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촌(山村) / 전문 / 한설야
by 송화은율 산촌(山村) / 한설야
1
T읍 장날이다.
기술은 가마니를 팔아 가지고 낱돈 얼마를 잘라서 아버지 시키던 대로 성냥과 장수연을 샀다. 그리고 언제부터 벼르던 제 고무신이나 한 켤레 살까 하다가 또 그만두고 가는 빗줄이 금시 눈이 될 듯한 눈갯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저녁을 짓고 아버지는 윗방에서 가마니를 짜고 있다. 자기를 바라보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펀뜻 뜨이는 듯한 눈매를 보는 순간 기술은 고연히 속장이 뭉클해졌다. 용돈에 불튀가 나던 판에 돈푼이나 쥐면 되레 뒤숭숭해지는 그런 불안과도 다른 어떤 불안이 확실히 아버지의 얼굴에서 읽혀진다. 아버지가 지금 참말 묻고 싶어하는 사본을 기술은 잘 알고 있다. 하나 그것이 밉성이다.
"가마니르 팔았니? 모두 얼마나 되니?"
아버지의 첫 물음은 아직 분명 딴전이다. 정작 알고 싶은 것은 그것보다 딴 데 있다.
기술은 눈결에 얼뜬 아버지의 까칠한 목뼈가 갈기(褐氣) 난 듯이 움직거리는 것을 보았다. 아버지가 참말 묻고 싶은 말이 지금 바로 목구멍에 다밀려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실없이 더 고불통이 치밀어서 기술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 대신 가마니를 걸머지고 갔던 질비로 비에 젖은 어깨를 번갈아 걸싸게 탁탁 털어 댔다. 그리고는 가마니 판 돈과 장수연을 아버지 앞에 철썩 내던지고 성냥은 부뚜막에 내던졌다.
"야, 괴장선생님을 만나 봤니?"
그러나 기술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는다.
"부침을 잃으면 살기르 어떻게 살겠니?"
어머니가 민망한 듯이 아버지에게 부동한다. 기술이네가 부치는 김갑산 동(개간지)이 기술이가 다니던 T보통학교 교장선생의 손으로 넘어가게 될 것은 이제 더 의심할 수 없는 버젓한 사실이다. 그러면 다른 사람은 다 몰라도 T학교 졸업생인 기술이네만은 부침을 그대로 이어 갈 수 있으리라고 아버지 어머니는 염량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들더러 미리 선손을 써서 날래 교장선생에게 가서 승낙을 받아 두라고 아버지는 벌써부터 안절부절을 못 하고 성화를 멕이는 것이다.
그러나 기술에게는 그리 못 할 사정이 있다. 한데 웬일인지 기술은 그것을 아버지에게 오손도손 풀이해 드리고 싶지 않았다. 또 말을 한대두 짐둔한 아버지가 알아들을 상싶지 않다.
저녁을 다 먹을 때까지 기술은 단근질 참듯 잠자코 있다. 말을 떼기만 시작하면 그것이 걸거침이 되어 악다구니 말쌈이 되고 그리하여 낭중은 어떠한 복닥판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는 그릇 소리도 안 나도록 밥술을 조심하였다.
밖에서는 굵어진 빗줄이 모닥바람에 불려 우수수 추녀 끝을 때리고 간다. 무엇이고 모두 쓰러져 버릴 것 같고 그러면서도 그 가운데서 보다 무서운 재단이 불거져 나올 것 같은 침묵이 왔다.
밥물을 마시는 아버지의 목에서 나는 꾸루룩꾸루룩 소리나 또는 그럴 때마다 괴뿔만한 아버지의 상투가 가볍게 떨리는 것까지 밉성이다.
"선생님은 부모와 같니라."
분에 없는 아버지의 이런 점잖은 소리를 듣다가 말고 기술은 무뚝 집을 튀어나왔다.
그는 사사키 교장선생에게서 삼 년나마 수신을 배웠다. 그리고 졸업하던 그해부터 그 선생이 경영(아우의 이름으로 하였지만)하는 양잠소(養蠶所)엘 다녔다. 그러나 교장선생은 이름난 모범교장으로 몇 번 표창까지 받은 사람이니만치 기술이가 조합반에 관계한 것을 알자 든손에 내보냈다.
그리하여 시대의 바람이 어느 만치 자기 시작하면서부터 교장선생은 때가 비상시라 교육보국(敎育報國)에서 새로 생업보국(生業報國)을 메고 나서 자기 고향에서 모범농(模範農)을 이주시키고 동시에 졸업생 중에서 가장 빠름직한 청년들을 추려서 자기의 토지를 경작시켰다.
그가 T회사의 손으로 넘어가게 된 김갑산 동을 대부 맡을 때에도 이 생업보국의 변(辯)이 크게 힘을 썼던 것은 물론이다.
"나는 학문을 가르치는 일개 교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농부들에게 다수확 영농법(多收穫營農法)을 설명해 주었대야 그들은 탐탐히 듣지 않습니다. 당신은 글 가르치는 선생인데 농사는 우리들에게 ꂛ기시우…… 이렇게들 냉소한단 말이죠. 얼뜬 생각하기에는 어리석은 소리로 들리기도 하나 어쨌든 그도 사실임에는 틀림없기에 나는 우선 내지에서 모범농을 불러왔습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실지로 이 고장 농부들이 개벽 이래, 꿈도 꾸어 보지 못한 굉장한 실증을 뵈어 주었습니다. 재작년부터는 이 모범농들이 일 단보 일곱 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이곳 백성들도 인제 와서는 나를 믿지 말래도 믿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게쯤 되었습니다. 실지로 보고 있으니까요. 작년부터는 졸업생들에게 시험경작을 시키는 중인데 이 책상물림 청소년들도 헌다는 토백이 농군들보다 더 많은 수확을 내고 있습니다."
교장선생은 T회사 지점 주임에게 우선 이렇게 설명한 다음 이 앞으로 취할 방침으로 말을 옮겼다.
"만일 요행으로 김갑산 동을 대부해 주신다면 내 고향에서 모범농을 더 많이 불러오고 또 우리 학교 졸업생 중에서 견실한 사람을 뽑아서 대대적으로 경작시킬 작정입니다. 이 지방은 장차 조선서 엄지손가락 꼽는 모범농촌이 될 것을 나는 의심치 않습니다. 농부의 맘은 사람의 가슴보다 몇백 갑절 더 깊은 땅속에 뿌리박혀 있는 것입니다. 땅을 살지게 하면 사람의 마음도 살이 지는 것입니다. 심전개발(心田開發)이란 두말할 것 없이 땅을 파고 땅을 살지게 하는 데 있는 것인 줄 압니다."
