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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 가는 무리 / 전문 / 송영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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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 가는 무리 / 송영

 



1

승오는 오정이 거의 다 되어서 겨우 찾아왔다.

이곳은 한 오십 명 가량이 일단이 되어 있는 도카타(모꾼)판이다. 우전천(隅田川) 지류인 소명목천(小名木川) 언덕 넓은 들 가운데에 있다.

논고랑 모양으로 번듯번듯한 일터는 끝없이 널려 있다. 냇가이며 또는 비가 노 온 까닭에 온통 진흙구덩이가 되어 있다. 한복판에는 내와 통한 연못이 있다. 거기에는 집 지을 재목이 떼 모양으로 가득하게 차서 있다. 한편에서는 벌써 기다란 나가야(공동주택)를 지어 오고 있다. 냇가가 중심이 되어 이곳 저곳에는 흙도 메어 나르며 달구질도 하며 땅도 파는 노동자들이 벌여 있다. 이곳은 부흥국에 속한 작업장이다. 진재 통에 한꺼번에 멸시를 당해 버린 심천구(深川區) 주민을 위하여 임시로 집을 짓고 있는 곳이다.

야트막한 하늘은 잿빛 같은 기운이 무겁게 어렸다. 수없는 연통에서 나오는 검은 연기는 엷은 구름같이 몰렸다 헤어졌다 한다.

멀리는 소명목천에서 짐배들의 오고 가는 소리와 기동선의 똑똑거리는 기관 소리가 컸다 작았다 하고 들린다. 또는 건너 언덕에 줄을 대어 있는 각 공장에서는 기계 소리, 덜래는 소리가 한데 합해서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게 이상한 소리가 되어 희미하게 흘러오고 있다.

그리고는 달구질하는 소리, 주고받는 노동자가 흙 파는 소리, 시시덕거리는 지껄임만 연못 속의 떼재목같이 단조롭게 들썽거릴 뿐이다.

승오는 노동자가 모여 자고 있는 바라크(假舍) 앞까지 왔다. 한 널 조각으로 기다랗게 사 귀만 맞추고 양철로 지붕을 했다. 한 칠팔 칸이나 되게 길어 보인다. 듬성듬성하게 사이가 벌어진 것은 말의 양간 모양 같았다. 가운데에는 외쪽문이 있다. 미닫이 모양으로 밀어서 열고 닫는 문이다. 물론 장식도 없고 고리도 없는 명색만이, 그리고 하는 것만이 문의 사명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승오는 크도 적도 아니 한 몸에 때아닌 추복을 입었다. 해에 바래고 찌들어서 땅빛같이 되고 어깻죽지, 무르팍 등속이 해져서 너펄거리고 있다. 더욱이 궁둥이는 뚱그렇게 찢어져서 사루마다 입은 볼기짝이 내다보인다. 발에는 주둥이가 찢어진 흰 구두를 신었다. 진흙이 묻고 검정도 묻어서 뭐라고 말하기에도 어렵게 되었다(까만 족제비라고 하기에는 너무 보태는 것 같고 해서……). 모자만은 철 맞춰 쓴 겨울 캡이다. 과히 더럽지는 아니했으나 마분지로 속 넣은 창이 꺾어져서 있다.

얼굴은 검고 마른 품이 광대뼈와 코만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자 밖으로 훨씬 나온 머리는 귀를 덮고 목덜미를 아주 가려 버렸다. 두꺼운 입술, 퀭하게 들어가고 가선 진 두 눈, 그리고 얼굴에는 그늘이 많고 어둠이 많아 감추어지지 못할 주린 빛은 무겁게 어리어 있다. 더욱이 두 눈에는 고통과 번민―---거듭 무섭게 저주하는 빛이 빛나고 있다.

그럭저럭 동경 온 지는 두 달이 넘고도 석 달이 가까운 그는 굶기도 그만큼 많이 했고 고생도 그만큼 길었었다.

그는 처음에는 사회국과 직업소개소로 돌아다니기를 시작하여 사무원, 점원, 직공견습, 신문배달부, 어떻든지 손으로 되는 것은 아니 해보려는 것이 없었다. 그는 이제까지 석 달 동안에는 최고 이상이 밥벌이요 최대 환희가 밥 먹을 것이요 최대 고통이 밥 없는 것이었었다. 먼저 먹어야겠다고 그는 알 만한 사람 될 듯한 회사 혼자 생각에는 모조리 다 가보고 그 외에 신문 소개란이나 길가에 붙은 광고까지도 다 보아 가지고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넓은 동경을 전차와는 관계를 끊고 헤매고 돌아다니었었다.

그러나 개개이 실패였었다. 실패라도, 팔구 분이나 그렇지는 않더라도 이삼 분이라도 될 듯하다가 틀어진 따위는 아니었었다. 아주 상쾌한 실패였었다. 처음부터 거절, 한층 나아가 멸시, 모욕 이러한 실패였었다. 그는 식민지 토민이라는 것과 외방 사람이라는 것과 또는 학교 졸업장 없는 것과 그리고는 손가락이 길고 몸이 약하다는 것이 거절당한 이유의 여러 가지였었다.

그는 별로 흥분도 아니 되었었다. 도리어 그는 때때로 고소(苦笑)를 하였다. 그것은 그가 너무나 그 같은 생활에서 자라나고 지내 오고 당해 보기만 한 그 까닭에 오히려 그 같은 사람 같지 않은 사람들에게 학대받고 멸시받는 것에 신경이 마비된 까닭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질서 있는 이지가 머리에 버티고 있을 때 말이다. 분화구 모양같이 그의 가슴이 탁 터질 때에는 그는 온통 천하를 들부수려는 용사가 되고 만다. 그가 석 달 동안 터무니없는 생활을 해오는 동안에는 거의 시간마다 울리는 시계 종 모양으로 열두시로 그는 용사가 되어 왔다. 찰나 찰나의 용사는 그로 하여금 갈 길을 찾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고향이 그립지도 않았다. 그립지 않은 게 아니라 가고 싶지가 않았다.

