부책 옆에 가 앉아서 먹을 갈고 있던 서기가,

"여보슈, 그걸 말이라구 허슈."

그 말을 쥔영감은 가로채서 막으면서,

"여보 시비할 거야 있소. 참구려. 그 사람이 성미가 그러니까…… 어떻든지 셈이나 뽑아 보슈."

새빨갛게 상혈이 되었던 서기는 그저 꿀떡 참는 모양으로 좀 진정을 하더니 치부책을 꺼내 들고서,

"원 본금이 오천 냥인데요. 재작년 추봉에 가져간 거구요. 변은 서 푼 오 리로요. 그래서 작년 추봉까지 변리 합하여 칠천일백 냥이 되었구먼요. 그리고 금년, 즉 지금까지에는 모두 합금이 구천팔백이십육 냥 닷 돈이 되었구먼요."

보고가 끝이 나자 모든 계원들의 눈에는 상혈이 되었다. 돈 동록에 마음이 젖은 그들의 귀에는 아무것도 없는 놈에게 받을 돈이 그렇게 많이 된 것이 들릴 때에는 벌써 그것이 뜨면은 어떻게 하나 하는 초조가 일어난 까닭이다. 순호는 기가 막히었다. 두 눈이 캄캄하여졌다.

쉰둥개 영감은,

"다 자세히 들었나. 셈이 틀리지는 않나?"

"틀리고 맞고 간에 누가 아나요."

"그럼 자네 것을 자네가 알지 누가 아나?"

순호가 뭐라고 또 말을 하려는 판에 쉰둥개 영감은,

"아니 긴 말은 그만두게. 돈 해가지고 왔나?"

"아니 누굴 놀리시는 모양이에요. 뻔히 없어서 그냥 온 것을 아시구설랑."

"그럼 오늘 못 된단 말이지."

"그럼요."

"그럼 어떻게 한단 말인가?"

"차차 숨돌리는 대로요."

"차차 숨이라니. 그럼 숨을 돌리지를 못하면 못 낸단 말인가. 에히 그걸 말이라고 하나?"

"왜요, 말이야 똑바로 했죠. 턱없이 낼 낸다 모레 낸다 하면 소용이 있나요."

"여보게 순호."

"네."

"퍽 박절한 소리 같지만 어쩔 수 있나. 자네 하나 사정을 봐주다가는 우리 계가 망하란 말인가?"

"계가 왜 망해요. 어떻게 불한당질을 해야 계가 아니 망하나요."

그 말에는 정말로 모두가 긴장이 되었다. 윗목에 앉아서 구경만 하던 심술궂게 생긴 자 하나가,

"뭐야, 우리가 불한당질을 하는 것을 보았어."

톡톡히 시비를 건다. 순호는 조금도 주저하지는 않았다. 도리어 얼굴이 평연하여졌다. 그래서 휘휘 방 안을 돌아보더니 좀 비꼬는 소리로,

"아무리 돌아봐도 모두 그럴듯한데요."

쉰둥개 영감은 고함을 친다.

"뭐 그럴듯해."

"멀쩡들하게 생겼단 말이죠."

"뭐 이 녀석아."

순호는 도리어 픽 웃었다.

"왜요, 듣기에들 좀 안 되었죠."

그리고 또 말을 강렬하게 고쳐서,

"그럼 뭐야요. 고기는 씹어야 맛이고 말은 해야 맛이라고. 그래, 벼 두 섬에 구천여 냥이 어디 있단 말이야요. 그래 그런 날불한당질이 더 있단 말요."

진짜 흥분이 되었다.

"뭐야, 벼 두 섬!"

"그럼 그래 없는 놈이 오죽해야 장리벼를 쓴단 말야요. 그런데 더군다나 물난리를 이태나 겪었으니 갚지 못한 것도 일부러는 안 그랬죠. 그래 벼 두 섬이 석 섬 반이 되고 석 섬 반이 다섯 섬 반이 금방 된단 말씀요. 아니 없는 사람을 구제라도 해줄 형편인데 그래 눈깔 딱 감고 그걸 아주 인정이나 있는 듯이 변 돈 백 원으로 안친단 말요. 여보슈들, 언제 내 손에다가 돈 백 원을 쥐어 주었단 말요."

이 말에는 모든 자는 분이 상투 끝까지 났다. 더군다나 쉰둥개 영감은 펄펄 뛰면서,

"뭐 누가 불한당이냐. 참 저런 생불한당녀석 같은 녀석의 말이 있담. 몇 해 동안을 질질 끌어 오다가 인제 딱 당해 가지고는 어쩌고 어째? 그만둬."