이리하여 유력자의 소개와 후원을 가지고 있는 교장선생은 다시 시대의 힘을 빌려 T회사를 완전히 설복하였다.
기술은 물론 이런 깊은 사정까지는 알 길이 없었으나 그러나 교장선생의 성격으로 보아서 한번 그에게 비점을 찍혔던 자기가 그 앞에서 용납되지 못할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기 때문에 아버지가 그렇게 오복전같이 졸라쳐도 그 술로 머리를 들이밀 염을 못 한 것이다.
기술은 집을 나와서 바로 복녜네 집으로 가볼까 하다가 그만두고 동리 소패들이 많이 모이는 동무의 집으로 갔다. 역시 이야기 끝에는 김갑산 동 이야기가 또 나왔다. 모두들 그저 꿔온 보릿자루처럼 멀거니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인제 완전히 바람막이를 잃은 그들에게는 별 신통한 궁리가 돌지 않았다.
"논바닥에 물고쳐지는 수밖에…… 꺼떡거리는 놈 팔때길 꽉 물어 떼구 말지."
"그 담에야 귀신이 와서 씨름해 줄 턱도 없지."
"글쎄 말이야. 그 담에 해볼 땅이 있나."
이렇게 답답한 극달들을 하는 것이나 그러나 의지가지없는 이들을 휩싸는 모진 바람을 막기에는 그들의 힘이 아직 너무나 약하고 그들의 머리가 너무나 가난하였다.
2
이날도 아버지는 무슨 말을 할까 할까 하다가 기술이가 한말 부어 있는 통에 암말 못 하고 저녁 후에 어디로 나가 버렸다. 그러자 어머니가 설거지를 하고 가마니 짤 짚을 축이며 맥풀린 소리로,
"야, 가봐라. 아버지 성화에 내가 견댈 수 없다……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구."
기술은 그래도 잠자코 있을 뿐…….
"비는 사람을 그대루 쫓아내겠니. 그래도 선생님인데 이 동네에서야 너밖에 그 학교 다닌 사람이 있니. 다 안 돼도 우리 부침이사 떼겠니."
기술은 또 소갈머리가 치밀었다.
"안 돼요."
"안 되다니…… 그러면 어쩌겠니."
"차라리 학교 안 다니던 사람이 가면 몰라도 난 안 돼요. 그전에 양잠소에서 몰아내는 것만 보지."
기술은 퉁명스럽게 배앝고 성가신 듯이 가마니틀을 향하여 부산히 고두랫돌을 주워넘긴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성미에 맞는다. 어머니는 부지런한 사람인데 그보다 뜻이 굳고 또 아버지처럼 모든 것을 하늘에 돌리려지 않는 그것이 좋았다.
어머니는 인제는 늙어서 그도 안 되지만 예전에는 두부와 마늘과 소금 같은 것을 받아 가지고 행상을 다녔다. 기술이가 학교를 다닌 것도 그 덕이다. 기술이가 공일날 거의 하루품을 들여서 짚세기를 삼아 드리면 어머니는 웬만한 길에서는 그걸 신지 않고 허리틈에 차고 다녔다. 예전 살던 벌판(지금은 군용지가 되었지만)은 김을 맨다거나 밭갈이를 하는 일이 없이 괭이로 땅을 대수 뚜지고 씨를 뿌려 두었다가 곡식과 풀이 함께 자라는 것을 기다려 풀이 곡식보다 머리를 내밀 때쯤 해서 지난 밤 새도록 잘 갈아 두었던 낫을 들고 아버지와 함께 밭으로 나간다. 그리하여 낫으로 풀모개를 갈겨 버린다. 그러면 이번은 곡식이 기꼴을 빼고 이삭을 팬다. 그렇게 사오 년 해먹고 이번은 다른 데다가 씨를 뿌려 예전 땅을 한 사오 년 묵혀 두어 재차 살지기를 기다려 다시 심기 때문에 수확도 상당히 좋았다.
기술은 그 당시 정경을 지금도 아슴푸레 기억하고 있다. 어머니는 뒤로 목이 축 늘어진 동생(어려서 죽었다)을 업고 행상도 하고 농사도 지었다. 밭으로 나갈 때면 기술이와 강아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즐겁게 들길을 걸어갔다. 강아지도 이따금씩 성금한 풀때에 한다리를 들썩하고 오줌을 갈기며 풀밭 청메뚜기 놀라 뛰는 것을 갸웃이 재미나는 듯이 바라보았다.
밭갈이 때나 가슬 때에 밭 가운데서 먹는 점심맛은 지금도 미각(味覺) 중 제일 매력 있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언젠가 한번은 어머니가 장에 가서 도미 대가리를 사온 일이 있다. 기술은 다 먹고 난 다음 봇날 같은 그 뼉다귀로 마당 앞 고추밭에서 밭갈이 장난을 해본 것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콩밥 속에서 불은 콩을 골라내 서느런 가시로 곶감 꿰듯 조롱조롱 꿰어 가지고 길을 걸으면서 아이들한테 자랑을 하면서 먹었다.
모든 것이 꿈과 같이 아름다웠고 유족하였다. 아무 시름도 부족도 없었던 것 같다. 보는 것 듣는 것이 아름답고 평화하였다. 학교에도 다녔다. 그것은 행상까지 다닌 남없이 부지런한 어머니의 덕이다. 학교로 못 가는 동리 아이들은 그의 어머니가 사다 준 그의 필통과 책보를 부러운 듯이 만져 보았다. 어떤 아이는 그 책보를 끼고 우줄우줄 걸어 보기도 하였다.
어린 동생이 호역으로 죽은 후 아버지와 어머니는 더욱 외톨로 기술이를 사랑하였다. 혹시 잔칫집 같은 대로 어머니를 따라가면 어머니는 기껏 먹으라는 듯이 남몰래 그에게 눈짐하고 심하면 깔보는 시늉을 하고 낭중은 꼬집기까지 하였다. 많이 먹을수록 사람은 건강한 것이며 장수한 것이라고 어머니는 생각하였다.
이런 옛 일을 생각하며 그는 잠자코 가마니를 짜고 있었으나 속으로는 슬며시 유여한 생활을 해보았으면 싶었다.