저절로 나는 생각이었다마는 그는 그 '저절로'까지도 억제를 하였다. 만일 저절로 나는 생각을 방임하고 보면 그는 그보다 더 큰 고통이 없고 비애가 없었다.

병든 어머니가 앞장이 되어 노랗게 시든 어린 처라든지 월사금 못 내서 퇴학을 당당히 당한 동생이라든지 젖까지 말라붙어 울고 지내는 젖먹이 딸이라든지 뭉텡이 된 산송장 꼴을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머리에서부터 발꿈치까지 온몸과 온 동작을 살리는 정대한 운동에 바치고 모였던 동지들이 밖으로 관헌의 압박을 받고 안으로 개인 경제가 파멸이 되어 터지려는 화산 같은 가슴을 부둥키고 헤어져서 초조하게들 있는 동지들의 얼굴, 그 얼굴들을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죽으면 죽어도―---어디서 죽으나 굶어 죽기는 마찬가지나―---가기를 싫어했었다.

그러다가 그는 십여 년 동안이나 도가판으로 돌아다니다가 지금에는 어느 공장의 직공이 되어 있는 먼 일가 형을 우연하게 만났다.

그리하여서 '네가 꼭 하겠느냐. 너 같은 도련님은 그런 일은 어림도 없다. 별소리 말고 어서 조선으로 나가거라' 하는 별별 소리와 다짐을 받은 뒤에 이곳 노가다판으로 소개가 되어 오는 길이 다만 소개일 뿐이지 확실히 결정되어 오는 것은 물론 아니다.

2

승오는 문 앞으로 가까이 왔다. 어디를 들어가든지 더욱이 직업 때문에 들어가는 곳에서는―---일어나는 울렁증이 그의 가슴을 엄습하였다.

그는 소개자인 형에게 이러한 주의를 들었다.

노동자의 풍속은 누구든지 '척'하는 사람, 즉 돈 많은 척, 유식한 척, 잘난 척, 높은 척하는 사람은 제일 싫어하며 또는 자기네들보다 좀 높은 계급의 사람이나 틀리는 계급의 사람들을 시기하고 미워하는 습관이 있으니 아무쪼록 전부터 노동이나 하고 지내 온 노동자인 척을 하라는 것이다.

그때 그는 그것은 그럴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노동자의 시기지심이 아니요 필연히 일어나는 계급의식이라고까지 새겨서 들었다. 그 같은 생각은 이론을 떠난 체험적 반사작용에서 나왔다. 즉 그도 어떤 관청 어떤 공장 하고 돌아다니었을 때에 아니꼬운 상관의 호령 소리와 잔인한 공장주의 발길을 받고 지낼 때에 그 같은 같은 계급―---즉 부림받는 계급―---이외의 계급에 대하여서는 강렬한 적개심을 가졌었던 까닭이다. 가졌었던 것이 아니라 가지고 있는 까닭이다. 지금까지…….

그러나 그 같은 계급체험은 즉 정신노동, 흰손 사람의 노동이었던 까닭에 그의 계급의식 이외의 모든 동작과 태도는 순전한 자유노동자들에게는 배척받을 만큼 귀족적 형태를 띤 것이 그의 형에게까지 주의받은 원인이 된 것이다.

승오는 목소리를 일부러 거칠게 해가지고,

"곤니치와(안녕하세요)."

말을 딱 해놓고 나니까 그는 얼마간 울렁증이 없어지고 도리어 쾌활한 기운이 났다.

안에는 사람이 여럿인 모양이다. 드렁드렁하고 떠드는 소리가 나기만 하고 아무도 응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다시 문을 조금 열면서,

"곤니치와."

말소리를 일부러 거칠게 했지마는 얌전한 어조가 아주 없어지지 않았다.

그제야 문을 탁 열면서 어떤 키가 후리후리하고 방한모 쓴 자 하나가 내다본다. 눈은 부리부리하고도 무엇을 노리는 듯한 날카로운 빛을 띠고 입을 삐죽하면서 서투른 일본말로,

"다레(누구)?"

말소리는 거칠고도 단순하였다. 그리고 면구할 만치 승오의 아래 위를 훑어본다. 저는 승오를 일본 사람으로 안 것이다. 일본 사람 이외에는 이 노가다판으로 찾아오는 자는 양복을 입은 것을 못 본 까닭이다.

눈을 휘둘러서 얼굴을 보살피며 따라 눈빛이 이상하게 번득이는 것을 보면 '왜 왔누?' 하는 의심이 동한 것이다. 승오는 모자를 벗으며 공손한 조선말로,

"노형, 조선 친구십니까."

'친구'라는 말이 그가 노동자인 척하느라고 애써서 쓴 말이었다. 그러나 '십니까' 하는 소리는 걷잡을 새 없이 나왔으니 '이슈'라고 고쳐 보고 싶었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자가 승오가 조선 사람인 걸 보더니 별안간에 반가워하는 빛이 돈다. 따라 말소리까지 순하여진다. 일부러 지어서 하는 것이 아니요, 천연히 나온 것이다.

"네! 그러외다. 웬 양반이외까."

말소리는 경상도 방언이다.

"네! 저 야마모토(山本)상 계십니까. 좀 뵈러 왔는데요."