하더니 벽장문을 딱 열어 젖뜨린다. 벽장 앞턱에는 뚜껑을 열어 논 돈 궤짝과 또는 문서 뭉치가 길길이 쌓였다. 부리나케 궤 뚜껑을 열고 문서 덩치를 꺼내서 뒤적뒤적하더니 그 중에서 어떤 것을 한 벌 꺼내서 딱 하고 방에다가 내어던진다.

"집문서."

순호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여러 계원을 향하여,

"여보슈들 별수없소. 이 따위 놈에게는 말도 다 소용이 없으니까. 이건 그때 전집한 문서요. 아마 시가로 한 육천 냥은 받겠지. 이것을 먼저 입(入)을 잡읍시다."

"그러시죠."

"그래도 그 나머지는 어쩌구요."

쉰둥개는,

"그건 이왕 그런 걸 어떡하오."

인정이 뚝뚝 떨어지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 더 유순한 목소리로,

"금방 어떻게는 아니 되겠지만 한 십여 일 위한하고 집을 내놓을 도리나 하게. 아무리 없어서 악이 나기로 그렇게 말을 마구 말게."

순호는 말이 아니 나왔다. 금방 눈이 캄캄만 하여졌다. 온 세상이 다 밤 같았다.

집을 내놔라 못 내놓겠다. 정말 그래 이렇게까지 스스로 결말을 짓기까지는 하였으나 매우 애매하였다. 꿈속 같았다. 그저 분통만 터졌다.

"집을 내놔요?"

"그래."

"누가 안 갚는다고 그랬어요."

"말로만 말이지."

"왜 말은요."

"그럼 어서 내야지."

"차차 해드린닷게요."

"차차, 그렇지, 차차 숨을 돌려 가지고 또 집을 사면 마찬가지지."

이 말에는 그는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언뜻 보이는 것이 벽장 속에 떨어진 문서 덩치였다. 수없는 작인들의 생명이 들어 있는 문서 덩치. 금방이라도 달려들어 살라 버리고 싶었다.

아내가 다 뭐야 자식이 다 뭐야. 한숨 쉬고 있는 여러 헐벗은 떼의 근심 덩치나 없애 주는 것이 그중 좋을 듯했다.

저걸 집어가 갖다가 살라 버려. 그럼 나는 징역하렷다. 그럼 나를 징역한 놈이라고 흉을 볼까! 아니겠지. 그럼, 그럴 리가 있나. 모두 웃겠지. 기뻐하겠지. 우리 예편네는 뭐 되나…….

그는 속이 물끓듯 했다. 용솟음을 쳤다. 이럴까 저럴까. 할까 말까. 그는 스스로 결정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신경만은 점점 극도로 흥분이 되어 갔다. 몇 배 이상의 맥박과 또는 고동은 잦았다.

그러다가 언뜻 생각이 났다.

그건 작년 봄인가, 어떻든지 춥지 아니하던 때의 일이다. 읍내에 있는 아무 소작인조합에서 순회강연대가 왔었다.

밤이었었다. 쉰둥개 집 앞뜰 넓은 마당에다가 횃불을 잡히고 아뭏게나 가짜로 연단을 만들었었다. 사람은 모두 한 이백 명은 왔었었다.

이것도 순호의 허풍 바람이었었다. 읍내에서 재주꾼이 와서 요술도 피우고 우스운 이야기도 하고 또 깡깡이도 켠다는 바람에 구경이 퍽 장하려니 하고들 모여들었었다.

그때 조합간부 되는 젊은이 하나는 그전부터 순호와 친한 친구였었다. 순호는 무식하기는 했으나 보통 사람 모양으로 꼼짝꼼짝해서 먹고 살려고만 애쓰는 것 이외에 무슨 사업이든지 하고 싶은 호활한 의 셈이 있었다. 그래서 무슨 운동이니 하고 돌아다니는 사람은 아주 퍽 부러웠었다.

이와 같은 성미를 잘 알아주어 가지고 교묘히 사귀고 지내 가는 동무가 즉 이 소작인조합의 동무였었다. 순호는 무턱대고 이 동무의 말은 신뢰하였다.

그리고 혹 서울에서, 떠오는 소문에 어떤 곳에서 폭탄을 던졌다, 국경 방면에서 누가 들어오다가 어떡했다는 것을 들을 때마다는 무섭게 흥분이 되어서 지냈던 것이었었다.

그래서 그날 밤도 매우 유심하게 연설하는 소리를 들었다.

"여러분, 점점 살아가실 수가 없게 되는 것은 여러분의 과실이 아닙니다. 다른 까닭이 있는 까닭입니다. 여러분은 훌륭하게 잘 살아가실 만한 일을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무수히 실제 사실을 들어서 그야말로 우습고도 침통한 말소리로 군중을 혹하게 해놓았었다.