아닌게아니라 지금 세상은 너무도 괴롬이 많고 성가신 일이 많다. 그런데 인제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주 늙어서 옛날처럼 벌지 못한다.
생각하면 한심한 일뿐이다. 또 무슨 일이 내일을 기다리고 있는지…… 이렇게 생각하면서 가마니틀 고드랫돌을 걸싸게 주워넘기는 때에 복녜 아버지가 무중 바당문으로 들어섰다.
"저녁 잡수았소."
가마니 떤 짚을 두드리던 어머니가 짚을 한쪽으로 몰밀어 놓으며 인사하였다.
"올라오우다."
복녜 아버지는 별말 없이 정주에 올라앉아서 한참 숨만 갑자르고 있더니만 또 교장선생 이야기를 꺼냈다――네 말이면 들어줄 것이다. 네 집 일이 바로 되면 내 집 부침도 안 떨어질 상싶다. 우리집 복녜도 교장선생 양잠소엘 다니지 않었니…… 이렇게 더듬더듬 주워뱉는 것이다.
'그렇지. 아버지한테 촉을 듣고 온 게로구나.'
이렇게 생각하니 기술은 공연히 골이 났으나 찾아온 사람은 복녜 아버지다. 복녜 낯을 보아서도 괄시할 수는 없다. 또 지금 저게 들어가 있는 복녜 오빠를 보아서도 그렇다.
"가봐도 소용없어요."
기술은 나직이 타이르는 조로 말하였다.
"그런즉 어쩐단 말이냐."
"글쎄 설마 죽기야 하겠소."
"너의 집은 네가 있어서 걱정 없지만……."
그러고는 복녜 아버지는 때여간 아들 생각이 북받쳐서 말을 잇지 못하였다. 아들이 없는 자기의 앞은 그믐밤같이 가무침침할 뿐이다. 그는 금시 방망이라도 쥐면 하다못해 문턱이라도 힘껏 갈겨 보고 싶었다. 가슴이 칵 막혔다.
복녜 아버지는 본시 이 고장 사람이 아니다. 여기서 근 양백 리나 되는 S군 사람으로 무진년 장마 뒤에 조고만 반연을 더듬어 이리로 이유해 왔다. 그해 물난리에 그곳 주재소가 다 떠나가고 그 문패가 사백여 리 물길을 흘러 원산 포구에까지 떠갔으니 웬만한 곤돌막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는 아무것도 없이 맨손으로 와서 김갑산 동 작인이 되어 가랑가랑 목숨을 이어 갔다.
그러다가 차차 아들이 장성해서 한숨 패일 만한 때에 그 모진 회리바람이 불어서 천량 맞잡이 아들이 여러 사람과 함께 때여갔다.
그 후 기술은 자주 복녜 집으로 드나들었다. 복녜가 보고 싶은 것은 물론 그의 형과 친형제같이 지내던 터이매 때때로 아니 가볼 수 없는 처지였다.
복녜는 농사도 조력하고 소깔(소 먹는 풀)도 베어 들였다. 복녜가 그러는 것을 보는 것이 어쩐지 기술에게는 심히 서글픈 일이었다. 갈잎에 눈을 다쳐 눈에 피진 것을 보는 때나 손등 손끝이 거츠럽게 터가는 것을 보는 때마다 기술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그리하여 자기 집 일을 제쳐 놓고 복녜 집 일을 도와 주는 일도 종종하였다. 베어 논 소깔을 갈과서 복녜 집으로 보내기도 하였다.
기술이 아버지도 그런 눈치를 알고 있었으므로 오늘 밤 복녜 아버지를 뚜져서 보낸 것이라고 기술은 생각하였다. 그러고 본즉 아버지 한 짓이 밉기도 하고 또 가엾기도 하였다.
"부침을 떼우고 어떻게 살겠니."
복녜 아버지는 이렇게 한탄하고 혼자말 모양으로,
"만주로 갔지…… 만주는 살 만한지."
그 말이 기술에게는 뜨끔하였다. 만주로 가버리면 복녜도 다시 볼 수 없는 것이다.
"걱정 마수.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기 우리 모두 공론을 했소. 가서 빌었대야 들어줄 일 없으니 아마도 물고쳐지는 수밖에…… 가만있소. 우리 또 공론해 보겠소."
기술은 이렇게 말하고 끝으로 또 한마디를 더 달았다.
"만주로 가더라도 모두 같이 가야지. 혼자 가면 되겠소. 생소한 데로……."
복녜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간 다음 기술 어머니는,
"참 저 집 일도 걱정이야. 아들이나 속히 나왔으면 쓰겠는데…… 어찌 심사들인지."
묵철같이 무거운 침묵 가운데서 밤은 침침히 깊어 갔다.
3
기술이는 아침 일찌감치 T읍으로 떠나갔다.
어젯밤 복녜 집에 들렀을 때 복녜에게서 K부 제사공장으로 가겠다는 말을 듣고 오늘 아침 혼솔바루 T읍 교장선생을 찾아가기로 결심하였던 것이다.
방금 K부 제사공장에서는 대대적으로 여공을 모집하는 중이다. 마침 작년 수재로 변지 사람들은 호구지책이 막연한 판이라. 이 여공 모집은 상당히 큰 매력을 가지고 방년 된 딸자식을 둔 부모들은 붙들었다.
K부 제사공장에서도 이 묘리를 미리 터득한 듯이 해변이며 궁벽한 산촌지방 주재소에 공문으로 여공 모집에 대하여 알선해 주도록 부탁하였다. 주재소에서도 이것은 빈민을 구제하는 한 가지 방도라고 생각하고는 이 소문이 민간에 널리 전파되기를 바라고 또 힘썼다.
"밥 먹구 한 달에 스무 냥(사 원)이면 무던하지."
복녜 아버지도 어디서 이 소문을 듣고 와서 군침을 흘렸다. 완전히 '스무 냥'에 미혹된 것이다. 얼마나 고된 일인지 또 어떻게 일하는 건지 그리고 그 '스무 냥'을 벌어 줄 사람이 자기의 귀여운 딸이어야 할 것도 이때는 생각지 못하고 그저 스무 냥에만 구미가 쏠렸다.