야마모토라는 것은 김춘실이라는 조선 사람의 변명한 것이다. 이곳의 꼭대기(오야카타)다. 원래에 노가다판에는 오야카타(감독)라는 통솔자가 있다.

완력도 있고 지력(노동자에게 엉너리칠 만한)도 있는 자로서 온 수하의 노동자를 쥐고 있는 자다.

쉽게 말하면 일종 청부업(請負業)이다. 어느 일판을 도급으로 맡아 가지고 거기에서 값싼 노동자를 쓴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얻어서 쓰고 먹고 또는 착실하게 저금까지 한다. 가만히 앉아서 온종일 일한 수하의 노동자의 노동력을 가로채서 먹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 사람 오야카타는 시타오야카타(아래치, 즉 소두목)에 속한다. 원 일쥔과 직접 관계 있는 오야카타는 일본 신사들이 한다. 그러면 그 밑에서 먼저 이 먹고 남은 찌꺼기를 갖다가 또 이를 남기는 것이 조선 사람 오야카타의 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조선 사람 오야카타는 밥장수를 겸해 한다. 즉 이를 먼저 먹은 찌꺼기에서는 셈이 안 되니까 밥장사에서 채우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일반 노동자는 이 같은 자에게는 쥔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네 야마모토요. 쥔 말이오. 지금 있소, 어서 들어오슈."

그자는 극진하게 인도를 한다. 승오는 아무 소리 없이 따라 들어갔다.

그 안은 양편으로 갈라서 다다미 깔린 마루(창문이 없으니 방이라고는 할 수 없다)가 있다. 왼편 쪽에는 한 이십 장〔疊〕넓이는 된다. 더럽고 찢어진 이불이 죽― 펴서 있다. 한편 구석에는 개켜 놓은 이부자리가 서너 벌쯤 쌓여서 있다. 이구석 저구석에는 가방 나부랭이 봇짐 등속이 놓였다. 그리고 버선조각 헝겁조각 종이부스러기 담뱃재 흙부스러기가 난잡하게 흐트러져 있다. 그리고 틈이 벌어져서 바깥이 들여다보이는 벽에는 까맣게 된 괴나리봇짐이 두서너 개 걸리고 매우 헐어빠진 모자 몇 개가 걸려 있다.

한 서너 사람이 병이 난 모양인지 이불을 머리까지 들쓰고 드러 누웠다. 숨소리까지 들리지 아니하게 죽은 듯이 드러누웠다. 승오는 드러누워 있는 불쑥한 이불과 벽에 조랑조랑 달린 괴나리봇짐과는 말 할 수 없는 구슬픈 표박의 고독을 맞이야기하는 것같이 보였다. 뿐만 아니라 온 방 안은 거칠고도 난잡한 가운데 적막한 정조가 흐르고 있었다.

왼편은 여섯 장의 다다미 깐 방이다. 그 방 맞은편 선반 위에는 침구와 큰 고리짝이 놓여 있다. 그 아래로는 쌀섬과 무 배추 등속이 놓였다. 그리고 가운데에는 뚱그런 큰 사기 화로가 놓였고 화롯가에는 오륙 인의 노동자가 둘러앉았다.

그리고 왼편과 바른편 가운데 사이에는 부엌으로 통하는 길이 있고 멀찌가니 맞은편에는 커다란 솥이 걸려 있는 부엌이 마주 보인다. 점심 준비하느라고 들썩들썩하고 있다.

엄지손가락 자국만하게 굵게 얽은 얼굴이 검고도 윤기가 도는 자가 야마모토이다.

눈은 시뻘겋게 상혈이 되고 부리부리한데다가 음흉한 빛(이지)이 띠어 있다. 저지 자켓을 입고 검정 우단 즈봉을 입고 앉아서 담배를 피워 물고 앉아서 있다.

그 옆에는 일본 옷을 여기저기에서 주워 모아 입은 듯이 맞지 않게 입고 조선머리를 해서 쪽찌고 앉은 계집이 있다. 까무잡잡한 얼굴을 더군다나 찡그리고 앉아서 그의 남편과 말다툼이 시작이 되었다.

그가 들어가자 쥔 양주의 싸움은 더하여 갔다.

그 계집은 어깻짓을 난잡하게 하면서 입을 빼죽이 내밀고,

"맘대로 해보렴. 날마당 보기 싫다고만 하면 어쩔 테냐."

하고 얼굴이 통통히 부어서 외면을 한다.

쥔은 금방 잡아나 먹을 듯이 노려다보다가 다시 슬쩍 눙쳐서 껄껄 웃으며,

"엥이 시카타노 나이야로다나(별수가 없군), 허허허허."

이러는 판에 처음 인도하던 자가 승오를 보며,

"저 양반이슈."

하고 쥔을 가리킨다.

그 소리에 쌈은 중절이 되었다. 그리고 쥔 양주와 또는 한데 둘러 앉았던 두 사람의 노동자는 다 같이 승오에게 시선을 던졌다. 눈은 다 각각 모양이 달랐었으나 비웃대는 듯한 색채가 띤 의아한 모양은 공통되고 있다. 승오는 어쩔 줄을 몰랐다. 첫 나들이 나온 새색시 모양으로 몸을 어떻게 가져야 할는지, 서야 할지 앉아야 할지, 뭐라고 먼저 말을 할는지를 몰랐다. 더군다나 네 사람의 거칠고 사나운(그렇게 보이는) 눈길을 받을 때에는 황당하기가 짝이 없었다. (그는 퍽 수줍은 편이었다. 딴은 그로서는 여편네가 남편보고 해라 하는 것은 생전에 처음도 보았거니와 사람 찾아오는데 태연자약하게 앉아 있는 것은 겪어 본 경험이 없었다. 경찰서 고등과에서 혹시 보아도.)