그리고 맨 끝으로,

"……이러한 수적은 나쁜 도깨비가 대낮에도 있는 까닭은 여러분이 다 아실 것 같으면 다만 하나 서로 굳게 단결만 하여야겠다는 결심으로 하십시오. 서로 단결만 하시는 게 여러분의 근심과 걱정을 없애시는 데에 하나밖에 없는 약이죠."

그때 여러 군중은 그저 그럴싸하게만 들었다.

그러나 순호만은 열광이 되었다. 그래서 망할 것 세상에 한번 나면 죽기는 마찬가지니 사나이답게나 죽어 버리겠다 하는 일종 영웅적인 기분이 잠깐 섞인 정의감이 났었었다…….

지금에 그러한 생각이 났다. 수적은 도깨비―---모든 계원―---문서 뭉치! 피 뭉치! 그는 아주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었다. 총소리와 칼소리만이 온 땅을 뒤집는 전쟁터의 용사와 같았다. 그래서 또다시 빙긋빙긋 웃으면서,

"영감, 이왕 그렇게 됐으니 한 달만 참아 주시죠."

쉰둥개 영감은 입맛을 썩 다시면서,

"그러게그려. 사람은 서로 사정도 보아주어야 하느니!"

순호는 못나게 픽픽 웃으며 점점 가까이 아랫목 쪽으로 들어앉으면서,

"그런데 영감님, 제 집값이 얼마나 된다고 그러셨어요."

"한 육천 냥은 갈걸."

무심히 대답을 하면서 문서를 펴서 본다.

순호는 엎디어서 두 손으로 방바닥을 짚고 기웃이 들여다보면서,

"원 그 집은 칠천 냥에 샀는데요."

손가락으로 문서를 가리키며,

"왜 칠천 냥이라고 썼지요."

쉰둥개 영감은 무심히 문서를 방바닥에다가 놓으며,

"자 보게그려, 어디 칠천 냥인가?"

순호의 가슴은 두근거리었다. 손은 떨리었다.

아주 번개같이 문서를 움켜잡았다. 그리고 또 벽장 앞턱에 있는 문서 뭉치를 집었다. 그리고 그만 후닥닥 창문을 박차고 나왔다. 그는 미친 것 같다. 같다가 아니라 꼭 미쳤다. 방 안은 수라장이 되었다. 모두 아우성을 친다.

"도적야."

"이놈아."

그러나 벌써 그는 나갔다. 모두들 달아난 순호보다도 더 미친 듯이 되어서 쫓아나왔다. 막 사랑문을 열려고 하는 것을 어떤 자가 붙잡았다. 그러나 뿌리치는 바람에 쓰러졌다. 사랑문은 열렸다. 달아나는 순호나 쫓아가는 계원들이나 다 발버둥이다. 체면이 다 뭐냐. 더러운 게 다 뭐냐. 그들은 한 뭉치 미친 군중이 되었다.

5

조용하던 동네 안은 그냥 벌컥 뒤집혀 버렸다.

"도적야."

"저놈 잡아라."

"이놈 죽일놈 같으니. 가면은 어디까지 가니."

백립 쓰고 담뱃대 들고 발버둥으로 뒤우뚱뒤우뚱거리는 군중은 보기에만에도 살기가 띠었다.

순호는 그저 달아난다. 아무렇게 해서라도 잡히지만 않고 가서 세연하게 태워 버리겠다는 그것밖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어느덧 동네 뒷산 기슭 앞까지 왔다.

○○○ 순경 도는 움 속에서는 ○○○○○ 깜짝 놀랐다. 별안간에 동네가 떠나가는 듯한 소리! 우루루 으아으아 ○○○ ○○○ 하는 소리에 ○○○ ○○○ ○○였다.

"도적이란다."

"나가 보자."

"뉘 집에 들었을까."

좍― 우루루 쏟아져 나왔다. 한 삼십 명은 된다. 한편 구석에서 자던 놈들도 눈이 둥그래져서 나왔다. 막 나와 서자 한 떼의 늙은이는 으아 소리를 지르고 지나간다.

"여보게들 큰일났네. 저놈 잡게, 저놈."

그 통에 말꾼들이 바라보았다. 달밤이기는 하나 멀리 떨어져서 달아나는 사람은 누군지를 몰랐다. 어떤 도적놈이려니 하는 직감들밖에는 아니 났었다.

안달이 노인이 쉰둥개를 보고,

"아니 무슨 일야요."

이것은 벌써 두 패가 한 뭉치가 되어서 따라가면서 하는 소리였다. 아무런 대답 소리는 아니 났다. 그저 달음박질 소리, 킥킥거리는 소리, 외치는 소리 한데 어우러져 나는 아우성 소리에 군중은 지배되었다.

이럴 때 동네에 집집마다 야단들이 났다.