그러나 정작 복녜가 그리로 가볼 생각이라고 할 때 아버지는 다시 한번 이 미혹에 대하여 궁리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들이 그리로 간 후 복녜가 혼집의 가장 힘쓰는 기둥쯤 되어 있는 것이다. 정구지역으로부터 안팎일에 그의 도움이 여간 크지 않다. 그리고 막말로 좀 유여한 집에 시집이라도 보내는 날이면 그 반연으로 하다못해 부침이라도 나수 얻을지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딸이 여공이 된다는 데에 얼른 찬성하지 않았다. 기술이가 와서 역시 반대하는 뜻을 말하자 아버지는,
"이 담에 오래비 나오거든 가거라."
하고 단념하도록 일렀다.
그러나 기술이는 그와는 또 딴 의미로 반대한 것이다. 그는 도회지에 팔려가서 오도깨비같이 변해진 촌색시들을 본 일이 있다. 흙내나는 숫색시보다 미혹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나 애당초 제게 실길 배 만무한 그런 여자 따위를 곱거니 좋거니 생각는 것부터 부질없고 오장없는 일이라고 그는 위정이라도 그런 것들을 밉고 못된 것으로 돌려놨다. 눈에는 고웁게 보일지 삼아도 맘으로는 짜장 침을 배앝는 것이었다.
복녜가 만일 K부 같은 화려한 도시로 가보라. 자기 같은 것은 담방 며칠 사이에 잊어버리고 말 것이다. 잊어버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저같은 것을 아는 것을 홀쩨 수치로 여길 것이다.
"못써. 가지 말아. 공장에 가면 첨 몇 해는 밥만 멕여 주지 돈은 온통 주지 않는대. 삯이 생기게 돼도 약값 옷값 무얼 한 걸 제하고 나면 한 푼도 안 남는대."
기술은 이렇게 운을 떼놓고 다음으로 또 딴전을 울렸다.
"요전에 K부에 가서 듣자니까 약물 친 김치를 먹고 모두 구토 설사가 나서 한 발씩 늘어졌대. 입이 부르터서 물도 못 마신다던데……."
그러고 보니 또 좋은 궁리가 났다.
"참말 그러게 또 모집하는 거 아니야. 모두들 해소가 터져서 가슴을 웅키고…… 또 수종다리가 돼서 절룩거리며 밤 잡아 도망을 쳐 가니까 다시 모아 넣자는 거지. 그렇지 않으면 또 모집할 턱이 있는가. 그렇게 좋은 자리면 뉘기 내놓고 갈라구…… 돈은 못 벌어도 사는 기 장수지."
그러자 복녜 아버지와 어머니도 짐짓 놀라는 상이다.
"아니 그게 참말인가 온……."
그래서 그들은 자기 딸의 신상에 관한 문제로 그 구수한 소문을 다시 캐어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리 사는 일이 고단할지 삼아도 딸을 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복녜야, 그만둬라."
아버지는 이렇게 다시 일렀다.
"그럼은요. 그만두지 않구…… 내, 낼, 읍에 가서 교장선생님을 만나 보겠소. 지자는 송사르 어디 가서 못 하겠소."
기술은 마침내 이런 결심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복녜 아버지는 아닌밤중에 길동무나 얻은 듯이 반가워하였다.
"기술이가 가서 말하면 꼭 되지, 돼. 난 정녕 그럴 줄 아네…… 그러니 이왕이면 우리 부침도 구껴 주게. 난 자네만 믿네. 경수(그의 아들)가 나오면 자네 은혜를 모른다겠나."
"아니 은혜구 말구…… 되면 모두 같이 되는 거구 안 되면 모두 부침을 잃는 수밖에 없지요. 우리만 혼자 부칠 말이면 차라리 내던지고 하다못해 모두 같이 간도라도 가는 기 낫지요."
"좌우간 가보게."
기술은 교장선생한테 가서 손이 닳도록 빌어 보리라 싶었다. 그래서 안 되면 모두 죽는다고 떼라도 써보리라 하였다.
아무리 하더라도 멀거니 눈을 뜨고 복녜를 유혹의 거리로 혼자 보낼 수는 없었다.
기술은 어릴 적부터 복녜가 좋았다. 그러면서도 만나면 심술을 부려 주고 심하면 꼬집어 주는 일도 있었다. 설날 대보름날 널뛰기판으로 쫓아다니며 심술궂은 밀기닥짐을 하기도 하였다. 복녜가 발을 구르고 널판에서 뛰어오를 때――복녜의 늘어진 머리태 끝에서 붉은 당기가 춤을 출 때 기술은 고연히 심사가 나서 널판을 발로 탁 밀쳐 버린다. 그래서 공중 떴던 복녜가 땅바닥에 빗떨어져 발목을 안고 아갸갸, 아갸갸 돌아가면 기술은 좋아라고 킥킥거리며 내빼곤 하였다.
"이 종간나새끼."
그러나 기술은 복녜의 풀매질하는 사금파리를 발로 받으며 재미나서 죽겠다는 듯이 놀려먹는 것이었다.
봄날 복녜가 메 캐러 나가는데 뒤를 슬금슬금 따라가서는 광주리를 뒤집어 놓기도 하고 캐어 논 며나 나시를 훔쳐먹기도 일쑤였다.
기술이가 보통학교를 마치고 양잠소에 다닐 때 복녜도 같은 양잠소에 다녔다. 기술이도 복녜도 인제는 나이 들어서 그전처럼 악다구니는 못 해도 그만치 터놓지 못하는 심정을 피차 태우는 이하 더하여졌다.
계집애들이 뽕잎을 따오면 기술은 목척에 이름과 무게를 적어 두었다가 그날 돌아갈 때에 하루 치 삯을 내주었다. 복녜가 따온 뽕잎 근수가 나수 나가리를 바라던 나마에 기술은 마침내 무게를 얼마씩 더불어 적었다. 그러자 인차 그것이 초끼 빠른 계집애들 눈에 나서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기술이 사(私)를 쓰는 기더라."
"글쎄 정말…… 복녜 해는 늘 더 적어 주는 갑더라. 내 오늘 복녜 뽕잎을 들어 봤는데 내 것만 못해. 그래도 오 전이나 더 받지 않었니."
"아니 애 그리구 또 우리 뽕잎은 줄 적는가 보더라."
"그래그래, 우리 걸 줄여서 복녜게 더 적어 주는 기구나. 옳―아 야 그렇구나."
"고 눈깔이 멀 자식……."
이렇게 계집애들은 재잘재잘 노까리다가는 결국 복녜에게 불똥을 떨구고야 만다.