주인은 아는 듯이 싱글싱글 웃으며,

"네― 뉘슈. 이리 올라오슈."

퍽 친절스럽게 들렸다. 그는 그제야 정신이 난 듯이,

"네 좋습니다."

하고 화로 옆에 가 가만히 걸터앉았다. 그리고 자꾸 그는 앞뒤를 돌아보았다. 앞뒤의 모든 것은 그를 그렇게 만들어 논 것같이 그는 되었다.

"형장께서 김춘실이신가요?"

주인은,

"네! 그러오."

간단하고도 무미하였다.

"어 그럽니까. 전부터 많이 들었습니다. 얼마나 객지에서 고생을 하십니까."

그는 약간 떨리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말은 하면서도 그는 속에서는 잡아들였다.

주인은 또 너털웃음을 구격맞게 웃으면서,

"마찬가지죠. 피차 마찬가지죠. 그런데 뉘 댁요."

'뉘 댁요' 하는 소리는 뭘 하러 왔느냐? 하는 소리 같다. 그보다도 십여 년 동안 노가다판에서 지낸 주인은 날마다 당하는 경험이 있으므로 벌써 승오의 말할 것을 짐작하고 있다. 어떻게 말하리라 하는 것까지 어떻게 대답을 하리라는 작정까지 하고 있다. 그의 얼굴에 나타난 웃음이 그들을 은연히 증명하고 있다.

"저는 이승오라고 합니다. 첨 뵈옵는 길로 매우 미안은 하지요마는 좀 청할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하고 그는 그 형이 내주던 소개장을 내놓았다.

소개장이라는 것은 그 형의 명함 그리고 야마모토 씨라고 연필로 쓴 그것이었다.

승오는 '같은 조선 사람으로―---같은 고생하는 사람으로 특별히 좀 염려를 해주십시오' 하고 말을 하려다가 그런 말은 너무나 다식판 박은 돌아다니는 말이고 또는 너무 말하기에도 진저리가 먼저 나서 그만두어 버렸다.

그때의 주인 여인은 승오를 보다가 아주 경솔한 소리로,

"여기 일하러 오셨소?"

승오는 좀 불쾌하게(무의식적으로) 들렸으나 그냥,

"좀 해볼까 해서 왔습니다."

하고 주인을 보았다.

마침 점심때가 되었다.

별안간에 문이 와락 열리며 한 떼의 노동자가 들어온다. 오금까지 올라오는 해진 양복바지와 입다가 내버린 한텐(일본 겉옷의 일종)들을 입고 개개의 머리에는 수건을 동였다. 그 중에도 나이 어린 자는 캡을 눌러 썼다. 그리고 또 요사이 갓 들어온 모양인지 시골 농군 복색 한―---새까만 조선 바지 동옷―---상투 달린 자도 두엇이나 섞이었다.

키가 크고 작으며 몸집도 크고 작아서 사람마다 다 다른 용모와 체격을 가지고 있건만 해에 그을려서 까맣게 된 여윈 얼굴에 기아와 절망과 또는 피로한 빛들만은 다 같이 통일되고 있다. 그리고 일제하게 다리 회목까지―---발은 물론―---까맣게 흙투성이가 되어 있다.

그들은 우당퉁탕 몰려 들어왔다. 별안간 일본말 조선말(각 지방 사투리) 이야기 욕지거리 퉁거리 쌈짓거리 이런 것들이 와글와글하고 일어났다. 난잡하고 요란한 훤화는 순직한 인간성을 띠고 있다. 여기에서 그만 승오와 주인의 문답은 끊어졌다.

승오가 끊어뜨리지 않으려나 할 수 없었다. 한시바삐 끝장을 내고 싶었지만…… 주인은 연해연방 엉너리웃음을 띄워서 온화한 목소리로 들어오는 노동자들에게 향하여,

"에키 매우 고생했지. 땅이 질어서."

또는,

"어디 조금만 더 애를 쓰세야겠소, 허허."

이러면은 어떤 자는 그냥 지나가기도 하고 어떤 자는 아주 고마운 듯이 굽실하며,

"아뇨! 괜찮어요."

하고 겸손도 하고, 어떤 자는 퉁명스럽게 '이놈 네 속을 다 안다' 하는 듯이,

"그럼 어쩌오."

하는 자도 있고, 어떤 자는 이런 소리 저런 소리가 다 듣기 싫은 듯이 그냥 기계적으로,

"아니."

하고 홱 지나가기도 한다.

승오는 우글우글하게 들어선 노동자를 대할 때에 별안간 그의 몸은 작기 콩알 같은 것 같았으며 또는 기쁨과 호기심과 분노와 우울이 한데 어우러져서 일어난 느낌이 가슴을 울렁거려 놓았다.

자꾸 웃고 있는 주인의 얼굴은 보기가 싫었다.

너무 순직한 사람들 앞에서 너무나 불순한 웃음을 웃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옳아 저렇게 하여야만 노동자가 붙겠으니까, 노동자가 붙어야 먹고 살겠으니까 하고 생각하였다.

그러다가 먹고 살려고 하는 마음에 없는 웃음을 웃는 주인이나 먹고 살려고 하는 마음에 없는 웃음을 알고도 받는 노동자나―---가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하나는 밉고 하나는 안타깝게 그의 마음은 앞뒤로 기울어졌다.

"밥내."

"어 배고파."

"에키 굼벵이."