사립짝 문 열리는 소리, 어린애 우는 소리, 몽둥이 들고 자다 말고 나오는 사람들의 고함 소리.

몹시 고요만 하던 반대로 아주 요란한 수라장으로 변했다. 군중은 점점 늘어 간다.

순호는 산언덕으로 올라갔다. 그래서 두 손에 있던 문서 뭉치를 한데 뭉쳐서 쥐었다. 그리고 씨근씨근하는 숨을 내쉬면서 동네 끝 산기슭으로 몰려오는 군중을 바라다보았다.

"흥, 날더러 도적놈이라고."

그러자 핑― 하더니 돌멩이 하나가 떠들어온다.

"이놈 거기 섰거라."

"가면 죽는다."

날마다 서로 보고 장난치고 이야기도 하던 같은 동리놈들은 금방 자기와 원수가 되었다.

'저런 밥통들 보았나. 나를 왜 쫓아오나.'

그렇게 속으로 웃었다. 또 돌멩이는 날아서 들어온다. 그는 딱 버티고 서서,

"이놈들아, 나는 순호다. 쫓아오려거든 온."

그리고 또 달아났다. 한층 용기는 더 났다. 나중에 어떻게 하겠다는 것은 몰랐다. 그냥 열광만 되었다. 군중은 멀리 산언덕 위에 서서 뭐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무슨 소리인지는 몰랐다. 그러자 조건 없이 더한층 흥분만 되어 있다. 사생을 결단하는 계원의 초조 반 장난삼아 소리치는 군중의 포효(咆哮) 한데 합하여 점점 높아 간다.

군중 가운데서,

"아니, 어떤 놈이야요?"

"멍텅구리 소리 말게. 제 이름 대고 다니는 도둑놈이 있나."

이런 문답이 왔다갔다하다가 아주 분통이 터지는 듯한 쉰둥개 영감의 목소리가 나며,

"순호라네, 순호……."

"뭐요, 순호요?"

"그래."

이 소리에 군중의 발길은 멈칫하여졌다. 의논한 듯이 느려졌다. 쉰둥개 영감은 더 초조를 하면서,

"아니 어서들 가지 않고 왜들 이러나."

"아뇨! 순호가 무슨 도적질요."

"아니 급한데 차차 알지."

평시에 좋지 않아하던 쉰둥개 영감이 이렇게 죽을 듯이 날뛰는 것을 도리어 고소하게 여기는 기운이 은연중에 군중 가운데에 나타났다.

"차차라뇨."

하면서 성미 급한 게 나타나자,

"돈도 아니고 알토란이라우. 문서 뭉치라우, 문서 뭉치. 전당 잡은 문서 뭉치."

이 소리에 모든 군중은 가슴이 선뜩하였다. 평시에 얌전하고 사람좋기로 유명한 순호를 사랑하는 마음…… 따라서 돈도 아니고 문서를 가져갔다는 의심된 마음.

이런 것들은 여러 군중의 발을 무디게 하였다.

계원들은 한편으로 쫓아 올라가며 소리를 친다. 쉰둥개 영감은 모든 군중을 보고 소리를 친다.

"어서 쫓아가세…… 쫓아가…… 큰일일세, 큰일야."

이런 판에 한 십여 간통밖에 안 되는 건너편 언덕에는 순호가 나타났다.

"여보슈들."

고함 소리는 났다. 똑똑히 들리었다. 여러 군중은 딱 섰다. 계원들도 어쩔 수 없이 멈추었다.

"이놈아."

"죽일놈아."

그러자 또 한편 구석에서,

"여보, 떠들지 말우."

와글와글하다가 금방 딱 그쳤다.

"여보슈들, 왜 날 따라오슈. 내가 도적놈인 줄 아슈. 당신네들이 도적맞은 것을 찾어 주는 것이라우."

순호의 목소리를 요량하였다. 열렬하였다. 그리고 또 뭐라고 크게 외친다. 들리지는 않는다. 바람은 분다. 눈보라는 치기를 시작한다. 계원들은 그냥 막질러 쫓아 올라간다.

순호는 유유하게 섰다. 여러 군중은 그냥 섰다. 일종 구슬픈 생각이 모든 군중의 가슴을 휘청거려 놓았다. 그러자 순호의 쨋쨋하고도 떨리는 목소리가 났다. 크다. 산이 울린다. 그러자 산언덕 위에서 연기가 난다.

"자― 봐라. 탄다. 빚뭉치가 탄다. 탄다―"

모든 군중은 해연하였다. 계원들은 아주 미쳤다.

아련한 달밤 눈 쌓인 산 속에서 한 줄기 연기는 올라오고 있다. 군중은 뻔하게 쳐다보고만 섰다.



출전:현대평론2(19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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