"얘 복녜야, 너 오늘 돈 얼마 탔니?"
그러나 복녜는 벌써 그들의 눈치코치를 죄다 읽고 있어서 뾰루퉁하니 대답이 없다.
"야 복녜야, 너는 돈 더 타서 좋겠구나. 어쩌면 그렇니?"
"아무렴, 복녜같이 이쁜……."
"기술인들 잘 못났니…… 참 좋겠더라."
그러면 복녜도 더 참지 못한다.
"이 간나들아, 무시기 어째. 좋건 다 뭐냐. 말해 봐라. 어서 말해 봐. 왜 말 못 하니."
복녜는 발개서 덤비나 워낙 대수가 많아서 어디를 어떻게 찌를지 모르고 빙빙 돌아 욕지거리를 하다가는 제김에 울음이 터진다.
기술이도 이런 곡절을 잘 알고 있었다. 기술은 복녜 오빠가 때여간 후는 그전보다 더 자주 그의 집으로 갔다. 그의 늙은 부모를 위로해 주고 일도 도와 주었다. 그래도 조고만치도 괴롭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항시 무엇에게 끌리우듯이 그의 집으로 가고 싶었다.
복녜 아버지도 기술이를 친아들만치나 믿었다. 자기 아들 연배 되는 젊은 사람을 보면――그들이 밝은 세상에서 자유로 쏘다니는 걸 보면 남의 집 자식은 저런데 이놈의 새끼는 왜 공중 나덤비다가 저 모양이냐고 눈에 불이 일어날 지경인 그의 아버지도 기술이를 보는 때만은 그렇지 않았다. 뒷간 거름을 뚜져 보이며 땅에다가 하소하듯 눈을 숨벅숨벅 혼자말을 중얼거리던 복녜 아버지도 기술이를 보면 아무 꼬부장한 생각 없이 읍에 가서 아들 소식을 듣지 못하였느냐고 묻곤 하였다.
이런 생각을 하며 기술은 T읍에 이르렀다. 아침 활기를 띠고 거리로 오고 가는 시정 사람들이 농촌 사람보다 퍽도 유복하고 되레 한가한 것같이 뵈었다.
이 T읍에서는 아마 제일 긴 건물일 듯한 T보통학교 양철지붕이 아침 햇볕에 둔하게 빛난다. 그것을 바라보는 순간 기술은 이상히 서먹서먹한 생각이 나며 집을 떠날 때에 아버지가 점심 사먹으라고 주던 십 전짜리 백통전이 눈 속에 선히 떠왔다. 커다란 건물과 구멍 뚫어진 백통전의 야릇한 대조가 한참 실히 머리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4
운동장에서 학생들이 와야와야 떠들어대며 달려다니는 가운데 이리저리 피해서 기술은 학교 현관에 들어섰다. 들어서 다시 휘돌아 보아도 자기가 다니던 학교 같지는 않았다. 자기가 이 학교로 다녔던지도 의심날 지경이다. 운동회 때에는 일등상을 탄 일까지 있고 학예회 때에는 습자가 뽑혀서 벽에 나붙은 일이 있으나 인제는 꿈인 듯한 이 사실을 알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학교를 나온 지 오륙 년 사이에 그는 짜장 흙내나는 농부가 되어 버렸다. 교육을 받은 사람의 풍신은 아무데도 없는 것이다. 금방 이리로 들어올 때에도 학생들은 이 무지해 보이는 농도에게 아무런 조심도 없이 어깨를 떠받고 가슴을 박지르며 달려다니지 않았는가.
그는 울타리 쪼개지고 바닥이 종잇장만치 엷어진 고무신을 남의 눈에 뜨이지 않는 구석에 밀어 놓고 조심조심 낭하로 올라섰다.
때기름이 괴죄죄한 도리우찌를 낭하 모자걸개에 걸려는 때에 약바르게 생긴 급사아이가 지나가면서 흘끔 눈을 주는 바람에 그만 모자를 도로 벗겨서 겨드랑이에 끼고 어정어정 걸어들어갔다. '인고단련(忍苦鍛鍊)'이라는 현판 아래에서 왼편으로 꺾이어 교무실 앞으로 갔다.
두어 번 숨을 가다듬은 다음 그는 빠끔히 문을 열었다. 요행 아무도 그를 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외면하고 교장석 앞 쓰이다테(칸막이) 그 눈에 숨듯이 교장선생 앞에 가서 공손히 허리를 꾸부렸다. 그리고는 저도 모르게 더수기를 만지기 시작하였다. 오는 도중에서 그같이 곰곰 생각해 넣은 말이 어디론지 도망을 쳐버렸다. 무엇이라고 꺼낼지 캄캄하였다.
교장선생이 무슨 서류를 뒤적거리다가 찻잔을 끌어다 마시며 이편으로 눈을 줄 때에 그는 급한 어조로,
"선생님…… 저……."
하고 말을 꺼냈다. 그 담에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게 더듬더듬 온 뜻을 말하였다. 그러나 교장선생은 듣는지 마는지다. 교장선생의 무섭게 긴 눈이 옛날보다도 더 위엄이 있어 보였다.
학교 정문을 돌아나올 때 교장선생이 외던 말이 다시금 지그시 기술의 머리를 눌렀다. 선생과 제자라는 아름다운 관계는 아무데서도 찾을 길이 없었다. 다만 오랜 습관으로 말만은 점잖으나 요컨대 그 말 속은 일호 반점도 의심할 것이 없었다. 터럭 하나도 매어달릴 수 없이 싹 자르는 태도다. 뿐만 아니라 기술이 같은 존재는 도리어 지금 세상에 있어 안 될 것같이 숨은 타박을 주는 것이었다.
"다른 농장과는 다르다. 국난타개 생업보국(國難打開 生業報國)의 제일선에 설 모범청년을 양성하는 것이다."
교장선생은 이런 힘든 말을 거듭 외는 것이었다.
"……가장 잘 하늘을 고이〔支〕는 것은 땅이다. 땅은 백성이다. 즉 농민이다. 그러기 때문에 한 사람의 농부라도 나는 신(神)의 허락 없이는 쓸 수 없다. ……가령 여게 한 사람의 극히 진실한 농부가 있다고 하자. 그러나 일만 부지런히 한다고 해서 참말 진정한 인간인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의 머리를――즉, 정신을 보아야 하는 것이다. 사람이 신(神)에게 통하는 길은 오직 이 정신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 앞에서 진실을 맹서하는 어떤 사람이든지 위선 그가 신에게로 갈 수 있는 정신을 가지고 있는가 그것부터 보는 것이다. ……제 죄와 악 때문에 악착한 경우에 빠진 사람이 아무리 야단스레 소리를 친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신에게는 들리지 않는 것이다. 신이 버린 사람을 구할 수는 도저히 없는 것이다."