부엌데기 노릇 하는 자 하나는 정신을 잃은 듯이 되었다. 욕도 안 들리고 군소리도 모르는 것같이 저는 듣고도 못 듣는 듯 귀먹쟁이가 되어서 밥 한 그릇에 된장국 한 그릇을 기계 모양으로 퍼주고 있다.

턱 걸터앉아서 안심되는 듯이 먹기도 하고 한쪽에 서서 쫓겨 가는 자같이 먹기도 한다.

누구한테 빼앗길 듯이 애를 써서 들이마시기도 하고 먹고 나서 더 먹고 싶은 생각으로 흘끔흘끔 부엌을 들여다보는 자도 있다. 어떻든지 먹는 소리는 소낙비 모양으로 다 같이 속한 속도를 띠고 있다.

그들은 왜 그렇다는 이유들은 몰라도 다 같이 안심하는 기뻐하는 찰나의 정신에 지배되고 있다. 배고프다가 음식을 보고 좋아하며 좋아하는 음식을 입에 넣을 때의 쾌한 느낌―---가벼운 느낌―---을 느끼는 생물 필연의 본능적 환희에 잠겨들었다. 그리고 '생각', 고향 생각 처지 생각 장래 생각 그들로 잊지 못할 가난한 방랑자의 생각조차 지금 밥 먹는 순간에는 가라앉고 말았다. 다 먹는 데에 골몰한 긴장된 얼굴빛이 이것을 말하고 있다.

승오는 얼른 틈을 타서 다시 말을 이었다.

"요사이 갓 와노니까 꼼짝할 수가 없습니다그려. 그저 꼭 굶어 죽는 이외에는 아무 도리가 없어요."

그는 간절하게 사정하였다.

주인은 그 소리는 들은 둥 만 둥하고 승오를 자꾸 유심히만 본다. 새로 까매진 기다란 손과 좁은 어깨와 가슴 그리고 약해 빠진 빛이 찬 얼굴―---을만 보살펴 보았다. 소위 동포에 대한 동정심이라는 것은 그 끝이 마비되었다.

처음에 ꅸ십 년 전 조선 사람이 드문드문한 때에는 서로 반가워도 하고 서로 돕기도 했었으나 차차로 같은 사정에서 쫓겨 몰려 들어간 사람들이 주린 양떼같이 널려 있는 지금에는 더욱이 이 같은 향토에 인리애(隣里愛)는 희박하여지고 말았다. 더군다나 겨우 하룻동안 생활을 근근이 계속하여 가는 그들의 빡빡한 생활이 그들로 하여금 공포와 공황을 느끼게 한 중요 원인이 되었다.

아는 척했다가는 필연적으로 달라붙고 달라붙으면 자기네들의 생활이 위협되므로 도리어 그는 길에서라도 조선 사람인 척 특히 조선 사람에게는 보이지를 않는 것들이다. 이것도 이 노동하는 유랑인의 유랑인적 제이 천성을 이루고 있는 것의 하나이다.

주인도 그리하여 승오 스스로는 그래도 그런 말을 하면 마음이 동하여 잘하여 주리려니 하는 기대심이 조금도 귀에 신기하게 들리지 않는 것이다.

속으로 저 같은 약한 사람은 도리어 다 밥 신세나 지려니 하여 오륙 분 좋아 아니 하였으나 겉으로 단련된 웃음으로 허허 웃으며,

"어디 노형, 이 같은 것을 하시겠소, 보아하니."

떨어지기가 무섭게 매우 열성 있는 목소리로 승오는,

"네, 그렇기도 하시겠지요. 모두 누구든지 다 그러구들 하더군요. 그러나 저는 별일을 다 해보았으니까 아무 염려 없습니다."

말소리는 점점 빨라 가며,

"만일 조금만 완만해도 노형의 지휘대로 하겠습니다마는 지금은 꼭 죽을 형편입니다. 가도 오도 못 하는 곳에서 오직 노형의 거두심만 바라고 있습니다…… 네……."

그 말하는 순간에는 밥 달라는 어린애 마음같이 단순하기만 하였다. 그리고 되었으면 하는 초조한 빛이 현저하게 나타났다. 화롯전에 댄 두 손가락을 못 견디는 듯이 꿈적꿈적하는 것만 보아도…….

주인은,

"그러면 어디 며칠 계셔 보십시다."

귀찮은 듯이 말했다. 그래도 노동력을 가로채서 먹고 사는 저는 같은 나라 사람이라는 것에는 좀 그만한 마음이 있었다. 말하자면 자선심 비슷한 동포애가 그의 머리에 있었다.

승오는 한껏 기뻤다. 몸짓 손짓 말소리까지 화창하여졌다.

"네 고맙습니다."

그럴 때에 여러 사람 축에서,

"에크, 친구 하나 늘었군."

하는 거칠고 온화한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껄껄 웃고 수군수군하는 소리가 났다.

주인 여편네는 사람 느는 것이 넌더리가 나는 듯이 독살스런 눈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다.

승오는 그 '친구 하나 늘었군' 하는 소리를 들을 때에는 금방 마음이 좀 풀렸다. 깊은 구렁에나 빠진 듯이 가슴이 별안간 답답하여졌다. 그리고 이제까지 지내 오던 흰손 사람의 생활이 높기 태산 같게 까맣게 보이는 듯하여졌다. 그만큼 그의 머리에는 새 생활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미련의 여영(餘映)이 남아 있는 까닭이었다.

3

그날 밤이다. 동경에서는 얻어 보기 어려운 눈발이 하나씩 떨어지기를 시작한다. 차차로 쏟아지기를 더한다. 눈발은 굵어 가고 밤은 깊어 간다.

차고로 돌아가는 길거리에 전차 소리는 드문드문 밤기운을 깨치고 있다. 양국교(兩國橋)로 통하는 큰길 양쪽에는 상점문은 모두 닫히었었다. 처마끝에 켜논 휘황한 전등, 길가에 나란히 단 가두 전등뿐이 눈 속에 희미한 윤곽만 환하게 빛내고 있다.

고요하다. 발자취는 끊어졌다. 온 시가는 잠을 잔다. 양국교 다리는 차와 사람에게 온종일 시달려서 늘어진 것같이 크나큰 쇠몸뚱이가 피로에 잠겨 있다.

난간에 켜논 전등, 눈 속에 나타나는 우전천 물결, 불기운에 반사되는 눈발 찬 공중, 그리고 소리 없는 정적, 이것이 양국교 머리의 모양이다.

승오는 눈 오는 난간에 가 아주 시름없이 엎드려 있다. 고개는 숙였다. 눈을 휩싸고 부는 찬바람을 못 이기는 듯이 그는 두 손을 찢어진 호주머니에다가 넣고 있다 가끔가다가 무거운 한숨을 쉬고 있다. 이럴까? 저럴까? 그는 어떤 번민에 빠져 있는 모양이다.

그러다가 그는 거의 누가 알아들을 듯이,

"그렇지만 않었더면……."

하고 매우 아까워하는 듯이 탄식을 한다.

"그렇지만 않었더면……."

억지로나마 승오는 노가다판에 붙게 되어 좋아도 안심도 했으며 한편으로 애도 쓰고 거리낌직하여 하기도 하였다.

헌 하다카다비(맨버선) 한 켤레를 얻어 신고 넥타이는 끌러서 허리를 잔뜩 잡아매었었다. 그 중에 서툴러 보이지 않는 사람 하나를 따라서 진흙이 다리 오금까지 빠지는 일터로 나갔었다.

처음에는 발을 떼지 못하였다. 물큰거리고 얼음같이 찬 진흙이 다리 회목까지 오를 때에는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마루에 먼지만 있어도 슬리퍼를 신고 다니던 발이 보이지도 않게 찔꺽 하고 구덩이로 들어감을 보고는 그는 가슴이 이상하여진다. 순전한 그전 생활의 '나마지(어설픈) 사상'이 활동한 까닭이다. 그러다가 앞뒤에서 철벅철벅하고 그 중에도 낄낄거리고 가는 다른 사람들을 볼 때에 그는 다른 그 '나마지 사상'을 눌러 버리었다. 한발자국 두발자국 나아가는 걸음이 많아질수록 그는 점점 어색한 모양이 줄어 갔었다. 어떡하나 하다가 왜? 하는 용기를 내고 용기에서 용기가 생기고 거기에서 그만한 마취제가 생겨서 그는 어느 정도까지 기계가 되었다.

여러 사람들은 혹 부삽도 들며 괭이도 들어서 흙도 파며 일본 사람 물 긷는 모양으로 어깨에다가 흙광주리를 메고 왔다갔다한다.

처음에는 싫은 것을 억지로 하는 듯이 혹 기지개도 펴며 한숨도 쉬며 상을 찡그리는 것들이 해도 한 보람 없는 무미건조한 생활을 판박듯이 해온 그들은 또 이 해가 질 때까지 어떻게 지나 가나 하는 것을 느낀 것들이었다. 그러다가 쓱 시작들을 한 뒤에는 고동 틀어 논 인형같이 쉴새없이 왔다갔다하고들 있다. 과연 그곳에 그들의 안정이 있는지…….

그도 메는 막대기와 흙광주리 두 개를 얻었다.

처음에는 휘청휘청하는 거친 막대기가 어깨에 닿을 때에는 처음 진흙 밟던 모양으로 온 살이 떨렸다. 그것커녕 앞뒤로 비틀비틀 넘어갈 듯하여 일어서지를 못하였다. 다음에는 일어섰으나 술취한 사람이 되었다.

다음에는 걸음을 걸었으나 굼벵이 같았다. 여러 사람들은 승오의 상혈된 얼굴과 쩔쩔매는 꼴을 보고 웃었다. 애처로워하는 것보다 비웃대는―---악의가 아닌―---웃음이었었다.

그 중에 번들번들한 자 하나가,

"에키, 또 밥주머니 하나가 늘었군."

하고 껄껄 웃는다. 그 옆에 나이 젊은 자 하나는 저의 처음 때를 생각하는 듯이 그를 다소 이해 있게 바라본다. 그러자 키가 작달막하고 똥똥한 자 하나가 픽 웃으면서,

"가만두게, 그래도 얼굴은 허여멀건 게 괜찮으이."

하고 또 무슨 말을 마저 할 듯하다가 그만 멈칫하여 버린다. 모두 깔깔거린다. 그리고 일제히 자극받아 일어난 성적 색채가 띤 음흉한 눈길을 들어 그를 쳐다들 본다. 승오는 그저 모른 척만 했다.

혹시는 혼자만 아는 초인적 심리가 되어 놀리고 까부는 저들에게 대하여 침묵의 조련을 하였다.

모든 자의 킬킬거리는 것이 아무 이심(二心) 없는 단순한 것같이 그의 침묵의 조련도 아무 야심 없는 단순한 것이었었다. 단순한 풍기는 단순하게 흘렀을 뿐이다. 어느덧 석양이 되었다.

해는 수없는 꼬장 연통에서 나오는 검은 연기에 싸여서 서쪽 지붕에 걸렸다. 붉고 빛나는 황혼의 빛은 엄숙한 암시를 띠고 있는 듯하다. 뚜― 뿡― 하며 공장에서 나는 기적 소리는 비 온 뒤의 댓순 모양으로 이곳 저곳에서 난다. 요란하게 난다.