교장선생은 첨부터 기술의 말 같은 것은 오로지 들리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기술이도 교장선생이 하는 힘든 말을 열에 하나도 그대로 이해할 수는 없으나 어쨌든 그 말하는 속심은 일호 반점 의심할 나위가 없었다. 빤한 것이었다. 아무리 손바닥과 무르팍이 닳아 떨어지도록 빈다 하더라도 또는 천길 만길 날고 뛴다 하더라도 교장선생을 납득시킬 수는 도저히 없을 것이었다.
기술은 아버지가 주던 돈을 국숫집 앞에서부터 담뱃가게 앞까지 주물럭거리다가 모두 그만두고 길가 난전에서 눅거리 비누 한 개를 샀다. 값보고는 냄새가 제법이다. 그는 두어 번 냄새를 맡아 보고 깊숙이 조끼 안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러나 그리고 또 궁리해 보아도, 오늘 경과를 듣고 되게 낙망할 복녜의 걱정을 그 비누가 얼마나 덜어줄지가 의문이었다.
복녜네 어머니 아버지도 또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도 새삼스레 불쌍히 여겨졌다. 자기를 크게 바라고 있을 그들의 앞에 가서 무슨 말을 하랴.
어떻게 좀 잘살아 보려고 대소변 한 번일지라도 한데 갈기지 않고 뒤이 짜장 내려앉는 것 같은 것을 입을 앙다물고 집 뒷간으로 굴러 들어오는 아버지의 찡그린 상이 보인다. 여물을 먹고 나서도 눈곱이 괴죄죄한 검은 눈으로 정주를 올려다보는 여윈 암소의 낯바대기도 보인다. 몹시 가슴이 답답해났다.
기술은 주머니 속에 간직했던 비누를 다시 꺼내서 흐뭇하게 냄새를 맡았다. 향긋한 자극이 그의 머리에 이쁜 복녜의 얼굴을 방불히 그리게 하였다.
"아무리 한들 에미내(아내)를 굶게야 할라구."
그는 흐리터분한 겨울의 낮은 하늘을 멀리 바라보며 숨을 크게 쉬었다.
석양에 그는 마을로 돌아왔다. 번헌 집으로 갈가라다가 발길을 돌려 복녜네 집으로 갔다. 마침 복녜 아버지는 집에 있지 않고 그의 어머니가 반겨 맞았다. 복녜도 오늘 경과를 궁금히 기다리는 상이다.
"암만해도 안 되겠습니다."
기술은 한참 만에 이렇게 고지식하게 말하였다. 복녜를 보아서는 위선 벙벙히 말해 두고도 싶었으나 고작 드러날 일을 은휘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어떻게든지 복녜에게 안심을 주고 싶었다. 또 인제 일이 이 지경 된 바에는 젊은 축들이 짝패해서 한 번 결려라도 보고 싶은 내심도 있고 또 한편 십년나마 부치던 땅을 그렇게 식은죽먹기로 떼일 수 있느냐 하는 떡심도 있어서 아직까지도 그다지 낙망되지도 않았다.
"어떻게든지 되겠지요. 그리 문문히 떼우기야 하겠소. 걱정 마우다."
그러자 복녜 어머니도,
"그렇지. 그런 대사를 한두 번 가 가지구 되겠나. 자꾸자꾸 가봐야지."
그도 저으기 안심해하는 속이다.
"기녁에 또 오겠소다."
기술은 이렇게 말하며 복녜에게 슬쩍 눈질을 하였다. 어머니 안 보는 데로 나오란 말이다. 복녜가 수상한 듯이 정주문으로 머리를 내밀자 어머니의 시선은 막혀 버렸다.
"자아, 이거……."
기술은 조곰 떨리는 나직한 소리로 호주머니 속의 비누를 꺼내 주었다.
복녜는 그것이 무엇인지 때기 모르면서도 벌써 두 뺨이 흐뭇한 수태로 발갛게 물들었다. 뒤에서 어머니의 소리가 들리자 복녜는 얼른 비누를 받아 가비춤에 찔러 버렸다.
"밤에 또 오겠소."
기술은 어머니께도 들리도록 크게 외치며 가벼운 걸음으로 그 집을 나왔다.
5
눈기운을 머금은 찬바람이 불어친다. 인제 정말 진짜 겨울이 오는가 보다 하니 기술은 고연히 적막한 심사가 더하여졌다.
아버지는 섬을 짜고 있었다.
"온 무슨 바람이……."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며 기술이가 구들에 올라오기를 기다려,
"그래 만나 뵈었니?"
그 소리는 확실히 밉게 떨렸다. 기술은 또 고연히 심보가 틀려졌다.
"선생님 있디?"
"있어두 틀렸슈."
"틀리다니. 그래 부침을 다른 사람에게……."
어머니가 또 참견이다.
"지금 작인들은 모두 뗀대요."
"그러면 그 손을 누가 부친다디?"
"그거야 사람이 없어서 못 부치겠소."
아버지는 여직 아무 말이 없다.
어머니는 잠시 무슨 궁리를 혼자 하는 속이더니,
"그래 선생님이 널 알기는 알아보디?"
"그럼 너무 잘 알아서 걱정인데. 졸업 후 일까지 죄다 알아요."
"그래 다시 와보란 말 없디?"
"없어요."
기술이가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있는 판인데 빙충맞은 아버지가 또 붙는 불에 키질하듯,
"오라기 전에 자꾸 찾아가 봐야지."
하고 덮어씌이는데 기술은 그만 입이 써서 더 말치 않았다.
기녁을 먹고 그는 집을 나서 소패네들이 모이는 동무의 집으로 갔다.
"자네 오늘 장날도 아닌데 읍으론 어째 갔던가."
기술은 가슴이 좀 뜨끔했으나,
"나 오늘 교장선생 만나러 갔었네."
하고 곧이곧대로 일렀다.
"괴장선생? 내 그 참 뭐라던가."
"아버지랑 어머니랑 족장을 대서 가봤는데 통 틀례마셍이데."