검붉은 햇빛, 웅장한 기적, 돌아가는 노동자의 괭이 멘 모양, 훌륭하게 융화가 되어 보인다.

그는 목욕이나 한 듯이 상쾌하게 되었다. 다리팔에는 기운이 돌았다.

그는 쭈그러진 배를 움켜쥐고 돌아가는 동무 틈에 가 섞여서 혼자서 빙긋빙긋 웃는다. 이론을 떠난 신경반사적 웃음이다.

저녁밥은 먹었다. 고린내, 땀내, 오장 썩는 한숨, 집합해서 일어나는 이상한 냄새 나는 다다미에 이곳 저곳에서 이 잡는 소리가 뚝뚝 일어난다.

몇 사람은 둘러앉아 놀음판을 벌였다. 그들도 모르는 딴사람들이―---좋지 못한 사회조직이 만들어 낸―---되어 가지고 와― 와― 하고 떠들고 야단이다.

금방 주먹이 왔다갔다할 살풍경이 일어날 듯 날 듯한 긴장된 분위기에 싸였다. 시뻘겋게 된 눈동자 씨근씨근하는 숨결들로 된 것이…….

한편에는 옷을 꿰매느라고 구부리고 앉아서 굽실굽실한다.

승오의 몸은 솜같이 늘어졌다. 어깻죽지가 벌어지는 것 같고 다리 회목 팔 회목이 폭폭 쑤신다. 엉치와 허리는 끊어질 것 같고 게다가 머리는 천근같이 무거웠었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 하여간 생각이란 것은 그를 떠나가 버렸다. 그는 다만 잠밖에는 모두 싫었다.

눈은 깜박하고 희미하게 되어서 피곤한 빛에 어려서 거의 감을 듯 감을 듯하게 되었다.

낮에 '허여멀건하다'고 하던 자는 승오의 옆으로 오며,

"여보 아우님, 졸립지, 어서 자오."

하고 이불을 들썩하여 준다. 이불 수효는 사람 수효가 적은 까닭에 한 이불에 세 사람씩이나 한데 자게 된다.

그자는 같이 자잔 말이었다. 승오는 '아우님' 하는 소리가 내외 주점에서 작부를 보고 '아주머니' 하는 소리와 똑같은 심리에서 나온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자 그는 몸서리가 나서 그만 달아나고 싶은 생각까지 났으나 어느결인지 그는 드러누워 버렸다.

드러눕자마자 그전에는 그렇게 많던 공상―---인생관, 사회관, 영감, 작전계획, 개선의 환희 등으로 마법사도 되고, 부자도 되고, 황제도 되고―---들은 어디로 갔는지 그만 몸이 노그라지는 듯하게 차차 숨소리까지 커져 버렸다. 그때는 눈이 시작하여 온 초저녁이다.

노름판은 점점 더한 백열적 육박이 되어 가고 이 잡는 소리도 늘어 간다. 끊어지는 듯한 숨소리도 나고 정신없이 사향(思鄕)이 잠겨 있기들도 한다. 벌써 혼몽중에 든 사람들도 있다. 구슬픈 꿈까지 꾸는 자도 있다. 얼마 뒤였다. 밤은 이슥하게 되었다. 퍼붓는 눈발만 가끔가끔 툭툭거리고 널판장을 소리내고 있다.

코고는 소리, 거센 숨소리는 온 방 안에 가득 차서 있다. 별안간 승오가 덮고 자는 이불이 들썩들썩하였다. 승오의 몸은 어떤 커다란 몸뚱이에게 눌렸다.

'히히' 하며 승오의 허리띠를 끄른다. 옆에 자는 웬 자가 중얼중얼하는 소리로,

"너 내일 밤에는 해수욕이야."

하고 몸을 못 견디는 듯이 비틀고 돌아눕더니 다시 코를 드르렁드르렁 곤다. 그자는 못 들은 듯이 빙긋 웃기만 하고 골몰하여 허리띠만 끄른다.

한편 구석에서는 이불이 들썩들썩한다.

"아야."

"이게―---"

꿈속같이 어리고 젊은 두 사람의 소리가 꿈속까지 나는 듯하다가 다시 사라진다. 이불도 흔들리지 않는다. 또 한편 구석에서는 훌쩍훌쩍 느끼는 소리가 난다. 또 '에이 어머니' 하는 황겁스런 잠꼬대 소리도 난다. 그리고 콧소리뿐이다. 숨소리뿐이다. 이와 쌈하는 손톱 소리뿐이다.

허리띠를 끄르는 자의 얼굴은 시뻘겋게 긴장이 되었다. 가슴 또는 온몸이 정욕에 타서 있었다.

조용한 밤, 쓸쓸한 객지의 밤은 그로 하여금 불꽃을 만들게 하였다. 말라비틀어진 승오의 얼굴이나마 그에게 있어서는 분홍 구름이 떠 있는 미인의 얼굴같이 보였다. 그의 길기만 한 손길은 보드런 굴곡미가 있는 손목같이 보였다. 더욱이 뼈다귀에 얽혀진 거센 몸뚱이는 그에게 있어서는 훌륭한 곡선미를 찾을 수가 있던 것이었다. 그는 이지를 떠난 본능에 지배되고 있다.

본능까지 본능답게 충족히 태우지 못하는 이상한 세상에서 짓밟힌 그는 채우지 못한 그만큼 본능의 충동이 강렬한 것이다.

"퍽도 옭맸지, 깍쟁이―---"

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그자는 부르르 떨면서 잠든 승오의 입살에다가 쭉― 하고 입을 맞추었다.