"그래 그 선생이 그 땅을 가지게 된 건 사실이던가."
아직도 대부분 이것을 반신반의하는 것이었다. 원 그렇게 쉽사리 넘어갈 수 없는 것이며 또 그보다도 부침이란 그렇게 훌훌히 뗄 수 없는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평바닥 농민들은 농지령(農地令)이 발표된 이후 지주와의 사이에 소작 계약이 있어서 그 기한 안에도 변동되는 일이 별로 없고 또 기한이 되었더라도 상상한 이유 없이는 뗄 수 없는 것이나 이 고장은 산간이요 또 신개간지라서 아직 모든 범절이 째이지 못한 채로 있다. 땅이 팔리더라도 소작권까지 따라 넘어가는 관례도 없다.
"땅은 넘어간 게 분명한데 부침은 안 줄 모양이데…… 왜 자기 고향에서 데려온 작인들이 있지 않나. 그 사람들을 시킬 모양인가 부데."
기술은 이제 궁리하니 아마 그렇게 될 상싶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ꅙ 돼야 말이지. 불과 세네 집밖에 없는데."
"그거야 얼마든지 또 데려올 수 있지. 갱변에 물이 마르면 말랐지 작인이 없어 농사 못 짓겠나."
"암 그렇구말구."
"그러면 우리는……."
이 대목에서 이야기는 갑자기 어두워졌다. 한참 이러쿵저러쿵 공론들이나 별반 신통한 소견이라고는 나오지 않았다. 결국 춘경시절이 당기거든 누가 무엇이라고 하든지 선손을 써서 논갈이를 시작할 것 그래서 무슨 말썽이든지 혼단이 생기거든 땅에 물고쳐지는 수밖에 없다는 것 그 밖에는 더할 도리가 없다는 것…… 이런 이야기에 그치고 말았다.
"작년 물내기 때처럼 하다못해 턱석이라도 내다 깔고 거게서 잘 섬대지."
"가부간 땅에다 목을 맺지. 별수 있는가."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자기들의 앞에 다가올 운명이 그다지 따갑게 육박해 오지는 않았다. 첫째 아직 김갑산에게서도 또 교장선생에게서도 아무런 말이 없다. 지금까지 아무 말이 없으면 내년 봄 한 대목에 가서 부침을 내놔라 할 수는 없으리라 싶었다. 사실 이때까지의 이 고장 관습으로 말하면 그런 앉은 벼락은 없는 법이다.
기술은 밤이 좀 이슥해서 집에 볼일이 있다고 핑계대고 동무들보다 먼저 나와 바로 복녜네 집으로 갔다.
"아버지 아깨 그 집으로 찾아갔는데."
복녜는 고연히 얼굴이 붉어진다.
"난 어디 들러 오누라구……."
"그래두 얼른 만나 봐야겠다구 벌써 나간 지 오란데."
"그래 아무 이얘기도 안 했소?"
"아니 하기는 했는데 온 그럴 일이 있느냐구."
"지금 우리 공론들 했는데 뭐 별일없겠지. 칼 박구 삼간 뜀인데."
"……"
"그러구 후년부터 떼면 뗐지 내년은 일없을 거야. 엽때 아무 말 없는 걸 보면."
이렇게 한참 이야기하는데 복녜 아버지가 끙끙거리며 돌아왔다.
"이 사람 그래 대관절 어떻게 됐나."
그는 매우 초조한 상이다.
"뭐 상관없어요."
기술은 웬일인지 아까보다 뱃심이 굳어졌다.
"그래도 안 된다구 하더라면서?"
"그러면 우리두 안 된다구 하지요."
"그래서 될 일이 있지. ……제 당나귀 제 타구 가는데 누가……."
"내 혼자 가서 말한 게 되려 잘못 갔어요. 독불장군이라구…… 모두 가봐야 할 걸 내 혼자 갔으니 될 택이 있소."
"모두 갔대야 당나귀 낫거리지."
아버지는 한숨을 크게 지을 뿐 벌써 기술의 말 따위는 그 지친 마음을 털끝만치도 추겨 주지 못하였다. 아니 기술의 말은 첫째 말이 되지 못한다고 받아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야 복녜야, 거 짚이나 가져오너라."
아버지는 짜다가 남은 가마니를 마저 짜버리려고 하였다. 장날이 또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요새는 고연히 남이 버성겨져서 이번 장에 가지고 갈 가마니가 전보다 많지 못하다.
복녜가 어머니와 자기가 두들겨 온 짚을 아버지 앞으로 날랐다.
"휘―"
아버지는 숨이 칵 막히듯이 찬바람이 들어오는 문틈으로 코를 돌리더니,
"퓌― 어디서 병원 약내 이렇게니? 이런…… 코가 다 제리구나."
하더니만 수상타는 듯이 복녜를 보며,
"네게서 나는구나 피―"
복녜는 가슴이 뜨끔했다. 아까 기술에게서 받은 비누를 여태 기비춤에 찌른 대로 두었던 것이다.
"글쎄 어디서 이상한 냄새 나는 것 같애. 난 고뿔이 와서 냄새를 잘 모르지만……."
어머니가 이런 말을 할 때 복녜는 얼른 뒷골방으로 들어가려다가 말고 뒤울안에 나가 다라치 속에 비누를 넣어 버렸다.
"작인들 다 죽었지. 쉬없다."
복녜 아버지는 가마니를 짜며 별안간 혼자말로 중얼거린다.
"질고 짜른 건 대봐야지요. 순순히 안 들어주면 모두들 해내는 수밖에 없어요. 그저 오는 굿을 기다리다가는 미처 굶어죽지 못하겠소."
기술은 짚을 셈겨 주게 안심시키려 하였다.
"성나서 바우차기지. 발은 뉘 발이 부러지구."
"돼요, 돼."
기술은 하다못해 이놈의 영감쟁이 염소수염이라도 끄러주고 싶었으나 생각하면 복녜 아버지가 아니냐.
"아버지 글쎄 들어 보우. 우리 만든 동인데 죽두룩 공들여 남 존 일 하겠소. 일없어요."
"어디 남의 공 알아주는 세상이라디? ……그런 소리 말구 또 빌어 봐라. 비는 게 장수니라. 비는 낯에 침뱉겠니. 또 가봐라."
"글쎄 그렇더라도 이번은 모두들 같이 갑시다."
밤이 늦어서 기술은 집으로 돌아왔다.
6
봄이 다시 돌아왔다. 작인들의 생활은 더욱 말 아니었다. 여윈 손으로 새어 내던 낟알도 인제는 바닥이 났다. 황조미(만주속)도 떨어졌다.
봄이 얼마간 다정하다면 그것은 몇 가지 풀뿌리와 나무껍질과 나물잎을 그들에게 주는 그것뿐이었다. 아낙들은 그 근처 담방솔밭으로 매일같이 찾아다녔다. 풀과 나물을 캐고 소나무껍질을 벗겼다. 솔잎을 따서 요기해 가며…….
개중에도 소나무껍질은 가장 좋은 '진미'일 수 있었다. 그것을 말려서 방아에서 찧어 가루를 만들어 가지고 거게다가 약간의 좁쌀가루나 초석을 섞어서 떡을 만들면 이런 별미는 다시 없는 것이다. 한번 먹어 놓으면 그 어느 음식보다도 오래도록 주림을 잊을 수 있다.
그러나 그도 오라지는 못했다. 삼림간수에게 들켜서 몇 사람은 하마터면 삼림령 위반에 걸려들 뻔하였다.
춘경기가 다가오자 작인들은 그 땅에서 밀려나지 말려고 선손을 써서 예년보다 좀 일찌감치 땅을 갈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곧 중지를 당하였다.
검은 옷 입은 모범농민과 T학교 졸업생으로 된 모범경작생(模範耕作生)들이 와서 작인들의 논갈이를 중지시키며 여기여기다가 모래차 레일을 깔았다. 다단스런 공사가 시작될 것을 작인들은 짐작하였다. 모래차도 왔다. 방충을 높이고 동안 북편에 있는 깊은 줄늪을 마저 메우고 높고 낮은 논판을 정리하고 또 김갑산 동과 사사키 동을 연결시켜 버리자는 것이다.
날마다 양편 충돌이 그치지 않았다. 작인들은 아무러나 맘대로 논을 갈 수가 없었다. 한바탕 결리고 나서 좀 즘즛한 때 지다위 센 작인들이 논을 또 갈기 시작하면 또 으레 맞부딪치고야 만다.
"뉘 아들이 갈아먹나 보자."
작인들은 이렇게 소가 닭 보듯 지릅뜨고 있으나 저편은 늘어지게 태연스럽다. 어느 날 밤, 작인들이 밤을 타서 논을 갈고 종자를 뿌렸으나 그 담날 형지없이 번경(飜耕)을 당하고 말았다. 씨 뿌린 논판을 한번 말짱 되뒤집어 놓은 것이다. 종자도 건질 길이 없다. 이 땅의 옛 관습은 한번 파종만 하면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번경은 안 되는 법이나 그러나 그따위 법이 지금 세상에 무슨 소용이랴 하듯이 손쉽게 번경되고 말았다.
그래서 충돌꺼정 되었다. 교장선생의 집으로들 몰려갔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끌려가기까지 하고 해산을 당하였다. 하는 수 없이 또 논으로 논으로 몰려왔다. 인제 하늘도 땅도 모두 남이요 오직 오직 그 손 하나밖에 더 믿을 것이 없다. 최후의 씨름판이었다.
그러나 마침내 그 통에 기술이와 몇몇 사람은 태양이 없는 우리 안으로 가고 말았다. 그리하여 충돌은 끝이 났다.
오곡이 무르익는 한여름이 다 지나가도록 기술이들은 그대로 있었다.
추수 뒤에 겨우 놓여났을 때에는 작인들의 절반 이상이 산지사방 떠가고 말았었다. 복녜네도 어디로 가버렸다.
기술이 아버지는 겨우 사방공사장에서 노동해서 그날그날을 풀질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나마도 일터는 좁고 사람은 꾀여쳐서 닷새에 이틀은 그 일도 얻어 만나지 못하는 형편이다. 십장이 나와서 그날 필요한 인부 수만치만 부삽을 팡개치면 그것을 먼저 잡는 사람만 그날 일을 할 수 있고 그 담 잡지 못한 사람은 울상을 하고 돌아가는 것이다. 기술이는 나이 젊고 기꼴이 있는 관계로 아버지보다는 일잡이 손이 빨랐다. 그래서 그날그날을 간신히 지나갔다.
복녜네 집은 이 공사가 시작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고향인 S군으로 갔다고도 하고 또는 간도로 갔다고도 하여 그 종적을 바로 알 길이 없었다. 복녜네 집은 십 몇 원엔가 팔려서 대팻밥 모자를 쓴 모범경작생이 들어 있었다. 문짝도 고치고 토벽도 고쳐 발라서 봄보기부터 그전보다 훨씬 신수가 트여 보였다. 그 외의 여러 집도 거의 이렇게 주인이 갈렸다.
이 조고만 동리에는 검은 판자를 두른 새 집도 섰다. 그 집에는 높다란 국기게양탑이 서 있다. 모범경작생들이 와야와야 찌거리며 이 집에서 벼훑기를 하고 이따금 주인마누라가 주는 뜨거운 찻물을 마시며 씨무룩거리는 것이 지나가는 사람의 눈에 유표히 들었다.
지난 여름에도 교장선생이 육십 원이나 내어서 그들은 광포로 해수욕을 갔다 왔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또 여윈 이 김갑산 동이 십여 년 만에 첨으로 금년에 비싼 금비(金肥)를 싫도록 처먹고 유들유들 퍼러둥둥한 벼를 키워 주어 살진 나락이 놀랄 만큼 그득 났다는 말도 기술은 이야기로 들었다.
"서 마지기에서 여덟 섬인가 났다데."
그전 작인들은 이런 이야기에 입을 벌리고 닫지 못하였다. 농장은 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동도 높아지고 땅바닥도 골라졌다. 줄늪은 전부 메워지고 돌(물길)이 올이 바르게 이리저리 째여졌다. 그리고 김갑산 동과 그 아래 사사키 동은 완전히 연결되어 버렸다. 그 큰 동 북쪽에는 새로 저수지(貯水池)가 되고 그 남으로는 광포로 나가는 뺏돌〔排水路〕이 길다랗게 내를 이루고 있다.
모범경작생들이 한여름 동안 얼마나 일하고 얼마나 버렸는지는 알 수 없으나 교장선생은 팔천 원이나 들여서 T우편소를 그 친구의 이름으로 새로 샀다는 소문이 차차 퍼지기 시작하였다.
출전:조광37(193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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