뜨겁기 불 같은 입이었다. 찰나 승오는 그제야 깨었다. 전신은 떨렸다. 강간당하는 부녀자와 같이 초의식적 힘을 들여 밀었다. 그러나 헛수고였다. 아무런 이론 있는 반항은 아니었다. 누르면 쏟아지는 반동적 행위였었다.

"여보, 똥이 마려 죽겠소."

정말 똥이 마려운 것 같았다. 버적버적 똥이 나오는 것같이 그의 몸은 그의 비조직적 언어에 지배되었다.

"정말야."

호랑이같이 사나웠으나 호랑이같이 미련하였다. 미련하다느니보다 차라리 무식한 자의 순직한 말소리였다. 역시 떨렸다. 정열에 떨렸다.

"그럼 누가 거짓말…… 에그그, 급해 죽겠네."

죽어 가는 자의 비명 같았다.

"요놈 좋지 않어, 괜히 거짓말을 하면."

저는 독 안의 쥐가 어디를 가겠느냐 하는 듯이 매우 선배다운 기풍으로 그를 놓았다. 그리고 암을 웅키려 드는 숫짐승의 눈 같은 눈으로 그를 노려본다. 가슴은 벌룩벌룩하였다. 움파 같은 손으로 승오의 손목을 덥석 잡고 온몸을 부르르 떨고 또 한 손으로는 못 견디는 듯이 제 아랫배를 덥석 쥔다.

승오는 얼른 뿌리치고 허둥지둥 나온 것이 이 눈 속에 잠긴 차디찬 양국교다리 위다.

무슨 예산으로 이곳까지 왔는지 그도 알 수가 없었다.

꼭뒤 끝까지 흥분된 그는 다만 그의 몸이 격분에 잠겼었을 뿐이었다. 온통 그놈들은 악마라고 부르짖었다. 염치와 예의가 없는 짐승이라고 생각을 하였었다. 그리고 색종이 삐라를 뿌리고 강연회 간판을 쓰며 손에는 팸플릿을 쥐고 눈은 항상 반역자적 광채에 잠겨 있는 축들이 그림같이 동경되었었다.

옳다. 천재도 천재답게 발휘할 곳도 암만해도 졸업장 매상인 대학의 배경이 필요하고 기세를 기세답게 뽐내는 데에도 명예보고서인 신문 삼면이 유력하다. 그는 이렇게까지 그전 생활하던 동리의 모든 것이 하나씩 둘씩 신임하게 되었다.

썩었다. 그래도 목표를 바로 보고 나가는 리더(그는 그전에 항상 리더로 자처하였다)인 내가 짓밟히었으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무리에 섞여 있다니…….

하면서 머리와 몸뚱이가 따로 독립하였던 그전 생활이 하늘같이 쳐다보인다.

그러다가 이곳까지 와서는 무엇을 깨달은 듯이 그보다도 먹을 방편을 생각하고는 누가 붙잡은 듯이 발이 붙었다. 도리어 왜 이곳까지 왔나 하고 후회를 하도록 되었다. 그때는 벌써 그를 누르고 있던 격분된 신경이 평온한 질서로 돌아갔을 때다. 승오는 눈 속에 파묻힌 우전천의 동안(東岸)을 내다보았다.

거대한 공장과 거친 일터가 그림같이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벤또 끼고 가는 늙은이 젊은이 부녀자나 어린애들의 초췌한 꼴이 눈앞에 나타난다.

머리 동인 뭉텡이뭉텡이의 모꾼, 목도꾼, 어린애 업은 계집, 구루마꾼, 끔찍이도 많게 나타나고 있다.

그들은 운다. 주저하는 소리와 꾸짖는 소리는 하늘을 뚫고 있다. 말라빠진 팔다리는 공중 걸려 띄우고 있다. 부른다, 손목 잡는다, 서로 쥐고 킥킥거린다.

구슬프게 우는 소리다. 우는 소리는 높아 간다. 그곳에 해는 비친다. 환하다. 새벽은 훨씬 지난 아침의 햇빛이다. 승오는 멀거니 내다보고 있다. 그러다가 그는 깜박하고 깨었다. 그것은 햇빛이 아니었다.

눈발 찬 공중이 눈에 그렇게 어렸던 것이다.

승오는 얼마 만에 빙긋이 웃었다. 그는 자기를 웃었다. 어린아이, 새색시, 도련님이라고 그는 자기를 비웃었다. 거친 곳에 참이 흐르고 짐승 같은 곳에 인간성이 있다. 그 같은 난잡하고 흉악한 수없는 무리는…….

열매는 있었다. 비분강개한 열매는 있었다. 화려한 무대의 가장무도를 하는 수적은 이리떼와는 훨씬 햇빛에 가까운 무리가 떨어지면 는〔漲〕다. 넘쳐서 흐른다. 그곳이 새아침이다. 강도와 도깨비가 사라진 새아침이다.

그는 이렇게 속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어슬렁어슬렁 오던 길로 돌아서서 왔다.

진흙투성이 한 떼의 노동자 사이에는 같이 웃고 같이 떠드는 새 친구 하나가 늘었다.

그는 교묘한 여자 이외에 순직한 반역성이 빛나고 있는 눈을 가진 자다. 그 눈은 분명하게 승오의 눈이다.

해는 말없이 중천에 떠서 있다. 그리고 광채를 말없이 비추고 있다. 난잡하게 일어나는 노동가는 검은 연기 찬 공중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연기같이 꿈틀거리면서 화려한 동경시가를 위협하고 있다 간다.

 

출전:개벽(19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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